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밖에서 너절한 친구를 사귀고 있는데 집을 팔거나 사기를 당할까 봐...”유강후는 그녀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다연이가 지금 나를 따라온 이상, 이런 일은 형수님이 관여할 수 없어요. 나중에 서류를 보내줘요. 제가 가서 대신 명의 변경을 해 줄게요.”심미진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자성를 힘껏 잡아당겼다.유자성은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집 한 채는 안중에도 없었기에 덤덤하게 한마디 했다. “이왕이면 빨리 돌려줘.”그는 어조를 좀 누그러뜨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강후야, 우리는 친형제이니 너무 따지지는 말아라.”유강후는 대답하지 않고 그들 옆을 지나 소파에 앉았다.찻상 위에 따뜻한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는데 서서히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어서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고, 그는 한참 뒤에야 덤덤하게 물었다. “형님은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어요?”유자성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 있겠어. 며칠 동안 집에 안 왔잖아. 아빠가 와서 널 보라고 했어. 서주랑 하령이의 약혼에 대해 상의할 겸 왔어.”유강후는 탁자 위의 담뱃갑을 가져다가 한 개 꺼내 불을 붙였지만 피우지 않고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의 아들딸이에요. 결혼 같은 일은 나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유자성는 그 속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 한 마디씩 늘어놓았다.방안에서 집사가 온다연의 가정복을 가져와서 갈아입혀 주고는 따뜻한 우유를 들고 그녀가 마시는 것을 지켜보았다.우유를 다 마시자 컵을 받아들고 막 방을 나서려는데 온다연이 작은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장 집사님, 아저씨 아직도 얘기해요? ”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직 얘기 중이세요.”온다연은 다시 얼굴이 창백해지며 낮게 말했다.“이모가 절 아저씨한테 보내는 거예요?”며칠을 함께 지낸 집사는 그녀의 사정을 딱하게 생각하며 걱정스러운 듯 조용히 말했다. “다연 아가씨는 이미 스무
방에 들어선 유하령은 비싼 가구들의 우아한 기풍에 질투가 났다.유강후가 사는 곳은 장식이 언제나 고급스럽고 품격이 있었다.예를 들어 이곳 말이다. 발밑에 흰색의 순수한 수제 캐시미어 카펫을 현관에서 침대 옆까지 깔았는데, 밟으면 두툼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매우 비싸다는 것을 보여줬다.비싸다고 소문난 수작업으로 만든 페르시아 융단이었는데, 그녀의 방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물건이 없었다.그리고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인 온다연은 카펫 끝에 있는 침대에 앉아 있었는데, 부드러운 불빛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물들였다.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유하령은 온다연의 촘촘한 속눈썹이 가볍게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연약하고 정교해서 사람을 잘 끄는 모습이었다.‘바로 이런 모습으로 아저씨를 꼬신 건가? 나도 아직 이 집에 발을 들이지 못했는데 이 천한 년이 먼저 들어왔다니! 무슨 근거로? 그럴 자격이 없어!’유하령가 질투 나서 미칠 것 같았다.그녀는 달려들어 온다연에게 뺨을 한 대 때리고 이를 악물었다. “온다연, 감히 내 아저씨에게 눈독을 들여?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그녀가 들어오자 온다연은 상대방이 집사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유하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녀는 심미진인 줄 알았다.실망했지만 이내 유하령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걸 예감했다.하지만 여기는 유씨 가문이 아니니 그녀도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그녀는 방금 맞은 곳을 더듬었는데, 그곳은 불타고 있는 것처럼 따끔했다. 얼얼하게 부어오른 그녀는 혀로 까진 입안을 헤치고 있었는데 초점 없는 두 눈이 차가워 보였다.“유하령, 뺏긴 기분은 어때? ”유하령은 몸을 부르르 떨며 온다연의 머리채를 잡고 흉악하게 말했다.“너 역시 일부러 그랬구나. 일부러 내 아저씨에게 접근해서 그의 동정을 이용하며 권세에 빌붙은 건 너에게 높은 가문의 자제를 소개해 달라고 하려고? 잘 들어, 너 그거 그냥 꿈이야!”“얼마나 오랫동안 동정해 줄 것 같아? 아저씨는 내년에 약혼을 앞두고 있어. 지금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연기였고, 그녀는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 본 적이 없는 그녀는 갑자기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더러운 년, 감히 나를 모함하다니!”그녀는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힘껏 그녀를 걷어찼다.뾰족한 하이힐이 온다연의 복부를 걷어차자 온다연은 심한 통증을 느끼며 피를 토해냈다.그런데도 유하령은 화가 풀리지 않아 발을 들고 또 걷어차려 했지만 손을 쓰기도 전에 갑자기 유강후가 목을 졸라왔다.그는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채 유하령을 살의를 띤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그뿐이 아니었다. 유강후는 거의 죽을힘을 다했는데, 그 힘은 그녀를 그대로 목 졸라 죽이려는 것과 같았다.유하령은 입을 벌리고 숨을 몰아쉬었지만 얼굴이 조금씩 새빨개지며 쉰 목소리로 간신히 뱉었다.“아저씨...”그러나 유강후는 못 들은 듯 눈초리가 매섭고 살의가 짙어졌다. 잠시 후 유하령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녀는 순간 아저씨가 정말로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필사적으로 유강후의 손을 내리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곧 질식하여 기절할 것 같았다.그때 유자성이 달려들어 유강후의 손을 잡아끌며 호통쳤다. “강후야, 뭐 하는 거야? 놔! 네 친조카야!”유강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힘껏 뒤로 젖히자 유하령의 몸이 순식간에 날아가 벽에 세게 내동댕이치고는 땅바닥에 떨어졌다.거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유하령은 숨을 크게 몰아쉬며 기침을 계속했고 목이 끊어질 듯 아팠다.그녀는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아저씨를 쳐다보았다.그녀는 아저씨가 방금 그녀를 죽이려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것도 외부인을 위해서 말이다!그러나 유강후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허리를 숙혀 온다연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그녀는 바닥에 엎드린 채 피를 토하고 있었는데 하얀 카펫이 젖어 있어 그 모습이 섬뜩했다.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진 채 손을 뻗어 그녀를 안으려고 했지만, 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
온다연은 몸을 떨며 머리를 숙이고 말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갑자기 몸을 돌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심미진을 향해 소리쳤다. “나가요.”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조금도 인정사정이 없었다.“세 사람, 내 집에서 나가요. 여기는 여러분을 환영하지 않아요!”유자성는 안색이 변하며 나지막하게 호통쳤다.“강후야, 말도 안 돼. 난 네 형님이야. 친형님이라고!”유강후는 손을 떼고 문을 향해 가리키며 소리쳤다. “당장 나가요!”유자성은 화가 나서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동생은 비록 성격이 냉담하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두 사람은 그래도 화목한 편이었다. 그들은 심한 말 한마디도 약간의 다툼도 없었다.뜻밖에도 오늘 외부인을 위해 여러 차례 비꼬았을 뿐만 아니라, 방금 실수로 유하령을 다치게 할 뻔했다.지금은 더욱이 이 외부인을 위해서 그를 내쫓고 있다.형님으로서의 체면과 위엄은 앞으로 어디에 둬야 한단 말인가.그는 온다연을 가리키며 화를 냈다.“쟤를 위해서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유강후는 얼굴빛이 매우 차가웠다.“형, 잊지 말아요. 두 분이 버린 거예요. 두 분이 버린 걸 제가 주우면 당연히 내 사람이고, 내 사람은 아무도 괴롭힐 수 없어요!”유자성은 지금까지 누군가 이렇게 대든 적이 없었던 터라 화가 나서 손가락질하며 말을 하지 못하고 얼굴이 지지 벌게졌다.심미진은 형제가 싸울 것 같아지자 급히 유자성을 말리며 말했다.“자성 씨, 우리 먼저 가요. 도련님도 잠시 저러는 거지 나중에 깨달으면 자연히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그러더니 한 손으로는 유하령을 부축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자성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문 앞에 막 도착했을 때 온다연이 갑자기 머리를 들었다.“이모! ”목소리가 잠긴 것이 마치 우는 것 같다.심미진은 못 들은 듯 빠른 걸음으로 갔다.그녀가 가는 것을 들은 온다연은 땅에서 일어나 더듬거리며 밖으로 나갔고, 유강후는 그녀를 잡아끌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를 확 밀어버렸다.그녀
“망가지지, 망가지면 안 아플 텐데!”그러더니, 자기 가슴을 후려갈겼다.유강후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찢기듯 아팠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다연아, 나 있잖아. 나 여기 있어.”온다연은 그를 피하며 목에 힘을 줘 소리쳤다.“아저씨가 필요 없어요. 난 아저씨를 원하지 않아요. 이모, 난 단지 내 이모를 원해요!”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문밖으로 뛰어갔다.그러나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녀는 문에 기대어 목청껏 소리쳤다.“이모!”“이모!"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바람 부는 소리와 돌 위에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그녀는 몇 번 불렀으나 대답을 듣지 못하고,문 앞에 서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다.그 작고 연약한 모습에 유강후는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차가운 바람이 심장에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잠시 후 온다연은 처량한 목소리로 또 한 번 불렀다.“이모!”역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갑자기 몸을 돌려 손에 닿는 것을 전부 땅에 쓸었다.“거짓말이야, 다 거짓말이야!”곧 입구 현관에 있던 물건들이 엄청나게 값비싼 도자기와 골동품을 포함하여 땅바닥에 널려 있었다.집사가 나서서 막으려고 했지만 유강후가 저지했다.그는 그녀가 물건을 아무렇게나 부수는 것을 눈도 깜박이지 않고 지켜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그냥 놔둬.”집사는 아무 말 없이 산산조각이 난 명품 도자기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만 지었다.한참 후, 온다연은 지쳐서 깨진 도자기 조각 더미에 그대로 드러누웠다.도자기 파편이 그녀의 피부에 박혔지만 그녀는 전혀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유강후는 다가가서 그녀를 안아 올리고 그녀의 몸에서 작은 파편을 털어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됐어?”온다연은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힘들어요. 살고 싶지 않아요.”그녀를 꼭 껴안고 있는 유강후의 손은 무서울 정도로 힘이 세지만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살아야 해. 그것도 잘살아야 해.”온다연은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혼잣말을 했
“아파요, 아파 죽을 것 같아요.”온다연은 아프다고 호소하며 손으로 명치를 꽉 움켜쥐고 몇 번을 두드렸다. 그러자 하얀 허리선이 살짝 드러났고 주 의사는 황급히 눈길을 돌렸다.유강후는 순간 그녀의 허우적대는 손을 잡고 담요를 그녀의 몸에 걸치며 조용히 말했다.“다연아, 움직이지 마. 선생님 보셔야지.”온다연은 정말 괴로운지 가슴을 잡으려고 했지만 유강후가 막았다.다시 한번 자세히 검사한 후, 주 의사는 신경을 진정시키는 약을 처방했다.가기 전에 온다연이 아프다고 아우성치는 걸 보니 몸이 너무 약해 보였고, 기본적인 기운마저 사라진 듯 초점 없는 눈은 더욱 막막하고 무기력해 보였다.주 의사는 고개를 저었지만 어쩔 수 없어 다시 온다연에게 안정 주사를 놓고 강제로 잠을 자게 하는 약을 처방했다.온다연은 약을 먹고 곧 잠이 들었다.하지만 잠이 들어도 땀과 잠꼬대를 멈추지 않을 정도로 불안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새까만 머리카락이 새하얀 목에 닿아 점점 예쁘게 보였고 입술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유강후는 그녀가 잠든 모습을 침울하게 바라보았다.사실 오늘 일부러 그랬다. 온다연이 심미진에 관한 생각을 완전히 끊었으면 하는 마음에 오늘 이 극약을 먹여야 했다.그는 결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생각이 많은 그의 모든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되어 있다.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말 한마디, 모든 일의 시작은 모두 그의 통제 안에 있었다.유일한 사고는 온다연이 너무 자극받은 것 같다는 것이다.온다연의 심미진에 대한 애정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것 같았다.그녀가 바닥에 누워서 가슴을 쥐어짜면서 가슴이 아프다고 하는 모습에 그의 심장도 덩달아 아팠다.그의 손은 그녀의 보드라운 뺨을 천천히 쓰다듬다가 그 위에서 부드럽게 멈췄다.잠든 얼굴은 희미한 불빛에 애꿎고 앳돼 보였고, 입술을 살짝 벌리고 있는 모습은 키스를 기다리는 듯했다.유강후는 잠시 바라보다가 마치 귀신에 홀린 듯 몸을 숙여 그녀의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손에서 그녀가 이렇게 자랄 줄은 몰랐다.천천히 눈을 가늘게 뜨는 그의 눈 속 서리가 점점 더 두터워졌다.‘그 사람들은 전부 다 죽어야 한다!’온다연은 이번에 병이 심해서 정신이 조금 흐릿해졌다.처음에는 계속 열이 나서 이모를 부르기도 하고 하는지를 부르기도 했는데 강후의 손을 놓으려고 하지도 않았다.2, 3일 동안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한의사의 약이 효과가 있었고 4일째에는 점차 깨어났는데 시력도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이전보다 더 말이 없었고, 이번에는 고양이를 안고 마루 앞에 서서 정원의 큰 나무를 보며 넋을 잃고 있었다.엷은 햇빛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창백하고 정교한 얼굴을 비추자 온다연은 마치 생기가 없는 조각상처럼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이권이 들어오자마자 유강후가 사무실을 거실로 옮긴 것을 보았다.오늘 유강후는 트윌 무늬의 고정 흰색 셔츠와 철회색 양복바지를 입었는데 깨끗하고 차갑고 존귀하기 그지없었다. 비록 머리를 숙이고 서류를 검토하는 동안 사람을 보지 않았지만 그 상위자의 강한 기세는 여전히 얼굴에 띠고 있었다.이권은 만약 그가 유강후를 이렇게 오랫동안 따르지 않았다면, 외모로만 봤을 때 유강후가 인간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 뼛속까지 차가운 도련님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사실 유강후라는 사람은 정말 알 수 없는 존재였다. 인내심을 보일 땐 부처님 같지만, 일 처리는 한 치의 허점도 보이지 않게 하며, 독할 때는 순식간에 마귀로 변신해 상대방을 지옥에 떨어뜨린다..며칠 후에 일어날 일을 떠올린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고는 손에 든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나지막하게 말했다.“도련님, 물건은 다 준비됐습니다.”유강후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올려다보고는 옆에 있는 온다연에게 말했다.“다연아, 약 식어.”방에 난방이 잘 되어 있어서, 온다연은 흰 긴 소매의 원피스만 입고 창가 쪽 카운터에 엎드려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유강후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유강후는 눈
유강후가 눈살을 찌푸리며 옅은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여기로 오라고 했어?”이남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거의 다 와서 저한테 연락했어요. 이쪽 마당을 보고 싶다고 하는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도련님이 환영하지 않으니 돌아가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말하는 사이에 염지호가 이미 걸어 들어왔다.그는 30대 중반의 잘생긴 젊은 남자로 올백 머리를 하고 검은색 정장 위에 같은 색의 코트를 입었는데, 키가 크고 침착해 보였으며 눈빛에 장사꾼 특유의 총명함이 배어 있었다.그리고 그 뒤에 철회색 양복에 외투를 걸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는데, 유강후도 최근에야 만났던 염씨 집안의 염지훈이었다.유강후의 눈빛은 조금 어두워 보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냉담했다.“지호 씨 왔어요? 저기 탕비실에 가서 기다려요.”염지호는 코트를 벗어 마중 나온 직원에게 건네주더니 웃으며 말했다. “최근에 좋은 차를 많이 받았다고 해서 둘째를 데리고 와서 마셔보려고요.”그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옆에 있는 염지훈을 향해 말했다.“지훈아, 이분은 내가 자주 언급하던 유씨 가문 도련님이자 미래 그룹 현 대표님이쇼. 어때? 기품 있지? 사실 예전에 두 사람 만난 적이 있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니 다시 인사해.”염지훈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유강후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도련님, 또 뵙네요.”유강후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벼운 악수로 인사를 대신했다.그런 다음 그는 온다연을 돌아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다연아, 할 말이 있으니 방에 가서 쉬거나 꽃방을 둘러봐.”염지호는 그제야 소파에 앉아 있는 한 소녀가 연백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비단결 같은 검은 머리카락에 뽀얀 피부를 하고 있었고 눈썹과 눈이 매우 정교해 보였다.염지호처럼 많은 여자를 만나 미인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도 지금은 살짝 놀란 채 눈을 떼지 못했다.그 소녀는 품에 아주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베이지색 가죽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는데, 표정이
봉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도 요즘 아이랑 마누라 돌봐야 하니 시간도 없을 거잖아. 내가 알아서 방법 구해볼게.”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송지원도 뒤따라 나와 봉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에 지예솔 씨가 진짜 큰맘 먹고 멀리 가버린 거 같은데 현수는 아직도 경원시 근처에서만 찾고 있어. 어쩌면 출국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해줄 수가 없네.”“현수 지금 상태가 매우 위험해. 마치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정도로 한계에 도달한 거 같아. 저러다 큰일이 일어날까 봐 두렵네.”두 사람은 한마디씩 하고는 침묵하였다.한참 지나 유강후가 먼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우리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해. 요 며칠은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네가 옆에서 좀 더 신경 써줘.”송지원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한이준은 며칠 동안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안 통하던데. 내가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비서가 그러는데 걔가 섬에 집을 사서 지금 장식을 하고 있고 외부 사람들과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이 자식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이때 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유강후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들어가. 현수랑 이준의 일은 네가 좀 더 신경 써줘. 내 쪽에 사람들은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조정해서 데리고 가면 돼.”들어가 보니 동생이 울면서 손발을 자꾸 흔들어 옆에 자고 있던 오빠도 깨웠다.오빠는 오히려 깜깜한 눈을 뜨고 조용하게 누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듯 하였다.유강후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아이들이 배가 고픈가 봐요.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말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온다연을 한 번 보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장화연은 간호사의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분유로 먹여요. 사모님은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요.”이때 온다연도 놀라 잠에서 깼다.
유강후는 당황했던 마음이 그제야 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그 아이는 힘들게 임신했고 유강후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안전하게 출산까지 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바로 온다연의 건강 상태였다.“주 선생님, 앞으로 제 아내의 건강을 잘 부탁드릴게요. 두 아이도 만약 두통이나 열이 있다 해도 많이 신경 써주셔야 해요.”주 선생님은 급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큰일은 아니에요. 두 아이도 지금 봐선 건강 상태가 아주 좋으니 잘 키우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유 대표님.”주 선생님을 보낸 후 유강후는 정성스럽게 온다연을 보살피며 약도 먹이고 재우기도 하였다.한참 뒤에 송지원과 봉현수가 아이들 보러 병원에 찾아왔다.송지원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시정 쪽에서 방금 온 것이 분명했다.봉현수는 비록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이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유강후는 보자마자 그의 정신이 극도로 쇠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봉현수는 아이들의 선물을 유강후에게 건네고 나서 소파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반면 송지원은 두 아이에게 관심을 쏠리며 간호사에게 아이를 안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송지원은 아이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넌 아들딸을 한꺼번에 얻었지만 우리 몇 명에서 한재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네. 이 아이의 행운을 빌어 나도 나중에 쌍둥이가 생길 거야.”유강후는 얼른 아이를 뺏어 안고는 말했다.“저리 비켜, 누가 너더러 내 아들의 행운을 빌라 했어. 그렇게 행운을 갖고 싶으면 너 절로 절에 가서 빌던지.”송지원은 두 녀석을 매우 귀하게 여기며 또 손을 뻗어 여동생을 안았다.“핑크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니 여자아이겠지? 너무 귀여워, 나도 딸이 욕심나네.”송지원은 여동생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난 이 두 아이의 양 아빠가 될 거야. 앞으로 날 송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유강후는 송지원이 딸을 안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상처가 아플까 봐 번갈아 가며 아이를 안아 보여줬다.조용하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이번에는 보온 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네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유강후는 속상한 마음으로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했다.“보온 실은 필요 없어. 의사가 아이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말해줬어. 하지만 그래도 그웬을 와서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만 우리 집에 있으라 했어.”“우리 아들을 데리고 와봐요, 한번 보게요.”유강후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온다연의 옆에 눕혔다.온다연은 감히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만 옆으로 돌려 쳐다보면서 이 아이가 꿈속의 그 아이를 닮았는지 궁금했다.안타깝게도 아이는 아직 너무 작아 이목구비가 모두 주름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온다연이 실망하는 모습을 본 유강후는 웃으며 말했다.“아들은 날 닮았고 딸은 널 닮았어.”온다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이목구비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유강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난 보이거든.”유강후는 몇 시간 동안 작은 침대 옆에 붙어 서서 아이의 이목구비와 윤곽을 수없이 분석한 결과 아들은 그를 닮았고 딸은 온다연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유강후는 희망컨대 두 아이가 모두 온다연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더니 남자아이는 좀 강하게 생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두 아이를 모두 온다연의 곁에 눕혀두고 팔을 뻗어 그들 세 모녀를 품에 안으며 아주 정성스럽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젠 너희들은 내 인생의 전부야.”유강후는 앞으로 약점이지만 보호막이 될, 그한테는 세상 전부인 이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턱에 나온 수염을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 요즘 많이 피곤했죠? 안색이 너무 안 좋으니 이제 좀 쉬어
“네가 정치일에 개입도 하지 않았고 나도 이제 곧 은퇴할 것인데 만약 본가에서 나쁜 기사라도 터지면 우린 경원시에서 설 자리도 없게 돼. 그럼 우주 그룹이나 본가나 다 영향받을 수 있잖아.”유강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유연서는요? 연서의 일은 어떻게 말씀하실 건데요? 은혜를 갚고 싶으면 알아서 갚으세요.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겠지만 누나의 목숨으로, 또 저의 행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려 하지 마세요.”“그리고 제 아이들은 유씨 성을 안 가질 거고 본적에도 넣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이름이 있어요. 하나는 강 씨 이고 하나는 진 씨 에요. 본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괜히 여기 와서 다연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세요. 다연이는 본가 사람이라면 이제 치를 떨어요.”유재성은 급해하며 말했다.“괜찮아, 나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아. 아이들이 유 씨가 아니라도 내 손 군들이야. 다연이가 날 싫다 그러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만 잠깐 만나볼게.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아이들에게 선물도 준비하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통화를 끊어버렸다.이때 이권이 걸어오더니 말했다.“대표님, 아이들의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작은 도련님이랑 아가씨 이름은 준비하셨죠?”유강후는 이권의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받아 그 위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그러자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역시 이미 생각해 놓으셨군요.”“남자아이는 다연이랑 같은 성씨로 진 강남으로 했고 이건 다연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거고 여자아이는 강아름으로 나랑 어르신이 같이 지은 거야.”이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작은 도련님이 진씨 가문의 성을 따르게 되면 어르신이 화 안 내실까요?”유강후는 종잇장을 건네주며 말했다.“어르신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아 이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그럼 아이의 성이 둘 다 진 씨라면 강씨 가문의 자손이 아닌 거야? 다연이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들인데 하나는 진 씨 성을 가지면 또 어때? 둘 다 진 씨 성을 따른
유강후가 가장 세게 흔들고 있는 작은 손을 건드렸더니 녀석은 바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이상하게도 녀석은 곧 칭얼거리지 않았고 작은 입을 쩝쩝대더니 조용해졌다.유강후는 갑자기 멍해지며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이것이 내 아이와 실제로 접촉하는 느낌인 건가?’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유강후가 막 아이를 안으려 할 때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입원실에 가서 안아봐요. 산모도 곧 나올 테니 여기 막아서면 안 돼요.”유강후는 몹시 아쉬워하며 장화연과 이권 더러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고 자신은 문 앞에서 온다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도 나왔다.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온다연은 아직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녀를 받아 입원실로 옮겼다.입원실은 예전 온다연이 쓰던 큰 방으로 이미 모두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두 꼬마 녀석은 침대 옆의 작은 침대에 두었다.두 아이와 온다연은 모두 조용히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들 모자 셋을 옆에서 지켜보았다.잠깐 사이에 유강후는 많은 사진을 찍었고 한장 한장 들여다보면서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모멘트도 일 년에 한 번쯤 업데이트하는 유강후가 오늘은 연속으로 세 개의 게시물을 올렸다.그것도 모자라 다시 작은 그룹 채팅을 만들어 잘 아는 몇몇 친구들을 그룹에 끌어들이고 그중에는 염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러고는 제목에 쌍둥이 남매가 부럽지 않냐고 그래도 소용없다고 계속 부러워하라는 글을 덧붙여 20장이 넘는 아기의 사진을 연이어 보냈다.얼마 안 되자 답글들이 올라왔다.송지원: 아이들이 태어난 거야? 축하해, 내일 보러 갈게.봉현수: 금방 태어난 거야? 난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 뒀어. 내일 지원이랑 같이 갈게.그 밑에는 붉은색으로 된 부동산 증명서 두 권의 사진이 첨부되었다.한재민: 축하해. 선물은 지금 오는 길에 있어. 설쯤에 제수와 아이들 보러 갈게.그웬: 벌써? 내가 아직 가지도 않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빼꼼히 열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한 명은 태어났고 지금 다른 한 명도 나오는 중이니 가족들 진정하고 조용히 해주세요.”말을 하고 있는데 반쯤 열린 문에서 또 다른 한 명의 나긋나긋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안에 있는 의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2.6킬로가 되는 여자아기예요. 아기 상태도 아주 좋아요.”“산모 상태도 좋아요. 이제 봉합 수술을 시작하죠.”유강후는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제 자리에서 굳어 있는 채로 꼼짝도 못 했다.간호사는 그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들으셨죠? 동생도 나왔다네요.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합니다.”“유 대표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협조해 주시고 더는 문을 잡아당기지 말아주세요.”유강후는 바로 손을 놓고 부들부들 떨며 담배를 가지려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옆에 서 있던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축하해요. 작은 아가씨가 2.6킬로나 되는 걸 보니 도련님은 더 건장할 거예요.”유강후는 기쁜 나머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수 없었고 신이 나서 말했다.“다연이가 무사히 수술실에서 나오면 바로 통지해. 우리 회사 직원들 전부 3일 동안 휴가를 내줄 것이고 이번 달은 두 배의 급여를 발급할 거야.”그 말에 이권은 너무 좋아 웃으며 말했다.“그럼 직원들은 아마 좋아 죽을걸요? 대표님은 참 통쾌하시다니까요.”장화연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도련님, 제가 가서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의 옷을 가져올게요. 방금 급하게 나서다 보니 챙기는 걸 까먹었어요.”그러자 유강후가 바로 말했다.“다른 사람 보낼 테니 장 집사는 가지 말고 여기서 다연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내가 혼자서 서툴까 봐 그래.”“그리고 앞으로 날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고 회장님이라 불러.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으니 좀 무게감 있는 호칭으로 바꿔야지.”장화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선생님이라 부를게요. 무게감 있고 더 뜻깊어 보이잖아요?”“집안의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된 온다연은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빨리 수술해야 해요? 혹시 아이가 어떻게 된 건가요?”지난번의 임신 사건 후 온다연은 이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두려웠고 지금은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되는 것이 당연했다.그러자 의사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급해하며 말했다.“아이를 낳는 일은 누구도 장담 못 해요. 앞당겨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많이 생겨요. 지금은 양수가 터져서 자궁 상태가 안전하지 못하니 빨리 수술해야 해요. 아직 만삭이 안 되었지만 이 두 아이는 온다연 씨의 몸에 비해 작지 않은 편이라 일찍 출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온다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난다면 저는 괜찮아요.”온다연은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비록 그웬은 아니지만 경원시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이며 심지어 옆에서 수술에 도움을 주는 사람도 국내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였다.그런데도 유강후는 긴장한 나머지 수술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마저 바닥에 열 번 넘게 떨어뜨렸다.30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수술실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유강후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장화연,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나도 수술실에 들어가 봐야겠어.”그렇게 말하고 바로 수술실 문을 잡아당기자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유 대표님, 지금은 수술 중이라 여기서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장화연도 재빨리 달려가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도련님, 아이를 낳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은 건강 상태가 아주 좋고 아기도 뱃속에서 건강한 상태였어요. 게다가 많은 전문가가 수술실에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니 내심이 기다려요.”유강후는 처음으로 초조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수술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되어가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그러자 호사가 황급히 대답했
“지예솔이 며칠 전에 갑자기 사라졌대. 봉현수가 경원시의 땅 전체를 파헤칠 정도로 찾았지만 사람은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 게다가 봉현수의 회사에 일이 좀 생겨 그걸 도와 처리하느라 좀 늦었어.”유강후의 말에 온다연은 당황했지만 일부러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예솔 씨가 또 집 나갔어요? 이런 일도 이젠 한두 번이 아닌데, 며칠 더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죠.”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엔 좀 다른 거 같아. 지예솔이 봉현수와 함께 썼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고 사진이랑 다 삭제했어. 십여 년 전의 편지조차 다 버려버린 걸 보니 아주 철저하게 돌아선 거 같아. 이번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온다연은 냉정하게 말했다.“봉현수가 예솔 씨를 그렇게 대하는데 어떤 여자가 옆에 남아 있겠어요? 찾지 못한다 해도 자업자득이죠 뭐.”“봉현수가 지금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어. 게다가 쓰레기 처리 센터까지 가서 뒤지면서 몇 통의 편지와 망가진 장난감 몇 개를 되찾아왔어.”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지예솔이 너랑은 좀 친해 보이던데 혹시 너한테 메시지라도 보낸 건 없어?”온다연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그렇게 친한 정도도 아닌데 저한테 뭐 하러 연락하겠어요? 이미 떠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니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을 거예요.”그러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근데 저는 지예솔 씨의 소식을 들었다 하더라도 말 안 해줄 거예요.”“됐어요. 남의 집안일은 집에서까지 논하지 말아요. 장 집사님이 맛있는 걸 해놨어요.”말을 마친 후 온다연은 유강후를 밀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겨우 두 걸음을 걷던 온다연은 배가 처지는 느낌을 받아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저는 배가 너무 무거워서 걷기도 힘드니 강후 씨 혼자 내려가서 먹어요.”유강후는 갑자기 긴장해 하며 말했다.“낳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온다연은 그가 긴장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직도 이틀 더 있어야 겨우 8개월이
또 어느 큰 눈이 내린 날, 날씨도 엄청 추웠다.온다연은 오후에 잠깐 집을 나서 좀 먼 곳에 있는 작은 여관에 갔다.여관방에서 온다연은 주머니 하나를 지예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사람 찾아 만든 새 등록증이에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거니 일단 받아요.”“참, 그리고 안에 카드 한 장 있어요. 천만 원이 들어 있으니 저의 성의라 생각하고 그쪽에 가서 잘 살아요.”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 말했다.“확인해 보니 라현쪽에 유강후의 지사가 있었어요. 제가 이미 이유를 대서 그 지사를 대진 그룹 명의로 옮겼어요. 그쪽 사람들한테도 이미 인사를 했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지금 예솔 씨의 이름으로 경리를 찾아가면 돼요. 이름은 임진혁이라 해요. 하지만 그쪽은 외진 곳이라 제가 많은 도움은 줄 수 없을 거 같으니 이후의 일은 예솔 씨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지예솔은 등록증과 은행 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결국 받아들이고 자그마한 짐가방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온다연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저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물건이니 이거라도 받아주세요.”그녀가 건넨 물건은 너무 투명하여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옥팔찌로 비록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천만은 되는 듯해 보였다.온다연이 거절하려고 하기 전에 지예솔이 한마디 덧붙였다.“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제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요. 다연 씨가 갖고 있는 액세서리 하나도 이것보다 더 비싸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물건이에요.”온다연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옥팔찌를 받아들였다.“차가 도착했어요. 우리도 이제 내려가요.”지예솔은 남성복으로 갈아입고 자그마한 짐가방을 메고 온다연과 함께 내려갔다.밖에는 검은색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고 지예솔은 바로 그 차에 타고 창문을 내리며 온다연에게 손을 흔들었다.차가 떠나간 후 온다연도 옆에 있던 차량에 탔고 기사는 유강후가 제일 믿는 장 아저씨였다.온다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장 아저씨, 아드님이 경대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