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온다연을 보고 있었다. 마치 그의 앞에서는 모든 것을 숨길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그의 두 눈을 직시할 수 없었던 온다연은 팔찌를 꽉 잡은 뒤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이를 빠득 갈았다.“이 팔찌는 제 거예요. 게다가 이건 비싼 팔찌도 아니라고요. 만약 팔찌를 좋아하는 거라면 다른 팔찌를 드릴 테니까 이것만은 안 돼요!”유강후는 깊은 두 눈으로 그녀를 빤히 보았다. 분명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왜 이토록 이 팔찌에 집착하는 것일까? 설마 그 아이를 기억하는 것일까?그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이 팔찌, 유나 씨에게 중요한 팔찌인가요?”‘중요해?'온다연은 잠깐 혼란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확실히 그녀에게 중요한 팔찌였지만 왜 중요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어젯밤 그녀는 이 팔찌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그녀에겐 팔찌가 아주 많았고 비싼 것도 가득했지만 이상하게도 흥미가 가지 않았고 오로지 이 호박석 팔찌만 매일 차고 다녔다.어느 하루 그녀는 이 팔찌를 전문가에게 보여주기도 했었지만 천연 호박석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공 합성으로 만든 것이라는 대답을 듣게 되었고 호박석 안에는 인간의 머리카락 같은 것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때의 진수현과 안심은 불길하다며 버리려고 했지만 만약 이 팔찌를 버리게 된다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 것 같아 단호하게 남기겠다고 말했다.그런데 이 일은 눈앞에 있는 남자와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그는 왜 그녀에게 물어보는 것일까?그녀는 팔찌를 꽉 쥐고 작게 말했다.“이 팔찌는 어느 장인이 만든 것도 아니고 비싼 게 아니에요. 저 대신 보관해줘서 고마워요. 만약 보상을 원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금액을 말씀하셔도 돼요.”유강후는 여전히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다.“전 돈 필요하지 않아요. 대신 앞으로 유나 씨가 절 볼 때마다 이렇게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보상은 그걸로 받을게요.”온다연은 멍한
이때 집사가 다가왔다.“아가씨, 손님이 곧 도착하실 겁니다. 사모님께서 얼른 옷을 갈아입으시라고 합니다.”온다연은 팔찌를 꽉 잡은 채 고개를 돌려 집사를 향해 대답했다.“어머니한테 전해주세요. 전 몸이 안 좋아서 오늘 저녁 연회엔 참석하기 힘들 것 같다고요.”집사는 뜸을 들였다.“하지만 오늘 저녁 연회는 아주 중요한 자리입니다. 크루즈에서 온 그분과 부통령님 부부가 오시는 아주 중요한 자리라 진씨 가문의 일원이라면 모두 참석해야 할 겁니다. 회장님도 아가씨가 꼭 참석하게 하라고 하셨는걸요.”진씨 가문은 강하긴 했지만 여하간에 상인 출신이었기에 정치계의 인물들과 인맥을 다질 필요가 있었다. 크루즈 타고 오는 중요한 인물들은 당연히 진씨 가문 사람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과 친하게 지낸다면 앞으로 사업을 할 때 더 유리해질 것이다.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알겠어요. 가서 일보세요. 제가 직접 아버지께 말씀드려보죠.”말을 마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지내고 있는 방으로 가버렸다.이때 진씨 가문의 대문이 열리고 검은색 롤스로이스 여러 대가 천천히 저택 정원에 들어왔다.진수현은 집안에서 중요한 몇 명의 젊은이들을 이끌고 직접 마중하러 나왔다. 유강후와 함께 온 사람은 건국 이래 아주 젊은 나이에 부통령이 된 이경진이었다.그는 두 사람의 방문에 다소 놀라워했다. 진씨 가문은 3년 동안 확실히 돈도 많이 벌고 실력도 점점 강대해졌지만 이렇듯 위대한 인물이 직접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알다시피 오아시스 그룹이 이곳에서 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는 이유는 강한 경제력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요인이었다. 하지만 진씨 가문은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강점이 없었다.지금은 강점을 분석할 때가 아니었다. 진수현은 인사를 한 후 유강후와 이경진 부부를 연회장 안으로 안내했고 유강후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온다연을 찾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날 피하는 거야?'연회가 중반쯤 지나자 이권이 들어와 유강후의 귀에
온다연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꿈속에서 유강후가 나타나 지금과 똑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는 그녀가 도망을 치면 어떻게든 찾아냈기에 그녀는 오후 내내 유강후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지만 인터넷에선 그저 성이 강 씨라고만 나왔다. 그런데 왜 아침엔 그녀에게 유강후라고 소개한 것일까?유강후라는 이름은 정말이지 너무도 싫었다! 이 세 글자만 들어도 그녀는 치가 떨려왔다.잠에서 깬 그녀의 모습을 본 유강후는 몸을 일으켰지만 여전히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왜 연회에 참석하지 않은 거죠?”온다연은 그제야 유강후가 자신의 집에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유강후는 오늘 그녀의 집으로 찾아온 손님이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강 대표님, 왜 연회 홀에 계시지 않고 멋대로 남의 집 후원에 오신 거예요? 이건 예의에 어긋나지 않나요?”유강후는 그녀를 빤히 보았다. 은은한 불빛이 그녀의 몸에 쏟아지니 더욱 연약해 보였고 예전에 그녀가 꽃방에서 지내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은은한 조명 아래서 그림을 그리다가 지친 그녀는 의자에 기대어 나른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면 항상 자연스럽게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키스해 달라고 조르거나 귓가에 대고 나른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그때가 아마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때였을 것이다.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를 낯선 사람 보듯 보고 있었다. 고작 3년이 흘렀을 뿐인데 말이다. 그녀의 두 눈에 담긴 냉담함과 느껴지는 거리감에 그는 괜스레 짜증이 치밀었다.그는 어느새 어두워진 눈빛을 한 채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왜요. 아침에 돌려달라는 걸 돌려줬더니 이젠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하는 거예요?”말하면서 시선을 돌려 그녀의 손목을 보았다. 그의 흑요석 팔찌는 그녀의 손목에 두 바퀴 감겨 있었고 다소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얇고 귀여운 손목을 더 돋보이게 했다.그의 시선을 느낀 온다연은 본능적으로 팔찌를 두른 손목을 몸 뒤로 옮기며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왜 이토록 익숙한 것일까?단단한 가슴도,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도, 남자의 숨소리마저도 전부 익숙했다.몇 분 동안 멍하니 있던 온다연은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용수철 튕기듯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터질 듯 빨갛게 물들었다.“방금, 방금은 고마웠어요...”불빛이 은은했지만 그럼에도 유강후는 빨개진 그녀의 두 귀를 발견하게 되었다.빨개진 그녀의 작은 두 귀를 보니 예전에 작게 깨물던 시절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게 되었고 목소리도 어느새 조금 잠겨버렸다.“난간이 너무 허술한 것 같군요. 진수현 씨에게 교체할 시간이 없는 거라면 내가 내일 이 길에 있는 난간을 튼튼한 거로 전부 바꿔줄게요.”분명 온다연이 눈앞에 있었지만, 분명 온다연은 그의 여자였지만 그는 지금 꾹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이런 환경 속에서 절대 그녀에게 두 발로 걸어갈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온다연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는 마침 그윽한 눈길로 자신을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그녀가 알지 못하는 감정이 담겨 있었고 그의 앞에 서 있는 그녀는 마치 사냥당한 하찮은 작은 동물 같았다. 다만 그것도 한순간일 뿐 남자의 눈빛은 다시 원래의 담담한 눈빛으로 돌아와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그녀는 다소 두려웠다. 젊은 나이에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유강후가 절대 생각이 단순한 사람일 리가 없었다.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얼른 몇 걸음 성큼성큼 걸어가며 유강후와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램프는 유강후가 들고 있었다.그녀가 앞으로 걸어가니 그가 느긋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커다란 그의 그림자가 거의 그녀를 삼켜버리고 있었기에 그녀는 너무도 괴로웠고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사실 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와 함께 있으면 자유를 잃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과거에 그와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
그 순간 유강후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멍하니 구경하고 있던 온다연은 그대로 그의 그윽한 두 눈과 눈 마주쳐 버렸다.몽롱한 불빛 아래서 본 남자의 얼굴은 다소 공격성이 있어 보였지만 이목구비가 더 뚜렷해져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잘생겨 보였다. 얼굴이 빨개진 온다연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강 대표님,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들어가는 건 어때요?”유강후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나직하게 말했다.“진유나 씨, 내가 아는 사람이랑 정말 많이 닮았네요.”온다연은 궁금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친구예요?”온다연은 순간 가슴이 조여오면서 답답해졌고 머리도 아팠다.‘아니면 애인? 그것도 아니면 그 아이의 엄마?'‘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어쩐지 계속 나를 보는 눈빛에 애틋함이 담겨 있다고 했더니 내가 그 사람을 닮아서였구나...'그렇게 생각한 온다연은 가슴이 더 답답해졌지만 멋대로 자리를 뜰 수 없었던지라 말을 이었다.“사랑하는 사람이 이혼하자고 했어요? 아이도 큰 것 같은데 왜 이혼하자고 한 거예요?”유강후는 가만히 서서 그녀를 보았다. 그는 이미 최선을 다해 그녀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다.바닷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며 바닥에 있던 낙엽을 쓸어 갔고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책에 적힌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천리 길도 아니고 바로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서 있는데 그 사람이 그 마음을 모른다는 것이다.그는 나직하게 말했다.“이혼하지 않았어요. 제 사전에는 사별만 있지 이혼이라는 두 단어는 존재하지 않거든요.”온다연은 시선을 내리깔며 작게 물었다.“강 대표님이 순정남일 줄은 몰랐네요. 그럼 아내분은 어디에 있는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마치 1초라도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면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몇 년 전에 오해로 내 곁을 떠나버렸어요. 아주 멀리 도망가 숨어버렸거든요. 아직도 찾아오지 못했어요.”왜인지
가짜는 아닌 것이 확실했고 극독을 가진 독사라 한번 물리게 되면 반 시간 내에 치료받지 못하면 영원히 눈을 뜰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만약 정말로 물리게 된다면 두 사람은 그야말로 운이 없는 것이었다.하지만 이 뱀은 섬에서만 존재했고 그 수도 몇 마리 되지 않았다. 설령 그 섬에 간다고 해도 뱀을 만날 확률은 아주 낮았고 게다가 뱀은 그 섬에서 벗어나면 며칠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다고 했다. 그런데 왜 진씨 가문 저택에 있는 것일까? 그러나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오초사는 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움직임이 빨랐고 몸을 용수철처럼 쓰면서 어떻게든 먹이를 사냥한다고 했다.온다연은 경악하며 말했다.“얼른 뛰어요! 빨리요!”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고 오초사는 용수철처럼 뛰어오르더니 화살처럼 날아왔다. 유강후가 몸을 돌리자 뱀은 그의 등에 이빨을 박아넣어 버렸다.온다연은 소리를 질렀다.“안돼!”말을 마치자마자 그녀의 동공이 다시 떨렸다.“얼른 뛰어요! 빨리요!”하지만 시간은 없었고 땅에 있던 또 다른 오초사가 똑같이 날아왔다. 이번에 목표는 온다연이었다.이때 유강후가 몸을 확 구부리더니 온다연을 바닥에 넘어지게 했고 몸으로 온다연을 지켜주었다. 목표를 잃은 뱀은 유강후의 팔을 깨물었다.온다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초사에게 한 번이라도 물리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했는데 유강후는 두 번이나 물렸기 때문이다. 분명 한번 물릴 수 있었는데 말이다.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는 비틀대기 시작했고 점차 정신이 흐릿해졌다.온다연은 빠르게 그의 등 뒤로 갔다. 두 뱀은 그의 등과 팔에 매달려 이빨을 빼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뱀이 한번 사람을 물기만 한다면 앞으로 오랫동안 독성을 잃게 된다. 비록 무섭기는 했지만 그녀는 빠르게 두 뱀을 잡아당겨 떼어냈고 처음 만져보는 미끈거리는 촉감에 더 큰 두려움을 느끼면서 이성을 잃고 뱀을 땅에 여러 차례 내리쳤다.드디어 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이상함을 감지한 이권과 경호원이 달려왔다. 바닥에
이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진 회장님, 설마 저희를 의심하고 계시는 건 아니죠? 이런 맹독을 지닌 뱀에게 저희 대표님이 두 번이나 물려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지금 저희가 그 뱀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의심하시는 건가요?”이 말을 하는 이권도 사실은 계속 불안해하고 있었다.비록 미리 해독제를 먹고 곽혜진이 준 혈청을 주입했다고 해도 유강후는 두 번이나 물리게 되었으니 상황을 알 수 없었다.이권은 다급하게 화장실로 갔다. 다시 화장실에서 나왔을 땐 이권은 전보다 편안해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방금 그는 화장실에서 곽혜진에게 연락해 물어보았었다. 그녀가 준 혈청은 아주 귀한 것이었고 미리 주입하면 효과가 더 좋다고 했다. 이틀에서 사흘 내에 열 마리가 되는 독사에게 물리지 않는 한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부작용은 있다고 했다. 대부분 2, 3개월이 지나야 몸 상태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응급실 안에 있는 의사들은 아주 바쁘게 움직였다. 각종 검사와 채혈까지 하고 나서야 그들은 한숨 돌리게 되었고 동시에 이 결과는 신국의 의료계를 떠들썩하게 되었다.오초사에게 두 번이나 물렸지만 사망하지 않은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초사는 맹독을 지닌 독사였고 설령 조금이라도 그 독이 몸에 들어간다면 식물인간이 되거나 몸 어느 한 부분이 장애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아주 컸다. 그랬기에 연구원들은 주삿바늘을 들고 유강후의 피를 뽑아 연구를 해보려고 했지만 이권이 그들을 막아섰다.연구원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신국의 고위층에 연락해 유강후의 피를 뽑아 연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전부 거부당했다. 물론 이것은 전부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같은 시각 두 시간 동안 응급실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유강후는 드디어 나오게 되었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신국 재계의 거물과 정치계의 거물이었으니 말이다.두 사람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그가 방금 응급 치료한 사람이 신분이
“저희는 애초에 진씨 가문에 손님으로 방문한 겁니다. 그런데 뱀에게 물려버렸네요. 진씨 가문 저택은 신국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라고 하지 않았나요?”진수현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고 눈앞에서 싸울 것 같은 분위기에 온다연은 얼른 진수현을 말렸다.“아빠, 제가 할게요. 제가 잘 보살펴 드릴 수 있어요.”그녀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유강후를 보았다. 잘생긴 얼굴에 핏기 하나도 없이 창백하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고 결국 나직하게 말했다.“그때 그 뱀은 절 물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강 대표님이 저를 지켜주려다가 대신 물린 거예요. 만약 강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전 이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었을 거예요.”진수현은 소중한 딸의 손을 잡았다.“하지만 나랑 네 엄마는 네가 다른 사람 시중을 드는 건 원치 않는단다.”온다연이 말했다.“아빠, 그럼 이렇게 해요. 일단은 방법이 없고 저도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으니까 아마 간호를 해도 옆에서 지켜보는 것뿐일 거예요. 절대 힘들게 움직이는 일은 하지 않을 거예요.”이렇게까지 말하니 진수현은 아무리 그녀가 아까워도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그날 밤, 온다연은 유강후의 곁을 지켜주었다. 병실은 아주 컸고 화장실과 작은 주방도 따로 있었지만 간병인이 머물 방은 없었기에 유강후의 침대 옆에 작은 간이침대를 놓고 지내야 했다.병실의 환경은 아주 좋았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방이었던지라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닷소리와 갈매기가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공기 중에 소독수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것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이곳이 병원임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온다연은 창문을 열고 밤바다를 보며 멍 때렸다.그녀는 강 대표라는 사람에게서 익숙함을 느꼈고 게다가 그는 예전에 그녀와 알던 사이인 것 같았다.‘정말로 아는 사이였나? 심지어 아주 깊은 사이였나?'하지만 진수현이 알아봐 준 자료와 염지훈의 입에서 알게 된 정보에서는 그녀는 H 국에서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부모님이 그녀를 버리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조금 힘
“저희는 애초에 진씨 가문에 손님으로 방문한 겁니다. 그런데 뱀에게 물려버렸네요. 진씨 가문 저택은 신국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라고 하지 않았나요?”진수현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고 눈앞에서 싸울 것 같은 분위기에 온다연은 얼른 진수현을 말렸다.“아빠, 제가 할게요. 제가 잘 보살펴 드릴 수 있어요.”그녀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유강후를 보았다. 잘생긴 얼굴에 핏기 하나도 없이 창백하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고 결국 나직하게 말했다.“그때 그 뱀은 절 물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강 대표님이 저를 지켜주려다가 대신 물린 거예요. 만약 강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전 이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었을 거예요.”진수현은 소중한 딸의 손을 잡았다.“하지만 나랑 네 엄마는 네가 다른 사람 시중을 드는 건 원치 않는단다.”온다연이 말했다.“아빠, 그럼 이렇게 해요. 일단은 방법이 없고 저도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으니까 아마 간호를 해도 옆에서 지켜보는 것뿐일 거예요. 절대 힘들게 움직이는 일은 하지 않을 거예요.”이렇게까지 말하니 진수현은 아무리 그녀가 아까워도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그날 밤, 온다연은 유강후의 곁을 지켜주었다. 병실은 아주 컸고 화장실과 작은 주방도 따로 있었지만 간병인이 머물 방은 없었기에 유강후의 침대 옆에 작은 간이침대를 놓고 지내야 했다.병실의 환경은 아주 좋았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방이었던지라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닷소리와 갈매기가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공기 중에 소독수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것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이곳이 병원임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온다연은 창문을 열고 밤바다를 보며 멍 때렸다.그녀는 강 대표라는 사람에게서 익숙함을 느꼈고 게다가 그는 예전에 그녀와 알던 사이인 것 같았다.‘정말로 아는 사이였나? 심지어 아주 깊은 사이였나?'하지만 진수현이 알아봐 준 자료와 염지훈의 입에서 알게 된 정보에서는 그녀는 H 국에서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부모님이 그녀를 버리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조금 힘
이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진 회장님, 설마 저희를 의심하고 계시는 건 아니죠? 이런 맹독을 지닌 뱀에게 저희 대표님이 두 번이나 물려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지금 저희가 그 뱀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의심하시는 건가요?”이 말을 하는 이권도 사실은 계속 불안해하고 있었다.비록 미리 해독제를 먹고 곽혜진이 준 혈청을 주입했다고 해도 유강후는 두 번이나 물리게 되었으니 상황을 알 수 없었다.이권은 다급하게 화장실로 갔다. 다시 화장실에서 나왔을 땐 이권은 전보다 편안해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방금 그는 화장실에서 곽혜진에게 연락해 물어보았었다. 그녀가 준 혈청은 아주 귀한 것이었고 미리 주입하면 효과가 더 좋다고 했다. 이틀에서 사흘 내에 열 마리가 되는 독사에게 물리지 않는 한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부작용은 있다고 했다. 대부분 2, 3개월이 지나야 몸 상태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응급실 안에 있는 의사들은 아주 바쁘게 움직였다. 각종 검사와 채혈까지 하고 나서야 그들은 한숨 돌리게 되었고 동시에 이 결과는 신국의 의료계를 떠들썩하게 되었다.오초사에게 두 번이나 물렸지만 사망하지 않은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초사는 맹독을 지닌 독사였고 설령 조금이라도 그 독이 몸에 들어간다면 식물인간이 되거나 몸 어느 한 부분이 장애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아주 컸다. 그랬기에 연구원들은 주삿바늘을 들고 유강후의 피를 뽑아 연구를 해보려고 했지만 이권이 그들을 막아섰다.연구원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신국의 고위층에 연락해 유강후의 피를 뽑아 연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전부 거부당했다. 물론 이것은 전부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같은 시각 두 시간 동안 응급실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유강후는 드디어 나오게 되었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신국 재계의 거물과 정치계의 거물이었으니 말이다.두 사람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그가 방금 응급 치료한 사람이 신분이
가짜는 아닌 것이 확실했고 극독을 가진 독사라 한번 물리게 되면 반 시간 내에 치료받지 못하면 영원히 눈을 뜰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만약 정말로 물리게 된다면 두 사람은 그야말로 운이 없는 것이었다.하지만 이 뱀은 섬에서만 존재했고 그 수도 몇 마리 되지 않았다. 설령 그 섬에 간다고 해도 뱀을 만날 확률은 아주 낮았고 게다가 뱀은 그 섬에서 벗어나면 며칠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다고 했다. 그런데 왜 진씨 가문 저택에 있는 것일까? 그러나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오초사는 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움직임이 빨랐고 몸을 용수철처럼 쓰면서 어떻게든 먹이를 사냥한다고 했다.온다연은 경악하며 말했다.“얼른 뛰어요! 빨리요!”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고 오초사는 용수철처럼 뛰어오르더니 화살처럼 날아왔다. 유강후가 몸을 돌리자 뱀은 그의 등에 이빨을 박아넣어 버렸다.온다연은 소리를 질렀다.“안돼!”말을 마치자마자 그녀의 동공이 다시 떨렸다.“얼른 뛰어요! 빨리요!”하지만 시간은 없었고 땅에 있던 또 다른 오초사가 똑같이 날아왔다. 이번에 목표는 온다연이었다.이때 유강후가 몸을 확 구부리더니 온다연을 바닥에 넘어지게 했고 몸으로 온다연을 지켜주었다. 목표를 잃은 뱀은 유강후의 팔을 깨물었다.온다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초사에게 한 번이라도 물리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했는데 유강후는 두 번이나 물렸기 때문이다. 분명 한번 물릴 수 있었는데 말이다.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는 비틀대기 시작했고 점차 정신이 흐릿해졌다.온다연은 빠르게 그의 등 뒤로 갔다. 두 뱀은 그의 등과 팔에 매달려 이빨을 빼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뱀이 한번 사람을 물기만 한다면 앞으로 오랫동안 독성을 잃게 된다. 비록 무섭기는 했지만 그녀는 빠르게 두 뱀을 잡아당겨 떼어냈고 처음 만져보는 미끈거리는 촉감에 더 큰 두려움을 느끼면서 이성을 잃고 뱀을 땅에 여러 차례 내리쳤다.드디어 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이상함을 감지한 이권과 경호원이 달려왔다. 바닥에
그 순간 유강후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멍하니 구경하고 있던 온다연은 그대로 그의 그윽한 두 눈과 눈 마주쳐 버렸다.몽롱한 불빛 아래서 본 남자의 얼굴은 다소 공격성이 있어 보였지만 이목구비가 더 뚜렷해져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잘생겨 보였다. 얼굴이 빨개진 온다연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강 대표님,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들어가는 건 어때요?”유강후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나직하게 말했다.“진유나 씨, 내가 아는 사람이랑 정말 많이 닮았네요.”온다연은 궁금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친구예요?”온다연은 순간 가슴이 조여오면서 답답해졌고 머리도 아팠다.‘아니면 애인? 그것도 아니면 그 아이의 엄마?'‘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어쩐지 계속 나를 보는 눈빛에 애틋함이 담겨 있다고 했더니 내가 그 사람을 닮아서였구나...'그렇게 생각한 온다연은 가슴이 더 답답해졌지만 멋대로 자리를 뜰 수 없었던지라 말을 이었다.“사랑하는 사람이 이혼하자고 했어요? 아이도 큰 것 같은데 왜 이혼하자고 한 거예요?”유강후는 가만히 서서 그녀를 보았다. 그는 이미 최선을 다해 그녀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다.바닷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며 바닥에 있던 낙엽을 쓸어 갔고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책에 적힌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천리 길도 아니고 바로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서 있는데 그 사람이 그 마음을 모른다는 것이다.그는 나직하게 말했다.“이혼하지 않았어요. 제 사전에는 사별만 있지 이혼이라는 두 단어는 존재하지 않거든요.”온다연은 시선을 내리깔며 작게 물었다.“강 대표님이 순정남일 줄은 몰랐네요. 그럼 아내분은 어디에 있는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마치 1초라도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면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몇 년 전에 오해로 내 곁을 떠나버렸어요. 아주 멀리 도망가 숨어버렸거든요. 아직도 찾아오지 못했어요.”왜인지
왜 이토록 익숙한 것일까?단단한 가슴도,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도, 남자의 숨소리마저도 전부 익숙했다.몇 분 동안 멍하니 있던 온다연은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용수철 튕기듯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터질 듯 빨갛게 물들었다.“방금, 방금은 고마웠어요...”불빛이 은은했지만 그럼에도 유강후는 빨개진 그녀의 두 귀를 발견하게 되었다.빨개진 그녀의 작은 두 귀를 보니 예전에 작게 깨물던 시절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게 되었고 목소리도 어느새 조금 잠겨버렸다.“난간이 너무 허술한 것 같군요. 진수현 씨에게 교체할 시간이 없는 거라면 내가 내일 이 길에 있는 난간을 튼튼한 거로 전부 바꿔줄게요.”분명 온다연이 눈앞에 있었지만, 분명 온다연은 그의 여자였지만 그는 지금 꾹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이런 환경 속에서 절대 그녀에게 두 발로 걸어갈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온다연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는 마침 그윽한 눈길로 자신을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그녀가 알지 못하는 감정이 담겨 있었고 그의 앞에 서 있는 그녀는 마치 사냥당한 하찮은 작은 동물 같았다. 다만 그것도 한순간일 뿐 남자의 눈빛은 다시 원래의 담담한 눈빛으로 돌아와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그녀는 다소 두려웠다. 젊은 나이에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유강후가 절대 생각이 단순한 사람일 리가 없었다.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얼른 몇 걸음 성큼성큼 걸어가며 유강후와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램프는 유강후가 들고 있었다.그녀가 앞으로 걸어가니 그가 느긋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커다란 그의 그림자가 거의 그녀를 삼켜버리고 있었기에 그녀는 너무도 괴로웠고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사실 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와 함께 있으면 자유를 잃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과거에 그와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
온다연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꿈속에서 유강후가 나타나 지금과 똑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는 그녀가 도망을 치면 어떻게든 찾아냈기에 그녀는 오후 내내 유강후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지만 인터넷에선 그저 성이 강 씨라고만 나왔다. 그런데 왜 아침엔 그녀에게 유강후라고 소개한 것일까?유강후라는 이름은 정말이지 너무도 싫었다! 이 세 글자만 들어도 그녀는 치가 떨려왔다.잠에서 깬 그녀의 모습을 본 유강후는 몸을 일으켰지만 여전히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왜 연회에 참석하지 않은 거죠?”온다연은 그제야 유강후가 자신의 집에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유강후는 오늘 그녀의 집으로 찾아온 손님이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강 대표님, 왜 연회 홀에 계시지 않고 멋대로 남의 집 후원에 오신 거예요? 이건 예의에 어긋나지 않나요?”유강후는 그녀를 빤히 보았다. 은은한 불빛이 그녀의 몸에 쏟아지니 더욱 연약해 보였고 예전에 그녀가 꽃방에서 지내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은은한 조명 아래서 그림을 그리다가 지친 그녀는 의자에 기대어 나른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면 항상 자연스럽게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키스해 달라고 조르거나 귓가에 대고 나른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그때가 아마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때였을 것이다.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를 낯선 사람 보듯 보고 있었다. 고작 3년이 흘렀을 뿐인데 말이다. 그녀의 두 눈에 담긴 냉담함과 느껴지는 거리감에 그는 괜스레 짜증이 치밀었다.그는 어느새 어두워진 눈빛을 한 채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왜요. 아침에 돌려달라는 걸 돌려줬더니 이젠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하는 거예요?”말하면서 시선을 돌려 그녀의 손목을 보았다. 그의 흑요석 팔찌는 그녀의 손목에 두 바퀴 감겨 있었고 다소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얇고 귀여운 손목을 더 돋보이게 했다.그의 시선을 느낀 온다연은 본능적으로 팔찌를 두른 손목을 몸 뒤로 옮기며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이때 집사가 다가왔다.“아가씨, 손님이 곧 도착하실 겁니다. 사모님께서 얼른 옷을 갈아입으시라고 합니다.”온다연은 팔찌를 꽉 잡은 채 고개를 돌려 집사를 향해 대답했다.“어머니한테 전해주세요. 전 몸이 안 좋아서 오늘 저녁 연회엔 참석하기 힘들 것 같다고요.”집사는 뜸을 들였다.“하지만 오늘 저녁 연회는 아주 중요한 자리입니다. 크루즈에서 온 그분과 부통령님 부부가 오시는 아주 중요한 자리라 진씨 가문의 일원이라면 모두 참석해야 할 겁니다. 회장님도 아가씨가 꼭 참석하게 하라고 하셨는걸요.”진씨 가문은 강하긴 했지만 여하간에 상인 출신이었기에 정치계의 인물들과 인맥을 다질 필요가 있었다. 크루즈 타고 오는 중요한 인물들은 당연히 진씨 가문 사람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과 친하게 지낸다면 앞으로 사업을 할 때 더 유리해질 것이다.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알겠어요. 가서 일보세요. 제가 직접 아버지께 말씀드려보죠.”말을 마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지내고 있는 방으로 가버렸다.이때 진씨 가문의 대문이 열리고 검은색 롤스로이스 여러 대가 천천히 저택 정원에 들어왔다.진수현은 집안에서 중요한 몇 명의 젊은이들을 이끌고 직접 마중하러 나왔다. 유강후와 함께 온 사람은 건국 이래 아주 젊은 나이에 부통령이 된 이경진이었다.그는 두 사람의 방문에 다소 놀라워했다. 진씨 가문은 3년 동안 확실히 돈도 많이 벌고 실력도 점점 강대해졌지만 이렇듯 위대한 인물이 직접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알다시피 오아시스 그룹이 이곳에서 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는 이유는 강한 경제력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요인이었다. 하지만 진씨 가문은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강점이 없었다.지금은 강점을 분석할 때가 아니었다. 진수현은 인사를 한 후 유강후와 이경진 부부를 연회장 안으로 안내했고 유강후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온다연을 찾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날 피하는 거야?'연회가 중반쯤 지나자 이권이 들어와 유강후의 귀에
유강후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온다연을 보고 있었다. 마치 그의 앞에서는 모든 것을 숨길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그의 두 눈을 직시할 수 없었던 온다연은 팔찌를 꽉 잡은 뒤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이를 빠득 갈았다.“이 팔찌는 제 거예요. 게다가 이건 비싼 팔찌도 아니라고요. 만약 팔찌를 좋아하는 거라면 다른 팔찌를 드릴 테니까 이것만은 안 돼요!”유강후는 깊은 두 눈으로 그녀를 빤히 보았다. 분명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왜 이토록 이 팔찌에 집착하는 것일까? 설마 그 아이를 기억하는 것일까?그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이 팔찌, 유나 씨에게 중요한 팔찌인가요?”‘중요해?'온다연은 잠깐 혼란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확실히 그녀에게 중요한 팔찌였지만 왜 중요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어젯밤 그녀는 이 팔찌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그녀에겐 팔찌가 아주 많았고 비싼 것도 가득했지만 이상하게도 흥미가 가지 않았고 오로지 이 호박석 팔찌만 매일 차고 다녔다.어느 하루 그녀는 이 팔찌를 전문가에게 보여주기도 했었지만 천연 호박석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공 합성으로 만든 것이라는 대답을 듣게 되었고 호박석 안에는 인간의 머리카락 같은 것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때의 진수현과 안심은 불길하다며 버리려고 했지만 만약 이 팔찌를 버리게 된다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 것 같아 단호하게 남기겠다고 말했다.그런데 이 일은 눈앞에 있는 남자와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그는 왜 그녀에게 물어보는 것일까?그녀는 팔찌를 꽉 쥐고 작게 말했다.“이 팔찌는 어느 장인이 만든 것도 아니고 비싼 게 아니에요. 저 대신 보관해줘서 고마워요. 만약 보상을 원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금액을 말씀하셔도 돼요.”유강후는 여전히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다.“전 돈 필요하지 않아요. 대신 앞으로 유나 씨가 절 볼 때마다 이렇게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보상은 그걸로 받을게요.”온다연은 멍한
곽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이 약은 동남아시아에 있는 숨겨진 섬에만 있는 약물이에요. 얼굴에 바르면 피부색을 바꿀 수 있지요. 거기에다 화장을 조금 해두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거든요.”다만 이건 중요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했다.“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이 아가씨 마음고생 많이 하면서 살았죠? 이렇게 어린 나이에 내장 기관이 이토록 빨리 노화된 사람은 처음 보네요.”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자 그녀는 더 엄숙하게 말했다.“이 아가씨 맥박도 미약하고 뒤죽박죽이에요. 고작 20대인데 몸 상태가 이 정도라는 건 분명 어릴 때부터 허약했다는 소리겠죠. 거기에다 여러 번 추위에 시달려서 더 나쁜 거예요. 요즘 시대에 평범한 집 아이들도 다 귀하게 키워요. 아이를 어릴 때부터 몸이 꽁꽁 얼 정도로 추위에 노출시키지 않는다고요.”유강후의 눈빛이 어두워지고 입술을 짓이기고 있었다. 한참 지나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다 제 잘못입니다.”곽혜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입구에 있는 남자를 째려보고는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같은 사람들이 제일 극혐이에요. 알아요? 있을 때 잘해주지 않다가 잃고 나서야 후회하고 애타게 찾으려고 하죠!”입구에 서 있던 염동식은 아내가 화난 모습에 바로 축 처진 모습으로 말했다.“여보, 나 오늘은 잘못 한 거 없는데...”곽혜진은 염동식을 무시하곤 의약 상자에서 두 병의 검은색 알약이 든 약병을 꺼내 유강후에게 건넸다.“큰 거 하나, 작은 거 하나씩 사흘에 한 번 먹이세요. 가지고 나온 게 이것뿐이라 약병 다 비우고 나면 또 연락 주세요.”그녀는 깊이 잠이 든 온다연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실력 좋은 심리상담사를 모셔와서 치료해보세요. 상태를 보니까 최면 치료로 예전의 기억을 지운 것 같네요. 하지만 알려드릴 게 있어요. 만약 과거의 일이 아주 충격적이고 힘든 일이었다면 억지로 기억을 되돌릴 시 이 아가씨가 받게 될 고통은 더 커질 거예요. 몸도 마음도 약해 보이니까 제가 보기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