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창밖을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나 같은 사람에게 사랑은 필수가 아니에요. 감정도 중요하지 않고요. 강후 씨와 나는 애초에 같은 부류가 아니에요. 우리 사이에는 너무 많은 장벽이 있습니다.”“전 유씨 가문 사람들이 과거에 저에게 했던 짓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그들이 죽었다고 해도 내 마음의 한은 풀리지 않아요.”“하지만 강후 씨에게 유씨 가문은 가족이잖아요. 그 사람이 그들을 진정으로 끝장낼 리가 없어요.”“봐봐요, 유하령이 그렇게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데도 지금은 겨우 다리 하나 잃은 정도잖아. 유씨 가문 사람들이 여전히 유하령의 재활을 돕고 있고 아마 1,2년 안에 다시 정상적으로 걸을 수도 있을 거예요.”“게다가 내 동생의 죽음, 그리고 나와 나은별 같은 사람들의 얽힌 관계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알려줬어요. 나는 결국 희생될 수 있는 사람이란 걸.”“강후 씨는 한편으론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 사람들이 날 무자비하게 해치도록 방치했어요. 이런 사랑은 나로선 감당할 수 없어요.”눈빛에 어두운 기색이 스치며 온다연이 말을 이었다.“한때는 아이만 있으면 모든 걸 내려놓고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내가 순진했던 거예요. 아이가 있어도 그 모든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았을 거고 다만 조금 늦게 터질 뿐이었겠죠.”“유강후라는 사람은 겉으론 깊은 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정해요. 그 사람은 항상 자신의 사고방식으로만 사람들을 판단해요. 얻지 못하면 가두거나 파괴해버리고 자기 뜻에 따르지 않으면 온갖 방식으로 벌을 주죠.”“완벽한 사업가이자 타고난 리더지만 좋은 연인은 아니에요. 게다가 나 같은 사람은 사랑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나에겐 사랑보다 배를 채우는 게 더 중요하니까.”그녀의 말이 끝난 후, 서재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잠시 후, 온다연은 책상 의자에 놓인 고양이 모양 쿠션을 정리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쿠션의 고
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말했다.“그중에서도 내가 보기엔 가장 약점이 될 수 있는 건 바로 거래 전문가예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죠?”지예솔은 대답하지 않고 고양이 모양 쿠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잠시 후, 하인이 문을 두드렸다.“사모님, 다이닝룸에 사모님이 좋아하시는 우유 커스터드가 준비되었습니다.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밖으로 모시고 오라고 하셨어요.”지예솔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며 낮게 말했다.“보아하니 강후 씨는 정말 다연 씨를 철저히 통제하나 봐요. 잠깐 떨어졌는데도 불안해하다니... 혹시 내가 다연 씨를 데려갈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걸까요?”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고양이 모양 쿠션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잘 보관해요. 이 안에 들어 있는 카메라는 구하기 힘든 거예요.”이렇게 말한 뒤, 두 사람은 함께 서재를 나섰다.다이닝룸에 다다르기도 전에 봉현수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연 씨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예요? 벌써 30분이나 지났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끝도 없이 하는 거죠? 혹시 우리 집 예솔이를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거 아니예요?”유강후의 반응도 냉랭했다.“우리 다연이가 예솔 씨를 데려간다니요? 예솔 씨야말로 진짜 문제 아니예요? 우리 다연이가 예솔 씨 때문에 나쁜 영향을 받았다고요! 아직 현수 씨한테 따질 말도 많아요, 근데 왜 현수 씨가 먼저 큰소리쳐요?”“현수 씨, 선 넘지 마요!”온다연과 지예솔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서로의 눈에서 당혹스러움을 읽을 수 있었다.식탁으로 돌아왔을 때, 유강후는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막 입을 열려는 순간, 지예솔이 손에 든 고양이 모양 쿠션을 보며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쿠션을 좋아하신다면 여러 개 선물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안 됩니다.”그 쿠션은 온다연과 유강후가 처음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을 때, 온다연이 인터넷으로 주문해 그의 책상 의자에 놓은 것이었다.그녀는 그것을 ‘등받이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결혼식까지 남은 날이 3,4일밖에 되지 않았다.영운산에 있는 집은 완벽하게 공사가 마무리되었고 가구도 모두 배치되었다. 요 며칠 동안은 생활용품들을 하나씩 채우는 중이었다.이 별장은 영운산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지 면적이 1천 평이 넘고 경운시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하지만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천연 온천이었다.탁월한 약효를 자랑하는 이 온천은 오랜 기간 몸을 조리해야 하는 온다연에게 그야말로 최적이었다.이곳은 결혼 후 유강후와 함께 머물 신혼집으로, 그는 집을 꾸미는 데 엄청난 정성을 들였다.전체적으로 전통 스타일로 꾸며졌지만 거실 천장은 최상의 채광 효과를 위해 설계되었다.하여 날씨가 좋은 밤이면 소파에 누워 별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마당에는 해바라기와 붉은 장미가 가득 심어져 있었다.장미는 이미 몇 송이가 만개해 있었고 은은한 향기가 온 정원을 가득 메우며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러나 온다연은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유강후가 고양이 구월이의 집을 배치하고 있을 때, 온다연은 그 모습을 가만히 그네에 앉아 지켜보았다.그런데 구월이의 집이 다 완성되기도 전에 그녀는 그만 잠들어 버렸다.유강후는 온다연이 한쪽으로 기울어 깊이 잠든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나무 아래에 있는 긴 의자에 눕혔다.그는 요즘 들어 그녀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전보다 훨씬 자주 잠에 빠졌고 무언가를 생각하다 멍해지는 일이 늘었다.온다연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녀는 말을 아꼈고 가끔씩 겨우 한두 마디를 내뱉었지만 그 내용조차 마음을 긁는 말들뿐이었다.그녀가 가장 많이 말을 했던 날은 지예솔이 찾아왔던 그날이었다는 게 새삼 떠올랐다.유강후는 잠들어 있는 온다연의 옆모습을 보며 어딘가 모르게 그녀를 놓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했다.“다연아, 또 날 떠날 생각 하는 거야?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온다연은 깊이 잠들어
어두운 골목.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었다.온다연은 골목 입구에 막 들어섰을 때 갑자기 누군가에게 잡아당겨져 어두운 구석으로 끌려 들어갔다.벽 앞에는 술 냄새를 풍기는 취한 남자 두 명이 서 있었고 그들은 온다연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그녀의 옷을 찢기 시작했다.코를 찌르는 알콜 냄새와 남자들의 거친 움직임에 온다연은 겁에 질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도와주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그들 중 한 남자는 즉시 온다연의 뺨을 세게 때렸다.“감히 소리쳐? 뭘 잘했다고 소리치는 거야!”“오늘 네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거야. 가만히 있어. 이 오빠가 기쁘게 해줄 테니까.”...이때 갑자기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골목을 가로질러 왔고 차창이 천천히 내리자 차갑고 날카로운 눈동자가 드러나 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 행위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옆에 있는 운전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나가서 말릴까요?”도련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그냥 가!”이때 온다연은 이미 옷이 찢어진 상태였고 갑자기 나타난 차량 때문에 그녀는 더욱 몸부림쳤다.“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술 취한 남자는 온다연에게 아직도 도움을 청할 힘이 남아있는 것을 보자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두 번 더 때렸다. 또한 온다연의 몸을 잡고 있는 손에도 더욱 힘을 주어 치마를 벗기려고 했다.온다연이 절망하려고 할 때 이미 시동을 걸었던 차가 갑자기 멈췄다.그리고 차 문이 열리더니 키 큰 남자 두 명이 내려왔다.앞에 선 남자는 마른 체격에 브랜드 로고가 없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차갑고 위엄이 있어 어두운 밤에도 빛나는 것 같았다.그는 구석에서 무자비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온다연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는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불빛이 너무 어두워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낮은 울음소리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남자의 기억 속 목소리와 다소 비슷했다.남자는 차갑고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매미가 울어대는 무더운 여름날이었다.소녀의 수줍은 눈빛과 땀에 젖은 옆머리가 그날 오후와 겹쳐졌다.그 모습이 지난 3년 동안 매일 밤 꿈속으로 들어와 밤마다 유강후를 뒤흔들었다.유강후는 방금 온다연의 손길이 닿은 곳이 화끈거려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이 순간 공기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러나 유강후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며 여전히 차갑고 고상한 표정으로 말했다.“들어가.”온다연은 즉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치 사면받은 사람처럼 도망치듯 떠났다. 물론 온다연은 차에 탄 유강후의 맹수 같은 약탈적인 눈빛을 보지 못했다.온다연은 유씨 가문 저택에 들어선 후에야 유씨 가문 식구들뿐만 아니라 유강후의 옛 친구들도 모두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그 도련님들은 모두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중에서도 최고였다.온다연은 전에 그들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여러 번 목격했었기 때문에 그들을 피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하지만 안주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심미진은 온다연을 놓아주지 않았다.“나 시간 없으니까 네가 이 술을 네 작은 삼촌에게 갖다줘.”온다연은 거절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방 안은 화려했고 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온다연은 가시 장미에 섞인 새하얀 장미처럼 눈길을 사로잡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온다연의 검은 머리와 붉은 입술, 매력적인 골격,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특히 하늘색 치마 밑의 하얀 피부는 사람을 유혹할 정도로 하얗게 빛났다.잠시 동안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도련님, 유씨 가문의 양딸을 몇 년 동안 보지 못했었는데 그새 잘 자랐네요.”유강후 역시 온다연이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었다.“몇 년 동안 유씨 집안에서 먹여준 건 맞지만 양딸이라고 할 순
온다연은 고개를 숙였다. 마치 사나운 짐승에게 겨냥당한 듯 숨이 막힐 것 같았다.온다연은 문에 한껏 기대어 최대한 유강후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하지만 유강후는 바로 앞에 있고 공간이 좁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유강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느꼈다.맑은 솔방울 같은 냄새에 은은한 술 냄새가 섞여 온다연의 피부에 다가왔다. 그러자 온다연은 갑자기 3년 전의 점심에도 이렇게 더웠는데 술에 취한 유강후가 방에 쳐들어와 통제를 잃고 폭력적으로 행동했던 것이 떠올랐다.그런 기억이 떠오르자 온다연은 혼란스러워서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 유강후와의 거리를 벌렸다.하지만 너무 가까운 탓에 유강후의 옆을 지나가려 할 때 온다연의 팔은 유강후의 손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닿은 곳은 살짝 화끈거리며 유강후의 기운이 남았다.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씨 가문 저택은 학교에서 너무 멀어서 기숙사에 살고 있어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온다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낮아서 유강후는 그녀를 혼내고 싶었다.게다가 이 3년 동안 거짓말하는 것도 배웠다니.하지만 유강후는 아직 온다연을 까발릴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는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내 번호 차단했어?”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번호 바꿨어요. 예전에 쓰던 휴대폰이 고장 나서 모든 번호가 사라졌거든요.”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유씨 가문 사람들 중 이모 심미진의 번호만 저장했다.“휴대폰 줘 봐.”온다연은 순순히 휴대폰을 건넸다.살짝 낡은 휴대폰이었는데 스크린은 손상된 정도가 심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자신의 휴대폰으로도 온다연의 카카오톡 QR코드를 스캔해 추가했다.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돌려주며 담담하게 말했다.“아까는...”“알아요.”온다연은 유강후의 말을 잘랐다.“그분들 다 삼촌 친구들이잖아요. 농담한 거 알아요. 괜찮아요.”온다연은 유씨 가문에 오래 머물지 않기
온다연은 온 힘을 다해 유민준을 밀어냈다.“오빠, 정신 차려요.”유민준은 표정이 변하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온다연, 순진한 척하지 마. 너랑 네 그 빌붙으려는 이모가 뭐가 달라? 지금 이렇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거절해? 그럼 설마 더 대단한 걸 바라는 거야?”온다연은 표정이 바뀌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유씨 가문이 넘볼 수 없는 대단한 집안이란 거 알아요. 당신들한테 빌붙을 생각도 없었어요.”온다연의 표정이 바뀌자 유민준은 답답한 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조금 전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나 그런 뜻 아니야. 나랑 만나면 명분 주는 것 외에 다른 건 다 줄 수 있어. 예전에 내가 지나쳤던 거 맞아. 내가 하령이 시켜서 널 괴롭혔던 것도 인정할게. 그런데 다 지난 일이잖아. 앞으로 내가 배로 잘해줄게. 다연아, 너 나 좋아하지...”유민준이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자 온다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끼어들었다.“오빠 틀렸어요. 나 오빠한테 관심 없어요.”온다연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정확히 말하면 난 유씨 가문 사람들에게 관심 없어요. 조금도 없다고요.”유강후는 그 말을 듣고 창문에 올려놨던 손을 멈칫하며 살기를 내뿜었다. 차 안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가라앉았다.유민준은 그 말에 화가 났다.“나한테 관심 없다고? 그놈 때문이야?”유민준은 주머니에서 사진 여러 장을 꺼내 온다연의 얼굴에 던지며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너 이놈 좋아하지?”사진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불빛이 어두웠지만 온다연은 사진 속 남자가 그녀의 동기 진태윤이라는 것을 보아냈다. 요즘 인턴십 때문에 온다연은 진태윤과 가까워졌는데 유민준이 그들의 사진을 찍을 줄은 몰랐다.바닥에 널브러진 사진들을 보고 온다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오빠, 유씨 가문이 대단한 건 아는데요. 제 학교 친구들은 건드리지 마요. 태윤이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 태윤이 안 좋아해요.”유민준은 손을 뻗어 온다연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내려다보
그 남자는 바로 유강후였다.유강후는 고급 소재의 흰 셔츠에 긴 다리를 감싸는 검은색 바지를 입고 차갑고 위엄 있는 표정을 지은 채 길에 서서 눈길을 끌었다.그의 옆에 있는 여자는 하얀색 명품 정장을 입었는데 몸매의 볼륨감이 잘 드러났다. 맑고 귀여운 외모에 눈웃음도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두 사람은 무슨 말을 했는지 곧 여자는 유강후의 팔짱을 끼고 앞으로 걸어갔다.두 사람이 멀리 걸어가는 모습을 본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책을 얼굴에서 떼어냈다.하지만 이때 유강후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멀리서부터 안도연을 바라보았다.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다연은 유강후의 눈빛에서 차가운 기운을 느꼈고 순간 머리가 질끈거리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다행히 유강후는 곧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온다연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상현 씨, 미안해요. 저 볼일 있어서 이만 가야 할 것 같아요.”강상현이 말도 하기 전에 온다연은 이미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본 듯한 표정으로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유강후와 그 여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피하기에는 너무 늦은 온다연은 몸을 곧추세우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할 수 없이 외쳤다.“삼촌!”유강후은 시선을 온다연이 입고 있는 무릎까지 오는 하얀색 원피스로 옮겼다가 아픈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쳐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친구랑 여기서 켜피 마신 거야?”“강후 씨, 누구야? 왜 강후 씨를 삼촌이라고 불러?”여자는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유강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우리 형수님의 조카야.”여자는 놀란 듯 온다연을 훑으며 말했다.“강후 씨가 말했던 그 조카군요. 언제 이렇게 많이 컸어요?”여자는 손을 내밀어 온다연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반가워요. 저는 강후 씨 친구 나은별이에요.”사실 나은별이 자기 소개하지 않아도 온다연은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전에 유씨 가문에서 나은별을 여러 번 몰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결혼식까지 남은 날이 3,4일밖에 되지 않았다.영운산에 있는 집은 완벽하게 공사가 마무리되었고 가구도 모두 배치되었다. 요 며칠 동안은 생활용품들을 하나씩 채우는 중이었다.이 별장은 영운산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지 면적이 1천 평이 넘고 경운시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하지만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천연 온천이었다.탁월한 약효를 자랑하는 이 온천은 오랜 기간 몸을 조리해야 하는 온다연에게 그야말로 최적이었다.이곳은 결혼 후 유강후와 함께 머물 신혼집으로, 그는 집을 꾸미는 데 엄청난 정성을 들였다.전체적으로 전통 스타일로 꾸며졌지만 거실 천장은 최상의 채광 효과를 위해 설계되었다.하여 날씨가 좋은 밤이면 소파에 누워 별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마당에는 해바라기와 붉은 장미가 가득 심어져 있었다.장미는 이미 몇 송이가 만개해 있었고 은은한 향기가 온 정원을 가득 메우며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러나 온다연은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유강후가 고양이 구월이의 집을 배치하고 있을 때, 온다연은 그 모습을 가만히 그네에 앉아 지켜보았다.그런데 구월이의 집이 다 완성되기도 전에 그녀는 그만 잠들어 버렸다.유강후는 온다연이 한쪽으로 기울어 깊이 잠든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나무 아래에 있는 긴 의자에 눕혔다.그는 요즘 들어 그녀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전보다 훨씬 자주 잠에 빠졌고 무언가를 생각하다 멍해지는 일이 늘었다.온다연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녀는 말을 아꼈고 가끔씩 겨우 한두 마디를 내뱉었지만 그 내용조차 마음을 긁는 말들뿐이었다.그녀가 가장 많이 말을 했던 날은 지예솔이 찾아왔던 그날이었다는 게 새삼 떠올랐다.유강후는 잠들어 있는 온다연의 옆모습을 보며 어딘가 모르게 그녀를 놓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했다.“다연아, 또 날 떠날 생각 하는 거야?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온다연은 깊이 잠들어
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말했다.“그중에서도 내가 보기엔 가장 약점이 될 수 있는 건 바로 거래 전문가예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죠?”지예솔은 대답하지 않고 고양이 모양 쿠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잠시 후, 하인이 문을 두드렸다.“사모님, 다이닝룸에 사모님이 좋아하시는 우유 커스터드가 준비되었습니다.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밖으로 모시고 오라고 하셨어요.”지예솔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며 낮게 말했다.“보아하니 강후 씨는 정말 다연 씨를 철저히 통제하나 봐요. 잠깐 떨어졌는데도 불안해하다니... 혹시 내가 다연 씨를 데려갈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걸까요?”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고양이 모양 쿠션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잘 보관해요. 이 안에 들어 있는 카메라는 구하기 힘든 거예요.”이렇게 말한 뒤, 두 사람은 함께 서재를 나섰다.다이닝룸에 다다르기도 전에 봉현수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연 씨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예요? 벌써 30분이나 지났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끝도 없이 하는 거죠? 혹시 우리 집 예솔이를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거 아니예요?”유강후의 반응도 냉랭했다.“우리 다연이가 예솔 씨를 데려간다니요? 예솔 씨야말로 진짜 문제 아니예요? 우리 다연이가 예솔 씨 때문에 나쁜 영향을 받았다고요! 아직 현수 씨한테 따질 말도 많아요, 근데 왜 현수 씨가 먼저 큰소리쳐요?”“현수 씨, 선 넘지 마요!”온다연과 지예솔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서로의 눈에서 당혹스러움을 읽을 수 있었다.식탁으로 돌아왔을 때, 유강후는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막 입을 열려는 순간, 지예솔이 손에 든 고양이 모양 쿠션을 보며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쿠션을 좋아하신다면 여러 개 선물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안 됩니다.”그 쿠션은 온다연과 유강후가 처음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을 때, 온다연이 인터넷으로 주문해 그의 책상 의자에 놓은 것이었다.그녀는 그것을 ‘등받이로
온다연은 창밖을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나 같은 사람에게 사랑은 필수가 아니에요. 감정도 중요하지 않고요. 강후 씨와 나는 애초에 같은 부류가 아니에요. 우리 사이에는 너무 많은 장벽이 있습니다.”“전 유씨 가문 사람들이 과거에 저에게 했던 짓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그들이 죽었다고 해도 내 마음의 한은 풀리지 않아요.”“하지만 강후 씨에게 유씨 가문은 가족이잖아요. 그 사람이 그들을 진정으로 끝장낼 리가 없어요.”“봐봐요, 유하령이 그렇게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데도 지금은 겨우 다리 하나 잃은 정도잖아. 유씨 가문 사람들이 여전히 유하령의 재활을 돕고 있고 아마 1,2년 안에 다시 정상적으로 걸을 수도 있을 거예요.”“게다가 내 동생의 죽음, 그리고 나와 나은별 같은 사람들의 얽힌 관계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알려줬어요. 나는 결국 희생될 수 있는 사람이란 걸.”“강후 씨는 한편으론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 사람들이 날 무자비하게 해치도록 방치했어요. 이런 사랑은 나로선 감당할 수 없어요.”눈빛에 어두운 기색이 스치며 온다연이 말을 이었다.“한때는 아이만 있으면 모든 걸 내려놓고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내가 순진했던 거예요. 아이가 있어도 그 모든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았을 거고 다만 조금 늦게 터질 뿐이었겠죠.”“유강후라는 사람은 겉으론 깊은 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정해요. 그 사람은 항상 자신의 사고방식으로만 사람들을 판단해요. 얻지 못하면 가두거나 파괴해버리고 자기 뜻에 따르지 않으면 온갖 방식으로 벌을 주죠.”“완벽한 사업가이자 타고난 리더지만 좋은 연인은 아니에요. 게다가 나 같은 사람은 사랑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나에겐 사랑보다 배를 채우는 게 더 중요하니까.”그녀의 말이 끝난 후, 서재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잠시 후, 온다연은 책상 의자에 놓인 고양이 모양 쿠션을 정리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쿠션의 고
온다연은 말을 마치고 곧바로 곽혜영을 무시한 채 한이준을 향해 말했다.“한 대표님, 안목이 갈수록 떨어지시네요. 눈이 좀 안 좋으신가 봐요. 강후 씨가 갓 사 온 영양제가 있는데 돌아가실 때 몇 개 가져가세요. 눈은 깨끗해야 좋으니까요.”한이준의 얼굴이 즉각 굳어졌고 곽혜영의 표정은 더 심각했다.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그녀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말했다.“유 대표님, 제가 다연 씨의 기분을 상하게 했나요? 화나신 것 같아요. 다 제 잘못이에요.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유강후는 냉담하게 말했다.“다연이 기분을 상하게 한 걸 알면서도 물어요? 그렇게 생각했으면 저기 문 있잖아요. 나가세요. 배웅은 안 할 테니.”이 말이 끝나자마자 봉현수가 웃음을 터뜨렸다.“강후 씨, 그래도 상대는 여자잖아요. 게다가 은별 씨 사촌인데 손님으로 온 사람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한이준의 얼굴이 극도로 어두워지며 분노했다.“두 사람 다 그만해요! 혜영이는 제 파트너입니다. 적당히 좀 해요!”온다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어쩐지 익숙하다 했더니. 친척이셨구나.”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곁에 있던 지예솔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솔 씨, 제가 주얼리 관련해서 여쭐 게 있어요. 서재로 가서 얘기해요.”그렇게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남은 곽혜영은 얼굴이 어두워진 채 침묵을 유지했다.한이준은 눈물이 곧 흘러내릴 듯한 곽혜영의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이끌고 나갔다.봉현수가 한이준이 정말 화가 난 듯해 따라나서려 했지만 유강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현수 씨, 앉아요.”“신경 쓰지 마요! 이준이는 갈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어요. 우리 다연이조차 저 혜영 씨한테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걸 아는데 여전히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잖아요. 혜린 씨랑 헤어지고 나서는 정말 허기가 졌나 봐요. 아무거나 다 먹을 정도로.”“그냥 스스로 정신 차릴 때까지 둬요.”서재 안에서, 온다연은 앰버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예솔 씨, 부탁 하나 드리고
장화연은 표진아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마 그냥 지나가는 말일 겁니다. 적어도 사모님 뒷말은 하지 마세요.”“잠시 후에 한 대표님과 봉 대표님이 오셔서 결혼식 장소에 대해 논의할 거예요. 차와 간식을 준비하세요. 한 대표님의 새로운 파트너분은 커피와 서양 과자를 좋아한다고 하니 그것도 준비하시고 나머지는 평소대로 하시면 됩니다.”“네, 장 집사님.”하인이 돌아서려는 순간, 장화연이 다시 말했다.“준비해 두세요. 결혼식이 끝난 뒤, 당신은 영운산 별장으로 가서 일하게 될 겁니다. 모든 일에 좀 더 신경 쓰세요. 셋째 도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장으로 가는 사람은 대우가 더 나아질 거라고 하셨습니다.”하인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알겠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저녁 식사 전, 한이준과 봉현수가 정말로 도착했다.다만 한이준 옆에 선 사람은 낯선 얼굴이었다.봉현수 옆에는 여전히 지예솔이 함께였다.온다연의 시선이 한이준의 파트너에게 스치듯 지나갔다.단정하고 청순한 외모로 임혜린과 몇 분 닮은 느낌이었다.하지만 곧 그녀는 무표정하게 시선을 돌렸다.그런데도 그 여자는 무척 친근한 척하며 달콤한 미소로 말했다.“유 대표님, 저 기억하시나요? 저는 이진이의 어릴 적 친구 곽혜영이에요. 예전에 모임에서 뵌 적 있는데.”유강후는 별다른 표정 없이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다.곽혜영은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 있게 행동했다.저녁 식사가 무척 풍성하게 준비되었지만 어떤 사람들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곽혜영은 식사 중 활발하게 대화를 이끌며 마치 유씨 가문과 봉씨 가문에 아주 익숙한 사람처럼 굴었다.그러나 두 남자는 마치 포커페이스를 하듯 냉담한 표정을 유지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곽혜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국제 정세와 금융 이야기를 꺼내며 온다연과 지예솔을 가끔씩 흘끔거렸다.그 눈빛 속에는 미묘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곽혜영은 사전에 조사를 했었다.온다연과 지예솔은 얼굴로 자리를 차지한
말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감탄했다.보기에는 여리여리하지만 옷감 아래 숨겨진 몸매는 정말 볼륨감이 있었다. 허리는 너무나 가늘어 아찔할 정도였고 가슴은 부드럽고 풍만해 전혀 작지 않았다.외부 사람이 있는 것을 본 온다연은 유강후의 팔에서 벗어나려 했다.눈가에는 아직도 약간의 붉은 기운이 남아 있는 채로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고르고 싶지 않아요. 아저씨가 결정한 일이니까 아저씨가 직접 골라요.”말을 마치자마자 돌아서 나가려 했다.하지만 유강후는 그녀를 다시 끌어안으며 성급함을 억누르고 달래듯 말했다.“결혼식이 이제 보름 남았어. 고르지 않으면 그날 입을 게 없잖아.”온다연은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유강후의 품에 갇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빠져나갈 수 없었다. 결국 아무 말 없이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표진아의 조수가 몇 벌의 웨딩드레스를 가져왔다. 모두 엄선된 고급 맞춤 드레스였는데 화려하면서도 신선하고 우아한 매력을 잃지 않은 디자인이었다.하지만 20벌이 넘는 드레스를 계속 보여줬음에도 온다연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너무 피곤한 듯 보였다.지쳐 보이는 온다연의 모습에 유강후는 안쓰러워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많이 힘들지? 내일 다시 골라볼까?”그러나 온다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드레스들 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며칠 동안 그녀는 계속 이런 상태였다.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아이를 잃었다는 소식은 그녀의 마음을 철저히 무너뜨렸다.오늘도 유강후가 계속 달래고 유도하며 울고 말하게 하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의 기운 없는 모습을 보자 유강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곧 허리를 숙여 그녀를 안아 들고 나가려는 찰나, 표진아가 급히 말했다.“사모님께서 만족하지 못하신다면 제가 다른 시리즈를 준비해왔습니다. 트렌디한 전통 스타일인데 사모님의 기품에 딱 맞을 겁니다. 애프터 드레스로도 사용할 수 있어요.”이런 큰 거래를
표진아가 뚫어져라 온다연을 쳐다보자 옆에 있던 집사가 입을 열었다.“저희 사모님입니다.”표진아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설마 미성년자를 만나는 건가?’부유한 집안의 아가씨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유강후라는 온실속에서 곱게 자란 화초처럼 보였다.‘이런 외모를 가졌으면 유 대표님 같은 분을 만나는 게 맞지. 안 그러면 이상한 사람이 얼마나 꼬이겠어.’표진아는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사모님이 생각보다 어리시네요. 미성년자는 아니겠죠?”집사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눈살을 찌푸렸다.“진아 씨, 도련님이 화낼지도 모르니 안에 들어가서는 절대 이런 얘기를 꺼내시면 안 됩니다. 사모님은 혼인신고까지 마친 성인이에요.”“그리고 사모님이 요즘 도련님과 갈등이 생겨 기분이 안 좋으시니 언행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표진아가 막 답하려던 찰나 커다란 문이 열리며 제네시스 한 대가 안으로 들어왔다.집사는 그녀의 옆에서 급히 속삭였다.“도련님이 오셨네요. 진아 씨는 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시죠.”표진아는 집사의 뒤를 따르며 걸음을 옮겼다.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다실에는 넓은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었고 창문을 열면 바깥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표진아는 천하의 미래 그룹 대표가 차에서 커다란 상자 몇 개를 옮기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그런 다음 부하들을 시켜 상자에 들어있는 물건을 꺼내 조립했고 순식간에 2,3m 높이에 달하는 고양이 집이 완성되었다.표진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유 대표님이 이런 일도 직접 한다고?’곧이어 목격한 장면에 그녀는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평소 위엄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유강후가 허리를 숙여 조심스럽게 온다연을 달래주고 있었다.그러나 온다연은 가볍게 무시한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유강후가 옆에서 한참을 달래도 입조차 벙끗하지 않았다.곧이어 유강후는 비서에게 뭔가를 지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우미가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나왔다.고양이를 보고서야 온다연의 얼굴에는 미세한 표정 변화가 일어났다.그러나
“하는 짓을 봐서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게 뻔합니다.”유강후는 섬뜩한 눈빛으로 사진을 바라봤다.“로운 불러와.”곧이어 로운이 들어왔다.유강후는 단호하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부터 본격적으로 공격해. 경원으로 들어온 암살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죽여버려.”“시간은 딱 한 달이야. 난 한 달 안에 김씨 가문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어.”로운은 눈살을 찌푸렸다.“대표님, 열흘 정도만 더 기다리면 분명히 성공할 거라 확신합니다만 지금 바로 공격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로운.”유강후는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이미 내가 참을 수 있는 최대 인내심에 도달했어. 한 달 후에 임무를 완수한다면 돈, 사람, 물건 네가 원하는 건 전부 다 줄 수 있으니까 넌 여기에만 집중해.”“계정에 나온 모든 암살자를 너한테 맡길 거야. 난 대답만 원하니까 넌 반드시 성공해.”로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맡겨주신 일은 반드시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로운이 나가자 이권이 입을 열었다.“도련님, 열흘이면 되는데 조금만 더 기다리는 건...”“안돼.”유강후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화창한 봄날에 꽃 피는 언덕에서 가장 로맨틱한 결혼식을 올려주겠다고 다연이랑 약속했어.”“안 그래도 빚진 게 많은데 이런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면 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이권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벙끗했으나 끝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유강후는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 굉장히 침착하고 이성적인 성향이기에 지금처럼 큰 위험을 감수할 때가 많지 않다. 남자로서 유강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리스크가 너무 큰 모험이다.온다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래 그룹의 앞날을 걸고 있는 격이다.유강후는 정말 뼛속까지 온다연을 사랑하고 있었다.봄은 갈수록 날이 길어졌고 햇볕은 점점 더 따뜻해졌다.그러나 생기가 넘쳐야 할 봄날과 달리 한옥은 조용하기 그지없다.듣기로 여주인은 정원 중앙의 나무 밑에 의자를 두어 그
온다연이 너무 안쓰러워 덩달아 괴로움이 밀려온 유강후는 끊임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아니야. 다연이는 최고의 엄마야.”“우리 아이는 다연이를 엄청 좋아해. 그러니까 계속 꿈에 나타나잖아.”“울고 싶으면 울어. 참지 않아도 돼.”온다연은 울먹였다.“꼭 돌아오겠죠? 강후 씨, 아이는 다시 절 찾아올 거예요. 맞죠?”“그런데 꿈속에는 신발 한 켤레도 없이 맨발이었어요. 너무 불쌍해요.”꿈속의 장면이 떠오른 온다연은 가슴이 터질 듯 울부짖었다.“그곳이 너무 춥대요. 왜 데리러 안 오냐고 원망하는데...”“강후 씨, 아이가 추워하나 봐요.”“나 너무 힘들어요.”“괴로워요.”...극심한 괴로움과 고통은 몸의 경련을 일으켰다.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느새 유강후의 옷자락을 적셨다.그는 온다연의 피와 살에 녹아들듯 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돌아올 거야. 무조건 돌아오니까 걱정하지 마. 다연아, 이제 그만 아파해.”...한참 동안 울다가 지쳐버린 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흐느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안방 문을 열려 있었는데 침대는 깨끗이 치워졌고 도우미 몇 명이 바닥에 엎드려 뭔가를 찾고 있었다.그에게 안겨있던 온다연은 발버둥 치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 팔찌가 부러진 곳에 무릎을 꿇더니 나무판자 틈을 따라 조금씩 이동하며 찾았다.온다연이 움직이는 방향 따라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마침내 호박석은 바닥과 벽이 맞닿은 틈새에서 발견됐다.온다연은 그것을 손에 쥔 채 미친 사람처럼 울고 웃었다.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아예 몰랐던 도우미들은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나지 않아 푹 숙인 채 입을 닫았다.유강후는 그녀 앞에 무릎을 반쯤 꿇고 품에 안았다.“다연아, 이제 찾았으니까 좀 쉴래?”온다연은 호박석에 담긴 아이의 체온이라도 느끼려는듯 손에 꽉 쥔채 놓지 않았다.“강후 씨, 아이가 잠든 곳에 가고 싶어요.”온다연은 몸이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