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같은 년은 죽어도 싸!”손보미는 발가락이 너무 아픈 바람에 더 이상 몸을 지탱할 수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도지현은 철문 앞까지 기어갔고 손에 들고 있던 절단된 다리를 들며 말했다.“미나 씨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내가 의족으로 네 다리를 부숴버릴 거야!”전미나는 급히 도지현을 부축하려 했지만 그는 한 다리 만으로 서 있기 힘들었다. 의족을 강제로 떼어냈기에 짧은 시간 내에는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제가 업어줄게요!”전미나는 몸을 돌려 그에게 등을 보였지만 도지현은 거절해 버렸다.“미나 씨가 어떻게 절 업겠다고 그래요?”다리에 의족을 달았지만 그래도 그는 남자였고 상반신 근육이 발달했다.“할 수 있어요!”전미나는 급히 재촉하며 말했다.“빨리요! 마취 효과가 풀리면 아무도 못 나간다고요!”도지현은 할 수 없이 전미나의 등에 올라탔고 벽을 짚으면서 그녀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왔다.그녀가 겨우 일어섰을 때, 손보미는 꽃병을 들어 도지현의 등에 내리쳤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전미나는 균형을 잃고 앞으로 두 걸음 나가다 바닥에 넘어졌다.“누가 너더러 도아린의 동생으로 태어나래? 도아린은 나한테 빚을 졌어. 네가 대신 그 빚을 갚아야 해!”도지현은 몸을 돌려 손보미의 다리를 힘껏 차버렸다.그는 의족을 달고 있었기에 위력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그러자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때, 백지후는 마취가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다가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서 구르는 손보미를 안아 들었다. 그때, 허리둘레에 있던 타올이 갑자기 떨어졌다.도지현은 재빠르게 전미나의 눈을 가렸다.“보지 마요! 더럽잖아요.”그녀는 마음이 따스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도지현의 손을 세게 움켜잡았다.그는 흠칫 놀랐지만 이쪽으로 다가오는 백지후를 바라보며 의족을 무기 삼아 들었다.“미나 씨한테 손대지 마요.”백지후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의족 안에 어떻게 마취제가 들어 있을 수 있지?”도지현은 싸늘한 미소
“진 대표님...”“경수 형...”두 사람은 동시에 진경수를 쳐다보며 의문스러운 눈빛을 보냈고 잡고 있던 손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진경수는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아린이는 네 누나이기도 하고 내 여동생이기도 해. 그러니까 아린이의 동생인 너도 내 동생인 셈이지.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해야 돼! 만약 네가 다치면 아린이가 마음 아파할 거고 우리도 걱정할 거니까...”“알았어요, 형. 앞으로 주의할게요.”말을 마친 도지현은 전미나를 쳐다보며 말했다.“미나 씨, 목은 괜찮아요? 백지후가 죽일 듯이 목을 조르길래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데요...”“전 괜찮아요.”전미나는 손사래를 치면 또다시 도지현의 옷을 걷어 올렸다.“일단 병원으로 가요. 등을 세게 맞았으니 세게 다쳤을 수도 있어요.”진경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창 밖을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병원에 도착한 도지현과 전미나는 검사를 받았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진경수는 도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런 일이 있는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지현 씨가 다쳤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진경수는 화가 나며 말했다.“손보미가 갑자기 돌아서 지현 씨를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도아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사실 도아린도 그런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손보미의 질투가 도지현에게 향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도지현을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자기가 원하는 걸 얻기 전까지는 죽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그리고 또 도지현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끔 의족을 개조했으니 이렇게만 하면 그가 위험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밖에서 떠돌아다니며 직장을 찾으려던 남궁유민이었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한 번 배신한 이상 다음에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아무도 그를 고용하지 않았다.전에 창립했던 로펌도 마찬가지였다. 배건후를 고발하고 나니 대부분의 직원들이 떠나버렸다.남궁유민은 짜증을 내며
“지금 손발이 다 아프다고! 나 병원에 가야 해!”손보미가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웠다.그녀의 발가락은 부러져 있었고, 손가락에는 살점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의사가 치료를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난동을 부리며 치료를 받지 않으면 진술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협박했다.경찰은 어쩔 수 없이 상부에 보고한 후,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갔다.일련의 검사를 거친 후, 의사는 손보미에게 항생제를 처방했고, 간호사가 와서 주사를 놓고 수액을 연결하려 했다.간호사가 주사기를 꺼내자 손보미가 경계했다.“이게 뭐야!”“진통제입니다.”간호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못 믿겠어! 보여 줘!”간호사가 주사기를 보여주자, 손보미가 손을 휘둘러 밀쳐버렸다.“약병을 직접 보여 줘! 네가 주사기에 뭘 넣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너희 다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잖아!”간호사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녀는 믿지 않았고, 결국 경찰이 처방전을 보여주며 설명했지만, 손보미는 여전히 거부했다.“내 눈앞에서 약병을 열어! 네가 주사기에 뭘 넣었는지 알 게 뭐야!”그녀는 극도로 불안해하자 경찰은 순간 그녀가 피해망상증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직업 윤리 때문에 뭐라 하지 못하고, 경찰과 간호사는 협의 끝에 담당 의사에게 다시 허락을 받고, 손보미가 보는 앞에서 약병을 개봉해 수액 병에 주입했다.그제야 그녀는 안심한 듯 긴장을 풀었고,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 졸기 시작했다.병실에는 손보미 혼자였고, 경찰은 의자를 가져와 병실 문 앞에 앉았다.갑자기 병실 안에서 와장창하는 소리가 났다.경찰이 급히 문을 열었을 때, 손보미는 이미 창문을 열고 베란다로 올라가 있었다.“다가오지 마! 다들 한패인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날 죽이려고 하는 거지! 난 죽고 싶지 않아!”그녀는 허공에 손을 휘두르며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쫓아내려는 듯했다.그리고 경찰이 아니라 허공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의사 불러와! 빨리!”경찰은 동료에게 지시한 후,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
“손보미 씨! 당신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철저히 조종당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도지현은 휠체어에 앉아 전미나와 함께 손보미 앞에 나타났다.손보미는 온몸이 아픈 듯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보였고 경찰이 일부러 그녀를 괴롭히려는 듯 계속해서 진술을 요구하며 진통제는 주지 않았다.경찰과의 진술을 마친 후, 도지현이 들어왔고 손보미는 원망 어린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너 같은 폐인이 나한테 뭐라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만약 도아린이 배건후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넌 벌써 도정국에게 버림받고 저세상에서 네 엄마를 만났겠지.”어찌나 악을 썼는지 손보미의 목 옆에 혈관이 도드라지게 튀어나왔다.그녀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 뒤이어 비꼬듯 웃었다.“내가 백지후를 데려다 널 치료해 준 덕분에 넌 지금 목숨이 붙어 있는 거라고! 도아린 그 얌생이는 우리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지니까 배건후와 이혼하고 강재민의 품으로 갔어! 도아린 그 고약한 년이...”“악!”도지현은 테이블 위의 물을 손보미의 얼굴에 퍼붓고는 무뚝뚝하게 말했다.“미안해요, 손보미 씨. 입이 조금 말라 보여서 물이라도 주려고 했는데 손이 떨려서.”전미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억지로 참았다.손보미는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었고 도지현은 뭔가 본때를 보여줘야 입을 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경찰의 감시하에 폭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지만 물 한 잔쯤은 문제 되지 않았다.차가운 물이 손보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고 손보미는 멈칫하다가 다음 순간 비명을 질렀다.“죽여버리겠어! 너 같은 쓸모없는 것들은 죽어도 싸!”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무슨 일이죠?”“죄송합니다. 손보미 씨가 목마른 것 같아서 물이라도 주려고 했는데 자꾸 몸부림치는 바람에 물이 쏟아졌습니다.”도지현이 미안한 듯 얘기했다.어제 손보미를 감시했던 경찰들은 그녀가 자살 소동 때문에 윗선에 크게 혼났기에 모두 손보미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손보미가 멀쩡한 걸
“도 선생님께 말해봐요. 그분이 상황에 대해 잘 알 거예요.”도지현은 바로 도아린에게 전화를 걸었고, 도아린은 마침 강재민과 함께 오목을 두고 있었다.“남궁유민이 수술을 받았다고?”“응. 손보미가 남궁유민은 절대 자백하지 않을 거라고 했어. 나도 방금 손보미를 속여봤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어.”“알았어. 남궁유민이 아직 체포되지 않았으니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어. 지금은 진씨 가문에 가서 지내는 게 좋겠어.”도아린이 전화를 끊고, 대략적인 상황을 강재민에게 설명했다.“재민 씨, 이전에 남궁유민을 데리고 있으면서 그 사람 자료를 확인했었어요?”남궁유민이 강씨 가문의 스캔들을 덮기 위해 배건후의 정보를 폭로했던 일을 떠올리자 강재민의 얼굴에 어색한 기색이 스쳤다.그는 가볍게 기침을 두 번 하고 입을 열었다.“남궁유민의 자료는 육청아가 준 거야. 이력서상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어.”도아린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력서에 아무 문제가 없을수록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강재민도 분명히 그것을 알고 있었고 이 상황을 육청아에게 떠넘기려는 것이겠지.’“이번에 연성에서 발각된 인체 장기 밀매 사건에 육청아가 관련돼 있어요. 재민 씨가 책임을 피하려면 꼬리를 잘 짤라야 할 거예요.”도아린이 흰 돌을 하나 놓으며 말했다.강재민은 체스를 두던 중, 도아린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이미 이길 판이었지만 그는 애교 섞인 미소를 띠며 하나씩 돌을 주워들었다.“내가 이미 육청아를 조직에서 제명하라고 LY에 보고했어요. 조직에서 분명히 불법 거래는 금지한다고 했는데 육청아가 잘못을 저질렀으니 벌을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해요.”“그리고 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게 아니에요. 나도 강등 신청을 제출했고, 벌을 받을 준비가 돼 있어요. 라윤주가 없으니까, 나머지 세 명의 팀장이 처벌 결정을 내릴 거에요. 다만...”“뭐가 걸리나요?”도아린이 이번에는 흰 돌을 쥐고 한 수 두었다.“백호가 라윤주를 다시 선
도아린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지만 길가에는 이미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길 위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 하나가 버려져 있었다. 그걸 보자, 도아린은 방금 일어난 일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저기요!”도아린이 목소리를 높였다.“그날 고마워요! 그리고 우리 대은이를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요!”“저는 도아린이에요! 도움이 필요하면 모건 그룹에 와서 나를 찾아요! 내가 주문한 지역 특산물이 도착했다고 말하면 돼요!”그녀는 다시 한번 크게 숨을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도아린은 그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지만, 발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앗!” 도아린이 넘어지는 순간, 근처에서 풀이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도아린은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그 사람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확신했지만 그가 자신에게 다가올 수 없는 상황인 걸 알았다.“그날, 그쪽도 다쳤다고 들었어요. 많이 다친 게 아니라면 아무 소리라도 내 주세요.”상대방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소리를 내면 자신이 드러날까 봐 두려우면서도 대답하지 않으면 다쳤다고 오해할까 봐 고민하는 듯했다.도아린은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던 찰나, 멀리서 작은 돌맹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그 소리는 확실한 응답이었다.“그쪽도 많이 다치지 않았다니 다행이에요!”도아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그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어서 사람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에요! 그쪽이 무엇을 하든, 다치지 않기를 바래요.”차량이 지나가면서 타이어가 도로와 마찰하는 소음에 도아린은 상대방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한참을 귀 기울였지만 주위는 여전히 조용하기만 했다.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육민재였다.“나도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요. 더 이상 신경 안 쓸게요. 편히 일 보세요.”도아린은 천천히 일어나며 발목을 살짝 움켜잡았다. 그리고 차 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나영옥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내가 아린이랑 얘기하고 있는데 네가 왜 끼어들어? 가서 저녁에 끓인 전복죽이 아직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남으면 데워서 아린한테 가져다줘.”그녀의 말은 육하경을 내보내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도아린은 그에게 ‘괜찮다’는 눈짓을 하자, 육하경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나갔다.그가 떠나자, 나영옥은 다시 부드러운 얼굴로 돌아갔다.“하경이는 가끔 너무 직설적으로 말할 때가 있어. 너무 신경 쓰지 마.”잠시 멈추고 나서, 노인이 덧붙였다.“건후가 치료를 미룬 건 그가 감당해야 할 결과야. 네가 그에게 진 빚을 갚고 있는 셈이라고 생각하면 돼.”그 말에 도아린의 시선은 바닥으로 향했지만 얼굴에는 기쁨도 분노도 없이 그저 차분한 표정만이 있었다.육민재가 서재에서 나올 때, 가정부와 가정의사가 함께 돌아왔다.유 닥터는 도아린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 뒤, 그녀의 바지를 살짝 걷어 올렸다.“가벼운 염좌네요. 스프레이만 뿌리면 돼요. 고통을 견딜 수 있으면 연고도 바를 수 있지만 그럼 문질러서 흡수되도록 해야 합니다.”“비서에게 스프레이 사러 가게 할게요.”육민재가 휴대폰을 꺼내며 말하자 나영옥은 화난 눈으로 그를 향해 꾸짖었다.“너도 참! 아린이가 모건 그룹을 넘겨받으면 분명히 해코지 할 사람들이 많을 텐데, 왜 데릴러도 안 가고!”노인이 홧김에 지팡이로 육민재의 다리를 힘껏 내리쳤고, 육민재는 균형을 잃고 하마터면 도아린에게 부딪힐 뻔했다.“할머니도 참...”“뭐 잘했다고 말대꾸야!”나영옥은 콧김을 내뱉으며 말했다.“아린이는 내 보물이야! 네가 진정으로 효도하고 싶다면 나를 위해서라도 아린이가 자리를 잘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육민재는 도아린을 한 번 바라본 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도아린은 미소를 띤 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사실, 도아린은 노인과 육민재의 이 시끄러운 쇼에 끼고 싶지 않았다.배건후가 모건 그룹을 맡기 전, 육원 그룹과 모건 그룹은 비슷한 규모
상황을 듣고 있던 나영옥은 도아린이 아무 말 없자 고개를 돌려 불쾌감을 감추지 않은 채 육하경을 바라보았다.“죽이 다 데워졌으니, 따뜻할 때 마셔요.”육하경은 자신이 대화를 방해한 줄 모르고 미소를 지으며 죽을 도아린 앞에 조심스레 놓았다.“고마워요.”도아린은 두 손으로 그릇을 받으며 그릇을 살짝 내려놓았다.그녀는 뭔가 어색해 보였지만 영문을 몰라 고개를 들어 육하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미소는 여전히 차분하고 온화했다.도아린이 눈앞에 놓인 죽을 보며 말했다.“깜빡하고 말씀 못 드렸는데, 저는 파를 잘 못 먹어요.”“아, 신경을 못 썼네요.”육하경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손을 빼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주방에 다시 내오라고 할게요.”그가 말을 끝내고 돌아서려는 순간, 도아린이 그를 잡았다.“잠깐만요, 이미 내왔으니 민재 씨에게 주세요!”도아린은 육민재를 바라보며 말했다.“저번보다 많이 여위셨네요.”“...”육민재는 자신에게 건네진 죽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그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입술만 달싹일 뿐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따뜻할 때 드세요.”도아린은 다시 죽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육민재는 눈살을 미세하게 찌푸리며 천천히 손을 들어 그릇을 받으려 했다.“재민이도 아까 한 그릇 먹었어...”노인이 목소리를 높이며 끼어들면서 바로 육하경에게 눈을 흘기자 그는 잘못을 알아챈 듯 급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도아린의 눈에는 실망이 스쳤고 그녀는 죽을 들고 나영옥에게 다가갔다.“그럼, 할머니가 드세요!”“난 됐어!”나영옥은 재빨리 거절하며 도아린이 오해하지 않도록 웃으며 덧붙였다.“나 같은 노인은 먹어서 뭐 하겠어!”도아린은 한숨을 쉬고 육하경이 들고 있던 쟁반에 다시 죽을 놓았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민재 씨도 안 드시고, 할머니도 못 드시면... 이 전복죽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거예요? 저를 위해서 끓인 건가요?”육민재는 도아린의 말을 들으며 잠시 나영옥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뭐라도 먹고 가자.”배건후는 구운 닭 날개는 도아린에게 건네주고 주현정에게는 구운 식빵을 건네주었다.주현정은 빵을 받아 들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렴. 나는 물 좀 마시러 들어갈게.”도아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서 멈췄다.두 사람은 강가의 평평한 돌 위에 앉았다.“엄마는 진짜 다 내려놓으신 걸까요?”“적어도 시작은 하신 거지. 앞으로 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와 함께 여행 다니면 점차 나아질 거야.”배건후는 핸드폰을 꺼내고는 방금 구 경관이 보내온 사진을 열었다.“남궁유민, 즉 고성만이야. 경찰이 고성만의 집을 수색할 때 이걸 발견했어.”도아린은 마지막 닭 날개를 입에 넣고 꼬챙이를 배건후에게 건네며 핸드폰을 받아서들었다.화면 속 사진에는 루비 목걸이가 찍혀 있었다.배건후가 큰돈을 들여 샀던 화려한 디자인의 목걸이지만 전에 잃어버렸던 목걸이였다.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며 말하려 했지만 입안은 닭 날개로 가득 차있어 눈만 깜빡였다.“내가 전에 너한테 줬던 그 목걸이야. 배지유가 몰래 차다가 잃어버렸던 거.”도아린의 입은 마치 발골 기계 같았다. 닭 날개가 입에 들어갔다 나올 때면 뼈만 남았다.도아린은 손바닥에 뼈를 뱉고는 차분하게 말했다.“배지유가 어떤 남자와 잤고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녀를 영상으로 협박했어요. 그 장본인이 바로 고성만이라구요!”“...”이번에는 배건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성만이 배지유를 협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걸이를 철저히 숨겨놓고 분해해서 이미 팔아버렸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걸 집에 보관해 놓았을 줄은 몰랐어.”그것은 고성만이 자신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보험이었다.궁지에 몰리게 되면 목걸이를 분해해 팔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살 계획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체포당하고 말았다.다음 날, 도아린은 연성으로 돌아갔다. 배건후가 신청한 챔피언십 대회 접대 임무가 승인되었기 때문이다.진수혁 역시 변
그는 입가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자고충이 하나가 될 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앞으로 잘못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을 거야.”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한다면 그 고통으로 인해 결국 죽게 될 것이다.도아린은 배건후의 머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들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썼다.배건후는 그녀의 품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어서 너에게 혼수로 바칠게. 네가 나를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래도 나는 너를 평생 지켜줄 거야.”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남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그렇게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빛이 어두워질 때까지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돌아가자.”배건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다리를 움직이며 불편했던 자세를 바꿨다.“이 근처에 야생 동물은 없지만 해가 지면 안전하지 않아.”도아린은 처음에는 감정에 휩싸여 배건후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가 몸을 움직이자 그녀는 즉시 이상함을 느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돌아갈 때 건후 씨 몸이 불편하니까 제가 태워드릴게요. 그리고 내리막길이라 힘도 덜 들 거예요.”“알았어. 네 말 들을게.”자전거 핸들이 비뚤어져 있었지만 배건후는 두 다리로 바퀴를 단단히 고정한 후 힘껏 돌려 단숨에 바로 고쳤다.도아린이 자전거 앞좌석에 타고 배건후는 그녀 뒤에 앉았다.그는 얼굴을 그녀의 등에 기댄 채 내리막에서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긴 다리를 쭉 뻗어 마찰력을 늘리며 조절했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수혁과 변슬기도 막 돌아오고 있었다.변슬기는 도아린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도아린은 그들이 뭔가 진전이 있을 줄 알고 가서 물어보려 했지만 배건후가 붙잡았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 머리 위에서 붉은 잎 하나를 떼어냈다.“...”변슬기와 진수혁이 설마 자신과 배건후가 야외에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배건후는 오직 도아린에게만 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도아린은 그의 눈동자 속에 가득한 붉게 물든 단풍잎과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마음속 깊이 즐거워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의 깊고 그윽한 눈이 가늘게 감기며 그 속에는 격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그래, 이거지!’그녀는 올해 겨우 25살이었다.어린 시절 양부모 곁에서 사랑받지 못했고 장애를 겪은 후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돌보며 결혼 생활에서는 남편의 감정적 학대 속에서 버텨야 했다.그녀는 너무도 많은 행복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이게 맞는 일이다.그녀는 웃어야 한다. 크게 소리 내어 마음껏 웃어야 한다.고작 25살에 불과한 그녀가 이토록 많고 무거운 책임과 압박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눈앞 여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고 배건후의 심장도 저릿해 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거친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스쳤고 천천히 그녀의 눈꼬리를 눌렀다.“웃어. 앞으로 나쁜 감정들은 전부 나한테 넘겨. 내 앞에서는 일부러 강한 척 버틸 필요도 없어. 속상하면 때리고 욕해도 돼. 대신에 절대 자신을 괴롭히지 마.”도아린은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 뒤돌아 눈물을 닦으려 했다.그 순간 힘센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특유의 나무 향기가 그녀를 감쌌고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여태까지 내가 나쁜 놈이었어. 미안해. 앞으로는 모든 일을 너와 상의할게.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 거고 네가 속상해할 일도 만들지 않을 거야.”도아린은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입만 살아서!”배건후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운 뒤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도아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직 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지도 못했잖아요. 그리고 저도 아직...”이후의 말은 더 이상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상자를 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청혼의 반지가 아니었다.작고 빨간 벌레가 들어 있었는데 다리가 없고 온몸이 부드러웠으며
변슬기는 바쁜 듯 뒤돌아보며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좋아요." 진수혁은 흔쾌히 대답했다. 이미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배건후는 세 사람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빌라에는 자전거가 두 대 있었는데, 도아린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일부러 다른 자전거의 페달을 떼어 놓았던 것이다. 도아린은 자전거를 보고 그에게 너 정말 얄밉다'는 눈빛을 보내며 빨리 고치라고 신호를 보냈다. 자전거를 고치고 네 사람은 문밖으로 나갔다. "꽉 잡아."배건후는 도아린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자 힘껏 페달을 밟았고, 자전거는 비탈길을 미끄러져 작은 길로 향했다.변슬기는 진수혁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자전거 뒤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진수혁은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저, 제가 밀어드릴까요...거의 정상에 도착하면, 그때 저를 밀어주세요."라고 제안했다. 진 대표님의 속도로는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할지 내기는커녕,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수혁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거의 넘어질 뻔했고, 황급히 남자의 허리를 붙잡았다. 자전거는 갑자기 비틀거리지 않았고, 속도도 빨라졌다. 변슬기: "..."배건후는 도아린을 태우고 산길을 누볐고, 도아린은 뒤쪽 페달을 밟으며 일어섰다.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짧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렸다. "산속 공기가 도시보다 훨씬 좋네요. 매연 냄새도 없고, 에어컨 냄새도 안 나고." 배건후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살짝 몸을 일으켰다. "어제 비가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신도 비 온 뒤 흙냄새 좋아해요?"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귓가에 웃으며 말했다. "나도 좋아해요! 비 온 뒤 흙과 풀이 섞인 냄새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 배건후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아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깨달았다. 배건후가 말한 것은 바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환한 미
진수혁은 찻잔을 들어 살짝 한 모금 마시더니 배건후를 바라보았다. "말해 봐요." "내가 먼저 도아린과 결혼하면, 당신은 유럽 유학 기회를 나에게 넘겨요. 당신이 먼저 변슬기와 결혼하면, 당신이 필요로 하는 칩 기술을 두 손으로 받칠게요."진수혁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찻잔을 쥔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고, 손등에는 핏줄이 돋아났다. 그는 배건후의 깊은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매력적인 눈은 도아린을 향할 때면 온통 비위를 맞추고 약한 척하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매처럼 날카롭게, 거스를 수 없는 공격성을 띠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진수혁은 눈에 띄지 않게 눈썹을 찌푸렸다. 배건후가 그동안 도아린에게 온갖 비위를 맞추는 것을 보고 진수혁은 배건후가 이미 자존심과 투지를 잃고 오직 결혼 생활을 되돌리려고만 한다고 오해했다. 이제야 배건후는 여전히 그 배건후라는 것을 알았다. 전 부인을 되찾고 싶어 하는 것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발전시킬 기회를 포기한 적도 없었다.유럽에는 강연이 하나 있는데, 입문 조건이 주요 재벌 그룹의 실력자 또는 후계자이며, 배건후의 현재 자산으로는 강연을 들을 수 없었다. 진수혁은 그 자격이 있었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유럽으로 가서 칩 기술을 연구하는 천재를 찾고 싶었다. 두 사람은 서로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건후는 굳이 그와 도박을 걸려고 했다. "당신이 이길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죠." 진수혁이 말했다. "두고 보시죠." 배건후가 말했다. 두 남자는 악수하며 조용히 내기를 정했다. 저녁 식사 때, 진수혁 부부는 주범금도 데려왔고, 내일을 위해 준비했던 몇 가지 요리가 오늘 식탁에 올랐다. 모두 즐겁게 식사했고, 주범금의 기분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녀는 도아린에게 자신이 구매한 전리품을 자랑하기도 했고, 밤늦게서야 떠났다. 진수혁은 도아린을 데려다줄 때 그녀를 불러 세웠다. "유럽에 칩 분야 천재가 있다는 거
변환에 성공하는 순간, 동생은 깨어났고, 시스템은 남자 주인공에게 귀속되었다. 시스템은 남자 주인공에게 도아린의 진심을 얻지 못하면 죽을 것이라고 알렸다.처음에는 남자 주인공이 믿지 않았지만, 도아린과 이혼한 후 자신의 사업 제국이 날마다 무너져 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도아린의 좋았던 점들을 떠올렸다...도아린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지만, 이 남자 주인공은 정말 쓰레기네!""나도 그렇게 생각해." 배건후는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도아린의 좋은 점을 떠올린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거야."도아린은 그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눈빛에는 ‘그러니 당신도 그와 똑같은 부류겠지’라고 쓰여 있었다."나는 아니야." 배건후는 도아린의 손을 잡고 심장 부위에 가져다 댔다. “나는 줄곧 당신만을 사랑했어. 다만 임무 때문에 표현할 수 없었을 뿐이야. 나는 모든 것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당신에게 줄 수 있어."도아린은 손을 빼서 그의 옷에 쓱 닦았다."당신은 나를 소유하고 싶을 뿐이야. 나를 소유하는 것이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과 같으니까." 그녀는 일어나 테라스로 향했다.배건후는 따라가서 말했다. "우리는 공정하게 할 수 있어! 결혼 전후를 막론하고 모든 자산은 당신 거야!"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나도 당신 거고."라고 덧붙였다.도아린은 깊어가는 가을의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눈을 감고 침묵했다.배건후는 말없이 그녀 옆에 서 있었다. 마치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주인이‘놀러 가자’라고 한마디만 하면 즉시 꼬리를 흔들며 기뻐할 준비가 된 듯이.한참 후, 도아린은 그를 돌아보았다."당신 우정윤에게 후원한 적 있어?"배건후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후원한 건 독자들이 남자 주인공을 가장 심하게 욕하는 챕터였어.""……" 그리고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도아린은 웃음을 참으며 일부러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 나오
"내가 무슨 바람이 있다고 그래요?"예전에 그녀가 먼저 다가간 건, 배건후랑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서였다.남녀를 불문하고 아이를 낳아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당신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고 여러 수단을 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사랑 없이는 못 산다는 건 아니에요.내가 엄청나게 목마른 사람처럼 말하네요.배건후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배건후가 잘못 말했어요. 배건후가 원해요. 당신이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나를 총애해주길 기다릴게요."퉤!도아린은 씹던 멜론을 배건후의 몸에 그대로 뿜어버렸다.가슴을 치며 화도 나고 웃음도 나왔다.두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배건후는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몸을 빼앗긴 게 분명하다.겉모습은 그대로지만, 속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예전의 배건후는 엄격하고 냉정하며 웃음기 하나 없었고,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하면 비웃거나 냉담하게 대하곤 했다. 지금의 배건후는 데릴사위가 되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하고, ‘총애’를 받겠다고 자청하기까지 한다.배건후는 몸에 묻은 과일 조각을 닦지 않고 손을 들어 도아린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은지 확인한 후에야 휴지를 꺼내 옷을 닦았다.도아린은 바닥에 떨어진 과일 조각을 치우며 농담처럼 말했다. "배건후, 당신 몸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 게 분명해요. 내가 책 속에 살고 있는 건가? 당신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내가 강해져서 당신에게 복수할 거라는 걸 알고 미리 납작 엎드리는 건가?"배건후는 옷을 다 닦고 도아린을 소파로 끌어당겼다."빙의가 아니라 공략이에요.""..."남자는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을 공략해서 당신의 사랑을 얻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죽어요.""당신 미쳤어요?" 도아린은 그의 등을 찰싹 때렸다."미쳤어요. 당신은 유일한 약이에요."도아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의 품에서 온몸을 떨며 웃었다. "그렇게 뻔한 사랑 고백은 우종이 가르쳐준 거죠
"엄마가 당신한테 준대요, 알아서 해요."도아린이 머리를 끄덕였다."그래요. 별장에서 돌아온 후 다시 해결합시다."배건후는 몸을 뒤로 돌리면서 주체 못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아 그런지 어떤 부분은 더 확대되어 크게 보였다."전보다 커졌는데요."이상한 말이 도아린의 얼굴을 빨갛게 만들었다.그녀는 화가나 그를 한 눈 째리고 나가서 물건을 정리하였다.도아린은 변슬기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그녀를 끌고 단추를 찾는다는 핑계로 무슨 일인지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변슬기는 카펫에 엎드려서 핸드폰 보조등을 켜고 소파 밑을 드려다보았다."찾았어요."그녀는 손을 뻗어 단추를 쥐면서 주절주절 말했다."도 선생님, 이제 기회가 되면 제가 저희집의 메인 메뉴인 만두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도아린은 카펫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그녀가 건네 준 단추를 만지면서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제일 좋기는 가게 평생 20% 할인 카드 줘요.""작은 가게라 많이 벌지도 못해요."변슬기가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이 오시면 무조건 20% 할인 해들릴게요."진수혁은 다 썰어 놓은 과일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면서 저둘이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무슨 얘기 하세요?"변슬기가 설명해주려 하자 도아린은 손으로 그녀의 목을 감싸며 말했다."데릴 사위에 대해 얘기를 했어요. 변슬기의 어머니 아버지는 딸 하나 뿐인데, 앞으로 사위가 있다며 처가에 들어왔으면 해요."변슬기는 진수혁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그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진수혁의 기분은 별로 파동이 없어 보였고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매우 동의하는 눈치였다."우리집에는 니가 하나뿐인 딸인데.""저는 데릴 사위를 할 생각이 있습니다."진수혁은 도아린한테 손을 닦으라고 뜨거운 손수건을 건네 주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 보았다.슬기는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도아린과 진수혁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
변슬기는 재빨리 진수혁의 등 뒤로 숨었다.진수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상황을 파악하고 조용히 말했다.“이것 좀 부엌에 가져다줘.”“네!”변슬기는 배건후가 문 앞에 두고 간 봉투를 잽싸게 집어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부엌으로 사라졌다.도아린의 셔츠 단추 하나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배건후는 자신의 재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며 조심스럽게 게스트룸으로 이끌었다.“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차에 여벌로 둔 옷 있어.”도아린은 황급히 배건후의 손을 붙잡고 재킷을 벗어 돌려주었다.“일북이 근처에 있을 거야. 전화해. 밖에 추우니까 이거 입고 나가.”그녀가 팔을 들자 셔츠는 더 크게 벌어졌고 새하얗고 부드러운 피부가 다시 배건후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눈동자에 번쩍이는 불꽃이 튀었고 그 불씨는 작지만 매섭고 뜨거웠다.도아린은 급히 몸을 옆으로 돌리고 팔로 가슴을 가렸다. “어서 가.”배건후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그녀를 끌어안았다.도아린은 반사적으로 거부하려 했지만 그는 단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몇 번을 고요히 숨쉬더니 결국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발소리는 집 밖이 아니라 욕실로 향했다.변슬기는 부엌에서 머리를 내밀며 확인하려다 진수혁에게 팔을 붙잡혀 다시 안으로 끌려들어갔다.“생각해봤어? 회사에 남을 거야 아니면 돌아가서 가게를 이을 거야?”변슬기는 고개를 숙이고 포도를 씻었다.자신의 집은 해남에 있는 작은 분식집이었다. 일반 가정에게는 소중한 생계 수단일지 몰라도 재벌가인 진씨 가문 한테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존재였다.부모님은 외동딸인 변슬기가 곁에 있기를 바라며 나중에는 사위를 맞이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진수혁은 진성 그룹의 황태자다. 그에겐 집안도 학벌도 모두 어울리는 배우자가 필요했고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떠나는 순간 진수혁과는 더 이상 인연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계속 머무르면 감정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 뻔했다.한참 후 변슬기는 낮은 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