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민은 실소를 터뜨리고는 두 명의 경호원을 불렀다.“솔직하게 말해. 누가 지시한 거야. 똑바로 얘기한다면 목숨은 살려줄게. 말하지 않으면 죽일 거야.”두 사람은 연달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그게... 손보미 씨가 시킨 일입니다.”“말도 안 되는 소리!”손보미는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배건후에게 손목이 잡혔다. 그녀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정말 나 아니야. 건후 씨, 나 믿어줘!”강재민이 계속 물었다.“손보미 씨가 뭐 하라고 했어.”두 경호원은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저희한테 저 여자를 취하라고 했습니다.”이때면 손보미가 어떻게 열쇠를 가지고 어떻게 도아린을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죄명이 손보미에게 단단히 씌워졌기 때문이다.“이 사람을 끊어내!”강재희는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명령했다.손보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미친 듯이 억울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며 욕하는 것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손보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눈이 뒤집히며 정신을 잃었고 그제야 이 사태가 일단락되었다.강재희는 자리를 떠날 때 의미심장하게 도아린을 쳐다보았다.저 여자는 과연 계략이 많은 여자다. 그녀를 강씨 가문에 들이지 못하게 하려면 아마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이다.연회가 끝나고 사람들이 자리를 뜨자 도아린은 그제야 안민아가 안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재민은 민망한 듯 코를 만졌다.“제가 울렸어요. 아마 먼저 갔을 거예요.”그네를 탈 때 안민아는 그가 팔찌를 끼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마음을 받아준 줄로 생각하고 먼저 마음을 고백했다.사실 그녀는 진작에 강재민을 좋아했고 매년 삼촌 집에 가는 것도 강재민과 가까이 지내기 위함이었다.강재민은 팔찌가 도아린이 만든 것으로 생각해서 착용했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바로 풀어서 안민아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은 그녀에게 호감이 없고 안민아가 설렜다는 그 순간들
“오늘 밤에 진짜 유성이 떨어질까?”소유정은 매트 위에 누운 채 풀잎을 입에 물고 있었다. 내일 녹화해야 할 예능 프로그램 때문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그녀를 위해 유진혁이 기분 전환 삼아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기다려 봐. 보자마자 아무 말도 못 할걸.”유진혁은 손에 든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소유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다가갔다. 자동차 문 옆으로 다리가 보였다.“저 사람...”유진혁은 재빠르게 소유정의 입을 막더니 그녀의 눈까지 가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괜히 방해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소유정은 그의 손가락을 살짝 벌리더니 낮게 속삭였다.“옆에 봐봐.”누가 야외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다른 사람이 찍도록 부탁하겠는가?유진혁도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카메라를 소유정에게 건넸다.“혹시 모르니까 넌 여기서 찍고 있어. 내가 가볼게.”안민아는 의식을 잃은 상태라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차 안의 공간도 좁다 보니 도유준은 구도를 잡느라 바빴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뭐 하는 놈이야!”깜짝 놀란 도유준은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그는 차에서 내리더니 험악한 표정으로 유진혁을 노려보며 말했다.“내 여자 친구랑 놀고 있는데 네가 뭔 상관이야?”“근데...” 유진혁은 고개를 돌리자 촬영하던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당신 여자 친구는 그렇게 즐거운 것 같진 않은데.”“다시 한번만 떠들어 봐. 네 머리통을 박살 내 버릴 줄 알아!”도유준은 트렁크에서 커다란 렌치를 꺼내 들고 유진혁을 향해 걸어갔다.유진혁은 황급히 두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여긴 캠핑장이야. 친구가 여기서 환송회를 하고 있거든? 지금 장소를 옮기는 게 좋을 텐데, 아니면 또 분위기 망칠걸.”도유준은 표정이 복잡해졌다.안민아가 깨어나면 난리 날 테니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안전하겠다 싶었다.도유준은 코웃음을 치고
도아린은 옷으로 안민아를 감싸안으며 그녀가 정신 차리도록 애썼다.“민아야, 나야, 아린이.”“...”안민아는 서서히 의식을 되찾았고 도아린을 보자 잠시 멍하니 있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짐승보다 못한 새끼.”강재민은 도유준을 향해 한 번 더 걷어찼다.그는 이내 피하려다 다리에 갑자기 힘이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작은외삼촌, 안민아가 먼저 저를 찾아온 거라고요! 우린 서로 원했어요!”차 밖에 서 있는 강재민을 본 안민아는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더욱 오열했다.도아린은 그녀를 꼭 안으며 등을 쓰다듬었다.“신고해서 감옥에 처넣을까? 아니면 사적으로 해결할래?”안민아는 흐느끼며 고개를 저었다.명문가의 자녀들은 자유롭게 연애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가문 간의 이익을 위한 정략결혼이 이루어졌다.강재민의 거절은 그녀가 사랑과 결혼을 동시에 이루려던 꿈을 산산조각 냈다.만약 경찰에 신고하면 그녀의 명성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고 다른 가문은 더 이상 그녀와 정략결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더 이상 추궁하지 않는 안민아의 태도에 도유준은 더욱 뻔뻔하게 나왔다.“외삼촌, 전 민아와 결혼할 의향이 있어요.”찰싹!도아린은 그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너 같은 놈은 자격 없어!”도유준은 화를 내려다 이내 강재민을 의식하며 억울함을 삼켰다. 그는 얼굴을 감싼 채 실망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누나, 민아가 날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 아마 욕구를 풀고 싶었던 거겠지. 난 원래 민아를 데리고 가서 깨끗하게 씻긴 뒤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어. 그러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할 수 있었어. 근데 지금 누나가 여기까지 외삼촌을 데려와선 민아를 나한테 시집보내려 하지도 않잖아. 민아 명성을 망치기라도 하려는 거야?”안민아는 순식간에 몸이 굳었다. 그녀는 앞 유리를 통해 도아린을 바라봤다.그녀는 한쪽 얼굴이 부은 채 놀라움과 혼란이 섞인 표정이었다.그리고 고개를 돌려 무표정인 강재민을 보았다. 그는 반팔 티셔츠만 입고 있었고 자신이 걸
도아린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도유준이 풀려났다는 소식을 들었다.진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안민아를 둘러싸고 있었다. 진경수가 가장 먼저 도아린의 기분을 눈치챘다.“풀려났어.”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도아린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진경수는 냉소적으로 말했다.“기다려, 내일쯤 찾아올 거야.”예상대로, 다음 날 강씨 가문에서 찾아왔다.강홍련은 선물을 들고 청혼하러 왔다.진범준과 진수혁 모두 집에 없자 진경수는 아예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강홍련은 문밖에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리다가 결국 돌아갔다.오후가 되어 도아린은 서대은한테서 소식을 받았다.누군가 캠핑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유출했다는 것이다.비록 안민아의 얼굴은 찍히지 않았지만 자극적인 카테고리가 문제였다.[삼촌에게 고백했다 거절당한 뒤 조카와 야외에서 사랑을 나누다]서대은은 급하게 영상을 막았지만 이미 대규모로 퍼졌다면 되돌리기 힘들었다.이 영상을 누가 유출했는지는 뻔한 일이었다.그들은 안민아와 도유준을 결혼시키려 했다.도아린은 가만히 방관할 수 없었다. 그녀는 운전기사에게 차를 준비시킨 뒤 강씨 가문으로 갈 준비를 하던 중 육하경의 전화를 받았다.유은서가 중요한 정보를 자백했다고 한다.보육원에서 선택된 여자아이들이 만약 임신하게 되면 아이를 지우지 않고 남긴다는 것이다.재산을 물려줄 아들이 필요한 경우 고가에 팔리게 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팔려 간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보육원에 남겨져 정부 보조금을 받게 된다.지금 보육원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모두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도아린은 심장이 순간적으로 조여왔다.“그럼 율이는...”“DNA를 추출해 생모를 찾고 있어요.” 육하경은 부드럽게 말했다.“율이의 친엄마를 찾게 되면 신장 이식 가능성이 높아질 거예요.”하지만 도아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율이가 말한 지희와 지수의 생일로 추측하건대 율이의 어머니는 현재 스물네 살에서 스물다섯 살 정도일 가능성이 높았다.인생에서 가장
배건후는 우정윤한테서 성공적으로 구매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재희 씨, 계속 말씀하시죠.” 그는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강재희는 커피를 한 모금을 마신 뒤 도우미가 응접실에서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배씨 그룹이 입찰 중인 그 땅은 알짜배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리고 있어요. 현재 배씨 그룹의 상황으로는 버티기 어려울 겁니다.”배건후는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를 돌리며 입술을 오므렸다.강씨 가문과 한 외국계 기업 모두 그 땅을 노리고 있었다.반년 전이라면 배씨 그룹이 압도적인 우위로 낙찰받았겠지만 최근 프로젝트들을 연이어 빼앗기면서 업계에서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고 심지어 배씨 그룹이 곧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배씨 가문에서 은혜를 보답할 수 없다면 강씨 가문 또한 은혜를 베풀지 말아야겠죠.”싸늘하게 식은 공기가 주위를 무겁게 감싸고 돌았다.“스카이 빌딩은 재민 씨 소유에요. 제 고객을 빼앗는 건 정말 치졸하기 짝이 없는 행위죠.”강재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재민이가 유산을 물려받으려 하지 않고 독립을 고집합니다. 어쩌면 건후 씨를 겨냥한 목적이 있겠지만 아버지께서 그렇게 두지는 않을 겁니다.”강재민이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는 배건후도 잘 알고 있었다.다만 그가 이해하지 못한 건 강재민이 어떻게 도아린과 연관되었는가였다.강씨 가문에서 도아린과 강재민을 반대한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야 배건후는 긴장했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재희 씨, 솔직히 말씀하시죠.”강재희는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더니 느긋하게 소파에 기댄 채 말했다.“강씨 가문은 입찰에서 물러날 수도 있고 건후 씨를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단 건후 씨가 예전에 약속하신 것을 이행한다면 말이죠.”배건후는 라이터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가했다.차가운 시선은 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보미에게 고정되었다.손보미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머뭇거리더니 배건후 앞으로 걸어갔다.“건후 씨, 어제 일을 보고도 모
“가져가세요.” 배건후는 무심하게 말했다. 그리고 잔에 남은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배석준은 화가 치밀어 오른 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네 엄마는 병세가 심해서 사람을 못 알아보는 상태다. 나까지 화병으로 죽게 만들고서야 속이 시원하겠니?”“아버님! 진정하세요. 제가 건후 씨를 잘 설득할게요.”갑자기 뒤에서 손보미가 나타나더니 전화에 대고 말했다.배건후는 즉시 전화를 끊고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건후 씨, 이러지 마. 재희 씨한테 예전 일을 말한 건 아니야. 그냥 내가 건후 씨를 많이 좋아한다고만 했어. 재희 씨가 나랑 마음이 잘 맞아서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뿐이야.”손보미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아련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엠파이어 빌딩의 고객들을 전부 스카이 빌딩에 빼앗겼잖아. 만약 그 땅마저 강씨 가문에 넘어가면 강재민이 건후 씨 위에 올라설 거야. 그때면 아린 씨는...”그녀는 일부러 말을 멈추며 배건후가 스스로 생각하게 했다. 강재민이 더 많은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도아린이 누구를 선택할지 말이다.“아린 씨를 다시 찾고 싶다면 그 땅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 우선 나랑 약혼하자. 그 땅을 차지하고 배씨 그룹이 다시 돌아오면 아린 씨를 붙잡는 것도 가능할 거야. 그리고 건후 씨가 다시 아린 씨를 잡으면 우리의 약혼은 무효로 해도 괜찮아.”배건후는 그녀의 진심 어린 듯한 눈빛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리고 입꼬리 끝에 비웃음을 걸쳤다.“...”손보미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 식은땀이 흐르다 못해 다리마저 떨려왔다.갑자기 문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손보미는 급히 소파를 잡고 일어섰다.검은색 세단 한 대가 문 앞에서 멈췄다. 강재민은 얼른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그는 커다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손바닥으로 차 천장을 받치며 조심스레 보호했다.도아린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숙인 채 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강재민에게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를 표했다.거의 동시에 조수석 문이 열리며 일북이 차에서 내리더
“누가 누구를 불렀는지는 CCTV를 확인하면 알 수 있죠.”강재민은 줄곧 도아린의 곁에 서 있었다.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도아린의 의사에 대해 물었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강홍련은 급히 강재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어제 손님이 그렇게 많았는데 혹시라도 누가 귓속말이라도 한 게 찍혔으면 어쩌려고. CCTV를 보는 건 곤란해!”“재민아.” 강재희가 입을 열었다.그녀는 강홍련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도아린을 겨냥한 자신의 음모를 들킬까 두려웠다.“누가 누구를 불렀든 상관없어요. 아무리 약혼이 되어 있다고 해도 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강압적인 겁니다.”강재희는 단호하게 말했다.“만약 민아 씨가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결혼을 강요할 수 없어요. 아린 씨가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고소 여부는 아린 씨 마음대로 하세요.”강재민은 큰누나의 처리 방식이 불만스러웠는지 냉소적으로 비꼬았다.“집안 CCTV를 못 본다면 바깥 CCTV를 보면 되겠네.”그는 도아린에게 고갯짓하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도아린이 대문 밖에 나오자마자 차 문 옆에 서 있는 배건후가 눈에 들어왔다.그한테서는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도아린과 강재민이 나란히 걸어나오는 모습을 본 배건후의 눈빛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도아린, 너랑 할 말 있어.”그는 손을 뻗어 도아린을 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피해버렸다.“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하세요.”배건후는 강재민을 의식한 듯 그를 힐끗 쳐다봤다.강재민은 전혀 피해줄 생각 없이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건후 씨, 아버님께서 비행기에 타셨어...”손보미는 마치 이제야 도아린을 본 것처럼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배건후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버님께서 좋아하시는 요리가 있으시면 미리 준비해 달라고 할까?”강재민은 흥미롭다는 듯 일을 더 크게 만들었다.“건후 씨는 약혼 얘기를 전하러 오신 거예요?”배건후는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강재민을 때리고 싶은 마음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그는 원래 도
“둘이 정말 약혼하나 봐요.”차가 강씨 가문을 떠난 후에야 강재민은 도아린과 거리를 조금 벌렸다.그는 조용히 도아린을 바라보며 미세한 표정 변화조차 놓치지 않았다.“속상하면 울어도 돼요.”“제가 왜 울죠?”도아린의 눈에는 슬픔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전 기뻐 죽겠는데요.”그녀는 되레 이혼 숙려기간이 지난 뒤 배건후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그런데 지금 손보미와 약혼하게 되었으니 그녀는 진정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도아린은 백미러를 힐끗 보며 물었다.“강씨 가문의 차들은 모두 원격 조종이 가능하다던데요?”강재민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며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뒤따라오던 차는 멈춰 섰다.배건후는 화가 나서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치자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는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린 뒤 근처에 삼각대를 설치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다시 차로 돌아왔을 때 차는 다시 작동했다.다만 강재민의 차는 이미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강재민은 도아린을 바라보며 물었다.“제가 어디서 증거를 가져왔는지는 왜 묻지 않아요?”“재민 씨가 말하는 게 도유준의 증거에요? 아니면 배지유의 증거에요?”도아린이 되묻자 강재민은 잠시 멍해 있다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애써 웃음을 참았다.강씨 가문의 차들은 모두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어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까지 녹화되었다.그는 메모리 카드를 꺼내 도아린에게 건넸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받았다.30분 뒤 강씨 가문의 차는 해남 병원에 도착했다. 도아린과 강재민은 약국을 하나씩 방문하며 찾아다녔다.비록 그들은 CCTV를 마음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문제도 아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배지유가 약을 샀던 약국을 찾아냈다.“이 약은 어떤 용도의 약인가요?”도아린은 같은 약병을 들고 물었다.“이건 우울증 치료제입니다.”새로 출시된 약으로 효
누군가는 사진 한 장을 들고 나타나 말했다.“도아린 곁에 있는 꽃미남이 사실 강재민이래.”과거, 두 사람이 함께 음악 페스티벌에 참석했던 적도 있다는 이야기였다.그 말에 또 다른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소문은 꼬리를 물고 번져갔다.그러던 어느 날.도아린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한 신인 배우가 몰래 찍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 올라왔다.사진 속엔, 두 사람의 머리가 맞닿은 채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그 한 장의 사진은 결국 배건후의 정체를 증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고 그는 다시 한번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이번에도 역시 온갖 의심과 루머 그리고 비난이 따라붙었다.하지만 며칠 후, 연성 경찰청에서 공식 공지문이 게시되었다.바로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기 밀매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 공지였다.공지문에는 고성만, 손보미, 자상훈 등이 인신매매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다 결국 장기 밀매까지 손을 뻗친 사실이 요약되어 있었고 그 수사에 협조한 익명의 자원자들에게 감사의 뜻도 함께 담겨 있었다.그 단 하나의 공지로, 여론은 완전히 반전됐다.정월 대보름, 해남엔 보기 드문 큰 눈이 내리고 있었다.도로는 차들로 가득 막혀 10분이 지나도 백 미터를 채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천천히 가. 우린 여기서 내려서 좀 걸을게.”도아린은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일북에게 말했다.그리고 배건후와 함께 차에서 내려 레스토랑까지 걷기로 했다.배건후는 우산을 펼쳐 도아린의 머리 위에 씌웠다.도아린은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은 외투 주머니 속에 꼭 쥐어져 있었다.“춥지 않아?”그가 우산을 더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안 추워요.”도아린은 입김을 내뿜으며 활짝 웃었다.발밑에서는 바삭거리는 눈이 소리를 냈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래전 기억이 스쳐 갔다.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시절.어느 회사 대표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눈밭에서 몇 시간을 버텼던 그날, 발이 얼어 서 있지도 못하고 결국 쪼그려 앉았던 그 순간
그 여자는 바로 그날 수상 레스토랑에서 진경수에게 벨트를 빌렸던 그 여자였다.하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짧은 티셔츠와 청 반바지 대신 격식을 갖춘 정장 느낌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얘, 내 여동생. 그리고 이 사람은... 우리 제부.”진경수는 ‘제부’라는 단어에서 말끝을 흐렸다.여동생이 혼인신고까지 해놓고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그건 진수혁도 마찬가지였다.“큰형님, 작은 형님.”배건후가 정중히 일어나 인사를 건넸고 도아린은 해맑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오빠들, 호칭 바꿨으니까 용돈 좀 주셔야죠?”“혼인신고도 우리 몰래 해놓고, 무슨 용돈이야?”진경수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배건후를 노려보다가 결국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도아린에게 내밀었다.“다시 내 동생 울리기만 해봐. 그땐 진짜 널 갈기갈기 찢어서 물고기 밥으로 줄 거야. 명심해.”“고마워요, 둘째 오빠!”도아린은 싱긋 웃으며 봉투를 받아들었고 이번엔 진수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진수혁 역시 말없이 봉투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도아린은 봉투를 슬쩍 비춰보며 속으로 웃었다.‘안 봐도 이건 수표네.’그녀는 배건후를 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더니 말했다.“이건 제가 따로 보관할게요.”“감사합니다, 우리 아내님.”“...”진씨 형제들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쯧쯧, 벌써 아내한테 잡혀 사네...’하지만 상대가 도아린이라면, 뭐… 그럴 만했다.“근데, 여기 두 분은?”도아린은 일부러 모르는 척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진수혁은 변슬기를 소파에 앉히며 담담히 말했다.“예전 동료야.”변슬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진경수가 옆에 있던 여자를 품 안으로 확 끌어당기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부모님 말씀대로 아린이 일도 정리됐겠다... 이젠 내 차례지. 그래서 나도 결혼했어.”도아린과 배건후는 동시에 진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둘째 오빠를 좀 본받으세요. 뭐 하세요, 진짜.’“작은 올
“...”집사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건후는 당연하다는 듯 도아린의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고 도아린은 그런 그를 집사에게 소개했다.“이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 서재랑 아버지, 어머니, 큰오빠, 둘째 오빠 방만 빼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게 해주세요.”두 사람은 짐을 정리하자마자 곧장 외출에 나섰다.“앞에 있는 만둣가게, 진짜 맛있어요!”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도아린의 시선은 창가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던 진수혁에게 향했다.그 맞은편에는 변슬기가 앉아 있었고 다소 곤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설득 중이었다.“여긴 패스트푸드점이에요, 카페가 아니라고요. 여기서 일하시는 건 좀...”“카페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난 괜찮은데?”“그렇긴 해도 이렇게 계속 앉아 계시면 저희 가게 영업에 방해된다니까요!”그때 도아린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변슬기는 반가움에 벌떡 일어났다.“도 선생님! 대표님 좀 말려주세요!”그 말에 진수혁은 고개를 돌리며 태연하게 말했다.“밥은 먹었어? 여기 만두 꽤 괜찮더라.”도아린은 황당함에 헛웃음이 났다.‘사람을 회사에서 내쫓아 놓고선 정작 본인은 여기에 눌러앉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진짜.’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내가 말할게.”도아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변슬기와 함께 옆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그사이 배건후는 주머니에서 혼인관계증명서를 꺼내 진수혁 앞에 내려놓았다.“제가 이겼어요.”“...”진수혁은 조용히 종이를 펼쳐보고는 이를 악물었다.“너 이거 반칙 아냐?”“우린 내기했잖아요. 졌으면 인정해야죠.”“유럽 연수 그 자리, 잊지 말고 제 이름으로 신청해 주세요.”진수혁은 고개를 돌려 도아린을 바라보았고 마침 도아린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둘의 눈이 마주쳤고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이 분위기 뭐야... 완전 닭살 돋게 하네.’그 순간, 배건후는 시선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형님도 제가 예전에
‘정말로 배고픈 거야? 아니면 날 원하는 거지?’도아린은 배건후를 흘끗 쳐다보며 가위를 테이블 위에 놓고는 끌려가 밥을 먹었다.배건후의 요리 실력은 한층 더 늘어 있었고 맛뿐만 아니라 음식의 모양새도 훨씬 좋아졌다.“이제 영양식은 안 드세요?” 도아린은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 “전에 어떤 사람이 고기도 안 먹고 기름진 것도 안 먹고 오래된 것도 안 먹고 부드러운 것도 안 드셨잖아요!”배건후는 매운 닭 요리를 그녀 앞으로 밀어놓으며 진심으로 사과했다.“그때는 네 관심을 끌려고 그런 거야. 그리고 몸매가 망가져서 네가 싫어할까 봐 걱정도 됐고.”“그럼 이제는 몸매 망가지는 거 걱정 안 해요?”도아린은 고기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배건후는 가볍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원래 한 사람이 요리하면 다른 한 사람이 설거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배건후는 도아린에게 설거지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그녀를 안아 위층으로 올라갔다.도아린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큰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배건후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녀를 삼켜버릴 듯한 눈빛을 보였지만 쉽게 다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도아린은 그가 마음속 어둠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음을 알았다.그녀는 그의 목을 감싸안고 몸을 들어 올려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며 달랬다.“천천히 해도 돼요.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세요.”도아린의 위로는 곧 배건후에게 그대로 되돌아왔다.그의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그녀의 흰 목 위로 떨어졌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 “도아린, 힘 빼... 너무 긴장했어...”도아린은 그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손가락은 그의 입에 물려 있었다. 그 후, 그녀는 머릿속이 멍해졌고 마치 거친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작은 배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재미를 본 배건후는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도아린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마치 어젯밤 온몸이 부서졌다가 다시 조립된 것처럼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았고 특히 허리
“배 대표님! 모든 자산을 도 대표님께 넘기신 것은 이전에 하신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셔서인가요? 손보미 씨가 형을 선고받았다고 들었는데 손보미 씨를 꺼내줄 계획이 있으신가요?”배건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기자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인터뷰의 주제는 챔피언십 선수들의 숙식 안전입니다. 개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겠습니다.”기자들이 더 질문하려 하자 도아린이 배건후의 손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숙식 문제에 대한 더 나은 제안이 있다면 제안서를 작성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수한 의견을 채택하고 그에 따라 보상을 제공할 예정입니다.”도아린은 카메라를 향해 당당하고 품위 있게 말했고 입가의 미소를 살짝 거두며 한층 위엄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제 개인적인 문제로 여러분의 시간을 뺏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배건후 씨에 대해서는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배건후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도아린이 배건후에 대해 말하려 하자 기자들은 앞다투어 마이크를 내밀었다.도아린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배건후 씨는 여태까지 운영부의 팀장이었지만 오늘부터는 한경 그룹의 특별 자문입니다. 이후의 직책은 배건후씨의 능력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도아린의 시선은 배건후가 도아린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를 거냐고 묻던 기자를 향했다.“과학 연구자, 의학 전문가, 스포츠 선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여성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성을 존경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모욕해서는 안 됩니다.”그러자 그 기자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갔다.다른 기자들도 더 이상 질문을 할 기세를 잃었고 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고유리를 보며 말했다.“기자분들 고생 많으셨으니 저녁 식사 후 차량을 준비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고유리는 기자들을 데리고 나가며 각자에게 돈 봉투를 나눠 주었다.그들은 어떤 내용을 발표할 수 있고
“뭐라도 먹고 가자.”배건후는 구운 닭 날개는 도아린에게 건네주고 주현정에게는 구운 식빵을 건네주었다.주현정은 빵을 받아 들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렴. 나는 물 좀 마시러 들어갈게.”도아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서 멈췄다.두 사람은 강가의 평평한 돌 위에 앉았다.“엄마는 진짜 다 내려놓으신 걸까요?”“적어도 시작은 하신 거지. 앞으로 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와 함께 여행 다니면 점차 나아질 거야.”배건후는 핸드폰을 꺼내고는 방금 구 경관이 보내온 사진을 열었다.“남궁유민, 즉 고성만이야. 경찰이 고성만의 집을 수색할 때 이걸 발견했어.”도아린은 마지막 닭 날개를 입에 넣고 꼬챙이를 배건후에게 건네며 핸드폰을 받아서들었다.화면 속 사진에는 루비 목걸이가 찍혀 있었다.배건후가 큰돈을 들여 샀던 화려한 디자인의 목걸이지만 전에 잃어버렸던 목걸이였다.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며 말하려 했지만 입안은 닭 날개로 가득 차있어 눈만 깜빡였다.“내가 전에 너한테 줬던 그 목걸이야. 배지유가 몰래 차다가 잃어버렸던 거.”도아린의 입은 마치 발골 기계 같았다. 닭 날개가 입에 들어갔다 나올 때면 뼈만 남았다.도아린은 손바닥에 뼈를 뱉고는 차분하게 말했다.“배지유가 어떤 남자와 잤고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녀를 영상으로 협박했어요. 그 장본인이 바로 고성만이라구요!”“...”이번에는 배건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성만이 배지유를 협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걸이를 철저히 숨겨놓고 분해해서 이미 팔아버렸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걸 집에 보관해 놓았을 줄은 몰랐어.”그것은 고성만이 자신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보험이었다.궁지에 몰리게 되면 목걸이를 분해해 팔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살 계획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체포당하고 말았다.다음 날, 도아린은 연성으로 돌아갔다. 배건후가 신청한 챔피언십 대회 접대 임무가 승인되었기 때문이다.진수혁 역시 변
그는 입가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자고충이 하나가 될 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앞으로 잘못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을 거야.”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한다면 그 고통으로 인해 결국 죽게 될 것이다.도아린은 배건후의 머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들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썼다.배건후는 그녀의 품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어서 너에게 혼수로 바칠게. 네가 나를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래도 나는 너를 평생 지켜줄 거야.”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남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그렇게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빛이 어두워질 때까지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돌아가자.”배건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다리를 움직이며 불편했던 자세를 바꿨다.“이 근처에 야생 동물은 없지만 해가 지면 안전하지 않아.”도아린은 처음에는 감정에 휩싸여 배건후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가 몸을 움직이자 그녀는 즉시 이상함을 느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돌아갈 때 건후 씨 몸이 불편하니까 제가 태워드릴게요. 그리고 내리막길이라 힘도 덜 들 거예요.”“알았어. 네 말 들을게.”자전거 핸들이 비뚤어져 있었지만 배건후는 두 다리로 바퀴를 단단히 고정한 후 힘껏 돌려 단숨에 바로 고쳤다.도아린이 자전거 앞좌석에 타고 배건후는 그녀 뒤에 앉았다.그는 얼굴을 그녀의 등에 기댄 채 내리막에서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긴 다리를 쭉 뻗어 마찰력을 늘리며 조절했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수혁과 변슬기도 막 돌아오고 있었다.변슬기는 도아린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도아린은 그들이 뭔가 진전이 있을 줄 알고 가서 물어보려 했지만 배건후가 붙잡았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 머리 위에서 붉은 잎 하나를 떼어냈다.“...”변슬기와 진수혁이 설마 자신과 배건후가 야외에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배건후는 오직 도아린에게만 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도아린은 그의 눈동자 속에 가득한 붉게 물든 단풍잎과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마음속 깊이 즐거워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의 깊고 그윽한 눈이 가늘게 감기며 그 속에는 격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그래, 이거지!’그녀는 올해 겨우 25살이었다.어린 시절 양부모 곁에서 사랑받지 못했고 장애를 겪은 후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돌보며 결혼 생활에서는 남편의 감정적 학대 속에서 버텨야 했다.그녀는 너무도 많은 행복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이게 맞는 일이다.그녀는 웃어야 한다. 크게 소리 내어 마음껏 웃어야 한다.고작 25살에 불과한 그녀가 이토록 많고 무거운 책임과 압박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눈앞 여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고 배건후의 심장도 저릿해 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거친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스쳤고 천천히 그녀의 눈꼬리를 눌렀다.“웃어. 앞으로 나쁜 감정들은 전부 나한테 넘겨. 내 앞에서는 일부러 강한 척 버틸 필요도 없어. 속상하면 때리고 욕해도 돼. 대신에 절대 자신을 괴롭히지 마.”도아린은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 뒤돌아 눈물을 닦으려 했다.그 순간 힘센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특유의 나무 향기가 그녀를 감쌌고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여태까지 내가 나쁜 놈이었어. 미안해. 앞으로는 모든 일을 너와 상의할게.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 거고 네가 속상해할 일도 만들지 않을 거야.”도아린은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입만 살아서!”배건후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운 뒤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도아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직 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지도 못했잖아요. 그리고 저도 아직...”이후의 말은 더 이상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상자를 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청혼의 반지가 아니었다.작고 빨간 벌레가 들어 있었는데 다리가 없고 온몸이 부드러웠으며
변슬기는 바쁜 듯 뒤돌아보며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좋아요." 진수혁은 흔쾌히 대답했다. 이미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배건후는 세 사람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빌라에는 자전거가 두 대 있었는데, 도아린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일부러 다른 자전거의 페달을 떼어 놓았던 것이다. 도아린은 자전거를 보고 그에게 너 정말 얄밉다'는 눈빛을 보내며 빨리 고치라고 신호를 보냈다. 자전거를 고치고 네 사람은 문밖으로 나갔다. "꽉 잡아."배건후는 도아린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자 힘껏 페달을 밟았고, 자전거는 비탈길을 미끄러져 작은 길로 향했다.변슬기는 진수혁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자전거 뒤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진수혁은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저, 제가 밀어드릴까요...거의 정상에 도착하면, 그때 저를 밀어주세요."라고 제안했다. 진 대표님의 속도로는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할지 내기는커녕,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수혁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거의 넘어질 뻔했고, 황급히 남자의 허리를 붙잡았다. 자전거는 갑자기 비틀거리지 않았고, 속도도 빨라졌다. 변슬기: "..."배건후는 도아린을 태우고 산길을 누볐고, 도아린은 뒤쪽 페달을 밟으며 일어섰다.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짧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렸다. "산속 공기가 도시보다 훨씬 좋네요. 매연 냄새도 없고, 에어컨 냄새도 안 나고." 배건후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살짝 몸을 일으켰다. "어제 비가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신도 비 온 뒤 흙냄새 좋아해요?"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귓가에 웃으며 말했다. "나도 좋아해요! 비 온 뒤 흙과 풀이 섞인 냄새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 배건후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아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깨달았다. 배건후가 말한 것은 바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환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