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두 아이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고 자신의 눈물이 이렇게 아무 쓸모도 없을 줄 몰랐다. 두 아이가 그의 옷을 잡고 엄마를 찾으러 가자고 할 때에야 그는 두 아이의 옷이 예쁜 작은 옷으로 변했고 얼굴도 어느새 깔끔하게 변한 것을 발견했다.자신의 어린 시절과 똑같은 모습을 한 남자아이와 진유나를 쏙 빼닮은 여자아이의 얼굴을 보자 그는 또다시 울컥했다.두 아이에 이끌려 진유나 옆으로 다가가자 진유나는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지금 이 순간, 그는 온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부드러운 바닷바람이 창문을 통해 불어와 볼을 살짝 쓰다듬었다.그들이 이토록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걸 아무도 몰랐고 그들이 꿈꾸며 눈물을 흘린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달콤한 시간은 언제나 빨리 지나갔다.한 달 후, 유강후의 몸이 완쾌되자 이권은 셋째 도련님의 소도 때려죽일 만큼 건강한 모습에 걱정이 앞섰다. 더 이상 아픈 척 연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이렇게 안색이 좋고 정신상태도 좋은 환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하지만 유강후는 진유나의 보살핌을 계속해서 받고 싶은 속셈이 가득했기에 계속 연기를 이어가야만 했다. 누가 누구를 보살피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말이다.“너무 빨리 회복되면 안 되니까 방법을 좀 생각해 봐. 곽 선생한테 전화 걸어서 좀 늦게 회복되는 약이 없냐고 한번 물어봐. 되도록 한 반년쯤 걸리는 그런 약으로. 있으면 가서 좀 가져와.”“이미 여쭤봤어요. 곽 선생께서 화를 내시면서 빨리 죽는 약은 있는데 드시겠냐고 하더라고요.”유강후는 눈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돌팔이 의사 같으니라고!”그러고는 이내 다시 물었다. “나 진짜로 다 나아 보여? 진짜 환자 같지 않아?”이권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게다가 곽 선생님께서 주신 연고를 바르시고 나서 상처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아물고 있어요. 만약에 계속 입원하고 있으면 진 선생께서 꾀병을 부리는 것을 알아채고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돼요.”유강후는 고뇌했다. “정말로 아
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으며 말했다. “유나 씨가 오랫동안 곁에 없어서 그래요. 여기도 아파요.”진유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잠깐 나갔다 온 지 네시간밖에 안 되는데요?”유강후는 휴대폰을 한번 보고는 진유나의 말을 정정하며 말했다.“네시간 21분이 안 길어요? 저는 환자라서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해요.”그는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고 안색도 피로해 보였다. 진유나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진짜로 아파요? 제가 의사 불러올게요.”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괜찮으니 가지 마요. 유나 씨가 여기 곁에 있어 주면 괜찮아질 거예요.”진유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웠다.“보름 동안 조금도 나아진 것 같지가 않아요. 곽 선생님이 주신 약도 약발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다시 곽 선생을 모셔 와 진찰해 볼까요?”문 앞에 있던 이권은 진유나의 말을 듣고는 도리머리를 저었다.모든 사람이 유강후가 꾀병을 부리는 것을 알아챘지만 진유나만 눈치를 채지 못했다.“곽 선생 요즘 실험하느라 바빠요.”진유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오늘 아침에 곽 선생의 sns를 봤는데 며칠 동안 쉰다고 했어요. 남편과 함께 가까운 곳에 여행을 갈 거라고 친구들에게 맛집을 추천해달라고도 해서 제가 여러 군데 추천해 줬어요. 시간 날 때 같이 바다에 있는 카페도 가보자고 약속도 했는데요.”유강후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 “무슨 카페? 사람도 많을 텐데 그런 데를 왜 가요? 유나 씨랑 안 어울려요. 그리고 언제부터 곽 선생이랑 그렇게 친하게 지냈어요?”곽혜진과 염동식, 두 사람에 대해 유강후는 들은 바가 있었다. 곽혜진은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하는 스타일이라 유강후는 자기 사람이 그 사람과 어울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진유나의 생각은 달랐다. “아마도 바다 위 덱에 있는 카페일걸요. 아름다운 뷰도 감상하고 친구들이랑 얘기도 나누고 얼마나 좋아요? 곽 선생은 사람도 예쁘고 의술도
진유나는 유강후의 옷깃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앞으로도 경영에 괜해 많이 알려줘요. 요즘 연수라도 가서 경영 공부할지 고민도 하고 있어요.”유강후는 진유나를 안아 창턱에 앉혔다. 그러고는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감싸안더니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한참 후, 유강후는 그녀에게 타이르듯 속삭였다.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유나 씨가 직접 대진 그룹을 운영하고 싶다면 제가 뒤에서 도와줄게요. 아니면 제 밑에 있는 임원 중 유나 씨 마음에 드는 분이 있으면 말만 해요. 제가 안배해 놓을게요. 어때요?”진유나는 잠시 멈칫하더니 까만 큰 눈동자로 진지하게 유강후를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직접 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한테 맡기면 마음이 안 놓일 것 같아요. 회사는 아버지가 저한테 물려주신 자산이라 많이 키우지 못하더라도 지키고 싶어요. 그래서 나중에 저는 오랫동안 외국에 머무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강 대표님은 본가가 미국에 있잖아요...” 그녀는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목소리도 떨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희 둘은 헤어지...”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의 입술이 그녀를 덮쳤다.그는 마치 벌주기라도 하듯 진유나의 입술을 깨물며 그녀를 삼켜버릴 듯 거칠게 키스를 퍼부었다. 평소처럼 젠틀한 모습도 조심스러운 모습도 없었다.진유나는 당황스러움에 유강후를 밀치며 말했다. “아파요, 놔줘요, 아프다니까요...”유강후는 진유나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더욱 세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평소 부드럽던 그의 모습은 마치 환상인 듯 찾아볼 수가 없었다.진유나는 유강후가 멈추기를 바라며 뿌리치려고 애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유강후는 더욱 거칠게 그녀에게 다가갔다.결국 피비린내를 맡았는지 유강후는 정신을 차리고 진유나를 놓아주었다.진유나는 붉게 번진 유강후의 눈을 보고 두려움에 그를 밀치고 창턱에서 뛰어내려 도망가려고 했지만 두 발짝도 못 가 그의 품에 안겨졌다. 유강후는 그녀를 창문 앞에 세워 놓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그런데...”진유나는 어딘가 찝찝했다,유강후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속삭이듯 말했다.“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나한테 맡겨요. 내가 지켜봤는데 진씨 집안에 괜찮은 남자가 몇 명 있어요. 일을 열심히 배우게 해서 유나 씨를 보좌하도록 하면 돼요. 그리고 나중에 우리도 아이가 생길 건데 아들이랑 나랑 같이 유나 씨를 지켜줄 건데 뭐가 걱정이에요?” 유강후는 진유나의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진유나는 얼굴이 빨개져 그의 손을 밀쳤다. “누가 대표님이랑 아이를 낳는대요?”진유나는 그날의 은밀하고도 달콤한 꿈이 떠올랐다.“만약에 딸이면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아들이면 우리 부자가 유나 씨를 지켜주고 딸이면 내가 다 지켜주면 되죠.”진유나는 말없이 유강후의 가슴에 파묻혀 조용히 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한참이 지나 그녀는 입을 뗐다.“그런데...”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유나 씨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요. 박씨 가문과의 혼약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별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눈이 반짝거렸다. “북아메리카에 예쁜 여자애들이 많잖아요. 그가 거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는데 이미 다른 사람이랑 만나고 있을지도 몰라요.”진유나는 내심 미안해했다. “삼 년 동안 그가 저를 옆에서 보살펴줬는데 저는...”진유나는 유강후를 처음 본 순간 바로 사랑에 빠졌었다.그래서 마음 한편으로는 염지훈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유나 씨, 사랑은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에요. 며칠 후, 우리가 북아메리카로 돌아가면 그때 시간 내서 만나서 얘기해 봐요. 다들 어른인데 잘 얘기하면 될 거예요.”진유나는 그날 그 동영상과 여자애가 떠올랐다. 염지훈과 그 여자애 사이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왔다. 둘 사이에 정말로 무슨 일이 있다면 오히려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됐어요, 생각하지 말고 일로 와요. 내가 게살 발라줄게요.”게 네 마리 모두 품질이 아주 좋았다. 유강후
속으로 흐뭇해하던 유강후는 진유나의 손을 잡으며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두 사람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랐다.[진씨 집안 주방]진수현은 유강후를 달가워하지는 않았지만 딸을 위해 미리 요리도 많이 준비하고 또 H국 쉐프도 초빙해 왔다.하지만 표정이 영 밝지 않아 진유나의 엄마가 몇 번이나 옷깃을 잡아당기며 눈치를 준 후에야 조금 나아진 기색이 보였다.식사가 절반쯤 지나자 진수현이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는 강 대표님은 이제 다 나은 것 같은데 왜 아직도 퇴원하지 않는 거예요? 계속 꾀병 부릴 셈인 거예요?”유강후가 대답하기 전에 진유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강 대표님 진짜로 아파요. 꾀병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진수현은 근엄하게 말했다. “어른들 얘기에 너는 끼어들지 마.”유강후는 숟가락을 놓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제 거의 다 나아서 곧 퇴원하려고 해요. 남은 일만 마저 처리하고 유나 씨랑 같이 북아메리카에 가려고요.”진수현은 얼굴이 더 어두워지며 말했다. “나는 두 사람 아직 허락 안 했어요.”유강후는 진유나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유나 씨도 이제 어른이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 진 회장님이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곁에 두는 일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뭐라고요? 지금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 거예요?”진수현은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화를 했다.유강후는 평온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진수현이 대답하기 전, 유나의 엄마, 안심이 먼저 말을 꺼냈다. “됐어요. 수현 씨. 오늘 북아메리카로 가는 일에 대해 의논하려 온 건데 잘 얘기해 봐야죠. 딸 얘기만 나오면 화내는 거 안 좋아요.” 진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기는 왜 계속 강 대표 편을 드는 거야?”안심은 한숨을 쉬고는 유강후한테 사과했다. “미안해요, 유나 아버지가 유나가 걱정돼서 성질내는 거니까 이해해 줘요. 북아메리카 가는 일에 관해 우리도 유나의
“그리고 하나 더, 내 딸이랑 한집에 사는 건 안 돼요. 알겠어요?”유강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곁에 있던 진유나는 얼굴이 붉어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너는 진씨 집안 후계자야. 우리가 떠받들며 키운 공주라고. 여기 동남아시아에서는 너한테 함부로 못 하겠지만 북아메리카로 가면 누가 알아? 곁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어야 해. 알겠어?”유강후는 참지 못해 말했다. “진 회장님, 이번에 제가 돌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저희 할아버지 환갑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유씨 집안 여주인이 누구인지 발표하기 위해서예요. 유나 씨가 안주인인데 누가 감히 함부로 대하겠어요?”진수현은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화를 냈다. “누가 유 씨네 안주인이이에요? 선 넘지 마세요. 난 그저 두 사람의 교제를 동의했을 뿐이지 결혼을 허락한 것은 아니에요.”진유나의 엄마도 덧붙였다. “맞아요, 아직은 일러요. 모두가 동의한다고 해도 박씨 집안과의 파혼을 먼저 해결해야죠.”진유나 부모님의 얘기를 들은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녁 식사가 끝난 후, 진수현은 유강후를 돌려보냈다.진유나는 장미나무 밑에서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다가 차가 서서히 멀어져 시야에서 벗어나자 그제야 뒤돌아 집으로 들어갔다.한 달 동안 거의 매일이다시피 유강후의 옆을 지켰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어 진유나는 괜히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진유나는 일찌감치 샤워를 마치고 주식 뉴스를 조금 들여다봤다. 하지만 머리에 온통 유강후와 며칠 뒤 북아메리카에 가는 생각으로 가득 차 차분히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진유나는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열두 시가 거의 다 되어서 누군가 창문을 똑똑 두드리자 유나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었다.“누구세요?”창문 밖에서 중저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예요.”잠깐 멍하니 있던 진유나가 창문을 열자 유강후가 잽싸게 창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왔다.창문을 닫은 진유나는 누가
잠자기 전이라 편한 옷차림을 한 유나는 지금 이 순간,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유강후가 이렇게 거칠게 할 줄 몰랐던 유나는 이불로 가리려고 했지만 제지당하고 말았다.유강후는 머리를 그녀에게 파묻은 채 속삭였다. “그냥 보여줘.”진유나는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져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안 돼요. 민망해요...”유강후는 그녀의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그녀의 몸을 한곳 한곳 탐하기 시작했다. 강후의 거칠고도 부드러운 리드에 유나는 그저 몸을 맡겼다.둘만의 뜨거운 밤이 시작되었다.그 후 며칠, 진씨 집안과 유강후는 바쁜 시간을 보냈다.진씨 집안은 유나의 웨딩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고 액세서리부터 옷까지 일일이 알선해서 준비하느라 안심은 몇몇 인접국의 고급 쇼핑몰을 모두 돌아다녔다.또 소장품 중에서 유강후 할아버지 환갑생신에 드릴 만 한 귀한 선물도 몇 개 골랐다.유강후는 업무를 마저 처리하고 당분간 로운이 업무를 맡아 하도록 인계를 해주었다.북아메리카로 돌아가기 전, 유강후는 진유나와 함께 염씨 부부가 머무는 섬에 갔다.섬에 도착하자 유나는 눈앞에 펼쳐진 몇십 척의 커다란 크루즈를 보고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염 회장님이 사모님을 무척 아낀다는 소문도 사실이었던 것이 사모님을 위해서 거의 크루즈로 이사를 온 것 같았다.크루즈에는 호텔, 풀, 슈퍼마켓 그리고 오성급 호텔레스토랑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염씨 부부는 유강후와 진유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점심 식사는 염동식의 개인 레스토랑에서 직접 요리를 해주었고 곽혜진은 옆에서 일손을 도와주려다 손을 베이는 바람에 그저 옆에 앉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염 회장은 요리 여덟 가지에 수프도 한가지 만들었다. 집에서 자주 먹는 익숙한 요리들이지만 맛은 일품이었다.진유나는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 빨리 먹다가 하마터면 혀를 깨물뻔했다.특히 버섯 수프는 세 그릇이나 마셨고 한 그릇 더 마시고 싶었으나 유강후는 이미 배가 나올 정도로 많이 마신 진유나를 보고
이때, 갑자기 중무기를 든 용병 몇십 명이 나타났지만 원주민들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듯한 찰나, 원주민 한 명이 진유나를 발견하고 그녀를 가리키며 뭐라고 중얼중얼 큰 목소리로 말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그중 몇몇 단어들만 알아챌 수가 있었는데 아마도 저들이 진씨 집안, 안씨 집안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유나는 눈치를 채고 가방에서 소지하고 있던 진씨 집안 휘장을 꺼내자 원주민들은 그제야 목소리가 좀 차분해지며 수긍하는 듯했다. 비록 얼굴에는 못마땅한 표정들이었지만 적어도 싸움을 걸려는 사람은 없었다.유나가 다가가려고 하자 유강후는 손목을 잡으며 막았다. “안돼요, 너무 위험해요.”“지금 이 상황에 싸움하게 놔둘 수는 없어요. 이러다 진짜로 총을 쏘기라도 하면 더 큰 피해가 생길 거예요. 현지 무장 군사까지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요.”그녀는 뒤에 펼쳐진 숲을 한번 보고는 낮은 목소리도 말했다. “이곳 원주민들은 아직 개화가 덜 된 사람들이라서 엄청 고지식할 거예요. 그리고 뱀을 아주 잘 다뤄요. 저번에 대표님을 물었던 그런 뱀이 이곳 섬에 특히 많아요. 정말로 저들을 분개하게 하면 이 섬에 있는 기지들이 전부 망가질지도 몰라요.”“이 섬에 있는 풍력발전소도 저희 집안이 투자했고 어류 공장들도 다 우리 집이 투자 한 것들이에요. 저분들이 저를 알아보는 것을 봐서는 아마 저희 엄마를 아시는 듯해요. 제가 나서서 해결하면 무력 투쟁하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유강후는 로운과 함께 오지 않은 것이 급후회 되었다. 로운이 이곳에서의 영향력이라면 저분들이 어쩌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유강후는 진유나의 손을 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가요.”곽혜진은 진유나가 이해가 됐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유나 씨, 그냥 모르는 척해요. 유나 씨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에요.”진유나는 도리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이곳에서 진씨 집안 영향력은 꽤 커요. 어떨 때는 정부보다도 더
온다연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가느다란 두 다리를 꽉 조였다.그러자 유강후는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타일렀다.“남편한테 보여주는 게 뭐가 부끄러워요.”온다연은 목소리마저 떨렸다.“못생겼어요. 보지 마요.”“예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예뻐요.”말하면서 유강후는 손에 힘을 주고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분홍빛을 띄며 부드러워야 할 그곳은 이미 빨갛게 부어있었고 찢겨진 흔적도 보였다.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느껴졌다.후회가 밀려온 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졌다.“약 가지러 갈게요.”이미 수없는 애정 행각을 했음에도 온다연은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부끄러워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그만 봐요. 아까 의사 선생님이 약 발라줬어요. 그리고 이제는 많이 안 아파요.”유강후는 몸을 일으키더니 밖으로 나갔다.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작은 연고가 들려있었다.“지난번에 상처에 쓰고 남은 건데, 다른 약보다 효과가 좋을 거예요.”유강후가 직접 약을 발라주려고 하자 온다연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혼자 할게요.”그걸 두고 볼 리가 없었던 유강후는 그녀를 달래며 침대에 눕혔고 직접 약을 발라줬다.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나쁜 손은 또 이리저리 만져대기 시작했다.거친 손길에 온다연은 얼굴이 상기된 채로 그를 세게 걷어찼다.그렇게 꽁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이 되고서야 유강후는 그녀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다음날 온다연이 눈을 떴을 땐 이미 점심이 되었고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예전에는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유강후는 꼭 정해진 시간에 일어났기에 늘 늦잠 자는 건 그녀뿐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보다 더 깊이 잠들었다.옆에서 툭툭 밀었지만 유강후는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게다가 손에 느껴지는 그의 열기에 깜짝 놀랐고 유강후는 고열인 게 틀림없었다.온다연은 다급하게 집사를 불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와 강현미가 부리나케 달려왔다.강현미는 아들의
온다연은 한숨을 쉬며 조용히 말했다.“왜 이렇게 속이 좁은지 이해가 안 되네요. 두 사람이 싸울 때 들었어요. 예전에 우리가 안 좋은 일로 헤어졌다면서요?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줘요.”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염 대표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헛소리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요. 우린 헤어진 적 없어요. 그 사람이 우리 사이를 이간질해서 유나 씨를 빼앗아 가려고 했어요. 지금까지 살려둔 건 자비를 베푼 거죠.”온다연은 생각에 잠겼다.“우리 두 사람 사이에 꽤 많은 일이 있었나 봐요? 끼어들 기회가 엿보여서 이간질했던 게 아닐까요?”유강후가 답했다.“어차피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 거예요.”“아니, 예전에도 기회를 준 적은 없어요. 내가 잠깐 방심한 틈을 타서 유나 씨를 데려갔거든요. 이제는 우리 사이에 끼어들 그 어떤 기회도 주지 않을 거예요.”“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걸 알면서 뻔뻔하게 끼어든 파렴치하고 비열한 놈이죠.”이때 온다연이 말했다.“예전의 기억을 되찾고 싶어요. 강 대표님이 실력 있는 최면사를 소개해주면 안 돼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유강후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많이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래서 유나 씨가 기억을 되찾는 걸 원치 않아요.”그러나 온다연의 태도는 확고했다.“아니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다해도 내가 직접 겪은 그때만의 추억이잖아요. 강 대표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좋든 나쁘든 놓치고 싶지 않아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아이가 태어나고 건강을 회복한 후에 기억을 되찾아도 늦지 않아요. 이런 일로 아이한테 영향을 미치면 안 되잖아요.”유강후는 아이를 좋아하는 온다연의 성격을 고려해 일부러 이런 얘기를 꺼냈다. 아이가 생긴다면 과거의 안 좋은 일이 생각나도 결국 아이를 지키기 위해야 곁에 머물 테니까.그 말을 들은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렸다.“차라리 아이가 없을 때 기억을 되찾는 게 좋지
강현미를 불러오려던 집사를 온다연이 나서서 말렸다.“별일 아니니까 얘기하지 마요.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약만 잘 바르면 금방 나을 거예요. 늦은 시간에 찾아가는 건 괜히 실례일 수도 있어요.”온다연은 도우미들을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에 있는 사람들만 알았으면 좋겠어요. 누가 물어보면 그냥 넘어져서 다친 거라고 얘기해요. 무슨 뜻인지 알겠죠?”아무도 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었다.온다연은 이제 의심할 여지 없이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다. 더군다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유강후의 태도를 지켜봐 왔기에 온다연의 명령을 거역하는 건 불가능했다.다만 겉보기에 연약해 보이는 온다연이 일 처리할 때만은 매우 냉정하고 단호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게 한편으로는 신기했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약을 발라주려고 다가갔다. 그러나 유강후는 고민도 없이 그녀를 안아 올려 침대로 내던졌다.부드러운 애무나 키스는 건너뛰고 유강후는 매우 거칠게 그녀를 다뤘다.그들은 신체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에 아무런 준비동작 없이 이어진 갑작스러운 행동에 온다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러나 평소와 달리 유난히 확고한 유강후는 거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온다연은 유강후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여 예전처럼 아프다고 소리치는 게 아닌 오히려 힘을 풀고 자신의 몸을 열어 그를 꽉 껴안았다.전혀 자제하지 않는 유강후 때문에 온다연은 끝내 피를 보고 말았다.어쩔 수 없이 한밤중에 여의사를 불러왔다.의사는 침대에 묻은 피를 보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으나 감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온다연에게 조심스럽게 약을 발라주며 최근 며칠 동안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충고했다.온다연은 아파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유강후를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그제서야 유강후도 정신을 차렸다.3년 전 온다연을 잃었던 두려움과 무력감이 염지훈이 그녀를 데려간 순간 다시 솟구쳐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경호원이 건넨 약상자를 받아들며 그에게 다가갔다.“여긴 너무 어두워요. 차에서 발라줄게요.”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해줘요.”사실 그는 별장의 큰 유리창을 통해 온다연이 염지훈에게 약을 발라주는 걸 목격했다.그는 질투심으로 이미 미쳐가고 있었다.‘염지훈... 분명히 일부러 그런 거야. 보기에는 심각해도 솔직히 얼마 다치지도 않았잖아? 하여튼 꾀병은.’경호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려는 유강후를 말리지 않았다면 염지훈은 지금쯤 이미 병원에 누워있었을 것이다.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만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아파요.”온다연은 쪼그리고 앉아 다친 부위를 주의 깊게 살폈다.염지훈이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여러 군데가 파랗게 멍들었고 피부가 벗겨진 곳은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다친 걸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아픈 걸 잘 참는 유강후가 고작 이런 작은 상처에 아프다고 호소하니 온다연은 어이가 없었다.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치료해 줬다.“이제 됐으니까 가요. 남은 건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의사 선생님한테 처리해 달라고 해요.”유강후가 손을 뻗어 힘을 가하자 온다연은 그의 다리 위에 주저앉았다.곧바로 턱을 잡더니 격렬한 키스가 이어졌다.그는 마치 분노를 표출하듯 온다연을 물어뜯었고 피비린내를 맛보고 나서야 그녀를 풀어주었다.온다연은 찢긴 자신의입술을 만지며 차갑게 말했다.“미쳤어요?”그러자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도착하자마자 온다연을 차에 앉히더니 문을 닫은 후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화들짝 놀란 그녀는 재빨리 유강후의 손을 붙잡았다.“정말 미쳤어요? 밖이잖아요.”유강후는 전혀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옷을 찢었다.불과 몇 초 만에 입고 있던 옷이 전부 벗겨졌다.온다연은 너무 화가 나서 그를 두 번이나 걷어찼지만 유강후는 이를 무시하고 셔츠를 벗어 그녀에게 입혔다.“나이도 많은 사람이 왜 이렇
재회가 됐든 다시 사랑에 빠지든, 온다연에게는 돌아갈 길이 없다.마음은 하나뿐이기에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도 단 한 명뿐이다.“감정이 격해진 것 같네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봐요.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얘기해요.”온다연은 붕대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이만 가볼게요. 푹 쉬어요.”염지훈은 고통스럽게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유강후가 그렇게 좋아?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다 믿을 정도로? 두 사람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긴 해?”온다연은 잠시 생각한 후 그에게 답했다.“지금은 믿고 싶어요. 과거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해도 피할 생각은 없어요. 만약 우리 둘 사이에 많은 오해가 있었다면 하나씩 풀어갈 거예요. 용서할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때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그녀는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하지만 우리 둘 사이가 어떻게 되든 제 마음에는 지훈 씨가 없어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지훈 씨랑 결혼하는 건 너무 파렴치한 행동이잖아요. 지훈 씨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어요.”온다연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레스토랑에서 어떤 여자랑 밥 먹는 걸 봤어요. 그 여자분은 지훈 씨를 많이 좋아해요.”염지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다연의 손을 잡았다.“뭘 들은 거야?”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무것도 듣지 못했어요. 다만 지훈 씨를 바라보는 눈빛에 담긴 애정과 존경은 정확하게 봤어요. 그분은 지훈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염지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무 사이 아니야. 좋아하는 감정도 없고. 다연아, 내 마음속에는 오직 너뿐이야.”온다연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계속 이러면 더 이상 지훈 씨랑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저도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예요. 당분간 진정하고 괜찮아지면 다시 만나서 얘기해요.”염지훈은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유강후한테 가고 싶어? 난 동의 못 해. 강씨 가문으로
“지훈 씨, 미안해요.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훈 씨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요. 솔직히 약혼 날짜를 미룰까도 고민해 봤는데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훈 씨는 그저 저한테 가족이나 오빠 같은 사람...”“듣기 싫으니까 그만해.”염지훈은 거칠게 말을 자르고선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온다연, 너 진짜 잔인하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잖아. 널 위해서 헌신적으로 노력한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왜 유강후는 등장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는 건데? 왜 그 사람 말 한마디에 흔들리냐고. 도대체 왜?”온다연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박씨 가문과 진씨 가문의 약혼은 깬 건 그녀가 맞았기에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질책해도 말없이 그걸 견뎌야만 했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내 마음을 통제할 수가 없었어요...”“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다야?”고통을 이기지 못한 염지훈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불과 몇 초 만에 그의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다.온다연은 재빨리 그를 말렸다.“지훈 씨, 이러지 마요.”그러자 염지훈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흐느꼈다.“그냥 잠깐 자리를 비운 것뿐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어? 예전의 온다연은 어디 갔냐고. 돌려내. 돌려내라고.”“내가 아는 말 잘 듣고 착한 온다연은 다른 사람과 쉽게 사랑에 빠질 그런 여자가 아니야.”그는 힘껏 온다연을 밀쳤다.“넌 온다연이 아니야. 나가.”“나가라고.”뒤로 밀려난 온다연은 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고 곧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새빨간 피가 그녀의 하얀 뺨을 적시고 나서야 염지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는 온다연을 안아서 소파에 앉힌 뒤 약상자를 찾아와 지혈해 주려고 애썼다.그런데 온다연이 그를 제지했다.“됐어요. 지훈 씨가 더 심하게 다쳤잖아요. 제가 해줄게요.”온다연은 연고와 붕대를 집어들고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과 몸에 난 상처에 약을 발랐다.피투성이 된 손을
유강후는 주먹으로 문을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꺼져.”가장 소중한 걸 잃은 듯한 괴로운 느낌이 또다시 밀려왔고 그는 문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경호원들은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멀지 않은 곳에서 유강후를 지키고 있었다.그들의 눈에 비친 유강후는 우리에 갇힌 짐승이 따로 없었다. 평소 단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미래 그룹의 대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이때 유강후가 대뜸 물었다.“두 사람... 안에서 뭘 하고 있을까?”경호원이 입을 열었다.“저희가 알고 있는 사모님은 선을 지키는 분입니다. 아마 염 대표님과의 약혼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겁니다.”유강후의 곁에서 오랜 세월 일하면서 그들은 두 사람이 어떤 풍파를 겪었는지 전부 지켜봤다. 더욱이 지난 3년 동안 유강후가 보낸 힘든 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그러기에 그에게 온다연이 어떤 존재인지는 더없이 잘 알고 있다.하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으니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편하게 지내지 못할 테니까.그 시각 별장 안.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염지훈은 온다연을 덥석 끌어안았다.온다연은 몸부림치지 않고 그가 자신을 껴안도록 내버려두었다.하지만 염지훈의 힘은 점점 더 세졌고 마치 그녀를 몸속으로 밀어 넣을 듯 꽉 껴안고 놓지 않았다.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숨쉬기 힘들 정도가 되어서야 온다연은 입을 열었다.“이제 됐어요?”염지훈은 그녀를 놓아주더니 잔뜩 지쳐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다연아, 기억이 돌아온 거야?”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예전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염지훈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기억이 돌아온 것도 아닌데 왜 유강후를 만나는 거야?”염지훈은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 계속하여 현실을 부정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느껴질 정도였다.“말도 안 돼. 내가 떠난 지 얼마 됐다고 유강후를 만나는 거야? 심지어 저 사람 하나 믿고 여기까지 왔어?”온다연
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염지훈은 믿기지 않았다.“기억이 떠오른 게 아니라면 유 대표랑은...”“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네요. 잠깐 자리를 옮겨서 얘기할까요?”그러자 염지훈이 답했다.“나 근처에 사니까 그쪽으로 가자.”염지훈이 지내는 곳은 불과 이곳에서 몇백 미터 떨어져 있었고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앞장선 염지훈의 뒤에는 온다연이 있었고 유강후는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유강후가 온다연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마다 염지훈은 돌아서서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곤 했다.극도로 어색한 분위기나 한참이나 이어졌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두 사람과 비슷한 거리를 두었다.별장에 다다르자 염지훈은 유강후를 가로막았다.“그쪽은 환영받는 사람이 아니라서...”그러자 유강후는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염 대표님의 체면을 생각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허락한 거예요. 잊지 마요. 우리 사이에 끼어든 건 그쪽이니까.”주먹을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염지훈의 손에서는 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고 당장이라도 유강후를 갈기갈기 찢을 기세였다.“무슨 낯짝으로 다연이의 곁에 있는 거죠? 그럴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연이를 어떻게 찾았는지 알려줄까요?”“강 대표님이 바꿔치기...”“닥쳐.”분노를 이기지 못한 유강후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염지훈의 손목을 잡았다.“상황을 이용한 비열한 놈이 누군데 감히 날 탓해?”“나랑 다연이 사이에 아무리 큰 문제가 있더라도 그건 우리 둘이 해결할 거야. 너 같은 제 3자가 끼어들 곳은 없어.”제 3자라는 말은 염지훈의 분노 버튼을 눌러버렸다. 결국 그는 또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다.“쓰레기 같은 놈. 너랑 네 가족들이 다연이한테 했던 짓을 생각해 봐. 넌 평생 용서받지 못할 거야.”온다연이 그의 팔을 잡으며 말린 덕분에 주먹은 유강후에게 떨어지지 않았다.“지훈 씨, 얘기할 생각 없으면 이만 가볼게요.”염지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말했다.“저 인간
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입을 열었다.“염 대표?”‘염지훈이 왜 여기에 있지?’염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비꼬는듯한 어조로 말했다.“레스토랑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새로운 부인과 오붓한 데이트라도 하고 계셨나?”유강후의 시선은 그를 넘어 온다연에게 향했다.온다연도 염지훈을 본 게 분명하다.그녀는 일어나서 가볍게 입을 열었다.“지훈 씨.”부드러운 목소리에 염지훈은 날벼락을 맞은 듯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다가 갑자기 돌아섰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앞의 사람을 바라봤다.“다연이?”온다연은 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맞아요.”염지훈은 시선은 오랫동안 그녀에게 머물렀고 여전히 이곳에서 온다연을 만나게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다.“정말 다연이야?”온다연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그러자 유강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쪽으로 와요.”염지훈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몸을 홱 돌리더니 사나운 눈빛으로 유강후를 매섭게 노려봤다.“또 그쪽이네요. 어떻게 찾았어요?”유강후는 그를 차갑게 바라보며 눈에 적의가 번쩍였다.“다연이는 처음부터 내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염 대표님이 제멋대로 숨겼잖아요. 어떻게 감히...”말이 끝나기도 전에 염지훈은 분노하며 달려들더니 유강후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짐승만도 못한 게 무슨 낯짝으로 다연이를 찾아와?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넌 다연이 곁에 있을 자격이 없어.”유강후는 일부러 고개를 기울여 주먹을 맞았다.그러고선 달려드는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물러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절대 움직이지 마. 이건 우리 둘 사이의 원한이야.”그 말에 경호원들은 할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유강후는 외투를 벗어 차에 던지더니 곧바로 주먹을 날렸고 염지훈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냈다.두 남자는 실력이 엇비슷해서 싸우기만 하면 목숨을 걸었고 잠깐 사이에 모두 부상을 입었다.온다연은 싸움이 점점 심해지자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고 달려들었지만 곧바로 경호원에게 붙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