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아심은 깨어났다. 침대 옆에서 지키고 있던 승현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승현은 어젯밤부터 한숨도 자지 못해 눈가가 거무스름했고, 눈에는 걱정과 애정이 가득했다.“아직도 아파?”“조금 아파, 그래도 많이 나아졌어.” 아심의 목소리는 여전히 약했지만, 차분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어?”“별일 아니야. 의사 말로는 네가 빨리 병원에 왔기 때문에 경증이고, 합병증도 없어서 며칠 후면 퇴원할 수 있을 거래. 걱정하지 마.”아심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병색이 남은 그녀의 얼굴은 더없이 조용하고 단아해 보였다. “너는 왜 여기 있는 거야?”그러자 승현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병원 사람들이 내가 네 남자친구인 줄 알고 전화를 줬거든. 다행히 바로 달려왔지.”아심은 살짝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귀찮게 해서 미안해.”“내 여자친구가 아프면 당연히 와야지, 뭐가 귀찮겠어?” 승현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물 좀 마셔도 될까?” 아심이 묻자, 승현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직은 마실 수 없대. 많이 목말라?”“아니, 괜찮아.”그때 간호사가 문을 열고 들어와 아심의 상태를 확인하며 기쁜 얼굴로 말했다.“깨어나셨군요!”“고마워요.” 아심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우리한테 고마워할 건 없어요. 당신 남자친구한테나 고마워하세요.”“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면서 계속 지키셨거든요. 저희도 감동받았다니까요.” 간호사는 농담처럼 말하자, 아심은 승현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감정이 가득했다. 간호사가 나간 뒤, 강아심이 말했다.“난 괜찮아졌으니까, 너도 좀 쉬어.”“잠이 오질 않아. 여기서 네 곁에 있는 게 제일 마음이 편해.” 승현은 아심의 손을 꼭 잡으며 한층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내가 말한 거 네가 반대하지 않았으니, 내가 받아들인 걸로 알게!”“뭐?” 아심은 본능적으로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승현은 그 손을 놓지 않았
“고마워!”승현은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 되어 두 손으로 아심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내가 오늘 네가 내린 결정 절대 후회하게 하지 않을 거야.”아심은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제 좀 쉬지 그래? 간병인을 불러도 되니까.”“그럴 리가 있나? 이제 난 정식 남자친구인데, 어떻게 남에게 맡겨?” 승현은 웃으며 말했다.“넌 말하지 말고, 많이 쉬어. 내가 계속 여기 있을 거야. 힘들면 밖에 소파에서 잠깐 잘 테니 걱정하지 마.”아심은 몸이 너무 쇠약해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프고, 배도 아프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 고통이 마음의 공허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3일 후아심의 상태는 빠르게 호전되었다. 의사는 아심이 거의 완쾌되었으며, 조금 더 휴식을 취하면 완전히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승현은 그동안 병원에서 아심을 정성껏 돌보며 모든 간호사들의 호감을 샀다.회사의 직원들도 매일 병문안을 와서 승현이 항상 곁에 있는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이 이제 정식 커플이 된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특히 아현이 가장 기뻐하며, 승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심에게 말했다.“회사 사람들 모두 엄청 신났어요.”“무슨 일로?” 아심이 물었다.“한 달 동안 오후 간식이 보장된 거죠!” 아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자, 아심은 기가 차서 말했다.“너희가 생각하는 내 가치는 겨우 한 달 간식이에요?”“그런 건 아니죠!” 아현은 서둘러 말했다.“사실은 사장님이 드디어 행복을 찾으셔서 기쁜 거예요.”아심은 이 주제에 대해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내가 없는 동안 다들 고생했어요. 회사 일도 챙기고, 병원에도 와주고. 정말 고마워요.”회사 사람들은 아심의 병을 알고 각자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아심에게 보냈다. 비록 아심은 대부분의 음식을 아직 먹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정성에 크게 감동했다.“다들 자발적으로 한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모두가 사장님이 빨리 회복되길 바라고 있어요. 사장님은 다른
이틀 후, 아심은 퇴원했다. 승현은 아심을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미리 청소부를 불러 방을 깨끗이 정리해 두었다. 그는 가져온 꽃을 화병에 꽂으며 부드럽게 웃었다.“일단 샤워 좀 하고 와. 좀 더 가볍게 하고 나가서 저녁 먹자. 퇴원을 축하하는 의미로.”아심은 가볍게 웃었다.“퇴원도 축하할 일이야?”“퇴원뿐만 아니라 우리 관계도 이제 시작이잖아. 두 배로 기쁜 날이지!” 승현은 장난스럽게 농담을 던지자, 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잠시 기다려줘.”“알겠어.” 승현은 훈훈한 미소로 대답했다.아심이 주방으로 향하자, 승현은 거실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가 발걸음을 옮겨 발코니로 나갔다. 거기서 아심의 책상이 보였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놓여 있었다. 그는 호기심에 책을 들어 몇 장 넘겨보았다.두 사람이 이제 연인 관계가 되었으니, 승현은 아심의 삶, 취향, 생각을 더 깊이 알고 싶었다. 그래야만 아심의 일상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을 몇 장 더 읽자, 아심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준비됐어, 이제 나가자.”승현은 책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아심은 연한 파란색 면 셔츠를 입고 있었고, 화장하지 않은 얼굴에 반쯤 마른 머리를 묶었다. 무심한 차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모습은 한없이 매력적이었다.승현이 아심을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있자, 아심은 자신의 옷차림에 무언가 문제가 있나 싶어 물었다.“왜 그래? 뭔가 이상해?”“내 여자친구가 너무 예뻐서 잠깐 멍했어.” 승현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심은 여전히 두 사람 사이의 변화된 관계에 어색함을 느꼈다.“가자, 저녁 먹으러.”아심이 먼저 나서자, 승현이 뒤따랐다. 차에 타고, 승현이 물었다.“뭐 먹고 싶어?”아심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며칠 동안 병원에서 너무 밋밋한 음식만 먹었더니 지금은 뭐든 맛있어 보여.”“며칠은 여전히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야 해. 조금 더 순한 걸로 먹자.” 승현은 아심에게 주의 사항을 상기시키자, 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창
음식은 굉장했고 두 사람은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지승현은 사실 매우 말이 많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과 기분을 잘 살피는 사람이라서 어색하거나 침묵이 흐르지 않았다. 그래서 분위기가 줄곧 화기애애했다.식사를 마친 후, 두 사람은 레스토랑을 나섰다. 승현은 차를 가지러 갔고, 강아심은 레스토랑 밖에서 기다렸다.“아심!”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심은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뒤를 돌아봤으나, 살짝 굳은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 성연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옆에는 소희도 있었다.소희는 여전히 섬세하고 차가운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투명하고 고요했다. 차분한 시선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소희는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아심아.”“소희!” 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결혼한다면서, 축하해!”“고마워.” 소희가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그때 꼭 와줬으면 해.”“꼭 갈게.” 아심이 고개를 끄덕였다.“아심아!”승현이 차에서 내려 친근하고 부드럽게 아시믕ㄹ 불렀다. 다가오면서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고, 소희와 연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친구들이야?”그러자 아심이 고개를 끄덕였다.“소희, 성연희.”“연희 씨, 전에 본 적 있었죠. 또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승현은 연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희는 승현이 아심에게 외투를 걸쳐주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를 이미 깨달았다. 이전에 연희가 소희에게 말한 적이 있었고, 소희는 아심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었다.하지만 지금 직접 보니, 여전히 가슴이 조였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었지만, 그녀의 가슴 속은 마치 얼음과 눈으로 가득 찬 듯했다.특히 명절에 함께 집에서 복조리를 달며, 설날 음식과 불꽃놀이를 즐기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가슴 속에 가시가 걸린 듯 답답했다.연희 역시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승현의 따뜻한
소희는 스스로 마음이 강하다고 자부했었다. 과거에 구택을 찾는다는 신념에 의지해 다시 삶의 희망을 불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심은 어떻게 그렇게 평온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람들에게 웃어줄 수 있었을까?아심은 자신보다 더 강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심을 탓할 이유가 없었다. 왜 오빠를 포기했는지, 왜 지승현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말이다.오빠는 소희의 삶 그 자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 희망 없는 기다림은 그녀의 생명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예를 들어, 지난번 오빠가 떠났을 때 소희는 거의 생존 의지를 잃을 뻔했다. 이런 일은 단 한 번만 겪어야 할 일이지, 두 번은 있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소희는 지금 아심이 내린 결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네 말을 들으니, 나도 이해가 돼.” 연희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고개를 돌려 한숨을 쉬었다.“걱정 마. 난 여전히 아심을 친구로 대할 거야. 앞으로 다시 만나더라도, 승현 씨에게는 불편하게 대하지 않을게.”“그래.”그때 소희의 휴대폰이 울렸다. 소희가 아직 받지도 않았는데 연희가 비웃으며 말했다.“집에 30분 뒤에 도착한다고 전했으면서, 왜 또 전화해?”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자기야.”[아직 집에 안 왔어?] 구택이 불만스럽게 물었다.[연희 씨는 또 어디로 데려간 거야?]“아니야, 어디에도 가지 않았어.” 소희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길이 조금 막혀서, 곧 도착할 거야.”구택은 그제야 어조를 풀며 말했다.[먼저 씻고 있을 테니, 빨리 와.]소희는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자, 연희가 비웃었다.“내가 널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우리 먼저 안 건 나였는데, 지금은 둘이 약속을 잡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네?”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연희야, 너무 신경 쓰지 마.”연희가 툴툴거렸다.“그럼 대답해 봐. 넌 나를 더 사랑해? 아니면 임구택을 더 사랑해?”소희는 잠시 멈추었다가 차창 밖의 밤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달이 참 둥
아심은 죽은 걸까? 그렇지만 만약 아심이 죽었다면, 왜 아직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그것이 아심의 영혼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그 세계에 남아, 점점 굳어가는 아심의 육체를 지키고 떠나지 않으려 하며, 그를 계속 추적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아심은 꿈속에서 깨어나 몸서리를 쳤다. 머릿속에 맴도는 절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심은 눈을 뜨고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며 스스로를 웅크려 몸의 온도를 느껴보았다.왜일까,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도 점점 더 절망하게 되는 건....다음 날 아침, 아심은 무척 바쁘게 보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승현이 찾아왔다.그는 많은 꽃을 들고 왔고, 회사의 거의 모든 여직원에게 꽃과 디저트, 사탕 등을 나눠주었다. 여직원들이 좋아할 만한 것은 모두 준비한 셈이었다. 회사 안은 환호성과 놀라움이 끊이지 않았다.승현은 가장 특별한 꽃다발을 들고 아심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매너 있게 꽃다발을 건네며 말했다.“사귄 지 일주일째, 내가 가장 사랑하는 너의 행복을 기원해.”아심은 의자에 기대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계속 이러면, 우리 회사에 오지 못하게 할 거야.”그러자 승현은 억울한 듯 웃으며 물었다.“왜? 내가 올 때마다 회사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아심은 자리에서 일어섰다.“우선 밥 먹으러 가자.”두 사람은 회사 맞은편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회사 직원들도 몇 명 와서 승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에 아심은 웃으며 말했다.“이러다간 네가 우리 회사를 인수하겠어.”승현은 진심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난 네 회사를 원하지 않아. 다만 모든 사람의 호감을 네 한 사람의 호감으로 바꾸고 싶을 뿐이야.”아심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진지하게 물었다.“만약 네가 모든 걸 쏟아붓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않겠어?”“당연히 그럴 리 없지!” 승현은 단호하게 말했다.“우린 이미 사귀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아심은 다시
4월 초, 임씨 집안에서 강씨 집안에 혼수품을 보내기 위해 운성으로 향했다. 강재석은 사람들을 시켜 서원의 객실을 정리하고, 임씨 집안의 혼수품을 보관하도록 준비했다.임시호와 노정순은 직접 강씨 집안으로 향했고, 임지언과 우정숙도 시간을 미리 조정해 함께 왔다. 임구택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결혼식에 관한 모든 일을 그가 직접 챙기고 있었다.임씨 집안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운성의 언론은 총출동했고, 심지어 언론사에서도 사람들이 강씨 집안에 모였다. 강재석은 이번에는 조용히 있지 않고, 보안 업무만 철저히 하도록 지시했다.떠들썩한 하루였고, 운성 전체가 임씨 집안과 강씨 집안의 결혼식을 이야기했다. 앞마당은 매우 북적거렸고, 소희는 뒷마당에서 반려동물인 하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구택이 다가와 솔방울을 주워 껍질을 벗겨 소희에게 건네며 물었다.“힘들어?”“아니.” 소희는 고개를 저으며 살짝 미소 지었다.“사람이 너무 많아서 잠시 쉬러 왔어. 아까 어머님한테 말했어.”“말하지 않아도 네 마음을 잘 알아.” 구택은 뒤에서 소희의 허리를 감싸 안고, 턱을 그녀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요즘은 조금 시끄러울 테니까, 조금만 참아줘.”소희는 구택의 부드러운 말투에 마음이 느긋해졌다.“대부분 당신이 다 막아주잖아, 알아. 괜찮아, 나도 그렇게 성급한 편은 아니야.”구택은 미소를 지으며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만약 조금 전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소희가 불편한 듯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 말을 믿었을지도 모른다.소희가 뒤돌아 물었다.“오빠는 돌아올 수 있을까?”“작은 문제가 좀 있어. 하지만 우리가 결혼하는데, 어떻게 형님이 결혼식에 없을 수 있겠어. 걱정하지 마, 꼭 돌아올 거야.”소희는 맑은 눈빛을 살짝 감았다.“사실 지금은 오히려 오빠가 돌아오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예전에는 기대했지만, 지금은 아심과 승현이 사귀고 있기에, 강시언이 돌아와서 실망하거나 상처받을까 두려웠다. 시언은 아심을 좋아한다는 것
진언은 직접 흥천으로 가서 H국과 휴전 협정을 체결했다. 이 일로 모든 갈등이 완전히 일단락되었고, 백협은 향후 50년간 국제 용병계에서 그 누구도 위협할 수 없는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진언이 흥천에서 돌아왔을 때는 백협에 아침이 막 밝아올 무렵이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자신을 맞이하러 온 시경에게 물었다.“준비됐나?”시경은 답했다.“네, 언제든 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한숨도 못 주무셨는데, 잠시라도 쉬었다가 가시는 게 어떱니까?”진언은 외투를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시야가 오후에 올 거야. 그가 왜 오는지 모를 줄 알아?”시경은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언님이 이렇게 서두르는 건 시야가 일을 벌일까 봐 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C국에 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진언은 총을 챙기던 손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 시경을 바라보자, 시경은 즉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제가 지나쳤습니다.”진언은 다시 옷을 입으며 태연히 말했다.“네 말이 맞아. 사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가는 거야.”시경은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서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난 간다. 시야가 오면 당장 쫓아내. 괜히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진언은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하지만 별일 없으면 괜히 날 부르지 마.”시경도 그를 따라나서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설령 그들이 일부러 일을 만들더라도, 진언이 가 있는 곳에서 모든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방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며칠 전 진언이 돌아왔을 때 보였던 그 폭발하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어쨌든 30대 중반의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진언은 뭔가 느낌이 온 듯 갑자기 멈춰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시경을 쳐다보았다. 이에 시경은 즉시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행운을 빕니다.”진언은 살짝 웃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운성헬리콥터가 개인
전화를 받은 양재아는 먼저 권수영의 이야기를 들었다. 권수영은 다소 억울한 어조로 말했다.“재아양, 우리 수철이가 잠깐 장난 좀 친 거예요. 그 어린 여자아이랑 그냥 놀다 그런 거지, 걔도 아직 어린애잖아요. 그 애한테 뭘 어쩌겠어요?”“게다가 우리 수철이도 이미 혼이 났어요. 수철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알 거예요.”“오늘이 임씨 집안의 경사스러운 날이라 내가 참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 경찰에 신고했을 거라고요!”“그런데 지금 김화연 여사님이 책임을 묻겠다고 하니, 재아 양이 나서서 부탁 좀 해주면 안 될까?”“오늘은 임씨 집안 결혼식이고, 신부도 재아 양 외할아버지의 제자잖아요. 재아 양이 한마디만 해주면 여사님도 체면을 봐서 넘어가 줄 거예요.”권수영은 최대한 간곡하게 부탁하자, 재아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실 재아는 지씨 집안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들과 그렇게 깊은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이 도움을 준다면 지씨 집안도 체면을 세워줄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잠시 후, 재아는 결정을 내렸다.[알겠어요. 제가 여사님께 가서 얘기해 볼게요. 그냥 애들이 장난친 일이라고 하면 그렇게 크게 문제 삼지 않으실 거예요.]“정말 고마워요, 재아 양. 정말로 우리 지씨 집안의 은인이에요!”권수영은 과장된 어조로 감사의 말을 전하자, 재아는 말했다.[어디 계신가요? 수철이를 데리고 오세요. 제가 함께 여사님께 가서 말씀드릴게요.]권수영은 재아의 의도를 곧바로 이해하고 말했다.“지금 데리고 갈게요.”재아와 권수영이 만났을 때, 재아는 지수철의 부은 얼굴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너무 심하게 맞았잖아요!”“고작 어린애랑 장난 좀 쳤다고 이렇게까지 때리다니요. 참 권력이 대단한 집안이네요.”권수영은 주위를 살피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임씨 집안과 관련된 일이기에 재아는 특별한 의견을 내지 않았다.“제가 여사님께서 어디 계신지
임유민은 두 번째 총알을 발사했다. 이번에는 지수철의 입술에 맞았다. 그의 입술은 순식간에 부어올라 더는 강한 척할 수도 없었다. 유민이 세 번째 발사 준비를 하자, 지수철은 입안에서 흐릿하게 소리쳤다.“말할게! 말할게!”유민은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건네며 말했다.“전화해요.”지수철은 전화를 걸어 자신이 이미 요요의 할머니를 따돌렸으니, 세 번째 친구가 빨리 오라고 했다. 이에 5분도 지나지 않아, 다른 남자아이가 도착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와 나무에 묶인 지수철을 보자, 그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도망치려 했다.그러나 유민은 몇 걸음에 그를 따라잡아 꽃밭 가장자리를 발판 삼아 공중에서 회전하며 발길질을 날렸다. 이에 그 자리에서 날아가 땅에 내동댕이쳐졌다.결국, 세 명 모두 유민에게 나무에 묶였고, 그의 사격 연습 표적이 되었다....한편, 권수영은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상황을 알게 되었다. 김화연은 당연히 요요를 괴롭힌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았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세 아이가 어느 집 자식인지 알아냈다.김화연은 한적한 거실에 앉아 놀고 있는 요요를 지켜보며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집안 사람들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임씨 집안의 경사스러운 날이니 일이 커져 분위기를 망치는 건 바라지 않아요. 당장 이 세 집에 연락해서 애들을 데리고 저택에서 나가라고 전하세요!”김화연의 지시는 즉시 실행되었고 김화연은 다시 가사도우미들에게 당부했다.“이 일은 당분간 아천이랑 청아한테 알리지 마세요. 결혼식이 끝나기 전까지 기분을 망칠 필요는 없으니까요.”이에 다들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따랐다....권수영은 곧 전화를 받았다. 전화 내용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수철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바로 그를 찾아 나섰다. 권수영은 수철을 발견한 순간 비틀거리며 땅에 넘어질 뻔했다,수철과 다른 두 소년은 나무에 묶여 있었고, 얼굴은 멍투성이에 입에는 무
정원은 나무와 꽃들로 빽빽해, 두 소년이 요요를 안고 달아난 뒤 금세 그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김화연의 얼굴은 급격히 굳어졌고,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틈도 없이 몇몇 부인들과 함께 서둘러 그들을 뒤쫓았다.지수철은 요요를 안고 꽃밭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오히려 흥분한 얼굴로 더 빨리 뛰었다. 수철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듯한 빛이 가득했고,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그 순간, 수철의 무릎에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두 다리가 꺾이며 그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요요 역시 그와 함께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지수철은 무릎을 부여잡고 뒹굴더니 막 욕을 퍼붓기 시작하려는 찰나, 그의 동료가 누군가의 주먹에 맞아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 그의 얼굴을 향해 강력한 발길질이 날아왔다.코뼈가 부러지는 충격에 수철은 고막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과 함께 수철의 가슴팍에 또 한 차례 발길질이 들어갔다. 이번엔 고통이 극심해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임유민은 땅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을 잠시 스쳐본 뒤, 요요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기압총을 내려놓고 요요를 일으켜 세웠다. 요요가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그는 일부러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오빠가 있잖아,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요는 겁에 질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유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요요는 유민의 목을 꽉 끌어안고 작은 몸을 떨었다.“괜찮아, 괜찮아.”유민은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도 약간의 경직된 기색이 떠올랐다.“요요!”멀리서 김화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 있었다.“할머니!”요요는 크게 외쳤다.곧 김화연이 나타났고, 그녀의 얼굴은 창백한 빛을 띠었다. 김화연은 빠르게 걸어와 요요를 품에 안았다.“할머니, 유민 오빠가 나쁜 사람들을 혼내줬어요!”요요는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김화연은
강시언은 무언가 느낀 듯 강아심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과 맞닿은 아심의 거의 벌거벗은 듯한 시선에, 그는 미세하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약간 냉소적인 표정을 드러냈다.아심은 고개를 돌리며, 귀 끝이 옅은 홍조로 물들었다. 마치 블러셔가 뺨에서부터 번진 것 같았다. 그렇다, 술에 취했음이 분명했다.눈빛이 교차한 후, 분위기는 다시 조용해졌다. 아심은 넓은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햇살의 따스함과 결혼식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즐겼다. 그러다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낯선 환경에서, 바깥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음 속에서도 아심은 잠들어버렸다. 밤에는 아무리 넓고 편안한 침대에서도 잠들기 힘들고, 종종 불면증이나 악몽에 시달리던 그녀가 지금은 매우 안정적으로 잠들어 있었다.시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쿠션을 가져왔다. 시언은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받쳐 머리를 들어 올리고, 쿠션을 아심의 머리 아래에 받쳐주었다.자수 무늬가 새겨진 면을 일부러 아래쪽으로 돌려놓으며 배려 깊은 모습을 보였다. 그의 긴 손가락이 아심의 부드럽고 섬세한 얼굴을 스쳤다. 그 순간 시언의 각진 얇은 입술에서 거의 들리지 않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 시언은 휴대폰을 무음 상태로 설정했다. 가끔 전화가 와도, 그는 잠깐 확인한 뒤 바로 끊고 다시 술을 즐겼다.시언에게 아부와 아첨이 넘치는 술자리들은 피로감만 줄 뿐이었다. 그랬기에 이런 조용함이 그에게는 오히려 더 큰 안식을 주었다....권수영은 양재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이 때문에 지수철은 완전히 신경 밖으로 밀려나 있었고, 게다가 이곳은 임씨 집안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철저히 경비되고 있었다. 그랬기에, 수철은 그저 혼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곧 두 명의 같은 학교 친구들을 만났다.수철은 A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동급생들 역시 집안이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랬기에 이런 결혼식장에서 만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저택에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놀이
강아심은 강시언 맞은편 의자에 앉아 부드럽게 웃으며 그를 한 번 바라봤다. 아심은 테이블 위에 있던 술잔을 들고 머리를 살짝 젖혀 술을 한 모금에 들이켰다.시언은 아심이 고개를 젖히며 드러난 가느다란 목선을 바라보았다. 삼킬 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목선이 더욱 선명해졌다.이에 그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강아심, 넌 그저 약간의 잔재주 말고는 다른 건 할 줄 모르지?”아심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더 큰 처벌을 피하려고 미리 그를 자극하며 시언의 입을 막으려는 수작을 부리는 게 분명했다.아심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가는 술기운에 촉촉해졌고, 붉어진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그런 순진한 표정은 아심 자신조차 깨닫지 못한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시언의 눈빛이 깊어지며 목소리는 더욱 낮고 묵직해졌다.“네가 매번 처벌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네 잔재주 때문이 아니야. 그건 내가 네게 관대했기 때문이지, 이해했어?”아심의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술기운은 더욱 올라와 눈동자는 한층 더 촉촉해졌다.시언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권수영과 양재아가 웃으며 멀어지는 모습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는 다시 아심을 보며, 다소 조롱 섞인 어조로 물었다.“네 남자친구 어머니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던데?”아심은 입가에 묻은 술 자국을 가볍게 닦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진정한 사랑은 여러 가지 시련을 겪어야죠.”그 말에 시언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변했고, 웃음에서도 냉기가 느껴질 정도였다.“진정한 사랑? 겨우 한 잔 마시고 취한 거야?”아심은 그의 말에 되받아칠 말을 찾으려 했지만, 어딘가 찔리는 마음 때문인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결국 아심은 침묵을 유지했다. 침묵은 때로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법이었다.시언은 아심의 옆모습을 지켜보며 무언가를 읽으려는 듯 바라봤다. 그러다 미소를 띠며 물었다.“내가 도와줄까?”아심은 놀란 듯 시언을 돌아보며 물었다.“뭘 도와준다는 건데요?”“네가 버틸
강아심은 고개를 끄덕이고 양재아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권수영은 아심이 떠나자 안도한 듯 숨을 내쉬며 지승현에게 말했다.“너는 재아 씨랑 좀 더 이야기를 나눠봐. 젊은 사람들끼리 통하는 이야기가 더 많을 테니까.”승현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거절했다.“저는 재아 양과 잘 모르는 사이예요. 특별히 나눌 얘기도 없고요. 엄마 친구분이시니까 엄마가 알아서 모시세요.”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재아를 향해 간단히 묵례하고 자리를 떴다.재아는 표정을 잃지 않았지만, 손을 꼭 움켜쥐었다. 재아가 승현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건 재아의 마음일 뿐이었지만, 승현이 재아를 무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권수영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속으로는 승현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생각했다.‘승현이가 저 모양이라니! 만약 수철이 결혼할 나이가 됐으면 그에게 재아를 소개했을 텐데!’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권수영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승현이는 원래 좀 부끄럼이 많아서 그래요. 여자 앞에만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잘 못해요.”“게다가 평소엔 일에 치여서 여자들을 만날 시간도 없거든요.”재아는 냉소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런데 보니까 승현 씨는 아심 씨와 대화는 잘하던데요.”권수영은 당황했지만 재빨리 웃으며 말을 돌렸다.“강아심 씨는 공공 관계 일을 하잖아요. 그러니 이 사람 저 사람 모두와 친한 거죠.”“하지만 재아 씨는 진짜 명문가의 아가씨에다가 품위 있고 아름다우니 비교가 되겠어요?”권수영의 말에 재아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사람들은 강아심 같은 사람을 더 좋아하더라고요.”권수영은 속셈이 담긴 태도로 재아의 심리를 읽으며 대답했다.“그건 그냥 재미로 그러는 거예요. 그런 여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남자가 얼마나 있겠어요?”재아는 가볍게 웃으며 대화를 다른 주제로 돌렸다.“지아윤은 안 왔나요?”“왔죠. 친구들이랑 놀고 있을 거예요. 내가 전화해서 불러볼게요.”권수영은 곧장 대답하며
권수영은 의자에 앉아 있는 강아심을 일부러 무시한 채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양재아 씨, 여기는 내 아들 지승현이예요. 경성대 졸업생이고, 졸업 후 집안 사업을 도와주고 있죠. 지금 우리 집안은 승현이 혼자 다 책임지고 있어요!”권수영은 아들을 한껏 칭찬한 뒤, 다시 승현에게 말했다.“여기는 도재아 양, 국화 대가인 도경수 선생님의 손녀야. 외모도 빼어나지만 재능도 대단하단다!”승현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도재아 씨, 반가워요.”재아도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지승현 씨, 반가워요.”사실 재아는 권수영에게서 여러 차례 연락을 받았다. 세 번이나 전화로 만남을 요청하길래, 받은 선물도 많았고 관계를 틀고 싶지는 않아 마지못해 만나기로 했다.그녀는 권수영과 이야기를 나누며 꽃밭으로 안내받았고, 승현을 보자마자 권수영의 의도를 눈치챘다.승현은 깔끔하고 점잖은 인상이었고, 예전 남자친구인 임예현과 닮은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언과 비교하면 그 격차는 상당히 컸다.그래서 재아는 자신의 태도를 차분하고 품위 있게 유지하면서도, 적당히 거리감을 두는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다.아심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승현에게 말했다.“승현아,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하자. 나는 먼저 가볼게.”“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어!”승현은 다급히 그녀를 막아섰으나 강아심은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시계를 흘낏 보았다. 이미 2분이 지나 있었다.권수영은 얄미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아니, 이게 누구야? 강아심 씨 아니신가. 이제 공공 관계 사업까지 린 씨 결혼식장에 진출한 건가?”“어머니, 그런 말씀은 삼가세요.”승현이 얼굴을 굳히며 강하게 말렸다.“아심 씨는 연희 씨의 친구이자, 신부 소희 씨와도 친한 사이예요.”이때 재아가 입을 열었다.“아심 씨, 저를 못 알아보겠어요?”재아는 승현이 아심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한 회사 개업식에서 아심이 어려움을 겪던 중, 승현이 그녀
“승현아.”강아심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야?”“먼저 뭐라도 먹어봐.”승현은 케이크를 그녀 앞에 밀어놓으며 말했다.“점심은 아직 못 먹었을 것 같은데.”아심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조금 전에 뭔가 먹어서 별로 배가 고프진 않아.”지승현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오늘 만난 이유는 할머니의 유산 문제 때문이야. 할머니 유언장에 따르면, 돌아가신 지 한 달 뒤에 유산을 상속해야 한다고 했어.”“할머니의 뜻에 따라 네가 상속받을 부분을 꼭 받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진심이야.”아심이 상속을 포기할 경우, 법정 상속에 따라 유산은 승현의 아버지와 큰아버지에게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승현은 그들의 성향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유산을 받게 되면 즉시 팔아치우고, 자금을 회수할 게 뻔했다.승현은 그런 방식으로 할머니의 유품이 처분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우려를 솔직히 전했다.“할머니의 유품이 엉뚱한 사람 손에 넘어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그래서 꼭 네가 받아줬으면 해.”아심은 잠시 망설이며 말했다.“할머니께서 나에게 유품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함께할 거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야.”“하지만 지금은 이미 헤어진 상태에서 제가 그걸 받는 건 할머니의 뜻을 거스르는 일일지도 몰라.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승현은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며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봤다.“할머니는 널 진심으로 좋아하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도 말씀하셨어. 언젠가 당신이 나를 떠날 수도 있으니 절대 억지로 붙잡지 말라고.”“그렇게 모든 걸 알고 계시면서도 유품을 당신에게 남기셨잖아. 그러니 전혀 부담 가질 필요 없어.”...파티장 2층.강시언은 프랑스풍의 큰 창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의 깊은 눈은 정원에서 대화 중인 두 사람을 담담히 응시하고 있었다.얇은 입술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자 그의 표정은 연기로 흐릿해졌지만, 눈빛만큼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강아심이 거실로 들어오자, 소희와 가볍게 포옹하며 부드럽게 웃었다.“결혼 축하해. 정말 완벽한 결혼식이었어. 모든 사람이 감동했어!”“고마워!” 소희도 따뜻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심은 한발 물러서서 소희에게 소개했다.“여기는 도도희 이모야!”소희는 눈앞의 여성을 보고 순간 멍해지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혹시 스승님의 딸, 도도희님이세요?”도도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나도 소희 씨 이름을 들어봤어. 우리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제자라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니 아쉬웠어요.”소희는 자신의 결혼식에 도도희가 찾아올 줄 몰랐기에 마음이 벅차올랐다.“스승님도 오신 걸 알고 계세요?”양재아의 일로 스승님과 도도희 사이의 일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소희는, 스승님이 딸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도도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우리는 이미 만났어요.”“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소희도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도도희는 부드럽게 물었다.“듣기로 양재아를 삼각주에서 찾아내 데려온 게 소희 씨라던데, 내 친딸이든 아니든 우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소희는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할 것까지는 없어요. 다만, 두 분께 헛된 기대를 드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었어요.”도도희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런 일은 수없이 겪어봤거든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도도희의 담담한 태도에서 그녀가 왜 지금까지 친자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 소희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도도희는 처음 만난 소희에게서 놀라움을 느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고요하고 담백한 성품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투명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 면모가 아심과도 닮아 자연스레 호감을 느끼게 했다.도도희는 한층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운성에서 산간 지역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틀 후면 일이 끝나니, 강성으로 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