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준휘는 실망과 혐오가 가득한 눈빛으로 문밖에 온준용을 바라봤다.그러고선 다시 고개를 돌려 말을 이었다.“저 인간한테는 아무런 희망이 없어요. 비록 내 아빠인 건 맞지만 저런 쓰레기는 진작에 죽어야 하는데...”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는 눈앞의 이 남자아이가 이런 험한 말을 하는 게 너무 의외였다.그러나 내연녀가 임신한 채로 집안을 당당하게 돌아다닌 걸 생각하면 온준휘에게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네 엄마는?”온준휘는 씁쓸함을 드러내며 나지막하게 답했다.“모르겠어요. 아마 죽었겠죠? 몇 년 전에 저 인간이 빚에 시달리면서 엄마를 다른 사람한테 팔았거든요.”“원래는 저도 같이 팔려 갈 운명이었는데 병 때문에 몸이 안 좋아서 사려는 사람이 없었어요. 덕분에 목숨을 건진 거죠.”온다연은 분노를 억제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짐승만도 못한 놈.’유부남과 바람피운 여자도 좋은 사람인 건 아니지만 온준용은 정말 인간 말종이다.내연녀는 벌을 받았다 쳐도 어떻게 친아들인 온준휘까지 괴롭힐 수 있냐는 말이다.도박 빚을 갚으려고 아들을 팔아넘기는 파렴치한 인간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온준휘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절대 한 푼도 주지 마세요. 얼마가 됐든 무조건 그 돈으로 도박해서 더 큰 빚을 지게 될 거예요.”그는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우리 엄마가 누나 엄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대충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를 동생으로 생각해 달라거나 도와달라고 부탁할 마음은 없어요. 다만 엄마가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는 언젠가 꼭 사과하고 싶었어요.”그 말을 끝으로 온준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온다연에게 허리 숙여 사과했다.예상치 못한 행동과 말에 온다연은 기분이 착잡했다.그녀의 시선은 온준휘의 손에 닿았다. 애써 옷으로 감춘 상처가 얼핏 보였고 가냘픈 손목은 여기저기 긁혀 말이 아니었다.온다연은 그의 손을 잡고 소매를 위로 쓸어올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팔뚝 전체에 보기
눈앞의 남자가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사람을 압도할 만큼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니 온준용도 본능적으로 꼬리를 낮췄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험한 말을 내뱉었다.“온다연, 이제 돈 좀 생겼다고 아빠는 안중에도 없는 거야? 너도 참 효녀다.”“아빠랑 동생은 힘들게 살고 있는 게 너는 어쩜 이렇게 뻔뻔하니?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온다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염지훈이 말을 가로챘다.“유강후가 지금 사람 보내서 널 찾고 있대. 이 일을 알리고 싶지 않으면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넌 얼른 돌아가서 수업해.”온다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온준용을 힐끗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절대 한 푼도 주지마요. 그리고 이런 인간을 혼내주려고 손을 쓰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니까 대충 마무리만 부탁할게요.”염지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웃으며 말했다.“지금 걱정해 주는 거야? 내가 그런 것도 모르는 멍청한 사람으로 보여? 걱정하지 말고 얼른 수업하러 가.”온다연은 말을 덧붙였다.“저 아이는 건드리지 마세요.”염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답했다.“빨리 가. 곧 있으면 유강후가 찾아올 거야.”온다연은 그제야 걸음을 옮겼다.아니나 다를까 온다연이 떠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유강후의 경호원이 땀에 젖은 얼굴로 그녀에게 달려왔다.“사모님, 왜 수업 들으러 안 가셨어요?”온다연은 손에 든 커피를 흔들며 답했다.“커피 사려고 잠깐 밖에 나왔어요. 왜요?”그제야 경호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한테 연락 좀 해주세요. 한 시간 내내 연락이 안 돼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납치된 줄 알고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그들이 말하고 있을 때 위로 헬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어보니 대형 헬기 한 대가 화양대 활주로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헬기 뒤쪽에는 강씨 가문의 금빛 배지가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났다.유강후가 온 게 틀림없다.온다연은 그제야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무리 터치해도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주머니에서 잘못 눌려 핸드폰이 완전
염지훈은 소리를 지르고 있는 온준용을 바닥에 내리치며 불쾌함을 드러냈다.“짜증 나. 시끄러워 죽겠네. 일단 입부터 찢어.”그러자 여럿이 우르르 몰려들었다.한바탕 주먹다짐이 벌어졌고 온준용의 목소리는 점차 조용해졌다.이 정도면 괜찮겠다싶었던 염지훈은 그만하라고 눈치를 줬다.“됐어, 때려죽이지는 마.”그의 명령에 사람들은 하나둘씩 손을 뗐다.온준용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숨을 헐떡였다.“너... 너 누구야? 유강후가 보낸 사람이 아니지?”염지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고작 그런 인간이 날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너 이거 납치야. 불법이라고.”염지훈은 한 걸음 한 걸음 온준용에게 다가가더니 지그시 그의 손을 밟았다.“불법? 너 같은 인간의 입에서 불법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게 참 신기하네.”“악.”온준용은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아파. 이거 놔.”“아파?”염지훈은 더욱 세게 짓밟았다.“고작 이걸로 아프다고? 예전에 온다연을 때릴 땐 이런 생각을 못 했나 봐? 다연이가 얼마나 아플지 생각해 봤어?”온준용은 겁을 질린 채로 발악했다.“온다연이 계획한 일이야? 자기 엄마대신 복수하려고 날 죽이려는 거네.”‘온다연 엄마?’염지훈은 다른 발로 온준용을 짓밟으며 생각에 잠겼다.“너 같은 구제 불능 쓰레기는 이렇게 쉽게 죽으면 안 되지.”그는 넥타이를 잡아당기더니 곧이어 재킷을 벗었다.“며칠 동안 교수 노릇하며 성질 좀 죽였더니 손이 근질근질하네. 역시 나는 이런 일이 제일 짜릿해.”염지훈은 벗은 재킷을 옆으로 던지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온준용에게 주먹을 날렸다.이런 경우가 처음이었던 온준용은 주먹 한 방에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그러자 옆에 있던 부하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말렸다.“도련님, 살살하세요. 괜히 여기서 죽으면 일이 복잡해집니다.”염지훈은 발로 온준용의 가슴을 짓밟으며 명령했다.“죽지 않을 정도로만 때려. 이대로 죽어버리면 내가 많이 아쉽지.”한차례의 주먹질과 발
학교에 도착한 온다연은 부랴부랴 활주로 입구로 달려갔고 마침내 헬기가 굉음을 내며 착륙했다.곧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서둘러 내려왔다.제일 선두에 선 사람은 바로 유강후다.헬기를 탈 때 얼마나 조급했는지 유강후는 외투조차 챙겨입지 않았고 오늘 아침 온다연이 골라준 검은 셔츠 한 장만 입은 채 걸어왔다.유강후는 입구에 서 있는 온다연의 작은 그림자를 보고서야 긴장하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그는 걸음을 멈추고 말없이 뚫어져라 온다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유강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사실 그는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온다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경호원의 연락을 받았다.본능적으로 킬러의 표적이 됐다는 생각에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손에 든 계약서를 집어 던지고 무작정 학교로 달려오며 온다연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단 한 번도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연락 두절된 일분일초가 유강후에게는 고통이었다.온다연이 겁을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강후는 그녀가 지하 암살 조직의 타깃이 됐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모른다고 해서 위험이 곁에 없는 건 아니다.게다가 최근에 로운은 임무를 받은 킬러 몇 명이 경원에 도착했다고 전했다.비록 그 중 세명은 로운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되었지만 남은 두 명에 대해서는 아는 정보가 없다.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온다연이 연락두절됐다.헬기에서 유강후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아무도 모른다.유강후의 걱정을 알 리가 없었던 온다연은 활주로 입구에 서서 순진한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유강후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온다연을 혼내고 싶었다.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온다연은 재빨리 달려가 그의 팔을 껴안았다.“갑자기 왜 왔어요?”유강후의 표정은 더없이 어두웠다.“핸드폰은 왜 꺼놨어?”그 질문을 들으니 온다연은 그가 연락되지 않아 화가 났다는 걸 알아챘다.설령 그렇다 한들 헬기까지 동원해서 찾으러 오는 건 솔직히 오바다.
유강후는 차갑고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염지훈이 교수로 나타나서 네 곁을 맴도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아? 걔는 처음부터 좋은 의도가 없었어.”온다연은 안색이 변했다.“그 사람은 원래 두 학교의 교수님이었어요.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유강후는 여전히 싸늘했다.“내가 한번 결정한 일에 대해 절대 번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가자.”말을 마친 그는 온다연이 보는 앞에서 지도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휴학을 신청했다.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뒤돌아 뛰쳐나갔다.유강후는 도망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명령했다.“따라가서 집으로 데려가.”“알겠습니다. 대표님.”이때 이권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도련님, 사실대로 다연 씨에게 말하는 건 어떨까요?”유강후의 눈에 어둠이 번쩍였고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안돼. 이다 하루코의 일이 다연이에게 얼마나 큰 심리적 영향을 끼쳤는지 알지? 마음을 다잡고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푼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이제 막 밝아지기 시작했는데 그걸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착잡함이 드러났다.“권아, 넌 옆에서 지켜봤으니까 잘 알잖아. 다연이가 마음을 여는데 1년이 걸렸어.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사실대로 얘기하겠니.”이권이 말했다.“하지만 이럴수록 도련님에 대한 오해가 깊어질 겁니다.”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옆에서 많이 달래주면 돼. 모든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되면 솔직하게 얘기할 거야.”이권은 한숨을 내쉬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이때 유강후의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로운이었다.“대표님, 킬러 두 명이 더 나타났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던 두 사람과 합류했습니다.”“사모님과 진시현 씨가 있는 한옥을 노리고 있습니다. 워낙 치밀한 녀석들이라 위치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다만 한옥에 있는 사람을 노리는건 확실합니다.”“아무래도 사모님의 정체가 노출된 것 같습니다.”진시현은 온다연과 매우 닮은 이권의
엘리베이터 입구에 도착한 온다연은 문이 열리기도 전에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마주치게 되었다.나은별과 소이섭이 입구에 함께 나타난 것이다.나은별은 방금 운 것처럼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소이섭은 그녀의 어깨를 감싼 안은 채 안쓰러운 표정으로 위로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온다연을 본 순간 얼어붙었다.온다연도 이런 곳에서 그들과 마주친 게 뜻밖이었지만 엮이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마침 엘리베이터가 내려왔고 온다연이 들어가려고 하자 누군가 문을 막았다.고개를 들어보니 소이섭이 밖에서 엘리베이터의 문을 막고 있었다.그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온다연을 훑어봤다.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온다연은 진작에 산산조각 났을 정도다.그는 이를 악물며 입을 열었다.“다연 씨, 잠깐 얘기 좀 할까?”온다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경호원이 말을 가로챘다.“저희 사모님은 당신들과 할 얘기가 없습니다.”“사모님?”나은별은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발끈하더니 안색이 돌변했다.“이 여자가 언제부터 사모님이 됐죠?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지 않나?”사사건건 설명하기 귀찮았던 온다연은 손을 내저으며 반박하려던 경호원을 막았다.그녀는 무덤덤한 눈빛으로 소이섭을 바라봤다.“하고 싶은 말이 뭐죠?”온다연의 말투에서는 더 이상 소심함이 느껴지지 않았고 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자신감과 당당함이 가득 담겨있었다.소이섭은 저도 모르게 온다연을 훑어봤다.심플한 다크 블루 원피스는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더욱 강조했고 메이크업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했다.높게 묶은 포니테일은 발랄하고 청순한 느낌을 주었다.가장 중요한 건 온다연의 분위기가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잔뜩 주눅이 든 채로 눈치만 살피던 온다연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 여리여리한 겉모습은 전과 다를 바가 없지만 눈빛에서 풍기는 결단력과 차분함은 유강후과 비슷했다.온다연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차분하
나은별은 표정이 굳었다.“그게 무슨 뜻이죠?”온다연은 손에 낀 반지를 보여주며 말했다.“결혼하면 경제적인 부분은 제가 직접 관리할 거예요. 전 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라 거머리가 평생 내 남자의 피를 빨아먹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거든요. 그러니까 시원하게 원하는 금액 불러요.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면 얼마든지 들어줄게요. 물론 터무니없는 제안을 한다면 무시하겠습니다.”“온다연!”이때 화가 난 소이섭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온다연에게 손가락질했다.“네가 뭔데 이렇게 당당해? 은별이랑 강후 사이를 네가 갈라놓을 수 있을 것 같아? 강후는 얘한테 빚을 졌어. 평생 갚아도 모자랄 목숨 빚이라고.”온다연은 피식 웃고선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왜 이렇게 은별 씨를 감싸는 거죠? 설마 좋아해요? 그런데 이걸 어쩌나. 소씨 가문은 재력이든 권력이든 내세울 만한 게 없잖아요. 유씨 가문과 한씨 가문의 동의를 얻기 전에 은별 씨한테 바로 차이겠는데요? 그러니까 일찌감치 단념해요.”소이섭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온다연, 강후가 옆에 있으니까 이제는 눈에 뵈는 게 없나 봐? 언제까지 이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아? 고작 너 때문에 강후가 형이랑 연을 끊었어. 어르신이 지금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한 건 알고 있지? 유씨 가문에서 널 며느리로 받아들일 것 같아?”그는 온다연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너만 아니었으면 은별이는 진작에 강후랑 결혼했어. 두 사람이야말로 천생연분이라고.”온다연은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다.“그래요? 그동안 여자에 눈이 먼 사람을 많이 봐왔는데 이섭 씨 같은 분은 처음이네요. 본인의 신세가 초라하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소이섭은 분을 못 이겨 온다연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그런데 이때 옆에 있던 나은별이 그를 막아섰다.“그만해요. 여기 CCTV 있어요.”온다연이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은별 씨, 날로 발전하네요. CCTV 때문에 한 번 당해봐서 그런지 나름 똑똑해졌
온다연은 나은별의 손을 뿌리치고 뒤돌아 그녀의 얼굴을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다면 기뻐해야 하지 않나요? 왜 은별 씨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죠?”온다연은 유강후가 설명해 줬던 당시의 상황과 더불어 문득 이상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평소 안전하기로 소문난 바다였는데 왜 갑자기 상어가 나타나 인간을 공격했을까?온다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나은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 사람이 살아있는 걸 원하지 않나 봐요? 아니면 그 죽음이 은별 씨와 연관이 있는 건가?”사실 모든 건 온다연의 추측에 불과했는데 나은별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이더니 손을 들어 그녀를 때리려고 했다.온다연은 단번에 팔을 뻗어 나은별의 손목을 잡았고 동시에 따귀를 날렸다.뺨 때리는 소리가 울리자 룸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나은별은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로 사악한 눈빛을 드러냈다.“재민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어떻게 그 죽음이 저랑 연결됐다고 얘기할 수가 있죠? 심보가 고약하니까 이런 터무니없는 추측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예요. 마음 좀 곱게 먹으세요.”온다연은 피식 보고선 태연하게 말했다.“사랑하는 사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면 그 타이밍에 강후 씨와 결혼하려고 발악했을까요?”“처음부터 은별 씨는 한재민을 좋아한 게 아니잖아요. 단지 뱃속에 있는 아이한테 그럴듯한 아빠를 찾아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온다연은 말하면서 무심코 소이섭을 쳐다봤다.그런데 뜻밖에도 소이섭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온다연, 또 헛소리하면 내가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소이섭이 화를 내며 온다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다행히 경호원이 다가와 소이섭의 손목을 잡으며 경고했다.“미리 충고드리는데 그쪽은 저한테 상대가 안 됩니다. 정말 사모님을 때리실 겁니까?”유강후의 경호원은 하나같이 특전사에 버금갔기에 소이섭은 본인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할 수 없이 그저 온다연을 째려보며 말했다.“은별이는 지금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
김원도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여기는 경원시야!”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게 뭐 어때서? 다시 나를 건드리면, 경원시에서도 너를 죽일 수 있을 거야!”말을 마친 그는 총을 던지고는 돌아서서 차에 올랐다.차가 장원을 떠날 때까지 김원도는 여전히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송지원은 냉정하게 말했다.“김원도 씨, 내가 당신이라면 당장 경원시를 떠날 겁니다. 여기는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떠나는 유강후의 차를 예리하게 응시하던 김원도의 눈빛은 더욱더 악의에 차올랐다.송지원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로운에게 말했다.“이 사람들 다 처치해, 서둘러!”한 시간 전, 고위층은 긴급회의를 열었다.그들은 미래 그룹이 비상 무기를 사용하고, 저격수들을 동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비록 큰 사건은 아니었지만, 바로 경원시에서 벌어진 일이라 그들은 강경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조사 결과, 상부에서는 엄중히 경고했고 만약 30분 안에 모든 일이 정리되지 않으면 무력 진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그때에는 누구도, 설령 신선이라 해도 유강후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이 소식을 접해듣고 송지원은 급히 달려왔다.그는 유강후가 경원시에서 무력을 사용할 정도로 미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제시간에 도착했으니 다행이지, 만약 10분만 늦었어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헬리콥터들이 점차 멀어져 가자, 송지원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새벽 2시, 서교 파출소 안에서 유강후는 진술서를 마친 뒤,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이번 일은 너무 큰 소란을 일으켜 상위층에까지 긴급 연락이 갔고, 필요한 절차들을 다 밟아야 했다.하지만 이 일을 벌이기 전, 그는 그 후폭풍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그의 개인 변호사, 미래 그룹의 수석 법무팀장인 허윤재는 이미 그에게 이번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며칠간 이곳에 머물러야 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그때, 큰 파도가 몰려오며 유람선이 흔들리더니 갑판 위의 여자와 아이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김원도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달려가려 했지만, 누군가가 그를 가로막았다.그의 눈빛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그는 냉혹하게 말했다.“유강후, 네 여자가 죽는 게 두렵지 않냐?”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알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가더니, 바로 뒤에 있는 기둥에 박혔다.그와 함께 김원도의 머리카락 일부가 잘리며 떨어졌다.하지만 김원도는 그저 미동도 없이, 여유를 부리며 웃었다.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유강후, 이 정도로 나를 겁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렇게 한다고 내가 두려워할 것 같아?”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이럴수록 네가 도대체 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어. 영상 속의 모자로 나를 협박할 수 있다고 생각해? 어림없는 소리!”“나한테 아들이 하나뿐인 줄 알아? 그 애가 죽을 운명이면, 죽게 두면 되는 거지!”“유강후, 넌 여자 몇 명을 만나고 있어?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여자가 누구야?”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며, 서늘한 표정으로 유강후를 노려보았다.“맞춰볼까? 가장 사랑하는 여자, 온다연 맞지?”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죽일 듯 노려보며 손을 천천히 들었다. 순간, 검은 총구가 김원도를 겨누었다.김원도는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쏴, 내가 겁낼 줄 알아? 이곳은 경원시야. 법도가 있는 곳이지. 네 아버지가 아무리 대단해도 널 지킬 수 없어!”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아무 대답 없이, 손가락을 천천히 방아쇠에 올렸다.김원도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어졌고, 그 순간 검은색 한 대가 급히 달려왔다.순간, 송지원이 차에서 뛰어내렸다.그는 달려와서 유강후의 팔을 붙잡았다.“유강후, 너 미쳤어?”유강후는 여전히 김원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로운, 네가 이 녀석을 부른 건가?”송지원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백 명이 넘
“로운! 당장 저격수를 배치하고, 김원도의 은신처를 알아내!”로운은 유강후의 손을 잡아 제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아직 때가 아닙니다. 성급하게 움직이면 그동안 쌓아온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자는 이제 막다른 길에 몰렸습니다. 한 달, 길어야 한 달이면 끝장날 겁니다.”유강후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불끈 튀어나오며, 차갑게 일갈했다.“닥쳐! 이해 못 했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로운은 그의 분노에 기세가 눌려 고개를 숙이고, 마지못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밤 12시, 수십 대의 대형 헬리콥터가 외곽의 한 산속 저택을 향해 돌진했다.개조된 수백 대의 허머 차량은 전투 차량처럼 산길의 아스팔트를 짓밟으며 저택 앞에 도착했다.저택은 희미한 불빛만 비추고 있었고, 헬리콥터들은 저공에서 낮게 맴돌며 마치 죽음의 전조처럼 낮은 굉음을 울렸다.아무도 문을 열러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곧 단단했던 철문은 허머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고, 전투 장비를 갖춘 저격수 수백 명이 중무장을 한 채 저택 안으로 돌진했다.차량과 사람들은 동양국 건축 양식의 저택을 완전히 포위하며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남기지 않았다.중앙에 멈춘 검은색 차량의 문이 열리고, 유강후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검은 롱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차량과 한 몸이 된 듯 보였다.산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휘날렸고 저택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 아래, 그의 눈에 스친 날카로운 살기가 바람에 흩어졌다.입구에 선 집사는 이런 압도적인 기세를 본 적이 없는지 다리가 풀려 주저앉더니 그대로 바닥에 엎드렸다.저택의 정문은 반쯤 열린 상태였지만 내부 상황은 알 수 없었다.유강후가 말문을 열기도 전에 로운이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곧이어 무겁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정문이 강제로 부서졌고,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다급히 걸어 나왔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잠옷 차림의 김원도였다.그는 유강후를 보자마자 눈을
“위층 화장실이 또 막혔다니! 후속 처리가 너무 엉망 아니야?”“그러니까, 요 며칠 내내 아래층까지 내려가야 하니 정말 불편하네.”...두 사람이 자리를 뜬 후에야 온다연은 천천히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유강후가 위층에 있는 걸까?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복도 모퉁이에 다다르자, 온다연은 로운이 한 여자를 부축하며 수술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곧바로 유강후가 그 여자의 붕대를 감은 손을 잡고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거리가 멀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 스친 걱정과 안타까움은 너무나 선명했다.방금까지 마비된 듯했던 마음이 다시금 고통스럽게 저려왔다. 온다연은 숨을 참으며 허리를 숙여 자신의 배를 눌러야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이번에는 그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이 여자가 바로 진시현인가?’그녀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자신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러니 장화연이 ‘대체품' 어쩌고 운운했던 것이다.하지만 실은 자신이 그 대체품이었다. 진시현이야말로 그의 진짜 연인이었다.온다연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 돌아서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그녀는 두려웠다. 더 보면 자신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달려들어 그를 추궁할까 봐. 그렇게 되면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질 테고, 서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될 거다.그리고 만약 그가 진시현을 위해 아이마저 외면한다면, 아이의 병은 언제 나을지 기약도 없을 것이다.의사가 아까 말했었다.“폐렴 치료는 짧아야 열흘에서 보름, 길면 한두 달은 걸립니다.”온다연은 속으로 다짐했다.‘참자, 아이가 안전해질 때까지만...’온다연이 돌아서는 순간, 로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됐습니다. 연기 그만하셔도 됩니다. 저쪽은 철수했습니다.”유강후는 다른 출구 쪽 문을 바라보며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지시했다.“사람을 붙여. 당분간은 모르는 척해.”로운이 즉시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아래층.온다연은 마치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중환자
온다연은 영상 속 장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그러다 또 다른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무겁게 고개를 들어 옆에 서 있던 장화연을 바라보았다.장화연은 벽에 기대어 있었고,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말없이 서 있었다.온다연은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다가가 추궁하고 싶었다.‘대체 강후 씨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걸 숨겨왔어요?’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말았다.장화연은 유강후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소리쳐봤자 장화연은 끝까지 그를 감싸기만 할 것이다.온다연은 알고 있었다.만약 장화연이 정말 자신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은 진실을 털어놓기에 충분했을 것이다.하지만 장화연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 순간, 마음속에서 ‘신뢰'라는 단어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온다연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장화연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창백하게 질린 온다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장화연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몸을 움직이려 하자, 온다연이 먼저 일어섰다.“장 집사님, 저 몸이 좀 안 좋아서 화장실에 다녀와야겠어요.”장화연은 그녀가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힘들어하는 줄 알고 조용히 말했다.“우림 도련님은 괜찮을 겁니다. 열이 떨어지기만 하면 곧 그룹 병원으로 옮길 거예요. 그쪽이 장비도 더 좋고, 의사들도 더 뛰어나니까요.”그럴듯한 위로를 들으며, 온다연은 주먹을 꼭 쥐었다.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화장실에 도착한 온다연은 손을 떨며 그 음성 메시지를 재생했다.“이 사람이 제 약혼녀입니다.”“온다연 씨 되시죠? 대표님께서 아주 각별히 아끼신다고 들었습니다...”“아니요, 저는 진시현입니다.”“아, 맞다, 진시현 씨. 제가 착각했네요. 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근데, 유 대표님이 온다연이랑 이미 혼인신고 했다던데? 어떻게 된 거야?”“혼인신고? 진짜인지 누가 알아? 나도 들은 얘긴데,
두 시간이 지났다.아이에게 열이 났다는 걸 유강후도 알고 있었을 텐데, 그는 단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 심지어 메시지 한 줄조차 없었다.도대체 무슨 일, 무슨 회의가 그렇게 바빠서, 전화 한 통조차 걸 시간이 없는 걸까?그는 항상 말해왔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바로 그녀와 아이라고.하지만 지금 온다연의 머릿속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이의 모습과 더불어, 전화 속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로 어지러웠다.그녀는 과연 그를 믿어야 할까, 아니면 자신이 들은 것을 믿어야 할까?유강후의 전화를 대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비서이거나 이권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둘은 모두 남자였다.그녀가 혼란 속에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휴대전화의 알림음이 울렸다.‘틀림없이 강후 씨가 보낸 메시지일 거야!’그녀는 재빨리 메시지를 확인하며 초조함을 달래려 했다. 그러나 메시지는 낯선 번호에서 온 친구 추가 요청이었다.검은색 프로필 사진에는 두 개의 눈만 드러나 있었다. 그 눈은 마치 어둠 속에서 그녀를 노려보는 악몽 같았다.친구 요청 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네가 원하는 답을 가지고 있어.]온다연은 프로필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무심결에 친구 요청을 수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 여러 개의 영상과 사진을 보냈다.온다연은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하나 눌러봤고, 곧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영상 속에는 유강후가 어떤 여자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놀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영상은 꽤 먼 거리에서 찍힌 듯했지만, 그가 유강후라는 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그는 여자를 품에 안고, 그녀의 품에 안긴 작은 아기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그의 얼굴에 스치는 다정함은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은 온기를 담고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아담하고 온화한 실루엣은 뚜렷했다.흰색 홈웨어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 온다연이 입
“그 빨간 점은 딱 심장을 겨냥한 위치였어요. 만약 그대로 맞았다면 분명 심장에 명중했을 겁니다. 설령 나은별 씨가 총알을 대신 맞았다고 해도, 그분의 키를 고려하면 그 상처는 턱 아래에 있어야 해요. 하지만 지금 그분의 상처는 왼쪽 가슴에서 어깨 쪽으로 치우쳐 있죠.”진시현은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판단으로는, 암살자가 나은별 씨가 나타난 걸 보고 즉시 무기의 위치를 조정한 겁니다.”그녀는 응급실 쪽을 한 번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암살범이 왜 나은별 씨를 보고 갑자기 위치를 바꿨을까요? 대표님, 그 이유는 직접 조사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유강후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로 수술실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때 로운이 다가와 진시현을 안아 들고 수술실로 향했다.진시현은 몸을 살짝 비틀며 저항했다.“팀장님, 괜찮습니다. 제가 걸어갈 수 있어요.”하지만 로운은 무표정하게 단호히 말했다.“움직이지 마.”결국 진시현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그의 품에 안겨 수술실로 들어갔다.그 시각, 대형 주택 내부에서는 온다연이 안절부절못하며 초조해하고 있었다.우림이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오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아이가 오후 두세 시쯤 갑작스럽게 미열이 났다.처음에는 단순히 소화 문제일 거라 생각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주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설명하고 소화제를 조금 먹였다.그러나 저녁 여섯 시가 되자 아이의 열이 갑자기 급상승했다.다급히 달려온 주 박사가 진찰한 결과, 폐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하지만 주 박사는 서양의학 전문의가 아닌 데다 전문 장비를 가져오지 않았기에 병원으로 즉시 데려가야 한다고 권했다.문제는 밖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집 주변에 수상한 사람들이 출몰해 장화연은 이 주택도 감시당하고 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그래서 병원에서 의사와 장비를 호출하려고 논의했지만, 전문 장비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소란이 클 것 같았다.게다가 이 건
말을 마친 유강후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은별을 안아 들고, 거침없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옆에서 소이섭도 서둘러 따라붙었다. 가는 내내 나은별의 피는 멈출 기색이 없었다.소이섭이 간단히 응급 처치를 해보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의식을 잃은 나은별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유강후, 은별 씨는 이런 사람이야. 널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다고!”그는 차갑게 비꼬듯 말했다.“그 고아 출신 여자애 때문에 네가 은별 씨를 몇 번이나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지? 앞으로도 계속 몰아세울 거야?”유강후는 이를 악물며 낮게 소리쳤다.“닥쳐. 내가 뭘 하든 네가 훈계할 자격은 없어!”소이섭은 냉소를 지었다.“그래도 말해야겠어. 넌 은별 씨한테 너무나 많은 빚을 졌어. 어떻게 갚을 건데? 돈으로? 네가 가진 돈이 만능이라도 된다고 생각해?”그 순간, 유강후의 전화가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은 온다연이었다.그녀의 목소리는 다급하고 떨려 있었다.“강후 씨, 아이가 열이 펄펄 끓고 있어요. 너무 높아서 당장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어디예요?”유강후가 대답하려는 찰나, 소이섭이 낮게 속삭였다.“설마 은별 씨를 내버려두고, 그 고아 출신 여자애를 찾아가려는 건 아니겠지? 네 아들은 단순히 열이 나는 거고, 은별 씨는 지금 죽어가고 있어!”그다음 순간, 차갑고 무거운 총구가 소이섭의 머리 뒤에 닿았다.유강후는 전화를 손으로 가린 채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한마디만 더 하면 네 목숨은 끝이다.”소이섭은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총구를 치우고 나서 유강후는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다연아, 걱정하지 마. 지금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바로 못 가. 장 집사랑 병원으로 먼저 가 있어. 내가 끝나는 대로 바로 갈게.”하지만 온다연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배어 있었다.“주 박사님께서 진찰했는데, 대엽성 폐렴일 가능성이 크대요. 해열제도 소용이 없어서 아까 체온이 40도까지 올라갔어요. 빨리
술이 준비된 곳으로 걸음을 옮기니, 사람이 조금 뜸했다.진시현은 유강후의 팔을 조심스럽게 놓으며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우리가 이렇게 있으면 사모님께서 보시고 오해하시는 건 아닐까요?”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지금까지 잘 해왔어.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오늘 맡은 역할만 제대로 해.”그는 방금 전 험담을 늘어놓던 사람들 쪽을 아주 잠깐 바라보더니 차가운 말투로 덧붙였다.“아까 수군거리던 사람들 찍어서 이권에게 보내서 처리하게 해.”진시현은 즉시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녀가 살짝 고개를 들며 긴장된 표정을 띠었다.“김원도가 왔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다시 유강후의 팔을 친밀하게 잡고, 그의 몸에 기댔다.애교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강후 씨, 저 조금 추워요.”유강후는 손짓하자마자 누군가 부드러운 캐시미어 숄을 가져왔다.그는 직접 숄을 집어 들고 진시현의 어깨에 다정하게 걸쳐주었다.그리고 숄을 걸쳐주며 살짝 몸을 기울여, 마치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조심해. 저 근처에도 몇 명이 있어.”진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때 김원도가 다가왔다.그는 진시현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유 대표, 이분은 누구지?”유강후는 진시현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김씨 집안 사람이라면 강씨 집안의 휘장을 모를 리가 없겠지. 내 약혼녀야.”김원도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쓰다듬으며 낮게 웃었다.“유 대표는 정말 복이 많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곁에 있으니 오늘 밤에도 많은 여성분들이 마음 아파하겠어.”유강후는 김원도의 말을 무시한 채, 시선을 그에게서 돌려 방금 막 들어온 다른 남자를 바라보았다.그 남자는 김원도와 닮았지만, 그의 음험한 기운은 전혀 없었다.그는 유강후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원도에게 다가갔다.“형, 형도 여기 있었어?”김원도는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다.“김원혁, 네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