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요.” 사실 그녀는 모두 야채를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가희와 함께 빨래하고 밥하고 모든 고생을 다 했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예수진의 어린 시절만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둘은 함께 걸어갔다. 갑자기 야채터 안에서 무엇인가 달려 나왔다. 그 모습에 예수진과 육가희는 깜짝 놀랐다. 검은 들개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악!!!” 예수진과 육가희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떻게 한 마리 개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이렇게 험상궂은 개가. 그 개는 사람을 잡아먹을 모양새였다. 그 모습에 육가희와 예수진은 깜짝 놀라 어쩔 바를 몰랐다.그제야 제작진은 이 상황을 알아챘다. 하지만 개의 속도는 너무 빨랐기에 제작진이 손을 쓸 새도 없이 예수진과 육가희에게 달려들었다. 둘은 그렇게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아!!! 살려주세요!!!!” 육가희가 소리쳤다. 예수진도 넘어졌지만 개가 공격하는 대상은 결코 그녀가 아니었다.들개가 육가희를 물려고 하자 예수진은 본능적으로 개를 밀쳐내려 했다. 하지만 그 개가 고개를 돌려 예수진의 손을 빠르게 물어 왔다. 예수진이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개는 또다시 육가희의 어깨를 물려고 했다. “악, 아파!!!” 육가희가 소리쳤다. 그들은 너무 놀라 어쩔 바를 몰랐다. 그때 제작진 중에서 두 남성이 빨리 다가와 개를 포획했고 안간힘을 써 육가희에게서 개를 밀쳐냈다. 개는 바닥에서 힘겹게 기어 올라와 뒤도 보지 않고 도망칬다. 그렇게 녹화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제작진들이 다가와 그들에게 물었다. “수진 씨, 가희 씨 어때요? 많이 다쳤어요?” 그들은 그렇게 제작진들에게 에워쌓여졌고 이 소식은 남자 게스트들에게도 알려졌다. 하도경이 맨 처음으로 도착했다. 그의 속도는 정말 빨랐다. 그는 인파속으로 들어가 긴장된 듯 물었다. “수진 씨 괜찮아요? 개에게 물었다면서요? 어디 물렸어요?” 육가희는 바로 예수진이 곁에 있었다. 그녀는 그
계지원은 다리가 불편했기에 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려와도 제일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그가 도착할 때에는 예수진과 육가희는 이미 몸을 일으킨 뒤였다. 하도경은 육가희를 부축하며 떠났다. 예수진은 제작진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개에게 물렸으니 주사를 맞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 녹화는 아마도 연기될 것이다. “수진 씨.” 계지원이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달려와 물었다.“어디 다친 거예요?” “여기요.” 예수진도 감추려 하지 않고 상처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하얀 팔에 개에게 물린 상처가 보였다. 이미 피딱지가 앉았고 주위는 파랗게 멍들었다. “아파요?” 계지원은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네.” 예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계지원이 사과했다. “당신 잘못도 아닌데요.”“내가 당신 옆에 있었다면...” “당신이 물리면 나도 마음이 아플 거예요.” 예수진의 말에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가 불편했기에 하도경처럼 예수진을 안고 갈 수도 떠날 수도 없었다. 그저 그녀와 함께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작은 마을에 묵고 있어 의료 시설이 탐탁지 않아 제작진들은 내부 회의를 진행했다. 결국 이번 녹화는 여기서 멈추고 게스트들에게 시내의 가장 좋은 병원으로 갈 수 있게 준비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꽤 멀었기에 예수진과 육가희는 먼저 현지 병원에서 간단한 처치를 받았다. 차에 올라타 예수진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아파요?” 계지원이 긴장한 듯 물었다. “아니요.” 예수진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아팠지만 지금은 별로 아프지 않았다. “그냥 오늘 힘들게 많은 야채를 땄는데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했네요.” 그녀의 생각은 정말 일반 사람과 달랐다. “아깝지 않아요?” 예수진이 계지원에게 물었다. “나는 당신이 개에게 물린 게 더 큰 일이에요.” “내가 죽을 것도 아니고.” 예수진이 다시
아픔에 예수진과 육가희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계지원은 그런 예수진의 손을 잡고 그녀 대신에 아프고 싶었다. 하도경도 원래 육가희의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예수진의 소리를 듣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보았다. 육가희도 아파 소리를 참지 못하고 질렀다. 하지만 하도경의 시선은 계속 예수진에게로 향했다. 그런 모습에 육가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작게 그를 불렀다. 하도경은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물었다. “아직 아파요? 수진 씨가 너무 소리를 질러서요.” 육가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자신의 실망을 감추려고 애썼다. 그들은 상처를 봉합하고 또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육가희와 예수진은 입원했다. 만약 오늘 아무런 일이 없다는 뜻이 돌아간다면 돌아가서 다시 주사를 맞아야 할 것이다. 예수진과 육가희는 자신의 병실로 돌아갔다. 모두 고급 VIP 병실로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병실 안. 하도경은 육가희와 함께했다.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하도경은 유가희에게 사과를 깎아 주며 그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과를 깎고 난 이후에야 육가희에게 입을 열었다. “과일 좀 먹어요.” “하도경 씨, 예수진 씨 좋아해요?” 육가희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 물음에 하도경은 몸이 굳어졌다. “나를 만나기 전에 그 사람을 좋아한 거예요?” “네.” 하도경은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그럼 왜 나랑 같이 있는 거예요? 내가 뭐라고?” 육가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참 오랫동안 견뎠다. 하도경이 술을 마시고 예수진의 이름을 불렀을 때부터 그녀는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하도경이 예수진을 보는 눈빛을 보는 순간 그녀는 알았다. 그 눈빛은 자신을 볼 때와 너무도 달랐다. 하도경이 자신을 보는 눈빛은 그렇게 애틋한 눈빛이 결코 아니었다 “나와 수진 씨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 “그래서 나는 그 사람 대신인건
육가희는 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믿기지 않다는 듯 하도경을 바라보았다. 그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다니. 4년 동안이나 함께 한 그녀는 도대체 그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정말 미안해요. 우리 헤어져요.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으니 내가 양쪽 부모님에게 내 문제라고 말할게요. 만약 당신의 일에 영향이 간다면 금전적인 피해 보상을 드릴게요.” “정말 이렇게까지 할 건가요?”육가희는 눈시울은 붉어졌고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하도경은 그녀의 모습에 머리를 수그렸다. “어떻게 당신에게 보상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예수진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당신을 속이고 싶지가 않아요. 다 내 잘못이에요. 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 봐요.”“나는 도대체 뭐였어요? 나랑 같이 나랑 함께한 이유는 뭔가요? 하도경 씨 왜 이렇게 잔인해요?” 하도경은 계속 침묵했다. 그는 정말 어떻게 위로해야 될지 몰랐다. 육가희와 함께한 건 철저히 부모님과 약속 때문이었다. 몇 년이나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육가희에게 사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낸 것이다. 예수진이 아니면 그는 정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육가희는 흥분하여 말했다. 그런 그녀를 하도경은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예수진을 좋아한다고 인정했는데... “내가 왜 헤어져야 해요? 내 4 년이란 청춘을 당신한테 썼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진정해요. 우리는 어쩌면 함께하면 안 됐을지도 몰라요. 만약 당신이 난처하다면 프로그램 녹화까지는 함께 있을 수 있어요.” “아니요.” 육가희는 하도경의 말을 끊었다. “나는 헤어지지 않아요. 헤어져도 내가 먼저 말해, 당신이 아니라.” 하도경은 뭐라고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결국 침묵했다. 만약 육가희에게 헤어짐을 제안하는 순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녀의 뜻을 따르고 싶었다. “하도경 씨, 당신은 나한테 죄를 짓는 거예요.” 육가희는 이불을 들춰내고 병실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
“예수진씨 당신은 우리 삼촌이 있잖아요. 왜 또 하도경을 꼬드기는 거예요?” 육가희가 예수진에게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예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육가희가 하도경이 그녀에 대한 감정을 알아차린 것이다. “가희 씨, 그만해요. 우리 둘이 일에 다른 사람을 왜 끼게 하는 거예요?” 하도경은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아까까지 좋게 말하던 그의 인내심은 바닥이 난 것이다. “예수진때문에 나한테 화를 내는 거예요? 하도경 씨, 나야말로 당신의 약혼자에요. 예수진은 이미 남편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육가희는 더욱 마음이 무너졌다. 그녀는 자신이 예수진보다 못한 곳이 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디가 그녀보다 못하단 말인가. 왜 모든 사람은 다 그녀를 좋아하는 것인가.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도 자주 예수진이란 이름을 말했었다. “됐어요. 우리 가요.” 하도경이 자신이 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안 가요.” 육가희는 강경하게 말하며 계지원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삼촌. 삼촌이랑 하도경씨가 예수진의 치마폭에서 놀고 있는데...” “알아.” 계지원이 육가희의 말을 끊었다. 계지원의 말에 육가희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다 알면서 예수진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거란 말인가. 삼촌은 정말 괜찮은 것인가. 육가희는 모든 소식을 알고 계지원과 예수진을 갈라놓으려고 병실로 찾아왔다. 예수진이 잘되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계지원은 정말 좋은 남자다. 몇 년 동안 그 어떤 여자도 만나지 않았다. 그런 그는 아마 예수진과 하도경 사이의 관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계지원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알면서도 이런단 말인가. “그녀의 과거에 대해 나는 나 알고 있어.” 계지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기세는 엄청났다. “다른 사람을 통해 수진씨를 이해할 생각 없어. 내가 그 누구보다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계지원은 또박또박 말하며 육가희에게 말할 기회
“나랑 하도경은...” “신경 안 써요.” 계지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신경 쓰지 않으면 왜 내 말을 끊어요?” 예수진이 미간을 구겼다. 남자도 말과 마음이 다른 것인가. 계지원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그 사람 이름이 나오는 게 싫었어요.” “그러면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 거예요?” 예수진이 계지원에게 체면을 두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요.” 예수진이 중얼거렸다. 그냥 자신을 속이는 게 나왔다. 예수진이 그에게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도 그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다른 것은 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말할 거예요.” 예수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모습에 계집원은 허탈한 듯 웃었다. “내가 결국 당신 말을 들을 줄 아는 거죠?” “언제부터 들었어요?” 예수진이 화가 난 듯 물었다. “내가 항상 당신 말을 들었죠. 도대체 누가 누구 말을 듣는 거예요? 계지원씨 사람은 성실해야 돼요. 애초에 나랑 함께 있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예요? 그리고 이후에 하연이 때문에 나랑 함께 있겠다고 한 사람은 누구예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거예요?”“하연이 때문에 당신이랑 함께하는 거 아니에요.” 계지원의 반박에도 예수진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상관없었다. 그들의 관계는 항상 계지원이 말하는 대로 되었다. 반박은 용납하지 않았다. “나랑 하도경 사이 이를 말하는데 또 멀리 갔네요.” 예수진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계지원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참았다. “그럼 말해 봐요.” 그가 예수진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아내는 그가 아껴야지. 그를 화나게 만들어도 계속 아껴야 한다. “하도경이랑 함께 한 이유는 하도경이 나를 감동시켰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하도경이 나를 오랫동안 좋아하기도 했었죠. 그전에는 몰랐지만...” 예수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도 계지원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래서 예수진은 계속하여
“수진 씨, 당신은 정말 내가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보여요?”계지원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 순간 정말 하도경을 한 대 치고 싶었다. 그렇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단지 나랑 하도경이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사귀는 동안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어요.” 예수진은 찬란하게 웃었다. “그래서 지금 후회가 되는 건가요?” 계집원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그게 중점이 아니지 않나요?” 예수진은 어이가 없었다. “당신과 하두경이 아무런 일도 없는 걸 알고 있어요.” 계지원처럼 똑똑한 사람이 이런 정보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고요?”가능한 것인가? 그때 당시 그녀와 하도경의 사이가 그렇게 좋았는데 이를 아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저번 녹화에서 당신이 말했었잖아요. 당신이 첫날 밤은 나랑 같은 날이라고.” “그걸 믿었어요?” “믿었어요.” 예수진이 물음에 계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항상 자신이 예수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예수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도 그녀의 답을 듣고 한참이나 기뻤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그렇다. 그는 보수적인 보수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촌스런 사람이다. 예수진과 하도경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그는 예수진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는 그녀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 남자는 천성적으로 점유욕이 있는 것이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당신을 믿지 않았어요.” 예수진은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다. 그가 그녀와의 첫날밤이 처음이라고 했을 때 그녀는 믿지 않았다. 그 후에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계지원이 자신이 이미지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결혼 생활에 대해 아직까지 의심을 사고 있기 때문에 사고 있기에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포장하
“미안해요.” 계지원이 사과했다. 어떠한 이유여서든 예수진을 혼자 두어서는 안 되었다. 그가 예수진을 혼자 내버려둔 것이다. 그가 그녀의 곁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괜찮아요.” 예수진은 그가 무엇을 사과하는지 잘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계지원이 왜 그녀를 포기했었는지 그녀는 지금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지금 그녀는 예전 일이 중요치 않다고 생각되었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계지원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예전 일과 작별하기 위하여. 나는 그때 계지원이 예수진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엄청난 사고를 당했어요.” 그의 말에 예수진은 움찔했다. 그녀는 그가 차 사고를 당한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 당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내가 그날 떠나고 영화 촬영을 갔을 때 스케줄이 많이 타이트했어요. 그래서 촬영을 마친 후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어요. 아무리 늦어도 당신한테 돌아온다고 이야기를 했었죠...” 그래서 계지원이 차 사고를 당한 것은 그녀의 탓이란 말인가. 예수진은 마음이 아파왔다. 그 고통은 점점 심해져 갔다. “결국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어요. 차는 절벽에서 굴러떨어졌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반년이나 지난 지났어요.” 계지원은 미안한 듯 말했다. 그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지만, 그는 분명히 피해자였지만, 그는 지금 그녀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다. 예수진은 입술을 깨물며 눈시울이 점점 불거졌다. “내가 당신이 다리 불구가 된 걸 알았을 때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요.” 예수진이 조금 흥분한 듯 물었다. 만약 그때 그가 찾아왔다면 그들은 어쩌면 그들은 어쩌면 헤어진 3년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 싫어할까 봐 무서웠어요.” “내가 그런 사람이에요?” “당신은 얼굴을 보지 않나요?” 계지원이 허를 찔렀다. “당신이 다리가 상한 게 얼굴이랑 무슨 관련이 있어요?” “그때는 얼굴도 다쳤어요. 지금은 많은 많은 수술
예수진:[그럼 너랑 지수 다 서울에 있는 거야? 아직 병원이야?]예수진:[부모님은 좀 어떠셔? 충격이 크시지?]그들의 문자에 하나하나 답장을 하던 송문수는 점점 더 침울해졌다.누구한테 일어나도 참혹한 비극인데 그 일이 제 형한테 일어났으니 송문수는 어떻게 송승우를 바라봐야 할지 몰랐다.근심 속에서 밤이 깊어지자 하지수가 송문수에게 문자를 보냈다.[자?][아니.][병원에서 잘 수 있으면 어디서 눈이라도 좀 붙여. 문수 씨도 쉬어야지, 어머님 아버님이 못 버티시면 남은 건 당신뿐이야.][알아 나도. 넌 왜 아직 안 자? 시간 늦었는데.][당신이 걱정돼서.][뭐하러 날 걱정해, 난 괜찮아. 송승우가 문제지...]그의 문자에 어떤 말로 답을 해야 할지 몰랐던 하지수는 말을 잇지 못했고 송문수도 그만 대화를 끝내려 했다.[늦었으니까 얼른 자.][응.][나 대신 부모님 좀 잘 챙겨줘, 엄마 아빠 쓰러질까 봐 나 너무 무서워.][내가 계속 옆에 있을 거니까 걱정 마.]핸드폰을 내려놓은 송문수는 중환자실 앞에 놓인 딱딱한 의자에서 밤을 지새웠다.중환자실에서 나온 송승우가 바로 입원할 수 있게 병원에서 VIP 병실을 열어줬지만 송문수는 그 편한 곳도 마다하고 굳이 송승우 옆을 지키고 있었다.아무리 송승우라 해도 이런 곳에 혼자 있으면 무서울까 봐.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아침까지도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던 송문수는 간호사의 친절한 부름에 서서히 눈을 떴다.“보호자분?”잔뜩 충혈된 눈을 하고 몸을 일으킨 송문수는 의아한 눈으로 간호사를 바라보았다.“환자분이 보호자분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송승우 씨가요?”중환자실을 가리키며 당황한 듯 묻는 송문수를 향해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송문수 씨가 중환자실로 와줬으면 하세요.”“면회 안된다면서요?”“좀 전에 선생님이 또 몸 상태 체크하셨는데 이젠 다 정상수치로 돌아와서 면회 가능하시대요. 대신 시간만 좀 주의해주세요. 아직 몸이 약하셔서 이럴 때는 저희도 환자분 부탁이라면 뭐든 다
시부모님의 몸 상태를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던 하지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송기명은 더욱이 쓰러진 지 얼마 안 된 터라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다가는 정말 큰 일이 날 것 같았다.“아버님, 어머님, 여긴 문수 씨한테 맡기도 우린 먼저 호텔에 가 있어요.”하지수의 거듭되는 권유에 송기명과 허영지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하라고 송문수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알겠다니까요. 걱정 마시고 가세요. 제가 입구까지 모셔다드릴게요.”송기명과 허영지를 차에 태운 송문수는 조수석에 앉은 하지수를 바라보았다.모든 감정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던 그녀도 송문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두 사람의 눈엔 미련이 가득했지만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그렇게 차가 출발하고 방향등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송문수는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중환자실 복도에 앉은 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좀 차리고 핸드폰을 켜보았다.역시나 수많은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그의 알림창을 꽉 채우고 있었다.다른 문자는 싹 다 무시한 송문수는 친구들과의 방, 그리고 소이연, 예수진이 함께 있는 단톡방, 이렇게 두 곳에만 답장을 했다.육현경:[대체 무슨 일이야?]계지원:[문수야, 너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아저씨 생신 파티는 왜 취소하는 거야?]하도경:[말 좀 해봐, 전화도 안 받고. 이러다가 다들 답답해 죽겠어,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또 다른 단톡방에 있던 소이연과 예수진 역시 걱정스러운 문자를 보내왔다.소이연:[문수 씨, 무슨 일 있는 거죠?]예수진:[송문수, 답장 안 해? 기사 보니까 아줌마 안색도 엄청 안 좋던데 무슨 일이 나긴 난 거지?]예수진:[말 좀 하라고 이 자식아!]소이연:[수진 씨 진정해요 일단. 문수 씨랑 지수 씨가 바빠서 답장을 못 하는 것 같은데 급한 일 다 보고 나면 우리한테도 알려줄 거에요.]예수진:[알겠어요, 기다려봐야죠 뭐.]자신의 화면을 가득 채운 문자를 보던 송문수는 손가락을 움직여
송문수가 사 온 물을 건네도 부모님은 고개만 저으며 손을 모으셨다.그래서 하지수에게 건네자 그녀는 잠시 멈칫하다가 물을 받아들었다.서울에 온 뒤 송씨 일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줄곧 자리를 지키며 송승우의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이번에는 송승우가 눈을 뜨길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는 받아든 물이라 몇 모금 마시기는 했지만 물을 마시면서도 신경은 온통 송승우에게 쏠려있었다.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송승우의 몸을 보게 되었다.너무 아파서인지 아니면 힘이 없어서인지 몸은 미세한 떨림 외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송승우의 눈이 서서히 떠지고 있어 하지수는 잔뜩 흥분한 채 외쳤다.“승우 오빠 일어났어요!”“문수, 문수야! 얼른 의사 불러와!”하지수의 말에 정신을 차린 부모님이 송문수에게 의사를 데려오라 했고 송문수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의사는 중환자실에서 각종 검사를 진행했다.방음효과가 워낙 좋은 중환자실이라 의사와 송승우의 대화를 듣지 못했던 가족들은 또다시 초조해 났다.한참이나 지나서 중환자실 빠져나오는 의사에 허영지가 다급히 달려가 물었다.“선생님, 저희 아들은 좀 어떤가요?”“방금 검사 진행했는데 생명엔 아무 지장 없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돼요.”“하지만 아직 회복이 덜 돼서 여기서 며칠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일반병실로 옮겼다가 세균감염이라도 되면 큰일이거든요.”“알겠습니다, 입원은 며칠 하든 상관없으니까 저희 애 잘만 치료해주세요. 그런데 저희가 들어가서 같이 있어 주는 건 괜찮을까요?”“아직은 들어가지 마세요. 환자분도 방금 깨어나셔서 머리가 어지러울 겁니다. 오늘은 그냥 쉬게 놔두시고 내일 상태 좀 나아지면 그때 들어가 보시게 도와드릴게요.”“감사합니다 선생님!”“아닙니다.”감격 어린 허영지의 말에 의사가 한마디 더 보탰다.“환자가 아직은 본인 몸 상태에 대해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일 면회하실 때도 다리 절단한 사실은 일단 말하지 마세요. 환자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그 말에 허영지는 대성통곡을 했고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도 끄떡없던 송기명마저 아들 일에 눈물을 보였다.평소에 사이는 안 좋았지만 그래도 친형이었기에 송문수도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했고 하지수 역시 송승우가 다리를 잃는다는 말에 눈물을 떨어뜨렸다.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는데.어릴 때부터 본인 잘난 멋에 살던 사람이 자신이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되려 죽겠다고 난리를 칠 것 같아 하지수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목숨이 다리 한쪽보다는 더 중요했기에 결국 사인을 한 송기명은 온몸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기분 좋게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인 줄로만 알았는데 갑작스레 닥친 비극에 송문수도 아버지를 부축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 뒤로도 한참 동안 이어지는 수술에 다들 정신을 반쯤 놓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요한 복도에 갑자기 인기척이 들리더니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걸어 나왔다.가족들 못지않게 속을 태우던 장지석은 피곤한 듯 마스크를 벗는 의사에게로 한달음에 달려가 물었다.“승우는 좀 어떻습니까?”그제야 가족들도 정신을 차리고 하지수와 송문수가 어머니 아버지를 부축한 채 의사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다른 말보다 먼저 나온 게 의사의 한숨이라 허영지는 쓰러질뻔한 걸 간신히 버텨내며 물었다.“왜 그래요 선생님, 우리 아들 잘못된 거 아니죠?!”“생명엔 지장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런데...”“그런 데라뇨!”“환자분이 다리를 잃었으니 깨어나시고 나서도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정할 겁니다. 가족분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오른쪽 다리 외에도 몸 각 부위가 다 강한 충격을 받아서 일단은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의식 돌아오고 모든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오면 그때 일반병실로 옮길 겁니다.”의사의 말에 허영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송기명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지금 그들은 전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있었다.그들도 송승우가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
만약 하지수가 송승우의 교통사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제가 그런 하지수를 제대로 바라볼 수나 있을지 송문수는 지금 모든 게 미지수였다.송승우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그를 정말 친오빠처럼 생각했던 하지수는 역시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서울 가장 좋은 병원에 입원해 있대.”“나 서울 가야겠어.”“그래요 여보.”마침내 정신을 차린 허영지가 입을 열자 송기명도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나섰다.“갈 거면 다 같이 가야죠. 오늘 파티는 일다 취소하죠.”부모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송문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내가 파티장 취소할 테니까 지수 너는 서울 가는 티켓이랑 차량 좀 준비해줘.”“알겠어.”이미 혼이 반쯤 나간 부모님을 모시려면 본인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기에 하지수는 바로 기사에게 연락하며 공항까지 데려다줄 것을 부탁했다.그리고는 한 시간 뒤에 출발인 항공편까지 끊어놓았다.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송문수는 서둘러 파티를 취소하고 있었는데 직원을 시켜 손님들께 나중에 아버지와 직접 찾아뵙고 취소이유를 말씀드리고 사과까지 드린다는 말도 전하게 했다.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송문수는 여러 가지 일을 지시하느라 바삐 돌아치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차분했다.하지만 다들 송승우를 걱정하고 있어서 확 달라진 송문수에게 주의를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1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내린 송씨 일가는 바로 대기 중이던 차를 타고 서울 대학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하자 이미 나와 있던 송승우의 동료가 그들을 맞아주었다.“아주머니, 아저씨 오셨어요? 저는 승우 형 직장 동료 이찬혁이라고 합니다. 형은 안에서 수술 중이에요.”“우리 아들 많이 심한가요 지금?”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걱정을 멈출 수 없었던 송기명이 이찬혁을 붙잡고 묻자 그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저도 좀 전에 연락받고 온 거라 상태가 어떤지는 정확히 몰라요. 형이 실려 올 때는 의식이 있었다고 하니까 아마도...”
문자를 본 허영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자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사모님, 무슨 일이라도 난 겁니까? 왜 그러십니까?”특종을 잡은 것마냥 달려드는 기자들에 송씨 일가 사람들도 다 같이 허영지를 주목했다.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진 그를 보며 송기명이 물었다.“여보, 왜 그래요?”아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시울만 붉히고 있자 조급해 난 송기명이 다시 한번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요?”“엄마, 무슨 일 있어요?”남편에 이어 아들까지 긴장한 채로 물어왔지만 허영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리기 시작했다.그에 미간을 찌푸린 송문수는 아직 켜져 있는 엄마의 핸드폰을 가져와 문자를 확인했는데 그 역시 문자를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송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 핸드폰으로 뭘 봤길래 사모님이 저러시는 겁니까?”기자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그는 바로 허영지의 핸드폰을 들고 기자회견장을 벗어났다.“대표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무슨 일인지 한 말씀 해주세요!”하지만 그런 무시에도 굴하지 않는 기자들이 송문수를 따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경호원들이 몸을 던져 그들을 막기 시작했다.송문수의 표정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아챈 하지수도 입술을 말아 물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가 복도로 나오자 송문수는 이미 통화 중이었는데 통화가 거듭될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송문수의 표정이 저 정도로 굳어있다는 건 무언가 큰일이 났다는 뜻이었다.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본 적 없던 표정이라 하지수는 자연스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음주운전으로 잡혀갈 때도 침착하기만 하던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저러는지 하지수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한참 동안 통화를 하다 전화를 끊은 송문수는 입술을 말아 문 채 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하지수에게로 다가갔다.밖으로 나온 허영지와 송기명도 그저 장난 전화이길 바라며 송문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가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힘겹게 말을 이었
“오해 아닙니다, 전에는 저 그런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변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송 회장님의 입원 때문입니까?”“제 우상이시던 아버지가 쓰러지신 것도 하나의 이유죠. 제 눈에 아버지는 늘 이 집안을 지키는 영웅이셨고 절대 늙지도 않을 것 같던 분이셨는데 갑자기 아프다고 하시니까 그때 이 집안을 책임질 사람은 저뿐이더라고요.”이젠 다 커서 자신의 고초도 이해해주는 어엿한 아들을 보며 송기명은 아주 감동스러워했다.“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제 아내인 하지수 씨입니다.”송문수가 하지수를 바라보자 모든 카메라도 그녀에게 집중되었다.갑작스러운 이목에 놀랄 새도 없이 송문수는 말을 이어나갔다.“제 아내가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회사를 지키기 위해 같이 밤을 새우면서도 불평불만 한마디 없었던 사람입니다. 성격 안 좋은 저를 보듬어주고 격려해주면서 제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줬어요. 그래서 저는 제 아내한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저를 언급하며 고맙다고 하는 송문수에 하지수의 심장은 아주 빠르게 뛰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두 분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하던데, 진짭니까?”“당연히 사실이 아닙니다.”“저희 사이좋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철이 없어서 아내한테 상처 주는 일도 많이 해서 사이가 위태로웠겠지만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지금 혹시 사모님한테 고백하시는 겁니까?”기자의 능청스러운 질문에 반박하기는커녕 오히려 얼굴을 붉히는 송문수를 보며 다들 제 눈을 의심했다.파파라치한테 찍힐 때도 이미지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욕설을 퍼부으며 주먹까지 휘두르던 사람이 언제 이렇게 쑥스러움이 많아졌나 싶어 다들 당황해하고 있는데 하지수는 그의 모습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으면 그간의 이상하던 태도와 관계를 피했던 이유도 더 이상은 따지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송승우 씨는 왜 오지 않으신 겁니까, 오늘은 불참하시나요?”“두 분은
화장을 마치고 머메이드 드레스로 갈아입은 하지수는 불빛 아래에서 더 반짝이는 드레스를 보며 아무래도 자신이 허영지를 가리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시 한번 송문수를 불러보았다.“문수 씨, 이게 진짜 괜찮다고?”정말 아닌 것 같아서 한 질문이었지만 송문수는 역시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걱정 마, 이거 네 거 맞다니까.”“진짜 어머님이 준비하신 거 맞지?”“너 나 안 믿을 거야?”송문수가 목소리를 깔며 말하자 하지수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입을게.”정말 허영지의 뜻이라면 하지수도 걱정할 게 없었다.사실 평소 하지수에게 검소하다는 말을 자주 하던 허영지였기에 그녀가 이런 드레스를 준비했다 해도 이상할 건 전혀 없었다.이번 기회에 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시어머니의 마음인가보다 하며 하지수는 나갈 준비를 마쳤다.“가자 이제.”“엄마가 인터뷰 있다고 빨리 오래. 사진도 찍어야 한대.”“그래.”차에 탄 뒤에도 송문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리를 덜덜 떨며 자꾸만 핸드폰을 확인했다.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하지수가 그를 부르자 송문수는 화들짝 놀라며 대꾸했다.“문수 씨.”“어?”“더워?”에어컨을 틀어 시원한 차 안에서도 땀을 흘리는 게 이상해서 한 질문인데 송문수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아니.”“땀 나는데?”“그래?”제 이마에 묻은 땀을 훔치던 송문수가 또 말을 바꾸자 하지수는 그를 수상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좀 더운 것 같기도 해.”“오늘 왜 이래? 당신 좀 이상한 것 같아.”“아무것도 아니야.”송문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쉽게 넘어갈 하지수가 아니었다.“어디 아파?”“그럴 리가, 나 소처럼 건강한 남자야, 병도 잘 안 걸린다고.”“...”누가 봐도 오바하는 것 같았지만 사정이 있겠지 싶어 하지수도 더는 묻지 않았다.그들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도 이른 시간이었지만 매체들에서는 더 빨리 와 있었기에 기자들과 송기명, 허영지 모두 그들 부
아침 일찍 디자이너를 불러 단장을 마친 송기명과 허영지는 나이 들면 가만히 잊지 못한다는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른 시간부터 호텔로 향했다.그리고는 아들이 아닌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어차피 송문수는 전화를 잘 받지 않으니 그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하지수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 이미 습관처럼 몸에 배 있었다.좀 전에 일어나서 스타일링을 받고 있던 하지수는 시부모님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다급히 통화버튼을 눌렀다.“네, 저희 일어났어요. 문수 씨는 씻고 있고 저는 화장하고 있어요.”“네, 먼저가 계시면 저희도 금방 갈게요. 8시 전엔 도착할 거에요.”통화를 마친 하지수는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었다.본인이 주인공도 아닌데 화장이 너무 화려한 것 같았다.게다가 원래는 송문수와 커플룩으로 어머니께서 맞춰주신 복고풍 드레스를 입기로 했으니 어찌저찌 의상을 수정하다 보니 오늘 입어야 할 건 민소매인 머메이드 드레스가 되어버렸다.예쁘긴 예쁘지만 꾸민 티가 너무 많이 나서 고민됐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불렀다.“문수 씨, 나 진짜 이거 입어? 이거 어머니가 골라주신 것도 아닌데...”오늘 아침은 하지수보다도 더 빨리 일어난 송문수는 아까부터 소파에 앉아있었다.그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 알람 소리에 눈을 뜬 하지수는 제 옆에 없는 송문수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었다.출근할 때도 알람이 몇 번이나 울려서야 화를 내며 일어내던 사람이 오늘은 웬일인가 싶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60세 생일파티라 신경을 쓰는 건가 싶어 하지수도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었다.“뭐라고?”그런데 제가 한참 불러서야 모습을 드러낸 송문수가 혼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덜덜 떨고 있자 하지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당신 오늘 뭐 발언이라도 할 거야?”“아니, 왜?”“그런데 왜 이렇게 긴장해?”“내, 내가? 아, 아니야! 그럴 리가!”“아직 잠이 덜 깨서 그래!”송문수는 말까지 더듬으며 손사래를 쳤고 하지수는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