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골 안에는 축하 카드가 없어서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성연희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음악상자를 들고 누가 이런 선물을 보냈는지 궁금해했다. 연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연희에게 예술적인 성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르골을 들어 올린 순간, 자동으로 열리면서 피아노곡이 흘러나왔다. 표시된 시간에 따르면 곡은 단 10초밖에 되지 않았다. 10초 동안의 피아노곡은 매초마다 ‘띡띡'하는 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 소희는 오르골을 계속 지켜보다가 곡이 절반을 지나자 갑자기 표정이 바뀌며 연희에게 돌진했다. 주변 사람들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모두가 놀라 얼굴을 찌푸리고 뒤로 물러났다. 김영조차도 놀라 두 걸음 물러섰다. 연희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당황했다가, 갑자기 소희가 오르골을 낚아채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소희는 빠르게 움직여 두 걸음을 뛰어, 오르골을 창문 방향으로 힘껏 던지고는 연희를 덮치며 크게 소리쳤다.“다들 엎드려!” 이때 ‘펑'하는 소리와 함께 오르골이 창문에 부딪혀 폭발했다. 전체 건물이 흔들렸고, 유리창은 불꽃처럼 폭발했다. 방 안은 돌과 먼지가 날리고 연기가 자욱했다. 창가에 가까웠던 두 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충격파에 휩쓸려 벽에 부딪혔고 잠시 후, 방 안은 조용해졌다. 층 아래 사람들이 달려와 상황을 목격하고는 구조 작업에 나섰다. “소희야!” 연희는 목소리가 떨리며 소희를 올려다봤다. “괜찮아?” 소희는 온몸이 쑤셨지만 천천히 일어나며 연희를 일으켰다. “괜찮아, 다른 사람들 다치지 않았는지 봐.” “소희야!” 김영이 달려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희야, 넌 괜찮아?” 연희는 김영을 무시한 채 소희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소희의 등에 박힌 유리 조각으로 인해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연희는 눈물을 흘리며 주위 사람들에게 외쳤다. “약 있어요? 먼저 약 가져와 주세요!” 하지만 소희는 연희의 손을 잡으며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그냥 작은 상처야.” 연희는 그제야 소희를
경찰이 도착해 3층으로 올라가 증거를 수집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성연희는 담당자에게 다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먼저 치료를 받게 한 뒤, 나중에 경제적 보상을 논의하기로 했다.소희는 성연희가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동안 화장실에 갔다.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는 세면대에 기대어 이번 사건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오르골은 해외에서 배송되었지만, 연희를 해하려는 사람이 반드시 해외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연희는 평소 행동이 도발적이었고, 특히 노명성을 유혹하려는 여자들에게는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았기에 그만큼 적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처럼 대담하게 연희의 목숨을 노린 사람은 분명 큰 원한이 있고, 상당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이일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노씨 집안과 성씨 집안을 동시에 건드릴 수 없었다.소희는 결혼식 전에 이 사람을 찾아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화장실에 잠시 머물렀던 소희는 밖으로 나오려던 찰나, 옆 구석에서 누군가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이선유, 너야?” 김영의 목소리가 들리자 소희는 걸음을 멈추고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천천히 미간을 좁혔다. 전화 반대편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김영은 분노했다. “나 알아. 네가 최근에 홍수철에게 새로운 폭발물에 관해 물어봤다고 하더라.”“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는데, 연희 누나한테 복수하려고 그랬던 거야?” “너 미쳤어?” “이건 살인이야!” 전화기 너머 선유도 격앙되어 소리쳤다. “참을 수 없었어! 난 복수하고 싶었어! 김영, 넌 이미 나를 배신했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를 비난하려고 해!” “맞아, 나는 너를 배신했어. 나는 연희 누나를 좋아하게 됐어. 네가 나에게 화를 내도 좋은데 다시는 연희 누나를 해치지 마!” “난 네가 누구를 좋아하든지 상관없어. 나는 성연희를 죽이고 싶어!” 선유는 악에 받쳐 절규했다. “나를 상처 입힌 사람은 한 명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 소희도 조심하라고 전해!” “선유야, 제발, 그만해.
성연희는 김영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뒤, 걸음을 재촉해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연희가 지나간 자리에는 차가운 기류가 흘렀고 연희의 당당한 모습이 더욱 돋보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김영이 따라오지 않았는데 김영은 자기 모습이 초라하다고 느끼며 혼자서 고민에 잠겼다.‘만약 노명성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 사람은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을까?' 그리고 그 대답은 명성이라면 분명히 앞으로 나아갔을 거라는 것이었다. 김영은 자신이 진정으로 패배한 것은 명성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사실을 깨달았다. 김영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열정적이고 용감하지 않았으며, 연희 같은 빛나는 여자를 감당할 자격이 없었다....세 시간 후, 경성.이씨 그룹 본사 전화를 끊은 뒤부터 이선유는 마음이 불안했다. 김영이 연희한테 잘 보이려고 선유가 이 일을 저질렀다고 말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리고 선유는 한 번 연희에게 당한 적이 있어서, 연희가 아랑곳하지 않고 경성까지 찾아올까 봐 두려웠다. 선유는 집에서 회사로 달려와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두 명의 경호원을 문 앞에 세웠다. 55층 높이의 큰 빌딩, 강력한 보안 시스템, 엘리베이터는 내부 직원만 탈 수 있고, 문밖에는 보디가드가 지키고 있자 선유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설령 임구택이 와도 자기를 데려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 밖에서, 두 보디가드는 왜 자신들이 문 앞을 지키라는 지시를 받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루하게 서 있던 중, 한 명이 갑자기 말했다. “무슨 소리 안 들려?” 다른 한 명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옥상 같은데?” 보디가드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사무실 안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두 보디가드는 얼굴이 새하얘지며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둘은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섰다. 넓은 유리창이 폭발로 인해 박살 나 있었고, 바깥에는 두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자가 한 손으로 로프를, 다른 한 손으로 선유를 붙잡고 로프의 힘을 빌려 위로 올라갔다
25층 높이의 건물, 200미터의 고공에서 이선유는 찬바람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흔들리며 전전긍긍했다. 공포에 질려 큰소리로 자신의 아빠를 부르짖었다. “아빠, 아빠!”소희는 선유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동안 선유를 흔들어 더욱 강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고공의 바람에 얼굴이 일그러지고 어지러움과 공포가 극에 달하면서 선유는 겁에 질려 외쳤다. “소희,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나를 놔줘!”선유는 울부짖으며 소리쳤지만, 격렬하게 몸부림치지는 못했다. 자칫하면 대충 걸친 코트가 끊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때? 재밌어?” 소희의 얼굴에는 감정이 없었고 냉혹한 눈빛으로 선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성연희를 괴롭히고 싶어? 그럼 내가 네 실력을 한번 보자. 연희를 건드릴 때마다, 난 이렇게 널 찾아와서 괴롭힐 거야. 누가 끝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자고!”“아, 아!” 선유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흐느끼며 울부짖었다. 선유의 목소리는 금방 바람에 막혔고, 온몸이 떨렸다. 선유는 말을 잇지 못하고 오로지 비명만 질렀다.“선유야!” 갑자기 한 남자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와 소희가 고개를 돌려보니, 이진혁이 사람들을 이끌고 달려오고 있었다. 선유는 난간 밖으로 반 미터나 추락했다가 멈췄다. 아래를 볼 수 없었지만 이진혁의 목소리를 듣고는 절규했다. “아빠, 날 구해줘! 제발!”이진혁은 소희가 화를 내서 정말로 선유를 던질까 봐, 움직이지 못하고 숨을 죽인 채 소희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소희인가요?”이진혁은 건물 옥상에 앉아 있는 소희를 바라보았다. 소희는 검은색 셔츠에 짙은 녹색 긴 바지, 단정한 마틴 부츠를 신고 있었고, 그 아름다운 얼굴에는 차가운 살기가 감돌았다. 한 손에는 사람의 목숨줄을 매달고 있었지만, 소희는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태연했다.“네, 제가 소희예요.” 소희는 냉담하게 대답했다.“제 딸을 놔주시면, 저는 당신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 있습니다.” 이진혁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두 명의 보디가드가 이선유를 에스코트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나머지 네 명은 옥상 입구에 남아 멀리 소희를 주시했다. 소희가 이진혁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서였다.소희와 이진혁은 무려 30분 동안 대화를 나누었고 보디가드는 소희가 옆에 세워진 헬리콥터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달려가 이진혁을 뒤로해 급히 보호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소희는 갑자기 돌아서 이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 딸에게 말해,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성연희를 다시 해치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진언을 내 앞에서 언급했다는 건, 내가 누군지도 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만 까불라고 해요!”이진혁은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걱정 마요, 선유는 제가 잘 관리할 테니까.”“그래요.”소희는 그 말을 마치고 곧바로 헬리콥터에 올랐다. 보디가드들은 고개를 들어 이륙하는 헬리콥터를 바라보았고, 프로펠러의 거대한 소음이 고막을 뚫을 것 같았다.이진혁이 처음 소희의 정체를 알아냈을 때는 아직 의심의 여지가 있었지만, 오늘 직접 마주친 후에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선유는 어떤가?” 이진혁이 뒤돌아보며 물었다.보디가드가 바로 다가와 대답했다.“아가씨는 얼굴에 상처를 입었습니다.”이진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선유 잘 챙기고 강성 사람들과 다시 연락을 취하지 못하도록 해!”“알겠습니다.” 보디가드가 바로 대답했다....소희가 강성으로 돌아온 후, 먼저 병원에 들렀다가 그 후에야 드라마 촬영장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소희는 기다리고 있던 성연희를 만났다. 연희는 화이트 긴 드레스에 베이지 코트를 걸치고 있었고 소희를 보자마자 바로 다가왔다.“어디 갔었어?”그러자 소희는 솔직하게 말했다.“경성에 다녀왔어.”“이선유를 만나러 간 거야? 그 오르골 보낸 사람 이선유 맞지?” 연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연희는 떠난 후에 더욱더 소희가 갑자기 떠난 이유를 알아차리고는 불안해졌다. 그래서 급히 드라마 촬영장으로 서둘러 와서 소희가
저녁때, 임구택은 소희를 만나기 위해 드라마 촬영장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차 안에서 기다리지 않고 촬영장으로 들어갔다.멀리서, 미나는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가 오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일어났는데 굉장히 놀라운 기색이었다. 구택이 가까이 다가오자 미나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소희 씨 찾으러 오셨죠?”이에 구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전화를 해봤지만 연결이 안 돼서요. 소희 지금 여기 있나요?”미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소희 씨 오후에 돌아왔어요. 제가 데려올게요.”“앞마당에 있나요? 제가 직접 갈게요.” 구택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며 걸음을 옮겨 제작진이 임시로 사용하는 별장 옆 작은 마당으로 향했다. 촬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마당에는 많은 물건들이 쌓여 있었고, 다소 지저분했다.구택은 한참을 찾다가 드디어 바나나나무 아래에서 잠든 소희를 발견했다. 바나나나무 아래에는 누울 수 있는 의자가 있었고, 소희는 그 의자에서 비스듬하게 누워있었다. 소희의 얼굴에는 디자인 도면이 덮여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해질녘의 태양이 바나나나무 잎 사이로 비추며 소희의 몸 위에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주변은 사람들이 다니고 소란스러웠지만, 소희는 전혀 방해받지 않았다.구택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다가가 디자인 도면을 들어올리자 소희의 아름다운 옆모습이 드러났다. 갑작스러운 빛에 소희는 눈을 뜨고 구택을 바라보았고, 소희의 눈에는 떨어지는 해질녘 빛과 구택이 보였다.구택은 한 손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소희의 턱을 받치고는 애정이 담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원래 잠든 척하면서 여기서 늑장을 부리고 있었던 거야?”소희는 천천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팔을 구택의 목에 감고 몸을 기울여 턱에 이마를 비볐다. 그리고는 약간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어떻게 왔어?”구택은 소희의 볼에 가볍게 입 맞추며 대답했다.“보고 싶어서.”“나도!”소희가 고개를 들며 구택을 바라보았는데 소희의 눈빛은 깊
임구택은 태연하게 말했다. “네가 계속 이런 소리하면 너 다시 안 볼 거야!”장시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겁먹은 척 표정을 지었다. “소희랑 먼저 앉아 있어. 두 가지만 더 하면 되는데, 금방 준비될 거야!”구택은 웃으며 자기 정장 재킷을 벗고 옆자리에 앉아, 소희와 요요가 디저트를 먹는 걸 바라보았다.소희의 입가에 푸딩에서 떨어진 과일 시럽이 묻자, 구택은 티슈를 들고 몸을 숙여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요요도 이를 보고는 또한 티슈를 집어 소희의 입가를 닦으면서 중얼거렸다. “나이가 몇 갠데!”“어?” 소희는 잠시 당황했다가 요요가 타박하는 이유를 깨닫고는 웃음을 터뜨렸다.“너도 나랑 도긴개긴이거든. 수염 잔뜩 난 것 같은 입, 사진 찍어줄까?” 소희가 반박하자 요요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나는 아직 어린애야!”소희는 말했다. “나는 너보다 딱 260개월 더 많이 살았을 뿐이야!”요요는 작은 손가락으로 260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려 했으나, 손가락이 부족해 자기도 헷갈리고 말았다.구택은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지 않을 수 없어 낮게 웃음을 터뜨렸고, 미래에 자기와 소희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집안이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다.청아가 요리를 거의 다 끝낼 무렵 소희는 일어나서 요리를 도와주자 청아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타피오카 푸딩을 만들었어, 팥도 넣었으니 위도 편하게 해줄 거야.”소희는 웃으며 대답했다. “너처럼 좋은 사람, 시원 오빠에게 넘겨주기 아까워!”그러자 시원이 옆에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청아가 나랑 있어도, 절대로 질투하지 않을게!”소희는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한 입 가지고 두말하면 안 돼!”“물론이지!” 시원이 응답하고는, 음식을 테이블 위에 놓으며 구택을 불렀다. “소희의 가족분, 식사하러 오시죠!”구택은 요요를 안고 식당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보니까 나는 소희의 가족으로 초대받은 거였구나!”시원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나랑 청아가 직
“유씨 집안이 파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러자 장시원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둘 사이에 별로 감정이 없으니, 헤어지는 것도 당연하다고 봐.”소희는 유정을 생각하며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조백림은 감정에 있어서 항상 진지하지 않았기에, 임구택과 시원은 이미 익숙해하고 있었다.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후에, 네 명은 주제를 바꿔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식사를 거의 마친 후, 구택과 시원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소희와 요요는 발코니로 나가 놀았다. 곧이어 청아가 소희에게 다가와 말했다. “오늘 성연희가 신부 메이크업을 받으러 간다고 했는데, 왜 사진을 보내주지 않았어? 나 계속 기다리고 있었거든!”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 문제가 생겨서, 일정을 사흘 후로 미뤘어. 그때 사진 보내줄게.”“연희가 네가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를 입으면 정말 예쁠 거야.” 청아는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연희가 요요를 꽃동으로 하고 싶어 해서 시원 오빠한테 물어보라고 했어. 네 생각은 어때? 허락할 수 있어?”“당연하지. 지난번 우리 오빠가 결혼할 때, 원래 요요도 꽃동을 할 예정이었는데, 하지 못해 많이 아쉬워했어. 이번에는 그 아쉬움을 메울 수 있을 거야!”청아는 요요를 안고 말했다. “연희 이모 결혼식에 꽃동 하러 가는 거 어때? 좋지?”요요는 기쁘게 대답했다. “연희 이모가 왕자님과 결혼하는 거야?”청아와 소희는 서로를 바라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연희 이모가 이모의 왕자와 결혼하겠다고, 널 꽃동으로 초대했어!”“너무 좋아!” 요요는 손뼉을 치며 뛰어다니다가 시원을 찾아가 이 좋은 소식을 전했다. 시원은 요요를 안아 올리고 타피오카 푸딩을 조금 먹여주었다. 요요는 작은 그릇을 들고 먹자 볼이 부풀어 올라 아주 귀여웠다.구택이 묻자 시원이 조용히 말했다.“너희 부모님은 여전히 청아를 받아들이지 않는 거야?”“우리 엄마가 가문을 따지긴 해도, 큰 문제는 아니야. 청아가
구은정은 한경아의 말을 듣고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가세요. 조심해서 가시고요.”“네, 사장님!”한경아는 정중히 인사한 뒤,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덧붙였다.“사장님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일찍 귀가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건강도 챙기셔야죠.”그러나 은정은 흥미 없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네.”은정은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사무실 안은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은정은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손으로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그리고 의자를 돌려 넓은 창문 너머의 야경을 바라보았다.은정은 그렇게까지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뿐이었다.구씨 저택에 돌아가면 서선영의 가식적인 얼굴이 그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샤부샤부 가게에 가면, 그곳에는 여전히 임유진의 흔적이 가득했다.이전에는 그냥 가게 사장이었기에 그곳이 자신의 터전이라 느껴졌지만, 이제는 구씨 그룹의 사장이 되고도 갈 곳이 없었다.은정은 사무실이 위치한 빌딩 최상층에서 강성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어딘가에서 마음이 소란스러워졌다.그러나 끝내 은정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유진은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마친 뒤, 머리를 말리지 않은 채 창가에 앉아 있었는데 전화 통화 중이었다. 유진은 여진구와 업무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통화를 마친 유진은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유진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저택의 정문 앞,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그리고 차 옆에는, 누군가가 기대어 서 있었다.저택과 정문 사이에는 꽤 거리가 있었고, 무성한 나무들이 시야를 가렸다. 유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자세히 보려 했다.그러나 그 순간, 도우미인 노하숙 아주머니가 다가와 유진의 휠체어를 밀었다.“아가씨, 머리도 덜 말랐는데 창문가에 앉아 있으면 감기 걸려요.”유진은 다시 한번 창밖을 돌아보았지만 이제는 더 흐릿하게 보였다. 창문을 통해
구은정이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서성이 갑자기 말을 끊으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사장님, 최이석 본부장 얼굴의 상처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은정은 시선을 살짝 들어 그를 바라보더니, 태연하게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의자를 뒤로 젖히며 무심한 목소리로 답했다.“내가 때렸죠.”서성은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다. 은정이 이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태도, 오만하면서도 냉정한 태도에 그는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사장님, 이유 없이 직원을 폭행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에요. 이미 상해가 발생했다면, 최이석 본부장은 신고할 권리가 있어요!”쾅! 순간, 은정이 책상 위로 한쪽 다리를 올려놓았다. 묵직한 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지자, 참석자들의 얼굴이 일제히 경직되었다. 너무나도 대범하고 거침없는 행동이었다.그러더니 은정은 태연하게 다른 쪽 다리까지 책상 위에 올린 채 의자에 몸을 기댔다. 자연스럽고도 오만한 태도였다.“링에서 진 사람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은정은 비웃듯 짧게 코웃음을 치며 최이석을 바라보았다.“최이석 본부장, 신고할건가요? 그렇다면 내가 충분히 협조하죠. 필요하면 헬스장 CCTV까지 확인해 보죠.”최이석은 잽싸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성 본부장님께서 상황을 잘 모르셔서 그러신 거예요. 제가 직접 설명해 드리죠!”서성은 당황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서성은 한마디도 못 한 채 입을 다물고 말았다.“좋아요, 그럼 계속하죠.”은정은 여전히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린 채 태연하게 말했다.“해성 프로젝트의 기획안, 이향석 본부장이 제출했어요. 대략 검토해 봤는데, 꽤 잘 만들었더라고요. 다만 몇 가지 사소한 문제점이 보여서 말이죠.”은정이 말을 마치자, 서성은 더욱 경악했다.‘이향석까지 항복한 거야?’아침까지만 해도 꼿꼿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버릴 줄이야. 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은정이 제기하는 문제점들이었다.서성은 원래 구은정이 아
날카로운 화살촉이 공기를 가르며 빠르게 날아갔다. 강한 힘이 실려 화살이 날아가는 동안 공기마저 떨리는 듯했다.그 순간, 사무실 전체에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향석은 자신의 머리 쪽으로 날아오는 화살의 차가운 금속 광채를 바라보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거의 기절할 뻔했다.쾅! 화살은 그의 머리 바로 위 벽에 박혔다. 화살 끝이 벽을 파고들며 울리는 진동음이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그 소리에 이향석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숨을 몰아쉬며 겨우 정신을 차리려던 순간, 두 번째 화살이 날아왔다.순간적인 공포가 이향석의 몸을 다시 휘감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번째 화살. 이제 그의 머리 위, 왼쪽 팔 옆, 오른쪽 팔 옆까지 모두 화살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은정은 만족하지 않은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아직도 별로 도전적이지 않네요.”이윽고 그는 옆에 놓인 검은색 안대를 집어 들고 눈을 가렸다. 이향석은 그제야 자신의 심리적 방어선이 완전히 무너졌다.“사장님! 사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해성 투자 계획서, 오늘 퇴근 전까지 제출할게요!”은정은 눈을 가린 채로 활을 들고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안대를 벗고 이향석을 바라보았다.“시간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요?”“아니요! 사실 초안은 이미 만들어 둔 상태예요!”이향석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구은정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활을 내려놓았다.“그러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죠. 어서 가서 일 보세요.”은정의 손이 활에서 완전히 떨어지는 순간, 이향석은 비로소 진정한 안도감을 느꼈다. 벽을 짚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 그는, 다리가 풀려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사, 사장님, 바로 가서 처리할게요!”은정은 활을 정리하며 무심하게 손을 휘저었다.“어서 가세요.”이향석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천천히 뒷걸음질 쳤고, 겨우 문을 열고 나갔다. 이향석이 떠난 뒤, 은정은 한경아를 불러 말했다.“벽을 수리할 사람을 불러요.”경아는
구은정은 직원들 옆을 지나며 걸음을 멈추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봤나요? 평소에 자주 연습해야 해요. 그래야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유대도 깊어질 수 있죠.”직원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사장님 말씀이 맞아요!”“사장님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완전 프로급이세요!”“우리도 연습 좀 하고, 다음에 한 번 붙어 보시죠!”...은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직원들은 긴장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곧장 링 위로 달려가 쓰러져 있는 최이석을 바라보며 연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이건 좀 너무 심한 거 아니야?”그들의 얼굴에는 최이석 본부장이 완전히 박살났다는 표정이 역력했다.오후 근무 시작 한 시간 후, 은정은 내선을 눌러 비서 한경아에게 지시했다.“이향석 본부장을 내 사무실로 부르세요.”한경아는 곧바로 이향석의 비서를 통해 그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연락을 받은 이향석은 귀찮다는 듯 짜증을 내며 말했다.“능력은 별로면서 하는 일은 많아. 밖에 나갔다 오느라 땀까지 흘렸는데, 좀 쉬지도 못하게 하네. 지금 당장 가야 할 이유라도 있나? 그냥 기다리라고 해.”비서인 젊은 여성은 차를 따르며 웃으며 말했다.“아마도 오전 회의에서 당한 걸 만회하려고 하실지도 모르죠. 혹시라도 본부장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면 어쩌시겠어요?”이향석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비웃었다.“구은정은 오래 못 버텨. 결국 쫓겨날 게 뻔하지.”비서는 아첨하듯 맞장구쳤다.“그러니까 신중하게 선택하셔야죠.”이향석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야 물론이지!”그는 차 한 잔을 다 마신 뒤에야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은정을 만나러 갔다. 이향석은 최이석보다 훨씬 노련한 사람이었다.이향석은 겉으로는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면서도, 속으로는 철저히 계산하고 있었다. 사무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오며, 그는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사장님, 찾으셨나요? 고객과 미팅이 있어서 다녀오느라 늦었어요. 오래
점심을 마친 후, 구은정과 최이석은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은정이 갑자기 물었다.“우리 회사에 직원들을 위한 피트니스 공간이 있다고 들었어요.”이에 최이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B동 30층에 있죠.”은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군요. 마침 시간이 있으니, 저랑 함께 가서 구경시켜 주시겠어요?”“물론이죠!”최이석은 거리낌 없이 바로 승낙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룹 본사 B동 30층으로 향했다. 이곳은 회사 직원들을 위한 피트니스 센터로, 전 층이 운동 시설로 조성되어 있었다.점심시간이라 대부분의 직원은 식사 중이었고, 운동하는 직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몇몇 직원들만 러닝머신 위에서 가볍게 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은정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다가, 도장 한편에 마련된 링을 발견했다. 그는 돌아서서 최이석을 바라보며 물었다.“평소 운동을 즐기시나요?”이에 최이석은 자신감 있게 웃으며 대답했다.“물론이죠. 업무가 아무리 바빠도, 건강이 최우선 아니겠어요?”그러자 은정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요.”그러면서 그는 조용히 보호 장비를 챙겨 팔에 착용하기 시작했다.“한 판 겨뤄 보실까요?”최이석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고 황급히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아, 저는 그냥 가볍게 조깅하거나 덤벨 정도 드는 수준이에요. 격투기는 좀 무리죠.”그러나 은정은 태연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살살할 테니 부담 가지지 마세요. 룰도 따로 정할 필요 없어요. 원하시면 주먹을 쓰셔도 되고, 발차기해도 좋고요.”은정은 말하는 동시에 링 위로 올라섰고,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최이석은 속으로 이를 악물고 보호 장비를 착용하며, 외투를 벗어 링 위로 올라갔다.잠시 후,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섰다.최이석은 젊은 시절 복싱을 배운 적이 있어, 나름대로 방어 자세를 제대로 잡았다. 그리고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 가벼운 펀치
그 말에 마심호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구은정이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걸 직감했다. 그는 놀라면서도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드리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좋아요.”구은정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심호가 떠난 뒤, 비서 한경아가 들어와 몇 개의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사장님, 여기 서명하셔야 할 서류들이에요.”은정은 서류를 받아 들고 검토하기 시작했다. 경아는 그가 빠르게 문서를 훑어보는 모습을 보고, 단순히 형식적으로 확인하는 줄 알았다.그러나 서류를 내려놓은 은정은 몇 가지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고, 그제야 경아는 그가 모든 내용을 꼼꼼히 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당황한 그녀는 곧바로 자세히 설명하며 질문에 답했다.모든 내용을 확인한 후에야 은정은 서명했다. 서류를 모두 처리한 후, 시간을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그리고 은정은 내선을 눌러 경아에게 지시했다.“최이석 본부장을 내 사무실로 부르세요.”약 20분 후, 최이석이 태연한 표정으로 들어왔는데,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건성으로 말했다.“사장님, 저를 찾으셨나요?”은정은 그의 무례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듯 자연스럽게 말했다.“편하게 앉으세요.”그러나 최이석은 이를 전혀 예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참는다고 생각했다.구씨 집안의 후계자라고 해도 지금껏 회사 운영에 관여한 적이 없으니, 권력은 있어도 실질적인 영향력은 전무했다. 결국, 경험도 없고 인맥도 없는 허울뿐인 꼭두각시일 뿐이었다.‘마심호가 구은정을 내세워 반격을 노린다고? 터무니없는 꿈이야.’최이석은 비웃음을 감추며 넉살 좋게 물었다.“저를 부르셨다길래, 점심이라도 같이 하자는 건가요? 오늘은 제가 대접하죠. 사장님, 뭐 드실래요?”은정은 천천히 서류를 내려놓고 말했다.“사내 식당에서 간단히 먹죠. 점심을 마친 후에 할 이야기가 있거든요.”최이석은 느슨한 미소를
월요일.구씨 그룹의 회의에서, 구은정은 회의실의 주석에 앉아 있었고, 양옆으로는 각 부서의 고위 관리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그는 방금 시작된 중요한 프로젝트에 대해 언급하며, 마케팅부 본부장인 최이석을 바라보았다.“일주일 내로 정확한 시장 조사 데이터를 제출해 주세요.”그러자 최이석은 눈을 살짝 돌려 서성을 바라본 뒤,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사장님, 현재 제 손에 이미 령익회사와 PWE 프로젝트가 걸려 있고, 게다가 코넬회사의 3세대 신제품 홍보까지 맡고 있어요.”“신사업 관련 조사는 다른 분께 맡기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러고는 덧붙였다.“참고로, 저희 부서에 새로운 인턴 두 명이 들어왔는데, 능력이 괜찮아요. 그들에게 맡기면 충분히 잘 처리할 거예요.”새로 부임한 은정의 업무 지시를 대놓고 거절하면서, 인턴을 추천하는 태도는 누가 보아도 대놓고 무시하는 행동이었다.회의실의 분위기가 순간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군가는 최이석이 서성의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외척 세력이 점점 도를 넘고 있다고 분노했다.또 누군가는 새로 온 사장이 난처한 상황에 놓이자 고소해하며 속으로 비웃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구은정과 서성 사이의 권력 다툼을 지켜보며 어느 쪽이 우세한지를 판단하고 있었다.그때, 마심호가 최이석을 흘끗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PWE 프로젝트는 이미 막바지 단계에 도달했죠. 그러니 굳이 최이석 본부장이 개입할 필요는 없겠군요.”“그리고 신제품 홍보도 지난주에 완벽한 홍보 전략이 마련된 상태죠. 보아하니, 요즘 꽤 한가하신 것 같은데요?”그러자 최이석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마심호 사장님, 우리는 부서가 다른데, 제 업무량을 보고할 필요까지는 없겠죠?”마심호는 표정을 굳힌 채 입을 다물었고, 은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분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다시 생각해 보고, 퇴근 전까지 다시 논의하도록 하죠.”그러자 최이석은 서성을 향해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냈고, 그 외 사람들도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어떤 이들은
유진은 진소혜가 여진구의 비서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그를 목표로 한 행동이었다. 유진은 손가락을 접으며 분석하기 시작했다.“진소혜는 명문대 석사 출신이고, 미인은 아니지만 단정하고 매력적인 외모죠. 호감형이죠. 아버지는 의대 교수, 어머니는 엔지니어라서 유전적으로도 괜찮고...”“임유진!”진구가 단호하게 유진의 말을 끊었다.“난 걔한테 아무 감정도 없어. 그러니까 그만 분석해.”유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내렸다.“그래요? 그럼 됐어요.”신호가 바뀌자 진구는 액셀을 밟으며 도로를 지나갔다. 그러다 슬쩍 백미러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근데 넌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라고는 생각 안 해?”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잖아요.”진구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왜 그렇게 확신해?”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성격이 비슷하잖아요. 비슷한 사람끼리는 끌리지 않는 법이에요.”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유진은 이제 막 지난 관계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진구는 지금 고백을 한다면, 그저 틈을 노린 것처럼 보일까 봐 조심스러웠다.유진이 완전히 서인을 잊을 때까지는, 천천히 자신의 감정을 전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서인은 혼자 차를 몰고 구씨 저택으로 돌아왔다. 집안 식구들은 모두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인이 현관을 들어서자, 서선영이 반갑게 일어나 환한 미소로 맞았다.“은정아, 돌아왔구나! 네 아버지 아까도 네 이야기를 하셨는데.”그러나 서인은 서선영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이에 서선영은 난처한 표정으로 멈춰 섰고, 그녀는 억울한 눈빛으로 구은태를 바라보았다.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던 구은태는 담담하게 말했다.“이제 막 돌아왔으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니 기다려.”서선영은 바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알아요. 괜찮아요. 은정이가 집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니까요. 제가 잘 보살펴서, 집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할게요.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유진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구은정을 떠올렸다. 그녀는 가볍게 눈썹을 올리며 생각했다.‘그분이 여자친구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방연하한테 연락처를 물어봐 준다고 한 건 너무 성급했던 거 아닌가?’유진은 여진구를 돌아보며 물었다.“선배, 구은정 삼촌이랑 친해요?”그러자 진구는 순간적으로 긴장했다.“잘 몰라. 왜 갑자기?”유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방연하가 연락처를 알고 싶어 하더라고요. 혹시 여자친구 있는지 알아요?”진구는 마음속으로 안도하며 자연스럽게 웃었다.“한 번 보고 마음에 든 거야?”유진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연하는 잘생긴 남자만 보면 좋아해서, 하나도 이상할 거 없어요.”진구는 백미러를 통해 그녀를 흘깃 바라보며 물었다.“만약 네가 그 사람 연락처를 알게 된다면, 방연하한테 줄 거야?”“당연하죠. 그런데 나도 몰라요.”유진은 어깨를 으쓱였다.“만약 다시 마주치게 되면, 그때 한 번 물어볼 수도 있죠.”진구는 화제를 바꾸며 말했다.“곧 생일이지? 원하는 선물 있으면 미리 말해. 사실 하나 준비해 두긴 했지만.”유진의 눈동자가 살짝 빛나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선물은 필요 없어요. 생일날 내가 걸어서 다닐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니까.”그 말에 진구는 호탕하게 웃었다.“그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의사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걸로 말해 봐.”유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요.”유진은 짐짓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누가 생일 선물을 물어보는 거예요? 그러면 놀랄 일도 없잖아요!”이에 진구가 웃으며 말했다.“괜히 쓸데없는 걸 주는 것보다, 네가 진짜 원하는 걸 주는 게 낫잖아.”유진은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그럼 난 안 어렵게 할게요. 내가 회사 출근하면, 휴가 좀 더 주는 걸로 해요.”이에 진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럼 내가 휴가 쿠폰 만들어 줄게. 네가 원할 때마다 쓸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