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의 요즘 분위기는 좀 이상했다.모든 직원이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의 모든 방문객을 사절하고 원래 예정된 일정도 연기되어 대사관 내부 업무 조정으로 이틀을 쉬게 되었다.소문으로는 H 국에서 보낸 사람이 소독 작업을 했는데, 결국 독을 방출했다고 했다. 대사관 내부에 이미 중독된 사람이 있는데, 단지 증폭되지 않기 위해 일을 널리 알리지 않았을 뿐이라 했다.이 소문이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었고 다른 각국 대사관들도 술렁이고 있었다.얼마 전 남아시아를 휩쓴 전염병을 그들 모두 보았거나 직접 경험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역병이 다시 온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모든 사람이 걱정에 빠졌고 대사관은 저마다 엄격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더 강력한 세력은 이미 H 국에게 해명을 요구했다.H 국 쪽은 당연히 오리무중이었다. 어떻게 이런 소문이 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Y 국 대사관에서 시작한 이상 반드시 이 근원을 찾아 확실히 해야 했다.하지만 Y 국 대사관은 외부와의 만남을 일절 사절하고 있어 소문은 더욱 진위 적이고 신빙성 있게 들렸다.그러나 Y 국 대사관에서 정작 업무 연기의 원인이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프레드 공작의 실종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이로 인해 대사관 안은 잠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들 중 여왕 폐하가 계신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측근들 중 몇 명은 당연히 침묵을 지켰다. 프레드의 실종은 그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했는데 쩔쩔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들이 여왕 폐하에게 여쭐 것인지, 아니면 공작 어르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인지 갈등하고 있을 때 프레드가 다시 나타났다.“공작 어르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난 측근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지난 며칠 동안 어디 계셨어요? 우리는 모두 초조해 죽을 뻔했어요.”그러나 프레드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한소은 그 여자 어디 있어?”“아, 아직 다락방에 갇혀 있어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숟가락을 들어 앞에 놓인 케이크를 살짝 긁어낸 뒤 입에 넣고 눈을 감는 모습은 마치 즐기는 듯했다.“한소은...”프레드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손을 들어 한소은 앞에 있는 모든 음식을 바닥에 쓸어내렸다. “여기서 먹고 마시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어? 내가 너에게 너무 인자한 거야, 그렇지?!”우당탕-식기가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한소은은 발광한 프레드를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숟가락에 묻은 크림을 조용히 핥았다.오히려 아래층에 지키고 있던 측근이 이렇게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하마터면 위층으로 올라가 상황을 보려고 할 뻔했다.하지만 프레드가 무슨 소리를 들어도 올라오지 말고 아래에 있으라고 한 것이 떠올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이때 프레드는 침착한 한소은을 보며 답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한소은이 아직 쓸모가 있는 게 아니라면, 아직 이용가치가 남아 있지만 않았더라면 프레드는 정말로 손으로 목 졸라 죽이고 싶다.하지만 한소은이 입을 열자 프레드는 하마터면 충동을 억누르지 못할 뻔했다.한소은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신을 노려보는 프레드를 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눈빛이 물건을 뒤집은 프레드의 손에 떨어지는 순간 덤덤하게 한마디 했다. “보아하니, 네 손이 거의 다 나았구나.”프레드는 깜짝 놀랐다.말하지 않으면 잊을 뻔했다. 한소은이 며칠 전 자신의 팔을 부러뜨렸다는 사실이 또 머릿속에 떠올랐다.며칠 동안 깁스를 했더니 이젠 좀 나아졌지만, 아직 힘을 줄 수 없었다. 힘을 줄 때마다 계속 시큰거리고 아팠다.하지만 또 다른 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도대체 무슨 독을 먹인 거야?” 눈이 벌겋게 된 채 프레드가 기세등등하게 따져 물었다.눈썹을 치켜올리며 한소은은 빙긋 웃었다. “난 몰라.”“네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프레드는 화가 나서 폭발할 것 같았다.“말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프레드 당신이 그것이 독이라는
도대체 언제 독약을 만들어 냈고 자신은 왜 조금도 몰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여기엔 감시카메라가 너무 많고, 도청 장비도 충분해서 한소은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자기 손아귀에 있으니 이런 일이 생길 리가 없다.“어떻게 된 일인지 중요해?”한소은이 웃었다. “내가 마술을 부리는 건지도 몰라.”프레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웃고 있는 한소은을 보던 프레드가 갑자기 손을 떼고 포악한 기운도 많이 누그러졌다.“악.”비명을 지르며 프레드는 천천히 주저앉아 한 손으로 복부를 감싼 채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프레드의 모습을 지켜보던 한소은은 전혀 놀라지 않고 살짝 몸을 기울여 더욱 정면으로 마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어때, 많이 힘들지?”프레드는 대꾸하지 않았다.“매일 점심때마다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지 않았어? 아무것도 못 먹어 배고픈데 또 배불러. 탈진할 때까지 설사하고 복통을 호소했겠지.”진지하게 지켜보는 한소은의 표정은 마치 환자의 병세를 걱정하는 의사처럼 엄숙하게 병세를 묻고 원인을 분석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아랫입술을 꽉 깨문 프레드는 여전히 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한소은이 말한 것이 다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거의 모든 핵심을 찔렀다. 이틀 동안 확인하러 간 것 외에는 몸이 견딜 수 없이 너무 안 좋았다.첫날에는 구역질과 구토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날 밤의 설사도 단지 배탈이 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다음날에는 분명히 더 이상했다. 기운이 없고 몸이 아픈 프레드는 한소은이 한 말이 생각났다. 한소은이 자신에게 그 알 수 없는 것을 먹인 것도 함께 떠올랐다.이곳의 의사들 중 아직 첩자가 있을까 봐, 그리고 의사들 의술이 부족할까 봐, 프레드는 특별히 몰래 귀국하여 심복 의사를 찾아가 전면적인 검사했다. 검사 결과 그의 몸에 확실히 문제가 생겼지만,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병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결과만으로도 프레드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프레드는 이 업계에서 오랫동안 몸을 담그다 보니, 의학을 배운 것은
“보내 달라고? 그럴 리 없어!”프레드는 또박또박 말했다.손뼉을 치고 난 한소은은 돌아서서 반대편으로 가서 물을 따라 마시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대단해! 그럼 끝까지 꿋꿋하게 버텨. 어차피 나도 이젠 나 스스로가 아니면 아무도 날 구해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하지만 나 혼자서는 정말 보잘것없으니 당신들 Y 국과 대적할 수 없어. 그래서 기회가 한 가닥이라도 주어진다면 당연히 가장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네가 나와 함께 묻혀야 해!”한소은은 고개를 치켜들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죽는 게 두렵지 않아? 신경도 안 써?”통증이 좀 편해진 것 같았던 프레드는 한 손으로 책상을 짚고 버티며 일어섰다.“신경 쓰면 뭐해, 날 놔줄 거야?”어깨를 으쓱하더니 한소은은 어이없는 어조로 말했다.“그럴지도...”프레드가 단호하게 뱉은 한마디에 한소은은 멍해졌고, 잔을 쥔 손이 기울어져 물이 쏟아졌다.한소은의 반응을 본 프레드는 아이를 가장 신경 쓰는 한소은이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심호흡하고 난 프레드는 몸을 가누며 계속 말했다. “너를 보내준다고, 그건 불가능해! R10에 우리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인적 물적 자원을 얼마나 투입했는지 너도 알잖아. 게다가, 너도 알다시피 다른 사람은 널 대체할 수 없어!”한소은은 할 말을 잃었다.자신이 대체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해 보였고, 그래서 감히 프레드를 위협한 후에도 여전히 무사할 수 있었다.“내가 해독만 해준다면 내 아이들을 풀어주겠다는 건가?”생각에 잠기던 한소은은 확신이 서지 않아 다시 물었다. “둘 다 풀어줄 거야?”“그래!”프레드는 다시 한번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네가 해독만 도와준다면, 그들을 무사히 네 남편에게 보낼 것을 약속할게.”솔직히 이 조건을 들은 한소은은 마음이 동요했다.한소은은 자신이 이대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임남을 말하는 거야.”한소은은 또박또박 말했다.프레드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이름을 반복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임? 남?”“임상언의 아들이야. 오래전에 너희들에게 잡혀 너희들을 도와달라고 협박하는 데 이용되었지. 모른다고 하지 마.”한소은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프레드를 공격했다.“아, 그 녀석!”그제야 생각난 프레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왜, 남의 아이도 신경 써? 아니면, 그 자식도 네 아이인가?”이 눈빛과 말투는 정말 한 대 치고 싶을 정도였다. 프레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한소은은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사람과 따지는 것이 귀찮아진 한소은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내 두 아이와 임남까지, 이렇게 계산해도 당신은 여전히 수지가 맞아. 어쨌든, 당신은 대단한 공작 어르신이고,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세 아이일 뿐이잖아.”프레드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듯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꽤 그럴듯하네.”“그럼 동의한 거야?”한소은이 물었다.“아니, 동의하지 않아.”프레드는 의외로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런 태도에 한소은은 깜짝 놀랐다.한소은의 구상 속에서 프레드는 잠시 주저하다가 승낙할 것이니 말이다.한소은이 스스로 가지 않은 건 단지 아이를 보내라는 조건을 달았을 뿐이고, 임상언은 이제 그들에게 아무런 이용가치가 없으니, 임남을 남겨도 더는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들에게 쓸모없는 임남을 풀어주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을 리가 없다.“잘 생각해 봐, 이건 네 목숨이야.”한소은은 목소리에 힘을 줬다. “임남은 이제 너희에게 쓸모가 없어. 이제 임상언은 너희에게 조금도 쓸 가치가 없잖아. 그러니 호의로 그냥 풀어주는 게 좋지 않겠어?”“다른 건 몰라도 그 애는 안 돼!”뜻밖에도 프레드는 말을 바꾸지 않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럼...”잠시 머뭇거리던 한소은은 생각에 잠기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너에게 해독제를 줄 수 없어. 너의 시간도 많지
발걸음을 멈춘 프레드는 답을 기다리는 듯 몸을 돌렸다.그의 결연한 표정을 보며 한소은은 잠시 생각하고 물었다. “왜 그래?”프레드는 어리둥절했다.“왜 그러는지 말해 줄래? 임남은 너한테 별로 이용가치가 없는데, 그럴 필요 없잖아...”한소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프레드에 의해 중단되었다.프레드는 다시 돌아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는지, 아니면 한소은이 나갈 수 없다고 굳게 확신한 건지 아예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 아이가 나한테는 다른 쓸모가 있어. 그러니 넌 다른 생각할 필요 없어. 난 그 애를 놓아주지 않을 거야!”“말해 주지, 넌 그 애와 거래 조건을 만들 수 없어. 다른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말해 봐.”한숨을 내쉬며 프레드는 가슴 위치를 쓰다듬었다. 가슴에서 아련한 통증이 느껴졌다.몸의 통증이 진실하게 느껴졌다. 몸이 이상해서가 아니라면 프레드는 한소은과 어떤 거래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이런 대화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눈살을 찌푸리며 한소은은 그의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방금 프레드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기회를 빌려 임남을 구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프레드의 말이 맞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한소은에게는 또다시 기회가 없을 것이다.“좋아! 난 너와 거래하기로 약속해!”두 걸음 앞으로 나서 한소은은 프레드를 바라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조건?”프레드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내 아이 둘! 임남 추가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그럼 좋아, 안 넣을게! 그냥 내 아이 둘이면 되겠어?”잠시 말을 멈추던 한소은이 한마디 보탰다. “내일 동이 트기 전에 애 아빠한테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해야 해. 실시간으로 영상을 봐야겠어. 녹화도 안 되고 편집도 안 돼. 어떤 흔적이라도 남기면 거래는 끝이야.”“아이가 무사히 도착하면 해독제를 줄게.”프레드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해독약부터 줘!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도착하고 나서 네가 번복하면 어떻게 해?”한
한소은의 말은 프레드를 놀라게 했다.프레드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 “일부러 겁줄 필요 없어.”“내가 겁을 주는 게 아니야. 곧 네가 직접 느낄 수 있을 거야.”한소은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다시 자리에 앉더니 프레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때, 잘 생각해 봐. 거래할 거야, 말 거야? 나는 피곤해서 쉬고 싶어.”음침한 눈빛으로 한소은을 바라보던 프레드는 그 말의 진위를 가늠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프레드는 정말 분간할 수 없었다.이 여자는 정말 교활하다. 전에는 자신에게 먹인 독약이 가짜라고 생각했지만, 곧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발견했다. 지금은 한소은의 말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였다.배를 움켜쥔 손이 서서히 조여오면서 아련하면서도 따끔거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프레드의 얼굴은 잔잔해 보였지만 땀은 이미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한 번 걸어볼까?'잠시 머뭇거리던 프레드가 입을 열었다. “그래! 당신 말대로, 내가 당신의 아이들을 당신 남편에게 보낼 줄게. 실시간으로 동영상도 보여줄 거야. 하지만 아이가 애 아빠 손에 도착하면, 넌 반드시 나에게 해독제를 주어야 해!”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약속할게!”김서진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갑자기 익명의 편지가 도착했다.편지 내용은 오늘 밤 어두워진 뒤 오동길 여섯 번째 오동나무 아래에서 만나자고 했다. 기다리고 있으면 누군가가 아이를 데려올 것이라는 간단한 내용이었다.‘아이?’김서진의 첫 반응은 김준이였다. 등에 식은땀이 흐르며 김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납치된 줄 알았다.바로 전화를 걸어 김준이 아직 어르신 옆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했는데 어르신과 재미있게 놀고 있다는 대답을 듣고 마음이 놓였지만, 한동안은 어떻게 된 일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애라고?”임상언은 오히려 제일 먼저 깨달은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한소은이 갓 낳은 오누이 쌍둥이를 말하는 거 아니야?”김서진은 그제
초조하고 조마조마한 기다림 속에서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김서진은 편지에 적힌 대로 오동길로 가서 그 오동나무를 찾아 아래에서 기다렸다.그리고 진정기가 배치한 사람들도 미리 도착해서 주변 몇 곳을 지키고 서서 행동에 옮길 준비를 마쳤다. 누군가 나타나서 김서진과 거래를 하면 바로 사람을 잡을 수 있었다.모든 것이 준비되자 김서진은 그곳에 서 있었다. 겉으로는 침착했지만 속으로는 조마조마했다.이런 적은 없었는데 처음 김씨 그룹을 맡았을 때도 이러지 않았다.조금 있다가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이를 만날 걸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고, 장난이나 덫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시 불안해졌다.‘한소은과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을까?’자신을 도와 소식을 알아보러 갔던 그 의사는 들어간 후 다시는 나오지 않았고, 그 후로 아무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김서진은 심지어 프레드에게 이미 발견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어쨌거나 아내와 아이들을 이미 떠나보냈는데 프레드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그러나 지금은 당분간 어떤 경거망동도 있을 수 없다.시간이 1분 1초가 지나자 김서진은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너무 초조해할 수도 없어 고개를 숙인 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그냥 여기에 서서 무료함을 달래는 듯했다.오동길의 위치는 비교적 번화해서 오가는 사람이 꽤 많은데, 잠복한 사람들은 기다리다 지쳐서 눈앞이 가물거릴 지경이었다.보아하니 교활한 상대방은 일부러 이런 곳을 택한 것 같은데, 만약 누군가가 실제로 나타난다면 무고한 시민을 다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장소의 특수성 때문에 밤이 될수록 이곳은 오히려 더 시끌벅적해졌고 더 오색영롱하게 변했다.모두가 장난인 줄 알았을 때, 갑자기 김서진의 앞에 오토바이가 멈추었다. 배달원 옷차림을 한 사람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곧 경각심을 높였다.“혹시 김서진 씨인가요?”상대방이 어설픈 말투로 물었다.김서진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고, 두 눈은 그 사람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상대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