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구택과 장시원이 동시에 노명성을 바라보았다. “노명성 대표님은요?” 명성이 잠시 침묵한 후, 침착하게 대답했다. “곧 결혼식을 올리죠.” 명성의 말이 떨어지자 세 남자는 동시에 잠시 침묵했다. 이어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화제를 돌렸다. 정원에서는 성연희가 요요와 함께 신나게 놀고 있었고, 소희는 옆에 있는 계단에 앉아 과자를 들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먹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물고기가 있는 작은 나무통에 먹이를 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연희가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일 오전에 신부 메이크업을 해볼 건데, 봐주러 올래?” 이에 소희가 대답했다. “우청아는 일 때문에 못 가니까 내가 갈게. 내일 오전엔 딱히 할 일이 없어.” 드라마 촬영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소희도 점점 한가해지고 있었다. “좋아! 기다릴게.” 그러자 청아가 말했다. “그럼 사진 좀 찍어줘. 나 미리 보고 싶어, 연희의 신부 모습이 어떨지!” “그래!”소희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연희를 예쁘게 찍어볼게.” 이에 연희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난 원래 예쁜데, 뭘 예쁘게 찍어야 해?” 그러자 소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안 예쁘게 찍어볼까?” 연희는 소희의 사진 찍는 솜씨를 떠올리며 무력하게 대답했다. “좋아, 그냥 예쁘게 찍어.” 청아는 옆에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식사는 물가에 있는 정자에서 차려졌고, 모두가 둘러앉아 화기애애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셨다. 시원이 모두에게 한 잔씩 술을 따라주며 청아를 챙겨준 모든 이에게 감사를 표했다. 진수원에서 직접 빚은 국화 매실주는 소희가 한 번 마셔본 적이 있어 그 맛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잔을 들자마자 구택이 가져갔다. 최근에 피임약을 먹지 않았던 소희는 참으며 술을 마시지 않았다. 시원은 고개를 들어 구택을 보며 의미심장 미소를 짓자 구택은 시원의 표정을 애써 무시하고 태연하게 소희에게 주스를 건넸다. 분위기는 굉장히 화기애애했고, 웃음과 대화가 밤하늘에 달이 뜰
소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실 필요 없으세요!” 스타일리스트는 조심스럽게 옆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드라마 세트장에서 일하신다는 걸 들었어요. 바쁘지 않으실 때 저랑 식사 한 번 어떠세요?” “기회가 되면요.” 소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네!” 스타일리스트는 소희를 향해 팬심을 나타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소희 특유의 차가운 기운에 스타일리스트는 두세 마디 말하고는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앉아 있게 했다.“소희야, 너도 메이크업 한번 해볼래? 어차피 너하고 임구택 씨 결혼식도 곧 할 거잖아!”연희의 제안에 소희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시간이 너무 길어! 너만큼 인내심이 없어.” “그럼 내 결혼식 때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드레스는 스스로 디자인할 거야 아니면 내가 골라줄까?” 연희가 묻자 소희는 태연하게 말했다. “네가 골라.” “그래!” 연희는 조금 흥분하며 말했다. “네가 나한테 웨딩드레스 디자인해 주고, 내가 네 옷 골라주고, 완벽한데! 마치 우리 둘이 결혼하는 것 같아!” 소희는 연희를 흘깃 바라보며 다소 무심한 반응을 보였지만 주변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들도 함께 웃으며 분위기를 즐겼다. 웃음과 대화가 이어지면서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연희의 메이크업이 완성되었고 연희는 소희에게 돌아서며 물었다. “어때?” 소희는 맑은 눈빛으로 칭찬했다. “정말 예쁘다!” “잠깐 웨딩드레스 갈아입고 올게. 넌 사진 찍어서 우청아한테 보내줘. 예쁘게 찍어, 내 미모를 망치지 마!” 연희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소희가 소파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 들 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연희 씨, 아래에서 누군가 찾고 있어요.” “누구죠?” 연희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누나! 나야!” 김영이 다가오며 연희를 바라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예쁘네!” 이에 연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
오르골 안에는 축하 카드가 없어서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성연희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음악상자를 들고 누가 이런 선물을 보냈는지 궁금해했다. 연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연희에게 예술적인 성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르골을 들어 올린 순간, 자동으로 열리면서 피아노곡이 흘러나왔다. 표시된 시간에 따르면 곡은 단 10초밖에 되지 않았다. 10초 동안의 피아노곡은 매초마다 ‘띡띡'하는 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 소희는 오르골을 계속 지켜보다가 곡이 절반을 지나자 갑자기 표정이 바뀌며 연희에게 돌진했다. 주변 사람들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모두가 놀라 얼굴을 찌푸리고 뒤로 물러났다. 김영조차도 놀라 두 걸음 물러섰다. 연희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당황했다가, 갑자기 소희가 오르골을 낚아채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소희는 빠르게 움직여 두 걸음을 뛰어, 오르골을 창문 방향으로 힘껏 던지고는 연희를 덮치며 크게 소리쳤다.“다들 엎드려!” 이때 ‘펑'하는 소리와 함께 오르골이 창문에 부딪혀 폭발했다. 전체 건물이 흔들렸고, 유리창은 불꽃처럼 폭발했다. 방 안은 돌과 먼지가 날리고 연기가 자욱했다. 창가에 가까웠던 두 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충격파에 휩쓸려 벽에 부딪혔고 잠시 후, 방 안은 조용해졌다. 층 아래 사람들이 달려와 상황을 목격하고는 구조 작업에 나섰다. “소희야!” 연희는 목소리가 떨리며 소희를 올려다봤다. “괜찮아?” 소희는 온몸이 쑤셨지만 천천히 일어나며 연희를 일으켰다. “괜찮아, 다른 사람들 다치지 않았는지 봐.” “소희야!” 김영이 달려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희야, 넌 괜찮아?” 연희는 김영을 무시한 채 소희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소희의 등에 박힌 유리 조각으로 인해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연희는 눈물을 흘리며 주위 사람들에게 외쳤다. “약 있어요? 먼저 약 가져와 주세요!” 하지만 소희는 연희의 손을 잡으며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그냥 작은 상처야.” 연희는 그제야 소희를
경찰이 도착해 3층으로 올라가 증거를 수집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성연희는 담당자에게 다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먼저 치료를 받게 한 뒤, 나중에 경제적 보상을 논의하기로 했다.소희는 성연희가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동안 화장실에 갔다.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는 세면대에 기대어 이번 사건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오르골은 해외에서 배송되었지만, 연희를 해하려는 사람이 반드시 해외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연희는 평소 행동이 도발적이었고, 특히 노명성을 유혹하려는 여자들에게는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았기에 그만큼 적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처럼 대담하게 연희의 목숨을 노린 사람은 분명 큰 원한이 있고, 상당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이일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노씨 집안과 성씨 집안을 동시에 건드릴 수 없었다.소희는 결혼식 전에 이 사람을 찾아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화장실에 잠시 머물렀던 소희는 밖으로 나오려던 찰나, 옆 구석에서 누군가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이선유, 너야?” 김영의 목소리가 들리자 소희는 걸음을 멈추고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천천히 미간을 좁혔다. 전화 반대편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김영은 분노했다. “나 알아. 네가 최근에 홍수철에게 새로운 폭발물에 관해 물어봤다고 하더라.”“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는데, 연희 누나한테 복수하려고 그랬던 거야?” “너 미쳤어?” “이건 살인이야!” 전화기 너머 선유도 격앙되어 소리쳤다. “참을 수 없었어! 난 복수하고 싶었어! 김영, 넌 이미 나를 배신했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를 비난하려고 해!” “맞아, 나는 너를 배신했어. 나는 연희 누나를 좋아하게 됐어. 네가 나에게 화를 내도 좋은데 다시는 연희 누나를 해치지 마!” “난 네가 누구를 좋아하든지 상관없어. 나는 성연희를 죽이고 싶어!” 선유는 악에 받쳐 절규했다. “나를 상처 입힌 사람은 한 명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 소희도 조심하라고 전해!” “선유야, 제발, 그만해.
성연희는 김영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뒤, 걸음을 재촉해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연희가 지나간 자리에는 차가운 기류가 흘렀고 연희의 당당한 모습이 더욱 돋보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김영이 따라오지 않았는데 김영은 자기 모습이 초라하다고 느끼며 혼자서 고민에 잠겼다.‘만약 노명성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 사람은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을까?' 그리고 그 대답은 명성이라면 분명히 앞으로 나아갔을 거라는 것이었다. 김영은 자신이 진정으로 패배한 것은 명성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사실을 깨달았다. 김영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열정적이고 용감하지 않았으며, 연희 같은 빛나는 여자를 감당할 자격이 없었다....세 시간 후, 경성.이씨 그룹 본사 전화를 끊은 뒤부터 이선유는 마음이 불안했다. 김영이 연희한테 잘 보이려고 선유가 이 일을 저질렀다고 말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리고 선유는 한 번 연희에게 당한 적이 있어서, 연희가 아랑곳하지 않고 경성까지 찾아올까 봐 두려웠다. 선유는 집에서 회사로 달려와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두 명의 경호원을 문 앞에 세웠다. 55층 높이의 큰 빌딩, 강력한 보안 시스템, 엘리베이터는 내부 직원만 탈 수 있고, 문밖에는 보디가드가 지키고 있자 선유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설령 임구택이 와도 자기를 데려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 밖에서, 두 보디가드는 왜 자신들이 문 앞을 지키라는 지시를 받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루하게 서 있던 중, 한 명이 갑자기 말했다. “무슨 소리 안 들려?” 다른 한 명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옥상 같은데?” 보디가드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사무실 안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두 보디가드는 얼굴이 새하얘지며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둘은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섰다. 넓은 유리창이 폭발로 인해 박살 나 있었고, 바깥에는 두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자가 한 손으로 로프를, 다른 한 손으로 선유를 붙잡고 로프의 힘을 빌려 위로 올라갔다
25층 높이의 건물, 200미터의 고공에서 이선유는 찬바람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흔들리며 전전긍긍했다. 공포에 질려 큰소리로 자신의 아빠를 부르짖었다. “아빠, 아빠!”소희는 선유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동안 선유를 흔들어 더욱 강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고공의 바람에 얼굴이 일그러지고 어지러움과 공포가 극에 달하면서 선유는 겁에 질려 외쳤다. “소희,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나를 놔줘!”선유는 울부짖으며 소리쳤지만, 격렬하게 몸부림치지는 못했다. 자칫하면 대충 걸친 코트가 끊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때? 재밌어?” 소희의 얼굴에는 감정이 없었고 냉혹한 눈빛으로 선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성연희를 괴롭히고 싶어? 그럼 내가 네 실력을 한번 보자. 연희를 건드릴 때마다, 난 이렇게 널 찾아와서 괴롭힐 거야. 누가 끝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자고!”“아, 아!” 선유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흐느끼며 울부짖었다. 선유의 목소리는 금방 바람에 막혔고, 온몸이 떨렸다. 선유는 말을 잇지 못하고 오로지 비명만 질렀다.“선유야!” 갑자기 한 남자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와 소희가 고개를 돌려보니, 이진혁이 사람들을 이끌고 달려오고 있었다. 선유는 난간 밖으로 반 미터나 추락했다가 멈췄다. 아래를 볼 수 없었지만 이진혁의 목소리를 듣고는 절규했다. “아빠, 날 구해줘! 제발!”이진혁은 소희가 화를 내서 정말로 선유를 던질까 봐, 움직이지 못하고 숨을 죽인 채 소희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소희인가요?”이진혁은 건물 옥상에 앉아 있는 소희를 바라보았다. 소희는 검은색 셔츠에 짙은 녹색 긴 바지, 단정한 마틴 부츠를 신고 있었고, 그 아름다운 얼굴에는 차가운 살기가 감돌았다. 한 손에는 사람의 목숨줄을 매달고 있었지만, 소희는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태연했다.“네, 제가 소희예요.” 소희는 냉담하게 대답했다.“제 딸을 놔주시면, 저는 당신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 있습니다.” 이진혁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두 명의 보디가드가 이선유를 에스코트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나머지 네 명은 옥상 입구에 남아 멀리 소희를 주시했다. 소희가 이진혁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서였다.소희와 이진혁은 무려 30분 동안 대화를 나누었고 보디가드는 소희가 옆에 세워진 헬리콥터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달려가 이진혁을 뒤로해 급히 보호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소희는 갑자기 돌아서 이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 딸에게 말해,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성연희를 다시 해치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진언을 내 앞에서 언급했다는 건, 내가 누군지도 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만 까불라고 해요!”이진혁은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걱정 마요, 선유는 제가 잘 관리할 테니까.”“그래요.”소희는 그 말을 마치고 곧바로 헬리콥터에 올랐다. 보디가드들은 고개를 들어 이륙하는 헬리콥터를 바라보았고, 프로펠러의 거대한 소음이 고막을 뚫을 것 같았다.이진혁이 처음 소희의 정체를 알아냈을 때는 아직 의심의 여지가 있었지만, 오늘 직접 마주친 후에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선유는 어떤가?” 이진혁이 뒤돌아보며 물었다.보디가드가 바로 다가와 대답했다.“아가씨는 얼굴에 상처를 입었습니다.”이진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선유 잘 챙기고 강성 사람들과 다시 연락을 취하지 못하도록 해!”“알겠습니다.” 보디가드가 바로 대답했다....소희가 강성으로 돌아온 후, 먼저 병원에 들렀다가 그 후에야 드라마 촬영장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소희는 기다리고 있던 성연희를 만났다. 연희는 화이트 긴 드레스에 베이지 코트를 걸치고 있었고 소희를 보자마자 바로 다가왔다.“어디 갔었어?”그러자 소희는 솔직하게 말했다.“경성에 다녀왔어.”“이선유를 만나러 간 거야? 그 오르골 보낸 사람 이선유 맞지?” 연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연희는 떠난 후에 더욱더 소희가 갑자기 떠난 이유를 알아차리고는 불안해졌다. 그래서 급히 드라마 촬영장으로 서둘러 와서 소희가
저녁때, 임구택은 소희를 만나기 위해 드라마 촬영장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차 안에서 기다리지 않고 촬영장으로 들어갔다.멀리서, 미나는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가 오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일어났는데 굉장히 놀라운 기색이었다. 구택이 가까이 다가오자 미나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소희 씨 찾으러 오셨죠?”이에 구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전화를 해봤지만 연결이 안 돼서요. 소희 지금 여기 있나요?”미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소희 씨 오후에 돌아왔어요. 제가 데려올게요.”“앞마당에 있나요? 제가 직접 갈게요.” 구택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며 걸음을 옮겨 제작진이 임시로 사용하는 별장 옆 작은 마당으로 향했다. 촬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마당에는 많은 물건들이 쌓여 있었고, 다소 지저분했다.구택은 한참을 찾다가 드디어 바나나나무 아래에서 잠든 소희를 발견했다. 바나나나무 아래에는 누울 수 있는 의자가 있었고, 소희는 그 의자에서 비스듬하게 누워있었다. 소희의 얼굴에는 디자인 도면이 덮여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해질녘의 태양이 바나나나무 잎 사이로 비추며 소희의 몸 위에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주변은 사람들이 다니고 소란스러웠지만, 소희는 전혀 방해받지 않았다.구택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다가가 디자인 도면을 들어올리자 소희의 아름다운 옆모습이 드러났다. 갑작스러운 빛에 소희는 눈을 뜨고 구택을 바라보았고, 소희의 눈에는 떨어지는 해질녘 빛과 구택이 보였다.구택은 한 손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소희의 턱을 받치고는 애정이 담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원래 잠든 척하면서 여기서 늑장을 부리고 있었던 거야?”소희는 천천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팔을 구택의 목에 감고 몸을 기울여 턱에 이마를 비볐다. 그리고는 약간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어떻게 왔어?”구택은 소희의 볼에 가볍게 입 맞추며 대답했다.“보고 싶어서.”“나도!”소희가 고개를 들며 구택을 바라보았는데 소희의 눈빛은 깊
다음 날.아침 열 시도 채 되기 전에 조백림이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밤 임구택과 소희의 싱글 파티를 넘버 나인에서 열어!]장시원이 답했다.[확실히 싱글 파티라고 부를 수 있어? 구택에게 가서 물어봐, 싱글이라고 말할 면목이 있냐고.]그러자 구택이 쿨하게 답했다.[자녀까지 둔 어떤 사람은 여전히 싱글이라고 떠들고 다니던데, 내가 뭐 어때서.][내가 언제 그런 소리 했다고! 모함 그만하고 메시지 빨리 취소해!]이때 청아가 등장했다.[임구택 사장님, 저랑 잠시 통화 가능할까요?][물론이죠. 그리고 소희도 바로 옆에 있어. 내 사랑 앞에서 전부 털어놓고 진실만 말할게요.]시원이 분노 이모티콘을 보내며 말했다.[임구택, 내가 신랑 들러리인 거 잊었어? 이렇게 날 곤란하게 해도 돼?]구택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왜 그렇게 초조해?]시원은 더 이상 답이 없었다. 아마 서둘러 청아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해명하고 있는 듯했다.이때 성연희 등 여러 사람이 동시에 메시지를 보냈다.[백림, 파티 나눠서 하는 게 어때? 임구택 사장님은 당신들이 맡고, 우리 소희는 내가 맡을게!]연희의 말에 백림이 말했다.[나눠서 하는 건 괜찮지만 많은 사람이 가족을 데려오겠다고 신청할걸.]시원이 전화를 마치고 돌아와서 말했다.[연희 씨, 저희 청아도 가족 동반 신청할게요!]이에 명성도 거들었다.[연희도 가족 동반 신청할게요.][나도 소희 가족으로 동반 신청.][우리 집 간미연도 가족 동반 신청이요!]백림은 계속해서 유정을 태그하며 말했다.[유정, 이제 네 차례야!]유정은 장난스럽게 응수했다.[다들 남자가 신청하길래 나도 나서야 하는 거야?][우린 각별한 사이잖아. 네가 날 제일 사랑하니까 당연히 너도 신청해야지!]유정은 그에게 발차기 이모티콘을 날렸다. 모두가 단체 채팅방에서 떠들썩하게 농담을 주고받다가 저녁 계획을 확정하고 각자 할 일을 하러 떠났다.구택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돌아서서 소희를 끌어안고 그녀의 옆 얼굴에 키스를
소희는 남궁민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나 임구택을 정말 사랑해. 전에 말했잖아, 우리 이미 결혼한 상태야. 이번 결혼식은 그저 형식일 뿐이야.”남궁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럼...”소희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심명이 장난친 거야.”남궁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심명에게 짧게 눈길을 보내며 깨달은 듯 얼굴을 굳혔다. 화가 나고 민망한 듯이 다시 한번 심명을 노려봤다.십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심명은 남궁민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눈치채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구택에게 말했다.“궁금하지 않아요? 저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지.”구택은 평온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며 대답했다.“아니, 전혀요.”심명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자신감이 넘치는 건가?”구택은 담담하게 말했다.“아뇨, 내 아내를 믿는 거죠. 알다시피, 네가 소희가 나에게 시집가는 걸 못마땅해하는 건 알고 있어요.”“그렇지만 이런 식의 얕은 수작, 조금 저급하지 않나?”심명은 천천히 찻잔을 들었다. 그의 손은 하얗고 긴 손가락이 우아하게 뻗어져 있어 그 모습이 여성보다도 더 우아해 보였다. 찻잔을 손에 든 그 모습은 기품이 넘쳤고 차갑게 빛나는 매력이 묻어났다.심명은 찻잔을 가볍게 들어 마시며 미소 지었다.“걱정 마요. 난 단지 소희를 축복해 주기 위해 온 거고 다른 의도는 없으니까. 작은 장난일 뿐이니.”“어차피 소희는 당신을 좋아하니까, 나 역시 소희가 당신과 행복하게 살길 바라고 있고.”“만약 누군가가 이 결혼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내가 먼저 그 자리를 정리할 거거든요.”구택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역시 똑똑하시네요.”심명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한층 더 농담조로 말했다.“적어도 남궁민보다는 더 똑똑하긴 하죠.”잠시 후 소희와 남궁민이 걸어왔고, 소희는 말했다.“대화는 끝났어. 이제 가자.”심명은 남궁민의 냉랭한 시선을 알아차리고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구택은 남궁민에게 택시를 불러
임구택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고, 얇은 입술이 일자로 굳어졌다.“무슨 뜻이지?”남궁민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사장님은 분명히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을 거예요. 그저 소희를 놓아주기만 하신다면, 조건이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제가 무조건 받아들일게요.”구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할게요. 당신이 소희를 배신했던 일에 대해 나는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다만 소희가 널 친구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 역시 소희와 똑같이 너를 친구로 대하는 거예요.”“네가 결혼식에 와서 진심으로 축복해 주겠다면 환영하겠지만, 다른 의도가 있다면 미리 말해 두지. 강성이든 삼각주든, 어디든 내 말이 통하는 곳이니.”남궁민은 일어나 구택과 비슷한 키로 그를 응시했다. 그의 눈빛에도 결연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자신의 강함을 내세워 여자를 옭아매는 것뿐이라면, 그게 이디야의 수준인가 보군요.”그 말을 남긴 채 남궁민이 먼저 걸어 나갔고, 구택은 순간 당황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남궁 가문에서 후계자를 정할 때는 정말 지능 검사를 안 하는 건가?...그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전채 요리가 이미 나와 있었다.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묘했다. 그나마 소희가 아까 미리 경고해 둔 덕분에 큰 언쟁은 벌어지지 않았다.식사 중간, 남궁민은 한참을 떠들며 C국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는 어렸을 적 외할머니가 자주 C국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며 자신은 C국 음식을 먹고 자란 셈이라고 덧붙였다.구택이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남궁민 씨의 약혼녀가 Y국 사람이라던데, 앞으로는 Y국 음식을 더 즐기게 되겠군요.”남궁민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저와 린다는 이미 파혼해서요.”구택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당신 아버지가 다시 선택한 약혼녀도 Y국 황실의 사람이라던데요.”남궁민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그는 더
남궁민은 얼른 말했다.“서희, 나 아무 말도 안 했어!”소희가 눈을 살짝 들어 그를 쳐다보자, 남궁민은 그제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이제 셋 다 말없이 침묵이 흘렀다. 그러던 찰나에 임구택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화면을 잠깐 확인하더니 소희에게 말했다.“전화 좀 받고 올게. 네가 먼저 주문하고 있어, 금방 올 거야.”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다녀와.”구택이 전화를 받으며 나가자, 남궁민도 잠시 눈빛을 빛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소희에게 말했다.“나도 화장실 좀 다녀올게.”남궁민 또한 방을 나갔다.이제 방 안에는 소희와 심명만 남았고, 소희는 그에게 말했다.“그만 좀 그 사람 자극해.”심명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이러는 이유는 단 하나야. 그 사람에게 네 곁엔 언제나 널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지. 위기의식을 좀 심어주려고.”소희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그런 거 필요 없어.”심명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하지만 네가 알았으면 좋겠어. 내가 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불편할 거야.”“그걸 피하려고 나와 연을 끊고 영영 남처럼 지내겠어?”소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럴 일 없을 거야.”심명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래, 이건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일 거야.”소희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 진지하게 말했다.“이젠 여자친구를 사귀어 봐.”심명은 갑작스러운 말에 마시던 주스를 거의 뿜을 뻔했고, 소희는 재빨리 휴지를 건넸다.심명은 못마땅한 얼굴로 휴지를 받아 들고는 말했다.“그런 말로 날 상처 주려고? 네가 임구택 때문에 이렇게 나한테 비수를 꽂을 수 있는 거야?”소희는 휴지를 더 건네며 말했다.“나 진심이야. 진지한 연애를 해봐.”심명은 차갑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날 잊어버리게 하려는 거지? 정말 못됐어.”소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좋아, 연애하지 마. 평생 연애도 하지 말고, 나중에 네가 늙으면 나랑
소희가 메시지를 보낸 지 3초 만에 임구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차 안에서 소희는 깜빡거리는 전화 화면을 잠시 응시했다. 남궁민이 불편해할까 싶어 임구택이 무슨 말을 할지 걱정되어 잠깐 망설이다 전화를 끊고, 대신 메시지를 보냈다.[하고 싶은 말 있으면 문자로 해.][왜 전화 끊었어? 그 사람은 왜 왔어?]소희는 첫 질문은 넘기고 대답했다.[아마 우리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온 것 같아.][그런데 왜 굳이 그 사람한테 밥까지 사?][손님이니까 예의를 지켜야지.]그러자 구택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그럼 어디로 가는지 주소 보내.]소희는 예정된 식당 주소를 보냈다. 그 사이 앞좌석에서는 심명과 남궁민이 여전히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고, 소희는 눈을 감아버렸다.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소희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구택을 발견했다. 그는 날렵하고 우아한 맞춤 정장을 입고, 시계를 확인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소희에게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심명도 구택을 발견하곤 얼굴을 찌푸리며 소희에게 물었다.“왜 임구택까지 불렀어?”소희가 대답했다.“구택도 남궁민을 알아.”심명은 불편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며 가려고 했다. 그때 남궁민이 비웃으며 말했다.“뭐죠? 얼굴 보기도 전에 도망가려는 건가요? 그러니까 좋아하는 여자를 남에게 뺏긴 거죠.”소희는 남궁민을 향해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무슨 말이야?”심명은 얼굴이 굳어지며 남궁민에게 한 대 더 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다가 소희의 물음에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 임구택이 왔으면 잘됐네. 나도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겠군.”구택은 이미 소희를 보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소희의 손을 먼저 잡은 뒤 남궁민과 심명을 번갈아 보았다. 이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은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남궁민이 입을 열기 전, 소희가 먼저 소개했다.“내 남자친구, 임구택.”남궁민은 이미 이디야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손을 내밀며 태연하게 말했다.“사장님, 반가
“남궁민은 어디 있어?” 소희가 물었다. 심명이 옆으로 비켜서자, 소희는 소파에 다리와 팔이 묶인 채 앉아 있는 남궁민을 보게 되었다.둘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소희는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남궁민은 반가움에 찬 얼굴로 말했다.“소희, 드디어 다시 만났네!”소희는 다가가 직접 그의 묶인 끈을 풀어주며 물었다.“여긴 어쩐 일로 왔어?”남궁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짙은 갈색 눈동자에는 온화한 빛이 감돌았다.“당신을 보러 왔지!심명은 이 광경에 속이 뒤틀리는 것처럼 불편해하며 눈살을 찌푸렸다.“말하려면 제대로 해. 그 지독한 표정은 뭐야? 나도 아직 여기 있거든.”남궁민은 심명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오직 소희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사실 예전부터 찾아오고 싶었어. 그런데 한동안 강시언의 일을 돕느라 조금 늦었거든.”소희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설마 새해에 그 메시지 보낸 게 당신이었어?”남궁민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나야!”소희는 살짝 웃으며 물었다.“지금 어디서 묵고 있는데?”“호텔에 있어.”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그럼 점심은 내가 대접할게.”“좋지!” 남궁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가 사는 곳이니, 네가 주인이지.”그때 심명이 갑자기 끼어들며 소희에게 애교 섞인 불만을 표했다.“나도 같이 갈래! 그런데 왜 나한텐 밥 사준다고 안 해?”남궁민이 비웃으며 말했다.“여긴 네 구역이라며. 자기 땅에서 뭘 또 사달라고 하는 거야?”“우리 둘 사이에 당신이 끼어들 일 아니거든요!” 심명은 이를 악물자, 소희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둘 다 그만 좀 해. 점심은 내가 두 사람 다 대접할 테니까.”두 사람은 동시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서로를 한 번 흘겨보더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점심시간이 다가와 세 사람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소희는 차를 가져왔고, 남궁민은 아까까지 묶여 있었기에 당연히 소희의 차에 탔다. 그는 앞좌석 문을 열
소희는 놀란 듯 말했다.[남궁민? 어디 있어?]“지금 내 곁에 있어. 네가 오랫동안 미행을 당하는 걸 보고 그를 데려왔어.”“그자가 혹시라도 너를 괴롭히는 거라면, 내가 당장 그를 돌려보내 버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 심명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소희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주소 좀 보내줘. 내가 곧 갈 테니까 그 사람한테 손대지 마.]“알았어!” 심명은 기쁘게 대답한 뒤, 덧붙였다.“운전 조심하고 서두르지 마.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릴게.”소희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심명은 소희와 곧 만나게 될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즉시 주소를 보냈다. 그러자 남궁민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심명을 쳐다보았다.“이제 내가 소희의 친구라는 걸 알았으니, 얼른 나 좀 풀어줄래요?”심명은 남궁민이 자신을 소희의 전 남자친구라 소개한 이후로 불편함이 가득했기에, 냉소하며 말했다.“소희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뭘 그렇게 서두르나요? 얌전히 기다려요.”남궁민은 손이 뒤로 묶여 있었지만, 다리는 자유로워 스스로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그는 심명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소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심명은 남궁민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소희랑 어떻게 알게 된 사이에요?”남궁민은 손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얼굴로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무시하듯 말했다.“내가 왜 대답해야 하죠?”심명은 냉소하며 말했다.“그럼 내가 소희가 오기 전에 널 영영 소희를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릴 권리도 있다는 거 잊지 마요.”남궁민은 심명이 실제로 그렇게 할 사람이라는 걸 알고, 결국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우린 꽤 오래된 친구예요.”“꽤 오래됐다고요? 그럼 내가 소희를 만난 시기보다 더 이른 시절이라는 건가요?”“당연히 그렇죠!” 남궁민은 소희와의 만남을 자랑스럽게 회상하며 말했다.“그때 소희가 나한테 총을 건네줬거든요.”심명은 비웃으며 말했다.“자기 보호도 못 하는 주제에 전장에 나간 걸 자랑이라고 해요?”“난 그래서 그 생사를 함께한 친
남궁민은 코웃음을 치며 느긋하게 말했다.“나랑 소희의 관계? 나는 소희의 전 남친이자, 생사를 함께한 친구...”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명은 벌떡 일어나 그의 얼굴을 위험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당신의 소희의 뭐라고요? 방금 잘 못 들었으니까 다시 말해봐요.”남궁민이 태연하게 말했다.“나는 소희의 전...”퍽! 심명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심명의 매력적인 눈매는 분노로 붉게 물들었고, 섬뜩하고 냉혹한 기운이 감돌았다.“내가 아는 한, 소희에게 전 남자친구가 있다면 그건 나뿐이에요. 감히 나의 소희를 핑계 삼으려고 하다니, 죽여서 내쫓아버릴 줄 알아요!”남궁민은 입가에 상처가 생겨 피가 맺혔다. 이를 악물고 심명을 노려보며 말했다.“여기도 법과 인권이 있는 나라니 조심해요. 내가 당신을 고소할 거니까. 아니, 지금 내 인신 자유를 불법으로 제한하고 있으니 꼭 법적 조치를 취할 거예요!”심명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이곳은 내 구역인데, 당신이 뭘 하든 내가 겁낼 줄 알아요?”그리고 옆에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데려가서 실컷 두들겨 패. 사실대로 말할 때까지 계속.”남궁민은 심명이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난 진짜로 서희를 알아요. 그래서 C 국까지 찾아온 거라고요!”심명은 남궁민이 서희라는 이름을 말하는 걸 듣고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며 경계심이 더해졌다.“찾으러 온 이유가 뭐죠?”남궁민은 오만하게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말했잖아요. 우리는 친구이자, 생사를 함께한 사이라고.”“생사를 함께 했다고요?” 심명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럼 당신이 우리 소희를 구한 적이라도 있다는 건가요?”“서희가 날 구했죠.” 남궁민은 자부심이 서린 표정으로 답했다.“또한 우린 함께 싸운 적도 있다고.”심명은 소희의 과거에 대해 일부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에 약간의 신빙성을 느끼기 시작했다.“남자가 여자에게 구원받았다니, 정말 큰 은혜를 입었네.”남궁민은 심명의 비꼬는
지엠 본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한 소희는 차를 세우고 내려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몇 대 떨어진 곳에 파란색 페라리가 멈춰 서더니, 연한 파란색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가 소희 쪽을 바라보며 걸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남자는 몸을 돌릴 겨를도 없이 목덜미에 통증을 느끼며 눈앞이 깜깜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곧이어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다가와 검은색 롤스로이스로 끌고 가 태웠고, 차는 신속히 사라졌다.소희는 차 뒤쪽을 돌아가며 누가 자신을 미행했는지 확인하려 했으나, 페라리가 주차된 자리까지 가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차의 주인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소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혹시 자신이 오해했나 싶었다. 그저 우연히 그곳에 주차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떠나버린 걸까?더 이상 찾을 수 없자, 소희는 신경을 쓰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화영을 만나러 갔다.화영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화영은 회의 중이었다. 소희는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며 기다렸다.약 30분 후, 화영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소희는 소파에 기대어 쿠션을 안고 잠들어 있었다.소희는 소리에 금세 눈을 떴다. 화영인 걸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은 채 잠을 깨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영은 소희에게 커피 한 잔을 준비해 건네주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자 화영은 소희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웃으며 말했다.“며칠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구택 사장님이 자제를 좀 하셔야겠어.”소희는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며, 눈가에 핀 연한 홍조가 스며들었다. 그녀는 커피잔을 손에 들고 물었다.“설탕 넣었지?”“넣었어. 세상에, King이 달콤한 걸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화영이 웃저, 소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먼저 마시고, 다 마시면 드레스 피팅하러 가자.” 화영이 말에, 소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투덜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