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수년 동안 유강후의 곁에서 그의 냉혹한 수완을 지켜보며 살아왔다.하지만 이번만큼은 유난히 매섭고 강렬했다.김씨 집안은 동양국에서 가장 유명한 재벌 중 하나로 손꼽혔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몰락했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고 말았다.이 과정에서 소요된 막대한 자금과 수단, 그리고 상업계에 불어닥친 폭풍우 같은 소란은 평범한 이들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이번 사건은 그가 유강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그리고 또 한 가지 확실히 깨닫게 했다.앞으로는 정말로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면, 온다연을 선택하는 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사실을.온다연의 방.장화연은 따뜻한 우유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온다연이 침대 모서리에 웅크린 채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방 안의 부드러운 조명 아래, 온다연의 빨갛게 부은 눈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녀는 분명 울고 있었다.장화연은 우유를 내려놓고 그녀 옆에 조용히 앉았다.“사모님, 도련님이 보고 싶으신 거예요?”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후 씨가 왜 오늘 오지 않는 거죠? 정말 회사에서 회의 중인 걸까요?”장화연은 따뜻한 우유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악몽을 꾸셨죠? 이거 마시면 좀 나아질 거예요.”온다연은 우유를 받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후 씨 오늘 너무 심했어요. 저한테 한 달간 휴학하라고 했어요. 이유는 단지 염지훈이 제 선생님이라는 것뿐인데, 저랑 상의도 없이 제 수업을 멋대로 중단시켰어요.”“원래는 그 사람과 크게 싸우려고 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결혼도 했고, 아기까지 있으니 앞으로는 모든 일을 잘 상의하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참았어요. 그런데 강후 씨는...”온다연은 침대 시트를 움켜쥐며 낮게 속삭였다.“혹시 다른 여자가 생긴 걸까요? 강후 씨는 다를 거라고 믿었는데, 결국 다른 재벌 자제들과 다를 게 없었네요
장화연의 얼굴에는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사모님, 도련님을 믿으셔야 합니다.”그 말은 온다연의 추측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온다연의 심장은 순간적으로 꽉 조여들었고, 마치 뒤틀려버린 밧줄처럼 고통스러워 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그래서, 정말로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는 거네요.”장화연은 말했다.“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모님과 우림 도련님의 안전과도 관련이 있는 일이에요. 도련님께서는 사모님께서 걱정하실까 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셨지만, 저는 사모님께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이 점점 더 무서워질 만큼 하얗게 질려가는 것을 본 장화연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누군가 사모님의 안전을 담보로 도련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 며칠 동안 도련님은 밖에 나가 사모님처럼 보이는 사람을 일부러 꾸며냈어요. 그렇게라도 설명해 드리면 조금은 나아지실까요?”장화연은 유강후 곁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그의 모든 행적을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었다.그렇기에 그녀의 말은 묵직한 신뢰를 주었고, 때로는 유강후를 대신해 발언하는 권위도 있었다.온다연은 그런 그녀의 말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그 전화.그녀가 그렇게 오래 들었던 그 전화가 정말 거짓일 수 있을까?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강후 씨의 휴대폰을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나요?”장화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조용히 말했다.“사모님,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모든 건 도련님께서 돌아오신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워낙 복잡하니, 타인들의 이간질에 넘어가지 마세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제가 우림 도련님을 데려오겠습니다. 오늘 밤은 사모님께서 아이와 함께 주무세요.”곧 예쁜 아기가 방으로 안겨 들어왔다.아이가 들어오는 순간, 온다연은 조금이나마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느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아이의 곤히 잠든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마에 부드럽게
비밀스럽게 진행되었지만, 결국 소문은 새어 나갔고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해 질 무렵, 유강후와 진시현이 뉴월드 호텔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그 자리는 단숨에 술렁거렸다.유강후는 말할 것도 없이 경원시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빛나는 존재였다.그는 권력자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인물로, 그의 출현은 곧바로 주목을 끌었다. 연회 주최자인 주경한은 유강후를 보자마자 반갑게 달려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유 대표님,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요즘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제 연회에 참석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그가 한 발짝 더 다가서며 유강후의 옆에 서 있는 진시현에게 눈길을 돌렸다.그리고 단번에 그녀의 가슴 위에 달린 블루 사파이어 브로치를 알아차렸다.조명 아래에서, 브로치 가장자리의 Y 모양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주경한은 이 바닥에서 감각이 빠르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그는 한눈에 이것이 강씨 집안의 여주인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임을 알아차리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 이분이 바로 사모님이시군요!”그러나 유강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단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주경한은 이미 소문으로 유강후가 요즘 한 아가씨를 매우 애지중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그녀가 강씨 집안 여주인의 물건을 사용할 정도라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혹시 유 대표님, 곧 결혼이라도 하시려는 건가요?”유강후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곧 합니다.”주경한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그럼 제가 빨리 축의금을 준비해야겠네요.”그는 진시현을 보며 말을 이었다.“온다연 씨 되시죠? 대표님께서 아주 각별히 아끼신다고 들었습니다...”진시현은 유강후를 살짝 바라보았다.그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진시현입니다.”주경한은 순간 멈칫했지만, 곧 웃음을 터뜨렸다.“아, 맞다, 진시현 씨. 제가 착각했네요. 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술이 준비된 곳으로 걸음을 옮기니, 사람이 조금 뜸했다.진시현은 유강후의 팔을 조심스럽게 놓으며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우리가 이렇게 있으면 사모님께서 보시고 오해하시는 건 아닐까요?”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지금까지 잘 해왔어.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오늘 맡은 역할만 제대로 해.”그는 방금 전 험담을 늘어놓던 사람들 쪽을 아주 잠깐 바라보더니 차가운 말투로 덧붙였다.“아까 수군거리던 사람들 찍어서 이권에게 보내서 처리하게 해.”진시현은 즉시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녀가 살짝 고개를 들며 긴장된 표정을 띠었다.“김원도가 왔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다시 유강후의 팔을 친밀하게 잡고, 그의 몸에 기댔다.애교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강후 씨, 저 조금 추워요.”유강후는 손짓하자마자 누군가 부드러운 캐시미어 숄을 가져왔다.그는 직접 숄을 집어 들고 진시현의 어깨에 다정하게 걸쳐주었다.그리고 숄을 걸쳐주며 살짝 몸을 기울여, 마치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조심해. 저 근처에도 몇 명이 있어.”진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때 김원도가 다가왔다.그는 진시현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유 대표, 이분은 누구지?”유강후는 진시현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김씨 집안 사람이라면 강씨 집안의 휘장을 모를 리가 없겠지. 내 약혼녀야.”김원도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쓰다듬으며 낮게 웃었다.“유 대표는 정말 복이 많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곁에 있으니 오늘 밤에도 많은 여성분들이 마음 아파하겠어.”유강후는 김원도의 말을 무시한 채, 시선을 그에게서 돌려 방금 막 들어온 다른 남자를 바라보았다.그 남자는 김원도와 닮았지만, 그의 음험한 기운은 전혀 없었다.그는 유강후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원도에게 다가갔다.“형, 형도 여기 있었어?”김원도는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다.“김원혁, 네가 왜
어두운 골목.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었다.온다연은 골목 입구에 막 들어섰을 때 갑자기 누군가에게 잡아당겨져 어두운 구석으로 끌려 들어갔다.벽 앞에는 술 냄새를 풍기는 취한 남자 두 명이 서 있었고 그들은 온다연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그녀의 옷을 찢기 시작했다.코를 찌르는 알콜 냄새와 남자들의 거친 움직임에 온다연은 겁에 질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도와주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그들 중 한 남자는 즉시 온다연의 뺨을 세게 때렸다.“감히 소리쳐? 뭘 잘했다고 소리치는 거야!”“오늘 네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거야. 가만히 있어. 이 오빠가 기쁘게 해줄 테니까.”...이때 갑자기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골목을 가로질러 왔고 차창이 천천히 내리자 차갑고 날카로운 눈동자가 드러나 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 행위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옆에 있는 운전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나가서 말릴까요?”도련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그냥 가!”이때 온다연은 이미 옷이 찢어진 상태였고 갑자기 나타난 차량 때문에 그녀는 더욱 몸부림쳤다.“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술 취한 남자는 온다연에게 아직도 도움을 청할 힘이 남아있는 것을 보자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두 번 더 때렸다. 또한 온다연의 몸을 잡고 있는 손에도 더욱 힘을 주어 치마를 벗기려고 했다.온다연이 절망하려고 할 때 이미 시동을 걸었던 차가 갑자기 멈췄다.그리고 차 문이 열리더니 키 큰 남자 두 명이 내려왔다.앞에 선 남자는 마른 체격에 브랜드 로고가 없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차갑고 위엄이 있어 어두운 밤에도 빛나는 것 같았다.그는 구석에서 무자비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온다연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는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불빛이 너무 어두워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낮은 울음소리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남자의 기억 속 목소리와 다소 비슷했다.남자는 차갑고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매미가 울어대는 무더운 여름날이었다.소녀의 수줍은 눈빛과 땀에 젖은 옆머리가 그날 오후와 겹쳐졌다.그 모습이 지난 3년 동안 매일 밤 꿈속으로 들어와 밤마다 유강후를 뒤흔들었다.유강후는 방금 온다연의 손길이 닿은 곳이 화끈거려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이 순간 공기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러나 유강후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며 여전히 차갑고 고상한 표정으로 말했다.“들어가.”온다연은 즉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치 사면받은 사람처럼 도망치듯 떠났다. 물론 온다연은 차에 탄 유강후의 맹수 같은 약탈적인 눈빛을 보지 못했다.온다연은 유씨 가문 저택에 들어선 후에야 유씨 가문 식구들뿐만 아니라 유강후의 옛 친구들도 모두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그 도련님들은 모두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중에서도 최고였다.온다연은 전에 그들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여러 번 목격했었기 때문에 그들을 피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하지만 안주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심미진은 온다연을 놓아주지 않았다.“나 시간 없으니까 네가 이 술을 네 작은 삼촌에게 갖다줘.”온다연은 거절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방 안은 화려했고 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온다연은 가시 장미에 섞인 새하얀 장미처럼 눈길을 사로잡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온다연의 검은 머리와 붉은 입술, 매력적인 골격,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특히 하늘색 치마 밑의 하얀 피부는 사람을 유혹할 정도로 하얗게 빛났다.잠시 동안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도련님, 유씨 가문의 양딸을 몇 년 동안 보지 못했었는데 그새 잘 자랐네요.”유강후 역시 온다연이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었다.“몇 년 동안 유씨 집안에서 먹여준 건 맞지만 양딸이라고 할 순
온다연은 고개를 숙였다. 마치 사나운 짐승에게 겨냥당한 듯 숨이 막힐 것 같았다.온다연은 문에 한껏 기대어 최대한 유강후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하지만 유강후는 바로 앞에 있고 공간이 좁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유강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느꼈다.맑은 솔방울 같은 냄새에 은은한 술 냄새가 섞여 온다연의 피부에 다가왔다. 그러자 온다연은 갑자기 3년 전의 점심에도 이렇게 더웠는데 술에 취한 유강후가 방에 쳐들어와 통제를 잃고 폭력적으로 행동했던 것이 떠올랐다.그런 기억이 떠오르자 온다연은 혼란스러워서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 유강후와의 거리를 벌렸다.하지만 너무 가까운 탓에 유강후의 옆을 지나가려 할 때 온다연의 팔은 유강후의 손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닿은 곳은 살짝 화끈거리며 유강후의 기운이 남았다.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씨 가문 저택은 학교에서 너무 멀어서 기숙사에 살고 있어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온다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낮아서 유강후는 그녀를 혼내고 싶었다.게다가 이 3년 동안 거짓말하는 것도 배웠다니.하지만 유강후는 아직 온다연을 까발릴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는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내 번호 차단했어?”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번호 바꿨어요. 예전에 쓰던 휴대폰이 고장 나서 모든 번호가 사라졌거든요.”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유씨 가문 사람들 중 이모 심미진의 번호만 저장했다.“휴대폰 줘 봐.”온다연은 순순히 휴대폰을 건넸다.살짝 낡은 휴대폰이었는데 스크린은 손상된 정도가 심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자신의 휴대폰으로도 온다연의 카카오톡 QR코드를 스캔해 추가했다.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돌려주며 담담하게 말했다.“아까는...”“알아요.”온다연은 유강후의 말을 잘랐다.“그분들 다 삼촌 친구들이잖아요. 농담한 거 알아요. 괜찮아요.”온다연은 유씨 가문에 오래 머물지 않기
온다연은 온 힘을 다해 유민준을 밀어냈다.“오빠, 정신 차려요.”유민준은 표정이 변하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온다연, 순진한 척하지 마. 너랑 네 그 빌붙으려는 이모가 뭐가 달라? 지금 이렇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거절해? 그럼 설마 더 대단한 걸 바라는 거야?”온다연은 표정이 바뀌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유씨 가문이 넘볼 수 없는 대단한 집안이란 거 알아요. 당신들한테 빌붙을 생각도 없었어요.”온다연의 표정이 바뀌자 유민준은 답답한 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조금 전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나 그런 뜻 아니야. 나랑 만나면 명분 주는 것 외에 다른 건 다 줄 수 있어. 예전에 내가 지나쳤던 거 맞아. 내가 하령이 시켜서 널 괴롭혔던 것도 인정할게. 그런데 다 지난 일이잖아. 앞으로 내가 배로 잘해줄게. 다연아, 너 나 좋아하지...”유민준이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자 온다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끼어들었다.“오빠 틀렸어요. 나 오빠한테 관심 없어요.”온다연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정확히 말하면 난 유씨 가문 사람들에게 관심 없어요. 조금도 없다고요.”유강후는 그 말을 듣고 창문에 올려놨던 손을 멈칫하며 살기를 내뿜었다. 차 안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가라앉았다.유민준은 그 말에 화가 났다.“나한테 관심 없다고? 그놈 때문이야?”유민준은 주머니에서 사진 여러 장을 꺼내 온다연의 얼굴에 던지며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너 이놈 좋아하지?”사진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불빛이 어두웠지만 온다연은 사진 속 남자가 그녀의 동기 진태윤이라는 것을 보아냈다. 요즘 인턴십 때문에 온다연은 진태윤과 가까워졌는데 유민준이 그들의 사진을 찍을 줄은 몰랐다.바닥에 널브러진 사진들을 보고 온다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오빠, 유씨 가문이 대단한 건 아는데요. 제 학교 친구들은 건드리지 마요. 태윤이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 태윤이 안 좋아해요.”유민준은 손을 뻗어 온다연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내려다보
술이 준비된 곳으로 걸음을 옮기니, 사람이 조금 뜸했다.진시현은 유강후의 팔을 조심스럽게 놓으며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우리가 이렇게 있으면 사모님께서 보시고 오해하시는 건 아닐까요?”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지금까지 잘 해왔어.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오늘 맡은 역할만 제대로 해.”그는 방금 전 험담을 늘어놓던 사람들 쪽을 아주 잠깐 바라보더니 차가운 말투로 덧붙였다.“아까 수군거리던 사람들 찍어서 이권에게 보내서 처리하게 해.”진시현은 즉시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녀가 살짝 고개를 들며 긴장된 표정을 띠었다.“김원도가 왔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다시 유강후의 팔을 친밀하게 잡고, 그의 몸에 기댔다.애교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강후 씨, 저 조금 추워요.”유강후는 손짓하자마자 누군가 부드러운 캐시미어 숄을 가져왔다.그는 직접 숄을 집어 들고 진시현의 어깨에 다정하게 걸쳐주었다.그리고 숄을 걸쳐주며 살짝 몸을 기울여, 마치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조심해. 저 근처에도 몇 명이 있어.”진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때 김원도가 다가왔다.그는 진시현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유 대표, 이분은 누구지?”유강후는 진시현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김씨 집안 사람이라면 강씨 집안의 휘장을 모를 리가 없겠지. 내 약혼녀야.”김원도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쓰다듬으며 낮게 웃었다.“유 대표는 정말 복이 많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곁에 있으니 오늘 밤에도 많은 여성분들이 마음 아파하겠어.”유강후는 김원도의 말을 무시한 채, 시선을 그에게서 돌려 방금 막 들어온 다른 남자를 바라보았다.그 남자는 김원도와 닮았지만, 그의 음험한 기운은 전혀 없었다.그는 유강후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원도에게 다가갔다.“형, 형도 여기 있었어?”김원도는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다.“김원혁, 네가 왜
비밀스럽게 진행되었지만, 결국 소문은 새어 나갔고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해 질 무렵, 유강후와 진시현이 뉴월드 호텔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그 자리는 단숨에 술렁거렸다.유강후는 말할 것도 없이 경원시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빛나는 존재였다.그는 권력자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인물로, 그의 출현은 곧바로 주목을 끌었다. 연회 주최자인 주경한은 유강후를 보자마자 반갑게 달려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유 대표님,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요즘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제 연회에 참석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그가 한 발짝 더 다가서며 유강후의 옆에 서 있는 진시현에게 눈길을 돌렸다.그리고 단번에 그녀의 가슴 위에 달린 블루 사파이어 브로치를 알아차렸다.조명 아래에서, 브로치 가장자리의 Y 모양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주경한은 이 바닥에서 감각이 빠르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그는 한눈에 이것이 강씨 집안의 여주인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임을 알아차리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 이분이 바로 사모님이시군요!”그러나 유강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단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주경한은 이미 소문으로 유강후가 요즘 한 아가씨를 매우 애지중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그녀가 강씨 집안 여주인의 물건을 사용할 정도라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혹시 유 대표님, 곧 결혼이라도 하시려는 건가요?”유강후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곧 합니다.”주경한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그럼 제가 빨리 축의금을 준비해야겠네요.”그는 진시현을 보며 말을 이었다.“온다연 씨 되시죠? 대표님께서 아주 각별히 아끼신다고 들었습니다...”진시현은 유강후를 살짝 바라보았다.그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진시현입니다.”주경한은 순간 멈칫했지만, 곧 웃음을 터뜨렸다.“아, 맞다, 진시현 씨. 제가 착각했네요. 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장화연의 얼굴에는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사모님, 도련님을 믿으셔야 합니다.”그 말은 온다연의 추측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온다연의 심장은 순간적으로 꽉 조여들었고, 마치 뒤틀려버린 밧줄처럼 고통스러워 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그래서, 정말로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는 거네요.”장화연은 말했다.“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모님과 우림 도련님의 안전과도 관련이 있는 일이에요. 도련님께서는 사모님께서 걱정하실까 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셨지만, 저는 사모님께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이 점점 더 무서워질 만큼 하얗게 질려가는 것을 본 장화연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누군가 사모님의 안전을 담보로 도련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 며칠 동안 도련님은 밖에 나가 사모님처럼 보이는 사람을 일부러 꾸며냈어요. 그렇게라도 설명해 드리면 조금은 나아지실까요?”장화연은 유강후 곁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그의 모든 행적을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었다.그렇기에 그녀의 말은 묵직한 신뢰를 주었고, 때로는 유강후를 대신해 발언하는 권위도 있었다.온다연은 그런 그녀의 말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그 전화.그녀가 그렇게 오래 들었던 그 전화가 정말 거짓일 수 있을까?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강후 씨의 휴대폰을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나요?”장화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조용히 말했다.“사모님,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모든 건 도련님께서 돌아오신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워낙 복잡하니, 타인들의 이간질에 넘어가지 마세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제가 우림 도련님을 데려오겠습니다. 오늘 밤은 사모님께서 아이와 함께 주무세요.”곧 예쁜 아기가 방으로 안겨 들어왔다.아이가 들어오는 순간, 온다연은 조금이나마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느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아이의 곤히 잠든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마에 부드럽게
그는 수년 동안 유강후의 곁에서 그의 냉혹한 수완을 지켜보며 살아왔다.하지만 이번만큼은 유난히 매섭고 강렬했다.김씨 집안은 동양국에서 가장 유명한 재벌 중 하나로 손꼽혔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몰락했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고 말았다.이 과정에서 소요된 막대한 자금과 수단, 그리고 상업계에 불어닥친 폭풍우 같은 소란은 평범한 이들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이번 사건은 그가 유강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그리고 또 한 가지 확실히 깨닫게 했다.앞으로는 정말로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면, 온다연을 선택하는 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사실을.온다연의 방.장화연은 따뜻한 우유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온다연이 침대 모서리에 웅크린 채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방 안의 부드러운 조명 아래, 온다연의 빨갛게 부은 눈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녀는 분명 울고 있었다.장화연은 우유를 내려놓고 그녀 옆에 조용히 앉았다.“사모님, 도련님이 보고 싶으신 거예요?”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후 씨가 왜 오늘 오지 않는 거죠? 정말 회사에서 회의 중인 걸까요?”장화연은 따뜻한 우유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악몽을 꾸셨죠? 이거 마시면 좀 나아질 거예요.”온다연은 우유를 받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후 씨 오늘 너무 심했어요. 저한테 한 달간 휴학하라고 했어요. 이유는 단지 염지훈이 제 선생님이라는 것뿐인데, 저랑 상의도 없이 제 수업을 멋대로 중단시켰어요.”“원래는 그 사람과 크게 싸우려고 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결혼도 했고, 아기까지 있으니 앞으로는 모든 일을 잘 상의하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참았어요. 그런데 강후 씨는...”온다연은 침대 시트를 움켜쥐며 낮게 속삭였다.“혹시 다른 여자가 생긴 걸까요? 강후 씨는 다를 거라고 믿었는데, 결국 다른 재벌 자제들과 다를 게 없었네요
유강후는 온다연이 악몽에 시달린 줄 알고 가슴 아파하며 물었다.“다연아, 악몽 꿨어?”온다연은 가볍게 답하고선 말을 이었다.“다른 여자랑 같이 있는 꿈을 꿨어요.”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던 유강후는 온다연의 목소리를 듣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다른 여자랑 있을까 봐 걱정됐어? 꿈에서도 내 생각뿐이네?”온다연이 물었다.“어디에 있는지 왜 대답 안 해요?”“회사에서 미팅 중이었어. 아마 이틀 동안 바빠서 못 갈 거야. 아이랑 같이 잘 지낼...”“강후 씨.”온다연은 그의 말을 끊었고 곧바로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거짓말하고 있잖아요. 옆에 다른 여자 있죠?”유강후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온다연의 흐느끼는 목소리에서는 그녀의 기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아까 전화했을 때 다 들었어요. 다른 여자랑...”온다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유강후는 그녀가 또 악몽을 꾼 줄 알고 걱정된 마음으로 장화연에게 전화를 걸었다.곧이어 핸드폰 너머로 장화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유강후는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지금 당장 다연이가 있는 방으로 가봐. 방금 통화했는데 악몽을 꿨는지 울고 있었어.”장화연이 답했다.“지금 바로 가볼게요.”“일이 복잡해져서 당분간은 못갈지도 몰라. 다연이랑 우림이 잘 돌봐줘. 절대 밖에 나가게 해서는 안 돼.”“알겠습니다.”“차라리 우림이를 옆에 데려다줘. 아이랑 같이 자면 마음이 편해질 거야.”“그럴게요.”장화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어제 경호원을 통해서 들었는데 다연 씨가 나은별 씨를 만났다고 합니다. 아마 그때 안 좋은 얘기를 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다연 씨는 힘든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분입니다. 도련님께 대한 오해가 생겼다면 그 마음을 달래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모릅니다. 두 분 어렵게 여기까지 온 만큼 서로에게 그 어떤 오해도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도련님, 나은별 씨가 무슨
부검 결과 여자는 죽기 직전에 성폭행을 당했고 체내에서 5개의 DNA가 검출되었다.대역은 온다연처럼 보이기 위해 평소 그녀가 입는 것과 똑같은 옷을 입었다.유강후는 온다연과 매우 닮은 그 얼굴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멘탈이 무너졌다.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는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공포과 패닉을 느꼈다.만약 죽은 사람이 정말 온다연이라면 유강후는 자신이 어떤 미친 행동을 저지를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전례 없는 살인 충동이 밀려왔고 그는 김원도와 김씨 가문의 뼈까지 가루로 만들리라 다짐했다.위험하고 불안함 밤이 시작되었다. 수십 대의 헬기와 수많은 경찰이 동시에 파견되어 한옥 주변의 모든 곳을 샅샅이 수사했다.하지만 효과는 미미했고 전문 킬러라서 그런지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유강후는 한옥에 들어온 이후로 밖에 나가지 않았다.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 그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내왔다.사진에 찍힌 사람은 그와 진시현인데 얼굴 정면이 아주 선명하게 찍혔다.실리콘 가면을 쓴 진시현의 얼굴은 온다연과 똑같았다.이건 과시가 아니라 경고다.말할 것도 없이 유강후는 단번에 사진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아챘다.김원도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으니 사진 속의 여자를 잘 지키라고 선포하는 거나 다름없다.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 유강후는 외투를 옆으로 던져놓고 다시 소파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이권은 진시현에게 차 한 잔 타오라고 시켰다.“도련님,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다연 씨는 안전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그쪽으로 이동하는 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그는 홍차를 유강후에게 건넸다.“며칠 동안은 외출을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통화도 줄이시고요. 현재로서는 모두가 안전하는게 가장 중요합니다.”이권의 말이 매우 일리가 있고 사실이지만 유강후는 귀에 거슬렸다.한편으로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기도 했다. 김원도 한 명으로도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똑같은 인간이 여러 명이 나타났다면 온다연을 지켜줄 수 있을까?걱정은 자
온다연과 매우 흡사해 보이는 여자가 그들에게 공순하게 인사하며 말을 건넸다.“대표님, 방금 전화가 여러 통 왔는데 이 비서님이랑 안에서 회의 중이셔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유강후는 곧바로 핸드폰을 확인했고 그곳에는 온다연이 걸어온 부재중전화가 찍혀있었다.한 시간 전에 걸려 온 전화였다.유강후는 시간을 확인했고 지금은 새벽 3시 45분이다.이때 이권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다연 씨가 도련님이 보고 싶은가 봐요.”줄곧 정색하던 유강후는 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렸고 곧바로 온다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핸드폰은 꺼져있었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옷걸이에서 코트를 빼내더니 곧장 밖으로 걸어갔다.이때 이권이 말렸다.“도련님, 안 됩니다. 저희를 지켜보는 시선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지 않습니까. 다연 씨 쪽은 안전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 집사도 옆을 지키고 있으니 안심하세요.”“우림 도련님도 그쪽으로 보냈습니다. 도련님이 옆에 계시니 다연 씨의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을 겁니다.”유강후는 입술을 깨물었고 눈빛에 드러난 분노와 원망은 점점 더 짙어졌다.‘김원도, 내 손으로 널 죽여버릴 거야.’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도 유강후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고 결코 발을 빼거나 물러선 적이 없었다.그런데 이제는 김원도 때문에 피하는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아내와 아이의 목숨으로 위협하고 있으니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죽여버릴 거야.’물론 김원도도 좋은 날만 보낸 건 아니다.불과 한 달 만에 미래그룹은 김씨 가문의 시장 점유율 70%를 먹어 치웠고 김신 그룹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인지도가 조금이라도 있는 기업이라면 미래 그룹과 김신 그룹이 대치 상황이라는 걸 눈치챘기에 아무도 섣불리 김신 그룹의 손을 잡지 않았다.김신 그룹의 주가는 한순간에 폭락하였고 보름도 채 안 되어 시가총액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그뿐만 아니라 동양국의 다른 가문에서는 김씨 가문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더불어 김원도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혼외 자식이 두
두 경호원은 온다연의 신분을 알고 있었고 더욱이 그녀가 유강후의 목숨과도 다름없다는 사람인 걸 알기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사모님.”집에 돌아와 보니 장화연도 있었다.게다가 아이를 데리고 함께 이곳으로 왔다.온다연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최근에 공부하느라 바쁜 데다가 저녁에는 유강후와 함께 시간을 보냈으니 며칠 동안 아이에게 다가갈 틈이 없었다.온다연은 유강후가 왜 그녀와 아이를 이곳에 데려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장화연은 한옥의 인테리어를 바꾸려고 하는데 페인트 냄새가 아이한테 안 좋을 것 같아 이곳에 잠깐 머무는 거라고 설명해 줬다.비록 의심이 들었지만 별생각은 하지 않았다.사실 아이가 옆에 있다면 어디에서 지내던 그녀에게는 똑같았다.온다연은 아이가 잠들 때까지 놀아줬고 늦은 시간이 되었지만 유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한편으로는 유강후가 제멋대로 휴학 신청을 한 게 너무 화가 났다.염지훈이 교수로 온 게 온다연의 잘못도 아닌데 왜 갑자기 수업을 못 듣게 하냐는 말이다.생각하면 할수록 터무니없고 불합리한 결정이다.그러다가 잠이 든 온다연은 잠결에 옆을 만졌고 텅 비어 있는 느낌에 공허함이 밀려와 괴로웠다.온다연은 핸드폰을 꺼내 유강후와의 카톡 대화창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진지하게 얘기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고민 끝에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여러 번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네 번째 시도를 했을 땐 통화가 연결됐으나 들려오는 건 여자의 목소리였다.온다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환청이 들리는 건가 싶어 귀를 의심했다.“누구세요?”그러자 전화가 바로 끊겼다.온다연은 굴하지 않고 다시 걸었지만 유강후는 받지 않았다.숨이 막혀온 온다연은 잘못 들은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다시 한번 걸었을 때 통화가 연결됐고 이상한 기계음이 흘렀다.그러고선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선명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희미한 남자의 목소리는 유강후가 틀림없다.그들이 나눴던 사랑처럼 핸드폰 너머로는 서로에게 엉켜있는
온다연은 나은별의 손을 뿌리치고 뒤돌아 그녀의 얼굴을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다면 기뻐해야 하지 않나요? 왜 은별 씨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죠?”온다연은 유강후가 설명해 줬던 당시의 상황과 더불어 문득 이상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평소 안전하기로 소문난 바다였는데 왜 갑자기 상어가 나타나 인간을 공격했을까?온다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나은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 사람이 살아있는 걸 원하지 않나 봐요? 아니면 그 죽음이 은별 씨와 연관이 있는 건가?”사실 모든 건 온다연의 추측에 불과했는데 나은별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이더니 손을 들어 그녀를 때리려고 했다.온다연은 단번에 팔을 뻗어 나은별의 손목을 잡았고 동시에 따귀를 날렸다.뺨 때리는 소리가 울리자 룸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나은별은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로 사악한 눈빛을 드러냈다.“재민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어떻게 그 죽음이 저랑 연결됐다고 얘기할 수가 있죠? 심보가 고약하니까 이런 터무니없는 추측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예요. 마음 좀 곱게 먹으세요.”온다연은 피식 보고선 태연하게 말했다.“사랑하는 사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면 그 타이밍에 강후 씨와 결혼하려고 발악했을까요?”“처음부터 은별 씨는 한재민을 좋아한 게 아니잖아요. 단지 뱃속에 있는 아이한테 그럴듯한 아빠를 찾아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온다연은 말하면서 무심코 소이섭을 쳐다봤다.그런데 뜻밖에도 소이섭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온다연, 또 헛소리하면 내가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소이섭이 화를 내며 온다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다행히 경호원이 다가와 소이섭의 손목을 잡으며 경고했다.“미리 충고드리는데 그쪽은 저한테 상대가 안 됩니다. 정말 사모님을 때리실 겁니까?”유강후의 경호원은 하나같이 특전사에 버금갔기에 소이섭은 본인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할 수 없이 그저 온다연을 째려보며 말했다.“은별이는 지금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