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유강후가 언제 깨어났는지 힘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차분한 눈동자에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쳤다.“유강후...”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목멘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고, 손에 든 칼도 바닥에 떨어졌다.유강후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손을 가져와 봐.”온다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살살 해.”온다연은 잔뜩 긴장하며 이내 그를 놓아주었다.“미안해요. 혹시 상처 부위를 건드렸어요?”유강후는 여전히 안색이 좋지 않았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큰 병을 앓고 난 후의 병색이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머리가 좀 어지러워. 너무 오래 자서 그런가 봐.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온다연은 상처 부위가 갈라질까 봐 걱정하며 즉시 의사를 부르러 가려고 했다.하지만 유강후는 잔뜩 긴장한 그녀를 불러세웠다.“조금 있다가 불러. 먼저 내 곁으로 와 봐.”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로 다가갔다.유강후는 그녀의 작은 손에 칼에 베인 상처가 가득한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어쩌다 이렇게 됐어?”온다연은 손을 빼며 말했다.“부주의로 긁힌 거예요.”사과를 너무 오래 깎다 보니 가끔 집중하지 않으면 다쳤다.유강후는 침대 가장자리를 툭툭 쳤다.“여기 앉아.”온다연은 얌전히 그의 옆에 앉았다.그는 길쭉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보드라운 얼굴을 건드리더니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살이 많이 빠졌네.”온다연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저씨도 살이 많이 빠졌어요.”그녀는 얌전하고 온순하게 그의 가슴팍에 엎드려 나지막이 말했다.“너무 오래 잤어요. 10여 일이 지났거든요. 아저씨 때문에 놀라 죽을 뻔했어요.”유강후는 말없이, 그저 조용히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만졌다.칼날이 온다연을 향할 때 그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전에는 그녀를 지키지 못한 적이 많은데,
물론 물어봐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온다연이 얼굴을 붉히며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일부러 그녀를 놀렸다.“너를 싫어할까 봐 걱정돼?”얼굴이 더 빨개진 온다연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무슨 헛소리하는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손바닥을 주무르며 나지막이 말했다.“온다연, 아무도 내 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없어. 유씨 가문이든, 강씨 가문이든, 그들의 취향은 아무 소용이 없어.”이때 임 교수가 들어오자, 온다연은 급히 한쪽으로 물러섰다.다시 한번 자세히 검사한 후 임 교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강 대표님이 가져온 약이 효과가 좋아서 빨리 회복되셨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며칠 일찍 깨어나셨어요. 앞으로의 회복도 이상적일 것으로 예상됩니다.”“오늘부터 유동식을 먹을 수 있어요. 큰 운동은 하지 말고 너무 흥분해도 안 돼요.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이번에는 강해숙과 다른 유씨 가문 사람들이 들어왔다.그 속에 유민준도 있었다. 그는 온다연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다연아,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잠깐이면 돼.”그는 거의 애원하는 말투로 말했다.요 며칠 그는 온다연에게 말을 걸려고 각종 기회를 이용해 그녀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항상 그를 피했고, 유씨 가문의 사람들도 단단히 감시해 온다연과 단둘이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오늘이 절호의 기회다. 온다연이 상대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온다연이 동의할 줄이야.“밖에 나가서 얘기해요.”온다연은 말하면서 유강후를 힐끗 보았다. 그의 눈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온다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문을 나서자마자 유민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딱 잘라 말했다.“잘 들어요. 저는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처음부터 전혀 좋아한 적이 없어요. 앞으로 더 이상 저한테 매달리지 마세요. 우리가 단둘이 얘기를 나누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에요.”유민준은 감정이 약간 격해졌다.“아니, 그럴 리 없어. 내가 이전에 너한테 못되
유하령이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것이 분명하다.그녀는 경멸과 혐오로 가득 찬 눈빛으로 온다연을 바라보았다.“온다연, 네년이 감히 우리 오빠를 이렇게 대해? 이렇게까지 비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해? 죽으면 돼?”“닥쳐!”유민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네가 맨날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와 다연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어.”“뭐라고?”유하령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유민준을 쳐다보았다.“오빠도 작은 아빠처럼 저년 때문에 나한테 못되게 굴 거야?”유민준은 대답하고 싶지 않아 온다연에게 말했다.“다연아, 미안해. 우리가 이전에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오빠!”유하령이 분노하며 유민준의 말을 잘랐다.“얘한테 왜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야? 얘가 뭔데? 얘랑 얘 이모는 모두 품성이 나쁘고 뻔뻔스러운 년들이야.”찰싹! 온다연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유하령에게 따귀를 한 대 갈겼다.유하령은 완전히 멍해졌다.온다연이 먼저 때릴 줄은 생각지 못했던 그녀는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온다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유하령, 네가 고유정을 들여보냈지? 네가 아니면 내가 테이프 커팅식 현장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 그리고 어떻게 현장에 들어갈 수 있어?”“고유정이 나를 죽였다면 너는 뜻을 이루었을 것이고, 나를 죽이지 못해도 고유정이 감옥에 가게 되잖아. 어차피 고유정은 상갓집 개와 같으니 죽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그녀는 유하령을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아저씨가 나를 구하려고 칼을 맞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겠지. 너 때문에 아저씨가 죽을 뻔했어.”유하령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고유정을 못 본 지 오래됐어. 내가 들여보냈을 리가 없잖아?”그녀의 표정에서 온다연은 원하는 답을 얻었다.온다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유하령을 노려보았다.“유하령, 이건 다 자업자득이야. 아저씨가 너를 가만둘 것 같아? 강씨 가문에서 너를 가만두겠어? 이 일은 유씨 가문 아가씨라는 신분도 소용없어. 감옥에 갈
유강후는 표정이 잔뜩 굳어있고 눈빛도 차갑고 침울했다.화났다는 것을 눈치챈 온다연은 물티슈를 뽑아 손가락을 하나하나 깨끗이 닦은 후 손을 유강후 앞에 내밀었다.“그 사람이 잡았던 손을 깨끗이 닦았어요.”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로 그 자식과 단둘이 얘기하지 마.”그는 또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것 같았다.“내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그 자식이 너를 괴롭히지 않았어?”온다연은 솔직하게 말했다.“있어요.”유강후는 표정이 더 싸늘해졌다.“너한테 무슨 말을 했어?”온다연은 그의 옆에 앉은 후 그의 손을 자기 얼굴에 대고 속삭였다.“아저씨가 깨어나기 전에는 그 사람과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유씨 가문 사람들이 저를 마음에 안 들어 하잖아요. 제가 피할 필요도 없이 그 집안 사람들이 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어요.”유강후는 그제야 표정이 좀 풀렸다.“묻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아저씨와 나은별은 어떤 사이에요?”“그게 그렇게 신경 쓰여?”유강후의 표정을 봐서는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온다연이 나지막이 말했다.“중요한 얘기가 있는데, 나은별과 어떤 사이인지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그 중요한 일을 말하지 않을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보드라운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복잡한 일이라 짧은 시간 안에 설명하기 어려워. 내가 좀 힘이 생기면 천천히 말해줄게. 나와 나은별이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것은 말해줄 수 있어.”“두 분이 외국에서 결혼하지 않았어요?”온다연의 말에 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이 말했다.“두 사람은 약혼반지도 있잖아요...”그 반지는 그녀의 마음속에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무슨 반지?”유강후가 어리둥절해하자, 온다연이 뾰로통하게 말했다.“아저씨가 항상 끼고 있는 그 은색에, K자가 새겨져 있는 반지 말이에요.”유강후는 어리둥절해하더니 담담하게 웃었다.그는 그 은색 반지를 빼서 그녀의 손바닥에 올려 놓
유강후의 심장은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고, 그의 정신은 완전히 멍해졌다. 의식이 없던 동안 그는 비슷한 꿈을 꾼 것 같았다. 꿈속에서 그녀는 아기가 생겼다고 말했는데 그는 놀라움과 기쁨, 걱정이 섞여 심장이 터질 듯했다. 하지만 그건 꿈일 뿐이라는 걸 알았지만 깨어났더니 그녀가 직접 아기가 생겼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뭐라고?” 그는 귀를 의심했다. 온다연은 즉시 경계심을 드러내며 침대 옆으로 물러났다. “아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녀는 그가 아기를 갖고 싶지 않다고 하면 바로 도망갈 생각이었다. 유강후는 충격을 억누르고 손을 내밀어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 “이리 와!” 하지만 온다연은 한 걸음 더 물러서며 말했다. “아뇨, 먼저 대답해 주세요. 아기 원해요, 원하지 않아요?” 지금 그의 마음은 엄청 복잡했다. 유강후가 아이를 원하지 않을 리가 없다. 꿈속에서 그녀에게 아기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그 놀라움과 감동은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기를 갖는 것은 그녀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이토록 경계를 하는 모습에서 그녀는 아기를 격하게 원하고 있다고 확실했다. 그가 안 된다고 하는 순간, 그녀는 도망칠 것이 분명했다. 그는 동요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이리 와!” 온다연은 당황했고, 그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문 앞까지 물러났고 주먹을 꽉 쥐었다. “아저씨, 당신이 이 아기를 원하지 않으면, 우리 사이는 끝이에요! 아저씨를 평생 무시할 거예요!” 그는 마음이 무거워졌고, 이내 눈썹을 찡그렸다. “무슨 헛소리야? 이리 와!” 그는 본능적으로 일어나려고 했다. 결국 움직임이 너무 큰 탓에 상처가 찢겼고, 아픔이 밀려와 바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온다연을 바라봤다. “이리 와!” 온다연의 손은 이미 문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싫어요!” 유강후는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처가 찢어진 것
“말해!” 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네! 아저씨가 직접 제 아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요.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어요!” 유강후는 화가 나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건 네 몸 상태가 안 좋기 때문이야! 의사도 말했잖아. 지금 너의 체질로는 아기를 낳는 게 위험하다고!” 조급해진 온다연이 되물었다. “아저씨는 원하지 않는 거죠?” 온다연은 목소리가 떨리며 말했다. “아저씨는 원하지 않겠지만, 저는 그 아기를 원해요. 아저씨를 미워할 거예요!” 유강후는 그녀가 울음이 터질 듯한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는 처음에 아기를 원하지 않은 이유가 그녀의 몸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기가 생겼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그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임신했으면서 나한테 말하지 않고 어떻게든 떠나려는 생각만 하고. 이 아기도 내 아긴데, 내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 거야?”온다연이 물었다. “아저씨는 이 아기를 원해요?” 유강후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왜 원하지 않겠어? 이 아기는 내 아이기도 해.” 몇 분이 지난 후 그는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해냈다. 제일 좋은 의사를 불러서 아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만약 이 아기가 그녀의 생명에 위험이 된다면 온다연이 아기보다 백배 천배 더 중요하기에 그녀를 먼저 지킬 것이다. 그의 말은 온다연의 긴장을 조금 풀어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극심한 억울함을 느꼈다.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저씨 전에는 아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일부러 제가 아저씨와 나은별 씨 사이를 오해하게 해서, 저는 아저씨가 나은별 씨 아기만 원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그가 과거에 저지른 여러 악행들을 고발했다. “아저씨는 제가 말을 듣지 않으면 가두어버린다고 했어요. 아저씨, 저는 사람이에요, 당신의 애완동물이 아니라.
그는 미간을 찌푸렸고, 또 한 번 움직이자 상처가 불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순간 기분이 확 나빠졌다. 그는 이마를 찌푸린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 좀 불러줘!” 온다연은 긴장한 얼굴로 돌아서서 물었다. “어디 불편해요?” 순간 유강후의 얼굴이 하얘졌다. “이번엔 정말 찢어졌어!” 온다연은 급히 일어나 의사를 부르러 갔다. 임 교수는 유강후를 진찰했고, 그의 허리 상처가 조금 찢어진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며칠 간의 회복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고, 임 교수는 간단히 처치한 후 당부했다. “이 며칠간은 크게 움직이지 말고 조심하셔야 돼요!” “계속 찢어지면 절대 나아지지 않아요. 젊은 사람들이 한창 좋을 때라는 걸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상황과 장소를 분별해야죠!” 온다연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져 터질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히도 본가 사람들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온다연은 정말로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임 교수가 떠난 후, 유강후는 그녀에게 자신의 옆에 누워 쉬라고 했다. 이 며칠간 계속된 불안감 때문에 온다연은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이제 긴장이 풀리자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 유강후는 그녀를 오랫동안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녀 뱃속에 아기가 있다는 생각에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녀가 여전히 어린아이 같아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이나 체력이 없다고 느꼈다. 게다가 그녀의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건강한 생명을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이런 생각들이 그의 기대감을 가라앉혔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다연아, 지금 네 상황을 보면 이 아기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고, 잠든 온다연은 전혀 듣지 못했다. 그녀는 여전히 깊고 달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유강후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 슬픔이 스며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장화연이 들어왔다. 그녀는 눈앞의 상황을 보고 나가
이때, 그의 곁에 웅크리고 있던 온다연이 살짝 움직여 유강후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혼식에 필요한 물건은 네가 먼저 살펴봐. 구체적인 세부사항과 물건은 내가 직접 고를 거야.” 장화연은 바로 대답했다. “네!” 그러다 잠시 생각한 후 유강후에게 물었다. “이 일은 어르신과 상의해야 할까요?” “살짝 언급하기만 하면 돼. 어머니는 국내에 오래 계시지 않을 거야. 연서의 죽음은 어머니에게 평생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 여기 있어 봤자 마음만 더 아플 거야.” 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혹시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났나요?” 장화연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르신은 여전히 셋째 회장님 만나기를 거부하고 계십니다.” 유강후는 침묵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말했다. “됐어, 장 집사는 먼저 나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서 우리를 방해하지 않도록 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친구조차도 못 만나게 하는 거야?” 한이준이었고, 그의 옆에는 임혜린이 서 있었다. 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해, 우리 다연이 자고 있어!” 한이준은 침대에 누워 있는 온다연을 힐끗 보더니,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정말 떨어질 수가 없네. 이렇게 작은 침대에서 꼭 붙어 자야 해? 상처가 다시 터질까 봐 걱정 안 해?” 그의 목소리가 커지자, 온다연은 금세 잠에서 깼다. 그녀는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한이준과 임혜린을 바라보았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되는 듯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때 장화연이 온다연이 깬 것을 보고 가져온 캐시미어 숄을 덮어주며 말했다. “온다연 아가씨, 배고프신가요? 제가 치킨 수프를 가져왔어요.” 온다연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임혜린이 달려와서 온다연을 부둥켜안으며 흔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연락이 안 돼서 진짜 속이 타 죽는 줄 알았
유자성이 차가운 얼굴로 문 앞에 나타나더니 경호원들을 향해 손짓했다.“유씨 저택으로 데려가요.”경호원이 망설였다.“문 앞의 경호원이 검문하면 어떡합니까?”유자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아버지의 지시라고 말해요. 그 사람들이 감히 아버지 명령을 거역하지 못해요.”“네!”이때 밖에서 누군가가 말했다.“유자성 씨,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유자성은 혼수상태에 빠진 유강후를 힐끗 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얼른 데려가요. 그 다음 일은 할머님이 지시하실 거예요.”말하고 나서 그는 유재성의 병실에 들어갔다.유재성은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고, 병색을 띠었지만 전반적으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그는 유자성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정색하며 말했다.“또 강후에게 전화했어? 그냥 잔병이고 고질병이야. 2-3일 지나면 퇴원할 수 있어. 강후가 바쁠 텐데 방해하지 마.”유자성은 뜨거운 물을 따라서 그에게 건네주며 웃었다.“아버지, 걔가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방금 전화했더니 비서가 받더라고요. 지금 국내에 없고 며칠 후에야 돌아온대요. 강씨 집안에 볼일이 있나 봐요.”유재성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이더니 한참 후에야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너희 두 형제가 얼마 전 마찰이 있었다던데, 강후가 돌아오면 내가 화해시켜 줄게. 친형제 사이에 분란이 생기면 안 돼야. 계속 이대로 나가면 유씨 집안에 조만간 큰 문제가 생길 거야.”유자성은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걔가 남을 위해...”“그건 강후의 선택이야.”유재성은 언짢은 얼굴로 유자성의 말을 잘랐다.“누구와 결혼하는지는 강후 자신의 선택이야. 형이라는 사람이 축하는 못 할망정 방해하다니. 그게 말이 돼?”유자성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걔는 이제 우리 집안일을 전혀 상관하지 않고 하령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하령이 어렸을 때 그 고아와 약간의 마찰이 있었는데, 무슨 엉뚱한 소리를 들었는지 모든 잘못을 하령에게 돌리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하령이
온다연은 그의 손을 반대로 잡았다.“혼인신고는 하루 이틀 늦출 수 있어요. 아버님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그분은 다른 유씨 집안 사람들과 달라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유씨 가문이 무너지든 말든 그녀는 관심이 없다.하지만 유재성은 유강후의 친아버지다. 게다가 집에 있는 시간이 극히 적어 그녀와 마주칠 기회도 거의 없었으니 유하령이 그녀를 괴롭히게 방임한 유자성과 달랐다.유강후의 눈빛은 유난히 어두웠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차에서 이권이 입을 열었다.“셋째 도련님, 강 대표님께 알릴까요?”유강후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저었다.“아니, 어머니는 아버지 소식을 듣고 싶지 않으실 거야.”이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생각에 잠겨 창밖을 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아버지 사무실에 전화해서 정말 귀국했는지 확인해 봐. 너무 공교로운 것 같아.”이권은 즉시 전화를 걸었고, 연결된 후 몇 마디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사무실에서 회장님이 어제 귀국하셨고, 아파서 지금 병원에 있다고 합니다.”유강후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이권이 또 입을 열었다.“참, 영상을 올린 사람을 찾았는데, 자기가 아무 생각 없이 올렸고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줄은 몰랐다고 잡아떼고 있어요.”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간단해. 지금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뒤에 있는 사람이 두려워서야. 우리가 그쪽보다 더 무섭고 더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말하지 않을 수 없어.”이권이 고개를 끄덕였다.“각 플랫폼에서 인기 댓글과 동영상을 삭제하면서 이미 열기가 식었어요. 댓글 알바들도 우리 쪽의 맹렬한 반격에 꼼짝달싹 못 하고 있고, 일부는 신상까지 털려 아우성이에요.”“주희가 올린 영상도 한몫했어요. 열광적 팬들이 물고 놓지 않아 악성 댓글 작성자들이 뭇매를 맞았나 봐요.”유강후는 표정이 극히 차가웠다.“배후에 있는 자는 잘 숨는 게 좋을 거야. 누군지 알게 되면 내가 죽고
유강후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오늘 휴대폰을 안 쓰기로 했잖아.”온다연이 잠시 머뭇거렸다.“아직 외출하지 않았으니 한번만 볼게요. 중요한 사람이 아니면 받지 않으면 되죠.”유강후는 성큼성큼 방에 들어가 온다연의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안색이 흐려졌다.“왜 염지훈에게 네 전화번호가 있어?”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이 휴대폰 번호는 그녀가 퇴원한 후 유강후가 특별히 새로 개통한 것이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염지훈이 어떻게 아는 거지?온다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강후가 수신 버튼을 눌렀다.염지훈의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연아, 괜찮아? 인터넷에서...”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유강후가 쌀쌀하게 잘라버렸다.“염지훈, 참 낯짝이 두껍구나. 우리 곧 결혼해. 나를 자극하지 마. 매번 네 형의 체면을 봐서 넘어가 줄 수는 없어.”염지훈이 코웃음을 쳤다.“유강후 씨, 낯짝이 두꺼운 건 당신이에요. 아저씨라는 명분으로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숨겼잖아요. 왜 그렇게 친절하게 온다연을 곁에 두는가 했더니 그런 더러운 마음을 숨기고 있었네요. 당신이 강요한 거죠?”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렇더라도 너하고는 상관없어. 다시는 우리 앞에 얼쩡대지 마.”그는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온다연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는 휴대폰 전원을 끄고 침대에 던져버렸다.아침을 먹을 때, 온다연은 혼인신고 후 기념사진을 찍을 생각에 약간 뒤숭숭했다.그래서 대충 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우유와 계란찜을 그녀 앞으로 밀었다.“조금 더 먹어.”이때 장화연이 휴대폰을 들고 들어왔다.그녀는 다급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셋째 도련님, 본가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버님이 갑자기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대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디가 편찮으시대요? 해외 방문 중이었는데, 귀국하셨어요?”장화연이 대답했다.“뇌경색인데, 지금 병원에 계시다고 합니다.”유강후는 손을 멈추었다.“심각하시대요?”
게다가 방금 뜨거운 사랑을 나눈 까닭에 얼굴에 옅은 홍조가 올라와 천진하고 아리따워 보였다.유강후는 한참 지켜보다가 또다시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꼬맹이는 그런 것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 자그마한 양지옥 열쇠를 만지작거렸다.“진짜 예쁘네요. 언제 산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을 잡고 그 열쇠를 만지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산 것이 아니야.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거지.”온다연이 깜짝 놀랐다.“그렇게 비싸요?”유강후는 열쇠에 새겨진 정교한 무늬를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옛날에 왕이 쓰던 옥인데, 큰돈을 들여 낙찰받은 후 최고의 수공예 장인을 모셔다 3년에 걸쳐 완성한 거야.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물건이지.”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뽀뽀하더니 정색하며 말했다.“이건 강씨 집안 여주인의 물건이라 강씨 집안 여주인만 사용할 수 있어.”“이 열쇠는 강씨 집안 금고 열쇠야.”온다연이 화들짝 놀랐다.“이건 너무 귀중한 물건이라 받을 수 없어요.”그녀는 말하면서 목걸이를 풀려고 했다.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고했다.“네가 감히 풀면 그 손을 분질러버릴 거야.”온다연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건 너무 귀중한 물건이에요, 아저씨...”그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우주그룹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재벌 그룹 중 하나이며 경제력이 탄탄해 한 나라의 경제를 어느 정도 조종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그런 우주그룹의 금고 열쇠를 그녀가 어찌 감히 받겠는가.“풀어서 넣어두는 게 좋겠어요.”유강후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안 돼. 적어도 오늘은 꼭 착용해야 해. 오늘은 우리가 혼인신고 하는 날이잖아. 오늘부터 너는 내 아내야. 즉 강씨 집안의 여주인이 되는 거지. 앞으로 매일 재무에 관한 지식을 가르쳐 줄 거야. 덩치가 큰 강씨 가문을 관리하려면 장부를 보는 법과 자산관리를 배워야 해.”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키스했다.“
유강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참을 수 없어도 참아야 해.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온다연은 지려 하지 않았다.“고쳐야죠. 계속 이러면 제가 어느 날 정말 견딜 수 없어 아기를 데리고 떠날 수도 있어요.”그녀의 허리를 잡은 큰손에 갑자기 힘이 실리고, 몸이 앞으로 확 끌려가 유강후의 다부진 몸에 찰싹 붙었다.그의 목소리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온다연, 다시 또 이런 말을 하면 정말 화낼 거야.”온다연은 수그러들지 않았다.“화를 내면 어쩔 건데요?”유강후는 실눈을 짓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나지막이 말했다.“이렇게 벌을 내릴 거야.”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깨물었다.곧 가쁜 숨소리가 전체 공간을 채웠다.온다연은 뒤에 있는 서랍장 때문에 옴짝달싹 못 했다.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의 강력한 공세를 견뎠다.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저번에 서재에서 관계를 가진 이후로 유강후는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듯 그녀가 만족할 수 있게 힘 조절과 수위 조절을 완벽히 해냈다.그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켰다.그는 그녀의 귓불을 가볍게 깨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이래도 떠날 거야?”온다연은 모든 신경이 그의 몸에 집중돼 사고력을 잃은 듯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아니, 떠나지 않을 거예요...”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에게 더 큰 보상을 해주었다.온다연은 거의 통제력을 잃고 또 그의 옷을 더럽혔다.다 끝나고 그의 옷이 얼룩덜룩해진 것을 본 그녀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의 몸에서 내려올 힘조차 없었다.유강후는 그녀의 몸이 달아올라 옅은 분홍색을 띠는 것이 좋고, 그녀가 자기 손에서 피어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수줍어하거나, 참지 못하거나, 약간 요염한 모든 것이 그의 것이다.그는 땀에 젖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넌 이런 게 좋아?”온다연은 방금 방탕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니 부끄러워 감히 대답하
온다연은 불만스러운 듯 볼에 바람을 넣고 눈살을 찌푸렸다.“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왜 아저씨는 휴대폰을 쓸 수 있는데, 저는 안 돼요?”너무 귀여운 모습에, 유강후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알았어. 오늘은 업무용 휴대폰만 쓸게, 됐지?”몇 개 대기업을 관리하는 그에게 휴대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다연은 당연히 잘 알고 있다.중요한 일이 있을 때, 유강후의 전화가 연결이 안 되면 금융시장에 꽤 큰 파문이 일 수도 있다.온다연은 조금 걱정됐지만 기쁘기도 했다.그녀는 살짝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오늘 하루 종일 같이 있을 거예요?”그동안 유강후는 아침과 저녁에만 집에 있었고, 낮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그래서 하루 종일 같이 있는다니 약간 기대가 됐다.유강후는 그녀에게 뽀뽀했다.“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고 싶어?”온다연은 귀 끝이 빨개졌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기도 함께했으면 더 좋을 텐데.”아기도 곧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니 그녀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가족은 원래 같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그녀는 그런 가슴 쓰린 아픔을 알기에 자기 아이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아이가 커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볼 것이며, 모든 고요한 밤과 희망찬 아침을 함께할 것이다.유강후도 이 아이를 몹시 아끼는 것 같고, 그녀가 지금까지 잃은 것들을 여기서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그런 걸 간절히 원해?”온다연은 그의 가슴에 기댄 채, 기대 어린 눈빛으로 중얼거렸다.“이건 저의 모든 희망이에요. 아저씨,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해요. 아기도 있고 아저씨도 있는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저 같은 사람도 이런 걸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아저씨, 고마워요. 아저씨도 아기를 위해 큰 노력을 했어요. 아기를 지켜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주혜성이고 오늘 실검에 오른 온다연의 죽마고우입니다. 우리 둘은 같이 자랐고, 거의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온다연은 마음이 고운 사람이었고 상간녀가 될 리 없습니다.”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온다연과 그 남자들의 이야기는 모두 누군가가 지어낸 헛소문입니다.”수줍게 웃는 그의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제가 오랫동안 쫓아다녔는데도 온다연은 저를 받아주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늙은 남자에게 반할 수 있겠습니까?”“제가 그 남자들보다 못생겼을까요? 그래서 그 남자들을 선택하고 저를 선택하지 않았을까요?”“온다연과 그 아가씨가 실랑이를 벌인 데는 뭔가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게다가 그 영상은 편집된 것입니다. 영상을 올린 분께서 전체 영상을 공개하시길 바랍니다. 일부만 공개해서 오해를 유발하지 마시고요.”“조금만 생각해 보면 헛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여러분, 법을 지키는 좋은 시민이 되십시오.”말을 마친 그는 카메라를 향해 천천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 모습은 성에서 걸어 나온 왕자처럼 우아했다.유강후는 동영상을 꺼버렸다. 그는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이 자식이 이런 방식으로 온다연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하다니.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모르겠다.주씨네 형제는 둘 다 정말 성가시다.이때 온다연이 침실에서 나왔다.그녀는 천천히 걸어와 뒤에서 유강후를 끌어안더니 맹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아침부터 뉴스를 봐요?”유강후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돌아섰다.그는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잘 잤어? 점심까지 자겠다고 하지 않았어?”온다연은 얼굴을 그의 손에 비비며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또 악몽을 꿨어요.”“무슨 꿈인데?”“꿈에 아기가...”그녀는 말을 멈추었다.왠지 모르지만 그녀는 자꾸 아이가 없어지는 꿈을 꾼다. 게다가 꿈속의 아이는 유강후와 똑 닮았다. 그녀는 꿈속에서 너무
나은별은 전화기 너머에서 울기 시작했다.“강후 씨, 내가 한 게 아니야.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렇게 뻔한 짓을 왜 하겠어?”“믿어줘. 정말 아니야. 강후 씨,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나에게 이 정도의 믿음도 없어?”유강후가 침묵을 지키자, 나은별이 울면서 말했다.“온다연 씨가 나를 오해하고 때렸어도 나는 온다연 씨한테 화풀이하지 않았어. 어쨌든 강후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강후 씨 체면을 봐서라도 온다연 씨에게 손을 대지는 않아.”“내가 당장 해명 영상을 올려서 온다연 씨의 누명을 벗겨줄 테니 의심하지 마.”유강후는 휴대폰을 꽉 쥔 채 쌀쌀하게 말했다.“나은별, 이 일이 너랑 상관없기를 바랄게.”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다.이권이 가자마자 한이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어떻게 된 거야? 지금 일이 너무 크게 번졌어. 여론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서 악성 댓글을 아무리 삭제해도 계속 올라와.”“실시간 검색어를 최대한 삭제하고 있지만 이미 널리 퍼져서 덮기는 어려울 것 같다.”“뒤에서 누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빨리 퍼질 수 없어.”유강후는 휴대폰을 잡은 채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덮어야 해. 악성 댓글 작성자 아이디를 전부 기록해. 헛소문을 퍼뜨렸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그는 전화를 끊고 즉시 몇몇 대형 SNS와 동영상 사이트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들 중 몇 명은 평소에도 미래그룹과 사업상 접촉이 많은 터라 전화를 받은 뒤 곧바로 실시간 검색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다른 몇 명은 유강후와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미래그룹처럼 덩치가 큰 거대기업이 먼저 손을 내미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어쨌든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은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 점점 밀려나다가 점차 실시간 검색어에서 사라졌다.하지만 유강후는 방심하지 않고 동향을 예의 주시하라고 부하에게 시켰다.잠시 후 이권이 누군가가 댓글 알바를 고용해 인터넷에서 온다연의 과거를 캐기 시
집에 들어선 후, 유강후는 시원한 연고를 가져와 온다연에게 발라주었다.그런데 장화연이 어쩌다 이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온다연은 한순간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밥도 먹지 않고 숨어 있었다.유강후도 너무 후회되어 그녀를 끌어안고 한참을 달랬다.저녁에 아기 보러 병원에 갈 때까지 이 상황은 계속됐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진 것을 보고 온다연은 그제야 겨우 화를 풀었다.이튿날 아침 유강후가 침실에서 나오니 이권이 벌써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셋째 도련님, 인터넷을 좀 보세요. 온다연 씨가 인터넷 스타가 됐어요.”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인터넷 스타라니, 무슨 소리야?”이권은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건넸다.“일단 보세요. 제가 처리하고 있긴 하지만, 실검을 세 번이나 눌렀는데도 상황이 정리가 안 돼요.”‘상간녀가 보석 가게에서 본처를 때렸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가 있었고, 그 아래에 비슷한 댓글이 가득 달렸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동영상을 열었다.어제 온다연이 보석 가게에서 나은별과 싸우는 장면이었다.동영상만 보면, 확실히 온다연이 먼저 때렸다. 게다가 온다연은 날뛰고 있고, 나은별은 한 번도 반격하지 않은 채 처참하게 맞는 모습이었다.동영상은 온다연이 나은별을 때리는 데서부터 시작돼 조아영이 그녀를 끌어낼 때까지 1분여 동안 지속됐다.중간에 편집 흔적이 전혀 없어 딱 봐도 원본 영상이었다.‘좋아요’가 600만 개 이상, 리트윗이 300만 개 이상에 달하고, 댓글 창은 온통 욕하는 말들로 도배됐다.[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상간녀가 이렇게 대놓고 날뛰어도 되는 거야?][이건 너무 심하잖아. 상간녀가 누군지 신상 털어!][진짜 뻔뻔스럽군. 유부남을 꼬신 주제에 감히 이렇게 날뛰다니. 이 여자와 부모의 신상을 털어 온 가족이 고개를 쳐들고 다니지 못하게 해야 해.][본처가 진짜 나약하네. 내가 저 여자라면 그 자리에서 상간녀 머리를 부숴버렸을 거야.][상간녀가 어려 보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