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감히 손을 내밀지 못했다.손을 뻗으면 온다연이 또다시 밀어내며 모진 말을 쏟아낼까 봐 두려웠다.온다연이 점점 멀어지자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염지훈이 그렇게 걱정돼요?”온다연은 걸음을 멈추더니 뒤돌아보지 않은 채 차갑게 답했다.“네. 3년 동안 줄곧 저를 도와줬거든요. 지훈 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진씨 가문도 지금처럼 강해지지 못했을 거예요. 물론 오늘의 저도 없었겠죠.”유강후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고 부드럽게 말했다.“하지만 차로 날 치려고 했잖아요.”온다연은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안치였잖아요. 그리고 지금 다쳐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지훈 씨예요.”유강후는 가슴이 찢기는 고통이 밀려왔다.“꼭 그렇게 내 앞에서 염지훈을 걱정해야겠어요? 나도 아프고 괴로운데 왜 나한테는 눈길조차 주지 않냐고요.”온다연은 마치 커다란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 숨이 막혀 주먹을 쥐었다.“강후 씨, 이제야 괴로워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나은별 씨만 믿었잖아요.”“기억나요? 현진화 씨가 날 구해준 그날? 강후 씨가 날 방안에 가두고 못 나가게 했잖아요.”“그때 임신 중이었고 너무 아파서 기절할 뻔했어요.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계속 애원했는데 나은별 씨의 전화 한 통에 뛰어나갔잖아요. 그때 느낀 감정들은 지금 강후 씨가 겪고 있는 것보다 수천 배는 더 아팠어요.”온다연은 괴로워하며 말을 이었다.“지훈 씨는 정말 다쳤고 나은별 씨는 꾀병이었어요. 우울증은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고요.”지난 일을 생각하니 온다연은 가슴이 너무 아파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주먹을 쥐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현진화 씨가 구하지 않았다면 전 죽었을 거예요. 다른 사람 눈에 띄는 게 싫어서 날 가둬놓았잖아요. 발견될 수 있었을까요?”“지금도 진씨 가문의 장녀 진유나가 아니라 온다연이었다면 다시 날 가둘 생각이잖아요. 그러고는 내가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겠죠? 강후 씨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다연이 병원에 있다는 거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우리 사람들은 문제 있을 리 없고, 문제는 병원 사람들이야.”“이 일에 참여한 사람이 많지 않으니 즉시 조사해 봐. 성염 조직의 사람들은 특징이 있어. 가정이 부유하고 젊고 외모도 뛰어나야 뽑힐 수 있거든. 이 조건에 맞춰 샅샅이 뒤져 봐.”“권예진의 사촌 오빠는 찾았어?”이권이 고개를 끄덕였다.“찾았어요.”유강후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즉시 호텔 지하실로 끌고 와. 내가 직접 심문해야겠어.”“알겠습니다.”30분 후, 검은색 SUV 한 대가 호텔 주차장에 진입했다.비즈니스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가 차에서 끌려 내려오며 분노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당신들 누구야? 납치가 범죄인 건 알아? 경찰에 신고해서 죄다 감옥에 처넣을 거야.”경호원이 시끄러웠는지 그의 팔을 잡고 힘껏 비틀자, 남자의 팔이 탈골되었다.경호원은 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남자를 무표정한 얼굴로 노려보면서 말했다.“계속 소리 지르면 다른 팔도 비틀어 버린다.”남자는 통증 때문에 얼굴이 땀투성이가 된 채 두려운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당신들은 누구야? 왜 나를 납치하는데? 나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야. 납치해도 돈이 없다고.”경호원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계속 쓸데없는 소리하면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그 말과 함께 남자를 끌고 지하실로 들어갔다. 지하실은 꽤 넓고, 조명도 나쁘지 않았지만, 벽에 칼과 검 같은 흉기들이 가득 걸려 있어 으스스한 느낌을 주었다.한가운데에는 사람 키만 한 큰 철장이 놓여 있어 더 음산하고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철장 옆에는 키 큰 동양인 남자가 앉아 있었다.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지만, 몸에서 뿜어 나오는 아우라는 주변을 압도할 만큼 강했다.그는 뱀 모양의 휘어진 칼을 손에 들고 세심하게 닦고 있었다.그들이 문에 들어서자, 유강후는 슬쩍 쳐다보더니 원래 하던 일을 계속했다.경호원이 남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
“불법?”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권진섭의 얼굴을 훑었다.악마에게 잡혀 영혼까지 털리는 듯한 공포감에 그는 등골이 오싹했다.권진섭은 벌벌 떨며 입을 열지 못했다.유강후는 손에 든 단검을 돌려 칼끝으로 권진섭을 겨누었다.“너희들이 방화를 저지를 때는 그게 불법이라고 생각했어? 이제 와서 나와 법률을 논하는 건 너무 늦지 않았을까?”권진섭은 깜짝 놀라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방화라니?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유강후가 냉랭하게 말했다.“무슨 말인지 몰라?”권진섭은 애써 침착한 척했다.“당신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나를 풀어주면 없었던 일로 해줄게.”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호원이 다가와 발로 걷어차고 뺨을 후려쳤다.“말 안 들으면 너한테 좋을 게 없어.”뺨을 얻어맞은 권진섭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는 경호원을 독살스럽게 쏘아보더니 피를 내뱉으며 소리쳤다.“감히 날 때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릴 거야.”경호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또 한 번 귀뺨을 후려쳤다.이번에는 이빨이 뽑혔다. 권진섭은 자기 이빨이 날아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입이 피투성이가 됐지만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하지만 겁은 나는지 입은 다물었다.그때 유강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은 너무 많은 악행을 저질렀어. 여기 있는 본부 위치를 알려주면 네 목숨은 살려주지.”권진섭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퉤! 너 따위에게 우리 본부를 알려줄 것 같아? 우리 보스는 성인이고 구세주야. 너희같이 평범한 인간들은 그분을 만날 자격도 없어.”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짓했다.“철장 안에 처넣어.”경호원은 권진섭을 끌고 가 철장 안에 가두었다.꽤 큰 철장이었지만, 사람이 들어가니 답답하게 느껴졌다.문이 철컥 잠기는 소리와 함께 권진섭의 심리적 방어선도 무너졌다.그는 철장의 쇠 난간을 붙잡고 소리 질렀다.“당장 풀어줘. 너희같이 더러운 하등 인간은 오직 불로, 성염으로만 정화할
공기 중에 탄 냄새가 가득했고 곧이어 살갗이 타는 냄새도 풍겼다.권진섭은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질렀고 머리카락도 거의 다 타버렸다.유강후는 충분히 겁을 준 것 같아 경호원에게 불을 끄라고 손짓했다.불을 껐는데도 권진섭이 계속 비명을 지르자 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시끄러워. 진정시켜 봐.”경호원은 스위치를 다시 켜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한 번만 더 소리 지르면 네가 코크스가 될 때까지 태울 거야.”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권진섭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하고 억지로 참았다.“이 화염 온도가 1200도에 달하니 3분만 더 타면 너는 코크스가 될 거야.”권진섭은 벌벌 떨며 말했다.“저를 풀어주기만 하면 원하는 건 뭐든 다 드릴게요.”유강후가 차갑게 말했다.“이제부터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네.”유강후는 단검을 손으로 돌리며 말했다.“너 요즘 나은별이라는 H국 여성과 가깝게 지냈지?”권진섭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나은별이요?”유강후가 손짓하자 경호원이 휴대폰에서 나은별의 사진을 찾아 권진섭에게 보여주었다.“이 여자야.”권진섭이 사진을 보더니 대답했다.“알긴 아는데 우리는 나은별이 아니라 주가은이라 불러요. 요즘 성염에 들어오려고 해서 조사 중입니다.”유강후가 말했다.“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는 상관없고, 이 여자를 내가 지정한 곳으로 유인해 오면 돼.”권진섭이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그건 어려울 수도 있어요. 우리 보스 눈에 들었거든요. 보스가 이 여자를 무척 좋아해서 이제 입회식만 남았어요. 이 여자의 신분과 보스가 좋아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직에 들어온 후 고위직이 될 가능성이 크고 지위가 저보다 높을 거예요.”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입회식은 뭔데?”권진섭은 감히 숨기지 못했다.“세상을 한 번 정화하는 건데 화재가 클수록 좋고 죽은 사람이 중요할수록 좋아요.”“이 여자의 목표는 누구야? 지점은 어디고?”유강후의 질문에 권진섭이 대답했다
미래그룹 부사장들의 자료를 전부 프린트해 와.”“네, 대표님.”권진섭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미래그룹이요? 북아메리카 3대 재벌의 하나인 미래그룹을 말하는 거예요?”이권이 그를 째려보았다.“왜? 자격이 부족해?”권진섭이 급히 부인했다.“아니, 충분해요. 그런데 당신들, 당신들은...”이권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너는 알 필요 없어.”잠시 후 이권이 한 뭉치의 자료를 들고 왔다.유강후가 자료를 남자 앞에 던지며 말했다.“적합한 사람을 직접 골라. 내가 그쪽으로 보내서 협조하게 할 테니.”그는 지하실에서 나가면서 경호원에게 분부했다.“저놈 다리에 약을 발라줘. 지금 죽어버리면 안 되니까.”“네, 대표님.”지하실에서 나온 이권이 이해가 안 되는 듯 말했다.“대표님, 나은별을 유인하려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대표님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달려올 텐데요.”유강후는 ‘멍청한 자식’이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너 비서 자리에서 내려와야겠다. 우리는 경찰에 협조하는 쪽이잖아. 그 여자는 지금 테러리스트야. 그 여자와 얽혀서 미래그룹 주식을 포기할 거야?”이권이 그제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대표님은 주도면밀하십니다. 지금 작은 사모님 위치를 옮겨드릴까요?”“지금 이동하면 그쪽에서 눈치챌 거야.”“하지만 사모님이 그곳에 계시는 건 정말 위험합니다.”유강후가 잠시 생각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염지훈을 1층의 구석진 병실로 옮기고, 기존 병실에는 가짜 환자를 배치해. 그리고 다연과 닮은 사람을 그곳에 보내 매일 지키도록 하고.”“이 일은 네가 직접 처리해. 최측근 경호원을 데리고 가야 해. 절대 소문이 새어나가서는 안 돼.”“네, 대표님, 즉시 처리하겠습니다.”다음 날, 서해안의 대형 유람선 위.나은별이 키 큰 서양 남자와 팔짱을 낀 채 유람선의 레스토랑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들은 도착하자마자 호화로운 VIP룸으로 안내받았다.적임자로 낙점된 미래그룹 임원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나은별은
유강후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나는 여자를 때리지 않아. 너는 지금 여자가 아니라 테러리스트야.”나은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소름 끼치게 웃었다.“솔직히 그때 내가 온다연을 바꿔치기한 걸 진작에 알고 있었지?”“온다연이 사라진 그날부터 우리 나씨 가문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뭘 해도 망했어. 마치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밑지는 장사만 하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말이야.”“게다가 매번 수익이 날 것 같으면,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일이 생겼지.”“마치 거대한 손이 우리의 목을 조르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하는 것 같았어.”“심지어 아버지도 관직을 잃었어. 그렇게 조심스럽고 소심한 사람이, 단 한 푼도 뇌물을 받은 적이 없고 누구에게 밉보인 적도 없는데, 왜 관직을 잃었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우리 외가에도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끊이지 않았어. 무슨 일을 해도 안 되고 어딜 가나 벽에 부딪혔지.”그녀는 유강후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배후의 보이지 않는 손은 너였어. 네가 나씨 가문을 몰락으로 이끌었던 거야. 온다연이 바꿔치기 당한 사실을 진작에 알고 나한테 복수한 거지?”그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다가 웃었다.“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너의 능력으로 알아내지 못할 리 없는데, 내가 너무 멍청했어. 이렇게 뻔한 걸 눈치채지 못하다니.”“유강후, 넌 정말 잔인해. 단지 한 여자 때문에 두 집안의 인연을 끊고, 우리 집안을 쫄딱 망하게 하다니. 너무 독해. 나한테 전혀 살길을 남겨주지 않았어.”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야. 하지만 나씨 가문은 이제 완전히 망했어. 한 달 안에 너희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고택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공중화장실을 지을 거야. 공공시설로 변해서 너의 죄를 조금이라도 씻어줄 수 있으니 좋은 일이 아니니?”“안 돼.”나은별이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안 돼, 강후 씨. 우리 같이 자란 정을 생각해서라도 고택만은 남겨줘. 제발 그러지 마.”그녀는 말하
나은별은 더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손가락에서 시작된 통증은 심장까지 전해져 바닥을 뒹굴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하지만 유강후는 동작을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가 발에 다시 힘을 주자, 나은별은 연신 비명을 질렀다.“아파! 나한테 이러지 마. 유강후, 이러면 안 되잖아.”유강후는 눈빛에 독기가 가득했고,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이건 네가 받아야 할 벌이야.”나은별은 통증에 기절 직전이었지만, 정신을 다잡고 미친 듯이 웃었다.“너는 아무 잘못도 없어? 유강후, 너는 매번 내게 속아 넘어갔고, 매번 그 여자를 버리고 내게로 왔어.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어.”“너 아직 모르지? 나 우울증 같은 거 없어. 우울증에 걸린 척하는 건 정말 짜증 났지만 매번 그년한테서 너를 빼앗아 가는 건 정말 통쾌했어.”“내가 보기엔, 온다연 그년이 진짜 우울증인 것 같아. 쯧쯧, 불쌍한 것! 유씨 집안 사람들에게 10년이나 개처럼 학대당한 것도 모자라 마지막에는 너의 노리개가 돼야 했으니.”“닥쳐!”유강후의 발길질에 그녀는 몇 미터 밖으로 날아갔다.나은별은 입가에 피를 흘리며 미친 듯이 웃었다.“두렵구나. 그년이 진실을 알고 너를 버릴까 봐 두려운 거지? 유강후, 이건 너와 너희 유씨 가문의 업보야. 벌받은 거라고.”“너는 나를 천하의 나쁜 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는 너는 무슨 좋은 사람인 줄 알아? 너는 한 번도 나쁜 짓을 안 했다고 말할 수 있어?”“네가 미래그룹을 막 인수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기억해? 너희가 주가를 조작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길이 없어 죽어갔는지 알아?”“잠잘 때, 주변에 수많은 원혼이 떠도는 걸 느끼지 못해?”유강후가 냉혹하게 말했다.“내가 미래그룹을 인수한 건 단지 그룹 내 배신자들을 쓸어내기 위해서였고,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적이 없어. 주식 투자는 리스크가 따르는 법이야. 욕심을 부려 전 재산을 걸지 않았다면 궁지에 몰릴 일도 없었잖아?”“하지만 너는 지금 나와 이런
한재민은 내리자마자 나은별의 비참한 몰골을 보았다.머리는 흐트러지고 드레스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얼굴에도 피가 묻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것 같았다.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나은별이 털썩 무릎을 꿇으며 울부짖었다.“오빠, 살려줘. 유강후가 미쳤어. 나를 죽이려고 해.”그녀는 손을 내밀어 보였다.“방금 내 손가락을 밟아서 부러뜨렸어. 너무 아파.”“너무 잔인해. 여자를 위해서 우리의 옛정을 전혀 생각하지 않아.”한재민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그녀를 일으키고 손을 살펴보았다.원래 가늘었던 손가락들이 퉁퉁 부었고, 축 늘어진 것을 보니 이미 부러져 기능을 잃은 것 같았다.한재민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유강후는 비록 일 처리 방식이 잔인하지만, 친구에게 손을 대는 일은 절대 없었다.그래서 나은별이 나쁜 짓을 저질러도 유강후는 옛정을 생각해서 그녀에게 극단적인 수단을 쓰지는 않았다.그런 그가 오늘 직접 손을 댔으니 반드시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나은별이 울면서 말했다.“유강후가 내 손을 밟아서 망가뜨렸어. 어쩌면 이렇게 잔인해? 열 손가락을 모두 밟아서 부러뜨린 것도 모자라 나를 테러 조직의 멤버라고 모함하고 있어.”“오빠, 나를 살려줘. 유강후가 정말 미쳤어.”이때 유강후도 갑판에 도착했다.나은별은 부들부들 떨면서 한재민 뒤로 숨었다.한재민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겁내지 마. 네가 잘못한 일이 없다면, 유강후가 너를 어떻게 하지 않을 거야. 내가 있으니까.”“하지만 네가 정말 용서받지 못할 일을 했다면 이건 네가 받아야 할 벌이야.”나은별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오빠도 유강후처럼 나를 믿지 않는 거야?”“내가 죽든 말든 상관없어? 전에 분명 나와 결혼하겠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몇 년간 사라졌다가 돌아오더니 다른 사람과 결혼했어. 오빠는 정말 무정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이 생기니 옛정은 전혀 생각 안 해.”“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나를 이렇게 대하지 않았겠지? 그렇지?”“내가 그
봉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도 요즘 아이랑 마누라 돌봐야 하니 시간도 없을 거잖아. 내가 알아서 방법 구해볼게.”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송지원도 뒤따라 나와 봉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에 지예솔 씨가 진짜 큰맘 먹고 멀리 가버린 거 같은데 현수는 아직도 경원시 근처에서만 찾고 있어. 어쩌면 출국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해줄 수가 없네.”“현수 지금 상태가 매우 위험해. 마치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정도로 한계에 도달한 거 같아. 저러다 큰일이 일어날까 봐 두렵네.”두 사람은 한마디씩 하고는 침묵하였다.한참 지나 유강후가 먼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우리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해. 요 며칠은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네가 옆에서 좀 더 신경 써줘.”송지원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한이준은 며칠 동안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안 통하던데. 내가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비서가 그러는데 걔가 섬에 집을 사서 지금 장식을 하고 있고 외부 사람들과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이 자식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이때 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유강후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들어가. 현수랑 이준의 일은 네가 좀 더 신경 써줘. 내 쪽에 사람들은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조정해서 데리고 가면 돼.”들어가 보니 동생이 울면서 손발을 자꾸 흔들어 옆에 자고 있던 오빠도 깨웠다.오빠는 오히려 깜깜한 눈을 뜨고 조용하게 누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듯 하였다.유강후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아이들이 배가 고픈가 봐요.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말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온다연을 한 번 보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장화연은 간호사의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분유로 먹여요. 사모님은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요.”이때 온다연도 놀라 잠에서 깼다.
유강후는 당황했던 마음이 그제야 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그 아이는 힘들게 임신했고 유강후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안전하게 출산까지 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바로 온다연의 건강 상태였다.“주 선생님, 앞으로 제 아내의 건강을 잘 부탁드릴게요. 두 아이도 만약 두통이나 열이 있다 해도 많이 신경 써주셔야 해요.”주 선생님은 급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큰일은 아니에요. 두 아이도 지금 봐선 건강 상태가 아주 좋으니 잘 키우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유 대표님.”주 선생님을 보낸 후 유강후는 정성스럽게 온다연을 보살피며 약도 먹이고 재우기도 하였다.한참 뒤에 송지원과 봉현수가 아이들 보러 병원에 찾아왔다.송지원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시정 쪽에서 방금 온 것이 분명했다.봉현수는 비록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이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유강후는 보자마자 그의 정신이 극도로 쇠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봉현수는 아이들의 선물을 유강후에게 건네고 나서 소파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반면 송지원은 두 아이에게 관심을 쏠리며 간호사에게 아이를 안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송지원은 아이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넌 아들딸을 한꺼번에 얻었지만 우리 몇 명에서 한재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네. 이 아이의 행운을 빌어 나도 나중에 쌍둥이가 생길 거야.”유강후는 얼른 아이를 뺏어 안고는 말했다.“저리 비켜, 누가 너더러 내 아들의 행운을 빌라 했어. 그렇게 행운을 갖고 싶으면 너 절로 절에 가서 빌던지.”송지원은 두 녀석을 매우 귀하게 여기며 또 손을 뻗어 여동생을 안았다.“핑크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니 여자아이겠지? 너무 귀여워, 나도 딸이 욕심나네.”송지원은 여동생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난 이 두 아이의 양 아빠가 될 거야. 앞으로 날 송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유강후는 송지원이 딸을 안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상처가 아플까 봐 번갈아 가며 아이를 안아 보여줬다.조용하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이번에는 보온 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네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유강후는 속상한 마음으로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했다.“보온 실은 필요 없어. 의사가 아이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말해줬어. 하지만 그래도 그웬을 와서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만 우리 집에 있으라 했어.”“우리 아들을 데리고 와봐요, 한번 보게요.”유강후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온다연의 옆에 눕혔다.온다연은 감히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만 옆으로 돌려 쳐다보면서 이 아이가 꿈속의 그 아이를 닮았는지 궁금했다.안타깝게도 아이는 아직 너무 작아 이목구비가 모두 주름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온다연이 실망하는 모습을 본 유강후는 웃으며 말했다.“아들은 날 닮았고 딸은 널 닮았어.”온다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이목구비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유강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난 보이거든.”유강후는 몇 시간 동안 작은 침대 옆에 붙어 서서 아이의 이목구비와 윤곽을 수없이 분석한 결과 아들은 그를 닮았고 딸은 온다연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유강후는 희망컨대 두 아이가 모두 온다연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더니 남자아이는 좀 강하게 생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두 아이를 모두 온다연의 곁에 눕혀두고 팔을 뻗어 그들 세 모녀를 품에 안으며 아주 정성스럽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젠 너희들은 내 인생의 전부야.”유강후는 앞으로 약점이지만 보호막이 될, 그한테는 세상 전부인 이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턱에 나온 수염을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 요즘 많이 피곤했죠? 안색이 너무 안 좋으니 이제 좀 쉬어
“네가 정치일에 개입도 하지 않았고 나도 이제 곧 은퇴할 것인데 만약 본가에서 나쁜 기사라도 터지면 우린 경원시에서 설 자리도 없게 돼. 그럼 우주 그룹이나 본가나 다 영향받을 수 있잖아.”유강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유연서는요? 연서의 일은 어떻게 말씀하실 건데요? 은혜를 갚고 싶으면 알아서 갚으세요.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겠지만 누나의 목숨으로, 또 저의 행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려 하지 마세요.”“그리고 제 아이들은 유씨 성을 안 가질 거고 본적에도 넣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이름이 있어요. 하나는 강 씨 이고 하나는 진 씨 에요. 본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괜히 여기 와서 다연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세요. 다연이는 본가 사람이라면 이제 치를 떨어요.”유재성은 급해하며 말했다.“괜찮아, 나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아. 아이들이 유 씨가 아니라도 내 손 군들이야. 다연이가 날 싫다 그러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만 잠깐 만나볼게.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아이들에게 선물도 준비하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통화를 끊어버렸다.이때 이권이 걸어오더니 말했다.“대표님, 아이들의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작은 도련님이랑 아가씨 이름은 준비하셨죠?”유강후는 이권의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받아 그 위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그러자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역시 이미 생각해 놓으셨군요.”“남자아이는 다연이랑 같은 성씨로 진 강남으로 했고 이건 다연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거고 여자아이는 강아름으로 나랑 어르신이 같이 지은 거야.”이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작은 도련님이 진씨 가문의 성을 따르게 되면 어르신이 화 안 내실까요?”유강후는 종잇장을 건네주며 말했다.“어르신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아 이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그럼 아이의 성이 둘 다 진 씨라면 강씨 가문의 자손이 아닌 거야? 다연이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들인데 하나는 진 씨 성을 가지면 또 어때? 둘 다 진 씨 성을 따른
유강후가 가장 세게 흔들고 있는 작은 손을 건드렸더니 녀석은 바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이상하게도 녀석은 곧 칭얼거리지 않았고 작은 입을 쩝쩝대더니 조용해졌다.유강후는 갑자기 멍해지며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이것이 내 아이와 실제로 접촉하는 느낌인 건가?’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유강후가 막 아이를 안으려 할 때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입원실에 가서 안아봐요. 산모도 곧 나올 테니 여기 막아서면 안 돼요.”유강후는 몹시 아쉬워하며 장화연과 이권 더러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고 자신은 문 앞에서 온다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도 나왔다.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온다연은 아직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녀를 받아 입원실로 옮겼다.입원실은 예전 온다연이 쓰던 큰 방으로 이미 모두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두 꼬마 녀석은 침대 옆의 작은 침대에 두었다.두 아이와 온다연은 모두 조용히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들 모자 셋을 옆에서 지켜보았다.잠깐 사이에 유강후는 많은 사진을 찍었고 한장 한장 들여다보면서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모멘트도 일 년에 한 번쯤 업데이트하는 유강후가 오늘은 연속으로 세 개의 게시물을 올렸다.그것도 모자라 다시 작은 그룹 채팅을 만들어 잘 아는 몇몇 친구들을 그룹에 끌어들이고 그중에는 염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러고는 제목에 쌍둥이 남매가 부럽지 않냐고 그래도 소용없다고 계속 부러워하라는 글을 덧붙여 20장이 넘는 아기의 사진을 연이어 보냈다.얼마 안 되자 답글들이 올라왔다.송지원: 아이들이 태어난 거야? 축하해, 내일 보러 갈게.봉현수: 금방 태어난 거야? 난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 뒀어. 내일 지원이랑 같이 갈게.그 밑에는 붉은색으로 된 부동산 증명서 두 권의 사진이 첨부되었다.한재민: 축하해. 선물은 지금 오는 길에 있어. 설쯤에 제수와 아이들 보러 갈게.그웬: 벌써? 내가 아직 가지도 않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빼꼼히 열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한 명은 태어났고 지금 다른 한 명도 나오는 중이니 가족들 진정하고 조용히 해주세요.”말을 하고 있는데 반쯤 열린 문에서 또 다른 한 명의 나긋나긋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안에 있는 의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2.6킬로가 되는 여자아기예요. 아기 상태도 아주 좋아요.”“산모 상태도 좋아요. 이제 봉합 수술을 시작하죠.”유강후는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제 자리에서 굳어 있는 채로 꼼짝도 못 했다.간호사는 그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들으셨죠? 동생도 나왔다네요.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합니다.”“유 대표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협조해 주시고 더는 문을 잡아당기지 말아주세요.”유강후는 바로 손을 놓고 부들부들 떨며 담배를 가지려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옆에 서 있던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축하해요. 작은 아가씨가 2.6킬로나 되는 걸 보니 도련님은 더 건장할 거예요.”유강후는 기쁜 나머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수 없었고 신이 나서 말했다.“다연이가 무사히 수술실에서 나오면 바로 통지해. 우리 회사 직원들 전부 3일 동안 휴가를 내줄 것이고 이번 달은 두 배의 급여를 발급할 거야.”그 말에 이권은 너무 좋아 웃으며 말했다.“그럼 직원들은 아마 좋아 죽을걸요? 대표님은 참 통쾌하시다니까요.”장화연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도련님, 제가 가서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의 옷을 가져올게요. 방금 급하게 나서다 보니 챙기는 걸 까먹었어요.”그러자 유강후가 바로 말했다.“다른 사람 보낼 테니 장 집사는 가지 말고 여기서 다연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내가 혼자서 서툴까 봐 그래.”“그리고 앞으로 날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고 회장님이라 불러.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으니 좀 무게감 있는 호칭으로 바꿔야지.”장화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선생님이라 부를게요. 무게감 있고 더 뜻깊어 보이잖아요?”“집안의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된 온다연은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빨리 수술해야 해요? 혹시 아이가 어떻게 된 건가요?”지난번의 임신 사건 후 온다연은 이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두려웠고 지금은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되는 것이 당연했다.그러자 의사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급해하며 말했다.“아이를 낳는 일은 누구도 장담 못 해요. 앞당겨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많이 생겨요. 지금은 양수가 터져서 자궁 상태가 안전하지 못하니 빨리 수술해야 해요. 아직 만삭이 안 되었지만 이 두 아이는 온다연 씨의 몸에 비해 작지 않은 편이라 일찍 출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온다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난다면 저는 괜찮아요.”온다연은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비록 그웬은 아니지만 경원시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이며 심지어 옆에서 수술에 도움을 주는 사람도 국내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였다.그런데도 유강후는 긴장한 나머지 수술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마저 바닥에 열 번 넘게 떨어뜨렸다.30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수술실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유강후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장화연,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나도 수술실에 들어가 봐야겠어.”그렇게 말하고 바로 수술실 문을 잡아당기자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유 대표님, 지금은 수술 중이라 여기서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장화연도 재빨리 달려가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도련님, 아이를 낳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은 건강 상태가 아주 좋고 아기도 뱃속에서 건강한 상태였어요. 게다가 많은 전문가가 수술실에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니 내심이 기다려요.”유강후는 처음으로 초조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수술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되어가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그러자 호사가 황급히 대답했
“지예솔이 며칠 전에 갑자기 사라졌대. 봉현수가 경원시의 땅 전체를 파헤칠 정도로 찾았지만 사람은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 게다가 봉현수의 회사에 일이 좀 생겨 그걸 도와 처리하느라 좀 늦었어.”유강후의 말에 온다연은 당황했지만 일부러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예솔 씨가 또 집 나갔어요? 이런 일도 이젠 한두 번이 아닌데, 며칠 더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죠.”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엔 좀 다른 거 같아. 지예솔이 봉현수와 함께 썼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고 사진이랑 다 삭제했어. 십여 년 전의 편지조차 다 버려버린 걸 보니 아주 철저하게 돌아선 거 같아. 이번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온다연은 냉정하게 말했다.“봉현수가 예솔 씨를 그렇게 대하는데 어떤 여자가 옆에 남아 있겠어요? 찾지 못한다 해도 자업자득이죠 뭐.”“봉현수가 지금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어. 게다가 쓰레기 처리 센터까지 가서 뒤지면서 몇 통의 편지와 망가진 장난감 몇 개를 되찾아왔어.”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지예솔이 너랑은 좀 친해 보이던데 혹시 너한테 메시지라도 보낸 건 없어?”온다연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그렇게 친한 정도도 아닌데 저한테 뭐 하러 연락하겠어요? 이미 떠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니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을 거예요.”그러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근데 저는 지예솔 씨의 소식을 들었다 하더라도 말 안 해줄 거예요.”“됐어요. 남의 집안일은 집에서까지 논하지 말아요. 장 집사님이 맛있는 걸 해놨어요.”말을 마친 후 온다연은 유강후를 밀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겨우 두 걸음을 걷던 온다연은 배가 처지는 느낌을 받아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저는 배가 너무 무거워서 걷기도 힘드니 강후 씨 혼자 내려가서 먹어요.”유강후는 갑자기 긴장해 하며 말했다.“낳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온다연은 그가 긴장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직도 이틀 더 있어야 겨우 8개월이
또 어느 큰 눈이 내린 날, 날씨도 엄청 추웠다.온다연은 오후에 잠깐 집을 나서 좀 먼 곳에 있는 작은 여관에 갔다.여관방에서 온다연은 주머니 하나를 지예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사람 찾아 만든 새 등록증이에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거니 일단 받아요.”“참, 그리고 안에 카드 한 장 있어요. 천만 원이 들어 있으니 저의 성의라 생각하고 그쪽에 가서 잘 살아요.”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 말했다.“확인해 보니 라현쪽에 유강후의 지사가 있었어요. 제가 이미 이유를 대서 그 지사를 대진 그룹 명의로 옮겼어요. 그쪽 사람들한테도 이미 인사를 했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지금 예솔 씨의 이름으로 경리를 찾아가면 돼요. 이름은 임진혁이라 해요. 하지만 그쪽은 외진 곳이라 제가 많은 도움은 줄 수 없을 거 같으니 이후의 일은 예솔 씨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지예솔은 등록증과 은행 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결국 받아들이고 자그마한 짐가방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온다연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저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물건이니 이거라도 받아주세요.”그녀가 건넨 물건은 너무 투명하여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옥팔찌로 비록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천만은 되는 듯해 보였다.온다연이 거절하려고 하기 전에 지예솔이 한마디 덧붙였다.“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제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요. 다연 씨가 갖고 있는 액세서리 하나도 이것보다 더 비싸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물건이에요.”온다연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옥팔찌를 받아들였다.“차가 도착했어요. 우리도 이제 내려가요.”지예솔은 남성복으로 갈아입고 자그마한 짐가방을 메고 온다연과 함께 내려갔다.밖에는 검은색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고 지예솔은 바로 그 차에 타고 창문을 내리며 온다연에게 손을 흔들었다.차가 떠나간 후 온다연도 옆에 있던 차량에 탔고 기사는 유강후가 제일 믿는 장 아저씨였다.온다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장 아저씨, 아드님이 경대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