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제지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다연아,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는 있어?”보아하니, 약효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작은 존재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일 리 없었다.온다연은 이미 감정이 고조된 상태였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몸이 낮부터 계속 이상했다.유강후 가까이에만 가면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머릿속에는 둘이 낮에 엉켜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부끄러웠지만, 그 감정은 전에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이었다.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그의 탄탄한 허리 위를 천천히 쓸고, 입술이 그의 목선을 따라 부드럽게 스쳤다.“강후 씨, 나 힘들어요... 조금만 더 세게 해줘요...”유강후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눈빛이 순간적으로 변했다. 이 작은 여자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이러다가는 내일 침대에서 못 일어날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이미 늦었다.그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책상 위에 밀어붙였다. 곧 그녀의 두 손은 뒤로 묶였고, 몸은 순식간에 뒤집혔다.그는 거칠게 자신의 옷을 벗어던지며 그녀를 완전히 자신의 통제 아래 두었다. 곧 두 사람은 서로에게 휘말려 아무것도 멈출 수 없었다. 방 안에는 오랫동안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 찼다.다음 날 아침, 온다연은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났다.힘겹게 일어나 서둘러 아침을 먹고, 책가방을 챙겨 학교로 뛰어나가려 했지만, 유강후가 그녀를 붙잡고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나섰다. 이리저리 지체되다 결국 학교에 늦고 말았다.온다연이 교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유강후는 한옥으로 돌아갔다.서재 안에는 이권과 키가 크고 건장한 남자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남자는 유강후를 보자마자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었다.눈가가 붉어진 그는 목이 메인 듯 말했다.“셋째 도련님, 도련님의 은혜는 로운과 양씨 가문이 삼대에 걸쳐도 갚을 수 없습니다!”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렸다.“일어서, 로운. 여기서는 그런 절차 필
로운은 주먹을 꽉 쥐고 눈에 살기를 띠며 단호히 말했다.“감히 그런 짓을?”이때 이권이 약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원도는 점점 더 미쳐가고 있습니다. 과거 셋째 도련님과 학교에서 함께 지낼 때는 그래도 조금은 정상적이었는데, 지금은 동양국에서도 아무도 그자를 통제하지 못한다고 합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이어서 설명했다.“김원도는 이다 하루코의 광적인 구애자입니다. 들리는 말로는, 하루코가 사망한 후 그분의 시신을 화장해 일부를 다이아몬드로 가공해 매일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합니다. 남은 유골은 자기 침실에 보관하고, 심지어 그것을 물에 타서 마시기까지 했다죠. 완전히 미친 사람입니다. 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니, 더 신경 써서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로운은 차갑게 대답했다.“구 어르신이 안 계셔도 그자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이권이 신중한 얼굴로 말했다.“셋째 도련님께서는 물론 두려워하지 않으시겠지만, 문제는 그자가 셋째 도련님 주변 사람들을 노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그래서, 셋째 도련님께서 아내와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당분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미친 자를 완전히 정리한 후에 밝히는 것이 안전합니다.”바로 그때 장화연이 들어왔다.“우림 도련님께서 깨어났습니다. 로운 씨, 저와 함께 가시죠.”로운의 눈이 순간 밝아지더니 급히 문 밖으로 나갔다. 유아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동남아에서 악명 높은 이 거대한 인물의 눈가가 붉어졌다.부드러운 색감의 방과 정교한 물건들, 방금 나간 네 명의 전문 보모까지 모두 유강후가 양준구의 후손을 얼마나 정성껏 돌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마치 자신의 친아들처럼 키우고 있는 것이다.로운은 침대 옆으로 다가가 자신이 애타게 그리워했던 양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이 깜깜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이 철같이 단단한 사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한 방울 흘렸다.양준구와 너무 닮았다! 마치 한 틀
이권은 여전히 불안한 듯 말했다.“하지만 저는 김원도가 예전보다 더 미쳐버린 것 같아요. 이번에 심상치 않은 의도로 왔을 겁니다. 셋째 도련님, 다연 씨를 당분간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강씨 집안으로 피신시키는 것이 어떨까요?”유강후는 그 말을 가로막았다.“이권, 너도 이제 겁이 많아졌나? 나이가 들어서?”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내 아내와 자식이 숨을 이유는 없어.”이어 명령을 내렸다.“중산 가문과 마츠시타 가문에 연락해. 김원도와 이다가 무너지기만 하면, 강씨 가문이 동양국과 동아시아 시장은 모두 넘기겠다고 약속해. 해도 근처의 유전 개발 역시 협력하겠다고.”이권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미 김씨 가문과 유전 개발에 수천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는데요!”“뭐가 문제야.”유강후의 눈빛은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내 아내와 자식을 건드리겠다고? 그게 천황이라 해도 죽여버릴 거야. 어둠 속에서 장난질을 치다니, 죽고 싶은 모양이지.”“동양국의 몇몇 가문들, 이제 순위를 다시 정할 때가 왔어.”그때 전화가 울렸다. 확인하니, 발신자는 다름 아닌 김원도였다.그의 눈빛은 차갑게 변했다.“감히 나를 직접 찾아오다니, 정말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전화를 받자, 반대편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 대표, 오랜만이야!”상당히 유창하게 말했는데, 그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챌 수 없을 정도였다.유강후는 차갑게 대꾸했다.“무슨 바람이 불어서 H국까지 왔어?” 김원도가 비웃듯이 웃으며 말했다.“오랜만에 봐도 유 대표는 여전히 유머러스하군. 왜, 내가 H국에 오면 안 되지? 같은 동창이었으니, 오늘 밤 술이나 한잔하면서 옛 이야기를 나누자.”유강후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얼마나 좋은 술이냐에 달렸지. 난 술에 까다로워서 아무 술이나 마시지 않거든.”김원도는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유 대표, 설마 내가 술 한 병 살 돈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유강후는 경멸스럽게 말했다.“돈은 많을지
말을 마친 그는 다시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봐봐, 너는 그놈을 그렇게 사랑했는데, 유강후는 너를 쳐다보지도 않았어. 유강후 눈에 너는 개만도 못했지. 하지만 나는 널 그렇게 사랑했는데, 너는 죽으려고 했어!”“이 세상에서 널 사랑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나뿐이라고!”그는 책상으로 다가가 회색 항아리를 열고, 그 안의 재를 손가락에 조금 묻혀 차에 넣었다. 그리고 그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잔을 꽉 움켜쥔 그의 눈은 핏빛으로 가득했다.“유강후, 넌 항상 날 짓눌렀어. 학교에서도, 지금도. 언제나 잘난 척하며 날 깔보고, 꼭 한 번은 날 짓밟아야 직성이 풀리더군.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야. 널 사랑하는 여자를 죽여서라도 하루코를 위해 복수하고, 네 강씨 집안을 철저히 짓밟아버리겠어!”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남자는 순식간에 평소의 표정을 되찾았다.“들어와.”문이 열리자, 이다 이치로와 임도현이 들어왔다.임도현은 경원시의 유명 연예 기획사 소속 매니저로, 최근 동양국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동양국 최대 재벌의 후계자 김원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인맥을 동원해 찾아온 것이다.임도현은 억지로 웃으며 몇 장의 사진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김원도 님, 안녕하십니까. 이 사진들은 유강후가 가장 신경 쓰는 여자들입니다. 이쪽은 유강후의 약혼녀 나은별입니다. 요즘 유강후가 어떤 여자를 집에 들인 후로 두 사람이 다툼이 잦아진 것 같긴 합니다만, 아직 얼마나 감정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그리고 이쪽이 갇혀 있는 여자입니다. 굉장히 아끼고 있어서 그 한옥 밖으로 잘 내보내지 않는다더군요. 하지만 이런 가문 출신들이 얼마나 진심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잠깐의 흥미일 수도 있죠.”“마지막으로 이쪽은 유하령이라는 아이로, 유강후의 조카입니다. 유강후가 많이 아끼는 사람인데, 최근에 다리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김원도는 사진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다가 나은별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그의 표정은 서늘하고 냉혹했다.“이 여
그 남자는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차림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오십을 넘은 듯했지만, 세련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딱 봐도 엘리트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온다연의 손목을 너무 강하게 잡고 있어,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온다연은 살짝 찌푸리며 기본적인 예의를 유지한 채 말했다.“아마 사람을 착각하신 것 같네요. 저는 안씨가 아닙니다.”이상했다. 정 교장도 그녀에게 안 씨 성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혹시 자신과 그 사람이 닮은 걸까?남자도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급히 손을 놓으며 사과했다.“미안합니다. 고인의 후손을 만난 줄 알고 착각했네요.”그는 방금 모비크와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둘의 관계가 꽤 가까워 보였다.온다연은 더 문제 삼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때 모비크가 서툰 중국어로 그녀에게 말했다.“다연아, 이분은 내 친구 문명원이라고 해. 신국 국립대학의 교장이기도 해. 한 작품을 가져왔는데, 네가 흥미를 가질 것 같아.”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림 위에 덮여 있던 흰 천을 걷어냈다. 그 아래에는 시간이 느껴지는 오래된 유화 한 점이 드러났다. 사실적인 화풍의 그림이었다.그림 속 소녀는 검은 머리에 눈처럼 하얀 피부, 섬세한 이목구비를 지녔다.복고풍의 화려한 공주 드레스를 입고 끝없이 펼쳐진 붉은 장미밭에 서 있었으며, 두 팔에는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그녀의 붉은 입술과 눈부신 피부는 더욱 선명하게 대비되었다.온다연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첫 번째 이유는 그 화가의 실력 때문이었다. 그림은 고상하고 정교하며, 소녀의 피부 아래 보이는 미세한 모세혈관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이 정도의 작품이라면 분명 대가의 손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두 번째 이유는 그림 속 소녀가 자신과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온다연은 무심코 중얼거렸다.“이거... 저인가요?”그러고 나서 스스로도 당황하며 말을 고쳤다.“아, 아니에요. 그럴
“다만, 그 사람도 자신을 그 안에 가둬버렸어요. 두 사람 모두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 셈이죠. 들리는 말로는, 그 사람도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새었다고 해요.”이 이야기를 들은 온다연은 왜인지 마음이 답답해졌다. 분명 소설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인데도, 왠지 모르게 울고 싶어졌다.그녀는 무심코 물었다.“이름이 뭐예요?”문명원이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안심이에요.”온다연은 다시 물었다.“그 사람은요? 안심 씨 남편인가요? 이름이 뭐예요?”문명원은 살짝 찡그리며 대답을 피했다.“더는 말하기 곤란해요. 다연 씨가 모비크의 제자이기도 하고, 안심 씨와 조금 닮았기에 이만큼 말한 거니 더는 묻지 마요.”온다연은 자신이 무례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가라앉지 않아, 그녀는 안심이라는 이름을 휴대폰에 검색해 보았다.그러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그래서 다시 안심, 신국, 사원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해 검색해 보았다. 뜻밖에도 몇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비록 정보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 속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안심은 신국의 명문가인 안씨 가문의 막내딸이었다.안씨 가문이 몰락한 후, 신국의 최고 재벌인 진씨 가문에 의해 입양되었고, 이후 진씨 가문의 상속자와 결혼했다는 것이었다.안심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지만, 진씨 가문에 대한 정보는 풍부했다.진씨 가문은 동남아시아에서 유명한 초대형 재벌로, 겉으로는 매우 조용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상당히 넓은 것으로 나타났다.온다연은 한참 동안 정보를 읽다가 흥미를 잃고 휴대폰을 닫으려던 찰나, 갑자기 메시지 한 통이 툭 튀어나왔다.[내 사랑하는 딸아, 내가 누군지 알겠니?]온다연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순간적으로 온몸의 혈액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급히 메시지의 발신 번호를 확인했지만, 그저 알 수 없는 IP 주소일 뿐이었다.진짜 발신 정보는 감춰져 있
길을 가는 내내 온다연은 여러 번 뒤돌아보았다. 하지만 매번 뒤를 돌아보아도, 가끔 지나치는 행인들 외에는 수상한 곳이 없었다.장화연 역시 그녀가 종종 뒤를 보는 것을 눈치챘다.“사모님,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온다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알 수 없는 그 메시지를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너무 과민한 것은 아닌지 싶었다. 그래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아니에요, 그냥 누군가 우리를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장화연이 말했다. “사실 우리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온다연은 몸을 딱 굳혔다. “누구요?”장화연은 뒤쪽 가까이에 있는 평복 차림의 경호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셋째 도련님께서 안심하지 못해 이 길에만 여러 명의 경호원을 배치했습니다. 지금 그들을 알아차렸다면, 그들의 업무가 잘 수행된 것입니다.”경호원들일까?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가슴 속에 쌓인 의혹과 불안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이 좁은 골목은 고작 십 분이면 걸어서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온다연은 오늘 저녁 이 길이 조금은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녀와 유강후는 이미 혼인신고를 마쳤고, 이제 그녀는 그의 정식 아내였다. 그녀는 유강후의 가문을 진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당연히 장화연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백과사전을 뒤지는 것보다 훨씬 더 믿을 만했다.그녀는 장화연의 팔을 친근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집사님, 강씨 집안에 대해, 강후 씨의 외할아버지에 대해 좀 말씀해 주세요.”장화연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이제야 알고 싶으십니까?”온다연은 그녀의 팔을 살짝 흔들며 부드럽게 말했다. “전에는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특별히 묻고 싶지 않았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우리는 이제 부부니까요.”장화연이 말했다. “강씨 집안은 아주 큰 가문입니다. 전체 가족의 역사가 백 년이 넘고, 북미에서 매우 유명하면서도 극도로 조용한 집안입니다. 며칠 후 셋째 도련님이 사모님을 데리고
장화연이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말을 했지만, 온다연은 들을수록 더욱 침묵에 빠졌다.그녀는 그저 고아였다. 솔직히 말해서, 유강후와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지만, 신분과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에서 그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유강후는 그녀를 귀여워했고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모든 강씨 집안 식구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그녀는 자신의 출신과 가문 때문에 그들의 아들 우림이가 강씨 집안 사람들에게 무시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더욱이 영원히 유강후의 뒤에 숨어 보호를 받기를 원치도 않았다.그녀와 유강후 사이의 길은 정말 길고도 험난했다. 하지만 그들은 굳건히 걸어갈 것이다!한옥에 돌아와서야 장화연은 자신이 너무 많은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온다연은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었다.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온다연은 이미 아기방으로 갔다. 몇 달 된 아기는 사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며 보낸다. 지금도 역시 자고 있었다.온다연은 아이를 안고 잠시 누워있다가 일어나 조금 먹었다. 그리고 가져온 모든 책들을 서재로 옮겼다.그녀는 유강후 몰래 두 개의 외국어 과목을 새로 선택했는데, 지금은 막 입문 단계라 꽤 어려웠다.다행히 요즘은 온라인에 원어민 1:1 지도가 있어서 네이티브 화자를 통해 발음도 교정받을 수 있었다.외국어를 배우고 나서는 복습과 미리 선택한 다른 과목들을 공부했다.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온다연은 결국 책상 위에 엎드려 잠들었다.유강후가 들어서자마자 서재의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양복 재킷을 벗으며 물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장화연은 그의 옷을 받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오늘 제가 실수했습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했고, 사모님이 다소 기분이 좋지 않아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습니다.”유강후가 손을 멈추며 물었다. “무슨 말을?”장화연이 대답했다. “사모님이 강씨 집안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저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사모님께서 아무 말씀이 없는 걸로 보아,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녀는 무려 임산부였다.게다가 그 남자의 품에 안겨 가냘픈 목소리로 아저씨를 찾기도 했다.남자는 그녀가 숨이 딸릴 정도로 입을 맞춘 것도 모자라 그녀에게 손을 쓰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그 꿈은 꽤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바람이 사납게 불고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내린 폭우가 쉼 없이 창문을 거세게 두드릴 때야 온다연은 몽롱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다.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본 광경은 키 큰 남자가 창가에서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었다.온다연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사람을 부르려던 찰나 그 남자가 다급히 제지했다.“부르지 말아요, 저예요!”낮은 목소리는 익숙했다.온다연은 잠시 멈칫한 끝에 남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그는 다름 아닌 꿈속의 그 남자였다!창문을 통해 들어온 것인지 의문이 가득하던 찰나 온다연의 인기척을 느낀 경호원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아가씨,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겁니까?”온다연은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경호원들은 여전히 걱정되어 물었다.“아가씨, 천둥소리에 놀라셨습니까? 같이 있어 줄 사람이라도 필요하십니까?”“필요 없다니까요!”“아가씨,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거셉니다. 문을 열어주시면 창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는지 저희가 검사해드리겠습니다!”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필요 없다고 말했잖아요. 귀찮으니까 더 말 시키지 말아요!”온다연이 언성을 높이자 그제야 경호원들도 잠잠해졌다.유강후의 옷과 바지는 모두 반쯤 젖어있었고 머리카락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강후의 기세만큼은 가려지지 않았다.게다가 옷이 젖은 탓에 거의 보일락 말락 한 그의 탄탄한 몸매에 온다연은 얼굴이 붉어졌다.“강 대표님이 왜 창문으로 들어오는 거죠?”유강후는 창문을 닫고 몸을 돌려 온다연을 바라보며 물었다.“깼어요?”온다연은 여전히 유강후가 창문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는 듯 말했다.“여긴 2층이라고요!”유강후는 여
남자는 안윤희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채며 그녀의 뺨을 세게 때렸다.“평범한 사람이라고?”“안 아가씨, 10년 전 금우역에서 불을 지른 일을 기억하나? 내 얼굴 좀 봐. 이 흉터, 네놈들이 지른 불 때문에 생긴 거야!”남자의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우리 부모님은 그저 평범한 농민이었어. 그들의 가장 큰 소원은 나를 잘 키워 공부를 시켜 성공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분들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부모였어.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너희는 지나가다가 웃는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그분들을 악의 화신이라 규정했지! 그러고는 우리를 집 안에 가둔 채 불을 질러 집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어. 우리 부모님은 필사적으로 날 품에 안으셨고, 덕분에 나는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어. 하지만 부모님은 그만 온몸이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지.”“그분들이 무슨 죄가 있었지?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로, 살아갈 자격조차 없었다는 거야? 몇 년 동안 너희를 찾아 헤맸어. 그렇게 한 명씩 제거했지. 너희가 세상을 정화한다고? 난 너희 같은 악마들을 정화할 거다!”남자는 안윤희의 목을 세게 움켜쥐었고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안윤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너희들 정말 잘 숨어 있더구나. 한 놈을 찾는 데 꼬박 반년에서 일 년이 걸렸어. 그런데 오늘은 누가 너를 직접 내게 데려다주고 돈까지 준 거야.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있을 줄이야!”그는 안윤희를 거칠게 바닥에 내던지며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형님들, 배 위에서 고기 구경 못한 지 오래됐지? 오늘 마음껏 즐겨보자!”“저기요, 이 아가씨는 신국 안씨 가문의 큰 아가씨입니다.”“걱정하지 마. 방금 뉴스에서 이 아가씨가 이미 죽었다고 나왔어. 심지어 시신도 확인됐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이 여자는 그저 안씨 가문의 아가씨를 닮은 여자일 뿐이야.”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안윤희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안 돼! 나는 안씨 가문의 큰딸이야! 너희가 날 건드리면 우리 이모부가
유강후는 진시현의 볼록하게 나온 배를 한 번 바라보며 웃음을 띠고 말했다.“얼마나 됐어?”진시현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거의 다섯 달 됐어요.”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덧붙였다.“움직이기도 해요.”유강후의 눈에 잠시 어두운 빛이 스쳤다. 예전에 자신의 아이도 딱 이 정도였을 때...유강후는 곧 미소를 짓고 로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로운, 대단하네. 이제 아빠가 됐구나. 결혼식 때 참석 못한 게 많이 아쉬웠는데 나중에 네 아들 태어나면 큰 선물로 보답할게.”항상 무표정하던 로운의 얼굴에 드물게 미소가 번졌다.“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히 많은 걸 받았습니다.”유강후는 말했다.“전에 준 건 모두 준구 것이었지. 지난 몇 년 동안 잘 관리해서 자산을 두 배로 늘렸더라. 하지만 이제 아내도 있고 아이도 생겼으니 너 자신을 위해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그걸 나눠서 20% 지분을 네가 가져. 내가 네 아들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라고 생각하고.”로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뒤돌아 진시현의 볼록한 배를 몇 초간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 대표님.”“며칠 동안 도련님을 데리고 가서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조상님께 향도 한 번 올리고요.”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똑똑한 아이이니 지금처럼 잘 키우면 성년이 되기 전에 양씨 가문으로 돌아가 일을 맡길 수 있을 거다. 데려가는 건 좋지만 아직은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물론입니다.”유강후는 다시 물었다.“내가 찾으라고 한 자료는 확인했어?”로운은 묶어둔 자료를 꺼내 유강후에게 건넸다.“이것은 성염 조직에 대한 정보입니다. 인원은 많지 않지만 굉장히 단결되어 있습니다. 한 번 목표로 삼으면 끈적한 반창고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조직은 크게 두려워할 것은 없지만 상대하기엔 매우 불쾌한 존재입니다.”유강후는 자료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안윤희는 여기서
유강후는 마치 죽은 사람을 보듯 차갑고 무심한 시선으로 안윤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성염 조직, 너랑 무슨 관계야?”안윤희는 고개를 확 들어 올리며 눈빛에 불안함을 담고 대답했다.“무, 무슨 성염이요?”성염 조직은 국제적인 테러 집단으로 극단주의자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그들은 불이 모든 것을 정화한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악으로 간주한 대상은 무엇이든 태워 세계를 정화하려 했다.그들의 활동은 선과 악을 가리지 않았고 그들의 눈에 악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정화의 대상이 되었다.이로 인해 암흑가뿐만 아니라 정계에서도 성염 조직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다.유강후는 안윤희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 글자 한 글자 분명히 말했다.“네가 어떤 조직에서 왔든 상관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둬. 만약 네가 온다연에게 손이라도 대려 한다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거야. 너희 안씨 가문과 성염 조직 모두 비참하게 끝날 테니까.”안윤희는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꽉 쥐고 말했다.“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유강후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뒤돌아 걸어 나갔다.안윤희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천천히 일어섰다.방금 발에 차여 바닥에 나가떨어진 그녀는 무릎이 긁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통증을 느끼는 기색은 없었다.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사라져가는 유강후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난 분명히 널 선택했어. 그런데 날 거부하고 그 재수 없는 여자만 원한 대가가 뭔지 제대로 보게 될 거야. 다연이가 그렇게 좋다면 두 사람 다 함께 끝장내주지.”“이모, 이모부. 저는 다연이를 해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애가 먼저 제 선택을 빼앗았어요. 뻔뻔한 사람은 다연이지 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저를 탓하지 마세요.”안윤희의 낮은 혼잣말은 복도를 스치는 바람 속에 흩어졌다. 그러나 그중 일부가 안심의 귀에 닿았다.안심은 다친 채 서 있는 안윤희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니? 왜 이렇게 엉망이야?”안윤희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제가 실수로 넘어
두 사람은 오랜 시간 함께한 연인처럼 자연스러운 호흡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들만의 공간은 다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평소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던 유강후가 온다연 앞에서 이렇게까지 낮은 자세를 보일 줄은.유강후는 온다연을 마치 손바닥 위에서 소중히 감싸 보호하는 것 같았다. 유강후는 모든 일을 직접 나서서 처리하며 온다연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살폈다.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정성과 인내를 아끼지 않았다.그리고 온다연은 그런 그의 행동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러다 부모님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고서야 온다연은 자신이 유강후의 옷소매를 잡고 있었다는 것과 방금 그 소매로 입을 닦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황급히 손을 놓고 어쩔 줄 몰라 했다.방 안에는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안윤희만 질투 어린 눈빛으로 온다연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유강후는 이 어색한 분위기에 개의치 않는 듯 즉시 사람을 시켜 과일을 준비하게 했다.게다가 그가 준비한 과일은 전부 온다연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과일이 준비되고 나서 진수현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강 대표, 당장 나가!”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제가 너무 오래 있었다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일을 준비했으니 다연이가 다 먹는 걸 보고 나가겠습니다.”진수현은 조금의 인내도 없이 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다연이 부모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우리가 충분히 지켜줄 수 있어. 그러니까 네 도움은 필요 없어. 지금 당장 나가!”유강후는 움직이지 않고 과일 접시를 들어 올려 깎은 과일 하나하나에 이쑤시개를 꽂았다. 심지어 샤인머스캣조차도 빠뜨리지 않았다.그는 과일을 다 준비한 뒤 온다연 앞에 과일 접시를 내밀며 낮게 말했다.“먹어.”온다연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과일 접시를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딸기까지 반으로 잘랐어요?”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안윤희는 눈가가 붉어진 채 무언가 말하려다 문득 들어오는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유강후는 잠을 제대로 못 잔 듯 피로가 얼굴에 드러났지만 강렬한 분위기와 또렷한 외모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그는 방 안에 있는 안윤희를 힐끗 바라봤고 단 한 번의 시선만으로도 안윤희의 온몸에 서늘한 전율이 퍼졌다.그의 눈빛은 차갑고 어두웠으며, 마치 독을 품은 칼날처럼 사람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안윤희는 자신이 수많은 남자를 만나봤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무서운 눈빛을 가진 이는 유강후가 유일했다.안윤희의 마음이 급격히 흔들렸고 유강후가 뭔가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그러나 이내 스스로를 다독였다.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했으며 관련된 사람들은 이미 모두 사라졌으니 불안할 필요가 없었다.죽은 사람은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법이다.안윤희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머리를 매만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님, 안녕하세요.”유강후는 더 이상 안윤희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곧장 온다연 앞으로 다가가 작은 약병을 건네며 말했다.“이건 곽 의사가 방금 보내준 약이야. 먹어봐.”그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세상에 수많은 아름다움이 있어도 그의 눈에는 온다연만이 유일하게 특별한 존재인 듯했다온다연은 병을 받아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특이한 향이 풍겼고 어딘가 피 냄새와도 비슷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온다연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유강후는 병을 다시 가져가 약을 꺼내 직접 하나 삼켰다.“봐, 문제없어. 이 약 총 20알이야. 곽 의사가 그러는데, 재료가 워낙 귀해서 자기한테도 40알밖에 없었대. 그중 절반을 나한테 준 거거든. 이거 먹으면 건강 진짜 좋아질 거야. 어쩌면 앞으로 약 안 먹어도 될지도 몰라.”그가 말을 마치자 진수현은 얼굴을 굳히며 차갑게 말했다.“약이 20알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하나를 먹었다고? 대체 무슨 생각이야?”유강후는 아무 대꾸 없이 옆에 있던 곶감을 집어 온다연의 입가로
“너도 명색에 안씨 가문의 큰딸이야. 가문이 조금 어려운 상황이라지만, 여전히 명문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좋은 물건이 부족할 리도 없는데 왜 이러는 거니...”안심은 말을 멈추고 온다연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다연아, 그저 한 세트의 장신구일 뿐이야. 너무 기분 상하지 말고, 엄마가 더 좋은 걸로 새로 준비해 줄게.”온다연은 안윤희 눈에 잠깐 스친 뚜렷한 분노를 보고는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배은망덕하다는 말이 딱 적합했다.“엄마, 더 큰 금고를 하나 마련해 주세요. 귀중한 물건들은 거기 보관하고 제가 직접 관리할게요.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안심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물건은 네가 직접 챙기는 게 맞지.”안윤희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이건 분명 안윤희를 경계하려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안윤희는 개의치 않았다. 고작 몇 개의 장신구일 뿐이었고 갚지 못할 정도의 거금도 아니었다. 대진 그룹의 부대표가 된다면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그때가 되면 아무것도 모르는 온다연은 바보처럼 자신의 손에 놀아나게 되어 있을 것이다.안윤희의 눈에 스친 냉소는 온다연도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지난 3년간 아버지 진수현 곁에서 많은 것을 배운 온다연은 속으로 생각했다.회사 관리를 원하지 않는 것과 관리 능력이 없는 건 엄연히 다른 거라고.비록 회사를 직접 관리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의 사업을 결코 남의 손에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온다연은 진수현을 바라보며 결심한 듯 말했다.“아빠, 이제 제 신분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대진 그룹을 정식으로 이어받아 앞길을 열어가고 싶습니다.”온다연의 말에 안윤희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윤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말했다.“다연아, 아직 몸이 좋지 않잖아. 건강을 회복한 뒤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아. 회사 일은 우리한테 맡겨도 되잖아.”온다연은 안윤희의 말을 무시한 채 진수현을 향해 말했다.“아빠, 언제까지 아빠 뒤에만 숨을 수는 없어요. 이
안씨 가문도 명문가이긴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할 뿐 이미 속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만약 진씨 가문이 뒤에서 받쳐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안윤희는 제대로 된 옷 한 벌도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다.게다가 예전에 온다연에게서 가져간 물건 중 상당수는 이미 팔아버려 이제 와서 돌려줄 수도 없었다.그때 밖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안윤희의 눈빛이 잠시 차갑게 빛나더니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다연아, 이러지 마. 예전에 네가 선물로 줬던 물건들을 이제 와서 돌려달라니, 말이 돼? 난 우리를 자매처럼 생각했는데, 네가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일 줄은 몰랐어...”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안윤희를 차갑게 바라보았고 그녀에 대한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잠시 후, 진씨 부부가 방으로 들어왔다.안심은 안윤희가 온다연의 병상 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곤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온다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안윤희가 먼저 말했다.“이모, 다연이가 제가 예전에 받았던 장신구들을 다 돌려달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뭘 받았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일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줬어요... 어젯밤에 제가 다연이를 제대로 따라다니지 않고 혼자 둔 걸로 저를 원망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제 일이 있었는데 말이에요...”안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안심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온다연을 바라보며 물었다.“다연아, 정말 그런 거야?”온다연은 상체를 일으키며 안윤희를 차갑게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짜증이 치밀었다.“언니, 연기 그만해. 그동안 언니가 내 물건 가져간 건 전부 언니 멋대로였잖아. 빌린다고 말했지만, 내가 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리고 어제 언니가 가져간 건 내가 결혼식 때 쓰려고 준비해 둔 장신구였어. 한 번도 착용하지 않은 건데, 그냥 가져가더라. 난 허락한 적이 없었는데. 아니면 진씨 가문 물건은 언니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뜻이야?”온다연의 말투에는 서늘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언제부터 진씨 가문이 안씨 가문과 한 식구가 됐는데?”
그때 유강후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화면에 표시된 번호를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몇 분 후, 안윤희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안윤희는 연한 하늘색 발목 길이 드레스를 입고 하얀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고 있어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러나 침대 위에서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온다연의 모습이 훨씬 더 사람들의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안윤희의 마음속에 묘한 질투심이 피어올랐다.안윤희는 방 안을 둘러보고는 유강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안윤희는 장미꽃을 창가에 올려놓으며 말했다.“다연아, 몸은 좀 괜찮아졌어?”하지만 온다연은 원래부터 백장미를 싫어했다. 온다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윤희를 쏘아보며 물었다.“왜 왔어?”안윤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깨어났다고 해서 와봤어. 그런데 아직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혹시 누가 진씨 가문을 노리기라도 했어?”온다연은 이번 일에 안윤희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내가 깨어난 게 언니랑 무슨 상관인데?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언니가 더 잘 알지 않아?”안윤희는 순간 당황했다.온순했던 온다연이 요즘은 마치 가시가 돋은 듯 상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다연아, 혹시 어제 내가 목걸이를 빌려 간 것 때문에 아직도 화난 거야?”안윤희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제 급해서 미처 말 못 했을 뿐이야. 그리고 우리 사이에 이런 일은 예전에도 많았잖아.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야?”온다연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빌린 거라고? 그럼 어제 가져간 장신구 다시 돌려줄래? 내가 다시 쓸 일은 없겠지만, 그건 어머니가 내 혼수를 위해 준비해 주신 거라 남에게 줄 수는 없어.”안윤희는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돌려달라고 요구하다니, 감히!원래 그 장신구는 안윤희,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온다연이 중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