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윤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거의 식사 시간이 다 되었다.지윤이 돌아온 것을 본 권승호는 표정이 조금 안 좋아 보였다.“내가 요즘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밖에서 기자들이 네 스캔들을 어떻게 보도할지 그 생각만 하는 거 몰라?” 그가 요즘 조용히 있으라고 경고했지만, 지윤은 그럴수록 더욱 반항했다.평소 같았으면 지윤은 승호의 질타에 애교로 무마했겠지만 오늘은 더 좋은 방패가 있었다.“아빠, 저한테 너무 뭐라 그러지 마요. 그것보다 더 큰 일이 있어요.”지윤이 승호의 곁에 앉았다.김소혜와 권건하도 자리에 있는 터라 더더욱 말을 꺼내기 좋은 기회였다.“큰일?”승호는 딸의 장난이 여전히 못마땅한 듯 코웃음 쳤다.“네 일만큼 클까.”승호는 줄곧 지윤이 순결을 잃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하지만 지윤은 이번만큼은 짜증을 내지 않고 오히려 비밀스러운 표정으로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다들 아직 모르시죠? 은찬이 친아빠가 찾아왔어요.”“은찬이?” 승호는 얼굴을 찡그렸다.소혜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윤아 애 친아빠가 왔다고요?”지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누구야?”건하가 물었다.지윤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몰라요. 저도 방금 들었어요.”“믿을만한 소식이야?” 승호의 표정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당연하죠, 아빠. 게다가 그 남자가 글쎄…….”지윤은 뒷말을 머뭇거렸다.김소혜의 표정도 그리 좋지 않았다.“뭔데요?”“그게…….” 지윤은 그래도 바로 말하지 않았고 세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어머, 이런 말 하기 좀 그렇네. 나이트클럽에서…….”지연은 이미 다 말한 거나 다름없었고, 바보가 아니고서야 모를 리 없었다.“말도 안 돼.” 승호는 너무 화가 나서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쳤다.“세상에, 이,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소혜는 아들이 그런 더러운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게다가 아들은 그런 여자를 보물처럼 여기며 가족에게 등을 돌리기까지 했다.“어쩐지 재민이가 그 여자에게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강윤아는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내고 있었다.요즘 강은찬의 대회 때문에 바빠서 그동안 권재민과 전화 통화를 몇 번 한 게 전부였다.하지만 재민이 너무 잘 감췄기에 윤아는 재민에게 이상한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은찬이의 대회 당일이 되었다.“은찬아, 오늘 정식으로 대회가 시작되는데 긴장돼?”이른 아침부터 은찬이의 옷 정리를 돕던 윤아는 대회 때문에 긴장할 은찬이가 걱정되어 웃으며 물었다.하지만 은찬은 이미 많은 대회에 참가해 본 경험이 있어서 두렵지 않았고, 자신 있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긴장할 게 뭐가 있겠어요?”자신감 넘치는 은찬의 모습을 보며 윤아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질 수밖에 없었다.“엄마.”은찬이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윤아를 바라보았다.“내가 이 대회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은찬의 엄마로서 윤아는 당연히 아이를 응원했기에 아이의 질문이 조금은 웃겼다.‘그걸 꼭 물어봐야 아나.’“당연하지. 은찬이가 이렇게 대단한데 어떻게 못 이길 수 있겠어?”그 말에 은찬의 얼굴에 미소가 더욱 밝아지다가 이내 다시 씁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엄마,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못 이길까 봐 좀 걱정돼요.”은찬이의 사랑스러운 표정을 보며 윤아는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찬아,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는 너를 응원할 거야.”은찬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윤아에게 다짐했다.“엄마, 걱정 마세요, 열심히 할게요!”이날 경기는 친선 경기였지만, 그래도 꽤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다.놀랍게도 이들 중 일부는 은찬의 팬이기도 했다.이전 경기들을 통해 은찬의 인기가 어느 정도 쌓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심지어 은찬만을 위한 응원단까지 결성되어 있었다.현장 분위기는 이미 달아올랐고, 은찬의 팬들이 그 열기를 더했다.“강은찬 파이팅!”“강은찬, 넌 최고야!”은찬의 등
은찬이는 자신의 상대를 항상 존중했다.그래서 윤광석을 보고도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안녕하세요.”아쉽게도 광석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그 장본인을 보니 기분이 더 나빠졌다.그러나 체면을 차려야 했던 광석도 결국 오만하고 시큰둥한 태도만 보일 뿐이었다.그는 원래 은찬이를 안중에 두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이름도 모르는 꼬맹이에게 져서 더욱 마음이 답답해졌다.이 일이 전국에 알려지면 어떻게 e-스포츠계에서 계속 지낼 수 있겠는가.“잘 들어, 전반전을 이길 수 있다고 득의양양할 필요 없어. 네가 자신의 실력으로 이긴 것 같아? 그건 그저 운이 좋았던 거야.”은찬이보다 덩치가 조금 큰 광석은 그의 앞에 서서 거들먹거리며 말했다.은찬이는 가볍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광석이 자신을 가볍게 여기고 처음부터 진지한 태도로 맞붙지 않았음을 눈치챘다.그러나 자신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하니 은찬이는 전혀 승복할 수 없었다.어쨌든 그가 이전에 한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니 말이다.은찬이는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광석을 한참 바라보다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아마도요.”어차피 진실이 어떤 것인지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으면 된다. 후반전에 광석에게 실력을 보여주면 되는 일이다.광석은 은찬이의 화난 반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런 가벼운 한마디를 던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아마도요.”‘아마도요.’라니? 이것은 그를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광석은 먼저 도발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 발끈했다.“무슨 말이야? 그냥 내가 이길 수 없을 것 같지?”광석이 은찬이를 향해 다가오자 은찬이는 별로 겁먹은 기색이 없었지만, 옆에 있던 강윤아가 못마땅했다.그녀는 은찬이가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걱정했다.광석이 이렇게 흥분할 줄은 몰랐던 윤아는 은찬이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선수님, 조금만 진정해 주시면 안 될까요?”“누구세요? 제 일에 당신이 끼어들 자격이 있어요?”광석은 손
이런 일을 겪은 후 은찬이의 안색은 매우 안 좋아 보였다.자리로 돌아온 은찬이는 정중하게 강윤아에게 말했다.“엄마, 내가 꼭 이길 거예요!”은찬이는 원래 승리욕이 별로 없었다. 매 경기가 자신을 단련하고 실력을 쌓는 데 불과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윤광석의 지나친 행동이 강윤아까지 괴롭혔다는 사실을 은찬이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윤아는 그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성질이 급해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사람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윤아는 은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괜찮아. 넌 최선을 다하면 돼. 엄마가 꼭 네가 좋은 성적을 따야 하는 것도 아니야.”강윤아의 육아 방식은 아들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은찬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상대방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로 마음먹었다.후반전이 시작되자 은찬이와 광석의 경기는 치열하게 진행됐다.양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들의 팽팽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전반전보다 후반전이 더 재미있었다.하지만 전반전보다 은찬이가 더 강해진 것을 광석은 직감했다.경기 내내 은찬이의 손놀림이 빨라지며 광석을 압도했다.광석은 스트레스가 쌓이는 듯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힘이 빠지는 듯했다.설마 자신이 이 꼬맹이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인지 의심했다.은찬이의 곁눈질로 광석을 힐끗 쳐다보았다. 광석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자신의 상대가 아님이 확실했다.은찬이가 입꼬리를 씩 올리고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상대방이 물러서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사실 은찬이는 평소 승리욕이 별로 없어서 제 실력을 다 내놓지 않고 웬만하면 실력을 감췄지만,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났다.다른 사람이 보면 과하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은찬이는 젖먹던 힘까지 다하더라도, 광석이 상대를 가볍게 보면 안 된다는 걸 깨닫게 하려 했다.차츰 은찬이는 광석과 이제는 시간을 끌 인내심이 없어졌고, 그를 순식간에 해치우지 않으면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했다.이제 간 보기를
김소혜는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권재민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다.강윤아는 어리둥절해 있다가 황급히 인사했다.“사모님 안녕하세요.”비록 자신은 지금 재민의 아내이지만, 윤아는 여전히 감히 소혜를 ‘어머님’ 이라고 부르지 못한다. 어쨌든 재민과 권재아 외에 권씨 가족은 아직 자신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소혜는 고개를 돌려 코웃음 치고는 윤아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윤아를 본 재민은 깜짝 놀랐다.그는 윤아가 오늘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회사에 올 줄은 몰랐다.윤아는 가족들의 눈치를 살피는 데 익숙해져 있어 너무 난감하지는 않았다.“돌아왔어요?”재민은 지금도 윤아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은찬이는 예의 바르게 불렀다.“할머니.”소혜는 은찬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은찬이는 별로 어색해하지 않았다. 그가 소혜를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재민의 체면을 봐서였다.그리고 윤아는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가르쳤다.소혜는 윤아를 보고 기회라 생각했다. 그녀는 윤아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방금 들어온 걸 보니 그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윤아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소혜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소혜는 이미 예상했던 것 같았다.“재민이가 말하지 않았나 보네.”소혜는 마음속으로 득의양양했다. 보아하니 자기 아들은 이 일에 별로 신경 쓰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누가 자기 여자가 기생오라비한테 놀아난 걸 좋아하겠는가? 그건 생각할 필요도 없다. 남자에게는 굴욕적인 일이니 말이다.윤아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소혜는 재민을 슬쩍 곁눈질하다가 권재민의 안색이 매우 어두워졌다는 것을 발견하고 일부러 언성을 높였다.“너의 그 죽고 못 사는 아들의 생부가 찾아왔었어.”이 소식을 들은 윤아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얼굴이 창백해진 채 현기증이 나 문에 기댔다.은찬이는 황급히 다가가 윤아를 부축하고 소혜를 매섭게 노려보았다.윤아는 처음으로
레스토랑 룸 안.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룸에 앉아서 기다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다.늠름한 눈썹, 훤칠한 몸매, 그리고 탄탄한 가슴 근육, 무엇보다 강윤아는 첫눈에 은찬이의 모습이 엿보였다.“오셨어요?”김진욱은 윤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매우 감격하여 몸을 일으켰다.“아이는요? 애는 안 데려왔어요?”잘생긴 두 눈으로 윤아의 뒤를 바라보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진욱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소 언짢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윤아는 진욱을 힐끗 쳐다보고는 아무 자리나 찾아 앉았다.“당신의 신원이 확인되기 전에는 아이를 보여주지 않을 겁니다.”윤아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무 감정 없이 말했다.이 남자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신원을 확인해 본 적도 없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설령 그가 진짜 은찬이의 친아빠라고 해도 은찬이가 이런 사람과 만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그래요,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니, 그럼 내가 시간을 내서 증명해 보일게요.”진욱은 한숨을 내쉬며 차를 한 모금 마셨지만 시선을 윤아에게서 떼지 않았다.하지만 진욱의 눈빛에 비해 윤아의 태도는 다소 비인간적이고 거의 냉랭했다.“그날 밤 내가 당신과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해요?”문득 윤아가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 있던 날 밤 말인가요?”진욱의 중저음이 울려 퍼졌다.윤아는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떻게 기억이 안 날 수가 있겠어요. 민박집 맞죠? 그때 가족이랑 싸워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비행기 표를 예매해서 기분전환을 하려고 했던 기억이 나요.”“그날 밤 너무 피곤해서 근처에 민박집이 있는 걸 보고 방을 잡고 그냥 묵었는데 302호였던 것 같아요. 모래사장을 마주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아침 일찍 나가서 일출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진욱은 뭔가 기억을 더듬고 있는 듯 느릿느릿 대답했다.윤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진욱의 말이 확실히 틀리지 않았다. 그날 밤 그 민박집에서 묵었고, 게다가 마침 옆방, 301호
강윤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아무렇게나 테스트해봤는데 그해의 행적과 문제들은 다 대답할 수 있었지만 세부 사항들은 전혀 모르고 거의 공식을 짜내듯 외우는 등 너무 기계화돼 있었어요.”문득 윤아는 무슨 생각이 난 듯 말을 이었다.“그리고 저는 항상 이 일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요. 은찬이의 아빠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라졌는데, 지금 갑자기 나타났다는 건 누군가 나쁜 의도로 뒤에서 우리가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윤아는 방금 그 광경을 떠올리며 이런 결론을 내렸다.처음에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진욱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그리고 예감은 그녀에게 이 일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고 말해줬다. 이 김진욱이 나타난 것은 분명 무슨 징조가 있는 것 같았는데 십중팔구 다른 사람이 시켜서 이 아이를 데려가련다는 생각이 들었다.윤아의 추론을 들은 재민의 눈동자에는 봄철에 녹는 얼음처럼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정말 아니라면, 이 배후자의 의도와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윤아의 처지를 생각하면, 권재민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단순히 누가 은찬이를 데려가려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내가 원한을 산 적이 적지 않지만 대부분 은찬이와 관련이 없어요.”윤아는 생각에 잠겼다.멍하니 있는 윤아의 모습에 재민은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턱을 치켜들며 웃음을 지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아니라면, 좋은 일이죠. 그러면 우리의 감정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갑시다, 우리 집에 가요, 은찬이가 아직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재민은 손을 내리고 조수석을 열어 청하는 제스처를 취했다.커다란 레스토랑을 돌아보던 윤아는 미간에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차 안으로 들어갔다.“집에 돌아가요.”한편, 룸 안.윤아가 멀리 떠나기도 전에, 도도하고 귀해 보이는 중년 여인이 홀의 한구석에서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진욱을 힐끗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리를 꼬고
룸을 떠난 후, 권재민은 강윤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일단 푹 쉬어요. 오늘 종일 바쁘게 일했으니 피곤하겠어요.”재민은 윤아를 도와 어깨를 부드럽게 주물렀다.윤아는 몸을 돌렸다.“재민 씨, 나는 이 일에 뭔가 수상쩍은 생각이 들어요.”돌아오는 길에 윤아는 이 일을 생각해 보았지만, 여전히 누군가가 자신에게 문제를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반드시 잘 조사할 테니 먼저 가서 쉬어요.”그러더니 윤아를 살짝 밀어서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윤아는 자신이 지금 아무리 조급해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내일 얘기하자고 생각했다.집에 돌아오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재민은 윤아가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곧장 서재로 들어갔다.‘누군가 감히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재민은 이번에 반드시 장본인을 잡아낼 거로 생각했다.재민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지훈, 사람 좀 알아봐 줘.”재민의 목소리는 차가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기분은 지금 매우 엉망이었다.“어라?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어, 누가 너를 건드렸어?”“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재민은 눈살을 찌푸렸다.“그의 그동안의 행방과 누구와 연락했는지를 모두 알아야겠어. 꼼꼼할수록 좋아.”여지훈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 그래? 이 사람이 뭘 건드렸는데 그의 온 가족을 죽일 태세야?”재민은 처음으로 지훈이 말이 많다고 느꼈다.“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어, 그 사람이나 잘 감시해.”지훈은 불평을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이렇게 겨우 한 번 전화했는데, 설마 명령하러 전화한 거야?”재민이 그에게 되물었다.“무슨 불만이 있어?”말투에는 협박이 가득했다.“아니야, 내가 어떻게 감히.”지훈은 연신 손을 흔들었다. 감히 재민에게 조건을 제시하다니, 밥 줄이 이제 필요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다.“넌 내 사장이야. 걱정하지 마. 내일 정보를 보내줄게.”권재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전화를 끊은 후 안도의 한숨을 쉬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