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슬기는 이미 술에 취해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웠는데, 배정우가 확 밀어버리자 침이 잘 못 넘어가 사레가 들렸다.“콜록, 콜록...”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배정우의 손을 찰싹 때렸다.“얼굴 좀 그만 만져! 아파!”“임슬기, 아직도 취한 척할래?”그는 임슬기의 주량이 꽤 센 편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취할 수 있단 말인가?그러나 임슬기는 토라진 아이처럼 입술을 삐쭉 내밀었고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그녀는 배정우의 손목을 붙잡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정우를 17년 동안 사랑했는데 왜 안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배정우라는 걸 확인한 순간 임슬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내 옷은...”배정우는 그녀를 흘끗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설마 내가 널 건드렸다고 생각하는 거야? 잊지 마, 난 널 더럽다고 생각해.”그 말에 임슬기는 순간 가슴이 아릿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밀려왔다. 적어도 실수로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지는 않았으니까. 그녀는 여전히 배정우와의 결혼 생활에 충실했다.임슬기는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걱정하지 마. 그런 오해 하지 않았으니까.”옷을 갈아입던 배정우는 그 말에 동작을
임슬기는 갑자기 김현정을 꽉 끌어안으며 울먹였다.“현정 씨,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임슬기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한 김현정은 잠시 멈칫하다가, 곧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슬기 언니, 앞으로 나한테 절대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고 말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의지하세요. 앞으로 내가 언니랑 함께할게요. 안심하고 나만 믿어요.”임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고마워요.”김현정은 임슬기의 어깨를 잡고 한 마디 한 마디 강조하며 말했다.“언니, 나 진심이에요.”임슬기
배정우가 임슬기를 못마땅하게 노려보며 연다인을 데리고 떠나려던 찰나 그녀가 말을 이었다.“슬기야, 아무리 내가 미워도 그렇지, 굳이 밀 거까진 없잖아. 그래놓고 모른 척까지 해?”연다인의 말에 배정우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임슬기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임슬기, 그 질투심 좀 거둬.”“난, 민 적 없어!”“없다고? 그럼 다인이가 널 억울하게 몰아붙인다는 소리야?”임슬기는 비웃으며 말했다.“걔가 나를 억울하게 몰아붙인 적이 한두 번이었어? 연다인 때문에 억울하게 당한 일은 셀 수조차 없이 많아.”“아직도 변
“저 아니에요. 전 억울해요!”정신을 차린 임슬기가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임슬기 씨, 지금은 단순히 조사와 진술을 받기 위해 데려가는 겁니다. 당일 현장에 있었던 만큼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임슬기는 경찰을 멍하니 바라보며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조사만 받는 거예요?”“네, 조사만 받는 겁니다.”혼이 나간 듯 멍해져 있는 임슬기를 보자, 김현정은 서둘러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슬기 언니, 내가 부축할게요. 진 변호사님을 찾으면 돼요. 별일 없을 거예요.”“그래요.”임슬기는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마음속에는 분노와
“진 변호사님, 어떻게 됐어요?”“경찰 측에서 슬기 씨와 관련된 외도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어떻게든 슬기 씨와 연관이 있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에요.”“뭐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연다인이 그런 거 아니에요?”진승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누군가가 위증을 한 것 같아요. 만약 정말 누군가가 슬기 씨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다면, 일이 매우 복잡해질 수 있어요.”경찰은 증거와 증인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고 연다인은 누명을 씌우는 데 능숙한 사람이니 경찰의 사고를 흐트러뜨리는 건, 식은 죽 먹기
“배정우, 이미 맘속으로 결론은 다 내린 거 아니야? 나한테 왜 물어?”배정우는 그녀의 턱을 잡으며 깊은 눈빛으로 차갑게 응시했다.“임슬기, 너 지금 자수하는 거야?”“오정태가 날 얼마나 잘해줬는데, 내가 그를 죽일 이유가 뭐가 있겠어?”“있지. 바람피우는 걸 들켰잖아.”임슬기는 배정우를 텅 빈 눈으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바람을 피웠다고?”그녀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웃음이 나왔다.임슬기가 수없이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정우는 여전히 그녀를 믿지 않았고 바람피웠다는 이유로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씌우고
임슬기의 말에 한 남자가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진짜야?”“당연히 진짜지. 전염률이 백 퍼센트야.”하지만 다른 한 명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형, 거짓말인 것 같은데? 게다가...”순간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에 마이바흐 한 대가 질주하며 세 사람을 향해 돌진해왔다.세 사람은 도망치려 했지만 달려오는 차를 피할 수는 없었고, 결국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으며 소리쳤다.“아! 살려주세요!”사람을 치기 직전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그들의 발 앞에 멈춰 섰다.누가 봐도 자신들을 노린 걸 알 수 있었던 세 사람은 바
주방에서 임슬기는 면을 삶고 있었지만 마음은 온통 딴 데로 가 있었다.한편으로는 김현정의 상태가 걱정됐고 또 한편으로는 연다인이 다음에 무슨 짓을 벌일지 불안했다.생각이 많아지는 그때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임슬기는 불을 약하게 줄이고 도어스코프로 밖을 확인한 후 문을 열었다.“문주 씨, 도대체 어디 갔었어요? 아침에 전화했는데 왜 계속 안 받았어요?”육문주는 아직도 어제 입었던 정장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안색은 좋지 않았으며 목소리도 쉬어 있었다.“어젯밤에 좀 일이 있었어요. 현정 씨는 안에 있어요?”“있어요.”육문주가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말해 봐, 연다인!”“난 말이지 네가 무너지는 꼴을 보는 게 제일 즐거워. 임슬기, 네가 미쳐버릴 정도로 무너지고 나면 정우도 너랑 이혼하겠지. 그때쯤이면 나도 자연스럽게 정우의 아내가 되겠네?”임슬기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연다인,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 경고하는데, 더는 함부로 굴지 마!”하지만 연다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너도 참 한심해, 임슬기. 그렇게 소리만 질러대고 그 외엔 뭘 할 수 있는데?”“이 비겁한 년!”임슬기가 더 말하려는 찰나 갑자기 욕실 안에서
임슬기는 순간 멈춰 섰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김현정을 바라보며 물었다.“현정아, 무슨 일이야?”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조심스럽게 몇 걸음 더 다가갔다.“슬기 언니... 제발 오지 마요!”김현정은 몸을 더 안으로 움츠리며 눈물범벅인 얼굴로 간절히 애원했다.“부탁이에요, 오지 마요... 제발...”김현정의 반응이 너무 격해지자 임슬기는 더 다가가지 못하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알겠어. 안 갈게. 여기 이렇게 있을게. 괜찮지?”김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임슬기는 김현정이 우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
‘허, 승윤아? 참 다정하게도 부르네.’임슬기는 취기에 휘청이며 배정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잡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중얼거렸다.“너랑 있으면 마음이 좀 놓여. 고마워, 승윤아.”배정우는 그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상대는 술에 잔뜩 취한 상태라 불러도 소용없고 화를 낸다고 바뀔 것도 없었다.결국 그는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아주 제대로 한 대 갈겨. 힘 좀 써서.”...다음 날.임슬기는 흐릿한 정신으로 깨어났다. 입안이 텁텁하고 목이 바짝 말랐다.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중얼거렸다.
그 말을 입에 올리자마자 진승윤은 바로 후회했다.너무 충동적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었을까.만약...“좋아.”진승윤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임슬기가 미소를 머금고 그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좋아요. 진 변호사님께서 내가 몸 약한 것만 안 싫어한다면 말이죠.”진승윤은 어리둥절한 채 말을 잇지 못했고 임슬기는 그의 얼굴 앞으로 살짝 몸을 기울였다.“지금 혹시 후회하는 거 아냐?”“아, 아니...”“나도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몰라. 근데 내가 죽고 나면 내 동생이 정우보
말이 끝나자마자 임슬기는 그의 손에 들린 맥주를 낚아채더니 고개를 젖혀 단숨에 들이켰다.“또 있어?”진승윤은 잠시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라고?”“술 말이야. 너 아까부터 마시고 있었잖아?”임슬기는 그의 옆에 털썩 앉았다.“왜 혼자 마셔?”진승윤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손등으로 임슬기의 이마를 짚었다.정상 체온보다는 약간 높은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그제야 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진짜 살아 있는 임슬기라는 사실을 실감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슬기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아직 열나고 있잖아.
주민규를 돌려보낸 후 진승윤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이마를 찌푸린 채 침대에 누운 임슬기를 바라보았다.창백한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누가 봐도 방금까지 울었던 얼굴이었다.이렇게나 쉽게 부서질 듯 연약해 보이는데, 배정우는 어떻게 손을 댈 수 있었을까.진승윤은 손을 뻗어 임슬기의 이마에 흘러내린 잔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던 그는 이내 뜨거워진 그녀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슬기야,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한 거야. 연다인이 거기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배정우가 어떤 선택을 할지 뻔히 알
연다인은 임슬기를 향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배정우의 품에 고개를 기대었다.“정우야, 나 슬기 밀지 않았어. 정말이야...”분수대를 벗어나자 배정우는 그녀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밀었는지 아닌지는, 네가 제일 잘 알겠지.”연다인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그의 허리를 껴안고 울먹였다.“내가 밀 이유가 뭐가 있겠어? 네 눈엔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이야?”그러더니 몇 차례 기침을 했다.“내가 이렇게 몸이 약해진 것도, 다 누구 때문인데...”그 말을 들은 배정우는 조금은 부
진성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는 비웃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정우야, 난 널 돕고 있는 거야.”“아저씨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배정우는 그 말을 남기고 임슬기의 손을 이끌어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내가 분명 진승윤한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지? 왜 말을 안 들어?”임슬기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차갑게 웃었다.“승윤이가 아니었으면 난 벌써 몇 번은 죽었을 거예요.”“진성한은 네가 건드릴 만한 사람이 아니야.”“맞아요, 내가 감히 건드릴 수 없겠죠.”임슬기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도 마찬가지예요. 힘도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