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몰래 키스에 실패한 진효영은 밤새 잠을 설쳐서 지금 기분이 완전 엉망이다.“봐봐요, 나 어제 밤새 한숨도 못 잤어요. 다크서클도 생겼잖아요!”“어, 좀 점잖게 굴지 그래? 계속 이렇게 굴면 우지민에게 너를 데려가라고 할 거야.”이강현은 승부수를 던졌다.이 말에 진효영은 김이 빠진 인형처럼 입을 삐죽 내밀고 억울한 얼굴로 이강현을 보았다.“지금 날 협박하는 거예요, 운란 언니한테 다 이를 거예요, 오늘 절에 가는데 오빠 빼놓고 갈래요.”진효영은 말을 마치고 이강현을 향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화장실을 뛰쳐나갔다.이강현은 고개를 저으며, 진효영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깨끗이 씻고 거실로 돌아온 이강현은 고운란이 진효영과 붙어서 낮은 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았다.“여보, 다들 영산사 용하다고 해서 나랑 효영이 같이 가보려고요.”고운란이 진지하게 말했다.신령이고 귀신이고 믿지 않는 이강현은 그 말에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하지만 구운람이 가고 싶어하니 이강현도 구운람의 기분을 망칠 수 없었다.“왜 갑자기 거기 가려고 하는 거야? 아니면 같이 가자, 어차피 나도 별일 없어.”“요즘 좋은 일들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불안해서 그래.”복도 넘치면 그만큼 화도 있을까 봐 걱정이 되는 고운란은 절에 가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었다.진효영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운란 언니랑 같이 갈래요, 오빠는 집에서 밥이나 해요.”“그래, 넌 집에 있어, 나와 효영이만 가면 돼.”고운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강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조심히 가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줘.”“걱정 마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집에서 밥이나 해요.”진효영은 득의양양하게 고개를 들고 이강현을 향해 혀를 날름거렸지만 귀여운 모습이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웃었다.“좋아, 네가 주문한대로 점심 해 놓고 기다릴게.”“응, 여보, 그럼 수고해. 우리 점심 때에 돌아올게.”고운란은 이강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청초한 차림의 황후는 방탄 롤스로이스에 올라탔다.황후가 가죽시트에 기대어 눈을 감고 물었다.“어떻게 됐어?”“옥룡벽은 어젯밤에 유노적이 이미 손에 넣었고, 그 외에 제가 작은 계획 세웠습니다.”권무영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응?”황후의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노여움을 푸세요. 저는 그냥 영산사의 스님을 통해 이강현 와이프를 영산사에 오게 했습니다. 나중에 보고 싶으시면 이 굴러들어온 며느리 어떻게 생겼는지 만나봐도 됩니다.” “만약 보고 싶지 않다면 사람을 시켜 잡게 할 수도 있고, 손대기 싫으면 그냥 놓아줄 수도 있습니다.”권무영은 구운람을 잡아들이려는 속셈이었지만 잡을지 말지는 황후를 뜻을 따라야 했다.황후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리며 담담하게 말했다.“고운란을 잡으면 이강현을 위협할 수 있을 것 같아? 권세를 위해 여자한테 신경을 쓰는 남자가 몇이나 되겠어?”“모르면 역사나 읽어봐, 자고로 권세 앞에서 여자는 버려지는 법이야.”권무영은 고개를 떨구고 마지못해 말했다.“제 안목이 짧았습니다. 저는 그냥 제 생각대로 황후가 하늘도 같이 느껴져서 만약 황후께서 정말 위험에 처한다면 목숨으로 바꾸겠다는 마음을 다른 사람들도 같은 거라고 오해했네요.”“허허.”황후는 시큰둥하게 웃었다.권무영의 이런 아첨은 황후는 믿지 않았다.“진심이에요. 정말 진심이에요. 할 수 있다면 다 털어놓고 보여드리고 싶어요.”“됐어, 그런 듣기 좋은 말은 하지 마,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니야, 옥룡벽을 손에 넣은 이상 그건 좋은 징조야, 운이 트일 수도 있어.”황후의 마음속에는 옥룡벽을 손에 넣고, 이강현을 굴복시키고 용문을 독점하려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강현을 자기 라인에 서게 설득할 수 있다면 이것으로 가장 좋은 결과이다. 그러면 먼저 이강현을 꼭두각시로 세워 놓고 때가 되면 이강현을 버리고 자기가 상위에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사실 이강현을 죽이는 것은 하책이다. 앞서 황
이강현은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갔다.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우지민을 보고 이강현은 의아해하며 물었다.“할 말 있으면 그냥 말해.”“그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우지민이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안색이 좀 곤란해졌다.“할말이 뭔데?”“그게 내 숙부님 쪽 일인데 저번에 구양지가 맞았잖아요, 며칠 중환자실에서 나왔는데 제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날아와 구양지 복수를 하겠다고 난리도 아니에요.”우지민은 마지못해 말을 꺼냈다.“그럼 네 숙부님은? 이 일은 그 사람이 알려준 거지? 왜 구양지 배신하겠다니?”이강현이 웃으며 물었다.“그런 것 같은데 입밖에는 내지 않았어요, 구양지 제자들한테 미움을 샀나 봐요, 다 숙부님 때문이라고 하니까 견디지 어렵겠죠.”우지민은 이강현을 쳐다보았는데 이강현의 얼굴에 별다른 표정이 없자 마음이 약간 불안해졌다. “사부님, 저는 숙부님에게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 뜻에 따를 거예요.”우지민이 말을 이었다.“괜찮아, 네 숙부님이 날 보자고 하니?”“네, 만나자고 하는데 제가 다른 일 때문에 나가봐야 한다고 하니까 그곳에 가서 기다리겠다고 하던데요.”이강현은 턱을 만지며 고민하였다. ‘우영민을 만나는 게 나쁠 것도 없어, 적어도 구양지 뭘 하려는 지 알면 덜 번거로울 수 있을 거야.’“내가 영산사에 갈 테니 네 숙부님을 영산사 산기슭에서 기다리라고 해.”“네,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우지민은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우영민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비록 이전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지만 혈연관계는 속일 수 없고, 두 사람 사이에 직접적인 이해충돌도 없었기 때문에 우영민의 부탁한 이상 완전히 거절할 수도 없었다.우영민에게 장소를 알려준 후 우지민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웃으며 물었다.“사부님, 왜 영산사에 갈 생각을 하셨습니까? 부처님께 소원이라도 빌게요?”“허허, 부처님은 나를 아는데 나는 부처님을 몰라.”이강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우지민은 속으로 좀 놀랐다. 이강현이 정말
“네네, 맞아요, 차에 신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사부님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입니다.”우지민이 웃으며 말했다.“나도 그 정도는 아니야, 신이 되려면 그만한 각오가 있어야 해, 누가 레이싱으로 신이 될 수 있으면 나도 인정할 게.” 이강현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답에 우지민은 멍하니 이강현을 쳐다보았다.“차신이라 해서 정말 신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요? 지금 무슨 시대인데, 옛 시대에도 불가능한 일 아닌가요?”“그러니까 차에 신은 없다는 거야, 차에 왕이면 어떨까.”이강현은 하품을 하고는 의자 등받이에 고개를 갸웃하고 잠이 들었다.우지민은 이강현이 졸린 것을 보고 말을 잇지 못하고 차를 몰면서 이강현의 말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신 이야기는 이강현이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아마도 이강현이 표현하려는 다른 뜻일지도 모른다.‘근데 사부님이 알려주려는 게 무슨 뜻일까?’우지민은 이강현의 말을 떠올리며 한 글자 한 글자 곰곰이 생각했다.“각오인가? 각오만 있으면 차 기술이 느는 건가? 그럼 그때 차왕도 될 수 있다는 거지, 차신은 꿈 깨고.”자기 생각에 잠긴 우지민은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영산사가 있는 영산 기슭으로 차를 몰았다.영산은 원래 영취산이라고 하였다. 달마가 천축의 매를 데리고 와서 법을 전하다가 영취산을 지날 때 영취가 죽어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달마는 서글픈 마음에 매를 영취산에 묻혔고, 이름 없는 산이 영취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영취산도 영산으로 단순화되었고, 불제자들이 전설을 따라 산 위에 절을 지었다.영산사는 영산에서 삼사백 년 된 절로 한정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이다.심지어 연말이 되면 다른 곳의 사람들도 영산사에 와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곤 한다.벤츠 차가 길 옆에 섰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마세라티 한 대가 벤츠 차량 뒤에 멈춰 섰다.우영민은 불룩한 가방을 들고 마세라티에서 내려왔다.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우영민은 벤츠 뒷좌석 문을 열고 들어가 뒷좌석에 큰
“원래 잘 모르는 사이였으니 이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용건이 무엇인지 말하세요.”이강현이 자신의 아첨에 넘어가지 않자 우영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그게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지금 구양지 제자들이 다 제 탓이라고 해서 관계를 끊자고 해요, 근데 200억 배상금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이게 완전 도둑놈들이죠.”우영민은 말을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선생님에게 부탁하려고요, 저 그 사람들한테서 벗어나고 싶어요.”이강현은 우영민 지금 처지가 이해되었다.일은 우영민과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고, 또 부잣집 아들이니까 제자들 사이 일부 뜯어먹으려는 사람들이 마음을 먹은 것이 틀림없다.구양지의 제자들 중 대다수는 구양지의 이름을 걸고 무관을 차리고 돈을 버는데 무관은 생각밖으로 큰 돈은 들어오지 않으니까 이번 기회에 부잣집 아들을 노려본 것이다.그리고 이강현은 구양지의 몸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추측했다. 만약 구양지한테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악심을 품은 제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여러 가지 상황이 뒤엉켜 지금 우영민에게 가장 불리한 상황을 형성하고 있었다.“그 일은 뒤로 미루고, 방금 문신에게 들으니 구양지의 제자들이 복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던데, 어찌 된 일인가요?”“구양지 큰 제자 장우범이 지금 구양지 역할을 맡고 있는데 스승의 복수에 아주 집착해요, 요 며칠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고수를 불러서 그쪽을 상대할 작정이예요.”“저도 그저 주워들은 거라 상세한 건 모르겠고, 저들이 지금 저를 경계하고 있어서 중요한 건 알아내기 힘들어요, 하지만 돌아가서 꼭 제대로 알아보겠습니다.” “만약 무슨 중요한 얘기를 들었다면, 반드시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보고할게요. 단지 이 선생님이 그 사람들 다 보내줬으면 합니다. 제 자유를 위해서.”우영민은 말할수록 감격에 겨워 두 손으로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이강현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우영민에게 명쾌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우영
“우지민과 함께 레이싱 클럽을 만들 건데 관심 있으면 참여시켜 줄 수 있어요.”이강현은 우영민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지금 일손도 부족하고 하여 만약 우영민이 개과천선할 수 있다면 이강현은 우영민을 데리고 함께 할 생각이다. 앞으로 용문을 이어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이라도 이강현이 무엇을 하려고 한다면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우영민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요, 힘든 일 다 저에게 맡겨도 좋아요, 저 무슨 심부름이나 다 할 수 있어요”“허허, 원하면 돼요, 자세한 건 그때 가서 문신과 이야기하고, 다른 일 없으면 먼저 돌아가보세요.”“그러죠, 나온 시간도 짧지 않아 의심받을 수 있으니 저 먼저 돌아갈게요. 무슨 일 있으면 지민에게 알리겠습니다.”이강현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였다. 우영민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자신의 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고 질주했다.우지민은 좀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사부님, 왜 숙부님을 우리 프로젝트에 참여시켜요?”“네 체면을 봐서라도 개과천선할 기회를 줘야지.”이강현이 웃으며 말했다.우지민은 자신의 체면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이강현이 자신의 체면을 세워준 것에 대해 우지민은 이강현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랐다.“숙부님 대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강씨 가문은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이강현은 손을 내저으며 괜찮은 듯이 말했다.“별일 아니야.”말을 마친 이강현은 핸드폰을 꺼내 고운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고운란이 영산사에 도착했는지, 절에서는 어땠는지 물었다.이강현은 구운람의 안전을 걱정했지만 고운란이 자기를 데리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영산사에 들어갈 수 없었다. 곧 이강현은 고운란의 음성 메시지를 받았다.“도착했어, 방금 부처님께 소원을 빌고 지금 스님이 경서를 읽는 걸 보려고 해, 집에서 잘 기다려.”이강현은 고운란의 음성에서의 말투가 여전한 것을 듣고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지도에 보면 산 중턱에 과수원으로 통하는 갈림길이 있
법지 스님은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했다.“아낌없이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처님도 보시고 소원을 이루도록 도와주실 거예요.”“아, 과연 그럴까요? 내가 정말 소원을 이루면 영산사를 도와 절을 다시 짓고 부처님의 금신을 다시 만들겠습니다.”법지 스님은 눈알을 굴리며 마음속으로 어림짐작했다.‘부잣집 늙은이를 따른 부인 것 같아, 아마 늙은이 죽음을 앞두고 재산을 쟁탈하려는 모양이야.’법지 스님의 불법은 그리 심오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재주는 대단하다.눈 깜짝할 사이에 황후의 현재 처지를 십중팔구 헤아려 보았다.이것도 법지 스님의 경험이 풍부하고, 여러 부잣집 사람들의 원한을 많이 본 덕분이다, 예전에 법지 스님은 부잣집 부자들 아들이나 부인들, 그리고 애인들의 마음을 자주 풀어주곤 하였다.법지 스님의 마음의 매듭을 푸는 수준도 높았고, 때로는 믿을 만한 아이디어 몇 가지를 내놓기도 했기에 법지 스님의 명성은 더욱 높아져 영산사를 거느린 향불과 수입도 갈수록 높아졌다.“얼굴에는 약간의 근심이 있는 것 같은데 아마 지금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전환점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면, 앞으로 반드시 큰 부가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넘을 수 없다면…….”법지 스님은 고개를 약간 흔들더니 입을 다물었다.황후는 법지 스님의 반만 말한 말에 불쾌하였다.“넘을 수 없다면 어떻게 되나요?”“그건 제가 감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왜 못해요? 말하지 않으면 이 영산사 다 뒤집어 버릴 테니까 빨리 말하세요.”황후가 음흉하게 말했다.법지 스님은 가슴이 섬뜩했다. 이렇게 제멋대로인 사람은 처음이다.‘단기 어떻게 돈을 달라고 할지 궁리 중인데 절을 뒤집어 버리겠다니 그건 내 밥그릇을 깨겠다는 거잖아.’법지 스님은 속으로 욕하며 헛웃음을 지었다.“결코 좋은 결과는 아닐 겁니다.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 있어요.”황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강현진이 왕위에 올라 용문의 주인이 된다면 그 결과 모든 것이
법지 스님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권무영의 목소리가 마치 목숨을 빼앗는 소리 같았다.황급히 고개를 들고 법지 스님은 황후를 바라보며 말했다.“앞으로 영산사 모든 승려들을 거느리고 시주님의 복을 빌며 일이 잘 풀리도록 기원하겠습니다.”더 이상 속일 수 없는 상황에서 법지 스님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발뺌이었다.현혹의 기본은 먼저 상대방의 속사정을 알아야 하는데, 설령 정체를 알지 못하더라도 법지 스님은 무심코 유용한 정보를 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황후를 대할 때 황후가 먼저 주도권을 잡아 법지 스님의 계획을 무너뜨려 법지 스님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게 했다.황후의 얼굴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법지 스님이 자신의 질문에 답하고 의문을 풀 수 있는 진정한 능력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 보니, 이 법지 스님은 사람을 속이는 전문인 것 같았다.“그게 정말 유용해요?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진실입니다.”황후는 차갑게 말했다.법지 스님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며 황송한 표정으로 말했다.“이것은 부처님이 기뻐하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향을 피워 빌어도 부처님이 비호하지 않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평생 향을 피우며 빌지 않아도 부처님이 비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그럼 나는 어느 쪽인가요?”법지 스님은 머리가 터질 듯 황후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보살님이 환생이라 모든 일이 잘 풀리실 겁니다.”지금 법지 스님은 어떻게 계속 속여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속일수록 번거로움이 커질 수도 있으니까 차라리 찌질함을 인정하는 것이 낫겠어.’권무영은 입을 삐죽거렸다.‘황후 앞에서 수작을 부려? 그건 죽음을 자초하는 거야.’황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권무영을 바라보며 말했다.“고운란이라는 계집애는 아직 안 온 거야?”“대웅전에 막 들어갔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이리 와서 스님의 가르침을 잘 들으라고 해, 난 병풍 뒤에서 들을 거야.”“네.”권무영은 공손히 응수하고 부하들에게 연락하여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