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골목.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었다.온다연은 골목 입구에 막 들어섰을 때 갑자기 누군가에게 잡아당겨져 어두운 구석으로 끌려 들어갔다.벽 앞에는 술 냄새를 풍기는 취한 남자 두 명이 서 있었고 그들은 온다연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그녀의 옷을 찢기 시작했다.코를 찌르는 알콜 냄새와 남자들의 거친 움직임에 온다연은 겁에 질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도와주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그들 중 한 남자는 즉시 온다연의 뺨을 세게 때렸다.“감히 소리쳐? 뭘 잘했다고 소리치는 거야!”“오늘 네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거야. 가만히 있어. 이 오빠가 기쁘게 해줄 테니까.”...이때 갑자기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골목을 가로질러 왔고 차창이 천천히 내리자 차갑고 날카로운 눈동자가 드러나 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 행위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옆에 있는 운전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나가서 말릴까요?”도련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그냥 가!”이때 온다연은 이미 옷이 찢어진 상태였고 갑자기 나타난 차량 때문에 그녀는 더욱 몸부림쳤다.“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술 취한 남자는 온다연에게 아직도 도움을 청할 힘이 남아있는 것을 보자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두 번 더 때렸다. 또한 온다연의 몸을 잡고 있는 손에도 더욱 힘을 주어 치마를 벗기려고 했다.온다연이 절망하려고 할 때 이미 시동을 걸었던 차가 갑자기 멈췄다.그리고 차 문이 열리더니 키 큰 남자 두 명이 내려왔다.앞에 선 남자는 마른 체격에 브랜드 로고가 없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차갑고 위엄이 있어 어두운 밤에도 빛나는 것 같았다.그는 구석에서 무자비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온다연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는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불빛이 너무 어두워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낮은 울음소리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남자의 기억 속 목소리와 다소 비슷했다.남자는 차갑고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매미가 울어대는 무더운 여름날이었다.소녀의 수줍은 눈빛과 땀에 젖은 옆머리가 그날 오후와 겹쳐졌다.그 모습이 지난 3년 동안 매일 밤 꿈속으로 들어와 밤마다 유강후를 뒤흔들었다.유강후는 방금 온다연의 손길이 닿은 곳이 화끈거려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이 순간 공기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러나 유강후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며 여전히 차갑고 고상한 표정으로 말했다.“들어가.”온다연은 즉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치 사면받은 사람처럼 도망치듯 떠났다. 물론 온다연은 차에 탄 유강후의 맹수 같은 약탈적인 눈빛을 보지 못했다.온다연은 유씨 가문 저택에 들어선 후에야 유씨 가문 식구들뿐만 아니라 유강후의 옛 친구들도 모두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그 도련님들은 모두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중에서도 최고였다.온다연은 전에 그들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여러 번 목격했었기 때문에 그들을 피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하지만 안주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심미진은 온다연을 놓아주지 않았다.“나 시간 없으니까 네가 이 술을 네 작은 삼촌에게 갖다줘.”온다연은 거절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방 안은 화려했고 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온다연은 가시 장미에 섞인 새하얀 장미처럼 눈길을 사로잡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온다연의 검은 머리와 붉은 입술, 매력적인 골격,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특히 하늘색 치마 밑의 하얀 피부는 사람을 유혹할 정도로 하얗게 빛났다.잠시 동안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도련님, 유씨 가문의 양딸을 몇 년 동안 보지 못했었는데 그새 잘 자랐네요.”유강후 역시 온다연이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었다.“몇 년 동안 유씨 집안에서 먹여준 건 맞지만 양딸이라고 할 순
온다연은 고개를 숙였다. 마치 사나운 짐승에게 겨냥당한 듯 숨이 막힐 것 같았다.온다연은 문에 한껏 기대어 최대한 유강후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하지만 유강후는 바로 앞에 있고 공간이 좁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유강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느꼈다.맑은 솔방울 같은 냄새에 은은한 술 냄새가 섞여 온다연의 피부에 다가왔다. 그러자 온다연은 갑자기 3년 전의 점심에도 이렇게 더웠는데 술에 취한 유강후가 방에 쳐들어와 통제를 잃고 폭력적으로 행동했던 것이 떠올랐다.그런 기억이 떠오르자 온다연은 혼란스러워서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 유강후와의 거리를 벌렸다.하지만 너무 가까운 탓에 유강후의 옆을 지나가려 할 때 온다연의 팔은 유강후의 손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닿은 곳은 살짝 화끈거리며 유강후의 기운이 남았다.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씨 가문 저택은 학교에서 너무 멀어서 기숙사에 살고 있어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온다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낮아서 유강후는 그녀를 혼내고 싶었다.게다가 이 3년 동안 거짓말하는 것도 배웠다니.하지만 유강후는 아직 온다연을 까발릴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는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내 번호 차단했어?”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번호 바꿨어요. 예전에 쓰던 휴대폰이 고장 나서 모든 번호가 사라졌거든요.”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유씨 가문 사람들 중 이모 심미진의 번호만 저장했다.“휴대폰 줘 봐.”온다연은 순순히 휴대폰을 건넸다.살짝 낡은 휴대폰이었는데 스크린은 손상된 정도가 심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자신의 휴대폰으로도 온다연의 카카오톡 QR코드를 스캔해 추가했다.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돌려주며 담담하게 말했다.“아까는...”“알아요.”온다연은 유강후의 말을 잘랐다.“그분들 다 삼촌 친구들이잖아요. 농담한 거 알아요. 괜찮아요.”온다연은 유씨 가문에 오래 머물지 않기
온다연은 온 힘을 다해 유민준을 밀어냈다.“오빠, 정신 차려요.”유민준은 표정이 변하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온다연, 순진한 척하지 마. 너랑 네 그 빌붙으려는 이모가 뭐가 달라? 지금 이렇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거절해? 그럼 설마 더 대단한 걸 바라는 거야?”온다연은 표정이 바뀌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유씨 가문이 넘볼 수 없는 대단한 집안이란 거 알아요. 당신들한테 빌붙을 생각도 없었어요.”온다연의 표정이 바뀌자 유민준은 답답한 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조금 전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나 그런 뜻 아니야. 나랑 만나면 명분 주는 것 외에 다른 건 다 줄 수 있어. 예전에 내가 지나쳤던 거 맞아. 내가 하령이 시켜서 널 괴롭혔던 것도 인정할게. 그런데 다 지난 일이잖아. 앞으로 내가 배로 잘해줄게. 다연아, 너 나 좋아하지...”유민준이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자 온다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끼어들었다.“오빠 틀렸어요. 나 오빠한테 관심 없어요.”온다연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정확히 말하면 난 유씨 가문 사람들에게 관심 없어요. 조금도 없다고요.”유강후는 그 말을 듣고 창문에 올려놨던 손을 멈칫하며 살기를 내뿜었다. 차 안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가라앉았다.유민준은 그 말에 화가 났다.“나한테 관심 없다고? 그놈 때문이야?”유민준은 주머니에서 사진 여러 장을 꺼내 온다연의 얼굴에 던지며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너 이놈 좋아하지?”사진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불빛이 어두웠지만 온다연은 사진 속 남자가 그녀의 동기 진태윤이라는 것을 보아냈다. 요즘 인턴십 때문에 온다연은 진태윤과 가까워졌는데 유민준이 그들의 사진을 찍을 줄은 몰랐다.바닥에 널브러진 사진들을 보고 온다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오빠, 유씨 가문이 대단한 건 아는데요. 제 학교 친구들은 건드리지 마요. 태윤이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 태윤이 안 좋아해요.”유민준은 손을 뻗어 온다연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내려다보
그 남자는 바로 유강후였다.유강후는 고급 소재의 흰 셔츠에 긴 다리를 감싸는 검은색 바지를 입고 차갑고 위엄 있는 표정을 지은 채 길에 서서 눈길을 끌었다.그의 옆에 있는 여자는 하얀색 명품 정장을 입었는데 몸매의 볼륨감이 잘 드러났다. 맑고 귀여운 외모에 눈웃음도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두 사람은 무슨 말을 했는지 곧 여자는 유강후의 팔짱을 끼고 앞으로 걸어갔다.두 사람이 멀리 걸어가는 모습을 본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책을 얼굴에서 떼어냈다.하지만 이때 유강후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멀리서부터 안도연을 바라보았다.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다연은 유강후의 눈빛에서 차가운 기운을 느꼈고 순간 머리가 질끈거리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다행히 유강후는 곧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온다연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상현 씨, 미안해요. 저 볼일 있어서 이만 가야 할 것 같아요.”강상현이 말도 하기 전에 온다연은 이미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본 듯한 표정으로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유강후와 그 여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피하기에는 너무 늦은 온다연은 몸을 곧추세우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할 수 없이 외쳤다.“삼촌!”유강후은 시선을 온다연이 입고 있는 무릎까지 오는 하얀색 원피스로 옮겼다가 아픈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쳐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친구랑 여기서 켜피 마신 거야?”“강후 씨, 누구야? 왜 강후 씨를 삼촌이라고 불러?”여자는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유강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우리 형수님의 조카야.”여자는 놀란 듯 온다연을 훑으며 말했다.“강후 씨가 말했던 그 조카군요. 언제 이렇게 많이 컸어요?”여자는 손을 내밀어 온다연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반가워요. 저는 강후 씨 친구 나은별이에요.”사실 나은별이 자기 소개하지 않아도 온다연은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전에 유씨 가문에서 나은별을 여러 번 몰
위험한 분위기가 조금씩 다가오자 온다연은 공기가 질식하는 냄새로 가득 차 있다고 느꼈다.가슴이 답답해서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벽에 등이 닿아 더 이상 후퇴할 수 없었다.하지만 유강후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키 큰 유강후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면서 온다연의 몸에 곧 닿을 것 같았다.온다연은 옆에 있는 녹슨 수도관을 꼭 붙잡고 눈을 내리깐 채 감히 그를 쳐다볼 수 없었다.불빛이 어두워서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빨개진 것을 가렸고 매혹적인 입술만 보일 뿐이었다.유강후의 시선은 반쯤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그의 어조는 더 차가워졌다.“누구를 피하고 싶어서 이런 곳에 살고 있는 거야?”유강후는 아주 가까이 다가왔고 큰 몸으로 온다연을 가리자 마치 커다란 그물에 걸린 듯 도망칠 수 없게 만들었다.온다연은 유강후가 너무 가까이서 압박을 주는 바람에 온몸에 힘이 풀려 다리를 주체할 수 없이 떨기 시작했고 머리도 너무 어지러웠다.“말해!”온다연은 입을 뻐끔거렸다.“삼촌, 저...”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몸이 앞쪽으로 쓰러졌다.기절한 건가?유강후는 쓰러진 온다연을 두 팔로 감쌌고 그제야 그녀의 체온이 무서울 정도로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유강후는 얼굴을 찡그리고 허리를 굽혀 온다연을 안아 들었다.온다연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주위가 깜깜하고 빛이 전혀 없었다.당연히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다고 생각한 온다연은 손을 들어 올리자마자 가죽의 부드러운 촉감과 함께 부드럽고 딱딱한 무언가를 만졌다.소파인가? 아니면 의자?갑자기 어두운 불빛이 온다연의 머리 위로 비추면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일어났어?”온다연은 고개를 번쩍 들어 차가운 눈동자를 바라보았고 그 어둠은 그녀를 휩쓸어버릴 것만 같았다.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 온다연은 어리둥절했다.“사, 삼촌...”왜 자신이 어두운 차 안에서 유강후와 단둘이 있는 것일까?그의 부하 이권은 어디 간 걸까?온다연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
담담한 말투 속에 분노도 섞여 있는 듯했다.온다연은 열이 나는 이유로 정신이 혼미해서 저도 모르게 용기가 생겨 말했다.“삼촌, 너무 가까워요.”온다연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낮았는데 살짝 갈라지기까지 했다.유강후는 눈가의 어둠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온다연이 지금 열 때문에 이렇게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면 유강후는 그녀가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이때 갑자기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렸다.차창을 내리자 밖에서 이권이 비에 흠뻑 젖은 채 얼굴을 닦으면서 말했다.“도련님, 차가 왔어요. 다연 양과 함께 얼른 타세요.”유강후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불빛을 번쩍이는 롤스로이스를 흘끗 쳐다본 뒤 열이 나 정신이 혼미한 온다연을 바라보면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구급차 불러.”이권은 얼굴에 묻은 빗물을 닦으며 쓴웃음을 지었다.“도련님, 몇 년 동안 여기 계시지 않아서 경원시의 상황을 모르실 겁니다. 지금 비로 인해 경원시 절반이 정전되고 교통이 마비됐어요. 이 시간에 어디 가서 구급차를 부를 수 있겠어요?”유강후는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려했는데 이권이 또 말했다.“도련님, 마침 이 옆에 도련님 명의의 방이 있는데 오늘 밤엔 거기에 가서 머무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소 선생님도 같은 동네에 있어 병원에 가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소이섭은 유강후의 집에 도착했다.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이 온다연이라는 것을 확인한 소이섭은 눈빛이 복잡해졌다.“왜 다연이 여기 있어?”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수액을 놓는 소이섭을 바라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길에서 만났는데 아파 보이길래 데려왔어.”그러자 소이섭이 콧방귀를 뀌었다.“유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 언제부터 이렇게 착해졌지?” 소이섭은 일어나서 아직 의식이 없는 온다연을 흘끗 쳐다보며 그다지 친절하지 않는 어조로 말했다.“유강후, 네가 모를까 봐 말하는데 은별이의 우울증은 이미 매우 심각해졌으니까 더 이상 은별이를 자극하지 마.”하지만 유강후의
“가져가!”간단한 한마디였지만 거부할 수 없는 압박이 느껴졌다.온다연은 고개를 숙이고 여전히 카드를 받지 않았다.유씨 가문에서 10년을 지낸 그녀는 유강후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이런 사람은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했고 호의 속에 잔인한 가시에 숨겨져 있다.그의 평범한 말 한마디로 온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다르게 보게 할 수 있다.또한 마찬가지로 가벼운 말 한마디로 죽기보다 못 하게 할 수도 있다.수년 동안 온다연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해 본 것이 아니다.유강호의 “이곳을 네 집처럼 생각해”란 말에 온다연은 마치 피난처를 얻은 것 같았었지만, 자기더러 “유씨 가문과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한 말 때문에 몇 년 동안 괴롭힘을 당했다.유강후는 호의를 마음대로 주었지만 단호하게 거두기도 했다.마찬가지로 그의 동정심은 은혜이지만 괴롭힘이기도 했다.온다연은 더 이상 그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왜 유강호가 갑자기 다시 친절하게 대해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공기 중에 퍼지는 위험한 기운이 그녀를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다.하지만 온다연의 직감은 카드를 받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했다.온다연은 입술을 깨물고 카드를 받았다.“고마워요, 삼촌.”유강호는 그녀의 행동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유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다면 생각하면 학교 근처에 더 좋은 집을 구해.”유강호의 말투는 담담했다. “고양이를 새로 사도 돼.”고양이?온다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3년 전, 오랫동안 키우던 고양이가 누군가가 악의로 놓은 약을 먹고 죽었는데 하필 그때 유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외출하고 유강호만 집에 남아있었다.당시 온다연은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내어 울면서 의사를 불러 고양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유강호는 곧 숨을 거두려는 고양이를 무심하게 쳐다보고는 자리를 떠났다.온다연은 생명에 하찮게 생각하는 듯 무관심으로 가득 찬 그 차가운 표정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나중에 고양이는 죽었고
한 입 베어 먹자마자 권예진의 눈이 반짝였다.“이 맛은... 정말 맛있어요! 예전에 경원시에서 먹었던 맛이랑 비슷해요. 그 식당 주방장이 옛날 누구의 후손이라고 했는데, 왕에게 요리를 해주던 사람이래요. 그때 딱 한 번 먹어보고 다시는 못 먹어 봤거든요! 근데 오늘 이렇게 다시 먹어 보게 되다니... 진유나 씨, 요리 솜씨가 정말 좋으시네요!”온다연은 눈물이 맺힌 속눈썹과 볼 가득 음식을 담고 웃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운 다람쥐 같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맛있으면 많이 먹어요. 많이 가져왔어요. 하지만 이건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집에 있는 요리사가 만든 거예요.”권예진은 전혀 가식 없이 죽과 반찬을 맛있게 먹었다.그리고는 계속 감탄했다.“진유나 씨, 정말 맛있어요! 매일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하시겠어요.”그녀의 얼굴에 드리웠던 어둠이 사라지고 햇살처럼 환한 미소가 돌아왔다.“기회가 된다면 꼭 밥 얻어먹으러 가고 싶어요.”온다연이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언제든 환영이에요.”“그럼 꼭 기억해 두세요. 저는 사양 안 하는 사람이니까 맛있는 건 절대 안 놓쳐요.”권예진은 말한 대로 전혀 사양하지 않고 생선 살 죽을 깨끗이 비우고 만두도 절반이나 먹어 치웠다.행복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는 그녀를 보며 온다연은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저렇게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라면 뭐든 잘 헤쳐나갈 것만 같았다. 염지훈이 그녀를 놓친다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온다연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맞다, 제 친구가 여기서 의상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데 최근에 새로운 개량 한복을 디자인했어요. 며칠 후에 패션쇼를 할 예정인데, 권예진 씨도 관심 있으면 같이 가요.”권예진의 눈이 반짝였다.“설무 스튜디오 말씀이세요?”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권예진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꼭 가야죠! 그 스튜디오 옷이 얼마나 인기 있는지 아세요? 얼마 전에 나온 화려한 의상들 정말 잘 팔렸는데, 전 세계에 100벌 한정 판매
온다연은 주방에 닭곰탕을 끓여 달라고 한 후 직접 죽을 쑤었다.먼저 유강후에게 죽을 먹이고 체온을 재어 보니 어제처럼 열이 높지 않았다. 그제야 그녀는 도시락을 들고 병원으로 갔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권예진이 병실 문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온다연을 보자 그녀는 일어섰지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온다연은 그녀에게 다가가 빨갛게 부어오른 눈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안에 안 들어가고 여기 있어요? 그 사람이 괴롭혔어요?”권예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눈가가 더 빨개졌다.“아니에요.”온다연이 말했다.“아침 식사를 가져왔어요. 같이 먹어요.”병실에 들어가 보니 염지훈은 이미 깨어 침대에 기대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그는 흰 셔츠로 갈아입고 있었고 안색은 어젯밤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온다연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는 반가운 기색을 보였지만 권예진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굳어졌다.“권예진, 꺼지라고 했잖아. 안 들려?”권예진의 눈시울이 더 붉어졌지만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진유나 씨가 들어오라고 하셨어요.”염지훈은 차갑게 말했다.“네 얼굴 보기 싫다고 했잖아. 사람 말 못 알아들어?”권예진은 몸을 떨며 황급히 뛰쳐나갔다.온다연도 화가 나서 말했다.“지훈 씨,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요? 그래도 어젯밤 당신을 간호해 줬고 위출혈로 쓰러졌을 때 병원에도 데려왔잖아요. 그녀가 아니었으면 당신은 집에서 죽었을지도 몰라요!”염지훈은 차갑게 말했다.“그런 호의 필요 없어!”그는 권예진에게 집에 오지 말라고 거듭 경고했었다. 그런데 왜 그녀가 거기에 있었던 걸까?그날 밤에도 그녀는 몰래 그의 집에 잠입해 그의 물에 약을 타고 그의 침대로 들어왔었다.평소 순진한 척 가장했던 그녀에게 완전히 속았던 자신이 한심했다.두 집안이 오랜 세월 친분을 쌓아온 사이가 아니었다면 그는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감히 그의 앞에서 얼쩡거리고 또 온다연의 앞
“진유나 씨, 제발 불쌍히 여겨서라도 곁에 있어 주세요...”권예진은 조금 전 염지훈이 피를 토하던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팠다.“이 사람은 당신만 있으면 돼요. 다른 사람은 아무 소용도 없어요.”온다연은 염지훈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그녀에게 모든 걸 다 해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예전에 그와 결혼할 거라 생각했을 때조차 도망치고 싶었다.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조용히 말했다.“권예진 씨, 나와 이 사람은 안 돼요. 끊을 거면 깔끔하게 끊어내야죠. 이렇게 질질 끌면 더 힘들어질 뿐이에요.”권예진이 말했다.“하지만 이 사람은 이미 이렇게 아픈데...”온다연이 말했다.“오늘 밤은 부탁해요.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돌아섰다.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자 유강후는 일어섰다.“끝났어?”온다연은 다가가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돌아가요.”유강후는 잠시 망설였다.“상태가 좀 심각해 보이는데 누군가 여기 남아서 지켜봐야 하는 거 아니야?”온다연은 병실 쪽을 흘끗 보고 고개를 저었다.“그의 어린 비서가 그를 많이 좋아하고 사람도 괜찮아요. 내가 알아봤는데, 집안도 그와 어울리고요. 두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게 좋겠어요.”유강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그는 일이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염지훈의 성격상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게다가 그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염지훈은 그 어린 비서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이제 두 사람을 확실하게 묶어둘 무언가를 할 때가 온 것 같다.그가 말이 없자 온다연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가요. 내일 다시 올 거예요.”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렸다.“집에 가자.”온다연은 몸부림치며 말했다.“내려 주세요. 아프잖아요. 열도 나고...”유강후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지막이 말했다.“조금 아픈 것뿐이야. 죽기 직전이라도 너는 안을 수 있어.”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렸다.“지훈 씨, 너무 무리한 요구예요.”염지훈은 억지로 웃었다.“그래? 그럼 너희들은 만날 때, 나랑 약혼한 건 생각도 안 했어?”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대답하지 않았다.방안은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그때, 권예진이 들어와 온다연에게 조용히 말했다.“진유나 씨, 강 대표님이 밖에 계세요. 많이 아파 보이시던데...”온다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그 사람도 왔어요?”그녀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염지훈이 불렀다.“다연아, 난 그 사람 발가락 하나만도 못한 거야?”온다연은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말했다.“잠깐 보고 올게요.”염지훈은 희미하게 웃었지만 가슴 속에는 격렬한 고통이 몰려왔다.온다연이 밖에 나가보니 멀지 않은 벤치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유강후였다.평소 차갑고 위엄있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지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굴에는 옅은 피곤함이 드리워져 있었고 깊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마치 그녀의 연민을 갈구하는 듯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연약함이 느껴졌다.예전에 그를 감싸고 있던 모든 갑옷을 벗어 던진 듯 지금 그녀 앞에 있는 것은 더 이상 높은 곳에 있는 전쟁의 신 같은 남자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었다.실망할 줄도 알고 상처받을 줄도 알고 아픈 줄도 알고 힘들어할 줄도 아는 사람 말이다.온다연이 마음이 아파 말을 하려던 찰나, 뒤에 있던 염지훈이 갑자기 심하게 기침을 하더니 피를 토해냈다.권예진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달려갔다.“박 대표님!”온다연이 뒤를 돌아보니 염지훈은 계속 피를 토하고 있었다.그녀 역시 놀라 의사를 불렀다.한바탕 소란 후, 염지훈은 더 이상 피를 토하지 않았다.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보호자는 환자를 어떻게 돌본 겁니까? 자극을 주면 안 된다고 했는데, 방금 화가 나서 이렇게 된 겁니다. 3일 동안 유동식만 드셔야 하고 혼자 두어서도 안 됩니다. 보호자분, 누구시죠? 와서 서명하세요!”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가서 서
온다연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권예진 씨 맞죠?”권예진은 잠시 멍해졌다.“제 이름을 아세요?”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영상에서 봤어요.”권예진은 서둘러 말했다.“진유나 씨,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저 박 대표님의 비서일 뿐이에요...”“괜찮아요.”온다연이 말했다.“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박현욱 씨와의 혼약을 파기하려고 해요. 권예진 씨는 좋은 분 같으니 그가 좋아할 만도 하네요. 두 사람이 함께라면 저도 안심이 됩니다.”권예진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두 분, 파혼하신다고요?”온다연: “네. 이번에 그 이야기를 하려고 왔어요.”염지훈의 다정했던 목소리와 그가 했던 말들이 떠오르자 권예진의 가슴은 시큼하게 저려 왔다. 그녀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그는 사실 좋은 사람이에요. 기회를 한 번 주세요. 너무 빨리 결정하지 마시고요.”온다연은 권예진을 쳐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를 좋아하는 거 알아요.”그녀의 말에 권예진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아, 아니에요. 그분은 그저 상사일 뿐이고 집안끼리 아는 사이일 뿐이에요.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에요.”온다연은 미소짓기만 할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그때, 염지훈이 잠에서 깨어났다.온다연을 보고도 긴가민가한 듯 그는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다연아.”온다연은 그를 부축해 앉히며 타박했다.“술을 그렇게 마셨다면서요? 죽고 싶어 환장했어요?”염지훈은 고개를 떨구며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죽어간다니까 이제야 와 본 거야?”온다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슨 말이에요?”염지훈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방 안 공기는 어색하게 굳어졌다.권예진은 그런 염지훈을 보니 마음이 아파 고개를 숙인 채 방을 나섰다.방에 남은 두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겨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한참 후에 온다연이 입을 열었다.“박씨 가문에서 데려온 집사와 가정부들은요? 따라오지 않았나요?”염지훈의 눈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다.
온다연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어요. 당장 갈게요. 병원 위치를 보내주세요!”그녀는 전화를 끊고 침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문 옆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는 유강후를 발견했다.온다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손을 잡고 침대 쪽으로 이끌었다.“아직 열이 나는데 왜 일어났어요?”유강후는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방금 누구 전화였어? 어딜 가려고?”“염지훈 씨가 위출혈로 쓰러졌대요. 병원에 가야 해요.”남자는 즉시 표정이 어두워졌다.“안 돼. 절대 못 가.”유강후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하지만 그녀는 가지 않을 수 없었다.“염지훈 씨는 이곳에 가족이 하나도 없어요. 꼭 가봐야 해요.”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 마디 내뱉었다.“안 돼. 그 자식이 널 속인 거야. 소처럼 튼튼한 놈이 갑자기 아플 리 없잖아. 너를 내 곁에서 떼어 놓으려는 술수야!”온다연은 조용히 그의 눈을 응시했다.“강후 씨도 평소에 건강한데 지금 앓아누웠잖아요. 워낙 그 사람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는데, 오늘 가지 않으면 더 큰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요.”유강후는 얼굴빛이 흐려지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나도 많이 아파. 열이 펄펄 끓어.”그는 온다연의 손을 끌어다 자기 이마에 얹었다.“못 믿겠으면 만져봐.”손바닥에 전해지는 열기에 온다연은 좀 걱정됐지만 염지훈의 상태가 더 위중하다는 직감이 머리를 스쳤다.그녀는 손을 뿌리치며 속삭이듯 말했다. “어머님과 집사들도 강후 씨를 돌볼 수 있잖아요. 하지만 염지훈 씨는 이곳에 아무도 없고 지금 위출혈로 의식도 없대요.”일어서는 그녀의 모습은 단호했다.“후딱 갔다 올게요. 걱정되면 이권 씨랑 같이 가도 돼요.”“강후 씨는 가지 말아요. 둘이 또 주먹질할까 봐 두려워요.”말을 마친 그녀는 유강후가 동의하든 말든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섰다.안색이 어두워진 유강후는 온다연이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바로 따라나섰다.병실 문을 열자마자 온다연은 염지훈의 침대 옆에 앉아 있는 미모
바닥에 널브러진 빈 술병만 열 개가 넘으니 염지훈은 완전히 만취 상태다.권예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속삭이듯 말했다.“위도 안 좋은데, 이렇게 많이 마시고 죽고 싶어요?”그녀는 말하면서 염지훈을 부축해 소파 쪽으로 끌었다.하지만 190cm에 가까운 큰 키에 우람진 체격인 염지훈을 그녀가 160cm의 가냘픈 체구로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다.허우적대다가 염지훈의 몸이 그녀 쪽으로 기울었다.그녀의 가냘픈 몸으로는 거대한 남자의 체중을 지탱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순식간에 두 사람은 바닥에서 쓰러지고 말았다.권예진은 그의 몸에 눌려 바닥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필사적으로 그의 등을 치며 소리쳤다."저기요, 제가 밑에 깔렸어요. 얼른 일어나세요!""박현욱, 개자식! 나를 깔아 죽일 셈이야? 비켜!""3초 안에 일어나지 않으면 경찰 부른다!""야, 빨리 일어나!"하지만 염지훈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입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만 흘러나올 뿐,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었다.권예진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간신히 그의 몸 아래에서 빠져나왔다.하지만 바닥에 쓰러진 염지훈을 다시 부축하려던 순간,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이상한 감촉이 전해졌다.염지훈의 입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바닥은 이미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깜짝 놀란 권예진은 황급히 손으로 그의 얼굴을 치며 소리쳤다. “괜찮으세요? 피를 토했는데, 위출혈이 아니에요?”염지훈은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손을 잡아끌면서 웅얼거렸다.“다연아, 가지 마, 가지 마...”“유강후한테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줘... 약혼 파기하지 않을게...”권예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냈다.“비서님, 지금 당장 들어오세요. 대표님이 과음하셨는데, 위출혈인 것 같아요. 병원으로 이송 부탁드립니다.”염지훈의 비서는 이내 도착했다.두 사람은 엄청난 노력 끝에 간신히 염지훈을 차에 실었다.다행히 근처에 대형 한인 병원이 있어서 급히 달려갔지만 도착했을 때 염지훈의 상태는 더욱
사건은 잠시 일단락됐다.***저녁에 권예진이 염지훈의 별장을 찾았는데, 문에 들어서자 진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안쪽을 들여다보니 염지훈이 술병 더미 속에 비스듬히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권예진은 깜짝 놀라 급히 달려갔다.하지만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염지훈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다연아, 너 왔구나...”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권예진은 가슴이 찌릿찌릿 아려와 그 자리에 멈춰 섰다.‘나를 그 여자로 착각한 건가? 그 약혼녀로?’염지훈은 흔들거리며 일어나 권예진에게 손을 내밀었다.“다연아...”권예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람을 잘못 봤어요, 박현욱 씨. 저는 진유나가 아니에요.”염지훈이 몸을 휘청이며 다가왔다.“다연이 아니면, 넌 누구야?”“아니, 넌 다연이야. 나를 보려고 북아메리카에 온 거야?”그가 하도 꽉 껴안아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된 권예진이 소리 질렀다.“염지훈 씨, 저는 진유나가 아니라 권예진이에요.”“아니!”염지훈은 갑자기 감정이 격해졌다.“넌 다연이야. 내 아내! 이 손을 놓으라고? 절대 못 놓아!”그는 흐느껴 울었다.“네가 먼저 나를 건드렸잖아. 네가 갑자기 내 차에 올라탔고, 같이 산에 눈 구경을 가자고 했어. 네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며 자꾸 내 마음을 흔들었어. 그래서 빠져든 거야.”“이제 와서 놓아달라니.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많은 걸 했는데, 어떻게 놓아줘?”그가 너무 꽉 껴안아 권예진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취해서 사람을 잘못 봤어요. 박현욱 씨, 저는 당신의 다연이 아니에요.”그녀가 저항할수록 염지훈의 팔에 힘이 더 실리면서 그녀를 옥죄었다.“아니, 넌 내 아내 다연이야. 내가 이번 생에 결혼해서 같이 살고 싶은 유일한 사람!""다연아, 유강후 곁에 있지 마. 그 자식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자격도 없어!""넌 잠시 잊었을 뿐이야. 유씨 가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해
오후에 유강후가 깨어났을 때 온다연은 옆에 없었다.그가 막 입을 열려는데 오진숙이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도련님, 물을 좀 마셔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나 지금 아파?”오진숙이 걱정스럽게 말했다.“네, 의사 선생님께서 상처 부위가 감염돼 며칠 동안 열이 반복적으로 오르내릴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는 평소에 잘 아프지 않는 체질이고, 온다연이 곁에 없던 그 몇 년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열이 나면서 혼수 상태에 빠지자 전체 강씨 가문이 불안에 떨었다.유강후는 물을 조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다연은 어디 있어?”“서재에서 화상회의를 하고 계십니다.”오진숙의 말에 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진씨 가문에서 전화가 왔어?”오진숙은 감히 숨기지 못하고 그가 누워있는 동안 벌어진 일들을 대충 이야기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유강후는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꼬맹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럴듯하게 대처한 것 같았고 심지어 리더십도 있어 보였다.한편으로는, 그녀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면서 더 이상 이전처럼 그녀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불안감도 밀려왔다.더 큰 그물을 짜야만 그녀를 지켜낼 수 있을 것 같다.그는 옷을 갈아입고 서재로 갔다.널찍한 서재에 놓인 네 대의 컴퓨터가 모두 켜져 있었다.화상회의용 대형 스크린도 켜져 있었다.온다연이 컴퓨터 앞에 서서 이권 등에게 주식 매매를 지휘하고 있었다.화상회의 화면 속에서는 1,000여 명의 트레이더들이 그녀의 지시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매매를 진행 중이었다.이 광경을 본 유강후는 살짝 놀랐다.꼬맹이가 주식 그래프를 분석하면서 이렇게 많은 트레이더들을 지휘하다니.‘이 정도면 내가 해도 버거울 텐데...’그녀는 전혀 부담 없는 표정이었다.문 앞에 한참 서 있은 뒤에야 사람들이 그를 발견했다.그때쯤 주가는 이미 기본적으로 안정된 상태였다.이권이 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깨어나셨네요? 온다연 씨가 저희를 이끌고 주식시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