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임구택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부드럽게 각진 구택의 턱에 입을 맞추고는 나긋한 목소리로 구택의 귀에 속삭였다.“이 정도 상처 따위로 나를 막을 순 없어.”이 말에 구택의 머리가 띵하고 울렸고 이내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구택은 손을 들어 소희의 뒤통수를 받치고는 깊은 키스를 했다....소희의 상처는 이틀 동안 치료받았고, 구택의 세심한 간호 덕분에 상처가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주말이 되자, 구택은 소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고 노정순은 이미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소희를 위해 쇼핑한 물건들을 전달하게 했는데 대부분이 옷과 액세서리였다.구택은 옆에서 지켜보다가 한 개량한복을 들어 올리며 웃으며 말했다. “엄마, 이건 정말 소희를 위한 거 맞아요?”노정순은 구택의 손을 치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지금 이런 스타일이 유행인걸. 소희 몸에 딱 맞을 거야!”그러자 구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딸 바라기라는 거 알아요. 임유진이 엄마 취향을 안 따르니까, 소희한테만 그러시잖아요.”노정순은 화를 내며 말했다. “뭐라고? 소희는 우리 임씨 집안의 사람이지, 너 혼자의 것이 아니야!”이에 구택은 웃으며 말했다.“소희는 내가 데려온 거예요!”“헛소리하지 마, 소희는 유진이 데려온 거잖아!” 노정순은 콧방귀를 뀌자 구택은 할 말을 잃었고 소희는 두 사람이 정말로 싸울까 봐 걱정되어 구택에게 말했다.“당신 아버님이랑 할 말 있지 않았어? 가봐, 나는 어머니랑 얘기하고 있을 테니까.”소희가 자신의 편을 들자 노정순은 득의양양해서 구택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그리고 구택은 소희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시어머니를 만나서 고생이 많네!”그러자 노정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분노를 표출하려 했고 소희는 웃음을 참으며 구택을 살짝 밀쳐냈다. 그리고 노정순은 소희를 붙잡아 옷방으로 끌고 갔다. “구택의 말은 듣지 마, 우리 개량한복을 입어볼까?” “저, 수업 가야 해요!” “개량한복
소희는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이렇게 빨리 끝났어?” “아니, 네가 우리 엄마 손에 당할까 봐 내려와 봤어!” 임구택은 두 걸음 내려와 소희 앞에 서고는 위아래로 소희를 훑어보며 말했다. “우리 소희 정말 불가사의한 능력이 있어!” 노정순은 아직도 아래층에 있었기에 소희는 얼굴이 붉어져 몸을 돌리고는 위로 걸어갔다. “나, 수업하러 갈게!” 방에 들어오자 임유민은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소희를 보고는 거의 핸드폰을 던질 뻔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갑자기 뭐예요?” 이에 소희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못생겼어?” “괜찮아요!” 유민의 의미심장한 표정에 눈살을 찌푸렸다.“그냥 좀 이상해요! 이게 우리 할머니가 사준 건가요?” 소희는 가방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유민은 소희를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해달라고 하는 걸 다 해줄 필요 없어요. 아니면 점점 심해질 거고 그때가 되면 개량한복은 고사하고 더 이상한 옷들을 입힐 거예요.”“얼마 전에는 중국 전통 복장에 관심이 있어 보이시던데 조심해요.” 소희는 놀라며 말했다. “그렇게 심하지는 않을 거야!” “우리 할머니는 상상 그 이상일 거예요!” 유민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숙모라면 뭐든 오케이 하는 삼촌이 있으니까 무리한 요구를 거절해도 될 거예요.”소희는 그 말에 공감하며 끄덕였다. “그래, 조언 고마워.” “아니에요, 지난번에 삼촌을 설득해서 학부모 회의에 가게 한 일에 대해 아직 감사 인사도 못 했는데요.” 소희는 교과서를 펼치며 무심코 물었다. “학부모 회의는 어땠어?” “괜찮았어요, 평소보다 분위기가 좀 더 엄숙했죠!” 유민은 구택이 거기 앉아 있을 때 모든 사람들, 심지어 선생님도 긴장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번에는 숙모가 대신 가줘요. 삼촌이 거기 앉으면 우리 선생님이 뭐라고 해야 할지 잊어버리더라고요. 그 모습에 보는
소희는 무력하게 말했다. “네 삼촌도 항복했어!”임유진은 고개를 들고 크게 웃으며 일어나 소희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정말 잘 어울리네, 삼촌이 이번에 항복한 이유를 알 것 같아!”소희는 유진의 책상 한쪽 구석에 놓인 남성용 면도기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임유민이 네가 요즘 좀 이상하다고 했는데 사랑에 빠진 거야?”임유진은 눈을 피하며 미소 지었다. “이상하다니, 그저 유민이 걔가 망상을 좋아할 뿐이야! 사랑에 빠지면 너희에게 말할게.”“아직도 서인의 샤부샤부 가게에서 일해?”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번 주는 가지 못했어, 너무 바빴거든!”“서인은 어때?”유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서인은, 여전히 그대로야!”소희의 핸드폰이 진동해서 잠깐 봤는데, 정말 시간도 참 딱 좋게, 바로 서인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잠깐 가게에 들를 수 있어?]소희는 눈썹을 한 번 꿈틀하고는 답했다.[그래.] 소희가 메시지를 보낸 후, 웃으며 말했다. “넌 일해, 나는 구택 씨를 찾으러 2층에 갈게!”“응, 좋아!” 유진은 귀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희가 돌아서서 나가자, 유진의 웃음은 서서히 사라지고, 책상에 기대어 쓸쓸함을 감추려 애썼다.소희는 3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방에는 아무도 없어서 소희는 안으로 들어가 창가까지 걸어갔다. 정원의 잔디밭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자 소희는 구택인 줄 알고 자세히 보려고 했다. 그러나 구택이 갑자기 뒤에서 소희를 껴안고, 가녀린 허리를 꽉 안은 채 볼에 입을 맞추었다.소희는 약간 고개를 들며 말했다. “자기야?”“응?” 구택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소희는 구택의 품에서 돌아서자, 구택은 소희의 뒤쪽 비녀를 빼내며 검은 머리칼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구택의 눈동자는 더욱 깊어졌고 소희에게 더욱 강렬한 키스를 퍼부었다.소희는 유리창에 기대어 소곤거렸다. “점심엔 여기 있지 않을 거야, 서인이 나를 찾고 있어.”구택은 소희와 키스하며
“내일 일찍 와, 나머지 옷들 피팅해 보게. 오후에는 네 사이즈에 맞는 옷을 몇 벌 더 가져오도록 할게.” 노정순이 기뻐하며 말하자 내일 휴가를 내고 싶었던 소희는 살짝 당황했다. 그러자 임구택이 소희의 손을 잡고 다소 무력하게 말했다. “엄마, 임유진한테 옷을 맞춰보라고 하세요. 계속 이러시면 소희가 정말 두려워서 못 올 거예요!”“안 맞춰도 돼. 소희가 가져갈 거니까.” 노정순이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어차피 본인이 사준 옷을 소희가 입기만 하면 됐다. 몇몇이 웃으며 이야기할 때, 임시호가 위층에서 내려오며 인사했다. “소희야!”“아버님!” 소희가 돌아보며 웃었다.임시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소희는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소희는 구택의 차를 몰고 바로 샤부샤부 가게로 향했다.그 시간 샤부샤부 가게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득 찬 방 안은 소란스럽고 시끄러웠으며,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소희 씨!” 오현빈이 소희를 보고 열정적으로 달려와 인사했다.“서인 사장님 계신가요?” “뒤쪽 주방에서 도와주고 계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까요?” 현빈이 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바쁘시니까요. 저 혼자 갈게요!” 소희는 홀을 지나서 뒤쪽 주방으로 향했는데 주방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문이 소희를 보고 활짝 웃었다. “소희 씨, 오랜만이에요!”“오빠!” 소희가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도와드릴 게 있나요?”서인이 손을 털며 천천히 다가왔다. “아뇨, 올라갈 것 다 올라갔으니까 이제 뒷마당으로 가요.”두 사람은 뒷마당으로 향했다. 뒷마당의 귤나무는 잎이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고, 벽에 가득했던 장미들도 이미 시들어 버린것이 쓸쓸한 풍경이었다.서인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소희야, 식사는 했어?”“아직.” “음식 두 가지 준비해 줘.”서인의 주문에 이문이 돌아서 주방으로 달려갔다.“알았어요, 바로 갈게요.” 이문이 돌아서 주방으로 달려갔다.“앉아요.” 서인이 나무 의자를 가리
서인은 소희를 차갑게 응시했고 표정은 알 수 없는 냉정함으로 가득 찼다.“우리가 처음 어떻게 벗어났는지, 기억 안 나?” 소희가 차갑게 말을 꺼냈다. “우리의 현재는 백양들이 목숨을 바꿔준 거야. 근데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좋아, 마음대로 해!”소희는 말을 마치고 곧장 걸어갔다.그러자 서인의 얼굴에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갔고 다리를 들어 탁자를 향해 찼다. 50 킬로그램의 견고한 목제 탁자가 서인의 발에 의해 넘어졌고, 그 위의 컵과 접시는 모두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이문은 소리를 듣고 달려왔는데 서인은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서인의 얼굴은 창백하고 고통스러운 듯했고, 팔걸이에 손을 얹은 채 손끝에서는 연기가 나는 담배가 희미하게 타고 있었다....소희가 돌아갈 때, 차는 마치 날아갈 듯이 빠르게 달렸다. 소희는 청원으로 직행해 오동 거리 옆에 차를 세우고, 옆의 목조 의자에 길게 앉아,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이미 초겨울이었다. 눈을 돌리면, 전체 청원의 산은 황량함이 아니라 오히려 색색의 아름다움이 더해져 가히 황홀하였다. 푸른 소나무 사이로 단풍잎의 빨강이 섞여, 숲이 채색된 듯, 구불구불하게 이어졌다. 오직 오동 거리에서만, 바람이 조금 더 차갑게 느껴졌고, 낙엽이 화려하게 휘날리며, 찬 바람이 한 층 또 한 층을 쓸어내렸다.이때 소희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소희는 전화를 받고 보니, 할아버지가 보낸 영상 통화였다. 소희는 통화를 받고는 미소를 띠며 강재석을 불렀다. “할아버지!”강재석은 흔들의자에 앉아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소희 뒤의 풍경을 본 그는 잠시 놀랐다. “너 지금 어디니?”소희는 휴대폰을 들어 풍경을 보여주며 말했다. “청원의 산길이요.”“그곳에 살지 않는다면서 왜 거기에 갔어?” 강재석은 웃으며 묻자 소희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임구택이 오라고 해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강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구택이 양모 한 세트를 보내왔어, 고맙
성연희의 결혼식 열흘 전, 소희와 임구택을 포함한 이들의 친구들을 넘버 나인으로 초대하여 파티를 열었다.강성에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을 초대했다.저녁때, 구택이 차를 몰고 소희를 넘버 나인으로 데리러 갔다. 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진 후였고, 거리엔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지만 바람은 다소 쌀쌀했기에 구택은 코트를 활짝 열고 소희를 안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프라이빗 룸에 들어서자, 장시원, 장명양, 조백림, 오진수 등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노명성을 중심으로 웃으며 술을 권하고 있었다. 그리고 옆방에서는 성연희, 우청아, 간미연이 요요를 달래고 있었다.임유민과 임유진도 왔었고, 방안은 사람들로 붐비며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소희와 구택이 들어서자 모두가 몰려들며 백림이 웃으며 말했다.“둘 다 늦으셨네, 어떻게 벌을 줄까?”구택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벌주지, 몇 잔을 마셔야 하지? 시원아, 네가 나 대신 마셔줘!”이에 시원은 놀라며 말했다.“왜 내가 대신 벌을 받아야 하지?”구택은 느긋하게 말했다.“누가 내 은혜를 평생 기억하겠다고 했지? 어떻게 기억할 건데? 입으로 기억할 거야?”그러자 시원은 ‘픽' 하고 웃으며 말했다.“나는 소희의 은혜를 기억하는 건데!”소희는 구택의 품에 안기며 시원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의중을 전달하는 소희에 시원은 망설임 없이 뒤돌아서며 흔쾌히 물었다.“말해봐, 몇 잔이야?”소희는 남자들이 장난치는 걸 잠시 구경한 후, 연희를 찾아갔고 연희는 소희를 보고는 일어나 맞이했다.“서인도 초대했는데, 아직 안 왔네?”유진이 공을 가지고 요요랑 놀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웃음이 사라지며 고개를 들었다.“서인은 이런 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아마 안 올 거야.”연희는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나한테 오겠다고 약속했어!”연희가 말을 마치자마자 문이 열리고, 서인이 들어섰다. 유진은 오랜만에 보는 서인의 모습에 불안함을 느꼈고, 손에 든 공이 바닥으
성연희의 옆자리에 앉은 유정에게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왔어?”유정의 표정에는 다소 무심함이 엿보였다. “연희가 전화해서 왔죠.”조백림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아, 서로 아는 사이였구나!”유정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소희 덕분에 알게 되었지.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백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했다. “파혼이 네 아이디어였다면서, 왜 그런 거야?”유정은 입꼬리를 올리며 담백하게 웃었다. “그냥 재미없을 것 같아서.”“음?”백림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썹을 추켜세우자 유정은 계속해서 말했다. “처음에 너랑 약혼했을 때는, 사실 전 남자친구에게 배신당한 후 사랑에 대해 절망하고 있을 때였거든.”“그래서 집안에서 정한 혼담에 응했던 거지.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이건 정말 내가 원하던 게 아니야.”유정은 백림을 진심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직 사랑을 향한 기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거야, 하찮은 남자 때문에 서둘러 결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백림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랑 함께하는 사랑은 불가능할까?”유정은 눈썹을 올리며 반문했다. “당신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유정은 다소 미안한 듯 말을 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제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 그래서 이제라도 파혼하려고 하는 거고.”“그게 당신한테 나쁜 영향을 끼쳤다면 사과할게.”백림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웃었다. “괜찮아, 나 같은 사람이 명예가 훼손될지 걱정할 것 같아?”유정은 와인잔을 들어 백림과 건배했다. “당신이 빨리 적합한 인물을 찾기를 바랄게. 책임은 내가 질 거고 우리 집안에도 내가 설명할 거고.”유정은 이미 가족에게 파혼을 언급했고, 유정의 부모는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조씨 집안도 소식을 듣고 백림에게 유정이 파혼을 하려는 이유를 물어보려고 했었다. 왜냐하면 두 집안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한편, 조백림은 연이어 두 잔의 와인을 마셨고, 장시원은 백림의 옆에 앉아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유정과의 대화가 틀어졌어?”백림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아니, 그냥 기쁘기만 해.”시원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백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파혼하는데 기쁘다고?” “물론이지, 자유를 되찾았으니까!” 백림은 시원을 힐끗 보며 말했다. “너희들처럼 사랑 때문에 죽을 듯이 사는 걸 보면, 나는 여전히 바람둥이로 사는 게 더 편해!”시원과 백림은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맞아, 너 같은 사람은 진짜 사랑을 해서는 안 돼.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니까!”백림은 조롱을 섞어 말했다.“너도 나랑 같은 부류였잖아. 우청아 만나고 나서 이상하게 변하더니 태세 전환이 우디르 급이야!”이에 시원은 개의치 않다는 듯 말하자 백림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너 일부러 약 올리는 거지?” 시원은 고개를 들어 크게 웃었다. 직원 몇 명이 와인을 가져오며 지나갔고, 이선은 유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백림 앞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서 백림을 힐끗 바라보았다. 백림은 잠시 동안 와인 한 병을 마셨다. 백림의 술버릇은 문제가 없었지만, 위가 좀 불편했다. 그래서 시원과 다시 조금 더 이야기한 후, 백림은 밖의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잠시 머문 후, 바로 룸으로 돌아가지 않고 벽에 기대어 담배를 꺼내 피웠다. 담배를 절반 정도 피웠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백림 씨, 술에 취하셨어요?”백림은 시선을 돌려 여자를 바라보았다. 희미한 불빛 아래, 이선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백림을 바라보았고, 손에는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있었다. “저희가 방에서 술을 마시는 걸 알고, 백림 씨의 위가 안 좋은 걸 아셔서, 따뜻한 우유를 준비했어요. 마시면 좀 나아질 거예요.”백림은 벽에 기대어 있으면서 평소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멋지게 보였다. “어떻게 내가 위가 안 좋
방 안이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서인도 고개를 들어 임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눈처럼 맑고 투명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파일을 찾아 재생했다.녹음 속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처음에는 안주설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쥐구멍이 없어도 쥐는 나타나요. 쥐는 정말 어디든 들어올 수 있어요. 창문으로 기어들었을 수도 있고요.”“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전에 내가 살던 원룸에도 한 번 쥐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강성에서 월세 살고 있나 봐요?”“음, 그렇죠!”...녹음이 계속 이어지다, 주설의 목소리가 확연히 낮아졌다.“유진 씨랑 서인 사장님, 토니네 일에서 손 떼면 안 될까요?”유진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뭐요?”“내가 400만 원 줄게요. 그러니까 서인 사장님 설득해서 여기서 떠나게 해 줘요.제발, 네?”“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묻지 말고, 그냥 네가 서 사장님을 설득해서 돌아가게 해 줘요. 우린 모두 토니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같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그냥 손 떼고 돌아가 줘요.”...유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설마 주설 씨였어요?”“뭐가요?”“주설 씨, 이 민박집이 철거되길 바라고 있네요. 보상금 받아서 해성에 집 사려는 거죠?”“그게 유진 씨랑 무슨 상관이죠? 왜 우리 집 문제에 왜 당신이 끼어드는데요? 지나치게 참견하는 거 아닌가요?”“보상금 받아서 집 사면, 토니 씨 부모님은 어떻게 하라고요? 여기가 토니 씨 부모님들이 가진 전부예요.”“집이 무너지면, 부모님을 해성으로 모셔 갈 거예요?”“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잖아요! 본인이 집 못 사니까 우리도 못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질투하는 거죠? 솔직히?”녹음은 거기서 끝났다. 유진은 녹음이 끝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충격에 빠진 주설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누가 이 집을 철거시키려 했는지, 누가 보상금을 노렸는지, 누가 우리를 여기서 쫓아내려 했는지 이제 다들 알겠죠?”모든
윤석경은 손에 청경채를 들고 뛰어나오며 소리쳤다.“박민란 씨! 또 무슨 일이죠?”박민란은 서인과 임유진을 발견하자 더욱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당신들 가족 전부 나오라고 해요! 안토니도 불러요! 오늘은 꼭 이 비열한 배신자를 색출해야겠어요!”그 말에 윤석경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배신자라니, 무슨 소리예요?”곧 가족들이 모두 1층 거실에 모였다. 그리고 박민란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자, 직접 보세요!”유진의 시선이 사진에 닿자마자 눈이 커졌다. 사진 속에는 서인과 유진이 있었다. 일요일, 호텔에서 네 사람이 함께 식사할 때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오석준이 서인에게 차 한 상자를 건네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이에 박민란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자, 똑똑히 보세요! 다들 잘 보라고요!”본래도 목소리가 컸던 그녀는, 화까지 난 상태라 더욱 격렬하게 소리를 질렀다. 거기다 입을 열 때마다 침까지 튀었다. “이 두 사람이 호텔 측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당신네 집을 팔아넘겼어요! 그런데도 당신들은 이들을 손님처럼 대접하고 있다니, 제정신이에요?”토니 가족은 사진을 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토니도 호텔에서 공사 담당자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기에, 사진 속 인물을 바로 알아보았다.유진은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고, 바로 박민란을 향해 따져 물었다.“이 사진 어디서 난 거죠? 누가 보낸 거예요?”박민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건 당신이랑 상관없어요! 아무튼 당신들 얼른 떠나요!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말고요!”토니 가족들은 사진을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고, 유진은 단호하게 설명했다.“사장님이 친구를 통해 호텔 공사 담당자를 만났고, 그 사람이 여기를 철거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그날 저녁에 그 사람과 식사한 것도 그 자리에서 설명해 드렸잖아요? 그리고 저 가방 안에는 차가 들어 있어요.”“지금도 차 안에 있으니까 가져와서 보여드릴게요!”토니는 사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임유진은 주변을 살피며 혹시라도 쥐구멍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고, 안주설은 창가에 기대어 웃으며 말했다.“쥐구멍이 없어도 쥐는 나타날 거예요. 쥐는 정말 어디든 들어올 수 있거든요. 창문을 통해서 들어왔을 수도 있어요.”그러자 유진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전에 내가 살던 원룸에도 한 번 쥐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주설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강성에서 월세로 살고 있나 봐요?”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음, 그렇죠!”주설은 조심스레 떠보듯 물었다.“그러면 나중에 사장님이랑 결혼하면 집을 살 테니까 더 이상 월세 살 일은 없겠네요? 사장님은 꽤 돈이 많아 보이던데요.”유진은 한숨을 쉬었다.“사장님이요? 무슨 돈이 많아요? 차 한 대 그나마 좀 값나가는 거지, 그거 팔아도 강성에서 집 사긴 어림도 없어요. 강성 집값 엄청 비싸요.”주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전 집 없이는 절대 결혼 안 할 거예요. 자기 집이 있어야 마음 편하잖아요.”“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유진은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물었다.“두 사람은 언제 결혼할 거예요?”그러자 주설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연말쯤이요. 우리 둘 다 직장도 안정적이고, 하반기부터 결혼 준비를 시작하려고 해요.”“그럼 집은 샀어요?”유진은 궁금한 눈빛으로 묻자 주설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거의 다 됐어요. 지금 집을 알아보는 중이에요.”“좋겠네요! 해성 집값도 강성이랑 비슷하게 비싸던데, 정말 대단하네요. 나랑 사장님은 언제쯤 자기 집을 가질 수 있으려나?”유진이 부러워하는 듯한 말투를 쓰자, 주설의 얼굴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스쳤다.“열심히 일하면 언젠간 생길 거예요!”유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툴툴거렸다.“월급 모아서 집 사려면 늙어야 가능할걸요? 하늘에서 갑자기 돈 보따리라도 떨어지면 좋겠네요!”주설은 그녀의 말을 듣고 눈빛이 스치듯 어두워졌고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유진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안토니의 부모님은 점심을 준비하러 갔고, 안주설은 안토니를 방으로 끌고 가서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임유진은 서인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당에 나서자, 유진이 생각에 잠긴 듯 말을 꺼냈다.“내 생각엔, 토니 가족 중에 뭔가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서인은 눈을 살짝 들며 유진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지?”유진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어제 우리가 떠날 때, 토니가 우리한테 언제 돌아가냐고 물었잖아요? 그때 사장님이 바로 강성으로 간다고 했죠.”그러나 돌아가는 과정에 산길에 교통사고가 발생해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한 시간 정도 지체되었고 시내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이 되어 떠나지 못했다.“하지만 토니 가족은 우리가 이미 떠난 줄 알았겠죠.”서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우리가 떠난 줄 알고 철거팀이 몰래 들이닥친 거라는 거군.”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미심쩍잖아요.”서인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토니일 리는 없어.”며칠간 함께 지내며 그를 지켜본 결과, 토니는 형과 마찬가지로 솔직하고 올곧은 성격이었다.무엇보다 부모님께 극진한 효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겉으로만 도와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배신하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유진은 눈을 반짝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오늘 우리 여기서 자는 거죠?”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야 할 것 같아.”지금 상황으로 보면, 철거팀은 무슨 짓이든 할 가능성이 컸다. 만약 토니 가족 중 누군가가 정보를 흘린 거라면, 오늘 밤 서인과 유진이 없는 틈을 타 다시 올지도 모른다.그러자 유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난 2층에 올라가서 전에 묵었던 방에 아직도 쥐가 있는지 봐야겠어요.”서인은 눈썹을 살짝 올렸고, 유진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2층으로 올라가려던 찰나에, 유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니 임구택이었다. 유진은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
안토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서인 형! 호텔 철거팀이 또 왔어요! 이번엔 포크레인까지 끌고 와서 우리 집을 당장 부수겠다고 해요!][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분명 철거하지 않기로 합의한 거 아니었어요? 우린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한 적 없고, 동의한 적도 없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거죠?]서인의 얼굴이 굳어졌고, 눈빛은 차갑게 변했다.“지금 바로 갈 테니까 철거 인부들을 최대한 막아봐. 하지만 네 안전이 최우선이야. 가족들도 꼭 보호해야 해!”[네!]토니는 급히 대답했다.[일단 어떻게든 붙잡아 볼게요!]“반드시 조심해!”전화를 끊고 나서야 임유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서인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유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어제 확실히 협의 끝난 거 아니었어요? 혹시 아래 직원들이 전달을 못 받은 거 아닐까요?”서인은 차 시동을 걸면서 오석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러나 신호가 길게 가더니 결국 연결되지 않았다.이에 곧바로 이한우에게 전화하자, 한우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바로 형님한테 전화해 볼게. 안 받으면 직접 찾아갈게!]전화를 끊자마자 서인은 급히 차를 몰아 토니의 집으로 향했다. 차의 속도를 올려 빠르게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포크레인 한 대가 집 앞에 서 있었고, 토니의 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를 억지로 일으키려 하고 있었고, 토니와 다른 두 사람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윤석경은 철거 인부들에게 울며 애원했지만, 한 명이 그녀를 밀쳐버렸고, 이내 윤석경은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칠 뻔했다.그 순간, 서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토니의 아버지를 붙잡고 있던 사람 중 하나를 단숨에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막 아버지를 부축하려던 순간, 유진이 소리쳤다.“조심해요!”서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재빠르게 몸을 틀어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상대의 손목을 잡아 꺾었다.
유진은 한눈에 서인의 잠든 모습을 훑어보았다. 거칠고 자유분방한 그의 잠든 모습조차도 심장을 뛰게 했다. 정말 사랑에 빠지면 상대가 제일 멋있어 보인다는 말이 딱 맞는 순간이었다.유진은 침대로 올라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자신의 최고 미남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장님, 나 이야기 듣고 싶어요!”서인은 살짝 눈꺼풀을 들어 유진을 곁눈질하며 말했다.“내 229명의 여자친구 이야기라도 들려줄까?”그 말에 유진은 눈을 부릅떴다.“말할 용기가 있으면, 난 들을 용기도 있어요!”“좋아.”서인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으며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첫 번째 여자는 나랑.”그러자 유진은 휙 하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머리까지 덮어버렸다. 서인은 마치 타조처럼 몸을 숨기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서인은 손을 들어 조용히 불을 껐다.다음 날, 서인은 유진과 함께 흥성 주변의 명소를 둘러보았다. 유진은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월요일전과 같은 찻집에서 서인은 한우와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은 미리 10분 전에 도착해 기다렸다.서인은 유진에게 말차 케이크를 하나 주문해 주었고, 그녀는 속으로 조금 설렜다.‘지난번에 내가 이걸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구나.’정확히 10시가 되자, 한우와 그가 부른 사람이 도착했다. 한우는 두 사람에게 소개를 건넸다.호텔 프로젝트의 공사 책임자는 오석준, 마흔이 갓 넘은 나이에 머리 위가 약간 벗겨졌고, 몸집이 풍채가 있었다. 늘어지는 듯한 눈꺼풀 사이로 날카롭고 계산적인 눈빛이 스쳤다.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자, 한우가 오늘 만남의 목적을 간단히 설명했고, 서인도 안토니 가족의 상황을 차분히 이야기했다.한우는 이야기를 들은 뒤, 바로 전화를 걸어 토니 가족의 집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그 후,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원래 안토니 씨 댁은 철거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어요.”“하지만 서인 사장님이 직접 나를 찾아왔
유진은 맑은 눈으로 서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애잔한 눈빛으로 변하며 말했다.“내가 멍청하고, 잘 몰라서 이렇게 남아서 당신과 함께 세상을 보고 배우려는 거잖아요. 내가 함부로 아무거나 따거나 건드리지 않을게요.”“약속할게요, 그래도 안 될까요?”서인은 유진의 애처로운 표정을 보며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그럼 네 일은 어떻게 할 건데?”“휴가 내야죠. 마침 프로젝트 하나 끝낸 참인데, 여진구 선배가 며칠 쉬라고 했어요.”유진은 덧붙였다.“걱정 안 해도 돼요. 저 그런 무책임한 사람 아니에요. 일에 지장 주지 않을 거예요.”서인은 잠시 고민했는데, 유진을 혼자 차 타고 돌아가게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그러면 이틀 동안 나랑 같이 다니되, 혼자 돌아다니지는 마.”이에 유진은 환하게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하루 24시간 내내 사장님이랑 붙어 있고 싶을 정도니까요.”서인은 할 말을 잃었고, 순간 유진이 일부러 자신을 흔드는 게 아닐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사랑스러운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그러나 유진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자신이 너무 깊이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사람은 마당에서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유진은 의자에 편하게 몸을 묻고 앉아 서인에게 물었다.“이한우 씨한테서 연락이 왔어요?”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호텔 공사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어. 월요일에 만나서 이야기할 거야.”유진은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그 사람이 안토니 씨 집을 허물지 않겠다고 동의하면 문제는 해결된 거네요.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아요.”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길 바랄 뿐이지.”유진은 미소를 지었다.“동의하지 않을 거면 굳이 만나려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서인은 문득 유진에게 물었다.“회사에서는 무슨 일 해?”그러자 유진의 눈빛이 반짝였다.“드디어 내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네요?”서인은 입을 꾹 다물고 약간 어색한 기색을 보이며 시선을 피했다.“그
그 말에 서인은 코웃음을 치며 믿지 않는다는 듯이 옷장을 열어 옷을 꺼냈다. 그러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나가 있어.”임유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내가 훔쳐볼 것도 아니잖아요. 그 정도로 경솔하지 않아요. 보면 당당하게 보죠!”유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문을 밀어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인은 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유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서인은 서둘러 샤워를 끝내고, 나와서 밖을 내다보았으나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이내 서인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는 곧장 발걸음을 옮기며 유진을 불렀다.“임유진!”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수영장 주변은 조용했고, 희미한 조명 아래로 물결만이 은은하게 일렁이고 있었다.검은색 철제 울타리 너머로 다른 객실의 정원이 보였지만, 어디에도 유진은 없었다. 서인의 목소리가 낮아졌고,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한 어조로 유진의 이름을 불렀다.“임유진!”그때, 화악 물살을 가르며, 유진이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촉촉한 얼굴에는 물방울이 반짝였고, 커다란 눈동자가 더욱 맑게 빛났다. 유진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서인을 바라보았다.잔물결이 유진의 주변에서 별빛처럼 흩어졌다. 그녀는 마치 물에서 갓 피어난 연꽃처럼 수면 위에 떠 있었다.서인은 순간적으로 말이 막혔고, 유진은 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수영하며 천천히 다가왔다.그리곤 눈앞에서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왜 그래요? 놀랐어요?”서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유진은 웃으며 수영장에서 나와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나오자마자 재채기했다.그러자 서인은 한숨을 쉬고, 방으로 들어가 수건을 꺼내고는, 곧장 유진에게 다가가 수건을 둘러주며 나지막이 말했다.“옷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 유진, 너 혹시 뇌를 물에 빠뜨린 거 아니야?”유진은 수건을 감싸 안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내가 옷을 안 입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안주설과 안토니를 힐끗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사장님, 힘들지 않아요? 내려줄까요?”서인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두 시간은 거뜬해.”그 말에 유진은 깔깔 웃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몸을 더욱 기대고, 탄탄한 팔뚝을 베개 삼아 살짝 눈을 감았다.따뜻한 햇살과 산속의 상쾌한 공기, 그리고 서인이 주는 안정감.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불안도 없었다.유진의 몸은 가볍고 부드러웠고, 땀방울이 살짝 맺힌 피부는 촉촉하고 서늘했다. 그리고 은은한 향이 서인의 코끝을 간질였다. 서인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걸음을 뗐다.그러나 그때, 유진이 몸을 조금 더 밀착시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사장님, 정말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갑작스러운 말에 서인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유진의 숨결이 서인의 목을 스쳤고,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깊었다.그러나 서인은 단호하게 말했다.“안 좋아해.”유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그녀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도 좋아요. 사장님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안 좋아하면, 난 그걸로 괜찮아요.”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인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고,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그만 말해.”유진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인은 다시 묵묵히 걸었다.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유진과 서인은 산 정상의 너른 바위 위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토니와 주설도 간신히 정상에 도착했다. 둘은 이미 땀범벅이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반면, 서인과 유진은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토니는 헉헉대며 엄지를 치켜세웠다.“서인 형, 진짜 대단해요!”주설은 다소 무안한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산할 때는 토니와 주설이 더욱 느리게 걸었고, 결국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토니의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