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구택은 길고 단정한 손가락으로 벨벳 상자를 몇 번 회전시켰다. 은은한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의 손끝은 마치 차가운 옥처럼 온화한 광택을 띠고 있었다. 잠시 후, 구택은 천천히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뚜껑이 열리는 순간, 안에서 뿜어져 나온 찬란한 빛이 황금빛 석양조차도 압도했다. 상자 안에는 두 개의 반지가 들어 있었는데, 소희가 직접 디자인한 결혼반지였다.신부의 반지는 7캐럿짜리 핑크 다이아몬드였다. 완벽하게 잘린 이 반지는 소희의 손가락 너비에 가까웠고, 별다른 장식 없이 다이아몬드 자체의 찬란한 광채만으로도 영혼을 사로잡을 만큼 순수하고 맑았다.마치 소희 자체를 닮은 듯했다. 깨끗하고 투명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열정은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신랑의 반지에는 다이아몬드로 LS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L의 끝 선을 길게 늘여 S의 사선과 연결한 디자인으로, 유려한 선과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이 돋보였다.구택은 깊고 어두운 눈빛으로 두 개의 반지를 꺼내 들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으나 곧 그 미소는 미묘하게 굳어졌다.두 반지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서로 닿았을 때, 핑크 다이아몬드의 빛이 신랑 반지 위로 비치며 반지 표면에 흐릿하게 글자가 떠올랐다.[일생의 진정한 사랑]구택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 글자는 마치 칼로 새긴 듯, 그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구택의 마음속이 뜨겁게 흔들리며 아렸다. 강렬한 열기와 고통이 동시에 밀려와 온몸의 피가 불타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구택은 손바닥을 펼쳐 두 개의 반지가 손안으로 떨어지게 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오므려 단단히 쥔 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의 목이 여러 차례 움직였다.일생의 진정한 사랑, 오직 서로만을 위한 사랑.시간이 흐르고 어둠이 깔린 후, 구택은 핸드폰을 꺼내 소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선물 봤어. 정말 마음에 들어.]마음에 들어서 미칠 것 같았다.소희는 금세 답장을 보냈다.[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야.]구택은 메시지를 이어
어느덧 27일이 되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지만, 기대와 설렘이 더해지며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고통스러운 기다림이었다.이른 아침, 구은태가 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구은정, 오늘 집에 잠깐 들러. 우리 함께 임씨 집안에 축하 인사를 가야 하니까. 너는 구씨 집안의 장남으로서 이런 자리에 당연히 나와 함께 참석해야 해.]서인은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전날 임구택과 통화하며 들러리를 서기로 확정 지었고, 임씨 집안에 한 번 가야 할 일이 있었다.“알겠어요. 지금 집으로 갈게요.”구은태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운전 조심해서 와. 우리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아침 9시경, 서인은 구씨 집에 도착했다.구은태 아내인 서선영은 평소처럼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서선영은 구은태 앞에서 직접 차를 따르며 가사도우미들에게 지시했다.“어서 내가 우리 아들을 위해 준비한 과일을 모두 가져와요.”세 명의 가사도우미가 다양한 종류의 과일을 담은 접시를 들고 와 탁자 위를 가득 채웠다.서선영은 환히 웃으며 말했다.“이 과일들은 내가 직접 고르고, 씻고, 썰어서 준비했단다. 당신이 보기엔 어때요?”구은태는 정성스럽게 준비된 과일 접시를 보며 웃었다.“신경 많이 썼네.”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서인에게 말했다.“한 번 맛 좀 봐.”그러나 서인은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저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아요.”그러고는 차갑게 물으며 덧붙였다.“지금 출발하나요?”구은태는 약간 눈살을 찌푸렸고, 서선영은 즉시 고개를 저으며 상관없다는 표시를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친절한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은정이, 오늘 우리가 임씨 집안에 갈 때 너는 구씨 집안의 장남을 대표하는 것이니 옷차림이 너무 간단해서는 안 돼.”“미리 몇 벌 준비해 뒀으니 위층에 올라가 한 번 입어보거라.”서인은 검은색 티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정장보다 확실히 캐주얼한 복장이었다.“제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정장을 입을 필요가 있나요?”그는 태연하게 시간을 확인
최근 며칠간 임씨 집안은 손님들로 북적이었다. 찾아와서 축하 인사를 전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구씨 가족이 도착하자, 임씨 집안 사람들은 직접 나와 맞이했다. 오랜 세월 이어진 두 집안의 교류로 인해 관계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친밀했다.구은태는 서인을 데리고 서재로 가 임시호와 이야기를 나눴다.한편, 서선영과 구은서는 거실에서 노정순, 우정숙 등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인사를 나눈 후, 은서는 자신이 가져온 선물을 노정순과 우정숙에게 건넸다.“제가 M국에서 촬영을 하다가 이 두 벌의 루비 세트를 봤는데, 정말로 화사하고 기품 있어 보여서 두 분께 결혼식 때 착용하시라고 준비했어요.”노정순은 부드럽게 거절하며 말했다.“신경 써줘서 고맙지만, 그럴 필요 없어. 소희가 직접 우리 둘을 위해 디자인한 액세서리가 이미 준비되어 있어.”은서의 단정한 미소가 잠시 멈췄다가, 곧 더 우아하게 웃으며 말했다.“소희가 직접 디자인했다고요? 그럼 제가 가져온 건 정말 비교할 수 없겠네요.”노정순은 몇 가지를 몰랐다. 그저 은서가 한때 구택을 좋아했던 것을 알고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은서는 점점 예뻐지고, 일도 성공적으로 하고 있으니 이제 좋은 남자친구를 만나야지!”서선영은 순간적으로 눈빛을 반짝이며 웃으며 말했다.“전에 은서와 구택이 친하게 지낼 때, 여사님께서 항상 은서를 며느리 삼겠다고 하셨잖아요.”“은서도 그 말을 마음에 두고 다른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아요.”노정순의 미소가 약간 흐려졌다.“예전엔 그런 농담을 하곤 했지만, 결혼은 결국 인연에 달린 거죠.”“구택이는 이제 곧 결혼할 테니, 과거 이야기는 그만하고, 은서가 좋은 인연을 찾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죠.”은서도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말했다.“엄마, 구택 오빠 곧 결혼하는데 왜 이런 말을 하세요? 저는 구택 오빠를 예전부터 오빠처럼, 가족처럼 생각했어요.”“그리고 소희와도 함께 일했던 사이로서 친구로 여기고 있어요. 둘의 결혼을
서선영은 당황한 나머지 얼굴이 붉어졌다가 창백해졌다. 마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뺨을 맞은 듯했다. 그녀는 노정순이 이렇게 날카로운 말을 할 줄은 몰랐던 듯했다.구은서는 옆눈으로 서선영을 힐끗 보더니, 노정순에게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다.“밖에 보니 마당이 무척 북적이던데요. 제가 아는 사람들도 몇 명 있는 것 같아요. 인사 좀 드리고 올게요.”노정순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다녀와.”은서는 우정숙에게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몇 명의 사모님들이 더 찾아와 노정순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서선영은 뒤로 물러나 차를 마시며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다....서인은 서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축하 인사를 하러 온 손님들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고 밖으로 나가 정원에서 담배를 피웠다.정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비록 오늘은 결혼식 당일이 아니었지만, 모든 손님은 격식을 갖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남자들은 모두 정장을 입고 있었고, 여자들은 화려한 액세서리를 하고 잔디밭 여기저기에서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 모습 속에서 임유진은 위층 창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한눈에 특별한 사람을 발견했다.검은색 티셔츠와 검은색 바지. 평소처럼 무척 캐주얼한 복장이었지만, 서인의 당당한 체격과 차가우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돋보여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창가에서 그를 바라보던 임유진은 서인이 있는 곳을 지나치며 애써 무심한 척하는 두세 명의 여자를 바로 알아챘다. 입꼬리를 올리며 유진은 생각했다.“피하더니 결국 우리 집까지 들어왔네?”유진의 눈은 빛이 나며 핸드폰을 들어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바빠요?]유진은 메시지를 보낸 뒤 창가에 서서 서인의 반응을 지켜봤다.서인이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10초, 30초, 1분...서인은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다른 손에는 담배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메시지에 답장할 기색이 전혀 없었다.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당장 아래로 뛰어내려
“끈기를 가져야 돌도 데워지는 법이야!”임유진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한 뒤, 잠시 마음을 다잡고 그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그럼 빨리 와요. 도착하면 바로 2층으로 올라가세요. 자신이 들러리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탈의실로 안내해 줄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몇 초 뒤, 서인에게서 답장이 왔다.[응.]‘아 답장 또 대충 해.’유진은 절망하며 머리를 창문에 기대고, 서인의 뒷모습을 보며 속삭였다.“서인, 내가 전생에 네 집을 불태우고 재산을 털었나 봐. 그래서 이번 생에 이렇게 빚을 갚는 거겠지.”유진은 여전히 서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담배를 다 피우고 일어서서 별채 쪽으로 걸어오자, 유진의 시선이 서인과 잠깐 마주칠 뻔했다. 이에 깜짝 놀란 유진은 재빨리 창문에서 물러나 커튼 뒤에 숨었다....서인은 측면 문을 통해 들어와 복도를 따라 걸었고, 그를 발견한 도우미가 공손히 물었다.“무엇을 도와드릴까요?”서인은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구은정이고, 임구택 사장님의 들러리로 왔어요.”도우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어요, 구은정 씨. 이쪽으로 오세요.”서인은 그녀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고, 탈의실까지 안내받았다.2층 탈의실은 평소 잘 사용되지 않는 방이었다.방 안은 세 면이 옷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중앙에는 정사각형의 물품 테이블이 있었다. 한쪽 벽에는 전신 거울이 자리 잡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어둡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탈의실과 이어진 외부 공간은 작은 휴게실로, 소파와 창가를 따라 놓인 화장대가 있었다. 도우미는 들러리복을 물품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공손히 말했다.“이 옷이에요. 제가 도와드릴까요?”서인은 간단히 말했다.“제가 알아서 입을 테니 나가주세요.”도우미는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가려다, 문 앞에 서 있는 유진을 발견했다. 도우미는 인사하려 했지만, 유진이 손가락을 입술에 댄 채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도우미는 눈치를 채고 아무 말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유진은 방
서인의 목소리는 본래 살짝 허스키했는데, 고요한 방 안에서는 더 낮고 깊게 울렸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임유진의 가슴에 박히는 듯했다.유진의 뺨은 하얗게 빛나던 것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 유진은 약간 흔들리는 눈빛으로 서인을 바라보며, 핑크빛 입술을 깨물고 조용히 말했다.“그건 내가 일방적으로 키스한 거니까 키스가 아니죠.”유진은 자신이 잘못 본 건지, 서인의 눈에 어색함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본 듯했다. 유진은 눈을 반쯤 내리며, 긴 속눈썹 아래로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그날은 내가 당신에게 무례했어요. 내 잘못이에요. 사과할게요! 하지만 당신도 알잖아요.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에요.”“친구라며 꾸미는 건 그냥 스스로 속이는 거죠. 평소엔 계속 참다가 그날은 참지 못했을 뿐이에요. 제발 용서해 줘요.”서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걸까? 이게 무슨 돌직구 같은 고백이야...’서인은 저음으로 단호하게 말했다.“만약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겠다면, 안 보는 게 좋겠어.”“안 돼요!”유진은 급히 서인의 말을 막으며, 조심스레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제가 노력할게요. 참아볼게요. 그걸로 안 되나요?”유진의 눈빛을 본 서인은 마치 자신이 약하고 불쌍한 피해자인데, 그녀가 그를 괴롭히는 악당이라도 되는 듯한 이상한 착각에 빠졌다.이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라 그는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묘한 긴장감이 감돌며, 서인은 더 이상 이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날 일은 더 이상 말하지 말고, 이제 나가. 옷을 갈아입어야 해.”유진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이 얼굴로 삼촌의 들러리를 서겠다고요?”서인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왜, 옷이 통일된 게 아니었나?”“내 말은 얼굴이에요! 지금 이 모습으로는 삼촌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고요!”유진은 콧방귀를 뀌며 말하자, 서인은 할 말을 잃었다.유진은 그에게 몇 걸음 다가갔고 손에 들고 있
서인은 미묘하게 고개를 들어 임유진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는 맑고 투명하여, 마치 거울처럼 자신의 어두운 과거까지 비춰주는 듯했다.서인은 목울대를 한 번 움직이며 눈빛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방 안은 등이 꺼져 있었고, 옷장에서 은은한 달빛 같은 빛만 흘러나왔다. 그 빛이 그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비추고 있었다.임유진은 어느새 집중력을 잃기 시작했고, 면도기를 움직이는 손도 어색해졌다. 결국 서인의 얼굴이 깨끗하게 정리되자, 유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유진의 눈에는 부드러운 빛이 스쳤고, 그는 고요히 유진의 시선을 받아들였다.서인의 수염이 모두 깎인 후, 서인의 얼굴은 5년은 젊어진 듯했다. 아래 턱선은 더욱 매끄럽고 분명해졌고, 이목구비는 더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보였다. 그의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은 유진의 심장을 멈출 듯 뛰게 했다.서인은 어깨를 가볍게 털며, 자신을 바라보는 유진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그렇게 쳐다봐?”유진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저었고, 눈빛은 한결 부드러웠다. 그러고는 조용히 말했다.“평소에는 깎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결혼할 때는 꼭 이렇게 깔끔하게 해 주세요. 알겠죠?”서인의 손이 어깨에서 멈추며, 그는 유진을 놀란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결혼? 임유진, 내가 했던 말들이 다 소용없었어?”유진은 서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면도기를 정리하러 갔다. 서인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옷을 갈아입을 거야. 나가.”“알겠어요.”유진은 짧게 대답하며 돌아서려던 찰나, 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섰고, 긴장한 표정으로 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누가 왔어요!”서인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유진이 재빠르게 옷장 문을 열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서인도 누군가가 들어와 이 상황이 알려지면 유진의 평판에 흠이 갈 것을 우려해 저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이어 유진이 그의 갈아입은 옷까지 들고
갑자기 서인이 옷장 안에서 실크 스카프를 하나 꺼내더니, 임유진의 팔을 붙잡아 뒤로 묶으려 했다. 유진은 몸을 살짝 비틀며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몇 초간 침묵이 흐른 뒤, 서인이 고개를 숙여 유진의 귀에 낮고 조용히 말했다.“만약 들키게 된다면, 내가 널 묶고 나쁜 짓을 하려 했다고 말해. 넌 강제로 당한 거야.”유진은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이미 가까이 서 있었기에, 그녀의 움직임에 서인의 입술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순간적인 감각이 전류처럼 두 사람의 몸을 스치며, 그들은 동시에 멈춰 섰다. 유진은 숨을 멈추고 다시 그를 껴안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안 돼요. 당신이 나를 묶기만 하면 지금 당장 나가버릴 거예요!”유진은 서인의 의도를 이해했지만, 결코 그를 따라줄 수 없었다.바깥에서는 은서가 이미 옷장을 열고 옷을 찾고 있었다. 첫 번째 옷장에는 남성복만 걸려 있었고, 그녀는 이를 닫고 두 번째 옷장을 열었는데, 거기에는 가방이 있었다.세 번째 옷장은 투명한 갈색 유리로 되어 있어, 안에 있는 보석과 장신구가 한눈에 보였기에, 은서는 이를 건너뛰었다. 그리고 다음 옷장이 바로 임유진과 서인이 숨은 옷장이었다.그 순간, 유진은 갑자기 두려움이 사라졌다.‘들켜도 상관없어. 내가 서인을 좋아해서, 쫓아다니고 있다고, 일부러 여기까지 따라왔다고 솔직히 말하면 되니까.’그리고 그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유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은서가 문을 열길 기다렸다. 그러나 서인은 손에 든 스카프를 자기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유진은 그의 뜻을 알아채고 당황한 마음에 재빠르게 발돋움을 해 서인의 입술에 키스했다.옷장은 어두워 손을 뻗어도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유진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인의 입술을 단단히 맞췄고, 이에 서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유진의 조금 전 냉정했던 마음은 다시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고, 유진은 더욱 강하게 발끝을 들어 그에게 다가갔다. 팔을 그의 어깨에 감으며, 입
강아심이 거실로 들어오자, 소희와 가볍게 포옹하며 부드럽게 웃었다.“결혼 축하해. 정말 완벽한 결혼식이었어. 모든 사람이 감동했어!”“고마워!” 소희도 따뜻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심은 한발 물러서서 소희에게 소개했다.“여기는 도도희 이모야!”소희는 눈앞의 여성을 보고 순간 멍해지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혹시 스승님의 딸, 도도희님이세요?”도도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나도 소희 씨 이름을 들어봤어. 우리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제자라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니 아쉬웠어요.”소희는 자신의 결혼식에 도도희가 찾아올 줄 몰랐기에 마음이 벅차올랐다.“스승님도 오신 걸 알고 계세요?”양재아의 일로 스승님과 도도희 사이의 일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소희는, 스승님이 딸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도도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우리는 이미 만났어요.”“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소희도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도도희는 부드럽게 물었다.“듣기로 양재아를 삼각주에서 찾아내 데려온 게 소희 씨라던데, 내 친딸이든 아니든 우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소희는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할 것까지는 없어요. 다만, 두 분께 헛된 기대를 드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었어요.”도도희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런 일은 수없이 겪어봤거든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도도희의 담담한 태도에서 그녀가 왜 지금까지 친자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 소희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도도희는 처음 만난 소희에게서 놀라움을 느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고요하고 담백한 성품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투명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 면모가 아심과도 닮아 자연스레 호감을 느끼게 했다.도도희는 한층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운성에서 산간 지역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틀 후면 일이 끝나니, 강성으로 돌아
멀리서 도경수와 강아심이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소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고, 구택과 눈이 마주쳤다.손에 들고 있던 부케를 두 손으로 잡은 소희는 가볍게 손을 들어 부케를 뒤로 던졌다.햇살이 소희를 온통 감싸고, 드레스의 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그녀의 웃음은 그림처럼 찬란했다. 앞쪽에 서 있던 사람들은 부케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만 볼 수 있었다.몇몇 사람들은 점프했지만, 손끝과 부케는 20에서 30cm쯤 차이가 나 닿지 않았다. 시원은 부케가 멀리 날아갈 것을 예상하고 준비했지만, 소희의 던지기 실력을 과소평가했다.시원과 백림은 함께 점프했으나 손가락 끝이 꽃잎에 닿았을 뿐 결국 부케를 놓치고 말았다.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니, 부케는 무려 10미터 이상 날아가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들고 있는 손에 정확히 떨어졌다.아심은 꽤 멀리 서 있었고, 부케가 자신에게 떨어질 줄 몰랐는지 놀라 손에 들고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도경수는 아심이 손에 든 부케를 보며 뜻밖이라는 듯 기뻐하며 말했다.“이건 정말 하늘의 뜻인 것 같아!”아심은 말없이 웃으며 부케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곤 소희와 군중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며 현장의 분위기를 함께 즐겼다.주변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아심 쪽으로 몰려가 그녀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소희도 멀리서 아심을 향해 웃었지만, 당장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구택이 소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먼저 할아버지께 가서 술을 올리자. 그 뒤에 만날 기회가 있을 거야.”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서 있는 아심을 한 번 더 바라보고 구택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소희는 웨딩드레스를 갈아입고 피로연 드레스를 입은 뒤 강재석 쪽으로 가서 술을 올렸다. 그곳에는 임씨 집안의 어른들과 강씨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가 소희를 아끼며 환대했다.가볍게 술 한 잔을 권한 뒤, 소희에게 충분히 쉴 시간을 주었다. 소희는 오후 내내 쉴 수 있었고, 연희와 몇몇 친구들이 함께 시간을
남궁민은 잠시 멍해졌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심명을 바라보았다. 그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찌릿해졌다.남궁민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확실히 당신은 나보다 서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심명은 남궁민의 말을 듣고 흘긋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당연하죠. 당신은 그게 좋아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남궁민은 반박하며 말했다.“왜 아니죠? 난 서희 말고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좋아해 본 적 없거든요.”심명은 그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햇빛을 향해 걸어가는 심명의 모습은 빛에 둘러싸여 희미하게 흐려져 보였다. 남궁민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따라가며 물었다.“설마 도망치려는 거예요?”심명의 귀에 달린 흑요석 귀걸이가 햇빛에 반사되어 매혹적인 광채를 뿜었다.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도망치긴 뭘 도망쳐요?”만약 도망칠 생각이었다면 오늘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남궁민은 심명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말했다.“오늘은 우리 둘 다 도망칠 생각 하지 말아요. 이 세상에서 너와 나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거잖아요. 술 마시고 취할 때까지 놀아보는 건 어때요?”심명은 남궁민의 손을 곁눈질하며 투덜거렸다.“손 치워요.”그러나 남궁민의 제안은 거절하지 않았다.“좋아요. 멀리서 여기까지 온 네 성의를 봐서라도, 서희 대신 내가 너를 잘 챙겨 주도록 하죠.”...결혼식의 하이라이트가 지나고, 커다란 케이크가 나왔다. 케이크 커팅식이 끝나고 결혼식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축하 파티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구택은 소희의 입술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닦아내며 말했다.“와이프, 신혼 축하하고 사랑해.”수많은 꽃잎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예식장의 조명은 더욱 환하게 빛났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축복과 환희로 가득했다.소희는 구택만을 바라보았다. 소희의 맑고 투명한 눈에는 세상의 그 어떤 소란도, 부귀와 영화를 쫓는 욕망도 담겨 있지
“그때, 나는 마침내 깨달았어. 네가 평안하고 행복하기만 하면, 그 이외의 어떤 의미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임구택은 소희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반지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분홍빛 다이아몬드는 그녀의 눈부신 피부 위에서 완벽하게 어우러졌고, 빛을 받아 반짝이며 찬란한 광채를 뿜어냈다.소희도 손에 든 반지를 꺼내 들었고, 구택의 손은 매끄럽고 아름다웠다.손바닥과 손가락의 비율은 완벽했고, 마치 차가운 백옥으로 조각한 듯 뚜렷한 관절선에는 부드러운 온기와 견고함이 동시에 느껴졌다.구택은 고개를 숙이고 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며 조용히 미소 짓고는 물었다.“내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면서, 왜 나를 다시 데려왔어?”구택은 그녀의 길게 드리운 속눈썹을 가만히 응시하며 천천히 답했다.“왜냐하면 또 하나를 깨달았으니까.”“뭔데?”“내가 주는 행복만이 진짜 행복이라는 거야.”소희는 반지를 끝까지 밀어 넣고 고개를 들어 구택을 바라보았다. 구택의 눈빛은 따뜻하면서도 단호했다.“우리 둘이 함께 있을 때만이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어. 그러니까 넌 도망칠 수 없고, 나도 도망칠 수 없어.”“처음 우리가 만난 순간부터 오늘 이 순간이 정해져 있었어. 네가 나와 결혼하게 될 운명 말이야.”구택은 말을 마치고 몸을 숙여 강렬한 키스로 소희의 입술을 덮자, 주변에서는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임유민은 요요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던 중,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한 번 돌아보았다.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중얼거렸다.“역시 우리 삼촌은 다르지.”요요도 뒤를 보려고 하자, 유민은 손으로 요요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어린아이는 이런 거 보면 안 돼!”요요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럼 오빠는 어른이에요?”그 말에 유민이 당황하며 대답했다.“나, 나는 반쯤 어른이야!”요요는 까만 눈을 반짝이며 더 궁금해졌다.“그럼 오빠는 머리 쪽이에요, 아니면 발 쪽이에요?”유민은 요요의 진지하고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가 차분히 설명했다.“머리가
예식장 안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고, 주례자는 차분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이제 신랑과 신부의 결혼 서약을 낭독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께서도 함께 느껴 보시고, 곁에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주례자의 목소리는 한층 더 엄숙해졌다.“임구택 군, 당신은 이 아름다운 소희 양을 아내로 맞이하시겠습니까?”“소희 양의 손을 맞잡고 백년해로하며, 그 어떤 간난신고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곁을 떠나지 않고 평생 함께하겠다고 서약하시겠습니까?”구택은 깊은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단호하고 진지하게 대답했다.“예, 서약합니다. 소희를 평생 소중히 여기고, 챙기고, 제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충실히 사랑하겠습니다.”주례자는 이번에는 소희를 향해 물었다.“소희 양, 당신은 임구택 님을 남편으로 맞이하시겠습니까?”“임구택 군과 함께 인생의 길을 나란히 걷고, 그 어떤 간난신고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곁을 떠나지 않고 평생 함께하겠다고 서약하시겠습니까?”소희는 구택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서약합니다. 조건 없이 사랑하며, 영원히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다.”구택의 눈에는 감정이 빛나고 있었고, 그의 따뜻한 마음과 온기는 오직 소희를 위해 존재했다.주례자는 미소를 지으며 선언했다.“이제 임구택 군과 소희 양이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두 사람을 위해 축복의 박수를 보내주세요!”예식장은 다시 한번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모든 하객은 이 감동적인 순간에 눈물을 글썽이며 박수를 보냈다. 그 박수 소리는 끝없이 이어졌고,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울려 퍼졌다.연희는 박수를 치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는 뜨거웠지만,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우청아 또한 눈물을 흘리며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했다.주례자는 박수 소리 속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이제 신랑과 신부께서 결혼의 영원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결혼반지를 교환하시겠습니다.”그 순간, 뒤쪽 계단에서 임유민이 요요를 안고 나타
강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소희의 손을 임구택의 손 위에 조심스럽게 얹었다. 마치 신성한 임무를 완수한 듯 그는 말했다.“행복하길 바랄게.”임구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고마워요.”주변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소희는 시언을 깊이 바라보았다.그 시선에는 어린 시절 그가 자신을 가르쳐 주고 곁에서 함께해 주었던 시간, 그리고 두터운 남매의 사랑과 가족 간의 정이 모두 담겨 있었다.시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소희를 응원했다. 마치 어린 시절 소희의 손을 잡고, 약하고 외롭던 소녀를 강하고 단단한 소희로 성장시켜 주었던 순간처럼.앞으로도 각자의 길을 걷더라도, 그들은 서로의 곁에 있을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들의 관계는 공기와 햇빛처럼 언제나 존재하며, 그들의 삶 속 깊이 자리할 것이었다.소희는 구택의 팔을 붙잡고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시언이 바로 뒤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발걸음은 더욱 단단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는 남자는 소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어떤 망설임도 없게 했다.레드카펫은 길었고, 앞으로 함께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도 길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란히 걷는다면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구택은 옆에서 소희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힘이 있었다.예식장의 한구석, 커다란 부조 기둥에 기대어 서 있던 심명이 소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심명의 시선은 소희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오늘 정말 아름답네.’소희의 모습, 그녀의 미소, 모든 것이 그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고 있었다.그때, 뒤에서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서희, 정말 예쁘네요!”심명은 눈초리를 치켜들며 뒤를 돌아보자, 남궁민이 걸어오며 그의 옆에 섰다.햇빛이 남궁민의 짙은 갈색 눈에 반사되어 깊고 매혹적인 빛을 띠고 있었다.“왜 강성에 있는 구은서를 놔두고 여기까지 왔어요?”남궁민은 이미 자신이 심명의
음악 소리에 맞춰,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아오를 때, 신랑인 임구택이 중앙 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그 순간, 거대한 아치형 정문이 열리며 정오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수천 갈래의 황금빛이 예식장 안을 가득 채운 듯했다.찬란한 크리스탈 샹들리에, 피어난 꽃들, 그리고 붉은 카펫은 그 빛에 의해 생명을 얻은 듯 더욱 생동감 있고 화려해졌다.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과하며 무지갯빛 광채를 만들어냈고, 이 환상적이고 웅장한 장면에 하객들은 숨을 멈추고 정문 중앙에 서 있는 한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소희는 시언의 팔을 잡고 붉은 카펫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예식장 안은 하객들로 가득 찼지만, 고요한 정적 속에 우아한 현악 연주만이 홀 안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다.소희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드레스는 가슴 위를 덮는 깔끔한 디자인에 어깨를 타고 내려가는 레이스로 이루어져 있었다.얇은 꽃잎 모양의 레이스가 어깨를 감싸며 은은하게 살결을 드러냈고, 그 아래로는 매끈한 쇄골과 길고 고운 목선이 돋보였다.허리선 아래부터는 화려한 자수 문양이 드레스 끝자락까지 펼쳐졌고, 풍성한 치마는 소희의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며 단순함과 정교함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소희의 머리에는 구택이 준비한 티아라가 얹혀 있었고, 티아라에 박힌 찬란한 다이아몬드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조금도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고운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긴 베일이 드레스 끝까지 내려와 천천히 레드 카펫 위를 스치며 움직였다. 소희는 그림 같은 미모와 함께 단아하면서도 청아한 기품을 자아내며 성스러워 보였다.시언은 깔끔한 흰 셔츠에 검정 조끼를 입고 있었고, 훤칠하고 듬직한 모습으로 소희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고 함께 걸어왔다.두 사람이 함께 입장하는 순간, 예식장의 조명이 한층 어두워진 것처럼 느껴질 만큼 두 사람의 존재감은 강렬했다.구택은 레드 카펫 끝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세상에 울려 퍼지는 모든 소리가 멀어진 듯, 구택의 눈에는 소희만
결혼식장이 웃음과 이야기로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주례가 결혼식 무대로 올라서자 점차 차분해졌다.결혼식장 가장 앞줄 귀빈석에는 임씨 가문과 강씨 가문의 사람들이 각각 자리했다. 시언이 입장하며 뒤쪽 하객석을 한번 훑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단번에 맨 뒷자리 가까이 앉아 있는 강아심을 찾아냈다.아심은 도도희와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자연스럽게 풀어 어깨에 늘어뜨리고 있었다.그 모습이 아심의 부드럽고 매혹적인 옆모습을 가리고 있었다. 희미한 미소를 띤 채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며 즐거워 보였다.시언은 별다른 표정 없이 시선을 거두었다.강재석이 나타나자, 결혼식장은 잠시 숨소리마저 조용해졌다. 이내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그를 화제로 삼기 시작했다.“저분이 강씨 집안의 어르신인가 봐. 정말 카리스마 넘치시네!”“옆에 있는 젊은 사람은 강재석 어르신의 손자겠지?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왜? 마음에 들어? 꿈 깨. 강씨 집안이랑 혼인을 맺으려면 임씨 가문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다고.”“현실은 안 되더라도 꿈꾸는 건 내 자유잖아? 결혼식 끝나고 가서 연락처라도 물어볼 거야.”“좋아, 한번 해봐. 강씨 집안의 도련님이 연락처를 줄지 안 줄지 보자고. 근데 얻으면 나랑 공유하는 거 알지?”“내가 얼굴에 철판 깔고 얻은 연락처를 왜 너랑 공유해? 너도 도전해 보든가!”...아심은 바로 뒤에 앉아 있던 이들의 대화를 듣고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도도희도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봤니? 강시언이 얼마나 인기 많은지.”아심은 나른하게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그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모르는 거죠.”도도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아심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 소희를 못 봤네요. 오늘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은 정말 예쁠 것 같아요!”도도희가 물었다.“소희랑 친한 사이인가?”아심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그렇게
도도희는 강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심이 왔어.”시언의 눈빛이 깊어졌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뜻을 보였다. 강재석은 그보다 훨씬 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아심양도 왔어?”도도희는 약간 놀라며 물었다.“아저씨도 아심을 아세요?”“당연히 알지. 우리 사이가 보통 사이인 줄 아니?”강재석은 의미심장하게 시언을 한 번 쓱 보고는 환한 미소로 말했다.“지금 어디 있나?”“아마 이미 예식장 안으로 들어갔을 거예요.”도도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미리 알았다면 데리고 여기로 왔을 텐데.”강재석은 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온 것만으로도 아주 좋아. 어차피 곧 볼 테니까.”도경수의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재아는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얽혀 올라왔다.‘엄마가 강아심을 알다니... 그리고 강재석과 강시언은 아심에게 훨씬 더 호의적이잖아. 그런데 엄마도 강아심과 더 가깝다니...’자시느이 엄마가 아심과 이렇게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재아는 왠지 모르게 불쾌했다.도도희는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아저씨, 예식장에 가셔야 할 시간이에요. 저는 여기서 이만 물러날게요. 아심을 찾아보려고요.”도경수는 다급한 표정을 지었지만, 강재석이 그의 마음을 눈치채고는 도도희에게 말했다.“결혼식 끝난 후에는 서두르지 말고, 우리와 시간을 좀 더 보내. 오랜만에 만났으니 제대로 얘기 나눠야지.”도도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결혼식이 끝나면 다시 찾아뵐게요.”“좋아!”강재석은 따뜻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도경수도 말했다.“내 전화번호 알지?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렴.”도도희는 알겠다고 답한 뒤, 몇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도경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강재석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그래도 드디어 도도희를 만났잖아. 그리고 직접 강씨 집안으로 돌아온다고 했으니, 좋은 소식 아닌가?”도경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우리 부녀가 어쩌다 이렇게 서먹서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