예수진은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연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정말 감동해서 울고 싶어졌다. 눈앞의 장면은 그녀 인생에서 본 가장 행복한 모습이었다. “엄마.” 하연이의 어린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통통한 작은 손으로 손에 쥔 꽃다발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예수진은 다시 눈물이 고여서 참을 수 없었다. “엄마, 왜 울고 있어요?” 하연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은 엄마와 아빠가 결혼하는 날인데, 기뻐해야죠!” “엄마는 안 울어, 엄마는 그냥...” 예수진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아빠도 오늘 아침에 울었어요.” 하연이가 갑자기 말했다. 예수진은 잠시 멈칫했다. “엄마랑 똑같이 눈이 붉어졌었어요. 제가 왜 우냐고 물어봤더니, 아빠도 울지 않았다고 했어요.” 하연이가 동글동글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아빠랑 엄마 둘 다 너무 웃겨요.” 예수진은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계지원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는 오늘 아침에 정말 조금 감정이 격해졌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하연이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매우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는 단호한 눈빛으로 예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내가 곧 너를 데리러 가서 결혼하게 될 생각을 하니까,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려고 했어.” 예수진은 계지원이 이렇게 솔직하게 인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계지원, 사랑해!” 예수진은 정말 참지 못하고 계지원의 품에 안겼다. 하연이는 엄마에게 눌려 얼굴이 일그러졌다. ‘엄마는 아빠를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한다.’‘엄마는 항상 나와 아빠를 차지하려 한다.’하지만 오늘의 하연이는 의외로 엄마와 아빠를 두고 다투지 않았다. 왜냐면 할머니가 오늘 아빠와 엄마가 결혼한다고 말해줬고, 아빠는 오늘 엄마의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좋아, 오늘 하루 아빠를 엄마에게 양보해 줄게.’예수진은 계지원을 꽉 끌어안았다. 계지원도 그녀를
‘이거 진짜인가?’ 이렇게 수줍고 내성적인 계지원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키스를 했다...그렇다. 누가 누굴 두려워해? 누구한테도 지는 성격이 아닌 예수진은 반응하기 시작하고, 능동적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동안 끈적하게 키스를 했다. 주변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헤헤, 오늘 너희가 주인공이지만, 좋은 시간을 놓칠 수는 없잖아.” 예수진과 계지원은 잠시 얼떨떨해졌다. 이 순간, 두 사람은 조금 너무 몰입했다는 걸 깨달았다. 예수진은 급히 떨어져 나갔다. 계지원의 얼굴은 빨개졌다. 귀도 붉어졌다. 어쩌지? 예수진은 계지원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 마치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었다. 결혼식은 무슨, 치열한 전쟁이 더 좋을 것 같았다. “너희 둘 그 눈빛 교환, 그만 좀 해라.” 하도경이 옆에서 못 참고 말했다. “오늘 결혼식에 이미 많은 사랑을 퍼뜨렸는데, 우리 같은 싱글들의 감정을 좀 생각해 줄 수 없겠어? 호텔에 가서 계속 결혼식을 할 거야 말 거야?” 계지원은 입술을 다물었다. 입술에는 분명 예수진의 방금의 촉감이 남아 있었다. 그는 속으로 심호흡을 했다. 손을 뻗어 예수진의 손을 잡았다. 예수진도 계지원의 손을 꽉 잡았다. 두 사람은 함께 나가기로 했다. 비록 예수진의 집이 크긴 크지만 사람은 정말 많아서, 곳곳이 붐비고 통행이 불편했다. 심지어 갑자기 누군가 신랑이 아직 돈 봉투를 안 주고 신부를 데려갔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절차를 잊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일부러 돈 봉투를 빼먹은 건 아니냐며 너무 인색하다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리고 이 말이 나오자마자, 누군가 급히 대문을 막아버렸다. 계지원은 서둘러 하도경에게 돈 봉투를 주라고 했다. 하도경은 재빠르게 돈 봉투를 막 흩뿌리며 말했다. “모든 분들께 돈봉투를 드립니다! 자, 이쪽으로 오세요!” 순간, 거실은 혼란스러워졌다. 소이연과 하지수는 서둘러 옆으로 비켰다. 이 분위기라면 몇 명은 넘어질 것 같
리무진 안에서 예수진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신부의 행복이 정말로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늘 계지원의 대담한 고백과 키스 덕분에, 소이연은 예수진이 평생 자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리무진이 골프장에 도착했다. 두 개의 결혼식이 함께 진행되므로 일반 호텔에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어, 장안시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골프장에서 야외 결혼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일행이 차에서 내리자, 기자들이 입구에서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대 감독과 인기 스타의 결혼식이니, 장안시의 미디어가 거의 총출동한 셈이었다. 계지원은 예수진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공인으로서 팬들에게 보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예수진의 신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결혼식은 기자들이 내부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오직 입구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기자들은 신나 있었다. “계 감독님, 들은 바로는 수진 씨의 결혼식 드레스를 당신이 직접 해외에서 맞춘 것이 라던데, 사실인가요?” “계 감독님, 수진 씨와는 선입견 없이 결혼하게 되었는데, 결혼식에 대한 기대에 영향을 미칠까요?” “이 결혼식은 계 감독님과 수진 씨 외에도 육현경의 결혼식이 함께 진행되나요?” “육현경은 신부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혹시 소이연인가요?”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예수진과 계지원은 누가의 말을 듣고 누구에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모두가 동시에 질문을 하니, 그들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듣지 못했다. 계지원은 좋은 날을 망칠까 걱정하며 크게 외쳤다. “모두 조용히 해 주세요! 한 번에 한 명씩 질문해 주세요. 이렇게 하면 정말 답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저희가 도무지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하시기 전에, 제가 준비한 기자 회견문을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계지원은 원고를 꺼냈다. 예수진은 놀랐다. 계지원이 이렇게 준비해온 줄은 몰랐다. 그는 예수진에게 애정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원고를 읽기
차는 어느새 골프장 안으로 들어섰다.하지만 소이연과 하지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순간 이렇게나 빨리 기자들을 쫓아낸 계지원과 예수진의 공권력에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자아냈다.최소 30분 이상은 질질 끌 것 같았는데 10분도 채 안 돼서 상황이 종료되었다.골프장의 전용 주차장에 차가 멈춰서자 계지원은 먼저 현장에 나가 손님들을 맞이했다.소이연과 하지수 그리고 하연 세 사람은 신부 대기실에서 예수진이 두 번째 드레스를 갈아입는 걸 도와줬다.예수진은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가고 소이연과 하지수는 하연이를 데리고 놀았다.“지수 씨.”소이연이 그녀를 불렀다.“네?”하지수는 하연이와 장난치고 있었다.한눈에 보아도 그녀는 하연이를 정말 예뻐했고 이는 소이연도 마찬가지였다.다만 같은 마음이어도 하지수처럼 아이에 대한 갈망 정도는 아니었다.그녀는 지금 몹시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는 걸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문수 씨랑은 아직도 그런 관계인가요?”소이연이 물었다.순간 하지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저 그래요.”여전히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는 듯싶었다.“문수 씨가 출소한 지 이렇게나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변함이 없다는 건가요?” “네.”하지수는 한껏 씁쓸한 얼굴로 답했다.“지수 씨 문제인가요, 아니면 문수 씨 때문인가요?”“그 사람이겠죠?”하지수가 말을 이었다.“그 사람은 여전히 저를 믿지 못하겠나 봐요. 며칠 전에는 이혼 얘기까지 하더라고요.”소이연의 눈살이 순간 찌푸려졌다.“근데 전 이혼은 안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지금 송씨 가문 별장에서 지내고 있어요.”“왜 갑자기 이혼 얘기를 꺼냈을까요?”“이제는 제가 싫증 나나 보죠. 밖에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 천지니까요...”“혹시 지수 씨가 이제 더 이상 문수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하지수는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 아직도 그에 대한 자기의
신부 대기실 안은 웃음꽃이 활짝 피어있었다.이때, 하지수가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작은 소리로 물었다.“육현경 씨 쪽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그녀의 말에 소이연이 입술을 달싹였다.하지만 예수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어떻게 되든 말든. 결혼하는 여자도 내 마음에는 하나도 안 드는데 알아서 하겠지.”하지수가 웃으며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난 그저 지금 뉴스에 육현경 씨에 관련된 기사는 하나도 없고 실시간 검색에도 전부 다 네 결혼 이야기로 도배된 게 신기할 뿐이야.”“당연하지.”예수진은 한껏 뿌듯한 얼굴로 답했다.“톱 스타랑 최고 감독의 결혼인데 당연히 떠들썩하겠지. 그리고 모두가 아마 시기하고 질투하고 부러워할 거야.”예수진은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오늘만큼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그렇게 몇몇 사람들은 또 얼마간 대기실에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이때, 관계자가 조심스레 들어오더니 그들에게 알렸다.“신부님, 곧 입장하겠습니다.”순간 예수진은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큰 것 같기도 했다.“어떡해, 나 무서워.”“너 배우잖아. 그러면 레드 카펫도 많이 밟아봤을 텐데 이런 작은 의식 따위에 질 거야?”하지수가 그녀를 도발했다.“그거랑 같아? 레드 카펫은 어쩔 수 없이 돈 받고 하는 거고 이건 내 인생이 걸린 나를 위한 의식이잖아.”예수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생각에 흥분돼 미치겠어...”“됐어. 빨리 가기나 해. 더 꾸물거렸다가는 좋은 시간이 다 지나가겠다.”하지수가 그녀를 다시 한번 재촉했다.예수진은 하지수의 모습에 입을 악물었다.분명 그녀의 행복을 질투하는 것 같았다.그러다가 재빨리 치맛자락을 손에 쥐고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하연은 이미 관계자의 도움으로 먼저 지정된 자리에 앉아 있었다.오늘 결혼식의 화동을 맡았기에 먼저 가서 물건들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소이연과 하지수도 예
말이 끝나자마자 두 개 성의 레이스 문이 천천히 열렸다.안에서 예수진은 한껏 긴장된 얼굴로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아무리 오늘날을 손꼽아 기대했다고 해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그래도 여배우인지라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음악에 맞춰 천천히 성에서 걸어 나왔다.레드 카펫 양옆에는 생화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고 그 옆에서 하객들이 그녀를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예수진은 아버지가 없거니와 계지원도 다리가 불편한 관계로 혼자 신부 입장한 뒤 계지원과 같이 무대에 서기로 했다.그러다가 몇 걸음을 걷더니 문득 옆을 바라보았다.뒤따르던 소이연과 하지수도 계속 옆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는데 다른 한 성에서 신부가 나오지 않는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다.하객들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하지만 결혼식이 진행 중이니 누구하나 먼저 입을 열어 묻지는 않았다.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예수진은 무대 중앙에 도착했고 곧바로 계지원한테 다가갔다.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자꾸 텅 빈 다른 신부의 자리로 시선이 갔다.사회자도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얼굴로 육현경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상의하는 듯싶었다.어쨌든 지금 그의 신부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 두 사람은 몇 초간 대화를 주고받다가 사회자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마이크를 들었다.“비록 오늘은 합동결혼식이지만 의식은 각각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육현경 신랑분은 잠시만 자리에서 신부님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정식으로 신랑 계지원 씨와 신부 예수진 씨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큰 박수로 맞이해주세요!”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예식장이 떠나갈 듯 울려 퍼졌다.“두 분은 한 발짝만 앞으로 서주세요.”사회자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예수진은 계지원의 휠체어를 끌고 무대 중앙까지 갔다.소이연과 하지수도 무대로 올라갔는데 소이연은 또다시 작은 성 쪽을 바라보았다.성의 문이 방금 열렸다가 다시 닫혔는데 분명 안에는 신부가 없었다.그렇다는 뜻인 즉...소이연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오므리다가 그녀
하연이는 아장아장 걸어가더니 계지원과 예수진에게 반지를 건네줬다.핑크색 공주 드레스 차림의 아이를 본 하객들은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우리 꼬마 화동이 반지를 잘 전달해 줘서 너무 고마워요.”사회자는 열정적으로 말하다가 허리를 굽히고 하연에게 물었다.“혹시 오늘 저 두 사람에게, 즉 엄마 아빠에게 할 말이 있을까요?”하연이는 커다란 눈망울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마이크에 대고 답했다.“여동생 갖고 싶어요.”그녀의 말에 장내는 또다시 웃음소리로 들끓었다.엉뚱한 모습이 엄마인 예수진과 똑 닮은 것 같았다.계지원과 예수진도 어느새 사람들과 같이 웃고 있었다.방금 한 말은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니었다.분명 이런 절차가 있을 것 같아 예수진은 사전에 하연에게 만약 사회자가 물어보면 꼭 두 사람이 백년해로 맺어지길 축복한다고 말하라고 연습까지 시켰었다.또한 대사까지 잘 적어서 외우도록 시켰는데 결국에는 대사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애드립을 친 것이다.사회자가 웃으며 되물었다.“남동생은 안 되나요?”하연이는 다시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답했다.“안 되는 건 아니에요.”그녀의 애어른 같은 말투 때문에 사람들은 또다시 박장대소했다.이때 하연이 다급히 다시 말을 이었다.“사실 남동생이랑 여동생을 다 갖고 싶어요. 아니면 아빠 엄마가 그냥 쌍둥이를 낳아주세요. 그럼, 남자인지 여자인지 따지지 않아도 되잖아요.”하연의 말에 사회자는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농담을 건넸다.“하연이의 소원을 분명 아빠 엄마가 잘 알아들었을 거예요. 그리고 만약 오늘 저녁에 하연이가 얌전히 자기 방에서 자고 엄마 아빠 방에 가서 두 사람을 방해하지만 않으면 하연이에게 남동생이나 여동생이 생길 거니까 기다려요.”“진짜요?”하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사회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그에게 말했다.“전 안 믿을래요.”“진짜예요.”“근데 저번에 외할머니도 그렇게 말하셨어요. 아니, 여러 번 똑같은 말 했어요. 매번 엄마랑 아빠가 같이
저 앙큼한 어린이가 내 딸이라고?“오늘 저희에게 많은 즐거움을 안겨준 화동 어린이에게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사회자는 일부러 하연이를 가리키며 말했고 장내는 또다시 웃음소리가 들끓었다.이렇게 웃음꽃이 끊임없는 결혼식은 처음이다.“그럼 계속 결혼식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신랑 신부는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주세요.”사회자가 다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그들의 커플링은 다시 제작된 것이다.프러포즈 때 받았던 반지는 예수진의 손에 끼워져있었다.그리고 오늘 계지원은 조심스레 결혼반지를 그녀의 약지에 끼워줬다.반지가 화려한 건 아니지만 계지원이 특별히 외국에 가서 직접 디자인한 반지라 예수진은 어떻게 봐도 이뻐 보였다.“신랑 신부는 계속 반지 교환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사회자가 다시 한번 귀뜸해 줬다.예수진이 잠깐 자신의 결혼반지에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이다.그러다가 사회자의 말에 재빨리 정신을 차렸는데 그런 어리바리한 모습에 하객들은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그녀는 반지를 조심스레 계지원의 약지에 끼워줬다.그렇게 두 사람은 반지를 서로에게 끼워주는 데 성공했고 이는 보는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들었다.예수진은 계지원의 손에 자신과 똑같은 반지가 끼워진 모습을 보고는 순간 울컥했다.“이제 정식으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사회자가 높이 외치자 음악 소리와 함께 결혼식은 절정에 달했다.“이제 다음 순서는...”사회자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신랑분께서 신부님에게 뽀뽀하는 시간이 있겠습니다!”현장은 순간 열렬한 박수 소리로 들끓기 시작했다.예수진과 계지원은 마주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계지원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가 몸을 일으켜 서려고 했다.그의 모습에 관계자는 재빨리 계지원에게 지팡이를 가져다줬다.계지원이 지팡이를 넘겨받으려던 순간 예수진은 그대로 계지원의 품에 안기다가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그대로 그의 입에 입을 맞췄다.화끈한 신부의 모습에 모든 사람이 놀랐다.어떤 신부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일까.물론 두 사람은 지금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