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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화

작가: 온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2-12 19:00:00
에이트 맨션에서는 배건후가 팔뚝에 둘렀던 거즈를 뜯었고 한 마디 정도 되는 상처에서는 아직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배건후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두 모금 세게 빨아들였다.

그는 상처를 잡았다. 신음을 내며 맨정신에 상처를 벌렸다.

원래도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하게 질렸고 구레나룻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그는 피가 흐르고 엉망이 된 상처를 보고 만족스럽게 손을 거두었다.

배건후는 천천히 담배를 피우며 고통을 삼켰고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버린 다음 일어나서 욕실로 갔다.

이튿날, 도아린은 구청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도록 배건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설마 안 나오려는 건 아니겠지.”

진경수는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도아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배건후는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어제 자신이 그렇게까지 말한 마당에 약속을 어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쓸데없는 손보미의 일에 발목이 잡혔을 수도 있다.

“5분만 더 기다려요.”

배건후가 안 온다면 회사로 찾아갈 생각이었다. 어떻게 됐든 오늘 꼭 이혼해야 했다.

3분 뒤, 배건후한테서 전화가 걸려왔고 도아린은 전화를 받아서 재촉했다.

“건후 씨, 당신 지각했어요.”

“사모님, 대표님께서 병원에 실려 가셨어요!”

우정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건후는 워커홀릭이었는데 휴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오늘 회사에도 나오지 않았다. 우정윤은 배건후가 전화를 받지 않자 집으로 그를 찾으러 갔다. 차는 문 앞에 세워져 있었고 벨을 아무리 눌러도 문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경비실에 가서 비상열쇠를 가지려고 했는데 마침 가정부가 도착했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에 누워있는 배건후가 보였다.

고열로 인해 정신을 잃었다.

도아린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배건후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미간을 찌푸린 채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다.

우정윤은 서럽게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고 있었다.

“아린 씨가 티파니 주얼리를 대표해서 대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도 대표님은 바쁜 와중에도 유명한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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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윽한 눈동자의 시선이 요동쳤고 예전처럼 날카롭지 않았다.배건후는 손을 움직여 링거팩이 부딪치는 소리를 냈고 우정윤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대표님!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의사가 열이 더 내려가지 않다가는 머리가 잘못될 수 있다고 얘기하셨습니다.”“...”배건후는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바보인 척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몇 시야?”배건후는 고열 때문에 목이 말라버려서 침을 몇 번 삼키고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우정윤은 우는 얼굴로 대답했다.“거의 10시입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어요.”배건후는 손으로 주삿바늘을 빼려고 했고 우정윤은 당황해서 그를 제지했다.“빼면 안 됩니다! 대표님이 혈관이 가늘어 간호사가 세 번이나 찔렀습니다. 반드시 수액을 다 맞아야 합니다.”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도아린은 마음이 약해져야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정윤은 알고 있었다. 의사는 배건후의 상처가 벌어진 게 외부 작용에 의해서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본인을 괴롭히는 이유가 구청에 가기 싫은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우정윤은 대표님을 위해 좋은 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그게 잘 먹히지는 않는 모양이었다.“그럼 우리는 가서 다른 일을 볼까?”진경수는 두 사람의 뜻을 진작에 알아차리고 도아린에게 눈치를 줬다.도아린은 핸드폰을 꺼냈다.“그럼 오후 두 시로 예약하죠. 그때 봐요.”“사모님, 사모님!”우정윤은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대표님, 도지현 씨를 다치게 한 것은 성 팀장님인데 사모님께서는 지금 대표님 탓으로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배건후의 눈빛은 다시금 날카로워졌고 주삿바늘을 빼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우정윤이 아무리 말려도 배건후는 회사로 갔다.여섯 명의 비서가 일제히 한 줄로 서서 고개를 숙이고 상사의 억압적인 시선을 받고 있었다.핸드폰을 책상에 던지며 나는 소리가 침묵을 깨뜨렸다.“너희들 다 누구 사람이야. 먼저 인정하는 사람은 퇴직 증명서를 받을 수 있어.”그에게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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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한 번의 거절   제375화

    그들은 회장님을 두려워했고 그렇게 큰 작용을 할 건 아니라서 그저 모건 그룹의 근황을 유출하면 됐었다.우정윤은 배건후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배석준은 권력을 내려놓은 듯 보였지만 배건후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쳐보고 있었다. 요즘 프로젝트에 연달아 문제가 생긴 것에 그가 참여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는 것이다.가족에게 배신당하고 아내에게 버려진 대표님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쌌다.자백하는 시간이 끝나고 비서팀에는 아무 일 없이 깨끗한 두 명의 베테랑을 빼고는 모두 해고되었다.비서팀이 대대적으로 인사를 바꾸니 회사 고위층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모건 그룹의 세상이 바뀌려고 그러나?...도정국은 약속한 시각에 납품했지만, 불량품이 절반이 넘었다. 상대방은 계약 위반이라고 고소했고 세 배가 되는 위약금을 지급하라고 했다.도정국은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상대방을 초대했고 배건후의 장인어른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상대방이 물러서게 만들 예정이었다.“재료들은 아직 수출하지 않았으니 손실도 없잖습니까.”도정국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보상으로 모건 그룹과 협력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요. 어때요?”“어떻게 도와줄 건데요?”상대방은 의아해했다.“모건 그룹과 협력하는 조건은 아주 까다롭습니다.”“저는 배건후의 장인어른이에요. 장인어른의 체면은 세워줄 겁니다.”상대방은 망설이다가 말했다.“그렇다면 이따가 저희 사장님과 얼굴 보고 얘기하세요.”도정국은 무척 만족스러웠고 다리까지 꼬았다. 인맥이 있으면 바보가 될 일은 없다.이럴 줄 알았으면 납품해서 품질검사를 할 때 배건후를 들먹일 걸 그랬다. 그렇다면 불량품이 많아도 받아줬을지도 모른다.돈을 버는 좋은 기회는 놓쳤지만, 지금은 돈을 배상하지 않는 게 목표였다.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상대방은 얼른 일어나 문을 열고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사장님, 오셨습니까?”도정국은 일어나지 않았고 심지어 그의 시선에서는 무시하는 경향까지 있었다.모건 그룹과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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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배건후는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얼굴이 창백한 채 눈가는 붉어져 있었다. 그녀의 앞을 지나칠 때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열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그는 여전히 고열 상태였다.“들어가자.” 배건후는 쉬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도아린은 발걸음을 옮겨 그를 따라갔다.그에 대한 실망은 이미 충분히 쌓여있었고 일부러 아픈 척해도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우정윤은 뒤를 바짝 따라다니며 그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혹시라도 배건후가 갑자기 쓰러질까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구청 직원은 이혼 협의서를 받아 들더니 형식적인 물음을 건넸다.“두 분은 합의로 이혼하시는 건가요?”“네.” 도아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반면 배건후는 침묵을 지켰다.구청 직원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서류상으로는 여자가 손해 보는 것 같은데 지금 모습을 보면 남자가 더 안쓰러워 보였다.배건후는 주먹을 느슨하게 쥔 채 입가에 대고 기침을 했다.창백했던 얼굴은 기침으로 인해 금세 붉어졌고 건장한 체격마저 오늘따라 왠지 허약해 보였다. 아마 열이 심하게 나는 것 같았다.“이렇게 아프신데 조금 더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구청 직원은 약자 편에 서 있는 듯했다.“더 생각할 필요 없어요.”도아린은 그녀가 돌려준 협의서를 다시 밀어 넣으며 말했다.“빨리 처리해 주세요. 이분 여자 친구께서 기다리고 있어요.”“...” 배건후는 말없이 도아린을 쳐다봤다.그는 눈동자가 붉게 충혈된 채 또 기침을 몇 번 뱉었다.그녀는 그런 그를 경멸했다.평소엔 그렇게 오만하더니 이제 와서 약한 척, 불쌍한 척하는 배건후가 역겨웠다.손보미를 자주 만나다 보니 그녀에게 연기라도 배운 건가 싶을 정도였다.구청 직원은 배건후를 안쓰럽게 바라봤다.그는 뚜렷한 이목구비에 훤칠한 기럭지를 뽐냈고 손목에 찬 시계만 해도 최소 억대는 되어 보였다. 배건후는 도착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도아린이 재촉하는 모양새였다.같은 여자로서 구청 직원은 도아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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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울했던 안민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입술을 떨며 차마 말을 하지 못하였다.도아린이 통화 내용을 들을까 봐 일부러 물을 틀어놓았는데 어떻게 이리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일까?“아직도 도유준 편을 들고 싶어?”도아린은 그녀의 주머니에 손을 뻗어 핸드폰을 찾았다. “도유준한테 전화한 거 맞잖아.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또 도유준한테 속아 넘어간 거야?”안민아는 괴성을 지르며 급히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움켜쥐었다. 통화기록을 절대 도아린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에요. 핸드폰 뺏지 말아요.”“도유준 그 자식이 또 널 속인 거지? 걱정하지 마. 내가 단단히 혼내줄게.”겉으로는 안민아를 걱정하고 있는 척했지만 사실 도아린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그러나 핸드폰을 꺼내려고 할 때마다 안민아가 한사코 그녀를 막았다.당황스러운 얼굴의 안민아는 안준휘에게 몇 번이나 도움의 시선을 보냈다. 이때, 안준휘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끊고는 언짢은 얼굴로 도아린을 쳐다보았다. “강요하지 말거라. 말하기 싫다는 애를 왜 그리...”“왜요?”손을 놓던 도아린은 시선을 안민아에게 돌리더니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했다.“설마 강재민 씨야?”“아니에요. 누구와도 약속한 적 없었어요.”“통화 기록은 양측한테 다 있는 거잖아.”이때, 윤명희가 갑자기 현관에 나타났다. 마트를 다녀온 윤명희는 식재료를 하인에게 건네주고는 손수건을 받아 손을 닦으며 안민아를 향해 걸어왔다. “민아야, 통화 기록은 양측한테 다 있는 기록이야. 나중에 도유준이 기록이라도 내세워 네가 먼저 만나자고 했다면 그땐 어떡할 거니? 차라리 지금 사실대로 털어놓거라. 그래야 우리도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안 그래?”안민아는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만약 손보미와 손을 잡고 도아린을 음해한 사실을 진씨 가문에서 알게 된다면 결혼을 물론 사업도 물 건너가고 원수가 되고 말 것이다. 고민 끝에 안민아는 결국 자신이 도유준에게 전화를 걸

  • 또 한 번의 거절   제475화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으로 인해 깜짝 놀란 강홍련은 무의식적으로 반박하려 하였다.오늘의 일은 네 몫도 있는데 여기서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고.그러나 문 뒤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를 보니 온몸의 피가 차가워지는 듯했다. “배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그녀는 재빨리 도정국의 뒤에 몸을 숨기며 극구 변명했다.“오해하지 말아요. 난 그런 적 없으니까. 손보미 씨가 한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안민아가 그런 거예요. 내 아들과 결혼하고 싶어서 꾸민 짓이고 그걸 도아린한테 뒤집어씌운 거라고요.”옆에 있던 손보미가 그녀를 노려보며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걸 배건후는 눈치채지 못하였지만 도정국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눈빛을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들이 합심하여 도아린을 모해하려고 일을 꾸몄다가 오히려 도아린에게 당한 것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금속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배건후가 차가운 눈빛으로 도정국을 쳐다보았다. “도아린이 도유준의 성을 내일 당장 바꾸겠다고 했어요.”거절하려는 도정국을 보며 손보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도유준까지 시궁창에 끌어들이지 말아요. 강씨 가문의 사람이 되면 그래도 명문 가문의 도련님으로 인정받는 거니까. 다른 사람은 꿈도 못 꾸는 일이죠.”그녀는 필사적으로 강홍련에게 눈짓을 했고 강홍련도 따라서 도정국을 설득하기 시작했다.화가 치밀어 입술이 파랗게 질렸지만 도정국은 타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잠시 후, 손보미와 배건후가 자리를 뜬 뒤, 그가 강홍련을 발로 차서 바닥에 넘어뜨렸다.“이게 다 당신 탓이야. 이 여편네가 생각이 있는 건지.”문득 도아린의 말이 생각났다. 그동안 도정국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걸 생각하면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당신, 내가 강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죠? 정은채 그 여자의 모든 것을 다 빼앗고도 한편으로 달콤한 말로 날 속이고 훗날 날 이용해 강씨 가문의 덕을 보려고 한 거 아니에요?”“그게 무슨

  • 또 한 번의 거절   제474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불안해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그가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차가운 남자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또 도아린 괴롭히러 간 거야?”“아니. 그런 거 아니야.”손보미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우리도 강씨 가문에 가서야 아린 씨가 있는 걸 알게 되었어. 그리고 지유가 아린 씨한테 사과도 했고.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은 다 잊기로 했어. 안 그래? 지유야.”“맞아요. 도아린 씨가 나한테 꽃까지 줬어요. 휠체어에 있는 꽃잎이 바로 그 꽃이에요. 우리 화해했어요.”그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꾹 누르며 차가운 눈으로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 원한을 다 풀었다면 도아린이 준 꽃을 이리 으스러뜨렸을까?그의 어두운 눈빛이 쇠 방망이처럼 배지유의 가슴을 두드렸고 그녀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오빠, 보미 언니. 나 다리가 너무 아파요...”그 말에 손보미는 급히 의사를 찾아갔다. 그녀가 병실을 나간 뒤, 배지유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배건후를 쳐다보았다. “오빠, 이제 곧 보미 언니랑 결혼할 거잖아요. 오빠가 그렇게 말하면 언니가 많이 상처받을 거예요. 내 기분 풀어주려고 언니가 날 강씨 가문에 데리고 간 거예요. 재민 씨가 도아린 씨를 초대할 줄은 우리도 정말 몰랐어요.”“도아린 씨가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버린 남자를 언니가 주워가는 거라고. 그래도 보미 언니는 화 한번 내지 않았어요. 정말 도아린 씨 괴롭히려고 간 거 아니에요. 그리고 내가 지금 이런 꼴인데 누구를 괴롭혀요?”잠시 후, 손보미는 의사를 데리고 들어왔고 의사가 배지유 다리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연성에서 오느라고 수고했어. 얼른 가서 쉬어. 지유도 푹 쉬라고 해야지.”손보미가 그의 팔짱을 끼려고 하는데 그가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얌전히 병원에 있어. 합병증이라도 생기면 그땐 정말 다시 일어설 수 없을 테니까.”그가 차갑게 배지유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이불을 움켜쥐고 고개를 떨구고 있던 배지유의 눈빛에 원망이 가득했다.

  • 또 한 번의 거절   제473화

    고개를 들어 올리는데 그녀의 눈은 여전히 부어 있었지만 눈빛은 매우 날카로웠다.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는 그녀의 얼굴에 조롱이 깃들여 있었다. “여동생의 일은 양가 어르신들께서 결정할 문제예요. ‘봉황의 시대’는 덕과 재능을 겸비한 사람을 찾아 관리할 생각입니다.”그 말에 강태식의 안색이 굳어졌다. 나한테는 덕이 없다는 뜻인가?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가진 그는 얼마 전에 일흔여덟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아직까지 혈기 왕성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검버섯과 주름살이 가득했다. 늘어진 눈꺼풀이 날카로운 시선을 감추었고 그가 도아린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어린 계집애가 복수를 위해 강씨 가문까지 이용하려 들다니...침착하고 생각이 깊은 계집애군. 그러나 이런 사람은 양날의 검이었다.“배건후와 이혼했다는 소문은 들었네. 괜찮은 젊은 친구들을 내가 좀 알고 있는데 소개해 줄까? 우리 재민이는 외국에서 자라서 성격이 방탕하고 좋은 남자가 아닐세.”“아버지. 어떻게 아들을 그리 비하할 수 있어요?”“널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도아린 양한테는 네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그의 태도는 명확했다. 도아린을 강씨 가문의 며느리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 말에 도아린도 피식 웃었다. “어르신, 제 결혼은 저희 부모님께서 신경 써주실 거예요. 그리고 여자가 꼭 시집을 잘 가야 잘 살 수 있다고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안 그래요? 강재희 씨.”차를 마시던 강재희는 흠칫했다. 짙은 속눈썹을 드리운 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태식은 단목구슬을 꽉 움켜쥐었다. 아주 빈틈이 없구나. 네가 강씨 가문의 주가를 통제할 수 있을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해남병원. 병실 문을 들어오던 배지유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오빠? 오후에 도착한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 손보미를 쳐다보았다. 서둘러 돌아온다고 했는데 결국 한발 늦은 것이다. 그는 창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창문이 반쯤 열려있었고 창턱의 재떨이

  • 또 한 번의 거절   제472화

    “그건 안돼.”강홍련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안민아 씨, 전에도 하마터면 우리 아들의 명예를 망가뜨릴 뻔했었죠. 그런데 오늘 또 똑같은 수법을 쓰는 거예요? 손보미와 배지유는 소리를 듣고 문을 두드린 거예요. 원하지 않았다면 왜 처음부터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건가요?”“숨어 있으면서 도아린이 찾는 데도 잠자코 있었죠. 그런데 뭐예요? 우리 아들한테 책임질 일까지 해놓고 모른 척하는 거예요? 사람들한테 들켰다고 지금 우리 아들한테 다 뒤집어씌우냐 말이에요?”강홍련의 말솜씨에 안민아는 할 말이 없어졌다. 한편, 안준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손에 든 찻잔을 꽉 움켜쥐었다. 양측이 심하게 다툴 때, 강재희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정국의 빚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예요?”거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날뛰던 강홍련은 갑자기 얼굴이 굳어진 채 눈빛이 흔들리면서 안절부절못하였다.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던 안준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당신들 지금 내 딸한테 그 빚을 갚으라고 할 생각인 거야? 이러고도 우리 안씨 가문을 모해하지 않았다니...”강홍련이 뭐라 변명하려 할 때 강재희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아섰다. “도유준이 성을 바꾼다면 도정국의 채무는 그와 무관해요. 그리고 언니가 이리 결혼도 안 한 신분으로 성이 다른 아들을 데리고 있는 건 보기에도 안 좋아요.”현재 강씨 가문은 강태식과 그의 자식들이 절대적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강재희가 딸이긴 해도 맏이로서 이미 회사 일을 많이 인계받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강재희의 뜻이 곧 강태식의 뜻이기도 했다. 강홍련은 내키지 않았지만 도유준은 내심 기뻤다.도정국의 빚을 갚을 필요가 없게 되었고 또한 강씨 가문의 도련님이 되었으니 남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강씨 가문에서 준비한 예단도 받을 수 있고 안민아를 괴롭히고 도아린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난 좋아요.”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로 향해

  • 또 한 번의 거절   제471화

    안민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뺨을 세게 내리쳤고 그녀는 바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천한 계집애.”“아빠?”당황한 그녀는 자신의 목과 다리에 난 자국들을 가리려고 했지만 도저히 가릴 수가 없었다. 안준휘가 앞으로 한 발짝 더 다가와 뺨을 치려는 그때, 도유준이 그를 막아섰다.“민아와 저 서로 좋아하는 사이입니다. 민아랑 결혼하고 싶습니다.”“아니요. 난 싫어요... 난 원하지 않았어요.”고개를 가로젓던 안민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도아린을 바라보았다.“차를 마시고 나서 몸이 안 좋았어요. 언니가 쉬러 가자고 했는데 일어나보니...”그 말에 안준휘는 독살스럽게 도아린을 노려보았다. 도아린의 손에는 손수건이 들려 있었는데 그건 강재민이 그녀를 위해 준비해 준 것이었다. 미리 양파즙을 발라놓은 손수건으로 눈을 닦자 이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마신 차는 민아가 나한테 준 거예요. 똑같은 차를 마셨지만 난 아무 일 없었고요.”그녀는 기억을 되짚어 보는 척하며 말을 이어갔다. “민아가 화장실에서 돌아온 뒤, 차에 감귤향이 난다고 하는 말에 민아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어요.”안민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도아린이 자신의 계획을 미리 알아차리고 화장실을 간 사이 찻잔을 바꿔치기 했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손보미 배지유와 얘기를 나눈 적이 없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한편, 강씨 가문에서 이런 일이 생긴만큼 좀처럼 나서지 않던 강태식도 그 자리에 나타났다.강재희가 강씨 가문을 대표하여 입을 열었다.“안민아 씨, 도유준이 당신을 강요한 건가요? 아니면 두 사람이 서로 원해서 생긴 일인가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솔직하게 대답해요.”“도유준이 강요한 거라면 경찰에 신고하죠. 우리 가문은 절대 감싸고 돌지 않을 거예요. 만약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면 도유준이 우리 가문의 먼 친척이긴 해도 우리 가문에서 예단을 준비하도록 할게요. 절대 안민아 씨를 섭섭지 않게 할 거예요.”안민아

  • 또 한 번의 거절   제470화

    “이 사람들이 다짜고짜 쳐들어온 거야.”몸을 감싸고 싶었지만 이불이 안민아의 몸을 감싸고 있어 어쩔 수가 없었다.잡아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자 그는 아예 안민아의 치마를 잡아당겨 앞을 막았다. 손보미는 비명을 지르며 급히 몸을 돌리고 서둘러 배지유를 데리고 발길을 돌렸다.“이제 그만 나가자.”그러나 도아린이 어찌 그들을 그냥 이대로 돌려보낼 수 있겠는가? 모해를 하려다가 실패하니까 도망갈 생각인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민아 봤어요? 발꿈치가 닳아서 하인에게 연고 좀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이불 밖으로 드러난 발이 빠르게 움츠러들었다. 손보미는 고개를 저었다.“글쎄. 다른 데 가서 찾아봐.”도아린이 길을 비켜주길 바랐지만 도아린은 문 앞에서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방에 있는 여자가 나라고 생각한 거야? 또 날 모함할 생각이었네?”손보미는 휠체어 손잡이를 꽉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휠체어로 도아린을 날려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화가 치밀어오른 배지유는 다들 말이 없자 먼저 입을 열었다.“도아린 씨 핸드폰이 방안에서 울렸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러니까 멋대로 사람 오해하지 말아요.”“내 핸드폰은 사촌 동생이 가지고 있어요. 핸드폰이 방에 있다는 건 민아도 이 방에 있다는 뜻인데.”얼굴이 싸늘해진 그녀가 경계에 찬 눈빛으로 손보미를 쳐다보았다. “지난번에 날 음해하려다가 실패하니까 이젠 내 여동생한테까지 분풀이를 하는 거야?”“나 아니야.”말을 하던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휠체어 손잡이를 꽉 잡았다.“지난번에도 날 모욕했었잖아. 도대체 왜 또 이러는 거야? 내가 건후 씨랑 결혼하게 되니까 질투하는 거야?”차갑게 콧방귀를 뀌던 도아린은 들고 있던 꽃다발을 서랍장에 던져버렸다.“재민 씨, 내 핸드폰으로 다시 전화 걸어줘요. 핸드폰에 민아 연락처 있으니까 어디 한번 전화해 보죠. 민아를 찾지 못하면 오늘 누구도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해요.”배지유는 급한 마음에 손보미를 돌아보았고

  • 또 한 번의 거절   제469화

    “아린 씨는요?”“발이 아프다고 하인에게 게스트룸으로 안내해달라고 한 것 같아요.”말을 하던 손보미가 배지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너도 휠체어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어. 가서 좀 쉴래?”“그래요.”세 사람은 이내 게스트룸으로 향했고 하인이 문을 열 때, 건너편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손보미는 이내 배지유의 귀를 틀어막았다. 혹여라도 배지유가 나쁜 물이 들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한편, 안색이 굳어진 강재민이 앞으로 다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뜨겁게 달아오른 방안의 두 사람은 노크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였다.“아린 씨. 아린 씨, 어디 아픈 거야? 의사라도 불러줘?”그 누구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도아린이라고 한 적이 없지만 손보미는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기에 바빴다. 얼굴이 한껏 어두워진 강재민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고 도아린의 전화가 방안에서 울리기 시작했다.손보미는 애써 득의양양한 표정을 감추고는 문을 더 세게 두드렸다. 강씨 가문의 모든 사람에게 이 일을 알리고 싶다는 듯이 그녀는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아린 씨, 문 좀 열어봐. 걱정돼 죽겠어. 건후 씨랑 이혼은 했지만 그렇다고 강씨 가문에서 이런 사고가 나면 안 되는 거잖아.”강재민의 눈빛에 살기가 가득했다. 문고리를 잡고 있는 힘껏 당겼지만 안에서 문을 잠가버린 상황이었다.“열쇠 가지고 와요. 얼른 열쇠 가져오라고요.”손보미가 하인을 향해 소리쳤다. 돌발상황에 놀란 듯 멍해 있던 하인은 손보미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자리를 떴다. 이때, 강재민이 두 발짝 물러서더니 문을 거세게 걷어찼다.쾅!방문이 바닥에 쓰러지고 침대 위 뒤엉켜 있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몸이 굳어졌다.“아악.”여자는 재빨리 이불을 집어 들고 자신을 감쌌다. 손보미는 앞으로 다가가 남자의 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도유준 나쁜 자식.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린 씨는 네 누나인데. 누나한테 어떻게 이런 짓을 해.”“우리 누나 아니야.”그가 손보미의

  • 또 한 번의 거절   제468화

    안민아는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랐다. 한 잔 마시고는 또 한 잔 따라 마셨다. 이번에는 도아린의 말처럼 달콤한 맛이었다. 설마 내가 찻잔을 잘못 집어 든 걸까?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지정된 찻잔을 언니한테 건네줬었는데...생각하면 할수록 무서웠고 점점 식은땀이 나고 잔을 들고 있던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간 거야?”도아린은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그녀의 이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안민아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그냥 좀 더워서요.”“그래? 몸이 불편하면 재민 씨한테 말하고 먼저 돌아가자.”도아린이 서재로 통하는 계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니에요.”급히 도아린의 손을 움켜쥐던 그녀는 재빨리 손을 뺐다. 그녀는 눈 밑의 당황스러움을 애써 감추고 발을 들어 도아린에게 보여주었다.“아침에 정원을 구경하다가 뒤꿈치가 닳았어요. 반창고 좀 가져다줄래요?”도아린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애원하는 그녀의 눈빛에 도아린은 결국 하인에게 부탁했다. ...“젠장, 사람을 어떻게 이리 깔볼 수가 있는 거야?”도유준은 문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들어와서 밥도 먹지 못하게 하더니 이제는 남은 음식까지 내놓지 않는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들도 어엿한 강씨 가문의 일원이고 구걸하는 거지가 아닌데 말이다. “그만해. 힘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쓰란 말이야.”강홍련은 화장대 거울을 보며 이마에 반창고를 붙였다.“나중에 또 뭐요? 화장실도 못 가는데 무슨 일을 더 해요?”문을 향해 발을 걷어차고는 그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상처를 처리한 뒤, 강홍련은 뒤돌아서서 도유준을 쳐다보았다. “도아린이 그 일을 알고 있는 한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도아린을 이대로 둘 수는 없어. 아주 처참히 짓밟아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만들어야 해.”주먹을 불끈 쥔 채 이를 악물던 그가 음흉하고 흉악한 눈빛을 보였다.도아린을 짓밟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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