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고양이가 다치지 않게 하려고 급히 고양이를 앞쪽으로 옮겼다. 하지만 고양이를 내려놓을 공간이 없었고, 손에 계속 들고 있을 수도 없었다.결국 온다연은 한쪽 다리를 구부려 고양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무릎이 좁아서 고양이는 불편해하며 계속해서 작은 울음소리를 냈다.온다연은 손으로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달래주었다. 한쪽 다리를 구부린 그녀의 발목은 유강후의 손에 닿았고, 그는 그것을 잡고 살짝 눌러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말없이 발목을 어루만졌다.이렇게 유강후는 온다연을 끌어안고, 온다연은 작은 고양이를 안고, 두 사람과 고양이는 한동안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고양이가 놀이에 지쳐 온다연의 손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려 하자, 온다연은 고양이가 너무 귀여워서 뽀뽀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입술이 고양이 머리에 닿기도 전에 유강후가 그녀의 턱을 잡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유강후가 턱을 아프게 잡아당기며 놓아주지 않자, 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잠시 후, 고양이와 놀다가 기분이 좋아진 온다연의 몸에 작은 고양이가 앞발을 올리며 기대었다.그런데 고양이가 온다연의 가슴에 올라가자, 유강후는 눈을 부릅떴다. 그의 눈에 차가운 기운이 돌았다. 그는 손을 뻗어 고양이를 들어 올려 높은 탁자 위에 놓았다. 탁자가 높아서 고양이는 겁에 질려 계속해서 울부짖었다.온다연은 걱정이 되어 고양이를 내려주려 했지만 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다시 고양이를 안으면 바로 보내버릴 거야.”온다연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계속해서 울었고, 그녀는 초조해지고 애가 탔다. 온다연은 유강후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은 두려움이 섞인 분노였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더니 그녀의 입술을 물었다. 유강후가 또 입술을 깨물자, 온다연은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아저씨, 좀 살살해요!”유강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다시 그런 눈빛으로 나를 보면, 고양이도 다시 못 볼 줄 알아!”온다연은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갑자기 몸을 뒤집어 온다연을 침대와 자기 가슴 사이에 가두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그 자세가 싫다면 이렇게 하자!”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그녀의 가느다란 발목을 잡아당기며 몸을 덮었다. 온다연은 혼비백산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어요! 알겠어요! 아저씨, 아저씨 말대로 할게요...”유강후는 깊은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온다연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몸이 떨렸다. 방 안에서 온다연의 신음이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 채, 온다연은 지쳐서 유강후의 품에 쓰러졌다. 유강후는 아주 느긋해 보였고, 그의 목소리에서도 한결 느슨한 느낌이 묻어났다.“피곤해?”경험이 없던 온다연의 몸짓이 너무 서툴기도 했고, 유강후도 처음이었던 만큼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맞춰나갔다. 결국 온다연은 버텨내지 못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건강이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라고 체감하며 제대로 돌봐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완전히 받아들일 때까지 말이다.그때, 밖에서 이권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셋째 도련님, 이다 이치로가 두 시간째 기다리고 있습니다.”유강후는 방해받아 불쾌해진 듯 눈썹을 찌푸렸다. 온다연과의 시간을 방해받아 심기가 불편해진 유강후는 목소리가 차가워졌다.“기다리기 싫으면 그냥 돌아가게 해!”이권은 주저하며 말했다.“하지만 아주 진정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동양국 제3대 재벌가의 후계자이기도 하고, 가장 큰 공급자이기 때문에 너무 소홀히 대할 수는 없습니다”유강후의 목소리는 더욱 차가워졌다.“이권,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 거야?”이권은 멈칫하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셋째 도련님, 그럴 리가요. 단지 주의를 환기해 드리려는 것뿐입니다!”유강후는 냉랭하게 말했다.“먼저 가서 기다리라고 해. 곧 갈 테니.”“네! 셋째 도련님!”이권이 떠난 후, 유강후는 장화연에게 전화를 걸었다.“다연이가 입고 나갈 만한 옷을 한 벌 준비해서 보내줘.”유강후는 전화를 끊고 나서 온다
유강후와 온다연은 한동안 서로를 감싸안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장화연이 옷을 가져왔다. 장화연이 준비한 옷은 온다연에게 매우 잘 어울렸다. 안에는 부드럽고 따뜻한 아이보리색 원피스였고, 그 위에는 연한 파란색 가디건이 있었다. 이는 온다연의 피부를 더욱 부드럽고 하얗게 보이게 했다.특별한 액세서리는 없었지만, 머리에는 사파이어 나비 모양의 머리핀 하나가 있었다. 이 핀은 약간 고풍스러운 스타일로, 오래된 나무 상자에서 꺼내진 푸른 보석 같았다.장화연이 그것을 온다연의 머리에 꽂아줄 때 매우 조심스러워 보였다.온다연은 이런 장신구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이 핀이 매우 비싸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머리핀을 빼려고 했지만, 유강후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왜?”유강후의 한 마디에는 강한 압박감과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온다연은 심장이 떨려 손을 뒤로 뺐다.“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요?”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잘 어울려. 어머니가 쓰시던 건데, 너한테 참 잘 어울리는구나.”그는 온다연의 이마에 키스하고 그녀의 작은 손을 감싸 쥐며 말했다.“가자.”날씨가 쌀쌀해진 탓에 유강후는 정장 위에 같은 색 계열의 트렌치코트를 입어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온다연은 그의 손에 이끌리며, 영화 속 대부들이 레드카펫을 밟는 모습 같아 웃음을 지었다.“아저씨, 정말 카리스마 있어요.”유강후는 자기 외모와 위압적인 분위기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그녀를 한 번 보고는 담담하게 물었다.“그래서 무서워?”온다연은 그의 말수 적은 무뚝뚝함에 흥미를 잃고는 고개를 떨구며 말을 아꼈다. 그와 몇 걸음 떨어진 후, 유강후는 갑자기 멈춰서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를 무서워해도 되지만, 너만은 안 돼.”온다연은 그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그를 두려워했지만 이 말을 꺼낼 용기가 없어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대답했다.
온다연은 자기가 왜 숨어야 하는지 모르지만, 그나마 숨으면 덜 민망해 할 것 같았다.못 본 척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다.유강후가 나오라는 말을 듣고, 온다연은 자기를 부르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엄청나게 이쁜 사람이 바로 유강후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온다연이 나갈까 말까 고민중인데 유강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온다연!”목소리에 불쾌함이 느껴졌다.온다연은 숨을 돌리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고개도 들지 않고 조용히 유강후를 향해 걸어가면서 하루코의 경이로운 시선을 느꼈다.“강후 씨, 이분은 누구시죠?”역시 예쁜 사람은 다르다. 행동과 말투에서 아주 우아하다는 걸 알 수 있다.유강후는 온다연이 느리게 걷는 것을 보고는 뒤돌아 서서 온다연을 자기 품에 안았다.유강후의 손은 온다연의 작은 손을 감싸며 말했다.“누가 숨으래?”온다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친구분이 찾으시는데요?”하루코는 그들을 보고 놀라는 듯 물었다.“강후 씨, 이분은...”“조카입니다!” 유강후가 말하기도 전에 온다연이 단호하게 하루코를 보며 말했다.“조카!”하루코의 시선은 두 사람이 잡고 있는 손에 떨어졌다.“강후 씨, 나은별 씨랑 약혼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계속 기다릴 거예요. 일 년에 한 번만 본다고 해도, 강후 씨가 저를 받아준다면, 저는 기다릴 수 있어요. 하지만 왜...”“왜 이 사람은 되고 저는 안 돼요?”유강후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하루코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힘을 주고 온다연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온다연이 식은땀을 날 정도로 힘을 주었다.유강후는 차갑게 말했다. “하루코, 제가 다른 사람과 약혼한 것도 알았으면, 더 이상 귀찮게 굴지 마세요. 저는 당신한테 관심 일도 없으니까요.”하루코의 시선은 여전히 그들의 손에 머물러 있었고,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제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당신을 기다려왔는데, 왜 저를 택하지 않고...”유강후가 말했다.“우리는 그저 동창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온다연은 불안한 듯 작은 소리로 유강후를 향해 말했다.“아저씨, 저 좀 무서워요.”유강후는 온다연을 데리고 자가 옆자리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난번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 밥 먹고, 함부로 도망치지 마!”방이 커서 딱 봐도 비즈니스용이었다.식탁도 길고 세련됐다.그들 옆에 앉은 사람들은 유강후의 수하들이다. 하나둘씩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맞은편에 앉은 건 바로 이다 가문의 사람들이다. 딱 봐도 한국인과 달랐고 구분할 수 있었다.하지만 온다연은 그럼 신경 쓸 겨를도 없다. 하루코가 끌려갈 때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온다연은 극도의 불안을 느꼈다. 그 불안감은 유강후를 두려워하는 느낌이랑 별개였다. 뭔가 곧 아주 무서운 사건이 일어날 듯했다.여기 온다고 일식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아까의 일로 뒤섞여 온다연은 입맛이 뚝 떨어졌다.조금 먹고는 유강후에게 간다고 했다.“아저씨.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돌아가고 싶어요.”온다연이 접시에 담긴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 걸 본 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입맛에 맞지 않는 거니? 내가 먹어도 좀 별로이긴 하다. 나중에 장 집사보고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할게.”온다연은 고개를 숙인 채 가볍게 대응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이 기운이 없는 걸 보고 또 아픈 줄 알고, 온다연의 이마를 만지는 데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잘래?”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불안감을 느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우리 돌아가면 안 돼요?”온다연이 처음으로 ‘우리’라는 말을 썼다.유강후는 좀 의외였다.만약 이전에 이런 말을 들었으면, 승낙했을 것이다.그러나 오늘 유강후를 위해 만든 자리이기 때문에 쉽게 떠날 수 없는 자리이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권 보고 데려다 달라고 할게.”온다연은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한참 뒤에야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저씨랑 같이 돌아가고 싶어요.”온다연은 말랑말랑한 목소리로 유강후에게 말을 걸었다. 게다가 온다연이 처음으로 유강후에게 요구하는 거다.
유강후는 온다연의 얼굴은 만지며, 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아저씨. 여기는 안전해요.”확실히 안전하다. 요 며칠 동안 유하량과 유민준도 나타나지 않고, 온다연이 싫어하는 사람들, 일도 나타나지 않았다.모든 게 유강후의 생각대로이다.유강후는 고개를 돌려 이권에게 말했다.“데려다주고 와.”이권은 고개를 끄덕이며 온다연을 바라보았다.“온다연 씨, 가시죠.”사실 이권은 데려다주는 게 너무 오버라고 생각했다. 유강후가 너무 소중히 여기는 게 아니냐고 생각했다.이 호텔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냥 몇 걸음만 가면 도착하는데, 굳이 데려다줘야 하나 생각했다.하지만 이권은 자기의 생각을 말할 엄두도 없고, 온다연의 뒤를 따랐다.거의 도착할 때쯤 온다연이 갑자기 멈추었다.온다연은 앞에 있는 작은 정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움직이지도 않고, 표정도 멍해졌다.이권은 온다연이 무슨 이상한 것을 본 줄 알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 보았다.온다연의 시선을 따라 보더니, 이다 하루코가 정자에 서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이권은 하루코의 눈빛을 보고 이상하고 불편했다.이권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온다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매니저님. 이 하루코라는 여자가 아저씨의 외국에 있는 여자 친구인가요?”이권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잘 모르겠네요. 대표님을 2년 동안 모셨지만, 저는 주로 한국에 있는 일들을 담당해서요.”온다연은 하루코를 보며 그녀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 어떤 영화배우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온다연이 본 가장 아름다운 여자이다.온다연이 혼자 중얼거렸다.“정말 예쁘네요. 아저씨는 왜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요?”하루코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유강후에게 찬밥 신세이니, 자기는 더욱 심할 거로 생각했다.유강후도 방금 나은별과 혼약했다고 인정했다.그러기에 지금 온다연의 신분은 유강후의 애완동물과 같다. 다들 자기를 첩이라고 부를 거고, 하루코보다 못한다.이권은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하루코가 아마 일
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하루코를 찬찬히 바라보았다.가까이 보니까 온다연은 하루코가 더욱 아름답다고 느꼈다. 달빛에 비춰서 아주 비인간적으로 예뻤다.“혹시 아저씨 좋아하세요?”하루코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제가 열다섯 살 되던 해에, 강후 씨를 처음 만났어요. 그때 작심했어요. 이 사람이 아니면 절대 시집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강후 씨는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십 년을 기다렸지만, 여전히 저한테 눈길도 주지 않았어요.”“나중에 한국에 약혼녀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내연녀의 신분으로 강후 씨를 평생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요.”하루코의 목소리는 매우 씁쓸했다.“알아요. 강후 씨가 일본인을 좋아하지 않다는 거. 하지만 이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저는 일본인으로 태어났고, 바꿀 수 없잖아요.”하루코는 유강후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온다연은 하루코의 눈빛이 전혀 화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온다연이 당황해서 말하려는데, 하루코가 입을 열었다. “강후 씨, 좋아해요?”온다연은 멍해졌다.유강후를 좋아하는가.온다연은 감히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하루코는 또 말했다.“좋아하지 마세요. 매우 고통스러울 거예요. 당신은 아직 너무 어리고, 나중에 더 많은 남자를 만날 수 있어요. 당신한테 마음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마세요. 그거 알아요? 강후 씨가 우리 학교에서 유학할 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강후 씨를 좋아했지만 아무도 강후 씨의 마음을 잡은 사람이 없었어요.”“강후 씨의 마음은 나은별 씨한테 있어요. 나은별이 아닌 이상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에요.”하루코가 중얼거렸다.“하지만 전 그가 저를 기억하길 원해요. 평생 저를 기억하게 하고 싶어요.”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이길 수 없어요.”하루코는 천천히 유강후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갔다.하루코는 옷을 얇게 입고 외투도 입지 않아 찬바람 속에 아주 가냘프게 보였다.온다연은 하루코의 뒷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온
온다연은 누군가의 팔을 움켜쥐고 중얼거렸다.“아저씨. 아저씨.”그 사람은 호텔 직원인데 온다연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눈도 초점 없는 것처럼 보여서 당황했다.“아가씨. 괜찮으세요? 병원에 데려다줄까요?”온다연은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고 귓가에 인기척만 들리고 눈앞은 선홍빛 핏물이 가득했다.온다연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다. 의도치 않게 그 사람에게 기댔다. 그 호텔 직원분 역시 놀라서 황급히 부추겼다.“이보세요. 아가씨, 괜찮아요?”온다연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의식이 없는 듯 손을 뻗어 호텔 직원을 끌어안았다.호텔 직원은 온다연이 땅에 쓰러질까 봐 어쩔 수 없이 몸을 기대게 했는데, 온다연이 무의식적으로 자기 품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온다연의 그런 모습에 호텔 직원이 막 위로하려는 찰나, 등 뒤에서 매서운 한기가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키 크고 듬직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 남자는 호텔 직원을 노려보고 있었고, 그 압박감이 호텔 직원의 심장을 쥐어짜고 있는 듯했다.호텔 직원이 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대... 대표님?”유강후는 다가가서 호텔 직원 품에 있는 온다연을 안았다.“제가 안을게요.”호텔 직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황급히 한쪽으로 물러섰다.유강후는 온다연을 품에 안고, 얼굴을 만지며 나지막이 그녀를 불렀다.“다연아.”온다연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유강후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온다연의 주위를 감쌌고, 온다연은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유강후의 옷을 꼭 잡았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품에서 몸을 심하게 떨며 계속 그를 불렀다.“아저씨. 안아주세요.”“아저씨. 안아...안아주세요...”유강후는 이상하다고 느껴서 온다연의 이마를 만졌다. 분명히 손은 얼음처럼 차지만, 이마에는 온통 촘촘한 땀투성이였다.유강후는 순간 눈에서 살기가 나더니, 경찰이 와서 처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시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리고
유강후는 괴로워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10일.”“온다연, 너 계속 이러면 아기 퇴원하는 날에도 못 볼 줄 알아.”그 말을 듣고 얼어붙은 온다연은 재빨리 그의 손을 놓았다.유강후가 어떤 사람인지 온다연은 알고 있다. 정말 그를 화가게 한다면 아마 한 달 동안 아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분노를 꾹 참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심하게 때려서 그런지 유강후는 온다연의 걷는 자세가 살짝 잘못된 걸 발견했다.하지만 결혼반지를 던지고 걷어찼던 행동을 생각하면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온다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었는데 밖에는 수많은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이권도 그곳에 있었지만 감히 나서서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엉덩이를 맞은 걸 모든 사람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분하면서도 수치스러웠다그러나 반지를 주워 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유강후가 아기로 협박을 하니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다.온다연은 유강후에 대한 호감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에는 70점이었다면 이제는 50점밖에 되지 않았다.온다연은 씩씩거리며 눈물을 닦고선 마지못해 바닥에 있는 반지를 주웠다.온다연이 휴게실로 돌아오자 유강후는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끼워줘.”그 모습은 어찌나 무자비하고 싸늘한지 마치 인정머리 없는 제왕 같았다.온다연은 화가 나서 반지를 다시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아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분을 참으며 유강후에게 반지를 끼웠다.유강후는 반지를 한번 꼼꼼히 확인하더니 스크래치가 없는 걸 보고선 마음속의 분노가 절반 가라앉았다.그는 자리에 앉아 온다연을 품에 끌어안았다.“뭘 잘못했는지 알겠어?”온다연은 대답하기 싫은 듯 고개를 숙이고 계속 눈물을 닦았다.온다연의 빨갛게 부은 눈과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보니 유강후도 마음이 반쯤 풀렸다. 그는 손을 뻗어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네가 말해봐.
유강후는 그저 말없이 가만히 온다연을 쳐다봤고 온다연은 그의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고서야 힘을 풀었다.유강후는 곧바로 다시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내리쳤다.심지어 전보다 더 무자비해졌다.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온다연은 목 놓아 울부짖었다.“미워요. 이거 놓으란 말이에요.”“날 때릴 자격이 없잖아요.”유강후는 얼굴빛 변한 온다연을 보고선 가슴이 아픈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또 함부로 버릴 거야?”온다연은 유강후가 미워 죽을 것 같았다. 울분이 치밀어 올라 더욱이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버릴 거예요. 평생 찾지 못하게 바다에 던질 거라고요. 때려죽이든 마음대로 해요.”일말의 작은 연민은 온다연의 말에 순식간에 사라졌다.유강후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손까지 떨었다.결혼반지라는 중요하고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버렸으면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온다연이 이해되지 않았다.유강후는 손을 들어 세게 두 번 정도 내리쳤다.전보다 훨씬 힘을 주어서 그런지 온다연은 괴로움에 손발을 마구 휘저으며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울었다.울면서도 잊지 않고 유강후를 비난했다.“분명히 은별 씨 편을 들었으면서...”“차라리 때려죽여요. 그러면 은별 씨랑 결혼해도 되잖아요.”“우리 이제 그만해요.”...온다연이 말할수록 유강후의 분노는 더욱 커져갔고 끝내 또 세게 때렸다.분노와 두려움, 공포와 고통의 감정이 뒤섞이자 저도 모르게 주한의 이름이 튀어나왔다.“너무 아파... 주한아, 나 좀 도와줘.”“그만 때려요.... 아픈단 말이에요.”...유강후의 손은 허공에 굳어버렸다.주한... 온다연은 주한에게 도움을 청했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유강후는 숨이 멎을듯한 고통이 찾아왔다.“방금 뭐라고 했어?”온다연은 심하게 울부짖은 탓에 목소리가 잔뜩 쉬었다.“뭐라 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요. 아저씨는 나 괴롭히고 때릴 줄밖에 모르잖아요. 싫어요. 아저씨같은 사람이랑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거 놔요.”유강후는 이마에 핏줄이 솟을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안긴 방금 전의 상황이 왠지 모르게 민망했다.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으니 마치 유강후가 키우는 고양이나 심심할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과 별반 다를게 없는 느낌이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온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싫어요.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유강후는 고집불통인 온다연의 모습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눈앞에 있는 반지는 그가 이 생에 받은 것 중에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물건이다. 이런 마음도 모른 채 온다연은 필요 없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바닥에 내팽개쳤다.마치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발로 여러 번 짓밟는 격이다.유강후는 머리가 피가 쏠릴 정도로 화가 나서 소리쳤다.“주우라고.”온다연은 유강후가 화난 걸 알았지만 그녀도 같은 상황이기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분명히 나은별을 밀어낼 수 있었음에도 유강후는 기댈 수 있게 팔을 내어주었다.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면 차라리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온하랑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떨었다.“싫어요. 그리고 제가 나은별 씨를 먼저 때렸어요. 아저씨가 아끼는 사람을 때려서 가슴이 아파요? 그럼 다시 날 때리면 되겠네.”유강후는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네가 언제 가슴 아프다고 했어?”욕하고 때리는 건 얼마든지 해도 되지만, 유독 이 반지를 떨어뜨린 건 용납할 수 없었다.이건 그의 마음과 진심을 짓밟는 것과 다름없는 해동이다.“주워서 깨끗하게 닦아.”유강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온다연 마음속의 작은 화산이 완전히 폭발하였고 곧바로 눈앞의 반지를 발로 차버렸다.“주울 생각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싼 반지는 아저씨한테 어울리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나은별 씨한테 더 비싼 거로 사달라고 하세요.”온다연의 발차기에 반지는 더 멀리 날아갔다.유강후는 너무 화가 나서 목의 핏줄이 터져 나올 정도로 으르릉거렸다.“온다연, 넌 오늘 혼 좀 나야겠다.”그
나은별은 손톱이 살을 피고들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며 나지막하게 말했다.“강후 씨, 이제 내 말은 믿지도 않는 거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연 씨가 먼저 손쓴 걸 봤는데도 여전히 내 문제라는 거야?”유강후는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싸늘한 시선으로 조아영을 바라봤다.“조세진이 그쪽 아버지?”조아영은 극심한 고통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차마 유강후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맞아요.”유강후의 말투는 단호했다.“아버지한테 전해. 파산할 거니까 미리 마음 준비하라고.”조아영은 너무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울부짖었다.“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유강후는 무자비했다.“들리는 그대로야. 오늘부터 조씨 가문은 너 때문에 파산하게 될 거야. 기대해.”조아영은 고개를 번쩍 들고 마지막으로 발악했다.“분명히 저 여자가 먼저 때렸는데 왜 우리가 이런 불이익을 받아야 하죠?”유강후의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먼저 때렸다고? 그래서 뭐? 내가 있는 한 다연이가 사람을 때려죽여도 잘했다고 칭찬할 거야. 너 같은 인간을 수없이 많이 봤어. 내가 너보다 지위가 낮았다면 그런 표정이랑 행동으로 말했을까?”이런 사람에게 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유강후는 곧바로 경호원에게 말했다.“은별이는 병원으로 데려가고, 다른 사람 전부 다 내보내. 당장.”나은별은 씩씩거리며 말했다.“강후 씨,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유강후는 못 들은 척 무시하고선 뒤를 돌아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며 경호원에게 말했다.“내가 왔을 때 여기에 사람이 남아있으면 너희들도 끝장인 줄 알아.”경호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네, 도련님.”나은별은 멀어지는 유강후의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에서는 악의가 번쩍였다.‘유강후, 날 이렇게 대한다는 거지? 두고 봐, 나도 더는 안 참아.’경호원들은 나은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의무적으로 그녀를 부축했다.“얼른 가시죠. 도련님이 분부했으니 저희는
유강후는 밀어내고 싶었지만 나은별을 중심을 잡지 못하는 듯 계속 비틀거렸다.밀어내려고 할수록 나은별은 그의 옷을 한사코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온다연의 눈에 비친 이 장면은 마치 서로에게 감정이 남아있는 연인 같았다.순간 어려서부터 각별한 사이로 자라온 소꿉친구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다.나은별의 말대로 유강후는 어쩌면 일시적인 감정 때문에 지금처럼 행동하는 걸 수도 있다.온다연은 주먹을 불끈 쥐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내가 때렸어요. 왜요? 가슴 아파요?”그 말에 화가 난 유강후는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온다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온다연은 싸늘하게 웃었다.“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알겠죠.”이때 반지를 수정하려고 자리를 잠깐 비운 직원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수정된 반지와 함께 걸어왔다.“다연 씨, 요청하신 대로 수정이 완료되었습니다.”온다연은 번쩍 돌리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이제 필요 없으니까 환불해 줘요.”유강후는 화가 치밀어 몸을 떨었다.“그러기만 해봐.”온다연은 시선은 여전히 그의 팔에 기대어있는 나은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두 사람 결혼해요. 아주 천생연분이네.”그 말을 한 뒤 직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환불해 줘요. 이제 필요 없어졌거든요.”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직원은 정석대로 안내했다.“죄송합니다. 이니셜이 새겨진 특별 제작한 반지라 환불이 불가합니다.”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온다연은 앞으로 걸어가더니 반지를 집고 땅바닥에 내던졌다.“그럼 버릴게요.”단단한 반지가 바닥에 닿자 몇 미터 높이로 튕겨 나갔다가 다시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유강후는 자신이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온다연, 당장 주워.”온다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힐끗 보고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분노로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유강후는 단번에 나은별을 밀어내고 앞으로 걸어갔다
온다연의 눈에 비친 살기는 두피를 저리게 했고, 손에 칼이 있었다면 주저 없이 나은별을 찔렀을 것이라고 모두가 확신했다.사람들은 온다연처럼 몸집이 작은 여자가 어디서 폭발적인 힘이 나왔는지 몰랐고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큰 악의를 품고 있는데 이해되지 않았다.조아영은 체면을 잃었다는 생각에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온다연을 때릴 기세였다.“미친X. 남의 남자 친구를 뺏은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사람을 때려?”“하여튼 가정 교육을 못 받으면 이렇다니까. 세컨드인 걸 아무리 즐겨도 그렇지 어떻게 당사자 여자 친구를 떄려?”“내가 오늘 너 죽여버릴 거야.”그러나 조아영의 손이 온다연에 닿기도 전에 손목이 잡혔다.우드득하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조아영은 반대편 벽에 내동댕이쳐졌다.불과 몇 초안에 일어난 일에 다들 눈을 의심하여 그대로 얼어붙었다.그들 사이에 무슨 갈등이 있는지 주위 사람들은 몰랐으나 눈앞의 이 훤칠한 남자가 마치 조아영을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살벌하다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누군가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끌어당겨 몸 곳곳을 확인했다.다친 곳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버럭했다.“왜 가만히 있어. 다른 사람이 때리려고 하면 소리라도 질러야지.”이때 옆에 있던 조아영이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눈 잘못됐어요? 저 여자가 은별이를 때렸다고요. 은별이가 어떻게 맞았는지 두 눈 뜨고 똑바로 봐봐요.”유강후는 그제야 바닥에 앉아 있는 나은별이 눈에 들어왔다.평소의 매력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이고 머리는 정신 나간 여자처럼 헝클어져 있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이 누군가를 때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우리 다연이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이때 옆에 있던 직원이 용기 내 입을 열었다.“대표님, 저희가 봤습니다. 이 여성분이 먼저 손을 쓴 게...”“닥쳐.”유강후는 버럭 호통을 쳤다.“내가 말하라고 했어?
온다연은 망설임 없이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고 뒤로 힘껏 밀쳤다.힐을 신은 여자는 두어 걸음 뒷걸음질 치더니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온다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누구신데 남 일에 참견하는 거죠? 경고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안 그러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겁니다.”넘어질 뻔하던 일행을 나은별이 부축했다.여자는 나약해 보이는 온다연이 감히 밀쳐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듯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그럼에도 분을 이기지 못하고 또 달려들어 온다연을 치려고 했다.이때 나은별이 팔을 붙잡았다.“조아영, 그만해. 때릴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야.”나은별은 온다연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내가 화내면서 뺨 한 대 치길 바랐던 건 아니죠? 솔직히 그 모습을 강후 씨가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잖아요. 내가 유하령처럼 멍청해 보여요?”“온다연, 내가 너처럼 천한 여자를 한두 번 본 것 같아? 매달려도 소용없으니까 포기해. 유씨 가문이랑 강씨 가문에서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할까? 너처럼 가진 것 하나없는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강후 씨랑 만나.”“유하령이 말해줬으니까 순진한 척 그만해. 너 복수하려고 강후 씨를 만나는 거잖아. 엄청 친한 친구가 있었다며? 널 구하려고 다른 사람 손에 죽었다던데 맞아? 죽기 전에 영상까지 찍혔다며? 아참, 유하령이 그 영상을 나한테 보내줬어.”온다연은 고개를 번쩍 들어 죽일 듯이 나은별을 노려봤다.나은별은 대수롭지 않은 듯 피식 웃고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그 남자애가 너한테 소중한 존재라고 들었어. 죽은 사람의 마지막 체면을 지켜주고 싶으면 좋은 말로 할 때 강후 씨 곁에서 떨어져. 안 그러면 내가 그 영상 인터넷에 확 뿌려버릴 거야. 죽어서도 고통스럽게...”짝.온다연은 나은별의 따귀를 세게 한 대 갈겼다.눈빛에는 독기가 가득했고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듯 살벌했다.“유하령이랑 똑같은 인간인 줄은 몰랐네요. 당신 같은 인간은 살 자격도 없어요.”나은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은별은 이권을 여러 번 찾아가 유강후가 왜 만나주지 않느냐고 물었다.이권도 처음에는 예의 바르게 대했지만 찾는 횟수가 많아짐에 따라 저도 모르게 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더는 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이실직고하게 되었고 온다연이 싫어해서 만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그 후로는 나은별의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나씨 가문과 유씨 가문의 혼담이 취소된 걸 누가 소문냈는지 유강후에게 아기가 생겼고 그 상대가 나씨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라는 것까지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그 이후로 나은별과 나씨 가문은 경원의 가장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온갖 조롱과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유강후와 결혼하는 건 나씨 가문의 일방적인 바람이었을 뿐 유강후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은별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소문이 퍼지는 가운데 나씨 가문의 투자자들은 하나둘씩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회사는 지금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가장 역겨운 점은 예전에 빌붙으려고 양손 가득 선물 챙겨서 찾아오던 사람들이 갑자기 증발이라도 한 듯 문전성시를 이루던 나씨 가문은 하루아침에 적막해졌다.배은망덕한 사람들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른 나씨 가문 어르신은 명절날에도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나은별은 이런 상황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있다.사람들이 추측하며 수군거릴 때 아무런 대처 없이 묵인한 유강후가 그 원인의 중심이다.그동안 나씨 가문을 통해 미래 그룹에 빌붙으려던 사람들까지 발걸음을 멈췄다.나은별은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는 건 아니다.이익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하늘에서 땅이 아닌 지옥으로 떨어지는 케이스를 수없이 많이 봐왔기에 이런 우여곡절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이익 때문에 등을 돌린 인간이 아닌 사건의 원흉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나은별은 온다연이 유강후에게 빌붙어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초라한 자신에 비해 전보다 안색도 좋아지고 예쁜 얼굴마저 더 정교해진 온다연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게다가 입고 있는 옷의 패턴
온다연은 순순히 그의 품에 안겨 몰래 눈물을 닦았다.“보석상에서 가지러 가도 된다고 연락왔는데 아직 안 갔어요. 결혼식 며칠 전에 가려고요.”그 말을 들은 유강후는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지금 가지러 가자. 어떤 건지 너무 보고 싶어.”옷 갈아입을 때 유강후는 특별히 가장 마음에 드는 슈트를 입었다.그러고는 온다연에게 넥타이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다.온다연은 너무도 많은 넥타이에 흠칫하다가 다시 신중하게 골랐다.유강후는 캐비닛 앞에 서서 열심히 넥타이를 고르는 온다연이 귀여운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온다연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을 때 유강후는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외출 준비할 때 아내인 온다연이 옷과 넥타이를 골라주며 신경 써주는 이 상황을 수년동안 기다렸다.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상상이 현실로 되었고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온다연은 매우 열심히 넥타이를 골라주고 있다.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당장이라도 침대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어젯밤 너무 무리한 탓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유강후는 뒤에서 온다연을 끌어안고선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골랐어?”온다연은 회색 넥타이를 꺼냈다.“오늘 입은 옷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예뻐요.”유강후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예쁜 건 딱히 중요하지 않아. 다연이가 좋아하면 그게 뭐든 나도 좋아.”온다연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아저씨, 그만해요.”빨갛게 달아오른 온다연의 귀를 본 유강후는 더 이상 참지 못했고 그녀의 머리를 잡고선 한참이나 키스를 한 후에야 놓아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보석상에 도착했다.임정아는 안목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 주얼리 브랜드의 모델이기도 하다. 온다연은 가성비가 좋고 흔치 않은 남성용 반지를 골랐다.온다연이 집 사려고 모아둔 금액이었으니 싼값은 아니었다.하지만 유강후가 마음에 안 들어 할 수 도 있으니 긴장된 마음을 늦추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시계에 비하면 훨씬 싼 값이니까.그런데 의외로 유강후는 매우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