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 예수진과 육가희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계지원은 그런 예수진의 손을 잡고 그녀 대신에 아프고 싶었다. 하도경도 원래 육가희의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예수진의 소리를 듣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보았다. 육가희도 아파 소리를 참지 못하고 질렀다. 하지만 하도경의 시선은 계속 예수진에게로 향했다. 그런 모습에 육가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작게 그를 불렀다. 하도경은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물었다. “아직 아파요? 수진 씨가 너무 소리를 질러서요.” 육가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자신의 실망을 감추려고 애썼다. 그들은 상처를 봉합하고 또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육가희와 예수진은 입원했다. 만약 오늘 아무런 일이 없다는 뜻이 돌아간다면 돌아가서 다시 주사를 맞아야 할 것이다. 예수진과 육가희는 자신의 병실로 돌아갔다. 모두 고급 VIP 병실로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병실 안. 하도경은 육가희와 함께했다.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하도경은 유가희에게 사과를 깎아 주며 그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과를 깎고 난 이후에야 육가희에게 입을 열었다. “과일 좀 먹어요.” “하도경 씨, 예수진 씨 좋아해요?” 육가희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 물음에 하도경은 몸이 굳어졌다. “나를 만나기 전에 그 사람을 좋아한 거예요?” “네.” 하도경은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그럼 왜 나랑 같이 있는 거예요? 내가 뭐라고?” 육가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참 오랫동안 견뎠다. 하도경이 술을 마시고 예수진의 이름을 불렀을 때부터 그녀는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하도경이 예수진을 보는 눈빛을 보는 순간 그녀는 알았다. 그 눈빛은 자신을 볼 때와 너무도 달랐다. 하도경이 자신을 보는 눈빛은 그렇게 애틋한 눈빛이 결코 아니었다 “나와 수진 씨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 “그래서 나는 그 사람 대신인건
육가희는 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믿기지 않다는 듯 하도경을 바라보았다. 그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다니. 4년 동안이나 함께 한 그녀는 도대체 그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정말 미안해요. 우리 헤어져요.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으니 내가 양쪽 부모님에게 내 문제라고 말할게요. 만약 당신의 일에 영향이 간다면 금전적인 피해 보상을 드릴게요.” “정말 이렇게까지 할 건가요?”육가희는 눈시울은 붉어졌고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하도경은 그녀의 모습에 머리를 수그렸다. “어떻게 당신에게 보상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예수진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당신을 속이고 싶지가 않아요. 다 내 잘못이에요. 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 봐요.”“나는 도대체 뭐였어요? 나랑 같이 나랑 함께한 이유는 뭔가요? 하도경 씨 왜 이렇게 잔인해요?” 하도경은 계속 침묵했다. 그는 정말 어떻게 위로해야 될지 몰랐다. 육가희와 함께한 건 철저히 부모님과 약속 때문이었다. 몇 년이나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육가희에게 사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낸 것이다. 예수진이 아니면 그는 정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육가희는 흥분하여 말했다. 그런 그녀를 하도경은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예수진을 좋아한다고 인정했는데... “내가 왜 헤어져야 해요? 내 4 년이란 청춘을 당신한테 썼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진정해요. 우리는 어쩌면 함께하면 안 됐을지도 몰라요. 만약 당신이 난처하다면 프로그램 녹화까지는 함께 있을 수 있어요.” “아니요.” 육가희는 하도경의 말을 끊었다. “나는 헤어지지 않아요. 헤어져도 내가 먼저 말해, 당신이 아니라.” 하도경은 뭐라고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결국 침묵했다. 만약 육가희에게 헤어짐을 제안하는 순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녀의 뜻을 따르고 싶었다. “하도경 씨, 당신은 나한테 죄를 짓는 거예요.” 육가희는 이불을 들춰내고 병실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
“예수진씨 당신은 우리 삼촌이 있잖아요. 왜 또 하도경을 꼬드기는 거예요?” 육가희가 예수진에게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예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육가희가 하도경이 그녀에 대한 감정을 알아차린 것이다. “가희 씨, 그만해요. 우리 둘이 일에 다른 사람을 왜 끼게 하는 거예요?” 하도경은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아까까지 좋게 말하던 그의 인내심은 바닥이 난 것이다. “예수진때문에 나한테 화를 내는 거예요? 하도경 씨, 나야말로 당신의 약혼자에요. 예수진은 이미 남편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육가희는 더욱 마음이 무너졌다. 그녀는 자신이 예수진보다 못한 곳이 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디가 그녀보다 못하단 말인가. 왜 모든 사람은 다 그녀를 좋아하는 것인가.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도 자주 예수진이란 이름을 말했었다. “됐어요. 우리 가요.” 하도경이 자신이 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안 가요.” 육가희는 강경하게 말하며 계지원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삼촌. 삼촌이랑 하도경씨가 예수진의 치마폭에서 놀고 있는데...” “알아.” 계지원이 육가희의 말을 끊었다. 계지원의 말에 육가희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다 알면서 예수진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거란 말인가. 삼촌은 정말 괜찮은 것인가. 육가희는 모든 소식을 알고 계지원과 예수진을 갈라놓으려고 병실로 찾아왔다. 예수진이 잘되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계지원은 정말 좋은 남자다. 몇 년 동안 그 어떤 여자도 만나지 않았다. 그런 그는 아마 예수진과 하도경 사이의 관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계지원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알면서도 이런단 말인가. “그녀의 과거에 대해 나는 나 알고 있어.” 계지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기세는 엄청났다. “다른 사람을 통해 수진씨를 이해할 생각 없어. 내가 그 누구보다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계지원은 또박또박 말하며 육가희에게 말할 기회
“나랑 하도경은...” “신경 안 써요.” 계지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신경 쓰지 않으면 왜 내 말을 끊어요?” 예수진이 미간을 구겼다. 남자도 말과 마음이 다른 것인가. 계지원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그 사람 이름이 나오는 게 싫었어요.” “그러면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 거예요?” 예수진이 계지원에게 체면을 두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요.” 예수진이 중얼거렸다. 그냥 자신을 속이는 게 나왔다. 예수진이 그에게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도 그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다른 것은 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말할 거예요.” 예수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모습에 계집원은 허탈한 듯 웃었다. “내가 결국 당신 말을 들을 줄 아는 거죠?” “언제부터 들었어요?” 예수진이 화가 난 듯 물었다. “내가 항상 당신 말을 들었죠. 도대체 누가 누구 말을 듣는 거예요? 계지원씨 사람은 성실해야 돼요. 애초에 나랑 함께 있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예요? 그리고 이후에 하연이 때문에 나랑 함께 있겠다고 한 사람은 누구예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거예요?”“하연이 때문에 당신이랑 함께하는 거 아니에요.” 계지원의 반박에도 예수진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상관없었다. 그들의 관계는 항상 계지원이 말하는 대로 되었다. 반박은 용납하지 않았다. “나랑 하도경 사이 이를 말하는데 또 멀리 갔네요.” 예수진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계지원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참았다. “그럼 말해 봐요.” 그가 예수진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아내는 그가 아껴야지. 그를 화나게 만들어도 계속 아껴야 한다. “하도경이랑 함께 한 이유는 하도경이 나를 감동시켰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하도경이 나를 오랫동안 좋아하기도 했었죠. 그전에는 몰랐지만...” 예수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도 계지원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래서 예수진은 계속하여
“수진 씨, 당신은 정말 내가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보여요?”계지원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 순간 정말 하도경을 한 대 치고 싶었다. 그렇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단지 나랑 하도경이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사귀는 동안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어요.” 예수진은 찬란하게 웃었다. “그래서 지금 후회가 되는 건가요?” 계집원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그게 중점이 아니지 않나요?” 예수진은 어이가 없었다. “당신과 하두경이 아무런 일도 없는 걸 알고 있어요.” 계지원처럼 똑똑한 사람이 이런 정보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고요?”가능한 것인가? 그때 당시 그녀와 하도경의 사이가 그렇게 좋았는데 이를 아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저번 녹화에서 당신이 말했었잖아요. 당신이 첫날 밤은 나랑 같은 날이라고.” “그걸 믿었어요?” “믿었어요.” 예수진이 물음에 계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항상 자신이 예수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예수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도 그녀의 답을 듣고 한참이나 기뻤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그렇다. 그는 보수적인 보수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촌스런 사람이다. 예수진과 하도경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그는 예수진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는 그녀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 남자는 천성적으로 점유욕이 있는 것이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당신을 믿지 않았어요.” 예수진은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다. 그가 그녀와의 첫날밤이 처음이라고 했을 때 그녀는 믿지 않았다. 그 후에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계지원이 자신이 이미지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결혼 생활에 대해 아직까지 의심을 사고 있기 때문에 사고 있기에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포장하
“미안해요.” 계지원이 사과했다. 어떠한 이유여서든 예수진을 혼자 두어서는 안 되었다. 그가 예수진을 혼자 내버려둔 것이다. 그가 그녀의 곁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괜찮아요.” 예수진은 그가 무엇을 사과하는지 잘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계지원이 왜 그녀를 포기했었는지 그녀는 지금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지금 그녀는 예전 일이 중요치 않다고 생각되었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계지원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예전 일과 작별하기 위하여. 나는 그때 계지원이 예수진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엄청난 사고를 당했어요.” 그의 말에 예수진은 움찔했다. 그녀는 그가 차 사고를 당한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 당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내가 그날 떠나고 영화 촬영을 갔을 때 스케줄이 많이 타이트했어요. 그래서 촬영을 마친 후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어요. 아무리 늦어도 당신한테 돌아온다고 이야기를 했었죠...” 그래서 계지원이 차 사고를 당한 것은 그녀의 탓이란 말인가. 예수진은 마음이 아파왔다. 그 고통은 점점 심해져 갔다. “결국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어요. 차는 절벽에서 굴러떨어졌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반년이나 지난 지났어요.” 계지원은 미안한 듯 말했다. 그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지만, 그는 분명히 피해자였지만, 그는 지금 그녀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다. 예수진은 입술을 깨물며 눈시울이 점점 불거졌다. “내가 당신이 다리 불구가 된 걸 알았을 때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요.” 예수진이 조금 흥분한 듯 물었다. 만약 그때 그가 찾아왔다면 그들은 어쩌면 그들은 어쩌면 헤어진 3년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 싫어할까 봐 무서웠어요.” “내가 그런 사람이에요?” “당신은 얼굴을 보지 않나요?” 계지원이 허를 찔렀다. “당신이 다리가 상한 게 얼굴이랑 무슨 관련이 있어요?” “그때는 얼굴도 다쳤어요. 지금은 많은 많은 수술
“계지원 씨, 나를 포기하는 게 그렇게 쉬웠어요?” 예수진이 불쾌한 듯 물었다. “아니요, 쉽지 않았어요.” 계지원이 금세 대답했다. “쉽지 않았다면서 그렇게 나를 포기했어요?” “그럼 지금 우리는 무슨 관계인데요?” 계지원의 물음에 예수진은 미간을 구겼다. 그녀는 그제야 계지원의 뜻을 조금씩 알아챘다. 만약 그가 그녀를 포기했다면 지금 어떻게 결혼을 했을 것이고 지금 어떻게 함께하겠는가. 그녀는 마음속으로 조금 안심했다. “맞아요. 나도 그래요.” “뭐가요?” 계지원이 놀라서 물었다. “나도 당신을 포기한 적 없어요. 그렇게 실망하고 절망했어도 당신이 적극적으로 나오면 나는 항상...” 예수진은 더 이상 말을 잇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자존심이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계지원에게 상처를 입었어도 그가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항상 그를 맞아 주었다. “하도경은...” 예수진은 화제를 돌렸다. 예수진은 그에게 여러 번 비수를 꽂았다.하도경은 또 다른 비수였다. “나는 하도경을 좋아했어요. 그와 미래를 상상할 만큼..” 예수진의 말에 그의 얼굴에는 불쾌한 표정이 일렁거렸다. 하지만 그는 꾹 참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진은 속이 후련했다. 그녀는 예전에 그가 이런 질투를 할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 질투를 하는 사람은 항상 그녀였다. 그와 알고 지낸 몇 년 동안 항상 질투하는 건 그녀 몫이었다. 계지원에게 질투의 맛을 알려주는 것도 괜찮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예수진은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요.” 예수진의 말투는 죄책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남녀 사랑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하도경에게 미안했다. 물론 그들이 헤어진 건 하도경의 어머니 짓이었지만 말이다. 하도경은 아무런 대가 없이 그녀에게 잘해 주었다. 그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불공평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 인생 처음부터 끝까지 진정하게 사랑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에요. 하지
“나도 마찬가지예요.” 계지원이 예수진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내 인생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에요.” 그의 눈은 너무나도 깊었다. “예전에도 사랑한 사람이 없었어요?”예수진은 계지원의 말을 믿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도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에서야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정말 아무런 욕구도 없었단 말인가. 그는 정말 사랑했던 경험이 없었던가. “지금이나 예전이나 사랑한 사람은 모두...” 그때 계원이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 소리에 예수진은 미간을 구겼다. 두 사람이 분위기가 좋은데 누가 눈치 없이 그들을 방해하는 것인가. 그녀는 오늘 밤 어쩌면 그와 뜨거운 밤을 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계지원은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프로그램 제작자였다. 연예계 생활을 하려면 제작자와 관계를 원활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으며 예의 있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계 감독님, 지금 병원인가요?” “네.” “수진 씨는 어때요?” 상대방도 예의를 차리며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이런 사고가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수진 씨를 보러 직접 가려고 했으나 급한 일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아서요. 수진 씨는 크게 다치지 않았어요?” “관심 감사합니다. 오늘 별다른 이상 없으면 내일 장안으로 돌아갈 거예요.” 계지원도 최대한 예의 있게 답했다. 이런 의외의 사고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었다. 제작진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과 태도, 그리고 배상금을 제시했다. 그러나 장여정이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틀림없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게 뻔했다. 계지원도 연예계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기에 그의 심산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지금 말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지금 물론 수진 씨 몸 상태도 걱정되지만 여론도 워낙에 들끓고 있어 이 말을 꺼내야 할 것 같아요.” 장여정은 결국 입
이제 송문수도 정신을 차렸으니 하지수는 본인도 원래의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송문수의 사무실이 워낙 커서 둘이 같이 쓴다 해도 문제 될 건 없었기에 그녀는 사무실을 옮기는 건 나중으로 미뤄두고 컴퓨터를 켜기 시작했다.하지수가 OA의 서류들을 훑어보려 할 때 송문수의 비서가 마침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는 하지수를 보자마자 놀란 기색을 비추며 인사를 건넸다.“하 대표님, 오셨어요?”“네, 그런데 어떻게 여기 있어요? 송 대표님이랑 같이 회의 참석한 거 아니었어요?”“회의라니요?”“지금 회의 중 아니에요?”“저희 오전 회의 없어요, 오후 3시에 첫 회의에요.”“그럼 송 대표는 어디 갔어요? 거래처랑 계약하러 간 거예요 아니면 현장 나간 거예요?”어디를 가든 대동하던 비서도 없이 혼자 나선 송문수에 하지수는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오늘 안 나오셨어요.”“아침에 연락 오셔서 개인적인 일 때문에 좀 늦는다고 저한테 오후 회의자료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거 다 프린트해서 지금 대표님 책상에 올려두려고 들어오는 길이었고요.”제 손에 들린 서류들을 들어 보이며 말하는 비서에 하지수의 미간은 더욱더 찌푸려졌다.집안일은 다 허영지와 하지수가 책임지고 있는데 출근 시간까지 늦춰가며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일이 도대체 뭔지 하지수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알겠어요, 나가서 일 보세요.”“네.”서류를 송문수 책상 위에 올려둔 비서가 인사를 하며 나가자 서류를 보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버린 하지수는 곧바로 송문수에게 문자를 보내보았다.[문수 씨, 지금 어디야?][나 회사에 있지, 왜 그래?]보낸 지 1초 만에 온 답장이었지만 내용은 역시나 거짓말이었다.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저를 속이는 건가 싶었던 하지수는 오락가락했던 지난날 송문수의 태도를 떠올렸다.생리가 온 그날만 해도 하지 못해서 안달 나 하던 사람이 생리가 끝났다는 데도 저를 피하는 게 안 그래도 이상했는데 하지수는 설마 송문수에게 이제 제가 필
아까는 앉아서도 잘만 자더니 제대로 누우니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 송문수는 하지수를 기다리며 한참을 뒤척이고 있었다.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보이지 않은 인영에 그는 문을 살짝 열고 문틈 사이로 거실 쪽을 내다보았다.그리고는 하지수가 아직도 거실에서 티비를 보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사실 송문수는 인내심이 없는 게 아니라 하지수가 그녀가 쓰던 방으로 들어가 버릴까 봐 그게 걱정돼서 확인한 것이었다.그 뒤로도 몇 번 더 훔쳐보던 송문수는 마침내 티비를 끄는 하지수에 깜짝 놀라 침대로 달려가 자는 척을 했다.한편 드디어 티비를 끈 하지수는 먼저 본인 방으로 가 세수를 마친 뒤에야 송문수의 방안으로 들어섰다.자고 있는 송문수를 발견한 그녀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천천히 이불을 들추고 그의 곁에 나란히 누웠다.오랜만에 푹 자는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는 싶었지만 하지수는 본능적으로 자꾸 송문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그 때문에 자는 척하던 송문수는 온몸이 경직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하지수랑만 있으면 몸이 멋대로 긴장하는 거라 그건 송문수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그런데 곧이어 제 몸에 닿아오는 부드럽고 따뜻한 하지수의 온기가 느껴지자 송문수는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이래서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구나 싶었다.하지수가 있으니 평범하던 세상도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다음날부터는 송문수도 일 때문에 바빴고 하지수도 아버님의 생일 파티 준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둘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사실 둘 중에 더 바쁜 건 송문수였다.그래서 하지수도 평소에는 그 얼굴도 자주 볼 수 없었다.항상 밤늦게 귀가하는 송문수는 터덜터덜 들어와 잠든 하지수를 품에 안고 자다가 그녀가 깨어나기도 전에 출근해버렸다.밤에는 분명 온기가 느껴졌는데 일어날 때는 늘 비어있는 옆자리에 하지수는 못내 서운한 감정도 들면서 송문수가 자신을 일부러 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리고는 하지수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에게 입을 맞춰왔다.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입맞춤을 이어나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하지수의 입술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엄청 부드럽네.”야한 꿈을 꾸는 게 틀림없어 보이는 남자의 행동에 하지수는 화가 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이제 좀 정신 차리나 했더니 꿈속에서까지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 여자친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문수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아 헤맸다.“문수 씨, 눈 좀 떠봐.”생리도 끝나지 않은 와중에 이렇게 꿈을 꾸는 남자랑은 하고 싶지 않았던 하지수는 이번에는 그가 깨어나길 바라며 아까보다 좀 더 힘을 주어 흔들었다.“무슨 꿈이 이렇게 진짜 같아?”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몸에 어지러워진 송문수는 그제야 눈을 뜨며 말했다.“그럼 꿈이 아닌가 보지.”“꿈이 아니라고?!”하지수가 짚어줘서야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한 송문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꿈에 누가 나왔는데 그래?”누가 나오긴, 송문수의 꿈에 나올 사람은 늘 하지수 한 명뿐이었다.전에는 꿈속에서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게 현실이 되어버려 순간 당황한 것이었다.하지만 송문수는 턱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은 굳이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나 어떻게 잠든 거야?”평소에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성격인데 이상하게 하지수 앞에만 서면... 속마음을 제대로 드러낼 수가 없었다.“피곤했나 봐.”진실이라는 게 알아서 다 좋은 건 아니었기에 하지수도 모른 척 말을 돌리는 송문수를 따라가 주었다.괜히 끝까지 캐물어서 상처받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서였다.“매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쩌다 쉬는 날도 밖에서 돌아다니기만 했잖아. 얼른 씻고 자, 내일부터 또 출근해야지.”“너는?”하지수의 재촉에 방으로 들어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걸음을 멈
“맛있어.”처음으로 주방에 들어간 남자가 이런 맛을 낸 건 객관적으로 대단한 일이라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토록 바라는 칭찬을 결국 해주었다.사실 이미 사약 같은 맛일 거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꽤나 달달해서 하지수도 놀라웠다.한편 원하던 칭찬을 들은 송문수는 신나서 채널을 돌리며 물었다.“이거 맞지?”“응.”“법률 채널이네?”여자들은 다 예능이나 멜로 드라마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울리지 않게 이런 지루한 채널을 좋아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법 좋아해서 대학 때도 법 배운 거야. 난 이런 거 좋아해.”“그래.”하지수의 말에 그제야 그녀가 변호사였다는 걸 떠올린 송문수였다.그렇게 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변호사라는 직업을 포기했다는 걸 알아차리자 한 번 더 감동받은 송문수는 저도 하지수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그녀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나도 같이 봐.”그의 제안이 의외였지만 이렇게 완벽한 판례분석이라면 송문수도 관심 있어 할 것 같아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잘 접하지 않던 분야라 처음엔 싫어할 수 있어도 그 속에서 다룬 사건들을 계속 보다 보면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기고 그러면서 법률 지식까지 알게 되니 그거야말로 일거양득일 것이다.역시나 하지수는 법조인답게 바로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는데 처음에는 신기해하며 잘 보던 송문수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점점 지루해하고 있었다.당장이라도 핸드폰을 꺼내 게임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제가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참고 또 참던 그는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티비에 빨려 들어갈 듯 열중하고 있던 하지수가 정신을 차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송문수는 이미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몸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져 있었고 고개도 반쯤 돌아가 있는 누가 봐도 불편한 자세를 하고도 잘 자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지루하면 지루하다고 말이라도 하지.하지수는 미련한 송문수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담요도 덮어주었다.하지만
송문수를 따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가지고 갔던 생리대로도 부족했었는데 양까지 많았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생각을 마치고 나니 심심해진 하지수는 자연스레 티비를 켜고 법률 채널을 틀어놓았다.주방에서 돌아치는 송문수는 진작에 잊은 하지수가 전형적인 판례들을 넋 놓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는 마침내 흑설탕물을 다 끓여냈다.맛없는 걸 가져다주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먹어보고 괜찮으면 그때 가져다주라는 소이연의 당부가 있었기에 송문수는 맛을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은 맛이어서 그는 용기를 내어 그걸 하지수에게로 들고 갔다.“이게 뭐야?”하지수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 친구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지만 송문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흑설탕물이야. 뜨거울 때 마셔.”“뭐?”“생리 기간에는 이런 거 마셔야 하는 거 아니었어?”“나 주려고 당신이 직접 만든 거야?”“당연하지, 내가 생리 올 리는 없잖아.”진지하게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려버렸다.어떨 때는 신기하리만치 제 마음을 몰라주다가 또 이렇게 어설픈 모습으로 저를 위해주는 걸 보면 그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송문수는 정말 밉지만 싫어할 수가 없는 존재였다.“고마워.”낮에 있었던 그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해 살짝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흑설탕물 한번 가져다줬다고 하지수의 화는 또 사르르 풀려버렸다.“어때?”그런데 하지수가 마셔보려고 컵을 든 순간 송문수는 맛을 물으면서 자연스레 채널을 돌려버렸다.한창 판례를 보고 있었는데 또 제 의사는 묻지도 않고 멋대로 채널을 돌려버리는 그의 행동에 하지수는‘사랑이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것과도 같다’라는 가사에 깊은 공감이 가 순간 한숨을 쉬어버렸다.정말 송문수에게는 기대를 품으면 안 되는 것 같았다, 기대하는 족족 그것들이 실망으로 이어지니 말이다.한편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쉰 하지수를 본 송문수는 당황하며 물었다.“맛없어?”“내가 먹어볼 때는 맛있었는데? 너 생리만 아니었으면 내가 다 마
가슴을 졸이며 부둣가에 도착하니 술을 마신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역시나 운전석에 앉아야만 했다.진짜 이런 데이트를 하는 건 자신밖에 없을 것 같아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던 하지수는 집으로 가는 동안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삐진 티를 내고 있었지만 송문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따라부르며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송문수는 오늘이 아주 완벽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집으로 돌아온 하지수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송문수는 그 속도 모르고 또 그녀를 붙잡았다.“왜 오자마자 방에 들어가, 좀 앉아있지.”아직 이른 시간이라 송문수 딴에는 하지수와 함께 티비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나 씻고 싶어.”“나중에 씻어.”“보트 탈 때 몸이 다 젖어버려서 아직도 추워. 나 생리 와서 생리대도 바꿔야 하는 데 그럴 거면 그냥 씻고 싶어.”하지수의 말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여자가 생리 기간일 때는 더욱더 신경 써서 몸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어제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간만의 데이트라 너무 신난 탓에 그만 까먹어버린 것이다.“먼저 보고 있어, 나 금방 씻고 나올게.”“응.”하지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송문수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단톡방에 문자를 보내보았다.[생리 기간에는 어떤 걸 신경 써줘야 하는 거예요?][송문수, 너 생리 기간도 못 참고 하려고 그러는 거야? 짐승 같은 놈.][날 좀 좋은 쪽으로 생각해주면 어디 덧나니? 나 그런 놈 아니거든.][그럼 그건 갑자기 왜 묻는데?][생리 때는 체온 유지에 신경 써줘야 해서 춥게 굴면 안 되고 피곤하지 않게 많이 쉬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술이랑 찬 건 되도록이면 안 먹는 게 좋고요. 하지만 지수 씨 성격이라면 남한테 기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이 정도는 알아서 했을 거예요 이미.]소이연은 이내 송문수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문수 씨는 흑설탕물이나 끓여주세요. 피도 잘 통하게 해주고 생리통 푸는 데에도 효과적이에요. 그리고 흑설탕물은 달달하
하지만 그리 남사스러운 말은 아니라서 하지수는 한마디 더 보탰다.“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그 말을 들은 송문수는 입꼬리를 올린 채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려고 일부러 더 너스레를 떨었다.“내가 매력이 넘치는 걸 어떡하겠어.”그 능청스러운 모습에 하지수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하지수, 내가 전에 좀 막살았던 건 인정하는데 그래도 한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하는 사람이야 나. 내가 너랑 잘 만나보겠다고 약속한 이상 절대 너한테 미안할 짓은 안 해.”“응, 알겠어.”하지수는 송문수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다 믿었다, 아니 다 믿고 싶었다.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실망시키는 사람일지라도 언젠가는 바뀔 걸 알기에 그녀는 기다릴 수 있었다.“네가 나한테 맞춰주는 만큼 나도 너 실망시키지 않을게.”“알았어.”우쭐대며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는 역시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송문수의 말이라면 늘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이 바로 하지수였다.밥을 다 먹고 난 둘은 해변가를 거닐었는데 붉은 태양이 바다에 걸쳐져 있어 노을이 아주 예쁘게 져 있었다.주변 환경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경치는 봐줄 만해서 하지수의 기분도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하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날에 좀 있으면 파도가 더 거세질까 봐 걱정됐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보며 말했다.“문수 씨, 우리 이제 가자.”“가고 싶어?”“응.”“좀 더 있다 가자, 여기 좋잖아.”“좀 있다 보트도 타야 하잖아, 저녁엔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래.”낮에 올 때도 무서웠는데 밤엔 더할 것 같아 하지수는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무서워?”송문수는 그런 하지수가 웃긴지 입꼬리를 씰룩이며 물었다.“응. 무서워.”“그럼 가자.”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에 송문수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하지만 그가 이렇게 제 의견을 바로 수락해줄 줄 몰랐던 하지수는 어벙벙한 채로 그를 따라 걷고 있었다.사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원래의 그녀였다면 하지 않았겠지만 소이연이 했던 말이 떠올라 한평생 참고 살
“왜 안 먹어?”송문수의 재촉에 하지수는 손으로 게를 잡고 뜯었는데 다른 곳보다는 맛있었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들였던 노력에 비하면 그리 맛있는 것도 아니었다.“어때? 맛있지?”“맛있어.”하지만 기대에 찬 송문수를 보며 차마 그런 말을 내뱉을 수는 없어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역시 네가 좋아할 줄 알았다니까.”하지수를 긍정을 듣고서야 드디어 먹기 시작한 송문수는 음식을 집어 먹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하도경이랑 여기 자주 왔었는데 현경이랑 지원이는 바빠서 같이 몇 번 못 왔었어.”“그랬구나.”“술 마실래?”“나 생리 왔잖아.”영혼 없이 답을 하던 하지수는 신나서 술을 제안하는 송문수에 또 체념한 듯 말했다.반복되는 실망에 기대를 하지 않다 보니 송문수의 무관심이 이젠 원망스럽지도 않았다.“아, 맞다. 그럼 음료수라도 마실래?”“물 줘 그냥.” 그녀의 대답에 송문수는 직원에게 물과 맥주를 부탁했다.지금 술을 마시면 좀 있다 돌아갈 때 운전은 또 하지수의 몫이 되겠지만 오랜만에 신난 송문수를 위해 하지수는 한 번 더 참기로 했다.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한 사람만 계속 참는 건 좋은 연애가 아니라고들 하는데 하지수는 송문수가 기뻐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하지수는 정말 상대방에게 아주 관대한 사람이었다.밥을 먹으면서도 그녀는 간간이 소이연과 예수진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어디에서 데이트하는지 많이 궁금하길래 솔직하게 알려주니 예수진이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진짜 송문수답다, 연애 고자잖아 이건.][지수 씨, 문수 씨한테 거기 별로라고 얘기 못 했어요?][안 했어요, 뭐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아직 서로 알아가는 단계니까 나도 문수 씨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아보고 싶어요.][알아가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건 아니죠. 지수 씨, 부부 사이에는 그렇게 내외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사인데 불편한 게 있으면 용기 내서 말해야죠.]소이연의 말에 고개를 들어 본 하지수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거야.”“친구들 말고는 다른 사람 데려간 적도 없는 곳이야. 네 기억에 남을 만한 맛집이니까 기대해.”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또 괜히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영화는 별로여도 식당은 좋은 데로 찾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차가 부둣가에 도착하고 송문수와 함께 차에서 내린 하지수는 울퉁불퉁한 길을 하이힐을 신은 상태로 걷자니 발이 아파왔지만 얼마나 대단한 맛집일까 싶어 애써 참으며 그를 따라 걸었다.그런데 식당은커녕 눈에 보이는 건 보트에 타라고 저를 향해 손짓하는 송문수뿐이어서 하지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바다에서 먹는 거야?”역시나 기대를 하지 말아야 했었던 걸까.송문수는 하지수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그녀를 잡아끌며 보트에 태웠다.곧이어 출발한 보트는 물살 때문에 심하게 휘청였는데 워낙 물을 무서워하던 하지수는 난간을 꽉 붙잡고 몰아치는 파도를 버텨내고 있었다.“와아!”송문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아주 신나 보였지만 하지수는 도저히 소리를 지를 정신이 아니었다.밀려오는 파도에 온몸이 다 젖어버린 그녀는 번진 화장부터 열심히 세팅한 머리까지 지금 걱정투성이였다.데이트한다고 치마까지 꺼내입었는데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제 남자 친구 때문에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게다가 생리까지 하고 있는데 여기는 화장실도 하나 없었다.도통 무슨 생각으로 이곳을 데이트코스로 선정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라도 서프라이즈가 있을 거라고 본인을 위로하며 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하지수가 기대한 서프라이즈는 아니었지만 다른 의미의 놀라움은 끊이지 않았다.파도를 헤치며 달리던 보트는 똑같이 아무것도 없는 해변에 멈춰 섰는데 해변가에 세워진 집으로 가려면 맨발로 거기를 걸어가야 했기에 딱딱한 모래 때문에 하지수는 안 그래도 아픈 발이 더 아파왔다.그래도 아무 말 없이 송문수를 따라갔더니 그 힘든 과정을 거쳐 도착한 곳이 바로 시골 식당이었다.두 사람은 허름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