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녀가 붙잡고 있다고 해도 진가연이 정말 못 나오는 건 아니다. 그녀가 혼자 온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진가연은 너무 난처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차에 올라타 고개를 돌려 텅 빈 집을 바라보니 한밤중이라 더 쓸쓸해 보였다.모든 추억이 머릿속에 밀려와 그녀가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여기서 일어난 일은 즐거웠던 일도 기쁘지 않았던 일도 모두 그녀의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이다.“좀 더 볼 거야?”옆에 앉으며 진정기가 물었다.“아니요.”진가연은 고개를 저었다. 추억은 머릿속에 있고, 여기에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결코 돌아갈 수 없다.“운전해.”진정기가 입을 열었다.차가 서서히 움직이며 집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고 진가연은 끝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아버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왜, 왜, 왜 이렇게 된 걸까요?”한 손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기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진정기는 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딸의 감정을 고려했기 때문에, 주현철 부부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들 부부가 가연에게 잘해줬던 것을 생각해서 자비를 베풀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유해나는 지금 집에 안전히 있을 리가 없다. 아마 주현철과 함께 구치소의 차갑고 습한 작은 방에 있어야 할 것이다.“인간성일 뿐이야.”진정기가 조용히 말했다.“인간성이 다 그런 것이라고 믿지 않아요.”고개를 든 진가연은 눈물이 글썽했다.“외삼촌과 외숙모가 나를 어릴 때부터 키웠는데, 나에게 진심이 조금도 없을까요? 진짜 다 이용하려는 것뿐인가요?”유심히 바라보던 진정기는 진가연의 잔머리를 부드럽게 빗어 넘긴 뒤 대답했다.“진심이 하나도 없을 수는 없어. 하지만 때로는 엄청난 이익 앞에서 그 진심을 감추고,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들기도 하지.”“네 외삼촌과 외숙모도 너를 진심으로 아낄 때가 있어. 그들이 너를 잘 대해주는 것도 어쩌면 일부는 나에게 잘 보이고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혈연관계도 있어
“알았어요.”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진가연은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여 아빠에게 기대었다.“그럼 지금, 주효영은 어디에 있을까요?”진가연은 다시 작은 소리로 물었다.“김서진에게 끌려갔어. 아직 쓸모가 있거든. 그녀는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 어쩌면 주효영이 죄를 짓고 공을 세울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진정기는 이 사실을 알고 묵인했다.주효영이 정말 쓸모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조직에 그렇게 오래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효영이 잘못을 뉘우치고 공을 세우는 거로 속죄하길 바라기도 했다.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말이다.“주변에 끔찍한 일이 그렇게 많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요.”앞을 보며 진가연이 입을 열었다.“얼마 전 제가 감염되지 않았더라면 바이러스가 어디에나 있을지 몰랐어요. 게다가, 이렇게 무섭다니요.”이 말을 들은 진정기는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너 이제 정말 다 나았어?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일어나 앉아, 아빠한테 보여줘.”순순히 말 잘 듣고 일어선 진가연은 두 손을 벌렸다.“전 정말 다 나았어요, 봐봐요! 제가 낫지 않았다면 저를 풀어주지 않았을 거예요. 게다가, 병원에서 이미 상세하고 전면적인 건강검진을 했어요. 저는 지금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 좋아졌어요!”씩씩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에 진정기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아무 일 없다면 가장 좋은 거지.”“요즘은 집에서 얌전히 쉬고, 밖에 나가는 건 자제해. 누군가 외출 약속을 잡으려면 최대한 다 밀어.”진정기는 걱정된 마음에 당부했다.진가연은 눈을 깜빡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왜요?”“혹시, 무슨 일 있어요?”“물어보지 마. 아빠 말 잘 들으면 돼. 아빠는 널 해치지 않아.”웃음을 지으며 진정기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는 듯했지만 그 미소가 억지웃음처럼 보였다.진가연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빠 말 들을게요!”예전에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는 항상 바빴고 종일 무엇을 하고 있
과거 진가연은 매번 매우 기분이 나빴다. 아빠가 또 자신을 버리고 더 중요한 사람을 위해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진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빠, 가세요, 더 중요한 일이 아빠를 기다리고 있잖아요.”딸이 정말 철이 들었다고 생각한 진정기는 흐뭇한 표정으로 진가연을 바라보았다.“괜찮아, 먼저 집에 데려다줄게.”진정기가 말했다.차는 진씨 저택 문 앞으로 돌아왔다. 진정기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딸이 차에서 내려앉으러 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문을 닫았다.막 차를 몰려는 순간, 진가연은 또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몸을 돌려 뛰어오며 말했다.“아빠...”“왜?”말을 잇지 못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진정기가 물었다.“소은 언니가 소식이 끊긴 지 오래됐어요. 서진 오빠가 중요한 일을 하러 갔다고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소은 언니가 위험에 처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아빠, 그들을 좀 도와주시겠어요?”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부탁하는 일이 드물 정도로 마음속에는 불만과 불평이 있어 거의 입을 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애원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을 하니 정말 걱정된듯했다.진정기는 딸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 아빠는 분명히 도울 방법을 찾을 거야. 그들 부부도 보통 사람이 아니야, 분명 괜찮을 거야!”아빠의 말을 듣고 나니 마치 안정제를 먹은 것 같았다. 진가연은 비로소 안심하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갔다.딸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진정기는 눈빛이 어두워졌다. 사실 진정기도 한소은의 일을 알고 있었지만 내부 사정을 잘 몰랐다. 게다가 진정기는 신분이 특수해서 김서진과 친밀한 행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일에 직접 나서는 것이 불편했다.하지만 이젠 반드시 직접 해야 하고 직접 만나야만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차는 다시 시동을 걸고 곧 김씨 저택으로 향했다.김서진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차는 바로 마당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진정기가 차에서
진 부장님을 처음 뵈는 건데 왜 자신을 아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지 어리둥절했다.원철수의 의혹을 알아차린 듯 진정기가 대답했다.“고 부장이 저에게 원철수 씨는 유능하고 얻기 어려운 좋은 인재라고 했어요.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잘해요.”원철수는 순간 고 부장이 자신을 발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평소 엄숙하고 엄격한 고 부장이 뒤에서 자신을 칭찬할 줄은 몰랐다.“알겠습니다!”원철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뜸 경례했다.김서진은 갑자기 불안함을 느끼며 말했다.“진 부장님, 이쪽으로 오세요.”넓은 서재로 가서 앉자 차까지 진 부장의 사람들이 가져다주었다. 거의 외식을 하지 않을 정도로 음식에 특히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었다.사실 그래서 김서진은 진정기가 납치된 게 계획적인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주효영이 어떻게 평소 주의 깊게 경계하고 신변을 빈틈없이 방어하는 진정기를 단지 약을 먹이는 방식으로 데려갈 수 있었겠는가? 너무 어린애 장난이 아닐 수 없었다.사실은 그 생각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확실히 진정기가 놓은 덫이었다. 진정기는 김서진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 덫을 놓았다.“이제 이 조직의 진정한 보스가 누구인지 알아냈어요? 어떤 집단, 심지어... 나라인지?”자리에 앉은 뒤 진정기는 김서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진정기는 시간이 매우 소중했다. 쓸데없는 말을 할 시간이 없기에 가장 직접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쓴 것이다.“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Y 국의 여왕이라고 생각해요.”김서진은 중얼거리며 대답했다.진정기는 의외가 아니라는 듯 얼굴색이 어두워진 채 이맛살을 찌푸리고 침묵을 지키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김서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하지만 이것은 단지 표면적인 답이에요. 지난 며칠 동안 관찰한 결과와 제가 수집한 단서를 종합해 보면 여왕은 꼭두각시일 뿐이며, 진정한 보스는 바로 그 공작이라는 느낌이 들어요.”“프레드 말인가요?”대충 생각해 보아도 진정기는 적임자로 프레드가
“뒷마당 방에 갇혔어요.”김서진이 물었다.“주효영을 만나실 건가요?”김서진은 진정기가 주효영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쨌거나 어느 정도는 주효영에게 당했었으니 말이다.“한번 만나 보죠.”잠시 생각에 잠기던 진정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김서진은 곧 방문 앞에 도착하여 자물쇠를 열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비록 사람을 가둔 곳이지만, 전혀 냄새가 나지 않고 꽤 깨끗했다.안을 한 번 살펴보니, 주효영은 벽에 기대어 앉아 두 눈이 휘둥그레진 모습이었다.주효영은 지난 며칠 줄곧 그랬다. 아무런 생기가 없는 것 같았는데 마치 미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조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생기발랄한 모습을 보였다.김서진은 주효영의 앞에 가서 멈추고 손을 들어 진정기를 막아서 안전한 거리를 두고서야 입을 열어 불렀다.“주효영.”주효영은 눈을 한 번 깜박였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 말했다.“왜, 생각이 바뀌었어? 손을 잡는 일을 얘기하러 온 게 아니라면 꺼져! 나 혼자 잘 지내니까!”“내가 널 만나자는 게 아니야.”김서진은 말하며 옆으로 몸을 기울였다.주효영은 누가 만나려고 해도 별 관심이 없는 듯 여전히 사람을 보지 않고 벽에 기대어 나른하고 무기력한 모습이었다.“효영아.”진정기가 마침내 입을 열어 이름을 불렀다.목소리가 익숙했는지 주효영은 어리둥절해 있다가 비로소 고개를 돌려 찾아온 사람을 바라보았다.누군지 똑똑히 본 뒤 어리둥절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한참 웃다가 입을 열었다.“왜요, 자랑하러 왔어요?”“...”진정기는 어이가 없었다.어이없게도 그들 가족 모두 이런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왜 다들 남들이 자랑하고 비웃으러 왔다고 생각하는 거지? 무슨 우스운 것이 그렇게 많다고? 그들을 보면 감탄과 분노만 보이는데 대체 뭐가 우스워야 하는 거지?’“너희들의 실험실은 이미 파괴되었어.”주효영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진정기는 다른 말을 했다.눈빛이 1초 정도 굳어졌지만, 주효
알고 보니 주효영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닥칠 일을 알고 있었고,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진정기는 주효영이 냉혈하고 지독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부모에게까지 냉혈 할 줄은 몰랐다.“걱정 안 해?”진정기는 얼굴을 찌푸리고 자기도 모르게 몇 마디 더 물었다.주효영은 빈정거리며 웃었다.“나 자신도 지킬 수 없는데 그 사람을 왜 걱정해요? 게다가, 아빠는 원래 멍청해서 장사에 적합하지 않은데 스스로 하겠다고 우긴 거예요. 세상은 원래 우승열패, 약육강식이잖아요. 아빠의 IQ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은 것도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요.”진정기는 주효영의 말에 충격받았고, 김서진은 할 말을 잃었다.다들 침묵하는 것을 보고, 주효영은 뭔가를 깨달았는지 몸을 똑바로 일으키고 천천히 말했다.“내 말이 듣기 안 좋을 수도 있지만, 사실이에요. 만약 당신들이 아빠를 동정한다면, 왜 아예 풀어주지 않는 거죠? 나한테 와서 말하고, 내가 사정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하지만 너 때문에 연루된 거잖아.”진정기가 조용히 말했다.주효영은 오히려 웃기 시작했다.“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아빠는 벌써 들어갔겠죠. 고모부, 우리 아빠 머릿속의 그 지능으로 한 짓이 아직도 적어요? 지난 몇 년 동안, 고모부 설마 몰랐어요? 아빠가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이지 나를 탓할 수는 없어요. 한 발 늦은 걸 탓해요. 빨리 성공할 수 있다면, 아마 아빠는 나에게 기대어 복을 누릴 수 있었을 거예요.”진정기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주효영은 자신이 한 일을 절대 후회하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성공하지 못한 것만 후회했다.진정기는 주효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한발 늦었다는 건 너희들이 만든 독백신을 세상에 퍼뜨려 더 많은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옆으로 늘어뜨린 두 손을 주먹으로 움켜쥔 채, 그곳을 들여다본 진정기는 충격과 함께 분노에 휩싸였다.“이 세상에 쓸데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쓸모없는
대사관의 요즘 분위기는 좀 이상했다.모든 직원이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의 모든 방문객을 사절하고 원래 예정된 일정도 연기되어 대사관 내부 업무 조정으로 이틀을 쉬게 되었다.소문으로는 H 국에서 보낸 사람이 소독 작업을 했는데, 결국 독을 방출했다고 했다. 대사관 내부에 이미 중독된 사람이 있는데, 단지 증폭되지 않기 위해 일을 널리 알리지 않았을 뿐이라 했다.이 소문이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었고 다른 각국 대사관들도 술렁이고 있었다.얼마 전 남아시아를 휩쓴 전염병을 그들 모두 보았거나 직접 경험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역병이 다시 온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모든 사람이 걱정에 빠졌고 대사관은 저마다 엄격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더 강력한 세력은 이미 H 국에게 해명을 요구했다.H 국 쪽은 당연히 오리무중이었다. 어떻게 이런 소문이 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Y 국 대사관에서 시작한 이상 반드시 이 근원을 찾아 확실히 해야 했다.하지만 Y 국 대사관은 외부와의 만남을 일절 사절하고 있어 소문은 더욱 진위 적이고 신빙성 있게 들렸다.그러나 Y 국 대사관에서 정작 업무 연기의 원인이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프레드 공작의 실종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이로 인해 대사관 안은 잠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들 중 여왕 폐하가 계신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측근들 중 몇 명은 당연히 침묵을 지켰다. 프레드의 실종은 그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했는데 쩔쩔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들이 여왕 폐하에게 여쭐 것인지, 아니면 공작 어르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인지 갈등하고 있을 때 프레드가 다시 나타났다.“공작 어르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난 측근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지난 며칠 동안 어디 계셨어요? 우리는 모두 초조해 죽을 뻔했어요.”그러나 프레드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한소은 그 여자 어디 있어?”“아, 아직 다락방에 갇혀 있어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숟가락을 들어 앞에 놓인 케이크를 살짝 긁어낸 뒤 입에 넣고 눈을 감는 모습은 마치 즐기는 듯했다.“한소은...”프레드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손을 들어 한소은 앞에 있는 모든 음식을 바닥에 쓸어내렸다. “여기서 먹고 마시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어? 내가 너에게 너무 인자한 거야, 그렇지?!”우당탕-식기가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한소은은 발광한 프레드를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숟가락에 묻은 크림을 조용히 핥았다.오히려 아래층에 지키고 있던 측근이 이렇게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하마터면 위층으로 올라가 상황을 보려고 할 뻔했다.하지만 프레드가 무슨 소리를 들어도 올라오지 말고 아래에 있으라고 한 것이 떠올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이때 프레드는 침착한 한소은을 보며 답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한소은이 아직 쓸모가 있는 게 아니라면, 아직 이용가치가 남아 있지만 않았더라면 프레드는 정말로 손으로 목 졸라 죽이고 싶다.하지만 한소은이 입을 열자 프레드는 하마터면 충동을 억누르지 못할 뻔했다.한소은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신을 노려보는 프레드를 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눈빛이 물건을 뒤집은 프레드의 손에 떨어지는 순간 덤덤하게 한마디 했다. “보아하니, 네 손이 거의 다 나았구나.”프레드는 깜짝 놀랐다.말하지 않으면 잊을 뻔했다. 한소은이 며칠 전 자신의 팔을 부러뜨렸다는 사실이 또 머릿속에 떠올랐다.며칠 동안 깁스를 했더니 이젠 좀 나아졌지만, 아직 힘을 줄 수 없었다. 힘을 줄 때마다 계속 시큰거리고 아팠다.하지만 또 다른 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도대체 무슨 독을 먹인 거야?” 눈이 벌겋게 된 채 프레드가 기세등등하게 따져 물었다.눈썹을 치켜올리며 한소은은 빙긋 웃었다. “난 몰라.”“네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프레드는 화가 나서 폭발할 것 같았다.“말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프레드 당신이 그것이 독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