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유준은 곁에 있던 여자들을 뿌리치고 비틀거리며 그녀에게로 걸어가 안민아의 턱을 잡으려 했다. 안민아는 빠르게 몸을 피했다.“내 몸에 손대지 마!”“건방져!”도유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의 몸에는 담배 냄새와 술 냄새가 섞여 있어 아주 역겨웠다.“저번에는 너를 만족시키지 못했으니 오늘 만족시켜 줄게.”“이거 놔!”안민아는 싫은 표정을 지었지만 벗어나지 못했다.도유준은 사악한 웃음을 짓고 곁에 있던 여자 두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우리 함께 놀면 재밌을 거야.”“이 쓰레기 같은 놈!”안민아는 그의 발을 세게 밟았다. 그 고통에 도유준은 뒤로 물러섰고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쓰레기면 뭐 어찌할 건데, 그래도 나한테 시집와야 하잖아!”안민아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가방으로 그를 세게 내리쳤고 두 명의 여자는 상황이 심상치 않자 바로 도망갔다.도유준은 취해서 처음에는 봐주었지만, 자신이 돈을 써서 데리고 온 여자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바로 정색했다.그는 안민아의 손을 거칠게 끌어당겨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이렇게 떼를 쓰는 걸 제일 싫어해. 앞으로 나한테 시집오면 내 말을 들어야 해. 오늘 한번 제대로 기강을 잡아줄게!”이렇게 말하고 그는 거칠게 입을 맞추었다. 지금 공개적인 장소에 있는 건 그에게 상관없었다.안민아는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그녀를 동정하는 남자 한 명이 멀리 가서야 경찰에 신고했다.이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도유준은 뒤통수에 고통이 느껴졌고 만져보니 피가 났다.“당장 그 애를 놔!”변슬기는 소리를 지르며 벽돌을 집어 들었다.“당장 놔!”안민아는 빠르게 빠져나와 변슬기의 곁으로 달려갔다.“바로 저 자식이야! 저 자식이 술을 마시고 미친 짓을 한 거야!”변슬기는 안민아를 자신의 뒤로 감췄고 벽돌을 든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도 두려웠다.“아주 잘 왔어. 쟤가 내 여자들을 도망가게 했으니 네가 대신하러 와!”도유준은 앞으로 덮쳤고 변슬기는 빠르
더 갈 곳이 없을 때 배건후는 강재희를 나무 위로 올려보냈고 정신이 희미한 와중에 그녀는 심한 피비린내를 맡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원에 누워있었다.배건후가 어떻게 세 마리의 미친개를 물러나게 했는지 아무도 몰랐다.도아린은 배건후를 잘 알았다. 그의 몸에는 개한테 물린 상처가 없었다. 물린 상처는커녕 긁힌 흉터도 없었다.“건후 씨가 거짓말을 했다고 의심하는 거야?”서대은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강씨 가문이 은혜를 갚지 못하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어. 진실이 드러날까 봐 그랬던 거야!”“...”도아린은 다른 생각이었다.배건후의 가정조건으로 봤을 때는 구조에 참여할 필요도 없었고 다른 사람의 공로를 가로챌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이런 헛된 것이 필요 없었다.“보스, LY의 고위인사가 초대장을 보냈어. 지금의 신분을 드러낼 거야, 아니면 아현의 이름으로 참가할 거야?”서대은이 천천히 말했다.“지난 몇 년간 네가 은둔하고 있는 동안 업계가 안정되기는 했어. 하지만 센 사람이 없으니 별것 아닌 사람들도 날뛰게 되는 거지.”서대은은 그녀가 다시 복귀하기를 바랐다. LY의 고위인사는 네 명이었고 서대은은 그녀의 직속 담당이었다. 두 명은 ‘라윤주'가 될 생각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중립이었다.“일단 아현의 이름으로 참가할게.”도아린이 담담하게 말했다.“의식에 참여해서 상황을 보고 다시 얘기하자.”“알겠어. 그렇게 얘기할게.”저녁 식사를 할 때 진옥경은 한가지 얘기를 꺼냈다.“강씨 가문에서 LY의 고위인사 중 친한 사람이 있나 봐. 혼사를 승낙하니 준휘 씨가 골머리를 앓던 주문들이 다 해결됐어. 나도 LY에 관해 들은 적이 있는데 그들은 관계망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고 해. 엄청 대단하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뭘 한 적은 없었다고 하네.”진범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새 회사에서 하는 홍보일 수 있으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민아가 고소하고 싶다면 강씨 가문에서 어떤 수단을 쓰든 두렵지 않아!”진경수는 새우껍질을 까서 도아린의 그릇
안민아는 새우 꼬리를 깨물던 중 갑자기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갑자기 왜 우는 거야?” 진옥경은 깜짝 놀라 다급히 그녀를 달랬다. 안민아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억울한 듯 식탁보를 꽉 움켜쥐었다. “숙모, 제가 스카이에 가는 게 싫으신 거죠? 제가 언니랑 재민 씨 사이를 방해할까 봐요.” 윤명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사실 그녀는 도아린과 강재민을 이어줄 생각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도아린은 아직 이혼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라 그런 의도를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거니.” “제가 수혁 오빠 무섭다고 했잖아요. 그런데도 저보고 거기 가라면서요...” 안민아는 눈물을 훔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재민 씨랑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 잘 알아요. 그저 인턴 자리만이라도 얻고 싶었을 뿐이지. 다시 그분을 넘볼 마음은 없어요.” 그녀가 눈물을 닦으려고 손을 들자 손목에 매달린 짙은 초록색 팔찌가 살짝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 팔찌의 의미를 몰랐지만 도아린은 분명 알고 있었다. 안민아가 강씨 가문에서 그 일을 당한 것은 이 팔찌를 계기로 강재민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이 팔찌가 화근이었다. 도아린은 티슈를 한 장 뽑아 그녀에게 건넸다. “미안. 난 네가 재민 씨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어디서 인턴을 하든 상관없겠네.” 안민아는 멈칫했다. ‘도아린은 왜 내 말을 반박하지 않는 걸까.’ ‘설마 그녀도 자신이 도유준에게 더럽혀져서 강재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는 걸까?’ 안민아는 티슈를 받아들곤 오히려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진경수는 원래 껍질을 벗긴 새우를 안민아에게 주려 했으나 그녀가 숨이 넘어갈 듯 흐느끼는 것을 보고 손을 돌려 도아린에게 새우를 건넸다. “너 도대체 강씨 가문에서 어떻게 나온 거야?” “...” 안민아는 울음을 더 크게 터트렸다. 그녀의 울음소리에 식탁에 앉
“도아린! 너는 강재민이 너에게 마음이 있다는 거 알고 있었으면서 왜 민아의 선물을 받게 만든 거야? 민아가 그런 모욕을 당하는 걸 보면서 너는 기뻤지?”“옥경 씨, 아린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그럼 어떤 사람이란 말이에요? 어떤 좋은 사람이라도 되면 왜 부씨 가문에서는 순위가 떨어지게 압박하고 또 이혼까지 했겠어요?” 윤명희는 손을 들어 치려 했지만 진범준이 재빨리 붙잡아 막았다. “내 딸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이 평가할 자격 없어요! 도대체 화해하러 온 건가요. 아니면 내 딸 괴롭히러 온 건가요?” 윤명희는 냉정하게 하인들에게 명령했다. “손님을 내보내!” 진옥경은 분노의 눈빛으로 진범준을 쳐다보며 변명하려는 안민아를 강하게 붙잡고 밖으로 나갔다.진범준은 그들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윤명희가 그를 불러세웠다. “당신도 배석준처럼 분별력이 없고 외부 사람들과 세은이를 괴롭힌다면 저도 더 이상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민아가 그런 일을 겪으면서 기분이 안 좋고 엉뚱한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건데 어린애한테 뭘 그렇게 따지려고 해!”“그 일이 아린의 탓이 아니란 걸 몰라요? 내가 못 알아들은 줄 알아요?” 윤명희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경수 그 질문에 왜 대답하지 않았겠어요? 그건 뭔가 숨기고 있다는 뜻이겠죠. 정말로 스스로 도유준과 떠난 걸지도 몰라요!”“명희야!” 진범진도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가려 했고 의자까지 넘어졌다.밖으로 나가자마자 집 안에서 도자기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범진은 여동생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생각 끝에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식기들이 깨진 채 온 바닥에 흩어졌고 윤명희는 그것을 계속 부수려고 했지만 진범진이 그녀를 제지했다.“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나한테 화난 건 알겠지만 그러다 당신 다쳐.”진범진은 눈짓으로 진경수에게 정리하라고 신호를 주고 윤명희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도아린은 입을 닦고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나가서 지내는 게 좋겠어요.”“네가 어디 가든 나는 같이
진경수는 눈빛으로 도아린의 의중을 묻는 듯 바라보았다. 도아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민아의 눈에 순간적인 의기양양함이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은 예전에 바둑을 두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안민아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먼저 도아린에게 강재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언니 진짜 재민 씨 안 좋아해요?” 안민아가 떠보듯 물었다. “그 사람이 언니에게 고백하면 받아줄 거예요?” 도아린은 길에서 풀 몇 가닥을 뽑아 들었다. 풀잎은 그녀의 손에서 매끄럽게 휘돌더니 순식간에 메뚜기 모양새를 갖췄다. 그녀는 눈을 살짝 내리깔며 무심하게 말했다. “할 말 있으면 돌려 말하지 말고 그냥 얘기해.” 안민아는 그녀의 손끝에서 능숙하게 움직이는 풀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잠시 고민한 뒤 입을 열었다. “정말 언니가 재민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저 한 번쯤은 다시 그 사람에게 다가가 보고 싶어요.” 도아린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안민아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저는 사실 예전부터 재민 씨가 너무 좋았어요. 결혼까지 상상하며 살 정도로. 언니도 알잖아요. 도유준이 나를 모욕하기는 했지만 정말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이제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공개적으로 그를 좋아해 보려고요.” 도아린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안민아의 눈빛이 약간 흔들리더니 다시 다그쳤다. “언니, 저를 도와줄 거죠?” “나는 못 도와줘.” 도아린은 단호히 말했다. “재민 씨가 너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벌써 그쪽에서 먼저 행동했겠지.” “한눈에 반한다는 건 다 거짓말이야!” 안민아는 갑자기 도아린의 손을 꼭 붙잡았다. 도아린의 손은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마치 마법이 깃든 것처럼 아무리 단순한 장식품이나 팔찌라도 심지어 몇 가닥 풀마저도 그녀의 손에서는 아름다워 보였다. 안민아는 내심 부러웠다. 그녀에게도 그런 손이 있었다면 아마 강재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
진범진은 두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안민아는 살짝 걸음을 늦추며 뒤따라가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분노가 치밀고 있었다. 도아린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안민아를 바라보았다. 안민아가 미처 감추지 못한 표정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웃으며 말했다. “민아야, 설마 이 일로 고모에게 날 고자질하려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있나요.” 안민아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얘가 말 안 해도 내가 이모한테 얘기할 거다!”“민아는 아직 어리니 결혼 문제는 서두를 수 없다. 잘못된 선택을 하면 평생 후회하는 거야.” 진범진은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기류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단호하게 말했다. 도아린은 자연스럽게 진범진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니는 괜찮아지셨나요? 아니면 내일 제가 어머니 모시고 쇼핑이라도 다녀올까요?” “네 엄마가 진짜로 나한테 화난 건 아닐 거다.” 진명진은 블랙카드를 꺼내 도아린에게 건네며 말했다. “네 엄마는 쇼핑할 땐 맨날 네 것만 사려고 하잖아. 이번엔 네가 엄마 선물도 몇 개 골라드려라. 아주 좋아할 거다.” “고마워요, 아버지!” 도아린은 환한 얼굴로 카드를 받아서 들었다. 안민아는 그 광경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속으로 이를 꽉 물었다. 평소에는 자신이 늘 윤명희와 함께 쇼핑하러 다녔고 그 틈에 자신 것도 적잖이 챙기곤 했는데 이제 그 기회가 몽땅 도아린에게 넘어간 것이다. “언니, 나도 같이 갈게. 숙모랑 언니는 마음껏 쇼핑하고 내가 짐 들어줄게.” “고마워, 민아야. 그럼 잘 부탁할게.” 도아린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음 날. 윤명희는 두 사람을 데리고 쇼핑을 나섰다. 도아린은 진심으로 윤명희에게 어울리는 물건을 사주고 싶었고 윤명희 역시 딸에게 사주고 싶어 했다. 셋은 쇼핑몰을 돌며 주얼리 매장까지 들어서게 되었다. “숙모, 잠깐 쉬었다 가요.” 안민아는 쇼핑백 두 개를 들고 힘겹게 말하며 근처에 보이는
그 룸메이트 이야기가 나오자 변슬기는 한숨을 쉬며 웃었다. 4인실에서 배지유는 명품과 고급 음식을 이용해 다른 두 룸메이트를 매수해 함께 그녀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녀는 남의 뒷말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간단히 한 마디만 덧붙였다. “쉬는 시간에는 거의 알바만 하고 있어서 괜찮아. 시비 거는 거보다는 피하는 게 낫잖아.” “언니, 그 룸메이트 정말 별로였어요!” 안민아는 처음 봤을 때의 상황을 그대로 말했다. “연성 말투에 세상 오만하게 구는 데 정말 싫었어요!” 말을 마친 후 윤명희는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안민아는 문득 도아린이 바로 연성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걸 떠올리고 급히 사과했다. “미안해요! 언니. 연성 사람들한테 딴 뜻은 없었어요. 그냥 그 룸메이트가 너무 싫었을 뿐이에요.” 도아린은 음식을 시키고 핸드폰을 내려놓은 뒤 손을 휘저으며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성 사람들이 자주 그러듯 해남 사람들도 자만하는 편이었다. 특히 그 지역 출신인 사람들이 대체로 그런 경향이 컸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다는 아니다. 서버가 게살 찐빵과 두 가지 반찬을 가져왔고 변슬기는 종종 도아린을 힐끔거렸다. 안민아가 그 모습을 보고 눈치챘다. “왜 그래?” 그녀는 테이블 아래서 배슬기의 다리를 가볍게 쳤다. 변슬기는 조금 어색한 듯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언니 혹시 스타 대회에 참가한 적 있어?” “맞아.” “그럼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네.” 변슬기는 바로 숭배하는 표정을 지으며 반짝이는 눈으로 도아린에게 물었다. “혹시 아현 선생님 맞으세요?” 도아린은 게살 찐빵을 윤명희에게 하나 집어줬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말랑하고 마치 국물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들은 도아린은 온화하게 웃었다. “와! 실제로 뵈니까 화면 속보다 훨씬 더 예쁘세요!” 변슬기는 드디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매니저에게 가서 자기 돈으로 두
“고마워! 민아야. 그리고... 아현 선생님! 아니. 도 선생님!” 변슬기는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한 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도아린과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한 뒤 서둘러 밥을 먹고 학교로 돌아가 작품 초안을 완성하기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기숙사에 도착한 순간 그녀를 맞이한 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형 조각들이었다. “누가 내 물건 건드렸어?” “네가 창가에 놔둔 게 잘못이지.” 진아령은 눈을 크게 뜨고 째리며 말했다. “바람이 불어 창문이 열리고 그래서 다 날아갔나 보지.” 진아령과 서한별은 배지유의 따까리였다. 배지유와 어울리면 유명 브랜드 화장품 샘플도 얻을 수 있고 근사한 식사에도 함께 따라갈 수 있었다. 모형이 눈에 거슬렸던 배지유는 일부러 둘에게 부추겨서 망가뜨리게 했다. “기숙사가 너 혼자 쓰는 방인 줄 알아? 방 안에 본드 냄새 진동해서 숨도 못 쉬겠어!” 서한별은 비웃으며 말했다. “할 거면 다른 데 가서 해. 우리 몸에 해로우니까!” 배지유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녀는 호박씨를 까먹으며 비웃는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가난하면서도 자기가 잘난 줄 착각하는 타입을 가장 싫어했다. 변슬기는 흩어진 모형 조각들을 모아 정리한 후 말없이 방을 나섰다. 대회용으로 제작된 모형이라 그녀가 사용한 본드와 재료는 전부 친환경 제품이었다. 냄새가 날 리 없었다. 기숙사에서 빠져나온 변슬기는 도서관으로 가는 지름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언덕을 뛰어 내려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대로 한 남자의 등에 부딪히고 말았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의 모형은 또 한 번 바닥으로 흩어졌고 이번에는 들고 있던 본드가 남자의 소매에 쏟아져 버렸다. 변슬기는 당황해 손수건을 꺼내 급히 닦아내려 했지만 본드는 닦아낼 수가 없었다. “옷이 더러워졌어요. 제가 새 걸로 배상해 드릴게요!” “괜찮아요.” 진수혁은 냉정히 거절했다. 해남 대학교의 도서관은 진씨 가문에서
민철홍은 무표정한 얼굴로 배지유를 한 번 쳐다본 후, 다른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다들 돌아가서 자신의 자리 지키세요! 이전에 맡았던 프로젝트는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고 잘 되면 배 대표님께서 보상이 있을 겁니다. 다만 제자리를 못 지키고 딴 궁리를 한다면 짐 싸서 나가야 할 거예요!”말을 마치고 그는 주현정에게 인사를 한 뒤 자신의 사람들과 함께 떠났다.“민 사장님!”배지유가 크게 외쳤지만 그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 말없이 눈치를 봤다.‘민 사장 말 들으니 큰 문제가 없나 보네.’‘아마 얼굴의 상처가 심해서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가 봐.’‘지금은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겠네. 나중에 책임을 물으면 어려워질 테니까.’곧, 병원 복도에는 배지유만 남았다.그녀도 더는 제 편이 없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버티지 않고 돌아가려 했다.“배지유를 지금 당장 집에 데려가!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외출하지 못하게 해!”주현정이 싸늘한 어조로 명령했다.“네! 알겠습니다!”한 경호원이 휠체어를 밀기 위해 나섰다.배지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저항했다.“집안에 감금하는 건 불법이야!”“이게 다 널 위해서야. 더는 네가 그놈들이랑 손잡고 회사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고 네 오빠의 목숨을 노리게 할 수는 없어! 너 정말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내고 싶어?”“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 왜 도아린 말을 믿고 내 말은 안 믿는 거예요? 내가 친딸이잖아요!”배지유가 아무리 저항하고 발버둥 쳐도 경호원은 휠체어를 붙잡고 밖으로 밀고 나갔다.배지유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에만 가만히 앉아 배건후의 처벌을 기다릴 수 없었다.그렇다고 또 성대호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면 그는 또 갖은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힐 테였다.하지만 지금은 성대호만이 그녀를 데리고 여기를 뜰 수 있었고 모욕당하는 것과 감옥에 가는 것 중에서 그래도 전자가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엘리베이터는 계속 내려가다 7층에 도달한 후 많은 환자들
주현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다시 분노에 차 소리 질렀다.“병실 밖에서 소란 피우지 말라고 했잖아요!”간호진이 곧바로 달려오고 주현정이 민철홍을 보며 말했다.“민 사장님은 나랑 안으로 들어가요!”“알겠습니다!”민철홍은 그녀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배지유도 틈을 타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가자고 재촉하며 말했다.“이건 위급한 상황이에요!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제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을 거예요!”그녀는 휠체어를 밀며 병실 안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도아린이 문 앞에서 막았다.“도아린! 너는 도대체 뭐냐! 왜 우리 집안일에 자꾸 끼어들어!”“배지유, 네가 왜 회사 임원들을 여기로 불렀는지 그 꿍꿍이를 모를 것 같아?”도아린이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며 배지유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너는 성대호 그 사람과 손잡고 건후 씨를 모함하고 모욕했어, 대체 뇌물을 얼마를 받은 거야?”배지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도아린이 시끄러운 임원들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여러분, 주 대표님의 지시에 따르고 회사를 지키지는 못할망정, 배지유처럼 직책도 없는 사람이 선동하는 대로 이렇게 우르르 몰려오신 건 정말로 회사 생각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배지유처럼 뇌물을 받고 이러시는 건가요?”“함부로 말하지 마! 우리는 배 대표님이 걱정돼서 온 거야!”한 노인이 불만을 표하며 반박했다.“여기에 있는 임원분들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배지유는 자기 어머니의 약을 바꿔치기한 패륜 자예요. 게다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제 아버지를 유혹하라고 시켜서 자기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파탄 냈어요. 이런 몰상식한 사람에게 선동당한 여러분도 똑같이 천벌 받을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많은 사람들이 도아린의 말에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들 중 몇 명은 배석준이 정보를 캐내기 위해 보낸 사람들이었다.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배석준은 지금 전 대표의 신분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고 다시 회사의 권력을 쥐게 되면 지
“어떻게 된 거예요?”도아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주현정을 바라봤고 주현정은 입을 가린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병실 안에는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각종 의료 장비가 가득했지만 정작 병상은 텅 비어 있었다.“건후 씨는 어디 있죠?”도아린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주현정의 팔을 단단히 붙잡으며 물었다.“제발 말해 주세요. 건후 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건후가, 건후가...”그 순간, 경호원의 전화가 주현정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녀는 급히 눈물을 닦고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말하세요.”“아가씨가 회사의 몇몇 임원분들을 데리고 와서는 배 대표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곧 나갈게요.”전화를 끊은 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일단 밖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 사무실에서 이야기하자.”도아린이 병상을 바라보았다.“여기까지 왔다면, 완전히 단념하게 만들어야죠.”30분 후.주현정과 도아린이 병실 문을 나섰다.“배 대표님 상태가 어떤지 정확한 설명을 해 주세요!”“추천하신 임시 대표가 능력이 나쁘진 않지만 결국 우리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배 대표님께서 만약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면 우리 쪽에서 적절한 대표를 선출하는 게 맞습니다!”“엄마! 이사님들도 이렇게 다 오셨는데,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오빠를 만나게 하면서, 왜 정작 가족인 저희는 못 보게 하는 거예요?”배지유가 휠체어를 조종하며 앞으로 나섰다.주현정은 딸을 싸늘하게 노려보다 곧바로 무리의 중심에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민 사장님, 제가 여러분을 못 만나게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배 대표는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무더기로 병원에 몰려와 소란을 피우는 건 환자를 위하는 행동인가요? 아니면 그의 치료를 방해하려는 건가요?”주현정의 목소리에 카리스마가 실려 있고 민철홍은 주변의 이사들을 돌아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배지유를 한 번 힐끔 쳐다본 후, 입
도아린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배건후가 자신의 명의로 보유한 회사의 모든 지분을 그녀에게 이전한 것이다!이건 마치... 유언을 남기고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도아린은 애써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눈물은 서류 위로 떨어졌다.도아린이 서둘러 닦아내며 물었다.“교통사고 이후로, 장 변호사님도 배 대표를 한 번도 못 만났죠?”“네. 이건 배 대표님이 미리 준비해 둔 거였어요. 저에게 절대 먼저 도아린 씨를 찾지 말라고 했습니다. 도아린 씨가 직접 찾아오면 그때 서류를 넘기라고 했어요.”도아린이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눈물을 훔쳤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배건후가 미리 위험을 감지해서 이런 거라면 분명 대응책도 마련해 두었을 것이다.그녀에게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도아린은 배건후가 맡긴 책임을 짊어져야 했고 악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놔둘 수 없었다!그녀는 빠르게 서류 절차를 마무리한 후, 차에 올라타 청룡에 메시지를 보냈다.[누군가 모건 그룹을 노리고 있어요. 그들이 순순히 내가 회사를 접수하도록 두지 않을 거예요. LY의 인맥을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청룡이 움직이자, 서대은도 곧 소식을 접하고 도아린에게 연락을 해왔다.[보스! 나에게 다시 한번 만회할 기회를 줘! 이번엔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아버님은.][이미 다른 곳으로 옮겼어.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우리 아버지를 이용해 날 협박할 수 없을 거야!][네가 하는 것 봐서.]진씨 가문의 사람들은 배건후가 미리 준비해 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그가 혼자 결정해 도아린에게 모든 것을 넘긴 것이었지만 도아린은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우리가 도울 일은?”“지금은 필요 없어요!”도아린이 고개를 저었다.“필요할 때가 오면 주저 없이 도움을 요청할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다음 날, 도아린은 곧장 연성으로 돌아가 주현정을 만났다.주현정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꼭 끌어안았고 도아린의 어깨가 눈물로 흠뻑 젖
“말씀하신 일은 제가 결정할 수 없을 것 같군요.”장수현은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비록 배건후의 사건에서 승소할 자신은 있었지만 남궁유민의 업계 명성은 너무나 컸다.게다가 님궁유민은 그가 오랫동안 존경해 온 인물이었기에 본능적으로 약간의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남궁유민은 책상 위의 유자차를 흘끗 쳐다본 뒤, 다시 입을 열었다.“모건 그룹의 공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확보한 새로운 증거로 볼 때 배 대표님이 주범은 아니지만 일부 불법적인 행위에 가담한 것은 사실입니다.”남궁유민이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다소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만약 배 대표님이 순순히 협조한다면 위에서는 적절히 조정해 줄 생각도 있어요. 하지만 계속해서 회피한다면...”장수현이 눈살을 찌푸렸다.그의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말속에 숨은 의미는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경찰과 검찰이 고위급 인사를 조사하고 있으며 배건후가 이번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보였다. 배건후가 그를 고발하기만 하면 그 자신의 혐의는 쉽게 벗어날 수 있지만 끝까지 회피한다면 그를 ‘책임을 뒤집어쓸 희생양'으로 만들겠다는 뜻이었다.장수현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현재 우리가 변호하는 사건은 배 대표님의 불법적인 회사 자금 횡령 혐의입니다. 이 사건이 완벽하게 해결된 후에야, 다음 사건을 논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남궁유민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그건 장 변호사님께서 이미 새로운 증거를 갖고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그 증거가 배건후가 나서서 본인이 직접 입증해야만 하는 거라 그러시는 건가요?”도아린은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남궁유민은 다른 곳에서 배건후의 정보를 알아낼 수 없자 장수현을 떠보러 온 것이다.끼익, 문이 열리며 도아린이 직접 나왔다.“남궁유민 씨!”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피고인의 변호사를 사적으로 접촉하는 건 절차상 불법 아닌가요?”도아린을 보자마자 남궁유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내 그의 표정에는 분노
표절 논란이 다시 불거진 건 분명히 도아린과 관련이 있었고 아버지가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상 도아린을 달래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강재민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하지만 막 1층에 도착하자 머리 위에서 강재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아린이 사고를 당했을 때 넌 바로 달려가지 않았어. 이미 기회를 놓친 거야. 지금 표절 논란이 다시 불거진 참인데,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 주얼리 매장에 심각한 타격을 줄 거라고.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생각이야?”강재민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는 순간적으로 욕지거리가 나갔지만 결국 방향을 바꿔 다시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강재희를 지나칠 때, 차갑게 말했다.“누나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를 줄 알아? 내 사람한테 그럴 생각은 접어.”강재희가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정말 여자를 모르네!’한편, 도아린이 장수현을 찾아갔을 때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드디어 절 찾아왔군요!”두 사람이 악수할 때 심지어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그가 유자차를 한 잔 내밀었지만 도아린은 차를 바라보며 손을 대지 않았다.“배 대표님이 알려주신 거예요. 아린 씨가 오면 유자차를 타 드리라고 하셨죠.”장수현은 배건후의 말을 떠올리며 덧붙였다.“따뜻한 물로 우려내고 레몬즙 두 방울 추가했어요. 한 번 맛보세요.”도아린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머그컵을 집어 들었다.작은 컵이었지만 그녀는 손이 떨려 쉽게 들지 못했고 장수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손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나요?”“그런게 아니라...”말을 마친 후 도아린이 유자차를 한 모금 마셨다. 분명 그녀가 좋아하는 맛이었지만 갑자기 코끝이 시큰했다.“배 대표의 사건은요?”“그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우리가 가진 증거만으로도 배 대표님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어요.”장수현은 서랍에서 두 개의 서류봉투를 꺼냈다.“이 두 개의 문서는 도아린 씨의 협조가 필요합니다.”“저요?”도아린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찻잔
다음 날, 배지유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사정을 해도 경호원은 그녀를 병실에 들여보내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의사를 이용할 방법을 생각했다.“아이고!”의사가 병실에서 나오자 그녀는 일부러 다리를 움켜잡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제 다리가 너무 아파요! 다시 감염된 거 아닐까요? 유 쌤,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유승호가 다가가려 하자 경호원이 막아섰다.“저희 대표님 돌보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가씨는 저희가 병원에 모셔가겠습니다.”“유 쌤! 제발요! 오래 걸리지 않아요!”배지유가 손을 뻗어 유승호의 가운을 붙잡으려 했지만 유승호는 경호원과 함께 그녀를 지나쳐 가버렸고 더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이 말했다.“아가씨, 저희가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배지유는 악에 받쳐 어금니를 꽉 물었다.“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경호원은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바로 주현정에게 보고했다.주현정이 비웃으며 말했다.“이제 그놈들도 슬슬 초조해지는군. 조급하면 조급할수록 약점을 드러내기 마련이지.”“어디 나갈 거야?”진경수가 단정하게 차려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도아린을 보고 급히 다가갔다.“지우 씨의 촬영이 거의 끝나가요. 가서 봐야겠어요.”“일남이 하고 일북이 보호하고 있으니 별일 없을 거야. 그러니 너도...”진경수가 그녀의 가방을 잡으며 말렸지만 도아린이 피했다.“오빠, 이렇게 날 집에 가둬놓는 건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들에게 숨 돌릴 기회를 주는 거야.”“가둬놓다니...”진경수가 눈을 피하며 머뭇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인간성이 없어! 위험한 일은 우리가 할 테니, 너는 그냥 부모님 곁에서 안전하게 있어 주면 안 되겠어?”“오빠, 솔직히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진씨 가문의 사업에는 영향이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오빠나 큰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게 더 심각한 문제예요.”도아린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배 대표가 사
주현정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무표정한 얼굴로 딸의 연기를 지켜보았다.배지유는 몇 번 울먹이다가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모든 책임을 남궁유민에게 떠넘기려고 했고 사실 그가 자신을 강요한 것이었기에 정당하다고 생각했다.“오빠가 남궁 변호사한테 내 교통사고 소송을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 변호사가, 글쎄, 나한테 오히려 오빠를 모함하라고 했어요.”“나는 오빠가 얼마나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인지 잘 알거든요. 오빠가 절대 회사 자금을 횡령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겉으로는 남궁유민의 협박에 따르는 척했지만, 사실은 오빠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길 바랐어요! 오빠를 해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주현정은 기가 막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딸이 이렇게 교활하고 악독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나쁜 행동을 이렇게 고상한 이유로 정당화하려는 모습에 실망감이 몰려왔다.배지유는 눈물이 나지 않자 점점 더 통곡하며 눈물 연기를 했지만 애쓴 보람도 없이 눈에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내가 처음에 약을 바꾼 것도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지 않게 하려고 그랬던 거예요. 엄마 목숨을 위협하려던 게 아니라 엄마가 좀 더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다고요!”“게다가 내가 왜 오빠를 해치려 하겠어요? 난 미끼로 자처해서 남궁유민 그 배신자를 까발리려고 그랬던 거예요!”“엄마! 잘 생각해 보세요. 만약 두 분이 이혼하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계속 같이 살았을 거고 아빠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예요. 나도 남궁유민에게 협박당하지 않았을 거고, 오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회사 일을 아빠가 처리할 수 있었을 거란 말이에요! 내 말이 틀렸어요?”주현정은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딸에게 짜증이 나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남궁유민이 널 협박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무슨 수로 널 협박할 수 있겠어?”“그게...”배지유는 급하게 머리를 굴리며 고개를 숙였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픈 줄 몰랐다.잠시 고민하던 배지유는 사실대로 말
“누구...?”“너무 팬이에요! 저 ‘화성의 별빛’이에요!”“아, 안녕하세요!”도지현은 그녀를 바로 기억해 냈다.이 팬은 그가 방송을 시작한 날부터 채팅방에 있었고 팬 단톡방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이었다.도지현의 스태프가 그녀에게 팬카페 관리자가 되어달라고 제안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며 대신, 팬으로 남아 계속 응원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예의상 가볍게 악수를 나눴고 전미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저기... 부탁드릴 게 있는데, 저분한테 잘 좀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제가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보험사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요. 수리비는 제가 전액 부담할게요.”도지현은 강재민을 바라보며 말했다.“형...”강재민은 낮게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휙 저으며 말했다.“그냥 가세요. 괜찮습니다. 너도 얼른 차 타.”“정말 고맙습니다!”전미나는 연신 인사를 하며 빠르게 자신의 차로 돌아갔고 강재민은 명함을 휙 차 안으로 던지고 시동을 걸었다.명함이 미끄러져 내려가 도지현의 발밑에 떨어졌다.“전미나?”‘티파니 주얼리의 수석 디자이너... 거긴 진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보석 브랜드잖아?’도지현은 누나가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를 떠올리며 강재민에게 물었다.“형, 이 명함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저 팬분인데, 팬카페 관리자로 모시고 싶어서요.”“가져가.”강재민은 애초에 전미나에게 차 수리비를 받을 생각이 없었고 단지 티파니 주얼리의 꼬투리를 잡고 싶었을 뿐이였다.그는 도지현을 집 앞에 내려준 후, 바로 차를 수리하러 갔다.도지현은 도아린의 부탁대로 그날 사고 이후 모건 그룹의 동향과 배건후의 근황을 검색하기 시작했다.그러나 결과는 뜻밖이었다.그날 사고 이후, 주현정은 모건 그룹의 고위 부사장을 지명해 그룹 운영을 대리하게 했다.한편, 배건후가 입원한 사립 병원은 철저한 경비 속에 통제되고 있었고 경호원들이 출입을 관리하고 있어 의료진 외에는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었다.뿐만 아니라,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