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청아는 전화를 하고 있었기에 이지현의 행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둘은 잠시 마주쳤을 뿐, 곧 각자 할 일로 바빠졌다.지현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다른 일을 하는 척 연기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자 주위를 둘러보고 송미현이 준 도면을 조심스럽게 꺼냈다.한 장씩 넘기며 도면을 살펴보던 지현은 점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청아가 만든 설계 도면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비록 준비 시간이 짧았지만, 청아는 도면을 꼼꼼하고 구체적으로 작성했다. 심하 회사의 기업 문화와 요구 사항을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그녀만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다.지현은 스스로 생각했다. 설령 자신에게 두주일이나 주어진다고 해도 이런 도면을 완성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이 도면을 심하 측 담당자에게 제출해도 충분히 통과될 만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아직 초안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송미현은 왜 굳이 우청아를 이렇게 몰아붙였을까?’지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깨달았다. 미현은 회사에 오기 전부터 이미 이 회사의 상황, 특히 고명기가 본래 총감독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사실을 파악했을 것이다.미현은 새로 부임한 팀장으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구축해야 했고, 동시에 명기를 견제할 필요도 있었다. 그리고 청아는 명기가 신뢰하고 밀어주던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미현의 첫 번째 타깃이 되었던 것이다.지현은 그제야 미현이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를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선택의 순간이 왔다. 우정인가, 아니면 앞날의 성공인가?지현은 손에 쥔 도면을 더 꽉 쥐며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녀는 이미 선택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면을 건네받는 순간부터 지현의 길은 정해졌기 때문이다.조금은 죄책감이 들었지만, 지현은 동시에 현실을 깨달았다. 청아와 명기는 언젠가 이 회사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직장 내 인간관계란 그런 것이었다. 서로 친하게 지내는 척은 하지만, 진심으로 마음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의 마음은
마지막으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내가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에요. 내가 알기로는, 심하 회사의 사장님도 풍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더라고요.”“사실,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는 모든 사장들은 풍수를 신경 써요.”우청아는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으며 물었다.“그렇게 잘 아시는 걸 보니, 혹시 예전에 건축 설계사셨나요?”남자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눈치가 빠르네요! 내가 설계사로 20년을 일했죠. 크고 작은 건물 설계를 백 개도 넘게 했어요. 그런데 정작 나는 강성에서 집 한 채도 못 샀다니까요.”“그래서 결국 일을 그만두고 직접 사업을 시작했죠. 지금은 그냥 간단한 프로젝트 몇 개만 해도, 과거 10년간 벌던 돈을 벌 수 있어요.”“덕분에 우리 아들도 결혼 자금은 걱정 없게 됐고요.”청아는 자신이 건축 설계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알기에, 남자의 이야기가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역시 전문가시네요! 그럼 저한테 더 많이 알려주세요!”남자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좋죠. 오늘 시간이 있으니, 이것저것 더 이야기해 보자고요.”두 사람은 이야기를 이어갔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해가 저물어갔다. 그러다 남자가 문득 물었다.“그런데, 아가씨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청아는 환하게 웃으며 보조개를 드러냈다.“저요? 저는 디자이너예요!”...그때 청아의 휴대폰이 울렸고, 전화를 건 사람은 장시원이었다.[퇴근했어? 내가 데리러 갈까?]청아는 그제야 시간이 꽤 늦은 걸 깨닫고 놀랐다. 하지만 청아는 송미현에게 제출할 보고서를 아직 작성하지 못했다.“아직 할 일이 남아서, 오늘 좀 더 늦을 것 같아. 먼저 들어가. 나는 지하철 타고 갈게.”시원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잘됐네. 나도 갑자기 회의가 생겼거든. 그럼 각자 일 끝내고 연락하자. 너 일 끝나면 바로 말해 줘.”“알겠어!” 청아는 웃으며 대답하자, 시원의 목소리가 낮고 깊게 변하며 말했다.
수요일 저녁 7시 정각 소희는 전위 호텔 앞에 나타났다.핸드폰 알림 소리가 울리자 소희는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아빠 소정인이었다. [소희야, 아빠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차가 좀 막히네. 먼저 들어가있어.]소희는 발걸음을 늦추며 이따 임구택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할까 생각하고 있었다.결혼 3년 동안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임구택이 이 결혼을 동의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거부한다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그렇다고 임구택을 탓할 일도 아니었다. 과거 소씨 가문의 회사가 위기를 맞자 뻔뻔하게 임씨 가문을 찾아가 혼인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였고, 당시 임씨 가문의 장남은 이미 결혼을 한 터라 자연스레 그 약속은 차남 임구택이 이행하게 되었다. 그가 내키지 않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임씨 가문은 당연히 소씨 가문에 좌지우지 당하지만은 않았다. 예물로 50억 원을 건네어 소씨 가문이 난관을 이겨내게 도우면서도 조건을 제시했다. 3년 뒤에 이 혼사가 자동 해지되는 것으로.3년 전, 그녀는 아직 법정 결혼 연령이 되지 않아, 두 사람은 라스베가스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두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대리인이 가서 혼인신고를 마쳤다. 결혼하자마자 임구택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결혼 해지를 석 달 앞두고 돌아왔다. 결혼을 거부한다는 태도가 너무나도 뚜렷했다.하필이면 오늘, 그녀의 아버지가 회사 때문에 그녀를 앞세워 다시 한번 그를 찾아가 부탁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소희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지 생각하였다. “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 아내에요!”그가 그녀를 거들떠보기나 할까?듣건대 임구택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강성의 유명한 악질이었다고 한다. 강성의 흑과 백을 모두 통솔하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매섭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지만 며칠 전 TV의 경제 채널에서 임구택을 본 적이 있는데 그녀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명품 양복을 입고, 거만하면서도 우아하고 듬직해 보였다.그녀는
그의 손에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일을 마친 후 돈을 지불하다니. 그녀는 그를 무엇으로 생각하는 걸까?남자가 냉담한 얼굴을 하고 발코니로 성큼성큼 걸어가니 과연 창문이 열려 있었다.여기는 층고가 높아서 3층이 4층 높이일 텐데 그녀는 어떻게 뛰어내렸을까?그가 그렇게 무서웠나?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칠 만큼?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물을 끼얹은 듯 청량한 바람이지만 남자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화는 식히지 못하였다. 이 여인은 만 원으로 그를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일이 끝난 후에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쳤다... 잡히기만 해봐! ......택시에 앉은 소희가 재채기를 하자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보며 물었다. “아가씨, 괜찮아요?”이렇게 예쁘게 생겨서 홀딱 젖어있다니, 딱 봐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기사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학생이죠? 밖에 혼자 다닐 때 각별히 조심해야 되요.”“네, 감사합니다. 기사님.”소희는 대답하고 휴대폰을 꺼내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천위 호텔의 7시와 9시경에 내가 찍힌 CCTV 기록은 모두 없애!”“ok!” 상대방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시에 따랐다.남자의 귀에 거슬리는 말이 다시 귓가에 울려 퍼졌다. 소희는 오늘 임구택과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따위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다만 임구택이 그녀가 왔었다는 사실을 모르게만 하고 싶었다.운해로에서 내리면서 소희는 뒷좌석을 적신 대가로 택시비를 두 배로 지불했다.별장으로 돌아오자 하인은 소희의 젖은 옷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작은 아가씨, 무슨 일이에요?”“일이 좀 있었어요, 일단 올라가서 샤워부터 할게요.”소희는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목욕물 준비해 드릴게요.”하녀는 더 묻지 못한 채 위층으로 올라가 준비했다.몇 분 후 소희는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긴장했던 몸이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머릿속이 복잡해서 머리까지 물속에 파묻고 오늘 밤에 있
소희는 멍해졌다.남자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왜 절 따라오시는 거예요? 강성대 학생이신가요?”그는 오는 길에서부터 이 여자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멈추면 그녀도 무슨 일이 있는 척 멈추더니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왔다.소희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이내 다시 냉정을 되찾고 반문했다. “여기가 당신 집으로 가는 길인가요? 모든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을 왜 제가 따라다닌다고 하는 거죠?”남자의 눈동자의 싸늘한 빛이 스치더니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소희에게 올라오라고 눈짓했다.소희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비꼬듯 말했다. “됐어요, 오해받을 만한 행동 안할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돌아서서 계단으로 걸어갔다.그녀 뒤로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며 남자의 가늘게 뜬 눈을 가렸다.소희는 임구택과 다시 마주칠까 봐 아예 계단으로 9층까지 올라갔다.회의실에 도착하니 조교가 학과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교는 그녀를 보자 잠시 기다리라고 눈짓했다.그 옆에는 몇몇 학생들도 자료를 제출하러 왔는데, 그중 한 명은 따가운 눈빛으로 소희를 노려보았다. 소희는 못 본 척 휴대폰을 꺼내 스도쿠를 했다.5분도 안 돼 한 판을 풀고 나니 밖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돌아온 지 얼마 안 됐죠? 출국한지 오래됐으니 돌아올 때 됐구나 싶었는데”교장선생님의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한 사람은 교장선생님이고, 다른 한 사람은...소희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임구택도 소희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그녀에게 머물지 않고 바로 지나갔다.학과장은 급히 마중 나가 교장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방 교장은 그에게 소개하였다. “이 분은 LS그룹의 대표이사님이십니다. 예전에 우리 학교 학생이었지요. 참, 우리 학교 여러 항목의 장학금도 임 회장님이 후원한 것입니다.”그러자 학과장은 냉큼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임구택과 악수를 나누었다. “오늘 마침 학생들에게 장학금 신청 서류를 제출
임구택은 그날 창문에서 뛰어내린 여자를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명우는 제일 먼저 천위 호텔의 CCTV를 조사했다.이상하게도 7시와 9시 두 시간대 모두 공백 상태였고 천위 호텔의 보안요원조차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당시 인터넷이 끊겼을 것이라고 추측만 하고 있었다.그래도 명우는 한 사람을 찾았다. 서이연.서이연은 B급 배우로 청순하고 러블리한 이미지의 노선을 걷고 있으나 줄곧 뜨지 못했다. 어제 저녁 6시 50분쯤 그녀가 천위 호텔에 들어가 연풍관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CCTV에서 볼 수 있었다. 이후 CCTV 기록에는 공백이 있어 그녀가 어느 방으로 갔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9시 5분경 서이연의 매니저가 그녀를 부축하고 연풍관 밖에 나타났는데, 그녀는 한쪽 다리를 구부린 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부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그 뒤로 기록이 사라졌기 때문에 명우는 서이연이 어떤 차를 타고 떠났는지 몰라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알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어젯밤 그녀는 왼쪽 다리를 수술했다.명우는 이미 차트를 확인했는데 낙상이었다.그날 밤, 강성의대 부속병원.VIP706호. 병상에 누워있는 여인은 두 손을 맞잡고 불안한 표정으로 맞은 켠 소파에 앉은 임구택을 바라보았다. “임 대표님 무슨 일이에요?”“다리 어떻게 다쳤어요?” 임구택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서이연은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반쯤 늘어뜨린 눈꺼풀 아래 눈물을 반짝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 대표님과 관련이 있나요?”“숨길 필요 없어요, 사람을 시켜 이미 CCTV를 확인했으니까. 어젯밤 9시쯤 매니저가 당신을 부축해서 차를 타고 떠날 때 다리는 이미 부러져 있었죠. 그날 밤 제 방에서 뛰어내린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맞나요?” 임구택의 어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담담했다.손님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천위 호텔은 카메라가 객실 창문을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이연이 어디서 뛰어내렸는지는 볼 수 없지만,
여인이 달려들며 손에 들고 있던 꽃들은 소희의 몸에 던져졌다. 힘껏 소희를 뒤로 밀치고는 소연을 품에 끌어안았다.진원은 긴장한 채 소연의 몸을 살펴보며 물었다. “다친 거야? 혹시 피났어? 어디 아프니?”이슬을 머금은 꽃잎이 온 바닥에 흩어지고 꽃의 가시가 소희의 목덜미를 찔러 따끔거렸다. 그녀는 여인의 긴장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소정인은 이내 다가와 소희에게 물었다.“안 다쳤니?”진원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무서운 눈빛으로 소희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거야, 소연이를 죽이려는 거니?”소희는 여인의 눈에 비친 혐오와 원한을 보고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소연은 소희를 한 번 쳐다보고는 급히 진원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엄마, 오해예요. 제가 언니한테 머리 좀 잘라달라고 했어요. 언니는 절 다치게 하지 않았어요.”“그렇구나!”소정인은 ‘하하’하고 웃으며 진원을 원망했다. “당신은 항상 너무 급해서 문제야. 무슨 일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화부터 낸단 말이야. 당신 때문에 소희 옷이 다 더러워졌잖아.”진원은 자신이 소희를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무안해하며 변명했다. “들어오자마자 소희가 가위를 소연이의 목에 대고 있길래... 머리를 자르는 건줄도 모르고...”“그만 해!”소정인은 진원에게 눈짓을 하고는 소연에게 말했다. “언니 데려고 가서 옷 좀 갈아입혀. 옷이 다 더러워졌네.”“언니, 이리 와!”소연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소희는 어깨의 꽃잎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2층 침실로 들어가자 소연이 사과했다. “언니, 정말 미안해, 엄마가 이 시간에 돌아올 줄 몰랐어. 나 때문에 언니가 다쳤네.”“너 때문이 아니야!”소희의 순수한 얼굴에는 한 줄기 미소를 띠고 있었다.소연은 옷방에 가서 흰색 티셔츠를 가져와 소파에 놓았다. “언니, 이건 새거야, 한 번도 안 입었어. 옷 갈아입어, 난 내려가서 기다릴게.”“응.”소연이 문을 닫자 소희는 소파 위의 옷을 보며 안색이 흐려졌다. 한쪽에서는 머리를 잘라달라
임구택은 고개도 들지 않고 손에든 서류를 보고 있었다.임유림은 고개를 돌려 웃으며 물었다. “소희야, 과외하러 온 거야?”그녀는 소희의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곳이 부자동네여서 당연히 과외 하려 온 줄 알았다.소희는 웃어 보였다. “널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그녀는 임유림이 임구택 형의 딸, 즉 그의 조카라는 걸 어떻게 잊었단 말인가?거의 3년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최근에만 일주일에 3번을 만났다. 그들을 주선해 준 중매쟁이가 드디어 깨어난 건가요?임유림은 돌아보며 소희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분은 내 둘째 삼촌이야!”소희는 모른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임구택은 목소리가 익숙한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가 또 있어 눈을 가늘게 떴다.소희는 손에 들고 있는 우산 손잡이를 꽉 쥔 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임유림은 열정적으로 소희와 대화를 나눴다. “주경이가 고석 좋아하는 거 아니야?”소희는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답하였다. “그런 것 같아!”소희는 무의식적으로 임구택을 바라보며 미소를 띠며 답했다. “나와 고석은 그냥 친구야, 그가 누구와 함께 있는 나랑 상관없어.임유림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눈치를 보내니 소희의 마음속이 불안해졌다. 그녀가 결혼을 합의 때문에 하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 그녀는 결혼한 신분이다.시내로 들어서자 앞쪽에 사고가 나 차가 막혔다. 임유림은 고픈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 “길 언제 뚫리지, 배고픈데 먼저 밥 먹으러 갈까?”소희는 답혔다. “나 여기서 내릴게 나 학교 가야 해.”“학교는 무슨, 점심인데 같이 밥 먹으러 가자.” 임유림은 이미 스스로 결정을 내린 듯했다.아무 말도 하지 않던 임구택은 시계를 보고 명우에게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세 사람은 프렌치 레스토랑에 들어가 앉았다. 임유림은 소희가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와본 적이 없을까 봐 소희에게 물어본 뒤 대신 주문해 주었다.임유림이 음식을 주문하고 화장실에 가자 자리에는 임구택과 소희 둘만 남았다.소
마지막으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내가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에요. 내가 알기로는, 심하 회사의 사장님도 풍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더라고요.”“사실,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는 모든 사장들은 풍수를 신경 써요.”우청아는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으며 물었다.“그렇게 잘 아시는 걸 보니, 혹시 예전에 건축 설계사셨나요?”남자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눈치가 빠르네요! 내가 설계사로 20년을 일했죠. 크고 작은 건물 설계를 백 개도 넘게 했어요. 그런데 정작 나는 강성에서 집 한 채도 못 샀다니까요.”“그래서 결국 일을 그만두고 직접 사업을 시작했죠. 지금은 그냥 간단한 프로젝트 몇 개만 해도, 과거 10년간 벌던 돈을 벌 수 있어요.”“덕분에 우리 아들도 결혼 자금은 걱정 없게 됐고요.”청아는 자신이 건축 설계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알기에, 남자의 이야기가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역시 전문가시네요! 그럼 저한테 더 많이 알려주세요!”남자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좋죠. 오늘 시간이 있으니, 이것저것 더 이야기해 보자고요.”두 사람은 이야기를 이어갔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해가 저물어갔다. 그러다 남자가 문득 물었다.“그런데, 아가씨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청아는 환하게 웃으며 보조개를 드러냈다.“저요? 저는 디자이너예요!”...그때 청아의 휴대폰이 울렸고, 전화를 건 사람은 장시원이었다.[퇴근했어? 내가 데리러 갈까?]청아는 그제야 시간이 꽤 늦은 걸 깨닫고 놀랐다. 하지만 청아는 송미현에게 제출할 보고서를 아직 작성하지 못했다.“아직 할 일이 남아서, 오늘 좀 더 늦을 것 같아. 먼저 들어가. 나는 지하철 타고 갈게.”시원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잘됐네. 나도 갑자기 회의가 생겼거든. 그럼 각자 일 끝내고 연락하자. 너 일 끝나면 바로 말해 줘.”“알겠어!” 청아는 웃으며 대답하자, 시원의 목소리가 낮고 깊게 변하며 말했다.
우청아는 전화를 하고 있었기에 이지현의 행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둘은 잠시 마주쳤을 뿐, 곧 각자 할 일로 바빠졌다.지현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다른 일을 하는 척 연기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자 주위를 둘러보고 송미현이 준 도면을 조심스럽게 꺼냈다.한 장씩 넘기며 도면을 살펴보던 지현은 점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청아가 만든 설계 도면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비록 준비 시간이 짧았지만, 청아는 도면을 꼼꼼하고 구체적으로 작성했다. 심하 회사의 기업 문화와 요구 사항을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그녀만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다.지현은 스스로 생각했다. 설령 자신에게 두주일이나 주어진다고 해도 이런 도면을 완성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이 도면을 심하 측 담당자에게 제출해도 충분히 통과될 만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아직 초안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송미현은 왜 굳이 우청아를 이렇게 몰아붙였을까?’지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깨달았다. 미현은 회사에 오기 전부터 이미 이 회사의 상황, 특히 고명기가 본래 총감독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사실을 파악했을 것이다.미현은 새로 부임한 팀장으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구축해야 했고, 동시에 명기를 견제할 필요도 있었다. 그리고 청아는 명기가 신뢰하고 밀어주던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미현의 첫 번째 타깃이 되었던 것이다.지현은 그제야 미현이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를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선택의 순간이 왔다. 우정인가, 아니면 앞날의 성공인가?지현은 손에 쥔 도면을 더 꽉 쥐며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녀는 이미 선택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면을 건네받는 순간부터 지현의 길은 정해졌기 때문이다.조금은 죄책감이 들었지만, 지현은 동시에 현실을 깨달았다. 청아와 명기는 언젠가 이 회사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직장 내 인간관계란 그런 것이었다. 서로 친하게 지내는 척은 하지만, 진심으로 마음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의 마음은
송미현은 여전히 차분한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저희 디자이너들은 도면 완성도를 매우 중요해요. 열흘 내로 완성된 도면은 사장님을 충분히 만족시킬 거예요.”“다른 설계 사무소에 맡기신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잘 아시리라 믿을게요.”성우준은 잠시 고민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러면 열흘 드리죠. 열흘 뒤에는 꼭 도면을 볼 수 있기를 바라요.”“물론이죠!”미현은 성우준을 배웅한 뒤, 비서에게 이지현을 자신의 사무실로 부르라고 지시했다. 지현이 들어오자 미현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지현 씨!”지현은 서둘러 인사하며 말했다.“팀장님, 안녕하세요!”“앉아요.” 미현은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다.“오늘 회의에서 내가 청아 씨를 꾸짖은 것, 어떻게 생각하나요?”이지현은 눈빛이 흔들리며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사실, 청아 씨는 능력이 있는 디자이너예요. 이번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탓도 있었죠.”미현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그녀에게 기대가 너무 컸던 걸지도 모르죠.”이지현은 얼른 맞장구를 쳤다.“네, 이해합니다.”미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받은 듯 말했다.“사실 제가 너무 엄격했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했어요. 혹시 제가 청아 씨를 타깃 삼아 괴롭힌다고 느낀 건 아닌가 해서요.”지현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요, 그런 생각 전혀 안 했어요.”미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정말 청아 씨를 더 뛰어난 디자이너로 만들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조금 엄격했던 거죠.”지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저희 모두 이해하고 있어요.”“이해해 준다니 다행이네요.” 미현은 미소를 짓다가 목소리를 낮췄다.“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청아 씨의 실력은 겉보기와는 다르더군요.”“이번 심하 건에서도 문제가 있었지만, 제가 성우준 대표님을 설득해서 겨우 상황을 무마했어요.”“
송미현은 여전히 고압적이고 까다로운 태도로 말했다.“고명기 부팀장이 우청아 씨를 지도하면서 몇 번 놀라운 결과물을 내놓은 건 인정해요.”“하지만 그게 청아 씨가 뛰어난 디자이너라는 걸 의미하진 않죠. 저는 과거에 냈던 성과엔 관심 없어요.”“지금 청아 씨가 제출한 결과물만 보고 판단하는데, 솔직히 만족스럽지 못해요.”미현의 말은 청아의 과거 성과를 모두 고명기의 지도 덕분으로 치부하는 것이었다.청아는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았고, 차분하게 표정을 정리하며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청아는 알고 있었다. 미현의 비난은 단지 표면적인 것이고, 진짜 목적은 따로 있을 거라는 것을.잠시 생각에 잠겼던 미현은 결정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조금 있다가 심하의 성우준 사장님이 오시면, 제가 시간 연장을 요청할게요.”“청아 씨, 당신은 경험도 부족하고, 현장 실사와 관련한 이해도도 아직 미흡한 것 같아요.”“그러니 앞으로 이틀 동안 다른 일은 하지 말고 심하의 공사 현장을 방문하세요.”“주변의 편의 시설, 녹지 환경, 교통 체계 등을 철저히 조사하고, 비슷한 프로젝트가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직접 보고 오세요.”이에 명기가 바로 나섰다.“그런 건 이미 조사가 끝난 상태예요. 송미현 팀장님, 지금 하시는 건 청아 씨를 디자이너에서 조수로 강등시키는 거 아닌가요?”이에 미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저는 좋은 디자이너라면 이런 것들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더 나은 설계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명기는 얼굴을 굳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청아는 담담하게 말했다.“팀장님 말씀도 맞아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현장 조사가 중요하니 다녀올게요.”미현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젊은 사람이 부족한 능력을 겸손으로 채우는 건 아주 칭찬할 만한 태도죠. 이번 주는 현장 조사에 집중하세요.”“그리고 매일 퇴근 전에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하세요.”청아는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알겠어요. 팀장님의 지시에 따를게요.”미현
우청아는 겸손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송미현은 한층 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청아 씨, 도면 좀 볼게요.”이에 청아는 도면을 그녀에게 건넸다. 미현은 도면을 한 장씩 넘기며 검토했다. 처음엔 미소를 거두더니, 점점 미간을 찌푸렸다. 결국 얼굴빛은 완전히 어두워졌다.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점점 조용해졌다. 곧 미현은 도면을 탁자 위에 세게 내려놓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청아 씨, 정말 실망이 크네요!”뜻밖의 상황에 청아는 놀라며 물었다.“팀장님, 도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미현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솔직히 말해서, 시간 촉박한 건 알죠. 그래서 일부러 이지현 씨와 동영배 디자이너를 붙여줬잖아요.”“그런데도 이런 대충 만든, 설계 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도면을 제출하다니요. 이렇게 평범한 도면을 만들 거였으면, 심하 회사가 우리를 찾을 이유가 뭐죠?”미현은 말을 이어갔다.“처음부터 못 하겠다고 말했으면 됐을 일을, 왜 자신만만하게 일을 맡더니 결국 이런 결과를 낸 건가요?”“이렇게 대충 해놓고, 이걸 심하 측에 어떻게 넘기겠어요? 콜드스프링의 명성도 이걸로 끝이겠군요!”“제가 그렇게 기대하고 신뢰했는데, 정말 실망스럽네요!”미현은 냉정하고 가차 없이 청아를 꾸짖었다. 다른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청아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가 금세 창백해졌다. 그녀는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낮은 목소리로 사과했다.“죄송해요. 도면이 팀장님 기대에 못 미친 건 제 부족함 때문이에요. 하지만 저는 절대 대충 만든 게 아니라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미현은 냉소를 지으며 대꾸했다.“그래서 내가 청아 씨를 오해했다는 건가요? 아니면 내가 일부러 괴롭힌다는 뜻인가요?”이때 옆에 있던 명기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섰다.“송미현 팀장님!”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애초에 이틀 만에 하나의 프로젝트 도면을 완성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였어요.”“하지만 팀장님은
우청아는 이틀 동안 야근하며 거의 두 번의 밤을 꼬박 새웠다. 그로 인해 장시원이 또다시 화를 낼 뻔했지만, 결국 월요일 출근 전까지 도면을 완성해 냈다.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고명기가 먼저 도면을 검토했다. 그러고는 점점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틀 만에 초안을 이 정도로 완성하다니, 청아 씨, 정말 대단한데요!”청아는 눈가의 핏줄이 드러난 것을 가리키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이게 어디 이틀 만에 한 거예요. 어젯밤엔 새벽 네 시까지 작업했어요.”청아는 겨우 세 시간만 잠을 잤다. 이에 시원은 화가 나서 배강에게 전화를 걸어, 콜드스프링 건축회사를 통째로 인수하겠다고 했었다.그래서 청아는 한참 동안 그를 달래야 겨우 막을 수 있었다. 그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났다.고명기는 고개를 들며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그런 남자친구가 있으면 여자들은 굳이 열심히 살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요.”청아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입꼬리를 올리자. 그녀의 미소 속에는 깊은 보조개가 살짝 드러났다.“모두가 자기만의 이상과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거죠. 사랑이 전부는 아니잖아요.”명기는 청아의 냉철하고 깔끔한 태도를 보며 감탄했다. 그는 도면을 청아에게 돌려주며 말했다.“내가 보기엔 괜찮아. 우선 심하 회사 쪽 사람들에게 보여줘. 설령 수정할 게 있어도 많진 않을 거야.”청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러면 먼저 돌아가서 세부 사항을 조금 더 손보며 심하 회사 쪽 사람들을 기다릴게요.”도면을 들고 돌아온 지 약 30분 후, 송미현의 비서가 그녀를 찾아와 회의를 소집한다고 했다. 이에 청아는 심하 프로젝트의 도면을 가지고 회의실로 향했다.청아는 회의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세부 사항을 다시 확인했다. 그때 이지현이 커피 한 잔을 들고 와서 그녀에게 건네며 투덜댔다.“어젯밤에 남친이랑 심야 영화를 보고, 야식까지 먹었더니 집에 돌아간 게 거의 새벽 세 시였어요.”“지금 너무 졸려서 눈도 제대로 안 떠져요. 내 이 판
이문이 옆에서 낄낄대며 말했다.“형님, 혹시 고양이 무서워하시는 거 아니에요? 형님 표정이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은데요?”다른 사람들도 폭소를 터뜨렸고, 서인은 이문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임유진을 향해 물었다.“이 고양이, 그냥 집으로 데려가면 될 걸 굳이 여기까지 왜 가져온 거야?”유진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여기가 이 고양이의 집이에요! 아직 오빠들을 본 적이 없잖아요!”서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임유진, 여기 동물원인 줄 아는 거야?”예전에도 유진이 길에서 야옹이를 데려오더니, 이번엔 또 애옹이를 들고 왔다. 자신은 이제 동물원장이라도 되는 걸까?유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요. 근데 임유민이 그러잖아요. 소희랑 임신 준비 중이라서 새로 애완동물을 못 키운대요.”“그렇다고 제가 이 고양이를 계속 동물병원에 둘 수도 없고요.”유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기 어린 빛을 띄운 눈길로 서인을 바라봤다.“그리고, 소희의 절친이자 동료로서, 사장님이 소희 언니를 위해서라면 조금 희생해야 하지 않을까요?”서인은 비꼬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남의 힘 빌리는 기술까지 배운 거야?”유진은 그의 빈정거림을 무시하고, 고양이를 안은 채 뒷마당으로 향하며 말했다.“저는 야옹이를 만나게 해주러 가요!”서인이 고개를 돌리자, 이문과 현빈을 비롯한 몇몇 직원들이 그 장면을 보고 몰래 웃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아침부터 뭐 하는 거야! 각자 맡은 일이나 하러 가!”그 말에 직원들은 서둘러 흩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려동물 가게 직원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3층짜리 나무로 된 고양이 집과 함께 고양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와 사료, 모래, 장난감을 가져왔다.유진은 직원들에게 고양이 집을 야옹이가 있는 자리 맞은편에 설치하도록 지시했다.3층으로 된 나무 고양이 집은 유진의 키와 비슷할 정도로 높았다.
장시원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하루 종일 쌓였던 우청아의 피로를 단숨에 사라지게 했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시원은 차를 출발시키며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손을 가만히 감쌌다. 그러고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오늘 밤은 어머니 댁에서 묵자. 내일은 주말이니까, 요요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서 낚시하자.” 지난번에 요요가 제대로 못 놀아서 아쉬웠잖아. 이번에는 실컷 즐기게 해 주자.”요즘 청아는 회사 일로 바쁘게 지냈기에. 시원은 그녀에게 잠시라도 여유를 찾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청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그를 바라보았다.“내일은 같이 못 가. 회사에 나가서 일해야 해.”시원의 이마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내일도 출근해야 해? 대체 얼마나 일을 하는 거야? 이렇게 바빠?”청아는 차분히 설명했다.“갑자기 들어온 프로젝트가 있어. 월요일까지 도면을 완성해야 해.”시원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청아는 시원의 손을 뒤집어 꼭 잡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청아의 맑은 눈동자가 애틋하게 그를 응시했다.“화났어? 화내지 마. 다음 주에는 큰일이 없을 거야. 그때 다시 바다에 나가자, 응?”시원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화난 거 아니야.”차가 신호 대기 중에 멈추자, 시원은 손을 들어 청아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그냥 네가 너무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서 그래. 나도 너랑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거야.”청아의 눈이 반짝이며 촉촉해졌다.“알아.”시원의 눈빛이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걱정하지 마. 내 와이프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걸 어떻게 안 도와줄 수 있겠어?”시원의 와이프라는 말에 청아의 얼굴이 순간 빨개졌다. 그녀는 시원의 손을 툭 치며 돌아섰지만, 마음속에는 따뜻함이 가득 찼다. 세상 그 무엇도 그의 지지만큼 청아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것은 없었다.시원은 청아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힘이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깊이 바라봤다.“그
“좋죠!”성우준을 배웅한 뒤, 고명기가 말을 꺼내려는 찰나에 송미현이 먼저 말을 가로챘다.“청아 씨, 정말 고생 많았어요. 내가 미리 알아봤는데, 성우준 대표님 프로젝트는 일정이 굉장히 빠듯하더라고요.”“우리가 시간에서 우위를 점해야 이 협업을 따낼 수 있었어요.”“청아 씨가 하고 있는 일은 잠시 멈추고, 시간을 비워서 성우준 사장님 설계안을 우선적으로 진행해줘요. 이지현 씨와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할게요.”그 말에 명기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내일은 토요일이에요. 사전에 준비도 없었고, 설령 청아 씨가 주말에 쉬지 않고 일한다고 해도, 도면을 하루 만에 완성하는 건 불가능해요.”“게다가 다른 직원들까지 함께 야근하게 한다면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요.”그러나 미현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그럼 어쩌죠? 이미 제가 성우준 사장님께 약속을 드렸는데요!”그 말에 명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송미현 팀장님, 약속하시기 전에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셨던 건가요?”이에 미현은 차갑게 응수했다.“저도 회사 이익을 위해서 한 거예요. 성우준 사장님 같은 고객을 붙잡아 두고 싶어서요.”옆에 있던 고급 디자이너인 동영배가 중재하며 말했다.“저는 내일 일정이 없으니까, 청아 씨와 함께 야근해서 데이터 작업을 도와드리죠.”청아는 명기가 자신 때문에 미현과 다투는 걸 원치 않았기에 차분하게 말했다.“회사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죠. 이미 성우준 사장님께 약속을 드렸으니 월요일까지 설계안을 완성해서 드리죠.”미현은 곧장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 청아 씨. 청아 씨가 회사에 헌신한 건 제가 잊지 않을게요.”청아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감사드려요, 송미현 팀장님.”회의실을 나선 뒤, 명기는 청아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송미현 팀장, 저건 일부러 그런 거예요.”이에 청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요즘 팀장님이 제가 스승님과 어떤 관계인지 파악한 뒤로 일부러 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