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용우진이 너에게 밥을 사준다고?”장재원과 김지영은 어리둥절해졌다.“설마, 절대 그럴 리 없어. 그 사람이 그냥 영감탱이인 줄 알아? 너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장재원이 물었다.“그 사람은 용씨 집안의 지배인이야. 태성시에 이런 명문가가 세 개 있는데 그 사람들이 발 한번 굴러도 태성시가 흔들릴 정도고, 아무렇게나 내린 결정 하나에 태성시의 미래가 바뀐다고. 그런데 그런 사람이 너한테 밥을 사준다고?”이태호는 생각에 잠기다가 장재원에게 말했다.“그럼 하씨 가문은 어때? 용씨 가문과 비교할 수 있는 가문이야?”장재원이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농담해? 하씨 가문은 3대 명문가에 속하지도 못해. 기껏해야 부자 정도나 되겠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사업이 잘돼 3대 명문가에 입성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하씨 가문의 자산은 200억이 넘어. 하지만 명문가에 비할 정도는 아니야, 명문가라고 하면 적어도 2000억은 있어야 하고 그보다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가문도 있어.”“그렇구나.”이태호가 담담하게 말했다.“용씨 가문이 대단하긴 한가 보구나. 하지만 난 그저 밥 한 끼 먹으러 가는 것이지 그들에게 아부할 생각은 없어.”“풉!”장재원이 저도 몰래 웃어버렸다.“너 이 자식, 쿨한 척하기는. 그 사람이 누구야? 네가 그런 사람이랑 만날 일이나 있겠어? 밥을 사준다고? 헛소리하고 있네. 너 따위는 그 사람의 잔심부름하는 자격조차 안 될걸. 네가 아니라 하현우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에게 아부할 기회가 없어.”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차는 원주 호텔 앞에 도착했다. 호텔 직원에게 차 키를 건네주고 난 후 세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의외로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이태호는 정희주의 부모님을 만났다.“2층으로 올라가서 오른편 방이에요.”정희주의 부모님이 지인 두 명을 2층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말을 마친 정희주의 어머니인 장다은이 이태호를 발견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이태호, 네가 여긴 왜 와? 오늘은 정희주의 결혼식이야. 너
“이태호,바보야?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네가 뭘 어떻게 한단 말이야? 죽고 싶어?”옆에 있던 김지영도 깜짝 놀라며 이태호가 참 사리 분별 못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도 가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어머, 이태호, 너도 왔어? 정말 귀한 손님이네.”그때 양복을 입은 사람이 히죽거리며 걸어왔다. 이태호는 담담히 그를 힐끗 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연진욱, 너도 있었네?”“당연하지, 대학 동기인데 당연히 정희주의 결혼식에 참석해야지.”연진욱은 비아냥거리면서 이태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참, 대학교 다닐 때 너 정희주를 좋아하지 않았어? 정희주가 날 못마땅하게 여기는데 넌 정희주랑 사귄다고 매우 의기양양했었잖아? 하지만 지금은 왜 이 꼴인 거야? 네 꼬락서니를 좀 봐. 구걸하러 왔어?”이태호가 말이 없자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그러고 보니 넌 잘 생겼고 성적도 좋았지만 별 쓸모가 없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날 봐, 하현우의 회사에서 이미 부장 자리에 앉았잖아. 집에는 젊고 예쁜 아내까지 있는데 넌 이게 뭐야?”이태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연진욱, 내 심기를 건드리지 마. 정희주 같은 여자는 이제 나한테 준다고 해도 나 이태호가 싫어. 정희주가 아니라 군신의 손녀딸이 결혼하자는 것도 내가 거절했어.”“풉!”이 말을 들은 연진욱은 폭소를 터뜨렸다.“하하, 이런 젠장, 너무 웃겨. 5년이나 옥살이를 하더니 배운 게 고작 허풍 치는 거야? 군신의 손녀딸이 결혼하자 했다고? 너 정희주에게 차이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연진욱, 그만해. 다 동창인데 그러지 마. 이태호가 희주와 신혼집까지 봐뒀었다는 걸 너도 알잖아. 오늘이 희주 결혼식인데 이태호 마음이 불편한 건 당연해. 꼭 이럴 때 신경을 긁어야겠어?”옆에 있던 김지영이 더는 봐줄 수 없어 이태호를 도와 한마디 했다.“칫, 그게 뭐라고?”연진욱은 김지영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돌아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아주 궁금할 거예요.
정희주가 한 걸음 나서고는 흉악한 눈빛으로 이태호를 노려보며 소리 질렀다.“이태호, 네가 감옥에 가는 바람에 결혼 못 한 거잖아. 그런데 왜 내 탓을 해? 6천 만 원을 내가 왜 돌려줘야 하는데?”그녀는 팔짱을 끼고 기고만장하게 말했다.“가난에 찌들어 미친 거 아니야? 감옥에서 나와 돈이 없으니 나한테 달라고 해? 하하, 너랑 연애하느라 아까운 내 청춘을 3년이나 낭비했잖아. 그러니 그 6천만 원은 내 청춘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 일 년에 2천만 원이면 너무 많은 것도 아니잖아?”“퉤!”이태호는 그녀가 이토록 당당하게 나오자 화가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희주를 노려보며 말했다.“너의 청춘만 청춘이고 내 청춘은 아무것도 아니야?”이태호는 말을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정희주에게 다가갔다.“3년 동안 네가 원하는 걸 다 사줬잖아.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너 몰라? 언제든 부르면 달려가고 뭐든 다 네 말대로 했잖아. 그런데 넌? 넌 날 위해 뭘 했어? 내가 널 위해 감옥에 가 있던 동안의 청춘은 청춘이 아니야?”이태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갑자기 멈춰서더니 손으로 옆에 있는 의자를 내리쳤다.“퍽!”의자가 한순간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고 몰려있던 사람들은 그 광경에 깜짝 놀라며 한순간 고요해졌다. 정희주는 놀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가족들이 이태호의 부모님을 괴롭힐 수 있었던 건 이태호가 감옥에 갔기 때문이고, 그가 감옥에서 나온다 해도 그들을 찾아가 따지지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손에 들어온 돈을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이를 악물더니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이태호를 향해 말했다.“네가 도박을 해서 돈을 잃었잖아. 그래서 나를 천만 원에 현우 오빠에게 팔았다고 하던데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넌 그냥 쓰레기야. 내가 겨우 천만 원밖에 안돼?”이태호는 어이없이 웃다가 정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그건 내가 설명했잖아. 내가 다른 사람의 꼬임에 넘어가서 그런 거라고. 너도 나중에 날 용서했고, 날
네 경호원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그 여자를 바라봤다.이태호가 미간을 구기더니 천천히 몸을 돌리고서는 눈앞에 나타난 여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당신은!”전에 낡아빠진 아파트 단지에서 자신에게 쓰레기라며 욕하던 여자가 배달원 옷을 입고 숨을 헐떡인 채 하씨 집안의 경호원들 뒤에서 몸을 비집고 나온 걸 보고 이태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급하게 뛰어오느라 호흡이 달린 모양이다.“이 사람 누구야? 미친 거 아니야? 설마 이태호의 아내인가?”어안이 벙벙한 손님들이 이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당신 누구야? 사람 잘못 찾아온 거 아니야? 이태호는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누굴 속이려고 그래?”정희주도 그녀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더니 입을 열었다.“어딜 감히 하씨 집안의 일에 끼려고 그래요?”신수민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정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래도 당신이 그 사람이랑 3년이나 연애를 했는데 아무리 진심으로 임하지 않았다고 해도 남아있는 정이 요만큼도 없어요? 그렇게 그 사람 죽는 꼴 보고 싶어요? 어떻게 그렇게 무정하게 굴 수가 있죠?”그 말을 들은 정희주는 코웃음을 쳤다.“이봐요,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저 거지 같은 X끼가 내 결혼식을 망치고 내 남자를 다치게 했어요. 그런데도 내가 무정하다고요? 그 사람은 죽어도 싼데요 뭘.”이태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서로 체면을 생각해 너무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다. 전에도 하현우의 압박에 그가 어쩔 수 없이 결혼식을 망친 것이었다.하지만 정희주는 옛정을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그가 죽길 바랐다.“멍하니 서서 뭐해? 얼른 저 사람 죽여!”하현우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경호원들을 다그쳤다.갑자기 나타난 이 여자는 보아하니 배달원이 틀림없다. 배달원 따위를 무서워할 하현우가 아니었다.“잠깐!”경호원들이 이태호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 하창민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신수민에게 다가가고는 예를 갖추며 말했다.“신수민 씨, 저 사람이 정말
이태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갑자기 아이가 생기다니?‘포동포동하고 귀여운 은재가 내 딸이라고?’“그 여자애가 정말 내 딸이에요?”이태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신수민은 이태호 앞으로 다가가 치를 떨며 눈물을 흘리더니 이태호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정말 양심 없는 나쁜 놈이 따로 없네요. 당신이 잡혀가기 전날 밤에 일어난 일들을 정말 기억 못 하는 거예요? 내가 5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요? 내가 억울한 일들을 얼마나 많이 당했는지 아냐고요?”귀싸대기를 맞은 이태호는 어안이 벙벙한 채 가만히 있었다.명문가 아가씨가 집에서 쫓겨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태호도 잘 알고 있었다. 임신하는 동안에도 그녀를 돌볼 사람은 아무도 없은 듯했다.그렇게 수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몇 년 동안 이태호 부모님의 빚을 갚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그녀는 매달 이태호의 부모님에게 돈을 드렸는데 아마 그 돈도 그녀가 힘들게 배달해서 번 돈인듯싶다.5년 전, 그가 잡히기 전날 밤!이태호는 드디어 기억을 떠올렸다.그날 밤, 이태호는 유리병으로 하현우의 머리를 내리쳐 상대방을 기절시키고겁이 난 바람에 바로 줄행랑을 쳤다. 자기가 큰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마음을 졸인 그는 머리가 흐리멍덩한 채로 어떤 바로 들어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알코올로 정신을 마비시키고 싶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이 모든 게 꿈이었길 바랐다.시간이 좀 지난 후,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바로 들어왔는데 기분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태호의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은 서로 이름도 모른 채 술잔을 부딪치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나중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시게 되어 두 사람은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서로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옆에 있는 호텔에 들어섰다.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두 사람은 모두 발가벗은 채로였고 침대 시트에는 핏자국도 있었다.누가 먼저 선을 넘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필름이 끊긴
”나 딸이 생겼어! 나에게 정말 딸이 생겼어!”이태호는 갑자기 알게 된 딸의 존재에 잔뜩 신이 났다.두 사람이 술에 취해 하룻밤을 보냈는데 신수민이 임신하게 되고 그에게 예쁜 딸까지 낳아줬다.신수민이 착하고 씩씩한 여자인 걸 이태호도 잘 알고 있어 그녀야말로 그가 지켜줘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반대로 정희주는 허영심이 하늘을 찌르고 돈만 밝히는 된장녀이다.신수민은 아주 보잘것없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나, 완벽에 가까운 얼굴은 여전히 그녀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드러냈다.신수민이 5년 동안 고생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만큼 오늘부터 그녀에게 제대로 보상해 줘야겠다고 이태호가 다짐했다. 그는 그녀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고, 또한 은재의 아버지로서 짊어야 할 책임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신수민은 차가운 얼굴로 하창민을 보더니 말했다.“하 회장님, 우리 신씨 집안의 체면을 봐서라도 이태호 씨를 놔주시면 안 될까요?”“하하!”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하창민은 웃음을 터뜨렸다.“신수민 씨, 죄송하게 되었네요. 예전이었으면 제가 그렇게 해드렸을 텐데 오늘은 그렇게 안 될 것 같네요!”하창민의 얼굴색이 갑자기 바뀌었다.“이태호 이 자식이 제 아들 결혼식을 망쳤을 뿐만아니라 제 아들의 손가락 하나를 부러뜨렸어요. 신수민 씨의 체면을 봐서 오늘 이태호는 살려줄 거예요. 하지만 온전한 몸으로는 절대 이곳을 뜰 수가 없을 거예요.”이때 어떤 하씨 집안의 남자가 나서며 말했다.“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렇게 많은 거상들 앞에서 우리 하씨 집안의 체면은 지켜야지요. 오늘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신수민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하창민을 노려보며 말했다.“하 회장님, 선은 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우리 신씨 집안은 삼류 명문가라고요! 하씨 집안에서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요!”하창민은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더니 간사한 미소를 지었다.“신수민 씨 말씀이 맞아요. 제가 감히 신씨
”멍하니 보고만 있을 거야? 얼른 저 자식을 죽여버려!”하창민이 경호원들을 보며 소리를 쳤다.“누가 감히 움직이는지 지켜보겠어요!”경호원들이 다시 손에 칼을 쥐자 신수민이 급한 마음에 두 팔을 벌려 이태호 앞을 막아섰다.“나 신수민이 신씨 집안에서 쫓겨난 건 맞아요. 하지만 나에겐 결국 신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만약 나를 다치게 한다면 신씨 집안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그게...”그 얘기를 들은 경호원들은 흠칫했다.이태호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고는 신수민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이런 일은 나한테 맡겨요. 내가 저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퍽이나 상대할 수 있겠어요! 센 척하긴.”신수민의 말 한 마디에 이태호는 어이가 없었다.옆에 있던 하창민이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신수민 씨는 오늘 한 번만 봐 드릴게요. 신씨 집안 사람을 불러와 나한테 사정을 봐 달라고 부탁하면 두 사람 같이 봐줄 수 있어요. 아니면 이태호는 오늘 절대 이곳을 떠나지 못할 거예요!”“좋아요!”신수민은 어금니를 깨물며 또 한 번 도박을 걸어보기로 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신씨 집안에 전화를 했다.“아버지, 아이 아빠가 누군지 궁금하셨죠? 지금 원주 호텔 2층으로 와주세요!”전화를 끊은 후 신수민은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이태호를 바라봤다. 그녀도 신씨 집안 사람들이 이곳으로 와줄지 확실치 않았다.“신수민 씨, 댁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 20분만 드릴게요. 만약 신수민 씨를 도울 신씨 집안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땐 실수로 신수민 씨를 다치게 해도 저희를 원망하지 마세요!”하창민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만약 신씨 집안의 그 누구도 신수민을 도와주러 오지 않는다면 신씨 집안에서 신수민을 완전히 버렸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 이제 싸움이 나 신수민이 다치게 되어도 하창민은 두려울 게 없었다. 그는 오늘 반드시 화풀이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지금 그의 손에는 비장의 카드가 하나 있었다. 신
”아버님, 20분 다 되었어요!”정희주가 시간을 빤히 보더니 20분이 다 되자 바로 하창민에게 알렸다.하창민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씨 집안 경호원들에게 움직이라고 손짓을 했다.하지만 이때, 신씨 집안의 왕사모님이 두 아들과 다른 신씨 집안 사람들을 거느린 채 계단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열몇 명의 경호원들도 그들을 뒤따랐다. 단체로 검은색 양복을 입은 그들은 딱 봐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신씨 집안 사람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으나 하씨 집안의 경호원들은 저도 모르게 길을 내주었다.신씨 집안은 삼류 명문가라 하씨 집안보다는 훨씬 대단했기에 경호원들은 감히 그들을 건드릴 엄두도 나지 않았다.“신씨 집안 사람들이 정말 왔어? 정말 신수민을 도울 생각인가 봐?”“그래도 신수민에게 신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고, 예전에 신수민이 신씨 집안을 위해 많은 업적을 세웠잖아. 보아하니 오늘 하씨 집안에서 신수민과 이태호를 어쩌지 못하겠네.”신씨 집안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장내는 떠들썩해졌다.“정말 왔네!”정희주의 얼굴에는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이태호는 그녀의 결혼식을 망쳤고 2억 6만 원을 손해 보게 했는데 그녀는 절대 그 돈을 갚고 싶지 않았다. 또 앞으로 이태호가 자기 집안을 귀찮게 할까 봐 정희주는 하씨 집안에서 아예 그를 반 죽여놓길 바랐다.하창민의 얼굴색도 급격히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신씨 집안의 왕사모님과 신 회장에게 인사를 했다.“왕사모님, 신 회장님,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하창민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만약 이곳으로 온 사람이 신수민의 아버지뿐이라면 그는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신수민의 아버지는 워낙 능력도 없고 나약하기에 신씨 집안에서는 전혀 위상이 없다.신수민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왕사모님은 신씨 집안의 일인자로 되었다. 일부 집안일은 신수민의 큰아버지인 신승민이 책임지고 있다. 회삿일은 비즈니스계의 천재인 신수민이 맡고 있었고 그녀 또한 회장 자리를 물려받을 유력한 후계자라는 소문이
두 여인의 맑은 목소리가 이구동성으로 이태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그는 하늘에 나타난 남유하와 백정연을 바라보았다.오늘 남유하는 흰 비단옷을 입었고 긴 머리카락을 드리웠다.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부는 옥처럼 희고 마치 새벽의 이슬을 머금은 복숭아꽃처럼 맑고 투명하며 콧대는 높고 입술은 유달리 부드러워 보였다. 참으로 그림속에서 걸어 나온 선녀처럼 아름다웠다.옆에 있는 백정연은 주홍색 긴 치마를 입었고 온몸에서 활기와 생동감으로 넘쳤다.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매끄럽고 반짝였으며 검은 폭포처럼 허리까지 내려왔고 바람에 휘날리면서 부용꽃처럼 고귀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두 여인은 빠르게 이태호의 곁에 달려왔고 기쁨에 겨운 눈물을 가득 흘렸다.이태호는 손으로 두 여인의 붉은 눈시울을 닦아주면서 다정하게 웃어주었다.“왜 울어? 내가 돌아왔잖아.”그는 여인들을 데리고 정원에 온 후, 그녀들이 많이 변한 것을 발견했다.변화가 가장 큰 것은 신수민과 남유하였다.그가 떠날 때 신수민은 불과 5급 존황 경지였는데 지금은 7급 존황 경지로 돌파했고 백지연과 백정연 자매도 4급 존황 경지에서 6급 경지로 돌파했다.이런 실력은 중주 성지에서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태일종에서 상위권에 속하였다.그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내가 없는 동안에 모두 열심히 수련했군.”눈물을 훔친 남유하는 입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참, 은재는?”이태호는 이제야 딸 신은재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은재는 며칠 전에 폐관 수련하기 시작했어.”딸 얘기를 하자 신수민의 얼굴에 어머니로서의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은재의 천부적 자질은 당신보다 좋아요. 이번에 5급 존황 경지에 도전하려고요.”신은재가 한 달 만에 5급 존황 경지에 도전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이태호도 다소 놀랐다.그는 너무 빨리 돌파하면 기반이 불안정할 수 있다고 말해주려던 찰나,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 태호야, 돌아왔구나.”“돌
요광섬의 고풍스러운 정원에서 긴 두루마기를 걸쳐 입고 황금빛 구름이 수놓은 흰색 장화를 신은 신수민은 지루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서 정원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옆에는 하얀 수선화 무늬의 치마를 입은 백지연이 앉아 있는데 주전자를 들고 영기가 넘친 따뜻한 차 두 잔을 따랐다.그녀는 한 잔을 신수민의 앞에 두고 나서 손바닥으로 턱을 괴면서 말을 건넸다.“언니, 태호 오빠가 떠난 지 한 달 넘었는데 언니의 넋까지 나간 것 같아요.”백지연의 농담에 신수민은 눈을 흘기면서 퉁명스럽게 답했다.“태호가 걱정돼서 그래. 한 달이나 지났는데 태호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그녀는 성공 전장이 지극히 위험하고 창란 세계의 모든 천교가 모였으며 7급 성자 경지의 성자와 신자들도 수두룩하다는 소문을 들었다.이태호는 떠나기 전에 3급 성자 경지에 불과했기에 신수민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백지연도 신수민의 말을 듣고 눈에 그리움과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그녀는 고개를 흔들고 마음속에 올라오는 초조함을 억누른 후 가슴을 두드리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태호 오빠는 강하니까 분명히 무사히 돌아올 거예요.”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요광섬 전체를 뒤흔드는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돌아왔다!”두 여인은 이 목소리를 들은 순간, 몸이 움찔했다.그녀들은 곧바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고 활짝 웃으면서 요광섬의 입구를 쳐보았다.신수민은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중얼거렸다.“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한편으로 백지연은 입을 가리고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태호 오빠, 진짜 맞죠?”이태호는 요광섬의 진법을 해제한 후 바로 신수민과 백지연의 앞에 도착했다. 두 여인이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자 미소를 지었다.“이제 한 달 지났는데 남편도 몰라보는 건가?”이태호의 목소리가 다시 두 여인의 귓가에 울리자 그녀들은 드디어 이태호가 정말 무사히 돌아온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자
옆에 있던 연장생은 이를 보고 가볍게 손을 흔들자 공포스러운 성황의 힘으로 하늘을 뒤덮은 핏빛 먹구름을 순식간에 깨끗하게 몰아냈다.그러고 나서 그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이태호를 유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내공을 완성한 4급 성자 경지라... 내공이 좀 부족하군. 그런데 전성민이 네가 성공 전장에서 4급 경지의 내공으로 용족의 천교 오현을 죽였다고 하는데 사실이냐?”연장생의 질문에 이태호는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장로님.”“하하, 좋아!”연장생의 얼굴에 기쁜 기색을 드러냈고 대견스러운 눈빛으로 이태호를 바라보았다.그러고 나서 웃음을 머금고 옆에 있는 선우정혁에게 말했다.“먼저 자네 태일종으로 돌아가자.”선우정혁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연장생이 등장하고 육무겸과 풍석천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잠깐의 시간만 흘렀다.선우정혁의 분노가 가라앉기도 전에 두 성왕이 그의 눈앞에서 목숨을 잃었다.성황급 대능력자인 연장생의 요구에 그는 당연히 소홀히 대할 수 없었다.다른 건 몰라도 그가 태일성지에서 수련할 때 연장생은 이미 창란 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성황급 수사였다.지금 그가 태일종의 종주로 된 지 수백 년이 지났으니 연장생의 실력은 더욱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바로 가시죠.”선우정혁은 말하고 나서 바로 허공을 찢고 연장생을 데리고 태일종을 향해 날아갔다.이들이 떠난 후 수십 리 밖의 공간에서 나온 맹호식과 송현아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연장생 등이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청허파의 문주 맹호식은 육무겸과 풍석천의 숨결이 빠르게 사라진 것을 느끼면서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천남의 판도가 크게 바뀔 것이오.”옆에 있는 묘음문 문주 송현아의 아름다운 얼굴에 아직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면서 말했다.“육무겸과 풍석천를 단번에 죽였다니. 이게 바로 성황급 강자의 무서운 실력인가요?”연장생의 닭을 잡듯이 두 성왕을 죽인 모습을 보자 송현아는 죽음의 문턱에 갔다 온 것처럼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아
두 성왕은 지극히 빠른 속도로 공간을 찢고 도망쳤다.허공에 서 있는 연장생은 그들의 뒷모습을 담담히 쳐다보고는 시선을 거두었다.그는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육무겸을 노려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네놈이 자결하면 온전한 시체는 남겨두마.”성지의 제자에 손을 대는 것은 죽을 죄였다. 특히 이태호는 선연을 얻은 후 태일성지 장로들의 눈에 들어왔고 그의 신분도 높아졌으며 차세대 성자로 키울 작정이었다.그러나 당당한 성지의 제자가 하마터면 육무겸의 손에 죽을 뻔했으니 연장생이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육무겸은 그의 말을 듣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주저하지 않고 바로 허공을 찢고 도망치려고 하였다.이에 연장생은 조롱 섞인 야유를 날렸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냐?”성왕급 수사는 그에게 있어서 장난감에 불과했다.연장생이 미간을 찌푸리자, 몸에서 내뿜은 성스러운 빛은 순식간에 주변 만 리에 이른 구역을 뒤덮었다.이 구역 내의 공간은 바로 봉쇄되었고 공간의 장벽도 더욱 견고해졌다.원래 허공을 찢고 도망치려던 육무겸은 공간이 봉쇄된 것을 보자 얼굴에 당황하기 그지없는 기색을 드러냈다.안하무인으로 살아온 육무겸은 비로소 얼음 구멍에 빠진 듯한 공포에 휩싸였다.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애걸했다.“연 장로님, 소인이 이성을 잃고 미련에 사로잡혀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연장생은 피식 웃으면서 조롱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방금 도도했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는 허공 통로의 입구에 있는 이태호의 앞에 다가가서 말했다.“젊은이, 이 자는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그는 한손으로 공간이 봉쇄되어 움직일 수 없는 육무겸을 붙잡고 손끝에서 성스러운 빛을 내뿜으면서 육무겸의 육신을 꿰뚫고 그의 내공을 모두 폐해버렸다.그러고 나서 보이지 않은 공간의 힘으로 초주검이 된 육무겸을 이태호의 앞에 내던졌다.내공이 모두 폐하고 중상을 입은 육무겸은 사색이 되어 죽어가는 개처럼 바닥에 엎드렸다.그는 발악하면
선우정혁은 나타난 사람을 보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연 장로님, 드디어 오셨군요.”선우정혁은 예전에 태일성지의 제자로서 당연히 태일성지의 장로인 연장생을 알고 있었다.그는 이태호가 종문으로 돌아간 후 중주 성지에서 장로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방금 이태호를 맞이할 때 의식적으로 육무겸과 풍석천을 경계하지 않아 미처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비록 그는 천남의 최강자로서 7급 성왕 경지의 내공을 가졌으나 단시간 내에 두 성왕급 수사의 협공을 격파할 수 없었다.특히 두 사람의 목표는 그가 아니었고 육무겸이 자신을 견제하고 동안 풍석천이 이태호를 공격하는 성동격서의 전략을 사용하였다.선우정혁이 무척 당황했고 이태호가 죽임을 당할 찰나에 연장생이 도착했다.허공 틈새에서 나온 연장생을 보자 그는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마음이 놓였다.연장생은 선우정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이태호를 바라보았다.이태호가 성왕급 수사와의 대결에서 몇 초식을 버티는 모습을 보자, 그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곧이어, 그는 시선을 이태호의 앞에 있는 풍석천에게 돌렸고 손을 들고 허공을 향해 오므리자 순식간에 보이지 않은 힘이 병아리를 잡듯이 풍석천을 자기 앞으로 끌어왔다.“성왕 주제에 겁도 없이 감히 우리 성지의 제자를 해치다니. 네놈들에게 한 수를 가르쳐 주겠다.”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손가락을 뻗어 풍석천을 향해 까닥였다.다음 순간, 천남 지역의 수만 리나 되는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짙은 먹장구름이 밀려왔으며 천둥 번개가 질주했다.연장생의 손가락에서 눈부신 빛줄기를 뿜어냈고 벌레를 밟아 죽인 것처럼 풍석천의 육신을 바로 피안개로 만들어버렸다.강력한 성왕의 신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도자기처럼 부서졌고 자고자대했던 풍석천은 이렇게 생을 마감했다.허공 통로의 입구에 선 이태호는 풍석천이 갑자기 죽자 그를 엄습해 온 성왕의 위압도 순식간에 사라졌음을 느꼈다.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연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 후 허공에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마어마한 기운이 밀물처럼 주변 수십 리의 구역을 뒤덮었다.이어서 얼어붙은 공간 내에 갑자기 높이가 수 장(丈)이나 되는 공간 틈새가 나타났다.은백색의 보선(寶船)이 공간 틈새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그다지 크지 않은 보선의 앞머리에는 해, 달, 별, 구름 등 문양이 수놓인 흰 장포를 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나이는 예순 정도로 보이고 백발이지만 혈기왕성해 보였다.이 노인이 바로 태일성지의 대장로 연장생이었다.그가 성지 종문의 대전 내에서 이태호가 선연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곧바로 자음진인에게 천남에 와서 이태호를 보호하겠다고 청했다.태일성지에서 출발한 후 그는 수십 만리나 넘을 수 있는 전송진을 거쳐서 천남 지역에 도착했다.천남에 이른 후 연장생은 신식을 방출해서 성공 전장에서 천남에 내려오는 착륙지를 수색하다가 마침 육무겸과 풍석천이 이태호를 협공한 장면을 포착해서 주저하지 않고 공간을 찢고 나타난 것이었다.다행히 그는 이태호가 다치기 전에 도착했다.다채로운 보선을 조종해서 허공 틈새에서 나온 연장생은 살기등등한 풍석천이 이태호의 코앞까지 접근한 것을 보자 안색이 음침하기 그지없었다.다음 순간, 그의 몸에서 천지를 압도하는 공포스러운 위압을 발산했고 하늘이 무너지고 대지를 붕괴하게 할 수 있는 기운이 퍼져 나왔다.이 기운을 가장 먼저 느낀 풍석천은 대경실색했고 목소리는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떨렸다.“성...성황?!”성왕급 수사인 자신으로 하여금 위기감을 느낄 수 있고 공간을 봉쇄할 수 있는 것은 성황급 대능력자가 틀림이 없었다.지금 천남에서 실력이 가장 강한 선우정혁도 7급 성자급 수사에 불과했다.그리고 상대방의 말에서 눈앞의 은발 노인은 태일성지의 사람이 분명했다.순식간에 풍석천의 등골에 식은땀이 났고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그가 육무겸과 손잡아서 이태호를 공격하는 것은 태일성지가 움직이기 전에 이태호가 대능력자로 성장하지 못하게 죽이려는 것이었다.그러나 태일성지의 움직임이 이렇게 빠를
선우정혁은 이제야 비로소 육무겸과 풍석천의 속셈을 꿰뚫어보았다.그는 충혈된 눈으로 그들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감히 우리 태일종의 제자에게 손을 대다니. 죽을 작정이로군! 지금 이태호는 태일성지의 제자인데 네놈들이 그의 털끝이라도 다치게 한다면 신소문과 풍씨 가문은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거야!”선우정혁은 육무겸과 풍석천이 갑작스레 공격을 진행한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일반적으로 말하면 이런 상황에 먼저 친분을 쌓기 위해 너도나도 친한 척하지 않은가.진선 정혈을 얻은 이태호는 백년도 안 된 사이에 신선으로 비승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 두 사람은 친분을 쌓기는커녕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주변에 있는 맹호식은 육무겸과 풍석천이 어리석다는 듯 흘겨보았다.육무겸은 선우정혁의 말을 듣고 냉소를 머금고 대꾸했다.“흥, 우리 신소문만 이태호를 죽이려는 게 아니다. 이놈은 하늘이 높은 줄도 모르고 여러 성지에 미운털이 박혀서 내가 대신해서 처리해 주는 거야.”이에 선우정혁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붉은 빛이 번쩍이는 최상급 영보를 손에 쥐었다.한편으로, 허공 통로에서 막 걸어 나온 이태호는 선우정혁에게 인사하기도 전에 강렬한 살기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느꼈다.이어서 무서운 성왕급 기운이 밀물처럼 자신을 향해 엄습해 오면서 마치 큰 산의 제압을 받은 것 같았다.그가 반응했을 때 풍씨 가문의 가주 풍석천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덮쳐왔다.‘위험해!’위험을 느낀 이태호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현황봉과 청광순, 그리고 성왕 호신부를 꺼냈다.이미 눈앞에 다가온 풍석천은 이를 보고 하찮게 여기는 표정으로 말했다.“고작 방어 영보로 성왕급 수사의 공격을 막겠단 거냐?”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주먹은 이미 현황봉을 향해 날아갔다.펑. 풍석천이 날린 주먹 한 방에 현황봉이 바로 날아갔다. 예전부터 줄곧 철벽 같은 방어장벽을 만들던 현황봉에 주먹 자국이 생겼고 빽빽한 균열이 나타났으며 원래 넘쳐흘렀던 영광은 순식간
성공 전장의 끝없이 펼쳐진 허공에서 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는 이태호의 몸에서는 팽배한 도운과 성스러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그는 마치 혼돈의 허공에서 걸어 나온 진선과 같은 기품을 내뿜었다.진선 정혈을 완전히 수복한 후 그는 이 선인의 핏방울에 담긴 도운의 규칙에 대해 초보적인 깨달음을 얻었다.그는 천천히 두 눈을 떴고 칠흑 같은 눈동자에서 발산한 눈부신 빛은 바로 주변의 허공을 꿰뚫었다.깨달음을 마치고 눈을 뜬 이태호는 자기의 몸을 살펴보았다. 기혈이 용암처럼 들끓었고 육신은 홍황(洪荒) 시대의 흉수에 못지않게 단단해졌다.지금의 그는 아직 내공을 완성한 4급 성자 경지이고 5급 경지로 돌파하지 못했지만 진선 정혈을 단련해서 천지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육신이 더욱 단단해졌고 강력해졌으며 경지의 장벽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천남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이태호는 7~8일도 걸리기 전에 5급 성자 경지로 돌파할 수 있다고 추측했다.이렇게 생각한 그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역시 진선의 정혈이군. 이것을 단련해서 연결을 맺으면 천지의 규칙을 바꿀 수 있고 수천만개의 질서신련(秩序神鏈)이 나타나게 할 수 있군...” 진선 정혈을 모두 단련하였기에 앞으로 그 속에 담긴 규칙의 힘을 깨닫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을 흡수하든 대도를 인증하든 더 이상 성공 전장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수많은 성공의 힘이 주변에 있는 허공의 힘과 어우러지며 이태호의 앞에서 순식간에 높이가 일장(一丈)이나 되는 허공 통로를 만들었다.이를 본 이태호는 주저 없이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곧이어 무한한 별빛이 그의 몸을 휘감더니 그를 창란 세계의 천남으로 전송했다.그가 허공에서 내려갈 때 다시 창란 세계의 전모를 보았다.그는 발 밑에 있는 대지가 이렇게 작고 하늘이 이렇게 광활한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이에 그는 오직 진정한 선인만이 수시로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확고한 눈빛을 번쩍이었다.“신선이 되어야 해. 신선으로 되
“다른 성지에서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우리 태일성지에서 가능한 빨리 이태호를 보호해야 합니다.”“...”주변에 있는 장로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면서 논의하였다.이태호는 태일성지의 부속 세력인 태일종의 제자일 뿐이지만 이미 예비 제자로 될 자격을 얻었다.게다가 지금 신선으로 비승할 기연까지 얻었으니 장로들이 그를 더욱 중시하는 것은 당연했다.의자에 앉아 있는 자음진인은 그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특히 그는 전성민을 통해 혼원성지의 성자 예진기는 요지 성녀 변청하 등과 선연을 두고 혈투를 벌이다가 결국 혼원성지의 호도신병까지 꺼냈음에도 이태호에게 선연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누구라도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었다.목숨을 걸고 싸워 거의 손에 넣을 뻔한 선연을 결국 다른 사람이 가져갔다니.지금 창란 세계로 돌아온 다른 천교들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수시로 이태호를 격살할 준비를 했을 것이었다.자음진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마침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어느 장로가 천남에 가서 이태호를 직접 성지로 데려오겠는가?”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대답했다.“성주님, 제가 가겠습니다.”“저는 5급 성황 경지라 그 녀석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습니다.”“성주님, 저와 선우정혁은 예전부터 아는 사이라 이번에 천남에 가면 오랜만에 회포를 풀 수 있으니 이 일을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몇몇 장로들이 모두 가고 싶다고 말하자, 자음진인은 벙글벙글 웃었다.예전에 진선 정혈을 얻은 천교들을 보면, 선연을 얻은 이태호는 백 년 안에 신선으로 비승할 가능성이 높았다.장로들이 앞다투어 천남으로 가겠다는 것은 당연히 이태호에게 잘 보이고 자기의 파벌로 끌어들이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나중에 이태호가 신선으로 된다면 그들에게 가르침이라도 줄 수 있으니까.자음진인은 어찌 장로들의 생각을 모를 수 있겠는가?그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여러분이 모두 가고 싶다면...”그의 말이 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