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성대호는 손이 밟혔다.도아린이 발걸음을 멈추었지만, 강재민이 들어가라고 재촉했다.도아린의 모습이 사라지자 강재민은 더 힘을 주어 밟았다.“아...”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배건후가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당장 그 사람 놔요!”“이 사람이 아린 씨의 손가락 하나를 망가뜨렸으니 저는 이 사람의 손 하나를 망가뜨리는 것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그 정도는 돼야죠...”강재민은 발을 들었고 담담한 표정은 마치 그저 개미 한 마리를 밟아 죽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았다.성대호는 얼른 자신의 손을 움켜잡고 허겁지겁 배건후의 곁으로 기어갔다.“도아린이 고소를 하게 하면 안 돼! 지유가 안에서 괴롭힘을 당해서 심한 트라우마가 있어!”“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계속 나쁜 짓을 저질러?”강재민이 차갑게 웃었다.“뭐든 다 눈 감아 주는 바보 같은 남자와 나쁜 짓을 도와서 하는 오빠라니, 아린 씨가 배씨 가문에 있을 때 당신들한테 이런 식으로 괴롭힘을 당했겠네.”“누가 괴롭힌다고 그래?”성대호는 아파서 덜덜 떨었지만 그래도 대꾸했다.“도아린이 쓰고 입고 먹는 것 모두가 건후 꺼야. 액세서리도 옷도 모두 다 최고급이야! 배씨 가문에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해주는 게 바로 도아린에게 어머님과 아가씨를 잘 모시기를 바라기 때문이야.”강재민은 짜증 난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고 배건후를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에는 자신이 이겼다는 의미가 다분했다.이런 것들 때문에라도 도아린은 절대 배건후와 잘될 수 없다.배건후의 날카로운 눈빛이 강재민과 마주쳤지만 뜬금없는 얘기를 물었다.“도아린의 손을 대호가 다치게 했다는 걸 그쪽이 어떻게 알아요.”도아린은 먼저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니 강재민이 알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곁에 자신의 사람을 두었다는 의미였다.그가 엠파이어 빌딩의 고객을 빼앗아 간 것이 생각난 배건후는 대담한 추측을 했다.강재민은 마치 바보를 보듯 배건후를 한번 보더니 뒤돌아 계단을 올랐다.배건후가 따라갔다.“그 고객들의 자료는 도대체
배석준이 멈칫했다.“무슨 말이야?”“저는 엄마가 아빠랑 이혼하는 것이 싫어요... 두 분 사이가 그렇게 좋았는데, 제 기억 속에서는 두 분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배지유는 울면서 해명했다.“도아린이 오빠랑 이혼하고 배씨 가문과 철저하게 남이 되면 우리 집은 예전처럼 화목하게 지낼 수 있어요. 엄마한테 준 약은 절대 문제가 없어요. 우울증 환자들은 다 그 약을 먹는대요. 만약 독성이 있는 약이라면 판매가 되지 않겠죠! 그리고 저는 엄마한테 오래 먹일 생각이 아니었어요. 제가 산 약의 수량을 보세요. 이번 달 말까지입니다. 그때가 되면 오빠는 보미 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고 도아린은 우리를 더는 방해하지 않게 되죠! 저는 정말 엄마를 해칠 생각이 없었어요. 아빠, 저를 믿어주세요!”배석준은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딸이 그렇게까지 망나니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었다. 지금 들어보니 딸은 그저 예전처럼 화목한 가족을 원했던 것이다.이 모든 것은 다 도아린 때문이다!“울지 마...”배석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호가 나한테 전화가 왔어. 너를 데리고 다른 도시로 가서 당분간 숨어지내겠다고. 그렇게 할래?”배지유의 시선에는 불만이 비쳤다. 그녀는 도아린이 절대 이대로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온갖 방법을 다 생각해서 자신을 다시 감옥에 넣으려고 할 것이다.그 안에서 지냈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아빠 말대로 할게요...”“그래.”배석준은 몸을 일으켜서 일부러 밖에 있는 경호원들한테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말했다.“제대로 반성하도록 해. 만약 네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너도 살 생각하지 마!”배지유는 아빠의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배석준이 돌아간 후 철문은 다시 닫혔다. 배지유는 식사 시간에 맞춰 허리띠를 빼내서 난간에 목을 매달았다.질식하는 느낌에 그녀는 두 손에 힘이 빠졌지만, 끈을 벗으려고 해도 안 됐고 눈은 거대한 압력에 밖으로 튀어 나갈 것만 같았다...무척 고통스러웠다.배
“도아린, 여기는 네가 난리를 피울 수 있는 곳이 아니야.”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 배건후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너는 내 아내야. 공개적으로 나와 경쟁을 한다면 매체에서 아무 기사나 낼 거야.”도아린은 쌀쌀한 눈빛으로 그를 훑어보았다.“건후 씨가 공개적으로 내연녀를 데리고 입찰에 참여하는 것은 매체에서 아무 기사나 낼까 봐 걱정되지 않아요?”“내가 손보미를 데리고 온 것은 일부러 강씨 가문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야!”“내가 여기 온 이유는 그 땅을 손에 넣기 위함이에요.”도아린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갔다.공개적인 장소에서 배건후는 도아린이 무대로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자리로 돌아간 배건후는 무서운 분위기를 풍겼다.손보미는 그를 건드리지 못하고 친한 기자에게 가만히 메시지를 보냈다.도아린은 무대에 올라서서 서류를 꺼내자마자 기자가 질문했다.“도아린 씨, 배건후 씨의 아내잖습니까. 배 대표님이 방금 강연을 했으니 그만 내려가시죠.”앞에 있던 기자들이 가벼운 웃음소리를 흘렸다. 오늘의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회사들은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강연을 하는 사람은 대표가 아니면 부대표였다.도아린은 직무가 없었고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녀가 배건후의 후광을 빌리려 한다고 생각했다.도아린은 마이크를 살짝 내리고 태연하게 말했다.“저랑 배건후 씨는 이미 이혼한 사이입니다.”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질문하는 기자를 쳐다보았다.“5일 전, 배건후 씨는 각종 매체를 초대해서 약혼식을 진행하였는데 그쪽은 요청받지 못했나 보죠?”기자는 민망해졌다. 그녀는 연예부 기자인데 뜬소문을 쓰는 데 아주 능했다.비즈니스 뉴스를 취재하러 온 이유는 손보미가 그녀에게 두 사람의 사진을 찍어서 홍보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도아린이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물으니 바로 직원들이 와서 그녀의 신분을 확인했고 자격이 없는 이 기자를 밖으로 내보냈다.도아린은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곤란한 상황이 있었다고 해서 전혀 동요가 없었다.그녀는 대
강씨 가문이 배씨 가문에 대한 지지는 금전적인 거래가 없었고 솔직히 그저 구두 계약이었다.강재민은 강씨 가문의 후계자인 데다가 외가 쪽 세력까지 뒷받침을 해주니 당연히 실력이 대단했다.모두 결정하기 어려워할 때 직원이 경찰을 몇 명 데리고 왔다.“배석준 씨, 저희와 함께 가시죠.”누구도 배석준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흠이 갈 일이 있다면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사람들의 마음은 순간적으로 스카이 회사로 기울었다.배석준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도아린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퍼부었다.“네가 감히 나를 함정에 빠뜨리다니, 너는 진작에 이 상황을 준비했지? 잘해 준 은혜도 모르고!”경찰은 빠르게 난리를 피우는 배석준을 제압했다. 그는 경찰에 끌려나가는 순간까지도 욕을 멈추지 않았다.경찰이 배건후에게 배지유가 어디 있는지 물었지만, 배건후는 모른다고 했다.도아린의 눈빛은 차게 식었고 배건후를 보면서 경멸하는 웃음을 지었다.이 집안은 답이 없다.도아린 일행이 차게 오르려는 데 배건후가 따라왔다.“도아린! 엄마가 깼어. 너랑 할 얘기가 있대.”도아린은 잠깐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건네받았고 주현정의 허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아린아, 네가 또 나를 살렸구나.”“제가 해야 할 일이에요.”“며칠 후 엄마가 너 보러 해남으로 갈게. 너를 보고 할 말이 있어.”“알겠어요. 제가 모시러 나갈게요.”“전화를 건후한테 바꿔줘.”도아린은 배건후에게 핸드폰을 주고 뒤돌아 차에 올랐다.배건후는 멀어지는 도아린의 차량을 보면서 의아하게 물었다.“엄마, 도아린을 설득하지 않았어요?”“설득했어. 너희들 망나니 세 명이 아린이 한 명을 괴롭혔는데 나 혼자서는 설득이 안 돼.”“...”배건후는 핸드폰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핏줄이 튀어나왔다.땅을 손에 넣지 못했으니 주주총회에서는 바로 회의를 진행했다. 나이 든 주주들은 한 무리의 오리처럼 회의실을 뒤집어 놓았고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
도아린은 임진희가 그녀의 아현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녀는 ‘별들이 떠받들이는 달’의 디자이너가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뭐라고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임진희가 또 얘기했다.“전에 나는 음악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대박을 터트리길 기도했어. 그렇게 되면 사장님의 첫사랑이 그 치마를 보게 될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에는 그 사람이 봤을까 봐 걱정돼...”그녀는 의미심장하게 도아린을 쳐다보았다.임진희는 주현정의 친한 친구였지만 그녀는 도아린과 강재민이 잘되기를 바랐다.도아린은 임진희가 왜 강재민을 사장이라고 부르는지 생각했고 소유정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지난번에 찍은 영상을 너한테 준다는 게 깜빡했어.”산 중턱 캠핑장의 영상은 안민아가 그때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고 강홍련이 곁에서 영상을 찍는 것은 미리 계획된 일이라는 게 확실했다.해남에서는 안민아가 전화를 받고 방을 나섰다.“아빠,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요.”진옥경이 얼른 일어서서 말했다.“같이 가자.”“괜찮아요. 가서 친구 좀 만나려고요.”안민아가 설명했다.“금방 해남에 도착했다고 해서 가서 좀 둘러보려고요.”안준휘는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서 바람 좀 쐬고 와.”안민아가 집을 나서자 안준휘는 바로 표정이 변하였다.“애한테 충분한 공간을 줘. 따라간다면 불쾌했던 일을 또 떠올리게 될 거야.”“걱정돼서 그러죠. 신발은 왜 신는 거예요?”안준휘는 외투를 걸치고 아내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몰래 따라가자.”안민아는 친구를 만나러 간 게 맞았다.변슬기는 부모님이 외지에서 일했고 대학 시절 안민아와 같은 기숙사였다.안민아는 졸업하고 삼촌의 회사로 들어가려고 했고 변슬기는 해남의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우리가 드디어 또 같은 도시에서 살게 되었어!”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있었다. 안민아가 길을 잘 알기에 변슬기를 데리고 학교로 가서 등록하였다.안준희 부부는 딸이 학교로 들어가는
배지유는 자신의 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가방이 없어졌어. 방안에는 너희 둘밖에 없었는데 무조건 너희가 훔친 거야!”그녀는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변슬기는 옷이 평범하기 그지없었고 안민아는 옷과 신발이 다 브랜드 상품이었다.“너야!”배지유는 변슬기를 가리켰다.“네 친구는 모두 브랜드 명품을 입었는데 너는 그게 부럽게 질투가 나서 내 가방을 훔친 거야! 내 가방은 중고로 팔아도 몇천만은 받을 수 있어!”“지유야, 일단 진정해. 오해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성대호는 물건을 내려두었다. 그의 손은 무거운 짐 때문에 파랗게 멍이 들었지만, 배지유는 돕지 않았다.배지유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저 사람들을 믿고 나를 안 믿는 거야?”“아니야... 울지 마...”성대호는 그녀의 눈물만 보면 당황했다.안민아는 차갑게 실소를 터뜨렸고 더 봐주기 힘들었다.변슬기는 고개를 쳐들었다.“침대 아래에 뭐가 있는지 잘 봐. 제대로 보고 다른 사람 탓을 해. 민아야, 가자.”성대호는 허리를 굽혀 살펴보았고 침대 아래에 가방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그는 힘겹게 가방을 꺼냈다.“같은 기숙사에 살면서 다른 사람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마.”배지유는 가방을 낚아채고는 서럽게 말했다.“내가 나쁜 사람이야, 됐지? 내가 제일 나빠. 오빠도 나 신경 써서 뭐해? 얼른 가. 가버려!”배지유는 성대호를 밖으로 밀어냈다. 성대호는 얼른 그녀를 안아서 달래주었다.“다 내 잘못이야. 내가 제일 나빠. 내가 잘못했어!”배지유는 웅얼거리더니 더 울지 않았다.성대호는 침구를 정리해주고 앉아보더니 말했다.“좀 딱딱하네. 내일 푹신한 매트를 사다 줄게.”배지유는 그의 곁에 앉아 가방의 뒷면을 가리키며 서럽게 말했다.“침대 매트는 필요 없어. 가방을 사줘. 매일 저 가방을 들고 다닌다면 나를 비웃을 거야.”“...”성대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돈이 좀 있었지만, 배지유를 이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돈을 많이 썼다. 남은 돈으로는 사업을 할 예정이었다.돈이
도유준은 곁에 있던 여자들을 뿌리치고 비틀거리며 그녀에게로 걸어가 안민아의 턱을 잡으려 했다. 안민아는 빠르게 몸을 피했다.“내 몸에 손대지 마!”“건방져!”도유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의 몸에는 담배 냄새와 술 냄새가 섞여 있어 아주 역겨웠다.“저번에는 너를 만족시키지 못했으니 오늘 만족시켜 줄게.”“이거 놔!”안민아는 싫은 표정을 지었지만 벗어나지 못했다.도유준은 사악한 웃음을 짓고 곁에 있던 여자 두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우리 함께 놀면 재밌을 거야.”“이 쓰레기 같은 놈!”안민아는 그의 발을 세게 밟았다. 그 고통에 도유준은 뒤로 물러섰고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쓰레기면 뭐 어찌할 건데, 그래도 나한테 시집와야 하잖아!”안민아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가방으로 그를 세게 내리쳤고 두 명의 여자는 상황이 심상치 않자 바로 도망갔다.도유준은 취해서 처음에는 봐주었지만, 자신이 돈을 써서 데리고 온 여자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바로 정색했다.그는 안민아의 손을 거칠게 끌어당겨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이렇게 떼를 쓰는 걸 제일 싫어해. 앞으로 나한테 시집오면 내 말을 들어야 해. 오늘 한번 제대로 기강을 잡아줄게!”이렇게 말하고 그는 거칠게 입을 맞추었다. 지금 공개적인 장소에 있는 건 그에게 상관없었다.안민아는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그녀를 동정하는 남자 한 명이 멀리 가서야 경찰에 신고했다.이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도유준은 뒤통수에 고통이 느껴졌고 만져보니 피가 났다.“당장 그 애를 놔!”변슬기는 소리를 지르며 벽돌을 집어 들었다.“당장 놔!”안민아는 빠르게 빠져나와 변슬기의 곁으로 달려갔다.“바로 저 자식이야! 저 자식이 술을 마시고 미친 짓을 한 거야!”변슬기는 안민아를 자신의 뒤로 감췄고 벽돌을 든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도 두려웠다.“아주 잘 왔어. 쟤가 내 여자들을 도망가게 했으니 네가 대신하러 와!”도유준은 앞으로 덮쳤고 변슬기는 빠르
더 갈 곳이 없을 때 배건후는 강재희를 나무 위로 올려보냈고 정신이 희미한 와중에 그녀는 심한 피비린내를 맡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원에 누워있었다.배건후가 어떻게 세 마리의 미친개를 물러나게 했는지 아무도 몰랐다.도아린은 배건후를 잘 알았다. 그의 몸에는 개한테 물린 상처가 없었다. 물린 상처는커녕 긁힌 흉터도 없었다.“건후 씨가 거짓말을 했다고 의심하는 거야?”서대은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강씨 가문이 은혜를 갚지 못하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어. 진실이 드러날까 봐 그랬던 거야!”“...”도아린은 다른 생각이었다.배건후의 가정조건으로 봤을 때는 구조에 참여할 필요도 없었고 다른 사람의 공로를 가로챌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이런 헛된 것이 필요 없었다.“보스, LY의 고위인사가 초대장을 보냈어. 지금의 신분을 드러낼 거야, 아니면 아현의 이름으로 참가할 거야?”서대은이 천천히 말했다.“지난 몇 년간 네가 은둔하고 있는 동안 업계가 안정되기는 했어. 하지만 센 사람이 없으니 별것 아닌 사람들도 날뛰게 되는 거지.”서대은은 그녀가 다시 복귀하기를 바랐다. LY의 고위인사는 네 명이었고 서대은은 그녀의 직속 담당이었다. 두 명은 ‘라윤주'가 될 생각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중립이었다.“일단 아현의 이름으로 참가할게.”도아린이 담담하게 말했다.“의식에 참여해서 상황을 보고 다시 얘기하자.”“알겠어. 그렇게 얘기할게.”저녁 식사를 할 때 진옥경은 한가지 얘기를 꺼냈다.“강씨 가문에서 LY의 고위인사 중 친한 사람이 있나 봐. 혼사를 승낙하니 준휘 씨가 골머리를 앓던 주문들이 다 해결됐어. 나도 LY에 관해 들은 적이 있는데 그들은 관계망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고 해. 엄청 대단하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뭘 한 적은 없었다고 하네.”진범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새 회사에서 하는 홍보일 수 있으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민아가 고소하고 싶다면 강씨 가문에서 어떤 수단을 쓰든 두렵지 않아!”진경수는 새우껍질을 까서 도아린의 그릇
JS 픽처스의 고위인사는 배석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 또 해외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현정이의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머물다가 가려고 합니다.”배석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평소에 연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주현정이 JS 픽처스에서 지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각종 이유를 찾아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를 거부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카메라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그들은 모두 주현정 덕분에 잘 되었기에 체면은 반드시 살려주어야 했다.“크흠.”배지유는 배석준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헛기침을 했다.“아, 우리 딸이 마침 해남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배석준을 둘러싼 고위인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주현정은 배지유가 연예계의 나쁜 물을 먹을까 봐 현역일 적에 절대 배지유를 데리고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위인사들도 그저 주현정에게 딸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본 적은 없었다.반응이 빠른 누군가가 술잔을 들며 공손하게 말했다.“따님은 주 대표님과 배 대표님의 우수한 점을 다 닮으셔서 단정하고 청초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새로 영입한 신인보다 예쁘신 것 같습니다.”“맞아요. 해남대학교의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시니 예쁘시고 학식도 많으시네요. 지금 업계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인재를 제일 좋아합니다!”배지유는 칭찬을 듣고 얼굴이 발그레해졌고 그녀는 두 손으로 팔걸이를 잡고 살짝 몸을 앞으로 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삐끗해서 일어서서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네요.”“별말씀을요. 발을 삐끗하면 잘 치료해야 해요. 젊고 예쁘신데 후유증을 남기면 안 되죠.”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배지유의 마음속에서는 저주로 들렸다.그녀는 발 한쪽을 다친 게 아니라 다리 하나를 잃었다. 나머지 생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배석준은 배지유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가 난리를 피울까 봐 얼른 다른 곳으로
주현정은 말투가 가라앉았고 표정이 엄숙했다.“남자의 내연녀로 이십몇 년을 있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어른이 화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나. 도아린의 양아버지는 양어머니의 혼수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했어.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딸의 효도를 받을 자격 없어!”현장에는 여자 연예인들도 많았다.같은 딸의 마음으로 이렇게 심란한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그들은 도아린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아린이 양어머니를 위해 복수를 했다고 여겼다.강홍련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아린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방금 자신의 말이 강씨 가문에게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웠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도아린은 단호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강씨 어르신은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씨 어르신께서 좋은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주었는데 당신은 밖에서 어르신의 명성이나 흐리고 다니면 안 되죠. 농부와 뱀의 이야기를 재희 씨도 들어봤을 거로 생각해요.”도아린은 강씨 어르신의 편에 섰는데 강재희는 반박할 수 없었다.여론에서 아버지의 대회에 흑막이 있다는 일로 들끓던 것이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강홍련 저 멍청이 때문에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주현정은 도아린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제 딸이고 JS 픽처스의 후계자예요. 강씨 가문에서 이렇게 제 딸을 치욕스럽게 하다니, 저희 협력은 앞으로 계속하지 않을 생각입니까?”강재희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녀는 도아린이 연회에 참가한 것은 단지 주현정과 예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주현정이 도아린을 딸로 삼고 JS 픽처스의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만약 도아린과 모순이 격화된다면 앞으로의 협력에는 장애가 생길 것이다.“강홍련 씨, 사과해요!”강홍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재희는 지금 자신을
도아린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진열대에 있는 다이아몬드의 빛이 꺾이어 그녀의 눈동자를 비춰 유독 눈부셨다.강홍련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강홍련은 도아린보다 머리 하나쯤 작아서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바라보았는데 도도한 척하는 모습이 광대 같았다.“네가 JS 픽처스에게 ‘봉황의 시대’를 광고하도록 넘겼는데 강씨 가문의 고급 주얼리들은 모두 JS 픽처스의 연예인들이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어. ‘봉황의 시대’와 JS 픽처스의 연예인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봉황의 시대’가 강씨 가문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테지.”이게 바로 연예인을 찾아 광고하는 이유였다.예를 들어 어떤 톱스타가 운동화의 모델이 되었다면 그가 나타났을 때 팬들은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알게 된다. 따로 브랜드를 찾아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도아린은 도덕과 재능을 겸비한다는 말로 강씨 가문에게 치욕을 안겨주었지만 결국은 강씨 가문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강씨 가문에서 이득을 보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도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는 강씨 가문의 사촌이야!”강홍련은 불쑥 얘기했다.“강씨 가문에서 손보미를 밀어준다면 배건후와 결혼할 수 있어. 강씨 가문에서 안씨 가문을 지지한다면 내 아들은 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거야!”“그래서요.”강홍련은 도아린이 모른 척할 줄 몰랐고 그녀의 코에 대고 얘기했다.“그래서 나한테 잘하라고. 그러면 강씨 가문에서는 네가 해남에서 살아나갈 기회라도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대회 성적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너를 디자인 업계에서 쫓아내는 것도 일이 아니지. 내 삼촌 강태식은 이 바닥을 꽉 잡고 있어. 내 삼촌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야. 너의 ‘봉황의 시대’도 잘난 척할 거 없어. 언론에서 만들어준 것뿐이야. 만약 삼촌의 학생들이 다 그게 별로라고 얘기한다면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거야!”많은 손님이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강홍련의 지나친 말에 시선을 두
“아빠가 방법을 대서 가볼게. 너는 오지 마.”배석준은 배지유가 걱정되었다. 지난번에 배지유가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도 돌아와서 다리가 아파 잠이 들지 못했다.배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애원했다.“제 친구들은 제가 아직 안에 갇혀있는 줄 알아요! 아빠랑 제가 함께 엄마의 연회에 간다면 매체에서는 저희 세 식구의 화목한 모습을 찍게 될 것이고 소문들은 자연스레 사그라질 거예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딸의 명성은 도아린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돌이킬 방법을 계속 찾지 않는다면 배지유가 해남대학교로 돌아갔을 때 반드시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당할 것이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메이크업과 코디를 해줄게.”배석준이 데리고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지민이었다.김지민은 연예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 참석하는 연예인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알아냈다. 배지유는 똑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됐고 다리의 흉터를 가릴 수 있으면서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했다.이 부분에서 김지민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배지유는 만족스럽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그녀의 치마를 들지 않는 이상 그녀가 다리 하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발을 삐끗해서 휠체어를 탔다고 하면 될 것이다.이런 장소에 김지민은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므로 부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연회장의 중심에는 도아린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고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는 현장에 있는 연예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여자의 아름다움이 너무 지나쳤다.연예계의 스타들은 자주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에 참가하므로 어떻게 분위기를 휘어잡는지를 잘 알고 자신이 어느 각도에서 가장 예쁘게 찍히는지도 알고 있었다.도아린은 처음 보는 얼굴이고 업계에 대해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 자신감이 넘쳤다.그녀가 스크린 앞으로 가서 사인할 때 스크린에는 ‘봉황의 시대’의
도아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녀의 덤덤한 눈빛은 ‘라윤주’의 이름을 듣고 초점을 잃었다.“뭐라고요?”“...”육하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가 육하경이 말을 이었다.“향 주머니로 화를 면한 것은 우연이에요. 정말 저를 도왔던 것은 세인트존스 호텔의 책임자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죠.”육하경은 입꼬리를 올려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어르신들을 3일이나 괴롭혀서야 알아냈어요. LY에서 저를 후임자로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육하경의 학업은 각 부분에서 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육씨 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빽빽이 필요했다.육민재를 예로 들어보면 능력은 가장 뛰어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맏아들의 장손 혈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최고로 좋은 자원과 경험을 쌓을 기회들을 누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그는 육씨 가문의 후계자일 것이다.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려면 모든 게 알맞게 부합되어야 한다.육하경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었고 육씨 가문의 산업에 기대를 두지 않아 오랜 시간 밖에서 떠돌며 공부를 했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세인트존스 호텔의 관리 권한이 그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놀란 마음으로 육하경은 전임자를 찾아갔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야 LY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육씨 가문 뿐만 아니라 많은 명문가가 LY와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인재를 추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었기에 자연스레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육하경은 그때 손에 향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전임자가 이상해하며 무늬를 찍어서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추천서’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경 씨가 말하는 그 이야기에도 관심 없습니다.”도아린은 책을 육하경에게 돌려주고는 차 문을 열었다.“도아린 씨!”육하경은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손을 허공에 멈추고 결국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육하경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보게 된 것은 싫증뿐이었다.도아린은 힘을 주어 방심하고 있던 배건후를 밀어냈고 뒤돌아 걸어갔다.배건후는 빠르게 따라가서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도아린, 나한테 시간을 줘.”배건후가 잡은 손목의 위치가 마침 도아린이 떨어질 뻔했을 때 배건후에게 잡힌 위치였다. 도아린은 느껴지는 고통에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배건후의 손을 때렸다.“이거 놔!”“친구 사귀지 마.”배건후의 목소리가 떨렸다.“서둘러 친구 사귈 생각하지 말고... 나한테 시간을 줘.”도아린은 배건후에게 발길질을 했고 배건후는 피하지 않았다. 바지에는 발자국이 하나 생겼지만,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이거 안 놓으면 사람 부를 거예요. 육씨 가문에서는 당신이 함부로 하게 놔두지 않을 거예요!”배건후의 힘이 조금 빠진 틈을 타서 도아린은 빠르게 손을 빼내고 자리를 떴다.나영옥은 도아린이 손목이 빨갛게 된 채로 한참이 지나 돌아온 것을 보고 묻지 않았고 가정부에게 도아린한테 식사를 올려달라고 했다.배건후가 돌아왔을 때, 육하경이 작은 숟가락으로 게살을 발라서 도아린의 앞에 놓아주는 것을 보았다.“내일 하경 오빠가 아린 씨와 함께 봉사활동을 간다고 하는데 저희도 함께 가요.”육청아은 갈비를 하나 집어 배건후의 접시에 놓았다.배건후는 가정부를 불러 접시를 바꿔 달라고 했다.“...”식사를 마친 후, 육하경은 도아린을 자신의 차에 태우려고 했다.배건후는 펑 하고 소리를 내며 차 문을 닫았다.“아린이 지금 사는 곳은 외부인에게 발설하기 불편해.”도아린은 자신의 주소를 많은 사람이 알기를 바라지 않는 게 맞지만, 배건후와 단둘이 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배건후가 미쳐서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하경 씨는 외부인이 아니에요.”도아린은 차를 빙 돌아가더니 반대편으로 올랐다.육하경은 바로 얼굴에 웃음을 띠었고 배건후의 어깨를 툭툭치고는 운전석에 올랐다.육씨 가문을 떠나 시 중심에 들어서자 도아린이 갑자기 말했다.“앞에
“아!”육청아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그녀의 앞에 있는 테이블보는 다 젖었고 찻물이 그녀의 치마를 적셨다.“죄송해요.”배건후는 주전자를 놓고 자신의 냅킨으로 그녀의 앞에 있는 테이블보를 닦았다.육청아는 도아린을 흘겨보고는 치마를 정리하러 갔다.작은 소란이 일었어도 맞은 편에 앉은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나영옥이 잔소리를 했다.“나이가 얼마인데 아직도 저렇게 칠칠치 못한 거야. 단정하지 못해.”도아린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고 웃음을 짓던 두 눈은 어리둥절했다.“천사 보육원이 압류당했는데 세인트존스 호텔의 수선 계획은 계속할 거야?”배건후는 육하경과 도아린의 대회를 끊었다.그는 소매를 말아 올렸고 손목에는 빨간 끈이 드러났다. 그의 행동이 나른하고 관능적이었다. 도아린은 그게 눈에 거슬렸다. 이혼한 마당에 이런 물건으로 그녀를 치욕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가서 손을 씻고 올게요.”도아린은 일어서서 자리를 떴다.육하경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가며 배건후의 말에 대답했다.“수선 계획은 변하지 않아. 우리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을 찾아 전적으로 책임지게 할 거야...”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건후도 일어서서 자리를 떴다.객실의 화장실은 세면대가 밖에 있었는데 도아린이 수도꼭지를 틀려고 할 때 여자 화장실 안에서 누군가가 전화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상대방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는데 도아린은 ‘배건후’와 ‘네티즌을 산다’라는 얘기를 어렴풋하게 듣게 되었다.도아린이 화장실의 문을 열자 육청아은 빠르게 핸드폰을 막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도아린은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칸막이가 있는 쪽으로 들어갔다.밖에서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고 도아린은 변기에 앉았다가 일어서서 물을 내렸다.문을 열자마자 역시 육청아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도아린 씨.”육청아은 계속 웃는 표정이었지만 기분 좋은 웃음이 아니라 도발의 의미를 담고 있는 웃음이었다.“당신이 배지유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그녀는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하지만 비아냥거리는 눈빛이었다.도아린은 그녀가 배건후한테 정말 진심인지 아닌지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육청아가 이상하게 그녀를 경계하는 느낌을 받았다.나영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너희들은 다 나가 있어. 아린이랑 할 얘기가 있어.”육청아는 육민재와 함께 문 앞까지 갔다가 뒤돌아 도아린을 한번 보더니 핑계를 대서 육민재와 갈라졌다.나영옥은 도아린에게 어쩔 예정인지 물었다. 요즘 모건 그룹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지만, 연성에서의 지위는 쉽게 흔들리는 게 아니었다.만약 도아린이 도움이 필요하다면 배씨 가문에서는 도울 수 있지만, 배건후의 반대편에 서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재벌의 관계는 오래된 나무의 뿌리처럼 가닥이 많고 복잡해서 하나를 건드리면 모든 게 흔들리게 된다.“진씨 가문의 부모님은 너한테 잘해줘?”나영옥은 도아린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물었다.“저한테 엄청 잘해주세요. 두 오빠도 잘해줘요.”“그럼 다행이야. 청아의 말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 그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경솔하게 행동하는 면이 있었어. 기어코 바위에 부딪히려 하거든 가라고 해. 손해를 봐야 정신을 차리지.”도아린은 담담하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영옥은 또 그녀와 친한 친구를 언급하였는데 해남에 사는 여씨 어르신이었다.“시간이 나면 나 대신에 가서 만나서 안부를 전해줘.”나영옥은 편지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주었고 전해달라고 했다.도아린은 조심스레 편지를 넣어두고 꼭 찾아뵙겠다고 얘기했다.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 중에 밖에서는 말소리가 들렸고 육청아의 발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나영옥의 표정에서는 불쾌한 기색이 보였지만 꾸짖지 않았고 도아린을 배웅하기 위해 가정부에게 식사를 준비하라고 했다.도아린이 나영옥을 부축하고 나왔을 때 정자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배건후의 잘생긴 얼굴은 차가웠고 넥타이를 매지 않고 셔츠는 살짝 열고 있었다. 꾸민 듯 안 꾸민듯한 모습이 매력적이었다.육청아는 그의 곁에 서서 고개를 들
도아린은 SNS에 새가 새장 밖으로 날아가는 사진을 올렸다. 자신이 마침내 자유를 얻은 것을 축하하는 뜻에서였다. 잠시 후, 음식을 배달시켜려고 하는데 문득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집안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주방에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고 그 안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신선한 재료와 과일들로 가득했다. 큰오빠의 배려에 감동했다. 가뜩이나 바쁜 사람인데 연성으로 돌아온 그녀가 걱정돼서 이리 모든 것을 준비해 주다니...진수혁에게 감사의 문자를 보내려는 그때, 육민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연성에 돌아온 거야?”“네.”“할머니가 아린 씨 많이 보고 싶어 하셔. 잠깐 들렀다 갈래?”“위치 보내줘. 내가 데리러 갈게.”이번에 연성을 떠나면 중요한 일이 없는 이상 다시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작별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다. “혼자 갈 수 있어요.”전화를 끊은 그녀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대표님, 사모님... 아니 아린 씨가 집을 나섰습니다.”그에게 물병을 건네던 유정윤은 길가에 서서 차를 기다리는 도아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그가 물병을 건네받으며 약을 입에 넣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입술이 파래졌다. 잠시 후, 통증이 조금 누그러지자 그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따라가.”“네.”고개를 끄덕이던 우정윤은 이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사실 오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이사회 사람들에게 붙잡혀 회사로 끌려가 회의에 참석했다. 사람들은 모건 그룹의 다음 계획에 대해 대책을 세우라고 그를 닦달했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닫고 그는 재빨리 구청으로 달려갔고 마침 배석준이 도아린에게 손을 대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하루 종일 밥도 먹지 못한 탓에 위가 또 말썽인 듯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진 후, 위병은 점점 더 심해졌고 진통제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그녀가 탄 택시가 익숙한 길로 접어들자 그의 눈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