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고개를 들고 눈썹을 치켜세우며 "네가 사랑을 알아?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라고 반문했다."저것 좀 봐요, 바보처럼 웃고 있는 모습!" 임유민은 콧방귀를 뀌었다.소희는 위층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사랑의 본질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야."임유민은 연신 흥 거리며 "그럼 나는 앞으로 연애 같은 거는 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도 하지 말아요."소희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물었다, “내가 왜?”임유민은 당당하게 말했다. "사랑에 빠져서 둔감해지면, 나한테 어떻게 공부를 가르쳐줘요?"소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날 오후에 삼촌이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둘째 삼촌이 뭐라고 했는데요?"라고 임유민은 궁금해서 물었다."지금 내 아이큐가 너처럼 낮다고 했어!" 소희는 냉소를 지으며 그를 넘어 성큼성큼 걸어갔다.임유민은 어리둥절해서는 그녀를 쫓았다. “우리 삼촌이 그렇게 이야기할 리가 없어요!”한 시간 반의 수업은 금방 지나갔고, 소희가 짐을 챙겨 내려가는 길에 임구택이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지난번 일이 떠올랐는지 못 본 체하고 그냥 지나칠 생각을 했다.뒤따라 가던 임유민은 큰소리로 말했다. "쌤, 오후에 삼촌과 함께 승마장에 가는데, 쌤도 함께 가요!”소희는 멈칫 굳었고 그 소리에 임구택 역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더니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수업 끝났나요?""네!" 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임유민은 다시 한번 물었다. "삼촌, 선생님도 우리와 함께 가면 안 되나요?""아뇨, 전 괜찮아요."임구택은 "오후에 별다른 일 없으면 함께 가요, 마침 승마장에서 미팅이 있는데 그러면 유민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어요."라고 말했다.그가 이렇게 말하자 소희는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워 고개를 끄덕였다.임구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 출발합시다. 장원에서 바비큐를 준비했다고 했으니 거기서 점심을 먹으면 될 거 같네요!"“잘 됐다! 그럼
다행하게도 임유민이 달려와 소희를 깨우는 바람에 그녀는 임구택한테 자신의 이런 창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세 사람은 마구간에 가서 말을 골랐다.구택과 유민은 모두 스스로 기르는 말이 있었기에 소희 혼자만 임시로 골라야 했다.조랑말 한 마리를 고른 그녀는 유민에게 한바탕 비웃음을 당했다.소희는 그의 비웃음을 태연자약하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이 그 결과를 가늠할 수 있기만 하면 되었기에 처음으로 말을 타는 소희는 차라리 조랑말을 타고 유민에게 비웃음을 당할지언정 무리하게 큰 말을 선택하여 말에서 떨어질 때의 창피함과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았다.구택은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좌우되지 않고 꿋꿋하게 조랑말을 선택하는 것을 보고 보기 드물게 흐뭇해하는 표정을 보였다.조랑말은 소희의 말을 아주 잘 들었다. 말을 타 본 적이 없던 그녀는 조련사의 지도를 받고 안전하게 말 위에 타고 다룰 수 있었다.구택과 유민은 말을 탄 채로 그녀가 비교적 능숙하게 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를 데리고 함께 돌기 시작했다.세 사람은 말을 타고 길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길 양쪽에는 높고 큰 메타세쿼이아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복숭아꽃과 벚꽃이 있었다.마침 늦봄이라 봄바람은 얼굴을 스쳤고 꽃보라가 흩날렸다. 속도 내서 달릴 때 꽃잎은 얼굴에 떨어지며 아프지 않고 오히려 살짝 가렵게 느끼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온몸이 홀가분하고 상쾌하게 만들었다.구택은 말을 타고 앞에서 걷다가 소희가 유민과 무슨 말을 했는지 유민이 과장하게 웃는 소리가 뒤에서 전해왔다.고개를 돌리자 그는 조랑말 위의 소녀가 흰 셔츠에 검은색 멜빵바지를 입은 채 머리를 높이 묶으며 햇빛이 그녀의 정교한 이목구비를 비추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평소처럼 내성적이고 온화하지 않고 마음껏 떠들던 그녀는 특별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구택은 멈칫하며 이런 모습이 바로 진정한 소희의 모습이라 느꼈다.세 사람은 말을 타고 10여 분을 달리다가 아스팔트로 된 길로 들어가자 그 끝에는 별장
구택은 그곳에 멈춰 섰다. 그는 유민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놀라지 않고 오히려 갑자기 튀어나온 소녀에게 깜짝 놀랐다.하지만 그는 즉시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소녀의 강렬한 가슴 뛰는 소리를 느꼈기 때문이다. 구택은 약간 고개를 숙이며 낭패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젖은 긴 속눈썹 아래 눈동자가 반짝이며 뜻밖에도 약간의 두려운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소희는 다시 한번 남자의 귀 뒤에 있는 흉터를 보았다. 흉터는 이미 연분홍색으로 변하여 거의 정상적인 피부와 같았다.무려 5초 동안 구택은 말을 하지 않고 소녀의 호흡이 평온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고는 농담을 하며 입을 열었다."소희 씨가 내 품으로 안긴 게 이번이 몇 번째죠? 정말 유민이 둘째 숙모가 되고 싶은 거예요?"소희는 멍해지다 정신을 차리며 갑자기 고개를 들어 희노를 알 수 없는 약간의 비웃음을 띈 남자의 눈과 마주쳤다. 남자의 눈동자에는 숲속의 어두운 빛이 비치며 더욱 어두워졌다.그녀는 얼굴을 붉힌 채 두 걸음 뒤로 물러서며 애써 설명했다."나, 난 그저 물 폭탄 막아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냥 힘을 좀 너무 세게 쓴 거고요."구택은 그녀가 회피하는 모습을 보고 계속 웃었다. 그녀의 귓가까지 빨개지자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부드럽고 낮았다."그만 놀릴게요, 어서 놀러 가요!"마지막 몇 글자를 말할 때, 그 말투는 마치 아이를 달래는 것 같았다.소희는 조금 전의 경솔함에 약간 창피하기도 심지어는 당황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의 말투를 주의하지 못하고 침착한 척하며 돌아섰다.몸을 돌리자 갑자기 향기가 전해왔다. 고기 냄새를 맡은 그녀는 갑자기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별장에서 하인은 이미 생선을 굽고 있었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가져온 절인 쇠고기, 사슴 고기도 있었다.소희는 냄새를 맡자마자 불안한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지며 오직 배고픔만 남았다.유민은 또 물 폭탄을 가득 싣고 와서 구택과 자랑했다."둘째 삼촌, 저 점점 더
소희는 고맙다고 하면서 속으로 오늘 유민이의 덕을 봐서 구택이 자신을 아이처럼 잘 보살펴줬다고 생각했다.유민도 고맙다고 말하며 자신은 소희 덕분에 그의 둘째 삼촌이 이렇게 매너 있게 자신을 아이처럼 잘 돌봤다고 생각했다.세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기며 묵묵히 식사를 했다. 주위 환경이 너무 좋았는지 아니면 셰프의 솜씨가 좋았는지 어쨌든 소희는 음식을 만족스럽게 먹었다.밥을 거의 다 먹을 무렵, 유민이 요구르트를 마시려 하자 하인은 얼른 방에 가서 가지러 갔다. 이때 구택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두 병 가져와요. "유민과 소희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밥 먹은 뒤 먼저 말을 타러 갈 것인가 아니면 실내관에 가서 배드민턴을 칠 것인가를 상의했다. 오후에는 또 두 차례의 경마가 있다고 한다.하인은 요구르트 한 병을 먼저 유민 앞에 놓자 구택은 자연스럽게 다른 한 병을 소희의 손 옆에 놓았다.......원래 식후 활동에 대한 기대가 엄청 컸지만 고기를 먹고 요구르트까지 마신 유민은 더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배불리 먹었으니 격렬한 운동을 피할 겸 구택은 그들과 함께 낚시를 하러 갔다.세 사람은 조를 나누어 시합을 했다. 소희와 유민은 한 조, 구택은 스스로 한 조. 진 사람은 저녁 식사를 쏴야 했다.시간이 흐르면서 소희는 처음엔 투지가 불타올랐지만 점점 담담해졌다. 그녀는 구택의 물통에서 팔딱팔딱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보고 다시 자신의 텅 빈 물통과 물통 옆에서 펄쩍 뛰며 그녀를 응원하는 유민을 보았다. 그녀는 이미 단념했다!구택은 모처럼 이렇게 한가로운 오후를 보냈다.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이제 결과가 난 건가요?"소희는 구택을 바라보았다."구택 씨는 혹시 불운의 신이라고 들어봤어요?"유민이 어디 가면 그곳의 물고기가 달아났기 때문에 물고기를 낚지 못한 것은 전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구택은 낮은 소리로 웃으며 눈빛으로 동정을 표시한 후 유민에게 물었다."강에 모두 수컷이라고 하지 않았니?"
세 사람은 오후 내내 승마장에 있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그곳을 떠났다. 구택은 먼저 소희를 강성 대학교로 데려다주었다.원래 소희는 낚시 시합에 져서 저녁을 사야 했지만 구택이 저녁에 일이 있는 바람에 다음에 사기로 했다.가는 길 내내 소희와 유민은 계속 승마장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구택은 묵묵히 차를 운전하며 뒤에서 전해오는 시끄러운 말소리에 전혀 싫증이 나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특별한 느낌이 생겼다. 나쁘지 않고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느낌이었다.차가 강성 대학교 문 앞에 멈추자 소희는 두 사람과 작별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교문을 향해 걸어가자마자 맞은편에서 운동복을 입은 한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흥분해하며 달려왔다.유민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승마장에서 만난 그 남자가 같은데요? 이렇게 빨리 만나기로 약속했나 보죠?"그는 엄청 우울해졌다. 소희가 연애하면 아마도 그의 누나처럼 사랑에 눈이 먼 멍청이가 될 것이다.구택은 시동을 걸지 않고 소희가 그 남자와 함께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후 그 남자는 케이크 하나를 꺼냈고 소희는 그것을 받았다......구택은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계속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야말로 소희의 나이에 맞는 사랑이었다. 그의 눈빛은 밤처럼 어두웠다. 그는 눈을 떼고 핸들을 돌리며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소희와 말하고 있는 사람은 송장풍이라고 하는데 두 사람은 승마장에서 만나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강성대 동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송장풍은 외국어 학과 3학년 학생으로서 지금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었다. 그는 한창 과제를 하고 있는 가운데 소희가 그에게 자신의 견해를 말해주자 송장풍은 문득 깨치며 자신을 괴롭혔던 난제를 해결하였다.장풍은 소희의 도움에 매우 감격했다. 그는 원래 케이크를 사서 우연이라도 소희와 학교에서 마주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근데 정말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소희는 고
소희는 웃음을 거두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청아는 잠시 말을 멈추며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듯 천천히 입을 열어 자초지종을 말했다."우리 아빠가 도박꾼이었거든.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는 도박을 했어. 물론 지금까지도 도박을 하고 있지. 전에 그는 한 달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다 보름 전인가, 집에 돌아왔어. 그리고 6천만 원을 빚졌다며 집을 팔겠다는 거야. 우리 엄마는 한사코 집을 내놓으려 하셨지. 그렇게 보름이나 끌었어. 바로 어제 그 사람들이 우리 오빠를 잡아갔어. 지금 나와 엄마는 급하게 우리 집을 팔려고 하고 있어. 빚쟁이들이 오늘 저녁에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오빠 다시는 볼 수 없다고 했어."소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경찰에 신고했어?"청아의 목소리에는 피곤함과 무기력함이 가득했다."우리 엄마는 감히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고 있어. 나보고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야!""그럼 네 아빠는?""도망갔어!"이 말을 마치자 청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흐느끼며 울음을 터뜨렸다."울지 마!" 소희는 담담하게 말했다."급하게 집을 팔지 마. 집을 팔면 너와 너의 엄마는 어디에 살라고?""요 몇 년 동안 나는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4, 5백만 정도 모았는데 여전히 너무 많이 모자라. 친척들은 우리 아빠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믿지 않고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고 있어."소희는 줄곧 낙관적이었던 청아한테 이렇게 형편없는 가정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모든 부모가 부모라는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청아야, 집 팔지 마. 내가 대신 방법을 생각해 볼게." 소희는 냉정하게 말했다."너도 아직 학생인데 무슨 방법이 있겠어? 굳이 우리 도와줄 필요 없어. 우리 집은 비록 낡았지만 그래도 돈은 좀 돼." 청아는 다른 사람이 그녀를 위해 걱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보름 동안 아무리 절망해도 그녀는 소희를 찾지 않았다. 오늘 소희가
소파에 앉아 여자를 껴안은 남자는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나이는 마흔 좌우에 술에 취해 두 눈이 흐리멍덩한 그는 소희와 청아를 한 번 훑어보더니 입을 벌리고 물었다."누가 우청아야?"청아는 앞으로 나아가 용기를 내어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저요!""형님." 옆에 있던 사람이 이혁에게 담배 불을 붙여주었다.누군가가 룸 안의 플래시를 끄자 빛이 정상으로 변하며 룸 안의 상황도 더 잘 보였다.룸 안에는 남자와 여자 합쳐서 스무 명 정도 있었다. 남자들은 술을 마셔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들은 조금도 자신의 눈빛을 숨기지 않고 소희와 청아 두 사람을 훑으며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그중 몇몇의 여자는 남자의 품에 기대어 소희와 청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마치 호랑이굴에 들어온 양 두 마리를 보는 것 같았다.이혁은 담배 한 모금 뱉으며 배를 내밀고 소파에 기댔다."돈은 가져왔어?"청아는 소희를 바라보았다.소희는 입을 열었다."우강남을 봐야 돈을 주죠."이혁은 손을 흔들자 두 수하 모양의 사람이 일어나 룸 안의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바로 한 남자를 데리고 나왔다. 남자는 손발이 묶였고 입도 막혔다. 청아를 보자 그는 발버둥을 쳤다."오빠!" 청아가 소리쳤다.이혁은 소매를 잡아당기고 손가락 굵기의 큰 금목걸이를 드러내며 차갑게 웃었다."돈 내려놓고 사람 데리고 가!"소희는 손을 뻗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지만 그것은 은행 카드가 아니라 USB였다.이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이건 뭐지?"소희는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이 운영하는 카지노의 CCTV 기록이에요. 사기 치는 장면 모두 똑똑히 찍혔어요. 우임승의 돈은 진 것이 아니라 당신들한테 속은 거죠. 나는 당신한테 줄 돈 단 한 푼도 없어요!""너 지금 죽고 싶어!" 옆에서 한 사람이 강남의 몸을 발로 차자 그는 오열하며 비명을 질렀다."오빠!" 청아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 강남을 감싸려 했지만 소희는 그녀를 붙잡았다.이혁은 살쪄서 거의 보이지 않은 실눈으로 소희를 쳐다보
소희는 청아에게 눈짓을 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얼른 가, 경찰이 도착하면 너의 오빠는 여기를 떠날 수 없어.""소희야!" 청아는 울기 직전이었다."밖에서 나 기다려." 소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청아는 목이 멘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이혁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들을 보내줘도 되지. 먼저 우청아 대신 술을 마셔!"소희는 망설이지 않고 술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청아는 얼굴의 눈물을 닦고 강남을 부축하여 얼른 밖으로 나갔다.문이 닫히자 다른 사람들은 즉시 소희를 에워쌌다. 룸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불빛도 살짝 어두워진 것 같았다.이혁은 씩 웃으며 말했다."의리 있는 소녀군. 담력도 충분히 크고. 술 한 잔 더 있으니 마셔야지!"다른 남자들은 소희를 만만하게 보며 소란을 피웠다. 그들은 기다리고 싶지 않다는 듯 얼른 달려들고 싶었다.이혁은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남은 술잔을 들고 음험하게 소희 앞에 건넸다.소희는 그를 보고 눈빛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그녀는 방금 마신 술을 전부 이혁의 얼굴에 뿜어내며 동시에 손을 뻗어 이혁의 옷을 잡고 쓰레기를 던지듯이 내던졌다."으악!"룸 안에는 일시에 비명소리, 뼈가 부러지는 소리,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전해왔다. 하지만 밖에는 여전히 등불이 밝았고 노랫소리가 울리며 누구도 안에 무슨 일이 났는지 몰랐다.......10분 뒤 룸에서 나온 소희는 누구의 피가 묻었는지도 모르는 외투를 벗어 쓰레기통에 던지고 티셔츠만 입고 밖으로 나갔다.소희는 막 들어오려는 청아를 만났다. 청아는 그녀를 보며 당황함이 놀라움으로 변하며 울었다."소희야 너 괜찮아?"소희가 경찰이 10분이면 도착한다고 했지만 줄곧 오지 않아 청아는 더 이상 기다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들어가서 그녀를 찾으려고 했다."괜찮아, 너희 오빠는?" 소희가 물었다."택시 잡아서 오빠를 집으로 보냈어." 청아는 다급하게 말했다."우리가 떠난 후에 그들은 너 괴롭히지 않았어? 너 옷은?"
조하루가 즉시 과일 주스를 시언에게 내밀며 말했다.“삼촌, 이거 드세요. 저를 그렇게 오랫동안 업어 주셨잖아요. 고마워요!”시언은 얇게 입가를 올리며 주스를 다시 돌려주었다.“난 누나와 장난친 거야.”“아...”시언은 최대한 표정을 부드럽게 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효과는 없었다. 조하루는 멍하게 대답하며 다시는 시언을 쳐다보지 못했다.아심은 입술을 꽉 다물며 웃음을 참았고, 차마 대놓고 웃을 수 없어서 고개를 돌려 빵을 베어 물었다.숲속에서 한 마리 새가 날아와 창가에 앉아 방 안을 들여다보며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쭈쭈 하고 소리를 내면서. 아직 인간에게 위협을 느껴본 적 없는 새는 사람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아심은 빵 부스러기를 조금 떼어 창가에 놓았다. 새는 신나게 부리로 쪼아먹었지만 다 먹기도 전에 갑자기 날아가 버렸다. 시언은 창 아래에 서 있는 아심을 보며 반쪽 남은 빵을 들어 올렸다.“천천히 먹어, 난 밖에 좀 보고 올게.”아심은 시언이 문을 나가는 걸 보고 하루에게 속삭였다.“볼일 보러 가야 해? 삼촌이랑 같이 가면 돼!”하루는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어갔다. 아심은 천천히 빵을 다 먹고 물병을 집어 들고 막 마시려던 순간, 밖에서 탕! 하고 커다란 총성이 들려왔다.아심의 얼굴이 굳어졌고,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문이 갑자기 열렸다. 시언이 떨고 있는 하루를 방 안으로 밀어 넣고는, 곧바로 따라오던 한 남자를 발로 차서 밖으로 날려 보냈다.그는 고개를 돌려 매우 빠르게 말했다.“지켜, 절대 나오지 마. 창문도 다 잠가!”문이 열리는 그 순간, 아심은 이미 상황을 확인했다. 그들은 이미 포위당한 상태였다. 나무집 주위는 전부 위장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용병들로 가득했고, 적어도 스무 명이 넘었다.문이 닫히고 난 뒤, 바깥에서는 치열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아심은 조하루를 안전한 곳에 숨기고 두 개의 창문을 빠르게 닫은 뒤, 창을 야생 동물로부터
강시언이 앞서 걸었고, 중간에는 조하루, 뒤에는 강아심이 따라갔다.비에 젖어 미끄러운 산길을 걸으며, 아심은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조하루에게 지팡이 삼아 주었다. 세 사람은 고요하고 습한 산림 속을 조용히 지나갔다.겨우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뿐인데, 하루는 이미 지쳐 헉헉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 어린아이라 무리가 있는 듯했다.아심은 걸음을 멈추고 하루의 앞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자, 내가 업어줄게!”시언이 돌아서더니 자신이 메고 있던 가방을 아심에게 넘기며 말했다.“내가 업을게!”하루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겁먹은 듯 시언을 올려다보았다.“저, 저 아직 괜찮아요.”“아직 한참 남았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어? 올라와!” 이번에는 시언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냉정하고 단호해서 거부할 수 없었다.하루는 아심을 바라보았다. 아심의 격려하는 눈빛을 본 후에야 조심스럽게 다가가, 살며시 시언의 등에 올라탔다.시언이 일어서자 조하루의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시언의 넓고 든든한 등에 안겨, 하루는 안전감을 느꼈다. 시언은 고개를 돌려 아심에게 환히 웃어 보였다.아심도 미소를 지으며 뒤따랐다. 열몇 개의 계단을 더 오르던 중, 하루는 손에 쥐고 있던 비타민 젤리를 시언의 입가에 내밀었다.“아저씨, 이거 드세요!”시언은 원래 거절하려 했으나, 아심이 늘 이 아이들이 자신을 무서워한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나 한 손을 뻗어 젤리를 받아 입에 넣었다.하루의 검게 빛나는 눈이 환하게 반짝였고, 시언이 자기가 준 젤리를 먹자 무척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시언이 젤리를 씹으며 물었다.“더 있어?”하루는 허둥지둥 젤리 통을 꺼내 다시 시언에게 주려 했지만, 그가 말했다.“뒤에 있는 누나한테 두 알 줘.”하루는 그제야 깨닫고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에 다섯 여섯 개의 젤리를 쥐고 아심에게 내밀었다.“누나!”아심이 두 걸음 앞으로 다가와 하나를 집었다.“고마워!”하루는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었지만, 아
“네!” 하루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짝이는 눈빛을 보였다. “정말 맛있어요, 우리 다들 엄청나게 좋아해요.”“하루에 두 알만 먹어야 해,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아심은 자연스럽게 하루와 대화를 이어갔다.“알아요, 선생님이 우리한테 말씀해 주셨어요.” 하루의 미소는 순수하고 귀여웠다.시언은 그들이 뒤에서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룸미러로 아심을 흘깃 보았다. 그의 입가에 미세한 웃음이 번졌다.아심을 데리고 오길 잘했다. 아니었으면 이 작은 아이와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몰랐을 테니까.어둡고 흐린 날씨에, 세차게 내리는 비로 인해 차창이 물안개로 덮여 바깥 풍경이 희미하게 변해 있었다. 차 안은 조용했지만, 아심과 하루의 대화와 빗소리, 그리고 쉼 없이 움직이는 와이퍼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차가 한 시간 정도 달린 후, 시언은 뒷좌석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고개를 돌려보았다. 아심은 이마를 차창에 대고 잠이 들어 있었다.하루는 창문에 성에 낀 자국을 손가락으로 그리다가, 시언이 뒤를 돌아보는 것을 보자 얼른 손을 내리고 긴장한 표정으로 몸을 똑바로 세웠다. 시언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 자기 외투를 벗어 소년에게 건넸다.“이거 좀 도와줘. 누나에게 덮어줘.”아심은 얇은 회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고, 그녀가 운성에 왔을 때 날씨가 더워서 두꺼운 옷은 가져오지 않았다. 하루는 외투를 받아 조심스럽게 아심의 몸에 덮어주었다.시언은 아심을 한 번 더 보자, 그녀는 꼼짝하지 않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에 시언은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돌렸다.차는 산길을 따라 다시 30분가량을 달렸고, 드디어 앞쪽에 무너진 도로가 보였다. 더는 차로 갈 수 없었다.“네 물건 잘 챙기고, 여기서 내려야 해.” 시언이 하루에게 말했다. “산을 돌아서 넘어가야 하거든.”“네!” 하루는 대답하며 자신의 가방을 메고, 안에 들어 있는 옷과 책을 잘 챙겼다.“삼촌, 누나를 깨울까요?” 하루가 묻자, 시언은 표정을 굳히며 뒤돌아보았다.“
이 시간에 시언은 이미 아침을 먹었을 거라 생각한 아심은 따로 묻지 않고 혼자 아침을 먹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후, 아심은 평소처럼 전화를 걸어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오늘은 아이들이 다시 수업을 시작하는 날이라 아심은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가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러 갔다.도서관 입구에 들어서자, 그녀는 도도희와 시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두 사람은 무언가 심각하게 상의하고 있었고, 그 대화를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산길이 비에 무너져서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어. 차로는 갈 수 없을 것 같은데, 산길을 올라가야 해서 너무 위험해.”도도희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시언이 단호하게 대답했다.“비가 많이 오진 않으니까 시도해 볼 만해요.” 이때, 아심은 다가가며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 생겼나요?”시언은 아심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분명히 옷 따뜻하게 입으라고 한 것 같은데.”오늘 아심은 얇은 검은색 긴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시언의 지적에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도도희 앞이라 반박하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곧 가서 갈아입을게요.”도도희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아심에게 설명했다.“한 학생의 할아버지가 병이 너무 위중해서 의식이 흐려졌대.”“그런데 할아버지가 계속 손자를 찾고 계셔서 가족들이 전화로 아이를 데려와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어.”도도희는 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시언은 아이를 데려다주겠다고 했는데, 비가 와서 산길이 위험할까 봐 걱정돼.”“위험할 게 뭐 있어요?” 시언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럼 그렇게 해요. 아이한테 준비하라고 전해주고, 곧 출발할게요.”시언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밖으로 나갔고, 아심도 뒤따라가며 말했다.“나도 같이 갈게요.”시언은 뒤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안 돼.”“왜 안 돼요?” 아심은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시언을 따라붙었다.“그 애들이 얼마나 당신을 무서워하는지 모르죠? 혼자 데려가
차에 올라탄 지아윤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큰어머니, 이제야 제가 한 말 믿으시겠죠?”권수영은 약간 흥분한 표정으로, 눈빛이 반짝였다.“저 아가씨, 혹시 남자친구 없나?”“물론 없죠!”“그럼 기다릴 필요 없겠네. 빨리 승현이와 만나게 해야겠어.” 권수영은 이미 마음이 급해져 있었다.“제가 재아에게 말만 하면 분명히 승낙할 거예요.” 아윤은 눈을 굴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할머니의 혼수품도 되찾고, 오빠에게 좋은 여자친구까지 소개해 드렸으니, 큰어머니께서 저를 어떻게 보상해 주실 건가요?”권수영은 속으로 이익을 따져 보며 생각했다. 만약 도씨 집안과 결혼까지 성사된다면, 그야말로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이득이었다.“네가 승현이와 저 아가씨를 이어준다면, 내가 할머니의 혼수품을 되찾아도 그중 절반은 네 몫으로 줄게.”“정말 약속하신 거죠?” 아윤의 눈이 반짝였다.“그럼, 내가 직접 약속했는데 속이겠니?”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반드시 최선을 다할게요!”...집에 돌아온 아윤은 바로 재아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권수영과의 만남 이유를 은근히 흘리며 설명했다. 그리고는 지승현을 칭찬하며 그와 한번 만나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재아는 그제야 모든 상황을 깨달았다. 속으로 기분이 상했다. 첫째는 자신이 누군가의 결혼 상대자로 몰래 계획된 것 같아서였고, 둘째는 현재 중간급인 지씨 집안과 연결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재아는 시큰둥한 태도로 말했다.“야, 그런 얘기를 진작해주지 그랬어? 미안하지만 난 지금 연애할 생각 없어. 아마 큰어머니께서 실망하실 거야.”아윤은 재아의 기분이 상한 것을 눈치채고 급히 사과했다.[미안해, 재아야. 정말로 큰어머니께서 그냥 너를 보고 싶어 하셔서 그런 거야. 괜한 부담은 갖지 마.]아윤이 이렇게 간곡히 사과하자, 재아는 약간 기분이 풀리며 말했다.“괜찮아. 나 화난 건 아니야. 그냥 난 당분간 일에 집중하고 싶어. 외할아버지도 내가 빨리 결혼하길 원치 않으셔.”아윤은 다시
“몇 년 전에 강성에 왔어요. 오자마자 회사를 차렸죠. 꽤 돈이 많아 보이긴 했지만, 특별한 가정 배경은 없어 보였어요.” 지아윤은 권수영에게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예쁘장한 여자아이인데, 가정 배경도 없이 돈이 많고, 다른 지역으로 와서 그런 일을 하는 회사를 차렸다라.”“대체 전에 무슨 일을 했을까요? 큰어머니처럼 세상을 많이 살아본 분이야 더 잘 아시겠죠.”권수영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정말이니?]“보세요. 얼마되지도 않아 오빠를 완전히 홀렸잖아요. 그 여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죠. 저는 돈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아 걱정돼요.” 아윤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고, 권수영은 심각하게 눈살을 찌푸렸다.[하지만 네 할머니가 유언장을 다 작성해 놓았잖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니?]“오빠가 강아심과 빨리 헤어지게 하면 돼요. 그들이 헤어지면 강아심은 더 이상 형님의 여자친구도, 우리 집안 사람도 아니에요.”“할머니의 혼수품을 왜 남이 가져가야 하죠?” 아윤이 단호히 말하자 권수영도 망설였다.[네가 너무 심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니? 난 네 할머니의 혼수품을 바라진 않아. 하지만 우리 집안의 재산이 외부로 나가는 건 나도 막고 싶어.][그런데 네 말이 사실이라도, 아심이 오빠랑 결혼하면 괜찮지 않을까?]“그 여자가 우리 집안에 시집오는 게 영광이겠죠. 그런데 만약 도망치기라도 하면요?” 아윤이 비웃자, 권수영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내가 뭘 어떻게 하란 말이니?]“큰어머니!” 아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새 여자친구를 소개해 드릴게요!”[새 여자친구?]“제 절친이에요. 누군지 맞춰보세요.” 아윤은 흥분된 표정으로 말했다.“대화가 도경수 어르신의 손녀, 도재아요. 정말 명문가의 아가씨고, 아주 예뻐요.”권수영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진짜 도경수 어르신의 손녀라고? 네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알아?]“진짜예요! 제가 도씨 저택에도 자주 갔어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아윤은 자신만
“할머니!” 지아윤은 할머니를 한 번 부르더니 아무 반응이 없자, 노인을 옆으로 살짝 밀고 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갈색 종이봉투가 드러났다. 이에 아윤의 눈이 반짝이며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종이봉투를 꺼내 안의 서류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대충 훑어보는 사이,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고, 분노가 담긴 시선으로 침대에 누운 할머니를 노려보았다.양세민이 들어올까 봐, 아윤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서류를 사진으로 찍었다. 찍고 나서 봉투를 원래대로 넣고 방을 빠져나왔다.차로 돌아가면서 아윤은 점점 화가 치밀었다. 원래는 부모님께 전화하려다 생각을 바꿔 큰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권수영은 마침 카드놀이를 하던 중이라, 아윤의 다급한 전화에 나와서 조금 짜증이 났다.[무슨 일이야, 그렇게 급하게?]아윤은 찍어둔 사진을 권수영에게 보여주며 물었다.“큰어머니, 혹시 강아심이라는 사람 아세요?”권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사진을 확대해 보다가,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강아심이 누구야?]아윤이 찍은 사진은 할머니의 유언장이었다. 유언장에는 할머니가 자신의 혼수품 대부분을 아심에게 남긴다고 적혀 있었다.아윤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할머니 친정은 예전부터 배를 만드는 집안이었고, 부유한 가문이었잖아요.”“혼수품은 모두 고가의 골동품, 금은보화들인데, 그 가치는 큰어머니가 더 잘 아시겠죠!”“할머니가 그때 집을 나가시면서 혼수품을 다 가져가셨잖아요.”“큰 트럭으로 한 차나 실어 나르셨다던데, 이 집에서 몇 년을 혼자 사시면서 큰돈을 쓸 일이 없었으니 그 혼수품들은 그대로 남아 있을 거예요.”“그런데 이제 돌아가실 날이 가까워졌는데, 그 재산을 아들, 손자, 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어떤 낯선 사람에게 준다니,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권수영도 짜증이 나서 말했다.[네가 나한테 그런 얘기해 봤자야. 내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나도 강아심이 누군지 몰라!]“큰어머니가 모르셔도 저는 알아요.” 아윤은 휴대폰을 뒤적이며 몇 장의 사진을 더 보여주었다.권
아심은 별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창문 밖을 보며 시언의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별장 안으로 들어가 거실을 지나며 외투를 벗어 소파에 걸어두고, 약 상자를 들고 시언의 방으로 갔다.“들어와.” 남자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심은 문을 열고 들어갔고, 시언이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아심은 외투를 소파 등받이에 놓으며 말했다.“외투 여기 두었어요.”“응.” 시언은 고개도 들지 않고 의자에 등을 기댔고, 아심은 약 상자를 들고 다가가며 준비를 시작했다.“옷 벗어요. 약 다시 바를게요.”그제야 시언이 그녀를 힐끗 보더니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아심은 시선을 피한 채, 소매를 걷어내자 시언의 상처에 감아둔 붕대를 풀었다. 겉옷은 비에 젖었지만, 다행히 안쪽의 붕대는 겉 부분만 약간 축축했을 뿐, 상처 부위는 무사했다.시언이 앉아 있고 아심이 서 있었기에, 아심은 약간 허리를 숙여야 했다. 긴 드레스가 아래로 늘어져 아심의 어깨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아심은 능숙하게 손을 움직이며 상처를 살폈지만, 시언의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자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시언의 눈은 약간의 속쌍꺼풀이 있고, 길게 뻗은 눈매가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시언의 차가운 성격과 강한 기운이 그 눈을 더 깊고 날카롭게 만들었으며, 그가 누군가를 바라볼 때면 누구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간신히 약을 다 바르고, 강아심은 약 상자를 정리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시언은 몸을 돌려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아심은 별다른 인사도 없이 문을 나와 문을 닫았다. 어둡고 조용한 복도에 서자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그녀는 땀이 살짝 밴 등을 느끼며 문을 돌아보았다가 천천히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강성비가 내리는 날, 지아윤은 마지못해 골목 밖에 차를 세우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당 앞에 도착하자 아윤은 문을 밀고 들어가며 외쳤다.“
도도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럼 네가 사람을 잘못 본 거였네.”이반스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금방 알아봤어.”도도희의 눈매는 부드러워졌고, 담담히 말했다.“피곤하지? 우선 쉬어. 내가 숙소를 마련해 줄 테니까.”“같이 지낼 수 있어?” 이반스는 말을 하자마자 얼른 정정했다.“아니, 내 말은 가까운 곳에 있으면 좋겠다는 뜻이야.”도도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이반스를 자신의 별장에 머물게 하기로 했다....아심과 시언은 약을 보건실에 전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도도희를 만났다. 시언의 휴대폰이 울리자, 그는 도도희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전화를 받으며 먼저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비가 이제 그칠 것 같네. 공기도 상쾌하니, 같이 산책할까?” 도도희가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아심은 우산을 접고 도도희와 함께 잔디밭 한가운데 돌길을 따라 걸었다.“야간 당직을 맡을 사람을 이미 정해놨어. 약도 충분하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별장에 의사가 있어서 다행이야.”도도희의 말에 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내일이면 아이들 열도 내릴 거예요.”도도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관리자한테 들었어. 아이들을 위해 비타민 젤리를 많이 샀다던데, 비용은 나한테 청구해.”“괜찮아요!” 아심은 가볍게 웃었다.“비싼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에요. 저랑 같이 수업도 들었던 친구들이니까요.”도도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넌 원래 쉬러 온 건데, 오히려 돈을 쓰게 했네.”“덕분에 돈으로 행복을 산 거예요. 고맙다고 해야죠.” 아심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시겠지만, 저는 돈밖에 없는 사람이잖아요!”도도희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아, 맞다.” 아심이 말했다.“허락도 안 받고 이반스를 데리고 왔는데, 혹시 불편하신 건 아니죠?”“괜찮아. 걔가 갑자기 C국에 온 건 나도 몰랐어. 다행히 너희를 만나지 않았으면, 아마 마을에서 하루 종일 헤맸을 거야.” 도도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내가 올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