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제 동생 곁에는 이서 씨밖에 없어요. 그쪽으로 가시고 싶으시면 제가 배씨 가문에 있을 때처럼 똑같은 연봉을 드릴게요.”“잠시는 그럴 생각이 없네요. 일단 좀 쉬고 싶습니다.”“좋아요. 그쪽으로 가시고 싶은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저한테 연락하세요.”“아린 씨, 고마워요. 항상 건강 잘 챙기세요.”전화를 끊은 유민정이 다시 배건후에게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창밖에서 푸른 불빛이 반짝였다.유민정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의료진들은 주민정을 들고 내렸고 집사의 도움으로 객실로 들어갔다.주현정을 객실에 눕히고 난 의료진들이 떠나고 나서 유민정은 도아린에게서 전화가 왔었던 것을 배건후에게 얘기했다.얘기의 끝에 그녀가 말했다.“도련님의 분부대로 제가 에이트 맨션에 있다는 것을 사모님한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배건후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다가 다시 담배를 내렸다.“제 어머니 잘 부탁드립니다. 입고 먹고 하는 것들 모두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면 안 됩니다.”“제가 반드시 사모님을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배건후는 뒤돌아 서재로 갔고 집사가 유민정의 곁으로 가서 물었다.“발은 좀 어때?”“괜찮아. 살짝 삐끗했어.”유민정은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그 손보...”집사는 바로 쉿 하는 손짓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유민정은 의아한 것들이 많았다. 분명 도련님은 손보미를 좋아하지 않는데 왜 곁에 두는 것이며 분명 손보미가 계략이 많은 여자라는 것을 알면서 뒤처리를 해주는 것인지 말이다.하지만 집사가 묻지 말라고 하니 더 묻지 못했다.배건후는 서재로 돌아가서 남궁유민에게 전화를 했다. 배건후가 걸었을 때는 통화 중이었다가 30분 정도 지나서 다시 전화가 왔다.“대표님, 방금 통화하고 있었습니다.”“상담 좀 할게.”배건후는 배지유가 저지른 일들을 다 얘기했고 징벌을 어느 정도 받을지 확인했다.“다른 사람의 몸에 대한 상해의 고의가 있으면 3년 이하의 징역을 받게 되고 피해자에 대한 상해 정도가 엄중하면 3
강재민이 계속 고집을 부리자 도아린은 그와 함께 고급 민박으로 갔다.교통이 편리하고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화려했다.환경은 당연히 호텔보다 엄청 좋았고 비용도 아주 비쌀 것이다.“지금은 민박도 이렇게 고급지네요.”도아린은 베란다에서 밤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조금 쌀쌀한 바람이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고 어둠 속에서 별처럼 반짝거리는 불빛들은 그녀가 이십 년을 넘어 살아온 이 도시에 생소하고도 신기한 느낌을 불어넣었다.“마음에 들어요?”강재민은 샴페인을 그녀의 손에 건넸다.도아린은 샴페인을 받아들고 살짝 입술을 적셨다.“이곳의 땅은 거래를 개시하자마자 다 팔렸어요.”연성에는 드러나지 않은 부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상류사회 사람들이 집중된 맨션에 있지 않고 이렇게 적당한 단층집을 선호했다.여기는 오래된 시 중심이라고 할 수 있어 비즈니스도 학교도 다 편리했다.소유정은 홍보대사를 한 적이 있어 그녀도 여기에 와본 적이 있었다. 그때 위치가 좋은 곳은 이미 다 팔렸었다.소문에 의하면 중고 주택의 가격은 두 개의 큰 단층집을 살 수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사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마음에 든다면 저한테 방법이 있어요.”강재민은 와인을 한 모금 마셨고 입술이 빨갛게 물들었다.그는 엄마의 유럽 혈통을 이어받아 새하얀 피부와 입체적인 오관을 가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 얼굴은 반짝이는 눈과 빨간 입술이 희미하게 보여 도아린은 뱀파이어를 생각하게 되었다.강재민이 불쑥 고개를 돌려 도아린을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다른 사람의 얼굴을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은 실례가 되는 일이었다.“대놓고 봐도 돼요.”이 말에 도아린은 입에 머금었던 샴페인을 뱉었다. 강재민은 웃으며 휴지를 건네줬고 도아린은 입을 막고 말했다.“저 그런 멘트에 알레르기가 있어요.”“...”강재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럼 늑대 같은 강아지 좋아해요, 아니면 귀여운 강아지 좋아해요?”“왜 강아지예요?”“강아지는 충성하기 때문이죠.”도아린이 실소를 터뜨
도아린은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지만, 코를 훌쩍였다. 강재민은 바로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도아린에게 걸쳐주었다.“감기 걸리겠어요.”도아린은 자신의 생리 주기가 곧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마워요.”그녀는 또 뜨거운 밀크티를 한 모금 마셨고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배건후의 차가운 눈빛은 사람의 피를 얼려버릴 듯했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도아린, 너 아직 솔로 아니잖아. 다른 남자와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마.”“대표님의 약혼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강재민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대표님은 재혼할 수 있지만 아린 씨는 친구를 사귀는 것도 안된다는 말씀입니까?”“약혼은 그쪽 누나가 계획한 거죠.”배건후가 반박했다.“저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강재민이 비아냥거렸다.“거절하지도 않고 부인하지도 않고 대표님이 이렇게 쓰레기일 줄은 몰랐네요.”그는 도아린을 쳐다보았다.“제가 만약 아린 씨였다면 진작에 이혼했을 겁니다.”“저도 이혼하고 싶죠. 하지만 배상액이 너무 큰 걸 어떡합니까.”“이혼하는데도 배상을 해야 해요? 이건 완전 갑질이잖아요.”“제 동생의 의료비, 제 양아버지의 가게 임대료...”도아린은 손가락으로 깐깐하게 세어보았다.두 사람은 배건후가 앞에 없는 듯 얘기를 나누었고 배건후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강재민은 쯧쯧거리면서 배건후에 대한 경멸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 도아린이 가정을 위한 희생에 고마워하기는커녕 채무로 그녀를 잡아두다니. 도아린은 고개를 숙여 밀크티를 마시려 했고 머리카락이 따라서 앞으로 드리웠다.강재민이 그녀를 위해 머리카락을 넘겨주려는데 손을 들자마자 잡혔다.배건후는 테이블 곁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손대지 마.”도아린은 배건후의 손을 떼어놓으며 말했다.“건후 씨, 그만 좀 해요.”또 이 한마디였다. 배건후가 늘 도아린에게 하던 말이었다.지금 도아린이 자신에게 하는 것을 들으니 그는 무척 귀에 거슬렸다.“도아린, 내가 이혼 절차를 진행하러 가지 않으면 이혼
“아!”성대호는 손이 밟혔다.도아린이 발걸음을 멈추었지만, 강재민이 들어가라고 재촉했다.도아린의 모습이 사라지자 강재민은 더 힘을 주어 밟았다.“아...”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배건후가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당장 그 사람 놔요!”“이 사람이 아린 씨의 손가락 하나를 망가뜨렸으니 저는 이 사람의 손 하나를 망가뜨리는 것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그 정도는 돼야죠...”강재민은 발을 들었고 담담한 표정은 마치 그저 개미 한 마리를 밟아 죽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았다.성대호는 얼른 자신의 손을 움켜잡고 허겁지겁 배건후의 곁으로 기어갔다.“도아린이 고소를 하게 하면 안 돼! 지유가 안에서 괴롭힘을 당해서 심한 트라우마가 있어!”“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계속 나쁜 짓을 저질러?”강재민이 차갑게 웃었다.“뭐든 다 눈 감아 주는 바보 같은 남자와 나쁜 짓을 도와서 하는 오빠라니, 아린 씨가 배씨 가문에 있을 때 당신들한테 이런 식으로 괴롭힘을 당했겠네.”“누가 괴롭힌다고 그래?”성대호는 아파서 덜덜 떨었지만 그래도 대꾸했다.“도아린이 쓰고 입고 먹는 것 모두가 건후 꺼야. 액세서리도 옷도 모두 다 최고급이야! 배씨 가문에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해주는 게 바로 도아린에게 어머님과 아가씨를 잘 모시기를 바라기 때문이야.”강재민은 짜증 난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고 배건후를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에는 자신이 이겼다는 의미가 다분했다.이런 것들 때문에라도 도아린은 절대 배건후와 잘될 수 없다.배건후의 날카로운 눈빛이 강재민과 마주쳤지만 뜬금없는 얘기를 물었다.“도아린의 손을 대호가 다치게 했다는 걸 그쪽이 어떻게 알아요.”도아린은 먼저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니 강재민이 알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곁에 자신의 사람을 두었다는 의미였다.그가 엠파이어 빌딩의 고객을 빼앗아 간 것이 생각난 배건후는 대담한 추측을 했다.강재민은 마치 바보를 보듯 배건후를 한번 보더니 뒤돌아 계단을 올랐다.배건후가 따라갔다.“그 고객들의 자료는 도대체
배석준이 멈칫했다.“무슨 말이야?”“저는 엄마가 아빠랑 이혼하는 것이 싫어요... 두 분 사이가 그렇게 좋았는데, 제 기억 속에서는 두 분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배지유는 울면서 해명했다.“도아린이 오빠랑 이혼하고 배씨 가문과 철저하게 남이 되면 우리 집은 예전처럼 화목하게 지낼 수 있어요. 엄마한테 준 약은 절대 문제가 없어요. 우울증 환자들은 다 그 약을 먹는대요. 만약 독성이 있는 약이라면 판매가 되지 않겠죠! 그리고 저는 엄마한테 오래 먹일 생각이 아니었어요. 제가 산 약의 수량을 보세요. 이번 달 말까지입니다. 그때가 되면 오빠는 보미 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고 도아린은 우리를 더는 방해하지 않게 되죠! 저는 정말 엄마를 해칠 생각이 없었어요. 아빠, 저를 믿어주세요!”배석준은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딸이 그렇게까지 망나니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었다. 지금 들어보니 딸은 그저 예전처럼 화목한 가족을 원했던 것이다.이 모든 것은 다 도아린 때문이다!“울지 마...”배석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호가 나한테 전화가 왔어. 너를 데리고 다른 도시로 가서 당분간 숨어지내겠다고. 그렇게 할래?”배지유의 시선에는 불만이 비쳤다. 그녀는 도아린이 절대 이대로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온갖 방법을 다 생각해서 자신을 다시 감옥에 넣으려고 할 것이다.그 안에서 지냈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아빠 말대로 할게요...”“그래.”배석준은 몸을 일으켜서 일부러 밖에 있는 경호원들한테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말했다.“제대로 반성하도록 해. 만약 네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너도 살 생각하지 마!”배지유는 아빠의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배석준이 돌아간 후 철문은 다시 닫혔다. 배지유는 식사 시간에 맞춰 허리띠를 빼내서 난간에 목을 매달았다.질식하는 느낌에 그녀는 두 손에 힘이 빠졌지만, 끈을 벗으려고 해도 안 됐고 눈은 거대한 압력에 밖으로 튀어 나갈 것만 같았다...무척 고통스러웠다.배
“도아린, 여기는 네가 난리를 피울 수 있는 곳이 아니야.”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 배건후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너는 내 아내야. 공개적으로 나와 경쟁을 한다면 매체에서 아무 기사나 낼 거야.”도아린은 쌀쌀한 눈빛으로 그를 훑어보았다.“건후 씨가 공개적으로 내연녀를 데리고 입찰에 참여하는 것은 매체에서 아무 기사나 낼까 봐 걱정되지 않아요?”“내가 손보미를 데리고 온 것은 일부러 강씨 가문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야!”“내가 여기 온 이유는 그 땅을 손에 넣기 위함이에요.”도아린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갔다.공개적인 장소에서 배건후는 도아린이 무대로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자리로 돌아간 배건후는 무서운 분위기를 풍겼다.손보미는 그를 건드리지 못하고 친한 기자에게 가만히 메시지를 보냈다.도아린은 무대에 올라서서 서류를 꺼내자마자 기자가 질문했다.“도아린 씨, 배건후 씨의 아내잖습니까. 배 대표님이 방금 강연을 했으니 그만 내려가시죠.”앞에 있던 기자들이 가벼운 웃음소리를 흘렸다. 오늘의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회사들은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강연을 하는 사람은 대표가 아니면 부대표였다.도아린은 직무가 없었고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녀가 배건후의 후광을 빌리려 한다고 생각했다.도아린은 마이크를 살짝 내리고 태연하게 말했다.“저랑 배건후 씨는 이미 이혼한 사이입니다.”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질문하는 기자를 쳐다보았다.“5일 전, 배건후 씨는 각종 매체를 초대해서 약혼식을 진행하였는데 그쪽은 요청받지 못했나 보죠?”기자는 민망해졌다. 그녀는 연예부 기자인데 뜬소문을 쓰는 데 아주 능했다.비즈니스 뉴스를 취재하러 온 이유는 손보미가 그녀에게 두 사람의 사진을 찍어서 홍보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도아린이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물으니 바로 직원들이 와서 그녀의 신분을 확인했고 자격이 없는 이 기자를 밖으로 내보냈다.도아린은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곤란한 상황이 있었다고 해서 전혀 동요가 없었다.그녀는 대
강씨 가문이 배씨 가문에 대한 지지는 금전적인 거래가 없었고 솔직히 그저 구두 계약이었다.강재민은 강씨 가문의 후계자인 데다가 외가 쪽 세력까지 뒷받침을 해주니 당연히 실력이 대단했다.모두 결정하기 어려워할 때 직원이 경찰을 몇 명 데리고 왔다.“배석준 씨, 저희와 함께 가시죠.”누구도 배석준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흠이 갈 일이 있다면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사람들의 마음은 순간적으로 스카이 회사로 기울었다.배석준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도아린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퍼부었다.“네가 감히 나를 함정에 빠뜨리다니, 너는 진작에 이 상황을 준비했지? 잘해 준 은혜도 모르고!”경찰은 빠르게 난리를 피우는 배석준을 제압했다. 그는 경찰에 끌려나가는 순간까지도 욕을 멈추지 않았다.경찰이 배건후에게 배지유가 어디 있는지 물었지만, 배건후는 모른다고 했다.도아린의 눈빛은 차게 식었고 배건후를 보면서 경멸하는 웃음을 지었다.이 집안은 답이 없다.도아린 일행이 차게 오르려는 데 배건후가 따라왔다.“도아린! 엄마가 깼어. 너랑 할 얘기가 있대.”도아린은 잠깐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건네받았고 주현정의 허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아린아, 네가 또 나를 살렸구나.”“제가 해야 할 일이에요.”“며칠 후 엄마가 너 보러 해남으로 갈게. 너를 보고 할 말이 있어.”“알겠어요. 제가 모시러 나갈게요.”“전화를 건후한테 바꿔줘.”도아린은 배건후에게 핸드폰을 주고 뒤돌아 차에 올랐다.배건후는 멀어지는 도아린의 차량을 보면서 의아하게 물었다.“엄마, 도아린을 설득하지 않았어요?”“설득했어. 너희들 망나니 세 명이 아린이 한 명을 괴롭혔는데 나 혼자서는 설득이 안 돼.”“...”배건후는 핸드폰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핏줄이 튀어나왔다.땅을 손에 넣지 못했으니 주주총회에서는 바로 회의를 진행했다. 나이 든 주주들은 한 무리의 오리처럼 회의실을 뒤집어 놓았고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
도아린은 임진희가 그녀의 아현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녀는 ‘별들이 떠받들이는 달’의 디자이너가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뭐라고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임진희가 또 얘기했다.“전에 나는 음악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대박을 터트리길 기도했어. 그렇게 되면 사장님의 첫사랑이 그 치마를 보게 될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에는 그 사람이 봤을까 봐 걱정돼...”그녀는 의미심장하게 도아린을 쳐다보았다.임진희는 주현정의 친한 친구였지만 그녀는 도아린과 강재민이 잘되기를 바랐다.도아린은 임진희가 왜 강재민을 사장이라고 부르는지 생각했고 소유정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지난번에 찍은 영상을 너한테 준다는 게 깜빡했어.”산 중턱 캠핑장의 영상은 안민아가 그때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고 강홍련이 곁에서 영상을 찍는 것은 미리 계획된 일이라는 게 확실했다.해남에서는 안민아가 전화를 받고 방을 나섰다.“아빠,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요.”진옥경이 얼른 일어서서 말했다.“같이 가자.”“괜찮아요. 가서 친구 좀 만나려고요.”안민아가 설명했다.“금방 해남에 도착했다고 해서 가서 좀 둘러보려고요.”안준휘는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서 바람 좀 쐬고 와.”안민아가 집을 나서자 안준휘는 바로 표정이 변하였다.“애한테 충분한 공간을 줘. 따라간다면 불쾌했던 일을 또 떠올리게 될 거야.”“걱정돼서 그러죠. 신발은 왜 신는 거예요?”안준휘는 외투를 걸치고 아내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몰래 따라가자.”안민아는 친구를 만나러 간 게 맞았다.변슬기는 부모님이 외지에서 일했고 대학 시절 안민아와 같은 기숙사였다.안민아는 졸업하고 삼촌의 회사로 들어가려고 했고 변슬기는 해남의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우리가 드디어 또 같은 도시에서 살게 되었어!”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있었다. 안민아가 길을 잘 알기에 변슬기를 데리고 학교로 가서 등록하였다.안준희 부부는 딸이 학교로 들어가는
누군가는 사진 한 장을 들고 나타나 말했다.“도아린 곁에 있는 꽃미남이 사실 강재민이래.”과거, 두 사람이 함께 음악 페스티벌에 참석했던 적도 있다는 이야기였다.그 말에 또 다른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소문은 꼬리를 물고 번져갔다.그러던 어느 날.도아린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한 신인 배우가 몰래 찍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 올라왔다.사진 속엔, 두 사람의 머리가 맞닿은 채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그 한 장의 사진은 결국 배건후의 정체를 증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고 그는 다시 한번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이번에도 역시 온갖 의심과 루머 그리고 비난이 따라붙었다.하지만 며칠 후, 연성 경찰청에서 공식 공지문이 게시되었다.바로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기 밀매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 공지였다.공지문에는 고성만, 손보미, 자상훈 등이 인신매매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다 결국 장기 밀매까지 손을 뻗친 사실이 요약되어 있었고 그 수사에 협조한 익명의 자원자들에게 감사의 뜻도 함께 담겨 있었다.그 단 하나의 공지로, 여론은 완전히 반전됐다.정월 대보름, 해남엔 보기 드문 큰 눈이 내리고 있었다.도로는 차들로 가득 막혀 10분이 지나도 백 미터를 채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천천히 가. 우린 여기서 내려서 좀 걸을게.”도아린은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일북에게 말했다.그리고 배건후와 함께 차에서 내려 레스토랑까지 걷기로 했다.배건후는 우산을 펼쳐 도아린의 머리 위에 씌웠다.도아린은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은 외투 주머니 속에 꼭 쥐어져 있었다.“춥지 않아?”그가 우산을 더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안 추워요.”도아린은 입김을 내뿜으며 활짝 웃었다.발밑에서는 바삭거리는 눈이 소리를 냈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래전 기억이 스쳐 갔다.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시절.어느 회사 대표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눈밭에서 몇 시간을 버텼던 그날, 발이 얼어 서 있지도 못하고 결국 쪼그려 앉았던 그 순간
그 여자는 바로 그날 수상 레스토랑에서 진경수에게 벨트를 빌렸던 그 여자였다.하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짧은 티셔츠와 청 반바지 대신 격식을 갖춘 정장 느낌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얘, 내 여동생. 그리고 이 사람은... 우리 제부.”진경수는 ‘제부’라는 단어에서 말끝을 흐렸다.여동생이 혼인신고까지 해놓고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그건 진수혁도 마찬가지였다.“큰형님, 작은 형님.”배건후가 정중히 일어나 인사를 건넸고 도아린은 해맑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오빠들, 호칭 바꿨으니까 용돈 좀 주셔야죠?”“혼인신고도 우리 몰래 해놓고, 무슨 용돈이야?”진경수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배건후를 노려보다가 결국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도아린에게 내밀었다.“다시 내 동생 울리기만 해봐. 그땐 진짜 널 갈기갈기 찢어서 물고기 밥으로 줄 거야. 명심해.”“고마워요, 둘째 오빠!”도아린은 싱긋 웃으며 봉투를 받아들었고 이번엔 진수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진수혁 역시 말없이 봉투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도아린은 봉투를 슬쩍 비춰보며 속으로 웃었다.‘안 봐도 이건 수표네.’그녀는 배건후를 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더니 말했다.“이건 제가 따로 보관할게요.”“감사합니다, 우리 아내님.”“...”진씨 형제들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쯧쯧, 벌써 아내한테 잡혀 사네...’하지만 상대가 도아린이라면, 뭐… 그럴 만했다.“근데, 여기 두 분은?”도아린은 일부러 모르는 척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진수혁은 변슬기를 소파에 앉히며 담담히 말했다.“예전 동료야.”변슬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진경수가 옆에 있던 여자를 품 안으로 확 끌어당기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부모님 말씀대로 아린이 일도 정리됐겠다... 이젠 내 차례지. 그래서 나도 결혼했어.”도아린과 배건후는 동시에 진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둘째 오빠를 좀 본받으세요. 뭐 하세요, 진짜.’“작은 올
“...”집사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건후는 당연하다는 듯 도아린의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고 도아린은 그런 그를 집사에게 소개했다.“이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 서재랑 아버지, 어머니, 큰오빠, 둘째 오빠 방만 빼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게 해주세요.”두 사람은 짐을 정리하자마자 곧장 외출에 나섰다.“앞에 있는 만둣가게, 진짜 맛있어요!”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도아린의 시선은 창가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던 진수혁에게 향했다.그 맞은편에는 변슬기가 앉아 있었고 다소 곤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설득 중이었다.“여긴 패스트푸드점이에요, 카페가 아니라고요. 여기서 일하시는 건 좀...”“카페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난 괜찮은데?”“그렇긴 해도 이렇게 계속 앉아 계시면 저희 가게 영업에 방해된다니까요!”그때 도아린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변슬기는 반가움에 벌떡 일어났다.“도 선생님! 대표님 좀 말려주세요!”그 말에 진수혁은 고개를 돌리며 태연하게 말했다.“밥은 먹었어? 여기 만두 꽤 괜찮더라.”도아린은 황당함에 헛웃음이 났다.‘사람을 회사에서 내쫓아 놓고선 정작 본인은 여기에 눌러앉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진짜.’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내가 말할게.”도아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변슬기와 함께 옆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그사이 배건후는 주머니에서 혼인관계증명서를 꺼내 진수혁 앞에 내려놓았다.“제가 이겼어요.”“...”진수혁은 조용히 종이를 펼쳐보고는 이를 악물었다.“너 이거 반칙 아냐?”“우린 내기했잖아요. 졌으면 인정해야죠.”“유럽 연수 그 자리, 잊지 말고 제 이름으로 신청해 주세요.”진수혁은 고개를 돌려 도아린을 바라보았고 마침 도아린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둘의 눈이 마주쳤고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이 분위기 뭐야... 완전 닭살 돋게 하네.’그 순간, 배건후는 시선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형님도 제가 예전에
‘정말로 배고픈 거야? 아니면 날 원하는 거지?’도아린은 배건후를 흘끗 쳐다보며 가위를 테이블 위에 놓고는 끌려가 밥을 먹었다.배건후의 요리 실력은 한층 더 늘어 있었고 맛뿐만 아니라 음식의 모양새도 훨씬 좋아졌다.“이제 영양식은 안 드세요?” 도아린은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 “전에 어떤 사람이 고기도 안 먹고 기름진 것도 안 먹고 오래된 것도 안 먹고 부드러운 것도 안 드셨잖아요!”배건후는 매운 닭 요리를 그녀 앞으로 밀어놓으며 진심으로 사과했다.“그때는 네 관심을 끌려고 그런 거야. 그리고 몸매가 망가져서 네가 싫어할까 봐 걱정도 됐고.”“그럼 이제는 몸매 망가지는 거 걱정 안 해요?”도아린은 고기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배건후는 가볍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원래 한 사람이 요리하면 다른 한 사람이 설거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배건후는 도아린에게 설거지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그녀를 안아 위층으로 올라갔다.도아린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큰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배건후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녀를 삼켜버릴 듯한 눈빛을 보였지만 쉽게 다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도아린은 그가 마음속 어둠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음을 알았다.그녀는 그의 목을 감싸안고 몸을 들어 올려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며 달랬다.“천천히 해도 돼요.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세요.”도아린의 위로는 곧 배건후에게 그대로 되돌아왔다.그의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그녀의 흰 목 위로 떨어졌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 “도아린, 힘 빼... 너무 긴장했어...”도아린은 그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손가락은 그의 입에 물려 있었다. 그 후, 그녀는 머릿속이 멍해졌고 마치 거친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작은 배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재미를 본 배건후는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도아린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마치 어젯밤 온몸이 부서졌다가 다시 조립된 것처럼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았고 특히 허리
“배 대표님! 모든 자산을 도 대표님께 넘기신 것은 이전에 하신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셔서인가요? 손보미 씨가 형을 선고받았다고 들었는데 손보미 씨를 꺼내줄 계획이 있으신가요?”배건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기자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인터뷰의 주제는 챔피언십 선수들의 숙식 안전입니다. 개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겠습니다.”기자들이 더 질문하려 하자 도아린이 배건후의 손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숙식 문제에 대한 더 나은 제안이 있다면 제안서를 작성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수한 의견을 채택하고 그에 따라 보상을 제공할 예정입니다.”도아린은 카메라를 향해 당당하고 품위 있게 말했고 입가의 미소를 살짝 거두며 한층 위엄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제 개인적인 문제로 여러분의 시간을 뺏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배건후 씨에 대해서는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배건후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도아린이 배건후에 대해 말하려 하자 기자들은 앞다투어 마이크를 내밀었다.도아린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배건후 씨는 여태까지 운영부의 팀장이었지만 오늘부터는 한경 그룹의 특별 자문입니다. 이후의 직책은 배건후씨의 능력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도아린의 시선은 배건후가 도아린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를 거냐고 묻던 기자를 향했다.“과학 연구자, 의학 전문가, 스포츠 선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여성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성을 존경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모욕해서는 안 됩니다.”그러자 그 기자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갔다.다른 기자들도 더 이상 질문을 할 기세를 잃었고 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고유리를 보며 말했다.“기자분들 고생 많으셨으니 저녁 식사 후 차량을 준비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고유리는 기자들을 데리고 나가며 각자에게 돈 봉투를 나눠 주었다.그들은 어떤 내용을 발표할 수 있고
“뭐라도 먹고 가자.”배건후는 구운 닭 날개는 도아린에게 건네주고 주현정에게는 구운 식빵을 건네주었다.주현정은 빵을 받아 들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렴. 나는 물 좀 마시러 들어갈게.”도아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서 멈췄다.두 사람은 강가의 평평한 돌 위에 앉았다.“엄마는 진짜 다 내려놓으신 걸까요?”“적어도 시작은 하신 거지. 앞으로 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와 함께 여행 다니면 점차 나아질 거야.”배건후는 핸드폰을 꺼내고는 방금 구 경관이 보내온 사진을 열었다.“남궁유민, 즉 고성만이야. 경찰이 고성만의 집을 수색할 때 이걸 발견했어.”도아린은 마지막 닭 날개를 입에 넣고 꼬챙이를 배건후에게 건네며 핸드폰을 받아서들었다.화면 속 사진에는 루비 목걸이가 찍혀 있었다.배건후가 큰돈을 들여 샀던 화려한 디자인의 목걸이지만 전에 잃어버렸던 목걸이였다.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며 말하려 했지만 입안은 닭 날개로 가득 차있어 눈만 깜빡였다.“내가 전에 너한테 줬던 그 목걸이야. 배지유가 몰래 차다가 잃어버렸던 거.”도아린의 입은 마치 발골 기계 같았다. 닭 날개가 입에 들어갔다 나올 때면 뼈만 남았다.도아린은 손바닥에 뼈를 뱉고는 차분하게 말했다.“배지유가 어떤 남자와 잤고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녀를 영상으로 협박했어요. 그 장본인이 바로 고성만이라구요!”“...”이번에는 배건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성만이 배지유를 협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걸이를 철저히 숨겨놓고 분해해서 이미 팔아버렸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걸 집에 보관해 놓았을 줄은 몰랐어.”그것은 고성만이 자신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보험이었다.궁지에 몰리게 되면 목걸이를 분해해 팔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살 계획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체포당하고 말았다.다음 날, 도아린은 연성으로 돌아갔다. 배건후가 신청한 챔피언십 대회 접대 임무가 승인되었기 때문이다.진수혁 역시 변
그는 입가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자고충이 하나가 될 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앞으로 잘못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을 거야.”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한다면 그 고통으로 인해 결국 죽게 될 것이다.도아린은 배건후의 머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들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썼다.배건후는 그녀의 품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어서 너에게 혼수로 바칠게. 네가 나를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래도 나는 너를 평생 지켜줄 거야.”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남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그렇게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빛이 어두워질 때까지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돌아가자.”배건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다리를 움직이며 불편했던 자세를 바꿨다.“이 근처에 야생 동물은 없지만 해가 지면 안전하지 않아.”도아린은 처음에는 감정에 휩싸여 배건후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가 몸을 움직이자 그녀는 즉시 이상함을 느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돌아갈 때 건후 씨 몸이 불편하니까 제가 태워드릴게요. 그리고 내리막길이라 힘도 덜 들 거예요.”“알았어. 네 말 들을게.”자전거 핸들이 비뚤어져 있었지만 배건후는 두 다리로 바퀴를 단단히 고정한 후 힘껏 돌려 단숨에 바로 고쳤다.도아린이 자전거 앞좌석에 타고 배건후는 그녀 뒤에 앉았다.그는 얼굴을 그녀의 등에 기댄 채 내리막에서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긴 다리를 쭉 뻗어 마찰력을 늘리며 조절했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수혁과 변슬기도 막 돌아오고 있었다.변슬기는 도아린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도아린은 그들이 뭔가 진전이 있을 줄 알고 가서 물어보려 했지만 배건후가 붙잡았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 머리 위에서 붉은 잎 하나를 떼어냈다.“...”변슬기와 진수혁이 설마 자신과 배건후가 야외에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배건후는 오직 도아린에게만 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도아린은 그의 눈동자 속에 가득한 붉게 물든 단풍잎과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마음속 깊이 즐거워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의 깊고 그윽한 눈이 가늘게 감기며 그 속에는 격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그래, 이거지!’그녀는 올해 겨우 25살이었다.어린 시절 양부모 곁에서 사랑받지 못했고 장애를 겪은 후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돌보며 결혼 생활에서는 남편의 감정적 학대 속에서 버텨야 했다.그녀는 너무도 많은 행복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이게 맞는 일이다.그녀는 웃어야 한다. 크게 소리 내어 마음껏 웃어야 한다.고작 25살에 불과한 그녀가 이토록 많고 무거운 책임과 압박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눈앞 여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고 배건후의 심장도 저릿해 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거친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스쳤고 천천히 그녀의 눈꼬리를 눌렀다.“웃어. 앞으로 나쁜 감정들은 전부 나한테 넘겨. 내 앞에서는 일부러 강한 척 버틸 필요도 없어. 속상하면 때리고 욕해도 돼. 대신에 절대 자신을 괴롭히지 마.”도아린은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 뒤돌아 눈물을 닦으려 했다.그 순간 힘센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특유의 나무 향기가 그녀를 감쌌고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여태까지 내가 나쁜 놈이었어. 미안해. 앞으로는 모든 일을 너와 상의할게.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 거고 네가 속상해할 일도 만들지 않을 거야.”도아린은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입만 살아서!”배건후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운 뒤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도아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직 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지도 못했잖아요. 그리고 저도 아직...”이후의 말은 더 이상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상자를 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청혼의 반지가 아니었다.작고 빨간 벌레가 들어 있었는데 다리가 없고 온몸이 부드러웠으며
변슬기는 바쁜 듯 뒤돌아보며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좋아요." 진수혁은 흔쾌히 대답했다. 이미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배건후는 세 사람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빌라에는 자전거가 두 대 있었는데, 도아린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일부러 다른 자전거의 페달을 떼어 놓았던 것이다. 도아린은 자전거를 보고 그에게 너 정말 얄밉다'는 눈빛을 보내며 빨리 고치라고 신호를 보냈다. 자전거를 고치고 네 사람은 문밖으로 나갔다. "꽉 잡아."배건후는 도아린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자 힘껏 페달을 밟았고, 자전거는 비탈길을 미끄러져 작은 길로 향했다.변슬기는 진수혁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자전거 뒤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진수혁은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저, 제가 밀어드릴까요...거의 정상에 도착하면, 그때 저를 밀어주세요."라고 제안했다. 진 대표님의 속도로는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할지 내기는커녕,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수혁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거의 넘어질 뻔했고, 황급히 남자의 허리를 붙잡았다. 자전거는 갑자기 비틀거리지 않았고, 속도도 빨라졌다. 변슬기: "..."배건후는 도아린을 태우고 산길을 누볐고, 도아린은 뒤쪽 페달을 밟으며 일어섰다.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짧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렸다. "산속 공기가 도시보다 훨씬 좋네요. 매연 냄새도 없고, 에어컨 냄새도 안 나고." 배건후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살짝 몸을 일으켰다. "어제 비가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신도 비 온 뒤 흙냄새 좋아해요?"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귓가에 웃으며 말했다. "나도 좋아해요! 비 온 뒤 흙과 풀이 섞인 냄새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 배건후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아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깨달았다. 배건후가 말한 것은 바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환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