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 비켜.”“아주머니! 지유는 어렸을 때부터 곱게 자라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지유는 그 안에서 단 하루도 못 살 겁니다. 지유가 죽는다고요!”주현정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녀가 망설이는 것을 보자 성대호는 이때다 싶어서 계속 말을 이었다.“지유가 이번에 큰 잘못을 했다는 거 저도 알아요. 지유가 나올 수만 있게 한다면 그 애를 농촌에 있는 제 고향에 데리고 가서 개과천선하게 할게요.”그는 또 도아린을 보면서 말했다.“아린 씨가 싫다고 하면 절대 지유를 다시 연성에 돌아오지 못하게 할게요. 제발 부탁입니다. 지유한테 기회를 한번 주세요.”도아린의 손을 잡고 있던 주현정의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도아린은 그녀가 마음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주현정은 배지유가 벌을 받기를 바라지만 지유가 그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도아린은 주현정을 핍박하고 싶지 않았고 또 그렇게 하면 안 됐다.“어머님, 이 일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말아요. 남궁유민 변호사님이 지유를 위해 변호를 해줄 거예요.”성대호는 눈을 굴렸다. 남궁유민은 모건 그룹의 고문 변호사이고 그의 손을 거쳐 간 사건은 셀 수 없이 많지만 패소한 사건이 거의 없었다.남궁유민이 배지유를 변호하는 것을 도아린이 동의하기만 한다면 배지유는 반드시 무사할 것이다.“어머님, 들어가서 쉬세요. 저는 할 일이 남아서요.”이렇게 된 이상 주현정도 도아린이 남아서 밤을 보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경멸하는 듯한 시선으로 배건후를 한번 보았다.도아린이 떠난 후에야 배건후는 책상 위에 가게의 계약서 두 장이 아직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성대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졌지만, 손보미에게 가게를 준 그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세인트존스 호텔에서 도아린은 홀에 들어서자마자 휴게구역에 앉아있는 육하경을 보았다.“왜 아직도 퇴근하지 않았어요?”“지금 가려고요.”그의 시선은 빠르게 도아린의 몸을 훑었고 그녀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육하경의 의도를
여자는 방 카드를 가지고 남자를 부축해서 엘리베이터로 갔다.도아린은 누구인지 똑똑히 보았다.김지민이었다. 그녀가 부축하고 있는 남자는 배석준이다.거리가 멀었지만, 도아린은 배석준의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배석준은 화가 난 채로 집을 나서서 술집을 찾아갔다.아내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고 딸이 서러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그는 마음이 어지러워져서 술을 두 병 주문했다.평소에 그는 주량이 좋은 편이었는데 오늘은 기분이 안 좋은 탓이었는지 두 잔 정도 마시니 정신이 흐려졌다.주현정과 비슷한 여자가 플로어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본 그는 다가가서 여자를 단번에 낚아챘다.“내가 집에 없을 때 당신은 이렇게 놀았던 거야?”“회... 회장님?”김지민은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벗어나려다가 무슨 생각이 번뜩 들어 배석준의 팔을 감쌌다.배석준이 취한 것을 확인한 그녀는 그를 제일 가까운 세인트존스 호텔로 데리고 갔다.배석준은 침대에 쓰러져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김지민은 먼저 자신의 옷을 벗고 배석준의 허리띠를 풀려고 했지만, 손목이 갑자기 잡혔다.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는 일은 직접 입 밖으로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 육하경은 배건후를 호텔로 불렀고 그가 이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랬다.“아직도 천사 보육원을 조사하고 있어?”배건후는 앞에 놓인 자료를 보고 눈빛이 어두워졌다.육하경은 그에게 담배를 건넸지만 거절당했다.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손보미 씨가 요즘 스캔들이 많잖아. 지금 이 보육원을 위해 선전하고 있는데 지금 보육원이 강제 휴업하고 있잖아. 보미 씨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 보육원이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생각해.”“아무 문제 없다면 네가 나를 찾았을까?”배건후는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 육하경은 담담하게 웃으며 배건후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두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나오자마자 남자 슈트를 걸치고 나오는 김지민과 마주쳤다. 그녀는 안에 옷을 입
“당신이 고집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싸울 일이 없죠.”“고집 안 부려. 그건...”“일단 마셔요. 식겠어요.”주현정은 그릇을 살짝 들었다. 배석준은 해장국을 단번에 다 마시고 빠르게 주현정의 볼에 입을 맞췄다.주현정은 웃으며 얼굴을 닦았다.“더럽게 양치도 안 하고 뭐 하는 거예요.”배석준은 또 그녀의 얼굴에 대고 비비다가 낮에는 주현정이 자신과 뜨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더 뜨거워지기 전에 씻으러 갔다.그들이 내려와서 식사할 때, 드물게 배건후도 집에 있었다.“아침부터 웬일이야, 지유에게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어?”“어제 건후가 당신 집에 데리고 온 거예요.”주현정이 배석준의 팔을 치면서 말했다.배건후는 그제야 어젯밤의 일이 생각났다. 술에 만취한 남자는 몸이 말을 듣지는 않지만, 머리는 또렷했다.그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배건후는 어젯밤의 일을 꺼내지 않았고 아침 식사도 평화롭게 마쳤다. 배건후가 출근하러 나갈 때, 배석준도 일이 있어서 외출한다고 했다. 대문 앞에서 배석준은 아들을 불러세웠다.“어젯밤의 일은...”“엄마한테 얘기 안 했어요.”배건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한 번뿐이에요. 만약 엄마를 마음 상하게 한다면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배석준은 이 나이에 아들에게 훈계를 당할 줄 몰랐다.그는 배건후가 술자리에 갈 때 곁에 여자 파트너가 없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그냥 장단을 맞춰주는 것이지 선을 잘 알고 있다.배건후는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얘기하려고 했지만, 배건후는 이미 차에 올라타서 떠났다.그는 뒤돌아 자신의 차로 갔는데 갑자기 가녀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회장님...”“... 당신은?”배석준은 눈앞의 이 여자가 눈에 익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회장님의 옷은 잘 세탁해서 가져왔습니다.김지민은 쇼핑백을 배석준의 앞에 내밀었다.“전에 소속연예인을 데리고 연회에 참가했을 때 뵌 적이 있습니다. 2년 만에 다시 뵙는데 여전히 멋지세요
신호등을 기다릴 때, 배석준은 고개를 돌려 김지민을 바라보았다.그의 말투는 순간 낮게 가라앉았다.“지민 씨, 자중하길 바라.”“...”김지민은 마음속에서 깜짝 놀랐다. 아직 자기소개하지 않았는데 배석준은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는 거지?김지민은 짐짓 침착하고 몸을 곧게 폈고 당황한 시선을 감췄다.“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제 가정 형편은 아주 평범했지만, 저희 아버지께서는 항상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저를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셨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는 그해에 돌아가셨어요. 회장님께서 제 아버지와 많이 닮으셨어요. 그래서 처음 회장님을 뵙게 됐을 때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여 저도 모르게... 죄송합니다.”김지민의 말에 배석준은 배지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아버지가 딸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배석준은 한숨을 내쉬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도아린은 아침부터 문나연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제작하고 있는 드레스의 작업이 거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어 와서 검사해달라는 것이었다.차는 엠파이어 빌딩의 아래에 세웠고 도아린은 도유준이 가게 밖에서 설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도유준의 두 손에는 거즈가 둘려져 있었고 행동이 불편했지만,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행여나 사람들이 그가 사장이라는 것을 모를까 봐 말이다.그는 자신을 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 뒤돌아봤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도아린인가?’중요하지 않다. 모두 A18 번 가게가 도유준의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더는 숨길 필요가 없었다.서둘러서 개업하고 돈을 벌어서 도정국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얼른 어머니에게 당당한 신분을 부여하려 했다.도씨 가문의 모든 건 그들 것이다.현재 도정국도 무척 기분이 좋았다. 거의 무너져가던 작은 공장이 갑자기 주문을 받은 것이다. 주문 수량도 아주 많았고 이 주문서의 이익은 디저트 가게의 1년 이익과 맞먹었다.도정국이 상대방
도정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도아린의 말대로 공장을 도지현에게 주면 공장이 도유준의 명의로 있다는 게 발각될 것이 아닌가?그리고 도유준이 모르게 주문을 받으면 수를 써서 돈을 자신의 계좌로 넣을 수 있었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도아린이 타협했다.“공장을 주지 않겠다면 차용증에 사인해요. 이자율은 시장가격으로 하죠.”“너한테 돈을 빌리는 데 이자까지 줘야 해? 그래... 네 말대로 하자.”도아린은 전화를 끊고 장수현에게 좀 있다가 가지러 갈 테니 차용증을 작성해달라고 했다. “네 아버지는 정말 지독해. 너를 찾을 때마다 다른 일은 없고 돈을 달라고만 하잖아.”곁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문나연은 화가 났다.“도유준 그 양아들은 애지중지하면서 친아들은 병원에 두고 보는 척도 안 하잖아! 맞아, 3년에 한 번씩 하는 스타 대회가 이번 달 말에 진행하기로 했다고 해. 연성에서는 참여자 정원이 세 명이래. 나는 대회에 나가는 것까지 바라지 않고 현장에 가서 볼 수 있기만 해도 만족이야!”문나연은 갑자기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잠깐만 기다려...”스타 대회는 국내에서 제일 수준이 높은 디자인 대회였다. 3등 안에 들면 큰 금액의 상금을 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으로 가서 연수할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각 업계에서 최고인 인재들이었고 관중들도 각 업계에서 실력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VIP 입장권도 신분의 상징이었고 뒤에 있는 관중석의 가격은 한 장에 2000만씩 치솟았는데 그것도 구석진 위치였다.도아린은 대회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필요는 없지만,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놓치고 싶을 리가 없다.이 업계를 떠난 지 3년이 지났고 그녀는 대회의 구체적인 시간을 잊고 있었다.문나연은 표가 적힌 종이를 가지고 빠르게 돌아왔다.“모건 그룹에서 참가자 한 명을 모집할 수 있어!”문나연은 그녀의 눈을 보며 가볍게 떠보았다.“그 사람이 너한테 말했어?”“나는 모건 그룹의 직원이 아니잖아. 참가 자
도아린이 뒤돌아 나가려 하자 도정국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사인할게!” 도정국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도아린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걸어갔고 도정국은 서둘러 따라가 문을 막아섰다.“지현의 상태가 좀 괜찮아지면 내가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그동안 네가 돌봤으니 이제는 아버지인 내가 돌볼 차례야.”‘지현이를 가지고 협박하려는 건가? 절대 안 돼.’“지현이는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도유준이나 관리 잘하세요. 그 애가 혹여나 밖에서 말썽이라도 부린다면 저는 뒤처리를 해줄 생각 없어요.”도아린의 단호한 태도에 도정국은 결국 차용증에 서명하고 등기부 등본을 도아린에게 건넸다.도아린이 떠난 후, 도정국은 마음이 텅 빈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자신이 반평생 공들여 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했다.협력사에서 전화가 걸려와 납품 가능 여부를 묻자 그제야 그는 다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고 즉시 납품 가능하다고 대답했다....모건 그룹에서 우정윤이 서류를 들고 대표실로 들어가 업무 보고를 마친 뒤, 봉투 하나를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대표님, 스타 대회의 참가 신청서입니다.”배건후는 손을 멈추고 금빛으로 도배된 된 봉투를 한 번 쳐다봤다.그는 서랍을 열어 봉투를 안으로 밀어 넣고 서랍을 닫았다.모든 동작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깔끔했다.우정윤은 눈을 깜박이며 짐짓 궁금한 척 물었다.“대표님, 우리 모건 그룹은 주얼리 디자인 부문이 없는데 주최 측에 초대장을 요청하신 건 협력사한테 주기 위한 겁니까?”배건후는 말없이 계약서 한 장을 넘겼다.“우리 디자인팀의 류 과장이 해외에서 상을 많이 받긴 했지만, 건축과 쪽은 모형 준비가 필요하니 대회까지 열흘 정도 남은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할까요?”우정윤은 그의 표정을 세심히 관찰하며 말했다.배건후는 서류를 덮어 우정윤 쪽으로 던졌다.“말이 많네. 내년 보너스는 필요 없는 건가?”우정윤은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저는 그저 대표님께서 주최 측과 미리
얼마 지나지 않아, 우정윤은 커피를 다시 타서 가져왔다.배건후가 책상을 두드리자 우정윤은 커피를 내려놓고 바로 나가지 않고 사무실 구석에 서 있었다.손보미는 서러운 마음에 눈가가 붉어졌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건후 씨, 왜 이렇게까지 나를 경계하는 건데?”그녀는 말을 마치고 우정윤을 힐끔 쳐다봤다.우정윤은 없는 사람인 듯 뒤돌아 벽에 마주 섰다.배건후는 어두운 표정으로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무슨 일이야.”“...”손보미는 네일을 거의 뜯을 기세로 만지작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건후 씨, 그 블로거가 아직도 나를 공격하고 있어. 계정을 막아도 다른 계정을 만들어 계속 글을 올리고 있어. 네티즌들은 그 사람의 말에 동요하고 있으면서 송 감독님의 새 드라마의 댓글 창까지 가서 반대하는 댓글을 달고 있어. 송 감독님도 어쩔 수 없이 나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어. 나는 정말 견딜 수 없었어. 건후 씨, 도와줘...”배건후는 서랍을 열어 서류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던졌다.손보미는 그의 차가운 표정 아래 숨겨진 감정을 읽어내지 못한 채 서류를 집어 들었다.서류를 쥔 그녀의 손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말도 안 돼... 이건 모두 모함이야! 나를 공격하기 위해 보육원을 모함하고 있는 거야!”손보미는 책상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그녀는 배건후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그의 차가운 눈빛에 겁을 먹고 손을 거두었다.“건후 씨, 한쪽 말만 듣지 마! 보육원에서 모든 아이의 신체와 정신 건강을 다 챙기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의도는 선한 마음이잖아. 보육원이 없었더라면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끼니조차 먹지 못했을 거잖아...”“그래?”배건후는 냉랭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보육원의 운영을 중단하게 한 것은 그의 지시였다. 손보미는 그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보육원을 조사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배건후는 직접 보육원을 철저히 조사하게 조사했고 몇 년 전의 일까지 다 알아냈다.손보미는 얼굴
한쪽은 살얼음판 같았지만, 한쪽은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도지현은 완전히 의식을 되찾았지만 3년간 혼수상태로 있으면서 영양제로만 버텼기에 근육은 물론 살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기본적인 동작조차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상태였다.조경자는 도지현에게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면서 영양을 챙겨주었고 그의 재활 운동을 도왔다. 도아린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도지현은 뇌졸중 환자들이 하는 코와 눈을 가리키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누나...”도지현은 자기 코끝을 손으로 누르다가 위로 치켜들었고 검은 눈동자가 중간으로 모이면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되었다.도아린은 그의 모습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어렸을 때, 도지현이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도아린이 이렇게 그를 웃겼었다.하지만 매번 도지현은 누나가 제대로 못 한다며 자신이 보여주겠다는 말로 끝이 났었다.조경자도 웃었고 도지현도 따라서 웃었다.“누나, 밥 먹었어? 닭고기 죽이 아직 한 그릇 남았어. 정말 맛있는데 아주머니가 더 못 먹게 하셔.”“너는 지금 많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되잖아. 이건 내가 먹어야겠다.”도아린은 옆에 앉아 죽을 먹기 시작했고 도지현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를 바라봤다.도아린이 거의 다 먹는 것을 보고 도지현은 기습적으로 물음을 던졌다.“매형 혹시 문제 있는 거 아니야?”그 말에 도아린은 먹던 죽을 내뿜고 콜록콜록 기침하며 얼굴이 새빨개졌다.“그게 아니면 왜 3년 동안 나한테 조카 하나도 못 만들어줘?”도지현은 침대 난간을 잡고 팔 힘을 기르는 연습을 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3년 만에 본 도아린은 풋풋하고 어린 티가 사라지고 부드러운 모습 속에 단단함이 배어 있었다.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는 누나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조경자가 분위기를 풀려고 말했다.“누나가 지현 씨한테 온통 신경을 쏟았잖아요. 이제 지현 씨가 나았으니, 곧 조카도 생기겠죠.”도아린은 결혼 생활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지만, 조경자는 3년 동안 도지현을 돌보며 병문안을 오
도아린은 변슬기를 데리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배지유가 자신을 일부러 모욕하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이곳에 유명 스타들이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스크린에서만 보던 유명인들을 실제로 보니 변슬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두 눈으로는 전부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다소 어색하게 셔츠를 만지작거렸다.아버지가 친구를 만나러 가니 단정하게 차려입으라고 당부했지만, 변슬기는 또 소개팅 자리일 거로 생각하며 일부러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왔다.그녀는 상대가 아버지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한 모습을 좋아하길 바랐다.그러나 여기에서 음료를 나르는 여직원들조차 자신보다 더 격식 있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당황했다.“도 선생님, 저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볼품없는 거 아니에요?”도아린은 그녀의 셔츠 뒷면에 약간의 땀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제가 여분의 드레스를 준비해 놨어요. 갈아입어도 좋아요.”변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일단 아빠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각할게요.”멀리서 변우빈이 그녀를 보고 약간의 타박 섞인 눈빛을 보였지만, 곧 미안하다는 듯 설명했다.“우리 딸은 성격이 참 고집스러워.”그는 변슬기에게 손짓했고 딸이 곁에 앉자 말했다.“내가 단정하게 입고 오라고 했잖아. 그런데 일하는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하니.”변슬기는 당황스러워 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주현정이 보이자 긴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큰일 났다!’문 앞에서 배지유와 다툰 것도 모자라 이번엔 배지유의 엄마까지 만나게 됐다.지난번처럼 자신에게 온화하게 대해줄 리가 없을 것이다.“...네 딸이구나?”주현정은 마치 이해했다는 듯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지난번에 봤을 때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변슬기는 몰래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분 배지유 엄마예요.”변우빈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웃으며 소개했다.“이분은 주현정
배지유가 휠체어를 돌리자마자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배지유?”“변슬기?” 배지유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이 시간에 오다니, 연회가 거의 끝나가잖아.”변슬기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온몸에 땀범벅이었고 앞머리가 하얀 이마에 붙어 있었다.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며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감 있게 말했다.“아니야, 난 사람을 찾으러 온 거야.”이어지는 장면이 바로 도아린이 목격한 것이다.배지유는 휠체어를 움직여 변슬기의 주위를 맴돌면서 눈에 비웃음이 가득했다.“너희 집은 이번 생은 물론이고, 전생에도 이런 호화로운 사람들을 본 적 없을걸? 여기를 시장으로 착각한 거야? 아무나 데려와서 ‘내 삼촌, 내 이모’라고 하면 통할 것 같아? 여기는 모두 톱스타들이야! 너 콘서트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어?”배지유는 입을 가리며 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생활비 벌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주제에 무슨 돈으로 콘서트를 본다는 거야!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기숙사로 돌아가서 기다려. 누굴 보고 싶은지 댓글 남기면 내가 대신 사진 찍어줄게.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돈을 안 받아. 대신 너는 우리 기숙사의 1년 치 청소를 맡고 내 빨래도 다 해야 해. 속옷과 양말도 손빨래로!”변슬기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연예인 보러 온 게 아니야.”“올해 최고의 억지상은 바로 너네!” 배지유는 엄지를 세우며 비웃었다.“여긴 다 연예인들뿐이야. 네가 누굴 찾는다고 하면, 내가 직원한테 말해서 불러줄게.”변슬기는 그녀를 무시하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러자 배지유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해지며 휠체어를 몰아 변슬기에게 돌진했다.거의 부딪힐 뻔한 순간, 휠체어가 갑자기 멈췄다.화가 난 배지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도아린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네가 왜...” 도아린은 왜 자신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건가?
주현정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에 그저 화났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니 그녀의 기분만 풀어주면 도아린이 그 자리를 넘보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현정아, 사람은 성인이 아니니 누군들 실수하지 않겠어?” 배석준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내가 증명해 보일게. 나와 지유야말로 네 뒤를 든든히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그는 배지유를 찾아 그녀를 데리고 주현정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세 식구가 언론 앞에 함께 나타나기만 하면 이혼 소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배씨 가문의 재산에 끼어들 수 없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배지유가 사라진 후였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도아린이 다정하게 위로했다.“배 대표님은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못할 거예요.”“차라리 저 사람이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네.”주현정은 도아린과 함께 인파를 지나갔다.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다소 어색하게 무릎을 문지르며 이따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주현정을 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가 방해되지는 않았어?”“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내 연회에 와줘서 고마워.”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고 다가갔다. 세 사람은 원형 소파에 앉았다.“이쪽은 내 딸 도아린이야. 이분은 변우빈이라고 하고 내 가장 친한 친구야. 아저씨라고 불러.”“아저씨, 안녕하세요.” 도아린은 무심코 상대방을 살펴봤다.변우빈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배석준와 비슷한 체격이었지만 조금 말랐다. 그의 얼굴과 손에는 노동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진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변우빈은 계속 주현정의 눈을 바라봤고 주현정의 미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겨있었다.“네 딸도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주현정이 뒤를 돌아보며 묻
석 대표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앞에 휠체어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요란하게 치장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이분은...”그는 주현정이 이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첫 반응은 배석준이 다른 여자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배석준의 새로운 연인은 주현정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석 대표님, 짓궂으십니다. 방금까지도 저희 딸을 카메오로 요청한다고 하셨으면서...”배석준은 말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그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배지유를 보고 있었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배지유는 엄청 민감해서 의식적으로 치마를 잡았는데 그들이 자신의 얼굴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제야 천천히 손을 떼었다.“배 대표님 따님이 몇 명이세요?”석 대표가 물었다.“... 한 명입니다.”석 대표는 웃어 보이고는 볼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고 그가 떠나자 다른 사람들도 흩어졌다.“아빠! 저 사람들 무슨 뜻이에요?”“...”배석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영문을 알게 되었다.배지유는 휠체어에 앉아있어 시선이 막혔지만, 배석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도아린을 데리고 인사를 나누는 주현정을 보았다.그들이 칭찬하는 사람은 배지유가 아니라 도아린이었다.“지유야, 여기서 아빠를 기대려. 아빠가 가서 엄마를 찾아볼게.”그는 배지유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하고는 빠르게 걸어갔다.“주현정! 당신 지금 지유는 병원에 내버려 두고 도아린을 데리고 연회에 참가하고 있어? 당신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손님들은 배석준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자리를 피했고 주현정의 얼굴에 있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대답했다.“지유는 당신 같은 아빠만 있으면 돼요.”배석준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앞서 당신은 외부인 하나 때문에 나랑 이혼하려고 했고 이제는 이혼 얘기를 하지 않으니 각종 방법으로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고 있어. 당신이 다시 JS 픽처스를 운영하게 되었는데도 나한테 얘기
JS 픽처스의 고위인사는 배석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 또 해외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현정이의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머물다가 가려고 합니다.”배석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평소에 연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주현정이 JS 픽처스에서 지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각종 이유를 찾아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를 거부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카메라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그들은 모두 주현정 덕분에 잘 되었기에 체면은 반드시 살려주어야 했다.“크흠.”배지유는 배석준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헛기침을 했다.“아, 우리 딸이 마침 해남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배석준을 둘러싼 고위인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주현정은 배지유가 연예계의 나쁜 물을 먹을까 봐 현역일 적에 절대 배지유를 데리고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위인사들도 그저 주현정에게 딸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본 적은 없었다.반응이 빠른 누군가가 술잔을 들며 공손하게 말했다.“따님은 주 대표님과 배 대표님의 우수한 점을 다 닮으셔서 단정하고 청초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새로 영입한 신인보다 예쁘신 것 같습니다.”“맞아요. 해남대학교의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시니 예쁘시고 학식도 많으시네요. 지금 업계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인재를 제일 좋아합니다!”배지유는 칭찬을 듣고 얼굴이 발그레해졌고 그녀는 두 손으로 팔걸이를 잡고 살짝 몸을 앞으로 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삐끗해서 일어서서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네요.”“별말씀을요. 발을 삐끗하면 잘 치료해야 해요. 젊고 예쁘신데 후유증을 남기면 안 되죠.”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배지유의 마음속에서는 저주로 들렸다.그녀는 발 한쪽을 다친 게 아니라 다리 하나를 잃었다. 나머지 생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배석준은 배지유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가 난리를 피울까 봐 얼른 다른 곳으로
주현정은 말투가 가라앉았고 표정이 엄숙했다.“남자의 내연녀로 이십몇 년을 있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어른이 화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나. 도아린의 양아버지는 양어머니의 혼수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했어.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딸의 효도를 받을 자격 없어!”현장에는 여자 연예인들도 많았다.같은 딸의 마음으로 이렇게 심란한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그들은 도아린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아린이 양어머니를 위해 복수를 했다고 여겼다.강홍련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아린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방금 자신의 말이 강씨 가문에게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웠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도아린은 단호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강씨 어르신은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씨 어르신께서 좋은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주었는데 당신은 밖에서 어르신의 명성이나 흐리고 다니면 안 되죠. 농부와 뱀의 이야기를 재희 씨도 들어봤을 거로 생각해요.”도아린은 강씨 어르신의 편에 섰는데 강재희는 반박할 수 없었다.여론에서 아버지의 대회에 흑막이 있다는 일로 들끓던 것이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강홍련 저 멍청이 때문에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주현정은 도아린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제 딸이고 JS 픽처스의 후계자예요. 강씨 가문에서 이렇게 제 딸을 치욕스럽게 하다니, 저희 협력은 앞으로 계속하지 않을 생각입니까?”강재희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녀는 도아린이 연회에 참가한 것은 단지 주현정과 예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주현정이 도아린을 딸로 삼고 JS 픽처스의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만약 도아린과 모순이 격화된다면 앞으로의 협력에는 장애가 생길 것이다.“강홍련 씨, 사과해요!”강홍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재희는 지금 자신을
도아린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진열대에 있는 다이아몬드의 빛이 꺾이어 그녀의 눈동자를 비춰 유독 눈부셨다.강홍련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강홍련은 도아린보다 머리 하나쯤 작아서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바라보았는데 도도한 척하는 모습이 광대 같았다.“네가 JS 픽처스에게 ‘봉황의 시대’를 광고하도록 넘겼는데 강씨 가문의 고급 주얼리들은 모두 JS 픽처스의 연예인들이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어. ‘봉황의 시대’와 JS 픽처스의 연예인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봉황의 시대’가 강씨 가문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테지.”이게 바로 연예인을 찾아 광고하는 이유였다.예를 들어 어떤 톱스타가 운동화의 모델이 되었다면 그가 나타났을 때 팬들은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알게 된다. 따로 브랜드를 찾아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도아린은 도덕과 재능을 겸비한다는 말로 강씨 가문에게 치욕을 안겨주었지만 결국은 강씨 가문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강씨 가문에서 이득을 보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도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는 강씨 가문의 사촌이야!”강홍련은 불쑥 얘기했다.“강씨 가문에서 손보미를 밀어준다면 배건후와 결혼할 수 있어. 강씨 가문에서 안씨 가문을 지지한다면 내 아들은 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거야!”“그래서요.”강홍련은 도아린이 모른 척할 줄 몰랐고 그녀의 코에 대고 얘기했다.“그래서 나한테 잘하라고. 그러면 강씨 가문에서는 네가 해남에서 살아나갈 기회라도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대회 성적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너를 디자인 업계에서 쫓아내는 것도 일이 아니지. 내 삼촌 강태식은 이 바닥을 꽉 잡고 있어. 내 삼촌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야. 너의 ‘봉황의 시대’도 잘난 척할 거 없어. 언론에서 만들어준 것뿐이야. 만약 삼촌의 학생들이 다 그게 별로라고 얘기한다면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거야!”많은 손님이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강홍련의 지나친 말에 시선을 두
“아빠가 방법을 대서 가볼게. 너는 오지 마.”배석준은 배지유가 걱정되었다. 지난번에 배지유가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도 돌아와서 다리가 아파 잠이 들지 못했다.배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애원했다.“제 친구들은 제가 아직 안에 갇혀있는 줄 알아요! 아빠랑 제가 함께 엄마의 연회에 간다면 매체에서는 저희 세 식구의 화목한 모습을 찍게 될 것이고 소문들은 자연스레 사그라질 거예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딸의 명성은 도아린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돌이킬 방법을 계속 찾지 않는다면 배지유가 해남대학교로 돌아갔을 때 반드시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당할 것이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메이크업과 코디를 해줄게.”배석준이 데리고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지민이었다.김지민은 연예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 참석하는 연예인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알아냈다. 배지유는 똑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됐고 다리의 흉터를 가릴 수 있으면서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했다.이 부분에서 김지민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배지유는 만족스럽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그녀의 치마를 들지 않는 이상 그녀가 다리 하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발을 삐끗해서 휠체어를 탔다고 하면 될 것이다.이런 장소에 김지민은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므로 부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연회장의 중심에는 도아린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고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는 현장에 있는 연예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여자의 아름다움이 너무 지나쳤다.연예계의 스타들은 자주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에 참가하므로 어떻게 분위기를 휘어잡는지를 잘 알고 자신이 어느 각도에서 가장 예쁘게 찍히는지도 알고 있었다.도아린은 처음 보는 얼굴이고 업계에 대해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 자신감이 넘쳤다.그녀가 스크린 앞으로 가서 사인할 때 스크린에는 ‘봉황의 시대’의
도아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녀의 덤덤한 눈빛은 ‘라윤주’의 이름을 듣고 초점을 잃었다.“뭐라고요?”“...”육하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가 육하경이 말을 이었다.“향 주머니로 화를 면한 것은 우연이에요. 정말 저를 도왔던 것은 세인트존스 호텔의 책임자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죠.”육하경은 입꼬리를 올려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어르신들을 3일이나 괴롭혀서야 알아냈어요. LY에서 저를 후임자로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육하경의 학업은 각 부분에서 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육씨 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빽빽이 필요했다.육민재를 예로 들어보면 능력은 가장 뛰어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맏아들의 장손 혈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최고로 좋은 자원과 경험을 쌓을 기회들을 누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그는 육씨 가문의 후계자일 것이다.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려면 모든 게 알맞게 부합되어야 한다.육하경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었고 육씨 가문의 산업에 기대를 두지 않아 오랜 시간 밖에서 떠돌며 공부를 했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세인트존스 호텔의 관리 권한이 그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놀란 마음으로 육하경은 전임자를 찾아갔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야 LY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육씨 가문 뿐만 아니라 많은 명문가가 LY와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인재를 추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었기에 자연스레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육하경은 그때 손에 향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전임자가 이상해하며 무늬를 찍어서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추천서’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경 씨가 말하는 그 이야기에도 관심 없습니다.”도아린은 책을 육하경에게 돌려주고는 차 문을 열었다.“도아린 씨!”육하경은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손을 허공에 멈추고 결국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육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