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왜 안 그러고 싶겠어요! 지금 마음으로는 도아린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어요!”배지유는 울면서 곁에 있는 이불을 내리쳤고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납작해진 이불을 쳐다보았다.“저는 지금 생리현상도 누군가가 보살펴주지 않으면 스스로 못하는데 어떻게 복수를 할 수 있겠어요! 다 성대호 때문이에요. 쓰레기 같은 놈, 저를 돕지 못할망정 저를 이렇게까지 망가뜨려 놨어요!”“...”성대호가 문밖에서 듣고 있었다.그는 훔쳐 들을 생각이 없었지만, 배지유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담뱃불을 붙이려던 성대호는 부들부들 떨면서 담배를 부러뜨려 버렸다. 손보미는 배지유의 멀쩡한 다리를 다독였다. 그녀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목소리를 깔고 얘기했다.“남자는 네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나무가 아니라 네가 위로 올라가기 위한 사다리야. 사다리가 부실하다면 바꾸면 돼.”배지유는 점점 울음을 멈췄고 빨갛게 부은 눈에는 의아한 기색을 띠었다.손보미가 말했다.“나랑 네 오빠의 혼사는 강씨 가문에서 추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성사되지 않았어. 차라리 강씨 가문에 신경을 많이 써. 밖에 있는 저 쓸데없는 놈은 버리고.”배지유는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하지만 배지유는 또 생각에 잠겼다가 움츠러든 표정을 했다.“만약 제 다리가 아직 멀쩡하다면 반드시 강씨 가문 도련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지금... 그 사람은 아마 저를 보고 싶지도 않을 거예요.”“강씨 가문에는 남자가 또 있어.”손보미는 강홍련 모자와 강씨 가문의 관계를 얘기했고 배지유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안돼요! 제가 어떻게 도아린의 사생아 동생한테 좋은 일을 시키는 꼴을 봐요!”손보미는 몸을 숙여 그녀의 귓가에 작게 얘기를 했고 배지유는 분노하던 표정이 점차 사그라지더니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띠었다.잠시 후, 배지유는 이불을 움켜쥐고 사악한 눈빛을 했다.“보미 언니,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은 언니밖에 없어요!”“바보야, 나는 네 새언니야. 내가 너를 생각해주지 않으면
“지유야, 나는 너를 여동생처럼 생각하니 보살피는 건 당연한 일이야. 뭘 하고 싶으면 직접 말해도 돼. 민망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오빠는 괜찮다고 해도 내가 불편해!”배지유는 짜증 내며 얘기했다.“오빠가 나를 안아서 이리저리 옮기는데 내가 앞으로 어떻게 시집을 갈 수 있겠어!”성대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배지유는 손보미한테 나쁜 물이 들었다.“지유야, 내 말 좀 들어봐...”“안 들을래. 나 피곤해. 쉬고 싶어!”배지유는 그를 밀어냈다.“여기서 나한테 매달리지 말고 얼른 가서 성씨 가문을 다시 일으킬 생각이나 해. 만약 파산한다면 오빠는 빈털터리가 되잖아!”성대호의 눈빛에는 증오의 빛이 서렸다.그는 배지유를 위해 연성을 떠났고 가문에게 등을 돌렸다.결렬한 것은 집안의 일이기 때문에 성씨 가문은 대외적으로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하여 예전에 성씨 가문과 협력했던 사람들이 성대호의 체면을 봐주고 있었다.그러므로 성대호는 배지유를 보살피면서도 조금씩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만약 성씨 가문이 정말 파산한다면 그는 빈털터리가 될 것이고 배지유도 그를 외면할 것이다.“지유야, 걱정하지 마!”성대호는 힘을 주어 배지유의 손을 잡았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얘기했다.“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씨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 거야!”배지유는 마음속으로 무척 불쾌해했다.그때 오빠의 도움이 없었다면 성씨 가문은 절대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지금 오빠에게 버림받은 마당에 그는 무슨 수로 성씨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좋은 말로 무마했다.“그래. 얼른 가서 일으켜 세워. 오빠가 성과를 낸다면 아빠랑 오빠도 오빠를 다시 보게 될 거야!”배지유는 성대호와 함께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좋은 소리를 했다.성대호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그 길로 연성으로 돌아갔다....이튿날 아침, 안민아는 일부러 도아린의 앞에서 알짱거렸다.도아린은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 듯 조깅을 하고 뒷마당에서 넓은 곳을 찾아 운동했다.
안민아는 우물쭈물하며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오늘 반드시 도아린을 강씨 가문에 데리고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니면 일이 복잡해진다.방안에서 벨 소리가 울렸고 도아린은 책상으로 가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받았다.안민아도 따라 들어갔고 불안하게 손을 만지작거렸다. 무슨 이유로든 먼저 도아린을 데리고 나가야 했다.“그래요, 알겠어요.”도아린은 전화를 끊고 불안한 모습인 안민아에게 말했다.“강재민 씨가 돌아왔대.”안민아는 멍하니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기대와 환희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재민 씨가 우리를 초청했어요?”“나를 초청했어.”도아린은 소파에서 가방을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만약 네가 반드시 따라와야겠다면 나도 거절할 수는 없어.”안민아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도아린의 일로 강씨 가문에 갈 수 있다면 목적은 도달한 셈이었다.강씨 가문으로 가는 길에 도아린은 계속 문자를 보냈다.안민아는 도아린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아예 없었다. 그녀는 도아린이 강재민과 메시지를 나누는지 보고 싶었지만, 도아린의 핸드폰에는 사생활 보호 필름이 붙어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강재민은 사전에 집안의 가정부에게 당부했기에 진씨 가문의 차가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열렸다.차창 너머로 강재민이 가정부에게 무슨 얘기를 하는 게 보였다.가정부는 고개를 숙인 채 당황한 표정이었다.강재민은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손짓을 했고 가정부는 뒤돌아 자리를 떴다.그는 차로 걸어와서 도아린 쪽의 문을 열었다.“제가 데리러 갔어도 됐었는데요.”“귀찮게 뭐 하러요. 이따가 저도 볼일이 있어서 제 차를 갖고 오는 게 더 편해요.”도아린이 차에서 내린 뒤, 강재민은 차 문을 닫고 안내하는 손짓을 했다. 마치 강씨 가문에 온 손님은 도아린 한 명인 것처럼 행동했다.도아린은 안민아가 따라오기를 기다렸다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재민 씨, 안녕하세요.”안민아는 먼저 인사를 건넸고 그를 쳐다보는 눈빛에는 사모하는 마음이 가득했다.강재민은 예의상
강재희는 이 일이 도아린과 연관되었다고 믿지 않았다. 그녀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하지만 주주총회가 끝나고 강재희는 출처가 없는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바로 강태식이 공개적으로 아현에게 사과하라는 내용이었다.아버지는 명망이 높은 인물인데 어떻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할 수 있겠는가!그것도 도아린처럼 명성도 없는 사람에게 사과하게 된다면 훌륭한 제자들의 체면은 어떻게 되겠는가 말이다.강재희는 오해가 있을까 봐 강재민에게 도아린을 집으로 부르라고 해서 탐색해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도아린일 줄은 몰랐다.강재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가 한참이 지나 헛웃음을 터뜨렸다.“도아린 씨, 친구가 많으면 그만큼 가능성도 커지는 겁니다. 그렇게 몰아세울 필요는 없잖아요.”그녀의 시선은 안민아에게로 향했다.“양보하겠다고 하면 도유준한테 안민아 씨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도아린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누나, 도유준을 어떻게 아버지랑 비교하는 거야.”강재민은 주전자를 들어 강재희에게 물을 따랐다.“아니면 내가 사과의 뜻으로 장가를 갈게.”“강재민!”강재희가 소리쳤다.“재민 씨!”안민아가 소리쳤다.강재희는 안민아를 흘겨보았다. 여기는 안민아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다.“배씨 가문에 그 땅을 뺏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네가 나 몰래 땅을 손에 넣은 일에 대해서도 아직 너한테 책임을 묻지 않았어!”강재민은 소파에 기대앉아 몸을 도아린 쪽으로 기울며 느긋하게 말했다.“누나가 약속한 거지, 내가 한 게 아니야.”“너는 강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야?”“데릴사위일 수도 있지.”강재희는 이를 악물고 원수를 보듯 도아린을 노려보았다.이렇게 훌륭한 자신의 동생이 결혼을 한번 했던 여자의 데릴사위로 들어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도대체 자신이 미친 건지, 강재민이 미친 건지 모를 일이다. “재희 씨, 재민 씨 돌아오셨어요.”강홍련이 아들을 데리고 들어오면서 난리를 피우려던 강재희를 저지하게 되었다.강재
“도아린, 강씨 가문의 사람들이 말하는데 끼어들지 마!”강홍련은 화를 냈다. 당장 주머니에 들어올 돈이 날아 나서는 절대 안 된다.“네가 도정국을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가씨가 준 돈도 손을 대지 마!”강홍련은 당당하게 말했다.“나는 정국 씨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아들을 낳아줬고 십몇 년을 함께 살았기에 사실혼 사이야. 아가씨가 준 돈은 반드시 내가 관리해야 해!”도아린은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에 강홍련은 소름이 끼쳤다.그녀는 못마땅하게 도아린을 째려보고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강홍련을 쳐다보았다.“아가씨, 정국 씨는 도아린의 함정에 빠져 빚을 지게 된 거예요. 정국 씨에게 새로 시작할 기회를 준다면 반드시 아가씨의 은혜에 보답할 거예요!”강재희는 강홍련이 멍청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방금 자신이 도아린의 의견을 묻는 것을 못 봤다는 말인가? 강홍련은 강재희가 불쾌해하는 것이 도아린 때문인 줄 알고 더 의기양양해서 말했다.“도아린, 진씨 가문에서는 네가 허영에 눈이 먼 속물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그때가 돼서 진씨 가문에서 쫓겨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찾아올 생각은 하지 마!”강재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도아린을 보며 물었다.“합의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도아린은 찻잔을 들었다. 강재희는 한참을 기다려도 도아린이 대답하지 않자 불쾌함이 더 증가했다.체면을 봐주니까 더 허세를 부리고 있는 모양이다.“강씨 가문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는데 도씨 성을 가진 사람한테 물어서 뭐해?”강재민이 느긋하게 말했다.강재희는 강재민을 흘겨보고는 강홍련을 쳐다보았다.“당신과 도정국 씨가 사실혼 관계라면 그 사람의 채무도 두 사람의 공동채무가 되는 거죠. 당신과 도정국 씨가 함께 갚아요.”강홍련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아가씨, 방금 한 얘기는...”“제가 도아린 씨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끼어들지 마세요.”강홍련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었지만 강재희가 왜 도아린을 감
문으로 가정부들이 드나들면서 강씨 가문의 전체 사람들이 그들의 추태를 보게 되었고 앞으로 강씨 가문에는 그들의 지위가 사라지게 된 셈이다도아린이 아버지가 공개 사과를 하게 억지를 부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강홍련 같은 먼 친척 한 명쯤은 체면이 깎여도 상관없었다.강씨 가문의 뒤뜰에는 아카시아 꽃을 넓게 심었고 작은 꽃봉오리가 꽃을 피워 공기 속에는 꽃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안민아는 일부러 늦게 걸으면서 셀카를 몇 장 찍었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때 위치까지 설정했다.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도아린과 강재민은 멀리 가 있었다.도아린은 오늘 옅은 색의 몸에 딱 붙는 셔츠에 진한 색의 청바지를 입었고 가방을 가로 메고 있었다. 뒤에서 봤을 때 허리가 유독 가늘어 보였고 힙업이 돋보였다.안민아는 자신의 허리를 만져보았다. 그녀는 도아린보다 살집이 적었지만, 몸매가 좋지는 않았다.남자가 아닌 자신이 봐도 도아린의 몸매가 탐이 났다.강재민은 안민아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사촌 동생은 아직 마음을 접지 않았나 봐요.”도아린은 허리를 숙여 꽃을 하나 따고는 천천히 말했다.“일을 좀 깔끔하게 처리해요. 저를 방패막이로 삼지 말고 재희 씨를 오해하게 만들지도 말아요. 우리는 함께 할 수 없어요.”강재민은 그녀의 손에서 꽃을 건네받고는 중지로 그것을 으깼다.“이혼 숙려 기간이 곧 끝나가요. 아린 씨도 깔끔하게 처리했으면 좋겠어요.”“...”도아린은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강재민은 눈썹 뼈가 튀어나왔고 눈이 깊었는데 어머니의 유전이었다.입체적인 오관은 도도한 느낌을 주었고 도아린을 쳐다볼 때 더 단호한 눈빛이었다.“엠파이어 빌딩의 고객 자료는 배지유가 준 거죠.”도아린이 말했다.“재민 씨는 진작에 배건후를 노렸던 거예요. 일부러 저에게 관심이 많은 척하는 건 배건후의 화를 돋우는 수단일 뿐이죠. 건후 씨의 사업을 빼앗고 여자까지 빼앗아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다 충격을 주려는 거죠.”강재민은 한참 침묵하더니 갑자
“허튼소리 하지 마. 지금 나와 정국 씨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거야?”바닥에서 일어난 강홍련은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있던 탓에 다리가 저려 비틀거리다가 다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도씨 가문으로 들어온 후, 엄마는 몇 번이나 임신한 적 있었죠. 그러나 뱃속의 아이가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정국은 엄마한테 아이를 지우길 강요했었어요. 그러다가 엄마가 지현이를 임신하였고 도정국은 임산부한테 좋다는 이유로 대량의 보양식을 엄마한테 먹게 하였고 결국 뱃속의 아이가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많이 컸었죠.”“출산 당일,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에도 도정국은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거부하였고 결국 최적의 치료 시간을 놓친 탓에 엄마는 양수색전증으로 사망하게 되었어요.”도아린은 싸늘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 내뱉었다. 그녀의 말에 강홍련은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모든 것들을 당신이 도정국한테 시킨 거죠?”강홍련이 아니라면 남자인 도정국이 어찌 아이를 낳는 위험에 대해 이리 잘 알 수가 있었겠는가? 두 사람은 정은채를 죽이고 정은채의 재산을 가로챈 것도 모자라 정은채의 하나뿐인 아들마저 잘 키우려 하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지던 강홍련은 계단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혔고 순식간에 피가 흘러나왔다. 힘겹게 일어서는데 핏방울이 얼굴을 타고 눈 속으로 흘러 들어가 참기 힘들 정도로 따끔거렸다.이때, 도유준이 달려와 그녀를 부축하면서 도아린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무슨 증거가 있어 이러는 거야?”도아린의 차가운 시선이 강홍련에게서 도유준의 얼굴로 향했다. 그녀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검은 눈동자를 치켜들고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하더니. 지현의 다리가 어떻게 부러졌는지 지현이가 왜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도유준 넌 잘 알고 있잖아.”손에 힘이 풀리는 탓에 강홍련은 또 바닥에 주저앉았고 계단에 머리를 부딪히게 되었다. 오른쪽과 왼쪽 이마에 상처가 생겼고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강씨 가문의 남매는 긴 테이블의 양 끝에 앉았고 손보미는 배지유와 한쪽에, 도아린은 안민아와 한쪽에 앉았다. 그들은 식사를 하면서 가볍게 얘기를 주고받았고 분위기도 꽤 좋은 편이었다. 잠시 후, 하인이 들어와서 강재희의 귓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였다.강재희는 도아린을 힐끔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정신을 잃었으면 그냥 돌려보내요. 문 앞에서 얼쩡거리게 하지 말고.”“네.”한편, 하인에게서 그 일을 듣고도 손보미는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올 때 보니까 강홍련 모자가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데 무슨 일인가요?”“새언니한테 미운털이라도 박힌 거예요? 연성에서도 그러더니 해남까지 와서도 날뛰는 건 마찬가지네요.”얼핏 들으면 강홍련 모자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도아린을 비아냥거리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맞장구를 치는 와중에도 도아린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안민아를 향해 물었다.“새우 먹을래?”갑작스러운 물음에 안민아는 당황한 얼굴이었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는 다시 급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이블 위에 있는 새우는 한 사람당 한 마리씩이었고 그녀는 이미 한 마리 먹었다.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걸 언니가 눈치챈 걸까?“내 거 먹어.”도아린은 자신 앞에 있던 새우를 안민아에게 건네주었고 안민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때, 손보미가 팔꿈치로 배지유를 건드리며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도아린을 쳐다보았다.“몸매가 좋은 건 다 이유가 있다니까. 아린 씨 식단 조절 하나 봐?”“하긴 건후 씨가 식단 조절하니까 그렇지. 건후 씨 식단 같이 먹으면 몸매가 더 좋아질 거야.”손보미는 사람 가슴에 비수를 꽂은 일을 참 잘한다. 그녀의 빈정거림에도 도아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배건후의 얘기만 나오면 손보미는 몸이 근질근질하였다. 문득 생각이 떠오른 도아린이 입을 열었다.“어제 보미 씨가 산 물건들을 건후 씨가 안 받겠다고 하던데. 결국 어떻게 처리했어?”젓가락을 쥐고 있던 손보미의 손에 힘이
“그럼요.”도아린은 오늘 회의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해두었다.그녀는 한 비서에게 전화와 프로젝터를 연결하라고 지시했다. 곧 대형 스크린에 배건후가 장수현에게 문서를 전달하는 장면이 그대로 나타났다.변호사로서 의뢰인이 유언장 같은 문서를 작성할 때, 분명 녹화도 요구했을 것이었다.장수현에게 모든 것을 전달한 후, 배건후의 시선이 카메라로 향했다.그의 눈빛은 깊고 날카로웠으며 자세는 단정하고 위엄이 넘쳤다. 그저 영상 속 모습만으로도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압박감을 느꼈다.주현정은 주먹을 꽉 쥐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더 이상 아들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도아린은 제 전처입니다. 나는 도아린 씨가 모건 그룹을 잘 이끌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도아린 씨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저를 의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번 임명은 변경되지 않으니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사직서를 제출하세요!”일부 사람들은 도아린의 대표 승임을 저지하기 위해 회사를 협박하며 집단 사직서를 제출할 생각이었지만 배건후의 말을 들은 후, 그들은 도리어 잠시 망설였다.그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고 이 시점에서 사직을 한다면, 그것은 회사 명령에 불복하는 것이었다.가벼운 처벌로는 모건 그룹에서 영원히 일할 수 없을 수도 있고 심할 경우 업계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조차 어려워질 것이다!그 누구도 자신의 경력을 걸고 이런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었다.모두가 망설이면서도 자신들의 자리를 잃는 것에 불만을 가진 채, 도아린이 자신의 머리 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도아린은 세 개의 서류를 꺼내 민철홍, 신 대표, 그리고 다른 책임자에게 각각 전달했다.“모건 그룹은 배 대표 혼자만의 회사가 아닙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죠. 여러분은 제가 회사를 망치고 여러분이 고생해서 쌓아온 기반을 무너뜨릴까 봐 걱정하시는데,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그녀는 책상
민철홍은 종종걸음으로 뒤따르며 대답했다.“네, 다 준비됐습니다!”대문 앞에 있던 사람들은 자동으로 길을 터주며 주현정과 도아린이 대형 홀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회의실 안에서, 도아린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경영진을 살펴보다가 한 사람의 부재를 눈치챘다.‘우정윤!’그는 특별 보좌관으로 새로운 경영진과의 연계를 담당했어야 했고 사직했다고 해도 대행 총괄인 신 대표가 그를 쉽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게다가 해남에서 도아린이 장수현을 만났을 때도 우정윤은 나타나지 않았다.‘어디에 있는 걸까?’도아린은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써서 일북에게 전달했고 일북은 확인 후 바로 회의실을 나갔다.“모두 모였네요, 이제 발표하겠습니다.”주현정이 마이크를 켜고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알다시피, 배 대표가 교통사고를 당해 일정 기간 요양 중입니다.”“이 기간 동안 외부에서 떠도는 소문은 많지만 하나하나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어제 민 사장님께서 경영진을 대표해 배 대표를 찾아갔습니다.”테이블에 앉아 있는 임원들의 시선이 모두 민철홍에게 집중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의 표시를 보였다.“회사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배 대표는 본인이 보유한 모든 주식과 경영권을 도아린 씨에게 이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주현정이 도아린에게 손을 내밀자, 도아린은 모두가 잘 볼 수 있도록 일어섰다.회의실은 잠시 침묵이 흘렀고 모두가 상황을 이해한 후, 눈앞의 여자가 바로 배건후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임을 깨닫자 회의실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일부는 도아린이 이 직무를 맡을 자격이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고 또 다른 이들은 이 결정 자체에 의문을 품었다.“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권력을 넘겨준다고?”“아니면 강요당한 것일까? 혹시 뭔가 음모가 숨어 있는 게 아니야?”수군거리는 사람들 속에서도 도아린은 당황하지 않고 여유 있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그 모습을 본 주현정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더욱 확신했다.‘배지유가 도아린 절반만 닮았어도...’그녀
집에 돌아온 후, 도아린은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한 뒤 피곤함에 몸을 맡기며 잠에 들었다.꿈속에서 그녀는 사고가 나던 날로 돌아갔다. 구급차에 누워 있는 자신과, 두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싸며 귀에 대고 속삭이는 배건후의 모습이 보였다.하지만 배건후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고 그녀는 배건후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눈을 뜰 수 없었다.갑자기 도아린은 비명처럼 낮게 소리치며 꿈에서 깨어났다.그때 옆 방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일북은 그녀의 안전을 위해 가장 가까운 방에 있었지만 방 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악몽에서 깨어난 도아린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쾅!번개가 치고 그 뒤로 낮게 울리는 천둥소리가 들렸다.도아린은 발코니로 가서 창문을 닫으려다 갑자기 아래 전봇대 근처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남자는 검은 코트를 입고 야윈 체격을 감췄으며 고개를 숙인 채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에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그는 깊게 한 모금 들이킨 후,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담배꽁초를 꺼내 꾹 눌러 끄고는 다시 걸어갔다.쾅!다시 번개가 치자 그 검은 그림자는 밤의 어둠 속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도아린은 창문을 확 열고 머리를 내밀었지만 그 남자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그는 약간 다리를 절뚝거리는 듯 보였고 크고 굵은 빗방울이 코트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남자는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괜찮으세요?”일북이 소리를 듣고 방으로 다가왔다.“혹시 돌아오는 길에, 집 아래에서 사람 본 적 있어?”도아린이 급히 물었다.일북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예, 나이 든 남자가 있었어요. 전화하면서 사투리 쓰고 있었어요.”‘나이든 남자?’배건후는 원래 연성 출신이라 가끔 그 지역 특유의 억양을 쓸 뿐 사투리는 쓰지 않았다.도아린의 눈빛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아무 일도 아니야, 아마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 계속 누군가가 감시하는 느낌이 들어서.”일북은 방으로 돌아갔다가 이내 다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도아린은 머릿속에서 그 마지막 말을 계속 반복하며 마치 차가운 바다 깊이 빠져든 듯한 무력감을 느꼈다.‘건후 씨가 죽었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중에 나한테 해줄 얘기가 많다고 했잖아. 어떻게 그 약속을 어길 수 있어!’“아린아, 도아린!”주현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도아린을 몇 번이나 불렀지만 반응이 없자 그녀의 손을 잡았다.“건후 씨가 죽을 리 없어요.”도아린은 중얼거리듯 말했다.“그럴 리 없어요... 어떻게 죽을 수 있죠? 약속을 지키지 않을 사람이 아닌데, 나한테 할 얘기가 아직 많다고 했잖아요!”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감정이 격해져 주현정의 어깨를 잡고 힘껏 흔들었다.“절 속이는 거죠? 건후 씨는 살아 있어요! 혹시 얼굴을 많이 다쳐서 못 나온 건가요? 아니면 불구가 돼서? 아니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건가요? 건후 씨가 죽을 리 없잖아요!”“아린아...흑흑...”두 여자는 서로 부둥켜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도아린은 가슴이 답답해지며 마치 무언가 꽉 막힌 듯 괴로웠다. 갑자기 그녀는 주현정을 밀쳐내고 돌아서서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급히 온 탓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녀는 헛구역질만 하며 숨이 가빠졌다.주현정은 급히 생수를 건넸지만 그마저도 마신 뒤 토해냈다.주현정은 도아린의 등을 토닥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배건후와 도아린은 결혼 이후 다른 부부들처럼 알콩달콩한 결혼 생활을 보내지 못했고, 결국 이렇게 되자 그녀는 아들이 도아린을 소홀히 대해온 것이 마음이 아팠다.도아린이 아들을 위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현정은 위로를 받았지만 도아린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아린아, 건후는 헛되이 죽지 않을 거야! 나는 반드시 그놈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도아린은 온몸에 힘이 빠져 겨우 일어섰다.“어머님, 할 말이 있어요.”그녀는 눈물을 닦고 감정을 추스르며 배건후가 자신에게 남긴 두 가지 서류를 꺼내 들었다.서류를 확인한 주현정은 아들이 이런 계
“대호 오빠! 내 발... 발이 부러진 것 같아...”“입 닥쳐!”성대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꾸짖었다.“멍청한 것!”그가 다시 속도를 올리자 차 밑으로 목발이 들어가며 뒷바퀴가 갑자기 튕겨 올라갔다.“악!”배지유의 종아리가 완전히 부러졌다.차 문이 열린 채로 도로를 질주하던 차는 바로 교통경찰의 눈에 띄었다. 두 대의 경찰 오토바이가 곧바로 추격하며 외쳤다.“앞차, 멈추세요! 0731차량 소유자, 즉시 멈추세요!”백미러로 잠시 상황을 살피던 성대호는 핸들을 꽉 쥔 채 교차로를 지나면서 급히 왼쪽으로 핸들을 꺾었다.배지유는 심한 통증에 의식이 흐려져 갔지만 본능적으로 의자에 매달려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차는 급하게 방향을 틀었고 관성에 의해 결국 차 밖으로 떨어졌다.“끼익.”뒤에서 달리던 차는 도로에 사람이 떨어지자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뒤따라오던 차들은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고 추돌했다. 결국 앞차는 큰 충격을 받아 앞으로 밀렸고 배지유 다리 위로 덮쳐왔다.“아악!”성대호는 여전히 미친 듯이 도망쳤고 다음 교차로를 향하던 중 경찰차와 경호원들에 의해 마지막 도망길도 차단당했다.“차에서 내리세요! 당신을 위험 운전 혐의로 체포하겠습니다!”휴게실 안,소식을 들은 주현정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도아린에게도 상황을 전했다.도아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성대호는 자신이 받은 증거가 배건후가 일부러 넘긴 것임을 알게 된 뒤 숨었어요. 건후 씨는 이미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어머님께는 아무 얘기도 안 하던가요?”주현정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배석준이랑 이혼한 후, 건후는 나와 일부러 거리를 두었어. 내가 그와 만난 횟수는 널 만나는 것보다 적었어! 건후도 참... 무슨 일이 있으면 가족들에게 말해서 상의하지...”도아린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가족?’‘배지유처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족은 오히려 재앙을 불러오는 존재일 뿐이지.’‘
민철홍은 무표정한 얼굴로 배지유를 한 번 쳐다본 후, 다른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다들 돌아가서 자신의 자리 지키세요! 이전에 맡았던 프로젝트는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고 잘 되면 배 대표님께서 보상이 있을 겁니다. 다만 제자리를 못 지키고 딴 궁리를 한다면 짐 싸서 나가야 할 거예요!”말을 마치고 그는 주현정에게 인사를 한 뒤 자신의 사람들과 함께 떠났다.“민 사장님!”배지유가 크게 외쳤지만 그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 말없이 눈치를 봤다.‘민 사장 말 들으니 큰 문제가 없나 보네.’‘아마 얼굴의 상처가 심해서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가 봐.’‘지금은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겠네. 나중에 책임을 물으면 어려워질 테니까.’곧, 병원 복도에는 배지유만 남았다.그녀도 더는 제 편이 없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버티지 않고 돌아가려 했다.“배지유를 지금 당장 집에 데려가!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외출하지 못하게 해!”주현정이 싸늘한 어조로 명령했다.“네! 알겠습니다!”한 경호원이 휠체어를 밀기 위해 나섰다.배지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저항했다.“집안에 감금하는 건 불법이야!”“이게 다 널 위해서야. 더는 네가 그놈들이랑 손잡고 회사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고 네 오빠의 목숨을 노리게 할 수는 없어! 너 정말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내고 싶어?”“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 왜 도아린 말을 믿고 내 말은 안 믿는 거예요? 내가 친딸이잖아요!”배지유가 아무리 저항하고 발버둥 쳐도 경호원은 휠체어를 붙잡고 밖으로 밀고 나갔다.배지유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에만 가만히 앉아 배건후의 처벌을 기다릴 수 없었다.그렇다고 또 성대호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면 그는 또 갖은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힐 테였다.하지만 지금은 성대호만이 그녀를 데리고 여기를 뜰 수 있었고 모욕당하는 것과 감옥에 가는 것 중에서 그래도 전자가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엘리베이터는 계속 내려가다 7층에 도달한 후 많은 환자들
주현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다시 분노에 차 소리 질렀다.“병실 밖에서 소란 피우지 말라고 했잖아요!”간호진이 곧바로 달려오고 주현정이 민철홍을 보며 말했다.“민 사장님은 나랑 안으로 들어가요!”“알겠습니다!”민철홍은 그녀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배지유도 틈을 타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가자고 재촉하며 말했다.“이건 위급한 상황이에요!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제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을 거예요!”그녀는 휠체어를 밀며 병실 안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도아린이 문 앞에서 막았다.“도아린! 너는 도대체 뭐냐! 왜 우리 집안일에 자꾸 끼어들어!”“배지유, 네가 왜 회사 임원들을 여기로 불렀는지 그 꿍꿍이를 모를 것 같아?”도아린이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며 배지유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너는 성대호 그 사람과 손잡고 건후 씨를 모함하고 모욕했어, 대체 뇌물을 얼마를 받은 거야?”배지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도아린이 시끄러운 임원들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여러분, 주 대표님의 지시에 따르고 회사를 지키지는 못할망정, 배지유처럼 직책도 없는 사람이 선동하는 대로 이렇게 우르르 몰려오신 건 정말로 회사 생각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배지유처럼 뇌물을 받고 이러시는 건가요?”“함부로 말하지 마! 우리는 배 대표님이 걱정돼서 온 거야!”한 노인이 불만을 표하며 반박했다.“여기에 있는 임원분들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배지유는 자기 어머니의 약을 바꿔치기한 패륜 자예요. 게다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제 아버지를 유혹하라고 시켜서 자기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파탄 냈어요. 이런 몰상식한 사람에게 선동당한 여러분도 똑같이 천벌 받을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많은 사람들이 도아린의 말에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들 중 몇 명은 배석준이 정보를 캐내기 위해 보낸 사람들이었다.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배석준은 지금 전 대표의 신분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고 다시 회사의 권력을 쥐게 되면 지
“어떻게 된 거예요?”도아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주현정을 바라봤고 주현정은 입을 가린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병실 안에는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각종 의료 장비가 가득했지만 정작 병상은 텅 비어 있었다.“건후 씨는 어디 있죠?”도아린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주현정의 팔을 단단히 붙잡으며 물었다.“제발 말해 주세요. 건후 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건후가, 건후가...”그 순간, 경호원의 전화가 주현정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녀는 급히 눈물을 닦고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말하세요.”“아가씨가 회사의 몇몇 임원분들을 데리고 와서는 배 대표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곧 나갈게요.”전화를 끊은 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일단 밖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 사무실에서 이야기하자.”도아린이 병상을 바라보았다.“여기까지 왔다면, 완전히 단념하게 만들어야죠.”30분 후.주현정과 도아린이 병실 문을 나섰다.“배 대표님 상태가 어떤지 정확한 설명을 해 주세요!”“추천하신 임시 대표가 능력이 나쁘진 않지만 결국 우리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배 대표님께서 만약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면 우리 쪽에서 적절한 대표를 선출하는 게 맞습니다!”“엄마! 이사님들도 이렇게 다 오셨는데,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오빠를 만나게 하면서, 왜 정작 가족인 저희는 못 보게 하는 거예요?”배지유가 휠체어를 조종하며 앞으로 나섰다.주현정은 딸을 싸늘하게 노려보다 곧바로 무리의 중심에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민 사장님, 제가 여러분을 못 만나게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배 대표는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무더기로 병원에 몰려와 소란을 피우는 건 환자를 위하는 행동인가요? 아니면 그의 치료를 방해하려는 건가요?”주현정의 목소리에 카리스마가 실려 있고 민철홍은 주변의 이사들을 돌아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배지유를 한 번 힐끔 쳐다본 후, 입
도아린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배건후가 자신의 명의로 보유한 회사의 모든 지분을 그녀에게 이전한 것이다!이건 마치... 유언을 남기고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도아린은 애써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눈물은 서류 위로 떨어졌다.도아린이 서둘러 닦아내며 물었다.“교통사고 이후로, 장 변호사님도 배 대표를 한 번도 못 만났죠?”“네. 이건 배 대표님이 미리 준비해 둔 거였어요. 저에게 절대 먼저 도아린 씨를 찾지 말라고 했습니다. 도아린 씨가 직접 찾아오면 그때 서류를 넘기라고 했어요.”도아린이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눈물을 훔쳤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배건후가 미리 위험을 감지해서 이런 거라면 분명 대응책도 마련해 두었을 것이다.그녀에게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도아린은 배건후가 맡긴 책임을 짊어져야 했고 악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놔둘 수 없었다!그녀는 빠르게 서류 절차를 마무리한 후, 차에 올라타 청룡에 메시지를 보냈다.[누군가 모건 그룹을 노리고 있어요. 그들이 순순히 내가 회사를 접수하도록 두지 않을 거예요. LY의 인맥을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청룡이 움직이자, 서대은도 곧 소식을 접하고 도아린에게 연락을 해왔다.[보스! 나에게 다시 한번 만회할 기회를 줘! 이번엔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아버님은.][이미 다른 곳으로 옮겼어.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우리 아버지를 이용해 날 협박할 수 없을 거야!][네가 하는 것 봐서.]진씨 가문의 사람들은 배건후가 미리 준비해 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그가 혼자 결정해 도아린에게 모든 것을 넘긴 것이었지만 도아린은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우리가 도울 일은?”“지금은 필요 없어요!”도아린이 고개를 저었다.“필요할 때가 오면 주저 없이 도움을 요청할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다음 날, 도아린은 곧장 연성으로 돌아가 주현정을 만났다.주현정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꼭 끌어안았고 도아린의 어깨가 눈물로 흠뻑 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