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윤은 힘겹게 침을 넘기며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하지만 그래도 목소리는 많이 갈라진 상태였다.“사모님, 저한테 누명을 씌우면 안 되죠.”“시체를 화장하면 제가 증거를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요?”‘쿵’하는 소리와 함께 방금 주운 노트북이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우정윤의 발에 떨어졌다.그는 아픈 신음 소리를 내며 즉시 무릎을 꿇었다.발에 묻은 흙을 닦고 돌아온 일북은 도아린의 굳어진 표정과 그 눈빛 속의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그는 우정윤을 힐끗 쳐다보았다.우정윤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화장하기 전에 항상 시체에 귀중품이 있는지 확인한다고 해요. 그런데 우연히 시체의 복부가 비어 있음을 발견했지, 뭐예요?”“아니에요!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전 절대...”우정윤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그 후로 도아린이 뭐라고 말하든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우정윤의 가족을 협박해도 그는 그저 노트북을 끌어안고 눈시울을 붉힌 채, 말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일북은 우정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도아린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강재민은 거실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야식 먹을래요?”“괜찮아요.”강재민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더니 급히 게임을 끄면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목소리가 왜 이렇게 쉬었어요?”“아침에 찬바람을 맞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저 쉬러 갈게요.”침실 앞까지 따라간 강재민은 도아린이 문을 닫으려 할 때 물었다.“다른 일은 없어요?”“없어요.”“그럼 내일 봐요.”그렇게 침실 문을 닫아버린 도아린은 문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그녀는 강재민이 문밖에 서 있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입을 꼭 닫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사실은 정말 큰 소리로 울고 싶었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도아린은 그럴 수 없었다.잠시 후, 문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고 그녀는 멍하니 침대에 누웠다.다음 날, 강재민은 문을
마스크 맨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차 밖을 보았다.차는 큰 시장 앞에서 멈춰 섰다.그가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신지훈이 그를 불렀다.“아린 씨가 얼마나 오랫동안 서대은 씨랑 같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긴 했어? 서대은 씨도 아린 씨한테 관심 있을 거야.”마스크 맨은 문손잡이를 꽉 잡고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신지훈은 다시 입을 열었다.“서대은이 실종되자 주작 1팀은 모두 아린 씨의 명령을 듣기 시작했고 서대은이 잡히고 나서 첫 번째로 만난 사람도 아린 씨야!”마스크 맨은 차 문을 닫아버렸다. 그는 좀 당황한 듯했지만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신지훈은 조금 급해져서 창문을 열고 돌아보며 말했다.“전에 너는 아린 씨가 자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었지. 그래서 모든 걸 숨겼어. 하지만 지금은 안 그래. 아직도 너 혼자서 다 짊어질 생각이야?”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LY가 라윤주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잖아. 하린이도 힘든데 나까지 걱정하게 할 필요는 없어...”“그래, 혼자 다 짊어져! 요양 센터 프로젝트가 끝나면 난 퇴직할 거야. 모건 그룹이 어떻게 되든 나도 신경 안 써! 아린 씨가 누구랑 결혼해도 난 상관없어.”마스크 맨은 얼굴을 찡그렸다. 주위에 싸늘한 분위기가 번졌다.그의 불만을 눈치챈 신지훈은 여전히 불난 집에 불을 붙였다.“아린 씨가 중단된 강재민 씨의 프로젝트를 건드리려고 해. 내가 손을 썼다는 게 즐켜서 밥줄이 끊기면 나도 가만 안 있어!”마스크 맨은 화가 났는지 발을 구르며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그 모습을 본 신지훈은 코웃음을 치더니 차를 몰고 떠났다.도아린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주현정은 배씨 가문에서 보낸 하인들을 불러왔다.“아린아, 건후가 남긴 프로젝트 중에 하나만 완성해도 대단한 거야.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항상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돼!”“일 때문이 아니라 그냥 감기 걸린 거예요.”침대에 기대 주현정이 깎아준 과일을 먹고 있던 도아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의 안색이 좋
주현정은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강했다.“지유를 이용해서 가식적인 그놈 가면을 벗기려고 그래?”“어떻게 할 생각인데?”도아린은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했고 주현정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찡그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남궁유민에게 다시 일어날 기회를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다시 한번 배씨 가문을 속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도록 말이다.이틀 후, 남궁유민은 배씨 가문의 사위가 되려다가 거절을 당했다. 그러자 그가 가짜 자료를 만들어 모건 기업을 공격했다는 뉴스가 실시간 검색어를 장식했다.아파트에 숨어서 장기 밀매 사건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는 이 뉴스를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말도 안 돼... 이건 명예훼손이야!”그는 변호사였기에 언제든지 상대를 고소할 수 있었다.하지만, 날마다 쏟아지는 여론은 그가 하나하나를 고소한다고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배지유랑 결혼하고 싶다고?”손보미가 침실 문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래, 건후 씨에게 복수하려는 거면 배지유를 이용하는 게 훨씬 쉽지. 배지유랑 결혼하고 교통사고를 위장해서 배건후를 죽여버리는 거지. 그러면 배씨 가문의 모든 건 네 것으로 될 거니까.”“너... 뭐라는 거야?”“내가 없는 말 했어? 이 영상이 가짜라고 말할 수 있겠어?”“무슨 영상?”남궁유민은 손보미가 든 휴대폰을 빼앗아 보았다. 그 영상은 그가 배지유를 위협했던 영상이었다.영상에는 남궁유민의 얼굴이 나오자 않았지만 그 몸매만 봐도 손보미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네가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어?”그녀는 달려가서 남궁유민의 가슴팍을 때리려 했지만 그는 한 손으로 그녀를 밀어냈다.“맞다면 어쩔 건데? 너부터 건후 씨랑 그런 짓 하면서 왜 나한테 뭐라 그래?”“난 건후 씨랑 잔 적 없어!”“그건 배건후가 너에게 관심이 없어서야.”남궁유민의 눈빛은 차갑고 비열했다.“난 네가 뭘 계획하는지 다 알아. 만약 배건후와 결혼할 수만 있었다면 넌 절대 나를 도와주지 않았을 거야.
전미나의 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그녀는 도지현을 힐끗 쳐다보고는 부인하려 했으나 도지현이 말했다.“네, 조심할게요.”도지현은 전미나를 쳐다보면서 밝은 미소를 짓더니 신발을 신었다.“있잖아요, 백 교수님.”“잠깐만요...”그때, 백 교수의 휴대폰이 울렸고 그는 전화를 받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전미나는 도지현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미안해요. 저 때문에 번거롭게 됐네요.”“사실 미안해야 하는 건 제 쪽이죠. 항상 제가 재검사를 받을 때 같이 와주셨잖아요. 저야말로불편하게 해서 죄송해요.”도지현은 잠시 멈추고 망설이다가 말했다.“혹시 남자 친구분이 오해하지는 않을까요? 제가 나서서 설명해 드릴 필요 있으시면...”“아뇨, 괜찮아요. 남자 친구가 없거든요.”“아, 그렇군요.”도지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미나에게서 가방을 받았다. 그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기뻐 보였다.전미나는 조금 어색해하며 눈동자를 굴렸다.진료실 안에서 갑자기 달달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백 교수가 부드럽게 말했다.“제 다른 환자에게도 의족을 달아야 하는데 지현 씨가 한 인공 골격이 좋다는 말을 듣고 직접 보고 싶다고 하시네요. 실례가 안 된다면 괜찮으실까요?”“전 좋아요.”도지현은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할 수 있는 한,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거든요!”“제가 환자분 대신에 감사하다고 전할게요.”백 교수는 전미나를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인공 골격은 좋긴 하지만 재활 과정이 많이 힘들어요. 보호자분께서 그 과정에 대해서 얘기해주면 환자분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거예요.”“죄송해요. 오늘은 회사로 돌아가서 야근해야 해서요...”전미나는 도지현에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그는 상관없다는 듯 손을 흔들며 말했다.“해야 할 일은 제가 다 설명할게요. 미나 씨는 회사 수석 디자이너라 요즘 바쁘거든요.”“진짜요? 그렇게 바쁜데도 매번 재검사에 동행해 주셨다니 정말 고맙네요.”백 교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
보통 정황이라면 실종된 지 24시간 이내에는 사건을 접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지현은 상황이 특별했고 또 진경수가 곁에 있었기에 경찰은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제가 같이 갔어야 했어요!”전미나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쥐고 있었는데 손목이 흰색으로 변할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다.진경수도 웃고 있던 표정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그의 눈빛은 추위 속에서 더욱 차가워 보였다. 백지후의 배경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백지후의 이름은 백지후였는데 한때 연성 병원에서 자문을 맡았었고 도지현이 해남으로 오고 나서는 같이 해남에 왔으나 어떤 병원에서도 일하지 않았다.도지현은 정기적으로 그의 집에 가서 1:1 재활 검사를 받았고 오늘이 그 마지막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미나 씨는 회사로 돌아가요. 제가 여기에서 경찰분들이랑 같이 있을게요.”진경수는 전미나를 밖으로 부르며 말했다.“도지현 씨 매니저한테 메시지를 보내서 여론을 지후 씨 쪽으로 유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전하세요. 그러면 백지후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파낼 수 있을 거니까요.”전미나는 그의 매니저들에게 연락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방송을 시작하고 나서 도지현은 그의 긍정적인 태도 덕분에 짧은 시간에 10만 명 이상의 팬을 얻었다. 그가 실종됐다는 말에 팬들은 큰 관심을 가졌고 다들 도지현을 찾는 걸 도와주겠다고 나섰다.어떤 말들은 증거가 없으면 공식적으로 입장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팬들은 어떤 게시글이든 올릴 수 있었다.팬들은 조금씩 감정이 격해져도 괜찮았고 선 넘는 발언을 해도 괜찮았다.전미나는 원래 회사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백지후네 집 앞에 도착했다.진경수는 그녀를 탓하지 않았지만 전미나는 도지현의 실종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꼈다.‘두 사람과 만났던 환자는 누구일까? 백지후는 공범일까, 아니면 피해자일까?’...도지현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이 바닥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벽과 바닥은 모
“그럴 리 없잖아. 내가 지현 씨를 데려왔으니까.”백지후는 부드럽게 말하면서 손보미의 손목에 있는 선명한 손자국을 쳐다보았다. 그는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혹시 그 사람이 폭력도 써?”그 말에 손보미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입고 있는 옷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그녀의 몸에 있는 자국은 더 많고 더 끔찍했다.“저는 분명 거절했어요, 하지만 남궁유민은 미친 것처럼 굴었어요! 진짜 미쳤을지도 모르죠. 몇 년 동안 쌓아온 사업이 망했고 위에서도 그를 믿지 않게 됐으니까요. 그래서 저한테 화풀이를 한 거예요.”“사실 그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배지유에게 접근하고 있었어요. 배지유를 통해 배씨 가문으로 들어가서 되려 자기가 배씨 가문을 차지하려고 했죠. 그리고는 저를 차버리려고 했어요!”“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람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죠. 배지유는 남궁유민을 돕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추악한 과거가 드러나는 바람에 그의 명예까지 더럽혔어요. 그래서 저한테 화풀이를 한 거죠.”“지후 씨, 전 비록 배건후와 도아린의 관계를 망쳤지만 그래도 그 자식처럼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전 항상 당신의 꿈을 기억하고 있었어요.”손보미는 백지후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어깨에 올렸다.백지후는 손을 떼려했으나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손보미의 고집에 못 이겨 그는 그녀의 몸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백지후가 약간 달아오른 걸 느낀 손보미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도지현은 그들이 내는 짧은 신음 소리와 점점 더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소파에 있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빠져서 정신이 없었다. 손보미는 그만 실수로 테이블 위의 물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백지후의 눈빛이 번쩍이더니 그는 손보미를 안아 침실로 갔다. 도지현이 있든 말든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두 사람은 서로를 탐하기 시작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전미나가 백지후네 집 거실 창문으로 뛰어 들어왔다.밖에서 멍을 때리고 있을 때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듣고 차 위에 올라타
“너무 눈치가 없으신 거 아니에요? 이러시면 안 되죠.”전미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숨쉬기가 힘들어 얼굴이 붉어졌고 비틀거리며 까만 방 앞에 끌려갔다.백지후는 그 방문을 열고 전미나를 세게 밀어 넣었다.안은 매우 어두웠고 전미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백지후도 마찬가지였다. 몇 초 정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하지만 그때, 백지후의 몸이 갑자기 굳어졌다.고개를 숙인 그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아주 작은 마취 주사가 꽂힌 걸 보았다.“빨리 가세요!”도지현이 전미나를 밖으로 밀었다.전미나는 충격에서 벗어나 도지현을 부축하며 앞으로 달렸다.“괜찮아요?”“빨리 가라고요!”도지현은 그녀를 밀쳐냈다.“마취제의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아요. 효과가 센 마취제가 아니라서 백지후도 그저 동작이 조금 느려질 뿐이에요. 그러니까 미나 씨, 빨리 가세요!”“아뇨. 저는 지현 씨랑 같이 갈 거예요!”아까의 당황스럽고 두려웠던 감정은 전부 그녀의 보호본능으로 바뀌었다.“지현 씨를 혼자 두지 않을 거예요!”전미나는 땅에 쓰러진 그를 세게 끌어당겼지만 도지현은 다시 그녀를 밀쳐냈다.“전 못 가요. 미나 씨가 가서 사람을 찾아와요. 빨리요!”전미나는 그제야 도지현이 자신의 인공 골격을 손에 들고 있다는 걸 보게 되었다. 그 마취 주사는 인공 골격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백지후는 문틀을 잡고 깊게 숨을 쉬며 잠에 들지 않도록 노력했다.도지현의 인공 골격은 백지후가 맞춤 제작한 것인데 그는 이런 장치를 만든 적이 없었다. 도지현을 기절시킨 후, 백지후는 그의 휴대폰과 가방만 빼앗았다. 그렇게만 해도 도지현은 반항할 능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도지현은 자신의 인공 골격을 뜯어냈다. 게다가 그 가짜 다리 안에는 비밀 무기가 숨어 있었다.백지후가 철제문을 닫으려는 걸 보고 전미나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그녀는 달려가서 문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백지후에게 한
“너 같은 년은 죽어도 싸!”손보미는 발가락이 너무 아픈 바람에 더 이상 몸을 지탱할 수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도지현은 철문 앞까지 기어갔고 손에 들고 있던 절단된 다리를 들며 말했다.“미나 씨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내가 의족으로 네 다리를 부숴버릴 거야!”전미나는 급히 도지현을 부축하려 했지만 그는 한 다리 만으로 서 있기 힘들었다. 의족을 강제로 떼어냈기에 짧은 시간 내에는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제가 업어줄게요!”전미나는 몸을 돌려 그에게 등을 보였지만 도지현은 거절해 버렸다.“미나 씨가 어떻게 절 업겠다고 그래요?”다리에 의족을 달았지만 그래도 그는 남자였고 상반신 근육이 발달했다.“할 수 있어요!”전미나는 급히 재촉하며 말했다.“빨리요! 마취 효과가 풀리면 아무도 못 나간다고요!”도지현은 할 수 없이 전미나의 등에 올라탔고 벽을 짚으면서 그녀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왔다.그녀가 겨우 일어섰을 때, 손보미는 꽃병을 들어 도지현의 등에 내리쳤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전미나는 균형을 잃고 앞으로 두 걸음 나가다 바닥에 넘어졌다.“누가 너더러 도아린의 동생으로 태어나래? 도아린은 나한테 빚을 졌어. 네가 대신 그 빚을 갚아야 해!”도지현은 몸을 돌려 손보미의 다리를 힘껏 차버렸다.그는 의족을 달고 있었기에 위력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그러자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때, 백지후는 마취가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다가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서 구르는 손보미를 안아 들었다. 그때, 허리둘레에 있던 타올이 갑자기 떨어졌다.도지현은 재빠르게 전미나의 눈을 가렸다.“보지 마요! 더럽잖아요.”그녀는 마음이 따스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도지현의 손을 세게 움켜잡았다.그는 흠칫 놀랐지만 이쪽으로 다가오는 백지후를 바라보며 의족을 무기 삼아 들었다.“미나 씨한테 손대지 마요.”백지후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의족 안에 어떻게 마취제가 들어 있을 수 있지?”도지현은 싸늘한 미소
“뭐라도 먹고 가자.”배건후는 구운 닭 날개는 도아린에게 건네주고 주현정에게는 구운 식빵을 건네주었다.주현정은 빵을 받아 들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렴. 나는 물 좀 마시러 들어갈게.”도아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서 멈췄다.두 사람은 강가의 평평한 돌 위에 앉았다.“엄마는 진짜 다 내려놓으신 걸까요?”“적어도 시작은 하신 거지. 앞으로 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와 함께 여행 다니면 점차 나아질 거야.”배건후는 핸드폰을 꺼내고는 방금 구 경관이 보내온 사진을 열었다.“남궁유민, 즉 고성만이야. 경찰이 고성만의 집을 수색할 때 이걸 발견했어.”도아린은 마지막 닭 날개를 입에 넣고 꼬챙이를 배건후에게 건네며 핸드폰을 받아서들었다.화면 속 사진에는 루비 목걸이가 찍혀 있었다.배건후가 큰돈을 들여 샀던 화려한 디자인의 목걸이지만 전에 잃어버렸던 목걸이였다.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며 말하려 했지만 입안은 닭 날개로 가득 차있어 눈만 깜빡였다.“내가 전에 너한테 줬던 그 목걸이야. 배지유가 몰래 차다가 잃어버렸던 거.”도아린의 입은 마치 발골 기계 같았다. 닭 날개가 입에 들어갔다 나올 때면 뼈만 남았다.도아린은 손바닥에 뼈를 뱉고는 차분하게 말했다.“배지유가 어떤 남자와 잤고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녀를 영상으로 협박했어요. 그 장본인이 바로 고성만이라구요!”“...”이번에는 배건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성만이 배지유를 협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걸이를 철저히 숨겨놓고 분해해서 이미 팔아버렸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걸 집에 보관해 놓았을 줄은 몰랐어.”그것은 고성만이 자신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보험이었다.궁지에 몰리게 되면 목걸이를 분해해 팔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살 계획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체포당하고 말았다.다음 날, 도아린은 연성으로 돌아갔다. 배건후가 신청한 챔피언십 대회 접대 임무가 승인되었기 때문이다.진수혁 역시 변
그는 입가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자고충이 하나가 될 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앞으로 잘못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을 거야.”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한다면 그 고통으로 인해 결국 죽게 될 것이다.도아린은 배건후의 머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들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썼다.배건후는 그녀의 품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어서 너에게 혼수로 바칠게. 네가 나를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래도 나는 너를 평생 지켜줄 거야.”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남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그렇게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빛이 어두워질 때까지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돌아가자.”배건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다리를 움직이며 불편했던 자세를 바꿨다.“이 근처에 야생 동물은 없지만 해가 지면 안전하지 않아.”도아린은 처음에는 감정에 휩싸여 배건후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가 몸을 움직이자 그녀는 즉시 이상함을 느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돌아갈 때 건후 씨 몸이 불편하니까 제가 태워드릴게요. 그리고 내리막길이라 힘도 덜 들 거예요.”“알았어. 네 말 들을게.”자전거 핸들이 비뚤어져 있었지만 배건후는 두 다리로 바퀴를 단단히 고정한 후 힘껏 돌려 단숨에 바로 고쳤다.도아린이 자전거 앞좌석에 타고 배건후는 그녀 뒤에 앉았다.그는 얼굴을 그녀의 등에 기댄 채 내리막에서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긴 다리를 쭉 뻗어 마찰력을 늘리며 조절했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수혁과 변슬기도 막 돌아오고 있었다.변슬기는 도아린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도아린은 그들이 뭔가 진전이 있을 줄 알고 가서 물어보려 했지만 배건후가 붙잡았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 머리 위에서 붉은 잎 하나를 떼어냈다.“...”변슬기와 진수혁이 설마 자신과 배건후가 야외에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배건후는 오직 도아린에게만 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도아린은 그의 눈동자 속에 가득한 붉게 물든 단풍잎과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마음속 깊이 즐거워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의 깊고 그윽한 눈이 가늘게 감기며 그 속에는 격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그래, 이거지!’그녀는 올해 겨우 25살이었다.어린 시절 양부모 곁에서 사랑받지 못했고 장애를 겪은 후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돌보며 결혼 생활에서는 남편의 감정적 학대 속에서 버텨야 했다.그녀는 너무도 많은 행복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이게 맞는 일이다.그녀는 웃어야 한다. 크게 소리 내어 마음껏 웃어야 한다.고작 25살에 불과한 그녀가 이토록 많고 무거운 책임과 압박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눈앞 여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고 배건후의 심장도 저릿해 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거친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스쳤고 천천히 그녀의 눈꼬리를 눌렀다.“웃어. 앞으로 나쁜 감정들은 전부 나한테 넘겨. 내 앞에서는 일부러 강한 척 버틸 필요도 없어. 속상하면 때리고 욕해도 돼. 대신에 절대 자신을 괴롭히지 마.”도아린은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 뒤돌아 눈물을 닦으려 했다.그 순간 힘센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특유의 나무 향기가 그녀를 감쌌고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여태까지 내가 나쁜 놈이었어. 미안해. 앞으로는 모든 일을 너와 상의할게.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 거고 네가 속상해할 일도 만들지 않을 거야.”도아린은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입만 살아서!”배건후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운 뒤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도아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직 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지도 못했잖아요. 그리고 저도 아직...”이후의 말은 더 이상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상자를 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청혼의 반지가 아니었다.작고 빨간 벌레가 들어 있었는데 다리가 없고 온몸이 부드러웠으며
변슬기는 바쁜 듯 뒤돌아보며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좋아요." 진수혁은 흔쾌히 대답했다. 이미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배건후는 세 사람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빌라에는 자전거가 두 대 있었는데, 도아린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일부러 다른 자전거의 페달을 떼어 놓았던 것이다. 도아린은 자전거를 보고 그에게 너 정말 얄밉다'는 눈빛을 보내며 빨리 고치라고 신호를 보냈다. 자전거를 고치고 네 사람은 문밖으로 나갔다. "꽉 잡아."배건후는 도아린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자 힘껏 페달을 밟았고, 자전거는 비탈길을 미끄러져 작은 길로 향했다.변슬기는 진수혁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자전거 뒤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진수혁은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저, 제가 밀어드릴까요...거의 정상에 도착하면, 그때 저를 밀어주세요."라고 제안했다. 진 대표님의 속도로는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할지 내기는커녕,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수혁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거의 넘어질 뻔했고, 황급히 남자의 허리를 붙잡았다. 자전거는 갑자기 비틀거리지 않았고, 속도도 빨라졌다. 변슬기: "..."배건후는 도아린을 태우고 산길을 누볐고, 도아린은 뒤쪽 페달을 밟으며 일어섰다.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짧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렸다. "산속 공기가 도시보다 훨씬 좋네요. 매연 냄새도 없고, 에어컨 냄새도 안 나고." 배건후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살짝 몸을 일으켰다. "어제 비가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신도 비 온 뒤 흙냄새 좋아해요?"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귓가에 웃으며 말했다. "나도 좋아해요! 비 온 뒤 흙과 풀이 섞인 냄새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 배건후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아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깨달았다. 배건후가 말한 것은 바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환한 미
진수혁은 찻잔을 들어 살짝 한 모금 마시더니 배건후를 바라보았다. "말해 봐요." "내가 먼저 도아린과 결혼하면, 당신은 유럽 유학 기회를 나에게 넘겨요. 당신이 먼저 변슬기와 결혼하면, 당신이 필요로 하는 칩 기술을 두 손으로 받칠게요."진수혁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찻잔을 쥔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고, 손등에는 핏줄이 돋아났다. 그는 배건후의 깊은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매력적인 눈은 도아린을 향할 때면 온통 비위를 맞추고 약한 척하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매처럼 날카롭게, 거스를 수 없는 공격성을 띠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진수혁은 눈에 띄지 않게 눈썹을 찌푸렸다. 배건후가 그동안 도아린에게 온갖 비위를 맞추는 것을 보고 진수혁은 배건후가 이미 자존심과 투지를 잃고 오직 결혼 생활을 되돌리려고만 한다고 오해했다. 이제야 배건후는 여전히 그 배건후라는 것을 알았다. 전 부인을 되찾고 싶어 하는 것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발전시킬 기회를 포기한 적도 없었다.유럽에는 강연이 하나 있는데, 입문 조건이 주요 재벌 그룹의 실력자 또는 후계자이며, 배건후의 현재 자산으로는 강연을 들을 수 없었다. 진수혁은 그 자격이 있었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유럽으로 가서 칩 기술을 연구하는 천재를 찾고 싶었다. 두 사람은 서로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건후는 굳이 그와 도박을 걸려고 했다. "당신이 이길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죠." 진수혁이 말했다. "두고 보시죠." 배건후가 말했다. 두 남자는 악수하며 조용히 내기를 정했다. 저녁 식사 때, 진수혁 부부는 주범금도 데려왔고, 내일을 위해 준비했던 몇 가지 요리가 오늘 식탁에 올랐다. 모두 즐겁게 식사했고, 주범금의 기분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녀는 도아린에게 자신이 구매한 전리품을 자랑하기도 했고, 밤늦게서야 떠났다. 진수혁은 도아린을 데려다줄 때 그녀를 불러 세웠다. "유럽에 칩 분야 천재가 있다는 거
변환에 성공하는 순간, 동생은 깨어났고, 시스템은 남자 주인공에게 귀속되었다. 시스템은 남자 주인공에게 도아린의 진심을 얻지 못하면 죽을 것이라고 알렸다.처음에는 남자 주인공이 믿지 않았지만, 도아린과 이혼한 후 자신의 사업 제국이 날마다 무너져 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도아린의 좋았던 점들을 떠올렸다...도아린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지만, 이 남자 주인공은 정말 쓰레기네!""나도 그렇게 생각해." 배건후는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도아린의 좋은 점을 떠올린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거야."도아린은 그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눈빛에는 ‘그러니 당신도 그와 똑같은 부류겠지’라고 쓰여 있었다."나는 아니야." 배건후는 도아린의 손을 잡고 심장 부위에 가져다 댔다. “나는 줄곧 당신만을 사랑했어. 다만 임무 때문에 표현할 수 없었을 뿐이야. 나는 모든 것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당신에게 줄 수 있어."도아린은 손을 빼서 그의 옷에 쓱 닦았다."당신은 나를 소유하고 싶을 뿐이야. 나를 소유하는 것이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과 같으니까." 그녀는 일어나 테라스로 향했다.배건후는 따라가서 말했다. "우리는 공정하게 할 수 있어! 결혼 전후를 막론하고 모든 자산은 당신 거야!"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나도 당신 거고."라고 덧붙였다.도아린은 깊어가는 가을의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눈을 감고 침묵했다.배건후는 말없이 그녀 옆에 서 있었다. 마치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주인이‘놀러 가자’라고 한마디만 하면 즉시 꼬리를 흔들며 기뻐할 준비가 된 듯이.한참 후, 도아린은 그를 돌아보았다."당신 우정윤에게 후원한 적 있어?"배건후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후원한 건 독자들이 남자 주인공을 가장 심하게 욕하는 챕터였어.""……" 그리고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도아린은 웃음을 참으며 일부러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 나오
"내가 무슨 바람이 있다고 그래요?"예전에 그녀가 먼저 다가간 건, 배건후랑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서였다.남녀를 불문하고 아이를 낳아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당신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고 여러 수단을 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사랑 없이는 못 산다는 건 아니에요.내가 엄청나게 목마른 사람처럼 말하네요.배건후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배건후가 잘못 말했어요. 배건후가 원해요. 당신이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나를 총애해주길 기다릴게요."퉤!도아린은 씹던 멜론을 배건후의 몸에 그대로 뿜어버렸다.가슴을 치며 화도 나고 웃음도 나왔다.두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배건후는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몸을 빼앗긴 게 분명하다.겉모습은 그대로지만, 속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예전의 배건후는 엄격하고 냉정하며 웃음기 하나 없었고,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하면 비웃거나 냉담하게 대하곤 했다. 지금의 배건후는 데릴사위가 되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하고, ‘총애’를 받겠다고 자청하기까지 한다.배건후는 몸에 묻은 과일 조각을 닦지 않고 손을 들어 도아린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은지 확인한 후에야 휴지를 꺼내 옷을 닦았다.도아린은 바닥에 떨어진 과일 조각을 치우며 농담처럼 말했다. "배건후, 당신 몸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 게 분명해요. 내가 책 속에 살고 있는 건가? 당신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내가 강해져서 당신에게 복수할 거라는 걸 알고 미리 납작 엎드리는 건가?"배건후는 옷을 다 닦고 도아린을 소파로 끌어당겼다."빙의가 아니라 공략이에요.""..."남자는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을 공략해서 당신의 사랑을 얻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죽어요.""당신 미쳤어요?" 도아린은 그의 등을 찰싹 때렸다."미쳤어요. 당신은 유일한 약이에요."도아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의 품에서 온몸을 떨며 웃었다. "그렇게 뻔한 사랑 고백은 우종이 가르쳐준 거죠
"엄마가 당신한테 준대요, 알아서 해요."도아린이 머리를 끄덕였다."그래요. 별장에서 돌아온 후 다시 해결합시다."배건후는 몸을 뒤로 돌리면서 주체 못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아 그런지 어떤 부분은 더 확대되어 크게 보였다."전보다 커졌는데요."이상한 말이 도아린의 얼굴을 빨갛게 만들었다.그녀는 화가나 그를 한 눈 째리고 나가서 물건을 정리하였다.도아린은 변슬기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그녀를 끌고 단추를 찾는다는 핑계로 무슨 일인지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변슬기는 카펫에 엎드려서 핸드폰 보조등을 켜고 소파 밑을 드려다보았다."찾았어요."그녀는 손을 뻗어 단추를 쥐면서 주절주절 말했다."도 선생님, 이제 기회가 되면 제가 저희집의 메인 메뉴인 만두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도아린은 카펫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그녀가 건네 준 단추를 만지면서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제일 좋기는 가게 평생 20% 할인 카드 줘요.""작은 가게라 많이 벌지도 못해요."변슬기가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이 오시면 무조건 20% 할인 해들릴게요."진수혁은 다 썰어 놓은 과일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면서 저둘이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무슨 얘기 하세요?"변슬기가 설명해주려 하자 도아린은 손으로 그녀의 목을 감싸며 말했다."데릴 사위에 대해 얘기를 했어요. 변슬기의 어머니 아버지는 딸 하나 뿐인데, 앞으로 사위가 있다며 처가에 들어왔으면 해요."변슬기는 진수혁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그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진수혁의 기분은 별로 파동이 없어 보였고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매우 동의하는 눈치였다."우리집에는 니가 하나뿐인 딸인데.""저는 데릴 사위를 할 생각이 있습니다."진수혁은 도아린한테 손을 닦으라고 뜨거운 손수건을 건네 주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 보았다.슬기는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도아린과 진수혁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
변슬기는 재빨리 진수혁의 등 뒤로 숨었다.진수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상황을 파악하고 조용히 말했다.“이것 좀 부엌에 가져다줘.”“네!”변슬기는 배건후가 문 앞에 두고 간 봉투를 잽싸게 집어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부엌으로 사라졌다.도아린의 셔츠 단추 하나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배건후는 자신의 재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며 조심스럽게 게스트룸으로 이끌었다.“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차에 여벌로 둔 옷 있어.”도아린은 황급히 배건후의 손을 붙잡고 재킷을 벗어 돌려주었다.“일북이 근처에 있을 거야. 전화해. 밖에 추우니까 이거 입고 나가.”그녀가 팔을 들자 셔츠는 더 크게 벌어졌고 새하얗고 부드러운 피부가 다시 배건후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눈동자에 번쩍이는 불꽃이 튀었고 그 불씨는 작지만 매섭고 뜨거웠다.도아린은 급히 몸을 옆으로 돌리고 팔로 가슴을 가렸다. “어서 가.”배건후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그녀를 끌어안았다.도아린은 반사적으로 거부하려 했지만 그는 단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몇 번을 고요히 숨쉬더니 결국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발소리는 집 밖이 아니라 욕실로 향했다.변슬기는 부엌에서 머리를 내밀며 확인하려다 진수혁에게 팔을 붙잡혀 다시 안으로 끌려들어갔다.“생각해봤어? 회사에 남을 거야 아니면 돌아가서 가게를 이을 거야?”변슬기는 고개를 숙이고 포도를 씻었다.자신의 집은 해남에 있는 작은 분식집이었다. 일반 가정에게는 소중한 생계 수단일지 몰라도 재벌가인 진씨 가문 한테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존재였다.부모님은 외동딸인 변슬기가 곁에 있기를 바라며 나중에는 사위를 맞이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진수혁은 진성 그룹의 황태자다. 그에겐 집안도 학벌도 모두 어울리는 배우자가 필요했고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떠나는 순간 진수혁과는 더 이상 인연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계속 머무르면 감정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 뻔했다.한참 후 변슬기는 낮은 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