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후는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남편은 아니었죠.”육하경이 코웃음을 쳤다.“남한테는 정의로우면서 아린 씨한테는 냉정했으니까요.”도아린의 호흡이 미세하게 멈췄다.육하경은 시선을 내리깔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는 어둠 속에 가려진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건후 얘기... 듣고 싶어요?”도아린은 입술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그녀는 듣고 싶었다. 하지만 육하경이 자신을 떠보는 것일까 봐 두려웠다. 그가 의심을 품을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하경 씨가 얘기하고 싶으면 하세요. 전 상관없어요.”육하경이 그녀의 앞머리를 젖히고 머리를 뒤로 넘겨 귀 뒤에 눌렀다.“건후는 구조 작전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구조 대상은 강재희 씨였죠. 재희 씨를 찾았을 때 재희 씨는 지하실에 갇혀 출산을 강요받고 있었어요. 상황이 처참했죠. 간신히 구출해 냈지만, 구조팀이 제때 도착하지 못했었어요. 하지만 그 마을은 너무 가난한 나머지 며느리를 돈 주고 사 오는 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도망간 며느리가 있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붙잡는 거예요.”“구조팀의 도착이 늦어지면서 다들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게 됐고 대치 상황에서 건후를 보호하려던 분이 맞아 죽었어요. 그들이 건후를 해치려던 찰나에 구조대가 도착해서 고액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강재희를 데려왔죠.”“하지만 사건이 마무리된 후, 건후가 가설을 하나 제기했어요. 자기를 보호하려 나섰던 사람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었죠. 구조팀이 잘못된 시간 정보를 받은 것도 그가 일부러 흘린 거고 혼란 속에서 죽은 척했을 수도 있다면서 말이죠.”그의 말을 들을수록 도아린은 미간이 좁혀졌다.‘하경 씨가 어떻게 이 일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거지? 현장에 있었거나 그 작전에 참여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게 분명해.’도아린은 망설이며 물었다.“그 사장님이 사실은 인신매매 사건의 주모자였던 거예요?”배건후가 그의 돈줄을 끊었기 때문에 그는 배건후에게 복수하기로 한 것이었다.‘하지만 배씨 집안을 뒤
도아린의 머릿속이 ‘웅’ 하고 울렸다.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욕실로 달려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다리가 풀려서 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그대로 무릎을 꿇을 뻔했다.몸은 나른하고 피곤한데, 온몸에는 치열했던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그녀가 직접 겪은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거울 속 풍경만으로도 어젯밤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지 짐작했을 것이다.도아린은 세면대를 짚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육하경은 도대체 언제 약을 탄 걸까.어젯밤 그가 방에 들어온 이후, 그녀는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았다. 설마 마취약을 문신 잉크에 섞었을 리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제일 먼저 기절했어야 할 사람은 육하경이었을 테니까.순간, 도아린은 번쩍 고개를 들고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주시했다.입술이 평소보다 더 붉었다.육하경은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입꼬리를 눌러 문지르는 걸 좋아했고, 그녀는 입술을 무는 버릇이 있었다.지난번에도 그가 그녀의 입술을 어루만지자마자 몸이 이상하게 반응하기 시작했었다.마취약은 그의 엄지손가락에 묻어 있었던 거다!도아린은 힘없이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아무리 조심해도 결국 당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다행히도 육하경이 그녀를 완전히 차지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아직 완전히 미치지는 않은 것이다.율이를 빨리 구해야 했다!도아린은 재빨리 씻고 나왔다.찬물로 세수를 하니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옷장은 전부 목이 깊이 파인 옷뿐이라 실크 스카프로 가릴 수밖에 없었다.“도아린 양.”복도에 서 있던 자상훈이 마치 유령처럼 그녀를 바라보았다.“선생님께서 바쁘신 일이 있으니, 방에서 기다려 주세요.”“그가 율이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어.” 도아린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율이를 데려오든지, 아니면 나를 보내든지 해.”“도아린 양.”자상훈은 냉정하고 단호한 태도로 복도를 가로막았다.“제게 곤란한 일을 시키지 말아 주세요.”도아린은 자상훈 앞에
도아린은 큰 배의 갑판에 많은 사람이 서 있는 걸 이제야 발견했다.그녀의 스카프는 ‘예술가’의 손에 떨어져 있었다.‘예술가’ 옆에 있는 ‘대머리 뻐드렁니’는 변비에 걸린 듯한 표정으로 등을 돌린 채 남자와 고개를 젖히고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예술가’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고, 선글라스 뒤의 두 눈은 도아린의 목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도아린은 이렇게 먼 거리에서 그가 자기 목에 있는 흔적을 볼 수 있을지 몰랐지만, 그 불길한 시선이 상당히 불편했다.그녀의 목이 간지러웠다.육하경이 그 흔적 위를 손가락으로 눌렀고, 웃음은 더욱 밝아졌으며, 심지어 뭔가를 자랑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내가 데려다줄게.”그렇게 말하며 육하경은 도아린의 허리를 감싸 안고 배의 다른 쪽으로 돌아가 작은 보트를 타고 율이가 있는 배로 이동했다.배에 오르자 육하경은 자상훈에게 손짓을 했다.자상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떠났다.“율이! 율이!”도아린은 재빨리 선실 안으로 들어가 방 하나하나를 찾기 시작했고, 육하경은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어느 방에는 투석 장비가 놓여 있었지만, 병상에는 아무도 없었다.불안한 감정이 몰려왔다.도아린은 육하경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율이!”도아린은 복도의 끝, 마지막 방 문 앞에 도착했다.그녀는 문손잡이를 잡고도 쉽게 열지 못했다.두려웠다.혹시 이곳에도 율이가 없을까 봐.“육하경, 날 원망하게 만들지 마.”육하경은 여전히 부드럽고 우아한 태도를 유지하며, 조급해하지도 않고 그저 도아린이 문을 열길 기다렸다.도아린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단숨에 문을 열었다.역시나, 율이는 없었다.“육하경, 약속을 어기다니, 너무 실망이야!”“도 언니!”육하경의 등 뒤에서 율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눈을 의심할 필요도 없이 율이는 그녀를 향해 작은 걸음으로 뛰어왔고, 육하경의 손을 잡고 도아린 앞에 섰다.“도 언니, 나 보러 온 거야?”“너 어디 갔었어! 얼마나 놀랐는데!”
“유자차?”도아린은 겉으로 평온해 보였지만 사실 마음속은 엉망진창이었다.‘설마 저쪽 큰 배에서의 계획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도아린은 주스를 손에 들도 코앞에 가져가더니 향을 맡았다.“돌아가면 제가 직접 유자차를 만들어 줄게요.”“좋아요.”육하경이 입꼬리를 올렸다.“기다리고 있을게요.”한동안 동화책을 넘겼지만 율이가 돌아오지 않자 도아린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찾으러 가려고 했다.“대체 율이한테 뭘 먹인 거예요? 의사한테 약이라도 달라고 하세요.”그러자 그녀의 손이 갑자기 육하경에게 붙잡혔다. 그는 힘을 주어 그녀를 옆자리에 앉혔다.“우리 얘기 좀 해요.”도아린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육하경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고 눈빛에는 그녀를 향한 깊은 사랑이 가감 없이 담겨 있었다.“돌아가고 나면 우리 그거... 할래요?”“뭔데요?”“연애요.”도아린은 재빨리 손을 뺐다.‘돌아가면 사귀자고?’지금까지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그는 잡혀서 처벌을 받을 게 분명했다.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마치 두 사람이 같이 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행동했다. 돌아가면 연애 사실을 온 세상에 알리기라도 할 듯이 말이다.육하경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의 눈빛에는 기대가 가득 차 있었지만 그의 무릎 위에 놓인 손은 불안함 때문에 주먹을 꽉 쥐었다.도아린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하경 씨, 저를 여기로 데리고 오면서 도망칠 방법을 마련해 둔 거예요?”육하경은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펴서 무릎 위를 문지르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아린 씨만 원한다면 저는 아린 씨를 데리고 아무런 방해도 없는 곳으로 갈 수 있어요. 경치도 좋고 먹고 살 걱정도 없는 곳으로 말이죠.”“만약 제가 원하지 않는다면요?”육하경은 고개를 들고 초점 없는 시선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린 씨가 원하지 않는다면 저 혼자 가야죠. 아린 씨도 알잖아요.
도아린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하경 씨가 육씨 가문에서 겪은 불공평함은 그 사람들에게 가서 따져야죠! 왜 아무 잘못 없는 아이들에게 화풀이해요? 지금 하경 씨가 하는 짓이 그 사람들보다 더한 거 알아요?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개미만큼도 여기지 않고 있잖아요!”육하경은 조용히 웃었다.“내가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라윤주를 만났기 때문이에요. 라윤주는 내게 기회를 줬고 LY 자원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줬어요.”도아린은 숨이 막혔다.‘내가 하경 씨를 조직에 끌어들였다고?'육하경이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달래듯 속삭였다“라윤주가 그때 나에게 빵을 건네줬던 그 여자아이라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감동했는지 알아요? 이건 하늘이 내게 준 기회였어요. 나는 라윤주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했고 그녀의 가장 충실한 개가 되기로 했어요. 하지만...”그는 도아린의 놀란 눈빛 속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았다“하지만 그럴 기회도 없이 라윤주는 결국 은퇴해야 했어요. 권력 앞에서 정의는 아무 소용도 없었던 거죠. 라윤주가 차마 쓰지 못했던 방법과 수단, 나한테는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난 그 사람들의 목숨으로 그들이 내린 결정에 대가를 치르게 해야 했어요!”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려오자 도아린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몇 대의 고속 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맨 앞쪽 보트 위에서 한 남자가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과 수염을 한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육하경도 그를 발견하고 천천히 도아린을 끌어안으며 나지막이 웃었다.“우리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이렇게 방해하다니 정말 눈치가 없네요.”그의 시선이 도아린의 얼굴에 고정됐다“놀라지 않는 걸 보니 이미 알고 있었군요. 건후가 살아 있다는걸.”도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육하경이 쓴웃음을 지었다.“전에 나는 아린 씨가 이미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하고 힘들어할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네요. 건후가 그렇게 아린 씨를 속였는
도아린은 순간 온몸에 힘이 빠져 무릎을 꿇고 갑판 위에 주저앉았다.빠르게 다가오는 요트의 엔진 소리가 귀를 울렸고 요트 위의 사람들은 민첩하게 큰 배로 기어 올라왔다.‘예술가'는 가장 먼저 도아린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어깨를 감싸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마치 만지기만 해도 사라질 것 같은 비눗방울을 대하듯 그는 차마 그녀를 건드릴 수 없었다.충격에서 벗어난 도아린의 눈빛은 점차 공허해져갔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다만 눈이 시리고 아픈 느낌에 바닷바람 탓일 거라고 그녀는 자신을 달랬다.난간 쪽으로 다가온 고민성을 바라보며 도아린은 겨우 고개를 들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율이는 괜찮아요?”고민성은 힐끗 ‘예술가'를 보며 그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려 했지만 도아린은 고집스럽게 고민성을 응시하며 대답을 요구하며 남자의 자책으로 붉어진 눈시울 애써 무시했다.“수술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 쪽 사람들이 상황을 통제했어요. 다행히 그 아이도 정말 똑똑해서 협조를 잘해줬습니다.”하지만 그는 율이가 지나치게 차분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열 살 남짓한 아이는 살아남았다는 기쁨도 없이 마치 검사를 받는 듯한 태도로 평온하게 있었고 검사가 끝나면 그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듯했다.“넌 도아린 씨 곁에 있어. 난 사람들을 데리고 육하경을 인양하러 갈게.”고민성은 짧게 말하고는 조타실로 향했다.배를 조종하던 선장과 부선장은 경찰의 요청에 순순히 응했다. 경찰이 배를 접수하고 선실을 점검했지만 육하경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도아린은 여전히 멍하니 갑판에 앉아 있었다.광활한 바다에서 사람을 인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육하경의 부상은 가슴에 집중되어 있어 설령 물에 빠지지 않았다 해도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밤이 되자 잠수부들은 몇 차례 교대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예술가'는 긴 수염을 밀고 길게 자란 머리를 뒤로 묶었다. 도아린의 예상대로 그는 배건후였고 얼굴은 여전히 위엄이 가득 보는 이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아린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배건후는 조용히 자신의 코트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덮어주고 주변을 정리했다. 도아린이 완전히 잠들기 직전, 낮은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들려왔다.“고 팀장님이 그 총을 검사했는데 안에 총알이 없었대요.”도아린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육하경은 애초부터 그녀를 다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단지 가장 처절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 그녀의 가슴속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려 했을 뿐이었다.그가 남긴 흔적은 결국 도아린과 배건후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 것이었고 그것을 알면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도아린이 눈을 떴을 때 배는 이미 항구에 도착해 있었다. 밤새 갑판에서 잠든 그녀의 몸에는 익숙한 체향이 밴 코트가 덮여 있었다. 무심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고 배 앞쪽으로 나아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진씨 가문의 가족들, 강재민, 그리고 막내까지. 모두 초조한 얼굴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누나!”도지현이 가장 먼저 그녀를 발견하고는 두 팔을 힘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진씨 부부를 향해 외쳤다.“우리 누나 돌아왔어요!”윤명희는 딸을 본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남편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진범준은 아픈 듯 얼굴을 찡그렸지만 곧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진수혁과 진경수도 부두로 걸어 나와 배에서 내리는 도아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이제 집에 가자.”도아린은 코끝이 찡해오며 울컥했고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집으로 가요.”배건후는 선체에 기대어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도아린을 바라봤다. 그의 눈 속엔 알 수 없는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고민성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도아린 씨한테 내가 가서 설명해 줄 수도 있어. 언제든 말만 해.”“아니, 됐어.”배건후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 사이에 필요한 건 단순한 설명이 아니었다. 그는
율이의 부탁에 도아린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미소를 지었다.그 온화하고 우아한 분위기는 마치 육하경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율이는 순간 멍해졌다.도아린이 경찰서를 나서려 할 때, 경찰이 율이의 보호자인 듯한 사람에게 연락을 하며 아이를 데리러 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아린은 흠칫하다 곧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진씨 가문의 차가 경찰차와 스쳐 지나가는 순간, 도아린은 강렬하고 집요한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도지현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너도 따라왔어?”“누나! 재민이 형이 말해주지 않았으면 우린 전부 누나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을 거야.”도지현이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눈가가 붉어진 채로 울먹였다.“난 이제 누나밖에 없는데...”도아린은 그의 짧은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그땐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나도 어쩔 수 없었어.”“딸, 혹시 누가 괴롭히진 않았어?”윤명희가 조수석에서 돌아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이 일, 네 아빠랑 나는 절대 가만히 안 있을 거야!”도아린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육하경의 시신도 못 찾았는데 더 이상 뭘 할 수 있을까?’한편, 주현정은 요양병원의 요청으로 병원으로 향했다.요양병원에서는 배지유가 다른 환자들과 TV를 보던 중, 단지 상대방이 동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는 이유로 젓가락으로 한 남자의 목을 찔렀다고 했다.피해자의 아들은 지역의 악명 높은 불량배였고 요양원 측에 책임을 묻겠다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주현정이 급히 차를 몰고 요양원으로 도착했을 때, 몇몇 불량배들이 병실을 가득 메운 채 배지유를 위협하고 있었다.“이년, 오늘 제대로 맛 좀 봐야 정신 차리지!”그 순간, 배지유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현정을 발견했다.그러나 그녀를 향한 눈빛엔 반가움이 아닌 차가운 냉소가 서려 있었다.“잠깐만! 보상받고 싶으면 저기 뒤에 있는 우리 엄마한테 말해!”배지유가 손가락으로 주현정을 가리키며 목청을 높였다.“내가 바로 배씨 가문 딸이야! 모건 그룹 알지?
“뭐라도 먹고 가자.”배건후는 구운 닭 날개는 도아린에게 건네주고 주현정에게는 구운 식빵을 건네주었다.주현정은 빵을 받아 들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렴. 나는 물 좀 마시러 들어갈게.”도아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서 멈췄다.두 사람은 강가의 평평한 돌 위에 앉았다.“엄마는 진짜 다 내려놓으신 걸까요?”“적어도 시작은 하신 거지. 앞으로 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와 함께 여행 다니면 점차 나아질 거야.”배건후는 핸드폰을 꺼내고는 방금 구 경관이 보내온 사진을 열었다.“남궁유민, 즉 고성만이야. 경찰이 고성만의 집을 수색할 때 이걸 발견했어.”도아린은 마지막 닭 날개를 입에 넣고 꼬챙이를 배건후에게 건네며 핸드폰을 받아서들었다.화면 속 사진에는 루비 목걸이가 찍혀 있었다.배건후가 큰돈을 들여 샀던 화려한 디자인의 목걸이지만 전에 잃어버렸던 목걸이였다.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며 말하려 했지만 입안은 닭 날개로 가득 차있어 눈만 깜빡였다.“내가 전에 너한테 줬던 그 목걸이야. 배지유가 몰래 차다가 잃어버렸던 거.”도아린의 입은 마치 발골 기계 같았다. 닭 날개가 입에 들어갔다 나올 때면 뼈만 남았다.도아린은 손바닥에 뼈를 뱉고는 차분하게 말했다.“배지유가 어떤 남자와 잤고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녀를 영상으로 협박했어요. 그 장본인이 바로 고성만이라구요!”“...”이번에는 배건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성만이 배지유를 협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걸이를 철저히 숨겨놓고 분해해서 이미 팔아버렸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걸 집에 보관해 놓았을 줄은 몰랐어.”그것은 고성만이 자신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보험이었다.궁지에 몰리게 되면 목걸이를 분해해 팔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살 계획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체포당하고 말았다.다음 날, 도아린은 연성으로 돌아갔다. 배건후가 신청한 챔피언십 대회 접대 임무가 승인되었기 때문이다.진수혁 역시 변
그는 입가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자고충이 하나가 될 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앞으로 잘못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을 거야.”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한다면 그 고통으로 인해 결국 죽게 될 것이다.도아린은 배건후의 머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들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썼다.배건후는 그녀의 품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어서 너에게 혼수로 바칠게. 네가 나를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래도 나는 너를 평생 지켜줄 거야.”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남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그렇게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빛이 어두워질 때까지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돌아가자.”배건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다리를 움직이며 불편했던 자세를 바꿨다.“이 근처에 야생 동물은 없지만 해가 지면 안전하지 않아.”도아린은 처음에는 감정에 휩싸여 배건후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가 몸을 움직이자 그녀는 즉시 이상함을 느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돌아갈 때 건후 씨 몸이 불편하니까 제가 태워드릴게요. 그리고 내리막길이라 힘도 덜 들 거예요.”“알았어. 네 말 들을게.”자전거 핸들이 비뚤어져 있었지만 배건후는 두 다리로 바퀴를 단단히 고정한 후 힘껏 돌려 단숨에 바로 고쳤다.도아린이 자전거 앞좌석에 타고 배건후는 그녀 뒤에 앉았다.그는 얼굴을 그녀의 등에 기댄 채 내리막에서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긴 다리를 쭉 뻗어 마찰력을 늘리며 조절했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수혁과 변슬기도 막 돌아오고 있었다.변슬기는 도아린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도아린은 그들이 뭔가 진전이 있을 줄 알고 가서 물어보려 했지만 배건후가 붙잡았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 머리 위에서 붉은 잎 하나를 떼어냈다.“...”변슬기와 진수혁이 설마 자신과 배건후가 야외에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배건후는 오직 도아린에게만 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도아린은 그의 눈동자 속에 가득한 붉게 물든 단풍잎과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마음속 깊이 즐거워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의 깊고 그윽한 눈이 가늘게 감기며 그 속에는 격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그래, 이거지!’그녀는 올해 겨우 25살이었다.어린 시절 양부모 곁에서 사랑받지 못했고 장애를 겪은 후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돌보며 결혼 생활에서는 남편의 감정적 학대 속에서 버텨야 했다.그녀는 너무도 많은 행복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이게 맞는 일이다.그녀는 웃어야 한다. 크게 소리 내어 마음껏 웃어야 한다.고작 25살에 불과한 그녀가 이토록 많고 무거운 책임과 압박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눈앞 여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고 배건후의 심장도 저릿해 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거친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스쳤고 천천히 그녀의 눈꼬리를 눌렀다.“웃어. 앞으로 나쁜 감정들은 전부 나한테 넘겨. 내 앞에서는 일부러 강한 척 버틸 필요도 없어. 속상하면 때리고 욕해도 돼. 대신에 절대 자신을 괴롭히지 마.”도아린은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 뒤돌아 눈물을 닦으려 했다.그 순간 힘센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특유의 나무 향기가 그녀를 감쌌고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여태까지 내가 나쁜 놈이었어. 미안해. 앞으로는 모든 일을 너와 상의할게.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 거고 네가 속상해할 일도 만들지 않을 거야.”도아린은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입만 살아서!”배건후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운 뒤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도아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직 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지도 못했잖아요. 그리고 저도 아직...”이후의 말은 더 이상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상자를 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청혼의 반지가 아니었다.작고 빨간 벌레가 들어 있었는데 다리가 없고 온몸이 부드러웠으며
변슬기는 바쁜 듯 뒤돌아보며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좋아요." 진수혁은 흔쾌히 대답했다. 이미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배건후는 세 사람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빌라에는 자전거가 두 대 있었는데, 도아린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일부러 다른 자전거의 페달을 떼어 놓았던 것이다. 도아린은 자전거를 보고 그에게 너 정말 얄밉다'는 눈빛을 보내며 빨리 고치라고 신호를 보냈다. 자전거를 고치고 네 사람은 문밖으로 나갔다. "꽉 잡아."배건후는 도아린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자 힘껏 페달을 밟았고, 자전거는 비탈길을 미끄러져 작은 길로 향했다.변슬기는 진수혁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자전거 뒤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진수혁은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저, 제가 밀어드릴까요...거의 정상에 도착하면, 그때 저를 밀어주세요."라고 제안했다. 진 대표님의 속도로는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할지 내기는커녕,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수혁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거의 넘어질 뻔했고, 황급히 남자의 허리를 붙잡았다. 자전거는 갑자기 비틀거리지 않았고, 속도도 빨라졌다. 변슬기: "..."배건후는 도아린을 태우고 산길을 누볐고, 도아린은 뒤쪽 페달을 밟으며 일어섰다.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짧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렸다. "산속 공기가 도시보다 훨씬 좋네요. 매연 냄새도 없고, 에어컨 냄새도 안 나고." 배건후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살짝 몸을 일으켰다. "어제 비가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신도 비 온 뒤 흙냄새 좋아해요?"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귓가에 웃으며 말했다. "나도 좋아해요! 비 온 뒤 흙과 풀이 섞인 냄새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 배건후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아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깨달았다. 배건후가 말한 것은 바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환한 미
진수혁은 찻잔을 들어 살짝 한 모금 마시더니 배건후를 바라보았다. "말해 봐요." "내가 먼저 도아린과 결혼하면, 당신은 유럽 유학 기회를 나에게 넘겨요. 당신이 먼저 변슬기와 결혼하면, 당신이 필요로 하는 칩 기술을 두 손으로 받칠게요."진수혁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찻잔을 쥔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고, 손등에는 핏줄이 돋아났다. 그는 배건후의 깊은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매력적인 눈은 도아린을 향할 때면 온통 비위를 맞추고 약한 척하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매처럼 날카롭게, 거스를 수 없는 공격성을 띠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진수혁은 눈에 띄지 않게 눈썹을 찌푸렸다. 배건후가 그동안 도아린에게 온갖 비위를 맞추는 것을 보고 진수혁은 배건후가 이미 자존심과 투지를 잃고 오직 결혼 생활을 되돌리려고만 한다고 오해했다. 이제야 배건후는 여전히 그 배건후라는 것을 알았다. 전 부인을 되찾고 싶어 하는 것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발전시킬 기회를 포기한 적도 없었다.유럽에는 강연이 하나 있는데, 입문 조건이 주요 재벌 그룹의 실력자 또는 후계자이며, 배건후의 현재 자산으로는 강연을 들을 수 없었다. 진수혁은 그 자격이 있었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유럽으로 가서 칩 기술을 연구하는 천재를 찾고 싶었다. 두 사람은 서로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건후는 굳이 그와 도박을 걸려고 했다. "당신이 이길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죠." 진수혁이 말했다. "두고 보시죠." 배건후가 말했다. 두 남자는 악수하며 조용히 내기를 정했다. 저녁 식사 때, 진수혁 부부는 주범금도 데려왔고, 내일을 위해 준비했던 몇 가지 요리가 오늘 식탁에 올랐다. 모두 즐겁게 식사했고, 주범금의 기분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녀는 도아린에게 자신이 구매한 전리품을 자랑하기도 했고, 밤늦게서야 떠났다. 진수혁은 도아린을 데려다줄 때 그녀를 불러 세웠다. "유럽에 칩 분야 천재가 있다는 거
변환에 성공하는 순간, 동생은 깨어났고, 시스템은 남자 주인공에게 귀속되었다. 시스템은 남자 주인공에게 도아린의 진심을 얻지 못하면 죽을 것이라고 알렸다.처음에는 남자 주인공이 믿지 않았지만, 도아린과 이혼한 후 자신의 사업 제국이 날마다 무너져 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도아린의 좋았던 점들을 떠올렸다...도아린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지만, 이 남자 주인공은 정말 쓰레기네!""나도 그렇게 생각해." 배건후는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도아린의 좋은 점을 떠올린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거야."도아린은 그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눈빛에는 ‘그러니 당신도 그와 똑같은 부류겠지’라고 쓰여 있었다."나는 아니야." 배건후는 도아린의 손을 잡고 심장 부위에 가져다 댔다. “나는 줄곧 당신만을 사랑했어. 다만 임무 때문에 표현할 수 없었을 뿐이야. 나는 모든 것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당신에게 줄 수 있어."도아린은 손을 빼서 그의 옷에 쓱 닦았다."당신은 나를 소유하고 싶을 뿐이야. 나를 소유하는 것이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과 같으니까." 그녀는 일어나 테라스로 향했다.배건후는 따라가서 말했다. "우리는 공정하게 할 수 있어! 결혼 전후를 막론하고 모든 자산은 당신 거야!"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나도 당신 거고."라고 덧붙였다.도아린은 깊어가는 가을의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눈을 감고 침묵했다.배건후는 말없이 그녀 옆에 서 있었다. 마치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주인이‘놀러 가자’라고 한마디만 하면 즉시 꼬리를 흔들며 기뻐할 준비가 된 듯이.한참 후, 도아린은 그를 돌아보았다."당신 우정윤에게 후원한 적 있어?"배건후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후원한 건 독자들이 남자 주인공을 가장 심하게 욕하는 챕터였어.""……" 그리고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도아린은 웃음을 참으며 일부러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 나오
"내가 무슨 바람이 있다고 그래요?"예전에 그녀가 먼저 다가간 건, 배건후랑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서였다.남녀를 불문하고 아이를 낳아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당신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고 여러 수단을 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사랑 없이는 못 산다는 건 아니에요.내가 엄청나게 목마른 사람처럼 말하네요.배건후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배건후가 잘못 말했어요. 배건후가 원해요. 당신이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나를 총애해주길 기다릴게요."퉤!도아린은 씹던 멜론을 배건후의 몸에 그대로 뿜어버렸다.가슴을 치며 화도 나고 웃음도 나왔다.두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배건후는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몸을 빼앗긴 게 분명하다.겉모습은 그대로지만, 속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예전의 배건후는 엄격하고 냉정하며 웃음기 하나 없었고,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하면 비웃거나 냉담하게 대하곤 했다. 지금의 배건후는 데릴사위가 되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하고, ‘총애’를 받겠다고 자청하기까지 한다.배건후는 몸에 묻은 과일 조각을 닦지 않고 손을 들어 도아린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은지 확인한 후에야 휴지를 꺼내 옷을 닦았다.도아린은 바닥에 떨어진 과일 조각을 치우며 농담처럼 말했다. "배건후, 당신 몸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 게 분명해요. 내가 책 속에 살고 있는 건가? 당신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내가 강해져서 당신에게 복수할 거라는 걸 알고 미리 납작 엎드리는 건가?"배건후는 옷을 다 닦고 도아린을 소파로 끌어당겼다."빙의가 아니라 공략이에요.""..."남자는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을 공략해서 당신의 사랑을 얻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죽어요.""당신 미쳤어요?" 도아린은 그의 등을 찰싹 때렸다."미쳤어요. 당신은 유일한 약이에요."도아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의 품에서 온몸을 떨며 웃었다. "그렇게 뻔한 사랑 고백은 우종이 가르쳐준 거죠
"엄마가 당신한테 준대요, 알아서 해요."도아린이 머리를 끄덕였다."그래요. 별장에서 돌아온 후 다시 해결합시다."배건후는 몸을 뒤로 돌리면서 주체 못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아 그런지 어떤 부분은 더 확대되어 크게 보였다."전보다 커졌는데요."이상한 말이 도아린의 얼굴을 빨갛게 만들었다.그녀는 화가나 그를 한 눈 째리고 나가서 물건을 정리하였다.도아린은 변슬기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그녀를 끌고 단추를 찾는다는 핑계로 무슨 일인지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변슬기는 카펫에 엎드려서 핸드폰 보조등을 켜고 소파 밑을 드려다보았다."찾았어요."그녀는 손을 뻗어 단추를 쥐면서 주절주절 말했다."도 선생님, 이제 기회가 되면 제가 저희집의 메인 메뉴인 만두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도아린은 카펫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그녀가 건네 준 단추를 만지면서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제일 좋기는 가게 평생 20% 할인 카드 줘요.""작은 가게라 많이 벌지도 못해요."변슬기가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이 오시면 무조건 20% 할인 해들릴게요."진수혁은 다 썰어 놓은 과일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면서 저둘이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무슨 얘기 하세요?"변슬기가 설명해주려 하자 도아린은 손으로 그녀의 목을 감싸며 말했다."데릴 사위에 대해 얘기를 했어요. 변슬기의 어머니 아버지는 딸 하나 뿐인데, 앞으로 사위가 있다며 처가에 들어왔으면 해요."변슬기는 진수혁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그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진수혁의 기분은 별로 파동이 없어 보였고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매우 동의하는 눈치였다."우리집에는 니가 하나뿐인 딸인데.""저는 데릴 사위를 할 생각이 있습니다."진수혁은 도아린한테 손을 닦으라고 뜨거운 손수건을 건네 주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 보았다.슬기는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도아린과 진수혁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
변슬기는 재빨리 진수혁의 등 뒤로 숨었다.진수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상황을 파악하고 조용히 말했다.“이것 좀 부엌에 가져다줘.”“네!”변슬기는 배건후가 문 앞에 두고 간 봉투를 잽싸게 집어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부엌으로 사라졌다.도아린의 셔츠 단추 하나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배건후는 자신의 재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며 조심스럽게 게스트룸으로 이끌었다.“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차에 여벌로 둔 옷 있어.”도아린은 황급히 배건후의 손을 붙잡고 재킷을 벗어 돌려주었다.“일북이 근처에 있을 거야. 전화해. 밖에 추우니까 이거 입고 나가.”그녀가 팔을 들자 셔츠는 더 크게 벌어졌고 새하얗고 부드러운 피부가 다시 배건후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눈동자에 번쩍이는 불꽃이 튀었고 그 불씨는 작지만 매섭고 뜨거웠다.도아린은 급히 몸을 옆으로 돌리고 팔로 가슴을 가렸다. “어서 가.”배건후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그녀를 끌어안았다.도아린은 반사적으로 거부하려 했지만 그는 단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몇 번을 고요히 숨쉬더니 결국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발소리는 집 밖이 아니라 욕실로 향했다.변슬기는 부엌에서 머리를 내밀며 확인하려다 진수혁에게 팔을 붙잡혀 다시 안으로 끌려들어갔다.“생각해봤어? 회사에 남을 거야 아니면 돌아가서 가게를 이을 거야?”변슬기는 고개를 숙이고 포도를 씻었다.자신의 집은 해남에 있는 작은 분식집이었다. 일반 가정에게는 소중한 생계 수단일지 몰라도 재벌가인 진씨 가문 한테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존재였다.부모님은 외동딸인 변슬기가 곁에 있기를 바라며 나중에는 사위를 맞이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진수혁은 진성 그룹의 황태자다. 그에겐 집안도 학벌도 모두 어울리는 배우자가 필요했고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떠나는 순간 진수혁과는 더 이상 인연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계속 머무르면 감정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 뻔했다.한참 후 변슬기는 낮은 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