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자신의 옷을 살펴보았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깨, 깼어요?”유강후의 두 눈은 초점이 잡히지 않았고 그는 그저 흐릿한 형체만 보일 뿐이었다.온다연의 목소리를 들은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아침에 일어났을 때 깊이 잠든 것 같아서 간호사에게 잠옷으로 갈아입혀 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내가 갈아입힌 게 아니에요.”온다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고 자신이 속 좁은 사람처럼 느껴져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전, 전 강 대표님한테 따져 물을 생각은 ...”유강후는 조금 잠겨버린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설령 내가 갈아입혔다고 해도 보이지 않으니까.”그는 뜸을 들이다가 계속 말을 이었다.“아마 일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걸 거예요.”온다연은 고개를 확 들었다.“앞이 안 보이는 거예요?”어쩐지 그의 눈빛이 이상했던 것이 이해가 갔다. 그녀는 자신이 입은 옷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네, 의사가 왔다가 가긴 했었는데 2, 3개월이 지나야 보일 수 있다더군요. 그러니 며칠 간은 잘 부탁드려요.”그는 아주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마치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너무도 태연한 모습이었지만 온다연은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에서 조금의 기쁨이 느껴졌다. 아마도 잘못들은 게 아닐까 싶었다. 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좋은 점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편하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간 뒤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그리고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자 하얀 속살이 살짝 드러났다.바로 이때 그는 어디선가 시선을 느끼게 되었다. 황급히 옷을 내리고 고개를 돌렸을 땐 눈을 감은 채 침대에 기대고 있는 유강후의 모습이 보였다. 착각한 것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얼른 화장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옷 갈아입고 나왔을 때 유강후는 이미 침대 끝에 앉
온다연의 기억은 억지로 지워졌기에 3년 동안 점차 과거의 인연과 일들을 잊게 되었고 과거의 고통도 잊게 된 것이다.하지만 이런 최면은 부작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전에 익숙했던 사람과 일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머리가 엄청 아플 것. 중요한 기억일수록 그에 따른 고통은 더 심했다.어쩐지 그녀가 어제 자신을 보았을 때 고통스러워하며 혼절했던 것이 이해가 갔다. 그런데 이번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니 분명 무언가가 떠오른 것이다.공기 중에 피어오르는 계화 향기에 유강후는 바로 아침 메뉴에 계화 디저트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손을 뻗어 계화 디저트를 찾으려고 했지만 실수록 뜨거운 계화 디저트를 쏟게 되었고 전부 그의 손등에 쏟아져 버렸다.그는 언성을 높였다.“오늘 아침은 누가 가져온 거지?”이권은 소리를 듣고 바로 달려 들어왔지만 오자마자 눈물 흘리는 온다연과 화가 난 유강후를 맞이하게 되었고 다급하게 대답해 주었다.“아침은 저희 쪽 주방장이 만든 겁니다. 여기서 만든 음식인데 혹시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주방장은 저희가 경원시에서 데리고 온 주방장입니다.”유강후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계화 디저트를 만들라고 했지?”이권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주방장은 장 집사님이 준 식단대로 만든 겁니다. 전부 사모... 즐겨 드시는 음식입니다.”유강후의 목소리엔 서늘함만 남았다.“앞으로 이 디저트는 만들지 말라고 해. 당장 가져가!”이권은 하는 수 없이 사람을 불러 계화 디저트를 버렸다. 가기 전 그는 화상을 입은 유강후의 손등을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도련님, 손등이...”유강후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했다.“신경 쓰지 말고 나가!”말을 마친 그는 테이블을 만지며 천천히 온다연의 곁으로 다가가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 손끝에 닿은 눈물에 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조금 전 뜨거운 물에 뎄을 때는 별다른 감각이 없었지만 온다연의 눈물을 만지니 너무도 아팠다.그는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눈물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설마 지금 날 그 사람으로 착각한 건가?'자신에게 놀란 온다연은 그를 밀어내곤 이내 그의 뺨을 때려버렸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놀라면서도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변태예요?”화가 난 상태로 때린 것이라 손아귀엔 힘이 꽤나 들어갔고 유강후의 입가는 터져 피가 새어 나왔다.유강후는 입가에 흐른 피를 만지며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괜찮아, 때리라고 해. 잊어도 상관없어. 내 눈앞에만 있으면 돼.'‘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기보다 지금이 더 좋으니까. 이걸로 이미 충분해.'‘내가 너무 성급했던 거야. 그러니 다 내 잘못인 거야.'아침에 찾아온 상담사가 이미 그에게 말을 해줬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온다연이 천천히 그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라고. 그 후에 다시 천천히 기억을 되찾게 하는 것이라고.만약 갑자기 모든 걸 떠올리게 한다면 온다연은 버티지 못할 것이고 겨우 다시 쌓아 올린 심리적 방어선이 완전히 무너져 가볍게는 심한 우울증에 걸릴 수 있고 심하면 자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던지라 그는 당연히 의사의 말에 협조해야 했다.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그녀가 살아만 있다면 그는 뭐든 참을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었다. 방금은 그저 그녀가 흐느끼는 소리에 가슴이 너무도 아파 참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유강후는 담담하게 말했다.“방금은 충동이었어요. 미안해요, 유나 씨. 뺨 한 대로 부족한 것 같다면 더 때려도 돼요.”온다연은 너무도 심란했다. 염지훈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그와는 그저 이마만 맞대봤을 뿐이다. 아무리 참을 수 없다고 해도 손만 잡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녀를 안았을 뿐만 아니라 허벅지에 앉혀 키스하지 않았는가.“오아시스 그룹의 대표님이라는 사람이 여자를 처음 보는 건가요?”유강후는 동문서답했다.“유나 씨는 정말로 아무런 느낌도 없는 건가요?”예전에 아주 행복했을 때 온다연은 항상 먼저 그에게 달려와 키스를 했었고 더 행복했
온다연은 유강후는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고 어느새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모두 성인이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라면...”말을 마치기도 전에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버린 그녀는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리곤 얼른 일어나 도망치듯 나가버렸다.그녀는 지금 신분이 달랐기에 당연히 막아서는 사람이 없었고 병원 밖에는 진씨 가문의 경호원과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빠르게 차에 올라탄 그녀는 여전히 얼굴이 빨간 상태였고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집으로 가요. 빨리요!”진씨 가문 저택에 도착하고 나서도 그녀의 빨간 얼굴은 식을 줄을 몰랐다.마침 집에 있었던 안심은 자신의 딸이 허둥지둥 방으로 올라가는 모습에 걱정되어 따라 올라갔다. 온다연이 지내고 있는 방은 2층에 있었고 전통 느낌이 물씬 나는 아늑한 방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엔 아주 예쁘게 손질된 야자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 주위로 빨간 장미가 예쁘게 피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은은한 장미 향이 정원에 가득 퍼지고 있었다.비록 화려한 인테리어는 아니었지만 전통 느낌이 나는 인테리어였고 벽은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밝고 활기가 느껴지는 색으로 칠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전부 온다연이 그간 받았던 상과 작품이 걸려 있었고 다른 한쪽 벽에는 아주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도자기 같은 것은 당연히 있었고 소파에 대충 내려놓은 작은 부채도 전부 유명한 장인이 만든 것이었으니 진수현 부부가 딸을 얼마나 아끼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문을 열자 안심은 침대에 엎드려 누워있는 온다연을 보게 되었다.그녀의 각도에선 마침 온다연의 빨개진 두 귀가 보였다. 늘 온순하고 얌전했던 온다연은 예의를 저버리는 일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었지만 병원에 다녀온 뒤로 들어올 때부터 허둥지둥하더니 목소리에서도 떨림이 느껴져 안심은 다소 걱정되기 시작했다.안심은 가까이 다가가 딸의 침대에 앉아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러니? 안 좋은 일이라도 있은 거니?”온다연은 자기 얼굴을 만졌다.
예전의 기억만 떠올리면 느껴지는 행복에 안심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되었고 온다연의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온화하게 말했다.“우리 딸, 지훈이가 생각난 거야? 북아메리카 쪽에서 아주 순조롭게 일 진행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한 달 뒤면 돌아올 거야. 곧 올 거란다.”온다연은 꾸물꾸물 일어나더니 안심의 다리를 베면서 작게 물었다.“엄마, 저는 꼭 염지훈 씨랑 결혼해야 하는 거예요?”안심은 딸이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랐다.“어릴 때부터 약속한 거잖니. 그리고 몇 년 동안 지훈이가 널 계속 보살펴 주고 있기도 했고 내가 보기엔 두 사람 어느 정도 서로에게 감정이 있었던 같던데. 아니었니? 그건 왜 갑자기 물어보는 거니?”온다연은 시선을 내리깐 채 저도 모르게 입술을 만지작거렸다.머릿속에 온통 유강후와 키스했던 장면이 떠올라 얼굴이 더 붉게 물들어버렸다.“별건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그녀는 재벌 가문이라면 정략결혼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호의호식하면서 자랐으니 당연히 어른이 되면 가문의 미래와 그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염지훈과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염지훈 어머니의 가문은 신국에서도 명망 있는 가문이었다. 비록 진씨 가문보다는 못했지만 염지훈은 3년 동안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내며 신국의 젊은 세대 중 단연 독보적인 인물이 되었다. 이 점으로 가문의 부족함을 충분히 메울 수 있었다.제일 중요한 것은 그녀의 부모님이 염지훈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이다.그녀가 바꿔치기 되어 어딘가로 사라진 후에도 그녀의 부모님은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았기에 그녀는 진수현과 안심의 외동딸이 되었다. 앞으로 진씨 가문을 이어받아야 할 사람도 그녀였기에 염지훈은 최고의 강력한 조력자였다.하지만 정말로 이대로 염지훈과 결혼해도 되는 것일까?그녀는 나직하게 말했다.“염지훈 씨는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안심은 멍 때리는 딸을 보더니 무언가 눈치챈 듯 웃으며 말했다.“다연이는 지훈이가 싫어?”온다연은
어두운 골목.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었다.온다연은 골목 입구에 막 들어섰을 때 갑자기 누군가에게 잡아당겨져 어두운 구석으로 끌려 들어갔다.벽 앞에는 술 냄새를 풍기는 취한 남자 두 명이 서 있었고 그들은 온다연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그녀의 옷을 찢기 시작했다.코를 찌르는 알콜 냄새와 남자들의 거친 움직임에 온다연은 겁에 질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도와주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그들 중 한 남자는 즉시 온다연의 뺨을 세게 때렸다.“감히 소리쳐? 뭘 잘했다고 소리치는 거야!”“오늘 네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거야. 가만히 있어. 이 오빠가 기쁘게 해줄 테니까.”...이때 갑자기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골목을 가로질러 왔고 차창이 천천히 내리자 차갑고 날카로운 눈동자가 드러나 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 행위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옆에 있는 운전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나가서 말릴까요?”도련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그냥 가!”이때 온다연은 이미 옷이 찢어진 상태였고 갑자기 나타난 차량 때문에 그녀는 더욱 몸부림쳤다.“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술 취한 남자는 온다연에게 아직도 도움을 청할 힘이 남아있는 것을 보자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두 번 더 때렸다. 또한 온다연의 몸을 잡고 있는 손에도 더욱 힘을 주어 치마를 벗기려고 했다.온다연이 절망하려고 할 때 이미 시동을 걸었던 차가 갑자기 멈췄다.그리고 차 문이 열리더니 키 큰 남자 두 명이 내려왔다.앞에 선 남자는 마른 체격에 브랜드 로고가 없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차갑고 위엄이 있어 어두운 밤에도 빛나는 것 같았다.그는 구석에서 무자비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온다연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는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불빛이 너무 어두워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낮은 울음소리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남자의 기억 속 목소리와 다소 비슷했다.남자는 차갑고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매미가 울어대는 무더운 여름날이었다.소녀의 수줍은 눈빛과 땀에 젖은 옆머리가 그날 오후와 겹쳐졌다.그 모습이 지난 3년 동안 매일 밤 꿈속으로 들어와 밤마다 유강후를 뒤흔들었다.유강후는 방금 온다연의 손길이 닿은 곳이 화끈거려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이 순간 공기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러나 유강후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며 여전히 차갑고 고상한 표정으로 말했다.“들어가.”온다연은 즉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치 사면받은 사람처럼 도망치듯 떠났다. 물론 온다연은 차에 탄 유강후의 맹수 같은 약탈적인 눈빛을 보지 못했다.온다연은 유씨 가문 저택에 들어선 후에야 유씨 가문 식구들뿐만 아니라 유강후의 옛 친구들도 모두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그 도련님들은 모두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중에서도 최고였다.온다연은 전에 그들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여러 번 목격했었기 때문에 그들을 피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하지만 안주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심미진은 온다연을 놓아주지 않았다.“나 시간 없으니까 네가 이 술을 네 작은 삼촌에게 갖다줘.”온다연은 거절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방 안은 화려했고 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온다연은 가시 장미에 섞인 새하얀 장미처럼 눈길을 사로잡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온다연의 검은 머리와 붉은 입술, 매력적인 골격,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특히 하늘색 치마 밑의 하얀 피부는 사람을 유혹할 정도로 하얗게 빛났다.잠시 동안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도련님, 유씨 가문의 양딸을 몇 년 동안 보지 못했었는데 그새 잘 자랐네요.”유강후 역시 온다연이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었다.“몇 년 동안 유씨 집안에서 먹여준 건 맞지만 양딸이라고 할 순
온다연은 고개를 숙였다. 마치 사나운 짐승에게 겨냥당한 듯 숨이 막힐 것 같았다.온다연은 문에 한껏 기대어 최대한 유강후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하지만 유강후는 바로 앞에 있고 공간이 좁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유강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느꼈다.맑은 솔방울 같은 냄새에 은은한 술 냄새가 섞여 온다연의 피부에 다가왔다. 그러자 온다연은 갑자기 3년 전의 점심에도 이렇게 더웠는데 술에 취한 유강후가 방에 쳐들어와 통제를 잃고 폭력적으로 행동했던 것이 떠올랐다.그런 기억이 떠오르자 온다연은 혼란스러워서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 유강후와의 거리를 벌렸다.하지만 너무 가까운 탓에 유강후의 옆을 지나가려 할 때 온다연의 팔은 유강후의 손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닿은 곳은 살짝 화끈거리며 유강후의 기운이 남았다.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씨 가문 저택은 학교에서 너무 멀어서 기숙사에 살고 있어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온다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낮아서 유강후는 그녀를 혼내고 싶었다.게다가 이 3년 동안 거짓말하는 것도 배웠다니.하지만 유강후는 아직 온다연을 까발릴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는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내 번호 차단했어?”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번호 바꿨어요. 예전에 쓰던 휴대폰이 고장 나서 모든 번호가 사라졌거든요.”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유씨 가문 사람들 중 이모 심미진의 번호만 저장했다.“휴대폰 줘 봐.”온다연은 순순히 휴대폰을 건넸다.살짝 낡은 휴대폰이었는데 스크린은 손상된 정도가 심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자신의 휴대폰으로도 온다연의 카카오톡 QR코드를 스캔해 추가했다.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돌려주며 담담하게 말했다.“아까는...”“알아요.”온다연은 유강후의 말을 잘랐다.“그분들 다 삼촌 친구들이잖아요. 농담한 거 알아요. 괜찮아요.”온다연은 유씨 가문에 오래 머물지 않기
예전의 기억만 떠올리면 느껴지는 행복에 안심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되었고 온다연의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온화하게 말했다.“우리 딸, 지훈이가 생각난 거야? 북아메리카 쪽에서 아주 순조롭게 일 진행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한 달 뒤면 돌아올 거야. 곧 올 거란다.”온다연은 꾸물꾸물 일어나더니 안심의 다리를 베면서 작게 물었다.“엄마, 저는 꼭 염지훈 씨랑 결혼해야 하는 거예요?”안심은 딸이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랐다.“어릴 때부터 약속한 거잖니. 그리고 몇 년 동안 지훈이가 널 계속 보살펴 주고 있기도 했고 내가 보기엔 두 사람 어느 정도 서로에게 감정이 있었던 같던데. 아니었니? 그건 왜 갑자기 물어보는 거니?”온다연은 시선을 내리깐 채 저도 모르게 입술을 만지작거렸다.머릿속에 온통 유강후와 키스했던 장면이 떠올라 얼굴이 더 붉게 물들어버렸다.“별건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그녀는 재벌 가문이라면 정략결혼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호의호식하면서 자랐으니 당연히 어른이 되면 가문의 미래와 그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염지훈과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염지훈 어머니의 가문은 신국에서도 명망 있는 가문이었다. 비록 진씨 가문보다는 못했지만 염지훈은 3년 동안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내며 신국의 젊은 세대 중 단연 독보적인 인물이 되었다. 이 점으로 가문의 부족함을 충분히 메울 수 있었다.제일 중요한 것은 그녀의 부모님이 염지훈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이다.그녀가 바꿔치기 되어 어딘가로 사라진 후에도 그녀의 부모님은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았기에 그녀는 진수현과 안심의 외동딸이 되었다. 앞으로 진씨 가문을 이어받아야 할 사람도 그녀였기에 염지훈은 최고의 강력한 조력자였다.하지만 정말로 이대로 염지훈과 결혼해도 되는 것일까?그녀는 나직하게 말했다.“염지훈 씨는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안심은 멍 때리는 딸을 보더니 무언가 눈치챈 듯 웃으며 말했다.“다연이는 지훈이가 싫어?”온다연은
온다연은 유강후는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고 어느새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모두 성인이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라면...”말을 마치기도 전에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버린 그녀는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리곤 얼른 일어나 도망치듯 나가버렸다.그녀는 지금 신분이 달랐기에 당연히 막아서는 사람이 없었고 병원 밖에는 진씨 가문의 경호원과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빠르게 차에 올라탄 그녀는 여전히 얼굴이 빨간 상태였고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집으로 가요. 빨리요!”진씨 가문 저택에 도착하고 나서도 그녀의 빨간 얼굴은 식을 줄을 몰랐다.마침 집에 있었던 안심은 자신의 딸이 허둥지둥 방으로 올라가는 모습에 걱정되어 따라 올라갔다. 온다연이 지내고 있는 방은 2층에 있었고 전통 느낌이 물씬 나는 아늑한 방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엔 아주 예쁘게 손질된 야자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 주위로 빨간 장미가 예쁘게 피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은은한 장미 향이 정원에 가득 퍼지고 있었다.비록 화려한 인테리어는 아니었지만 전통 느낌이 나는 인테리어였고 벽은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밝고 활기가 느껴지는 색으로 칠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전부 온다연이 그간 받았던 상과 작품이 걸려 있었고 다른 한쪽 벽에는 아주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도자기 같은 것은 당연히 있었고 소파에 대충 내려놓은 작은 부채도 전부 유명한 장인이 만든 것이었으니 진수현 부부가 딸을 얼마나 아끼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문을 열자 안심은 침대에 엎드려 누워있는 온다연을 보게 되었다.그녀의 각도에선 마침 온다연의 빨개진 두 귀가 보였다. 늘 온순하고 얌전했던 온다연은 예의를 저버리는 일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었지만 병원에 다녀온 뒤로 들어올 때부터 허둥지둥하더니 목소리에서도 떨림이 느껴져 안심은 다소 걱정되기 시작했다.안심은 가까이 다가가 딸의 침대에 앉아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러니? 안 좋은 일이라도 있은 거니?”온다연은 자기 얼굴을 만졌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설마 지금 날 그 사람으로 착각한 건가?'자신에게 놀란 온다연은 그를 밀어내곤 이내 그의 뺨을 때려버렸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놀라면서도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변태예요?”화가 난 상태로 때린 것이라 손아귀엔 힘이 꽤나 들어갔고 유강후의 입가는 터져 피가 새어 나왔다.유강후는 입가에 흐른 피를 만지며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괜찮아, 때리라고 해. 잊어도 상관없어. 내 눈앞에만 있으면 돼.'‘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기보다 지금이 더 좋으니까. 이걸로 이미 충분해.'‘내가 너무 성급했던 거야. 그러니 다 내 잘못인 거야.'아침에 찾아온 상담사가 이미 그에게 말을 해줬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온다연이 천천히 그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라고. 그 후에 다시 천천히 기억을 되찾게 하는 것이라고.만약 갑자기 모든 걸 떠올리게 한다면 온다연은 버티지 못할 것이고 겨우 다시 쌓아 올린 심리적 방어선이 완전히 무너져 가볍게는 심한 우울증에 걸릴 수 있고 심하면 자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던지라 그는 당연히 의사의 말에 협조해야 했다.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그녀가 살아만 있다면 그는 뭐든 참을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었다. 방금은 그저 그녀가 흐느끼는 소리에 가슴이 너무도 아파 참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유강후는 담담하게 말했다.“방금은 충동이었어요. 미안해요, 유나 씨. 뺨 한 대로 부족한 것 같다면 더 때려도 돼요.”온다연은 너무도 심란했다. 염지훈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그와는 그저 이마만 맞대봤을 뿐이다. 아무리 참을 수 없다고 해도 손만 잡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녀를 안았을 뿐만 아니라 허벅지에 앉혀 키스하지 않았는가.“오아시스 그룹의 대표님이라는 사람이 여자를 처음 보는 건가요?”유강후는 동문서답했다.“유나 씨는 정말로 아무런 느낌도 없는 건가요?”예전에 아주 행복했을 때 온다연은 항상 먼저 그에게 달려와 키스를 했었고 더 행복했
온다연의 기억은 억지로 지워졌기에 3년 동안 점차 과거의 인연과 일들을 잊게 되었고 과거의 고통도 잊게 된 것이다.하지만 이런 최면은 부작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전에 익숙했던 사람과 일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머리가 엄청 아플 것. 중요한 기억일수록 그에 따른 고통은 더 심했다.어쩐지 그녀가 어제 자신을 보았을 때 고통스러워하며 혼절했던 것이 이해가 갔다. 그런데 이번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니 분명 무언가가 떠오른 것이다.공기 중에 피어오르는 계화 향기에 유강후는 바로 아침 메뉴에 계화 디저트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손을 뻗어 계화 디저트를 찾으려고 했지만 실수록 뜨거운 계화 디저트를 쏟게 되었고 전부 그의 손등에 쏟아져 버렸다.그는 언성을 높였다.“오늘 아침은 누가 가져온 거지?”이권은 소리를 듣고 바로 달려 들어왔지만 오자마자 눈물 흘리는 온다연과 화가 난 유강후를 맞이하게 되었고 다급하게 대답해 주었다.“아침은 저희 쪽 주방장이 만든 겁니다. 여기서 만든 음식인데 혹시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주방장은 저희가 경원시에서 데리고 온 주방장입니다.”유강후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계화 디저트를 만들라고 했지?”이권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주방장은 장 집사님이 준 식단대로 만든 겁니다. 전부 사모... 즐겨 드시는 음식입니다.”유강후의 목소리엔 서늘함만 남았다.“앞으로 이 디저트는 만들지 말라고 해. 당장 가져가!”이권은 하는 수 없이 사람을 불러 계화 디저트를 버렸다. 가기 전 그는 화상을 입은 유강후의 손등을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도련님, 손등이...”유강후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했다.“신경 쓰지 말고 나가!”말을 마친 그는 테이블을 만지며 천천히 온다연의 곁으로 다가가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 손끝에 닿은 눈물에 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조금 전 뜨거운 물에 뎄을 때는 별다른 감각이 없었지만 온다연의 눈물을 만지니 너무도 아팠다.그는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눈물
온다연은 자신의 옷을 살펴보았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깨, 깼어요?”유강후의 두 눈은 초점이 잡히지 않았고 그는 그저 흐릿한 형체만 보일 뿐이었다.온다연의 목소리를 들은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아침에 일어났을 때 깊이 잠든 것 같아서 간호사에게 잠옷으로 갈아입혀 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내가 갈아입힌 게 아니에요.”온다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고 자신이 속 좁은 사람처럼 느껴져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전, 전 강 대표님한테 따져 물을 생각은 ...”유강후는 조금 잠겨버린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설령 내가 갈아입혔다고 해도 보이지 않으니까.”그는 뜸을 들이다가 계속 말을 이었다.“아마 일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걸 거예요.”온다연은 고개를 확 들었다.“앞이 안 보이는 거예요?”어쩐지 그의 눈빛이 이상했던 것이 이해가 갔다. 그녀는 자신이 입은 옷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네, 의사가 왔다가 가긴 했었는데 2, 3개월이 지나야 보일 수 있다더군요. 그러니 며칠 간은 잘 부탁드려요.”그는 아주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마치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너무도 태연한 모습이었지만 온다연은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에서 조금의 기쁨이 느껴졌다. 아마도 잘못들은 게 아닐까 싶었다. 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좋은 점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편하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간 뒤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그리고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자 하얀 속살이 살짝 드러났다.바로 이때 그는 어디선가 시선을 느끼게 되었다. 황급히 옷을 내리고 고개를 돌렸을 땐 눈을 감은 채 침대에 기대고 있는 유강후의 모습이 보였다. 착각한 것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얼른 화장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옷 갈아입고 나왔을 때 유강후는 이미 침대 끝에 앉
“저희는 애초에 진씨 가문에 손님으로 방문한 겁니다. 그런데 뱀에게 물려버렸네요. 진씨 가문 저택은 신국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라고 하지 않았나요?”진수현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고 눈앞에서 싸울 것 같은 분위기에 온다연은 얼른 진수현을 말렸다.“아빠, 제가 할게요. 제가 잘 보살펴 드릴 수 있어요.”그녀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유강후를 보았다. 잘생긴 얼굴에 핏기 하나도 없이 창백하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고 결국 나직하게 말했다.“그때 그 뱀은 절 물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강 대표님이 저를 지켜주려다가 대신 물린 거예요. 만약 강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전 이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었을 거예요.”진수현은 소중한 딸의 손을 잡았다.“하지만 나랑 네 엄마는 네가 다른 사람 시중을 드는 건 원치 않는단다.”온다연이 말했다.“아빠, 그럼 이렇게 해요. 일단은 방법이 없고 저도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으니까 아마 간호를 해도 옆에서 지켜보는 것뿐일 거예요. 절대 힘들게 움직이는 일은 하지 않을 거예요.”이렇게까지 말하니 진수현은 아무리 그녀가 아까워도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그날 밤, 온다연은 유강후의 곁을 지켜주었다. 병실은 아주 컸고 화장실과 작은 주방도 따로 있었지만 간병인이 머물 방은 없었기에 유강후의 침대 옆에 작은 간이침대를 놓고 지내야 했다.병실의 환경은 아주 좋았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방이었던지라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닷소리와 갈매기가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공기 중에 소독수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것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이곳이 병원임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온다연은 창문을 열고 밤바다를 보며 멍 때렸다.그녀는 강 대표라는 사람에게서 익숙함을 느꼈고 게다가 그는 예전에 그녀와 알던 사이인 것 같았다.‘정말로 아는 사이였나? 심지어 아주 깊은 사이였나?'하지만 진수현이 알아봐 준 자료와 염지훈의 입에서 알게 된 정보에서는 그녀는 H 국에서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부모님이 그녀를 버리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조금 힘
이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진 회장님, 설마 저희를 의심하고 계시는 건 아니죠? 이런 맹독을 지닌 뱀에게 저희 대표님이 두 번이나 물려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지금 저희가 그 뱀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의심하시는 건가요?”이 말을 하는 이권도 사실은 계속 불안해하고 있었다.비록 미리 해독제를 먹고 곽혜진이 준 혈청을 주입했다고 해도 유강후는 두 번이나 물리게 되었으니 상황을 알 수 없었다.이권은 다급하게 화장실로 갔다. 다시 화장실에서 나왔을 땐 이권은 전보다 편안해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방금 그는 화장실에서 곽혜진에게 연락해 물어보았었다. 그녀가 준 혈청은 아주 귀한 것이었고 미리 주입하면 효과가 더 좋다고 했다. 이틀에서 사흘 내에 열 마리가 되는 독사에게 물리지 않는 한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부작용은 있다고 했다. 대부분 2, 3개월이 지나야 몸 상태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응급실 안에 있는 의사들은 아주 바쁘게 움직였다. 각종 검사와 채혈까지 하고 나서야 그들은 한숨 돌리게 되었고 동시에 이 결과는 신국의 의료계를 떠들썩하게 되었다.오초사에게 두 번이나 물렸지만 사망하지 않은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초사는 맹독을 지닌 독사였고 설령 조금이라도 그 독이 몸에 들어간다면 식물인간이 되거나 몸 어느 한 부분이 장애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아주 컸다. 그랬기에 연구원들은 주삿바늘을 들고 유강후의 피를 뽑아 연구를 해보려고 했지만 이권이 그들을 막아섰다.연구원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신국의 고위층에 연락해 유강후의 피를 뽑아 연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전부 거부당했다. 물론 이것은 전부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같은 시각 두 시간 동안 응급실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유강후는 드디어 나오게 되었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신국 재계의 거물과 정치계의 거물이었으니 말이다.두 사람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그가 방금 응급 치료한 사람이 신분이
가짜는 아닌 것이 확실했고 극독을 가진 독사라 한번 물리게 되면 반 시간 내에 치료받지 못하면 영원히 눈을 뜰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만약 정말로 물리게 된다면 두 사람은 그야말로 운이 없는 것이었다.하지만 이 뱀은 섬에서만 존재했고 그 수도 몇 마리 되지 않았다. 설령 그 섬에 간다고 해도 뱀을 만날 확률은 아주 낮았고 게다가 뱀은 그 섬에서 벗어나면 며칠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다고 했다. 그런데 왜 진씨 가문 저택에 있는 것일까? 그러나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오초사는 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움직임이 빨랐고 몸을 용수철처럼 쓰면서 어떻게든 먹이를 사냥한다고 했다.온다연은 경악하며 말했다.“얼른 뛰어요! 빨리요!”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고 오초사는 용수철처럼 뛰어오르더니 화살처럼 날아왔다. 유강후가 몸을 돌리자 뱀은 그의 등에 이빨을 박아넣어 버렸다.온다연은 소리를 질렀다.“안돼!”말을 마치자마자 그녀의 동공이 다시 떨렸다.“얼른 뛰어요! 빨리요!”하지만 시간은 없었고 땅에 있던 또 다른 오초사가 똑같이 날아왔다. 이번에 목표는 온다연이었다.이때 유강후가 몸을 확 구부리더니 온다연을 바닥에 넘어지게 했고 몸으로 온다연을 지켜주었다. 목표를 잃은 뱀은 유강후의 팔을 깨물었다.온다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초사에게 한 번이라도 물리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했는데 유강후는 두 번이나 물렸기 때문이다. 분명 한번 물릴 수 있었는데 말이다.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는 비틀대기 시작했고 점차 정신이 흐릿해졌다.온다연은 빠르게 그의 등 뒤로 갔다. 두 뱀은 그의 등과 팔에 매달려 이빨을 빼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뱀이 한번 사람을 물기만 한다면 앞으로 오랫동안 독성을 잃게 된다. 비록 무섭기는 했지만 그녀는 빠르게 두 뱀을 잡아당겨 떼어냈고 처음 만져보는 미끈거리는 촉감에 더 큰 두려움을 느끼면서 이성을 잃고 뱀을 땅에 여러 차례 내리쳤다.드디어 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이상함을 감지한 이권과 경호원이 달려왔다. 바닥에
그 순간 유강후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멍하니 구경하고 있던 온다연은 그대로 그의 그윽한 두 눈과 눈 마주쳐 버렸다.몽롱한 불빛 아래서 본 남자의 얼굴은 다소 공격성이 있어 보였지만 이목구비가 더 뚜렷해져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잘생겨 보였다. 얼굴이 빨개진 온다연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강 대표님,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들어가는 건 어때요?”유강후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나직하게 말했다.“진유나 씨, 내가 아는 사람이랑 정말 많이 닮았네요.”온다연은 궁금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친구예요?”온다연은 순간 가슴이 조여오면서 답답해졌고 머리도 아팠다.‘아니면 애인? 그것도 아니면 그 아이의 엄마?'‘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어쩐지 계속 나를 보는 눈빛에 애틋함이 담겨 있다고 했더니 내가 그 사람을 닮아서였구나...'그렇게 생각한 온다연은 가슴이 더 답답해졌지만 멋대로 자리를 뜰 수 없었던지라 말을 이었다.“사랑하는 사람이 이혼하자고 했어요? 아이도 큰 것 같은데 왜 이혼하자고 한 거예요?”유강후는 가만히 서서 그녀를 보았다. 그는 이미 최선을 다해 그녀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다.바닷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며 바닥에 있던 낙엽을 쓸어 갔고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책에 적힌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천리 길도 아니고 바로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서 있는데 그 사람이 그 마음을 모른다는 것이다.그는 나직하게 말했다.“이혼하지 않았어요. 제 사전에는 사별만 있지 이혼이라는 두 단어는 존재하지 않거든요.”온다연은 시선을 내리깔며 작게 물었다.“강 대표님이 순정남일 줄은 몰랐네요. 그럼 아내분은 어디에 있는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마치 1초라도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면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몇 년 전에 오해로 내 곁을 떠나버렸어요. 아주 멀리 도망가 숨어버렸거든요. 아직도 찾아오지 못했어요.”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