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수란이 제일 신경 쓰는 건 바로 자기 아들, 부민혁이었다.윤슬이 자기 아들을 압박할 거란 말을 들으니, 갑자기 테이블을 탁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그러기만 해 봐! 전 시혁이의 엄마예요. 저랑 민혁이를 괴롭히면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당할 거예요.”그러자 노부인이 냉소를 지었다.“넌 시혁이 생모가 아닌 계모야. 확실히 시혁이를 잘 챙기고 사랑도 주긴 했지만, 넌 윤슬한테 한 번도 잘해주지 않았잖아. 그런데 윤슬이 왜 널 존중하고 너한테 잘해주는 거지? 네가 윤슬이라고 생각해 봐. 시어머니가 널
왕수란을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결국에는 체념한 듯 손을 놓았다.“어차피 시혁이도 그랬어요. 윤슬이 사택에 들어올 일은 없을 거라고. 잘 됬네요. 저도 꼴 보기 싫었는데. 같이 안 살면 매일 볼 필요 없으니까, 제 신경을 건드릴 일도 없겠네요.”왕수란은 자기가 윤슬을 무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억지부리고 있다. 그리고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노부인은 그저 왕수란이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왕수란이 이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아무래도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왕수란의 통통한 얼굴에는 자랑스러운 기색으로 가득했다.“그래도 몇 년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못 배운 건 아니에요. 적어도 눈치는 볼 줄 알아요.”“그래, 계속 유지해.”노부인은 드디어 좋은 얼굴로 왕수란을 쳐다보았다.왕수란은 노부인의 인정에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어머님 칭찬, 정말 처음 들어요. 흑…….”왕수란은 너무 감동해서 울먹거리기 시작했다.그런 왕수란의 반응에 어쩌다 좋아진 노부인의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짜증 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네가 그렇게 멍청한 짓을 했는데, 내가 어떻게 널 칭찬하겠
왕수란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어머님. 절대로 간섭 안 할게요, 진짜. 문 닫고 다른 사람 일은 물어보지도 않겠습니다.”왕수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어머님, 저 먼저 돌아갈게요. 돌아가서 이수연 그 여자를 손 좀 봐주려고요. 그 여자 때문에 제가 큰코다칠 뻔했잖아요.”말을 마친 왕수란은 흉악한 표정으로 기세등등하게 가버렸다.노부인은 그저 체념한 듯 고개를 저을 뿐, 왕수란을 말릴 뜻은 전혀 없었다.왕수란이 류씨 가문의 트집을 잡는 행동에 노부인은 반대하지 않았다.아무래도 류씨 가문이 한 짓들이 너무나
부시혁이 윤슬 앞에 막아서면서 지켜주자, 왕수란은 질투가 나면서도 화가 났다.어머니인 자기조차 부시혁에게 이런 보호를 받은 적 없었다는 게 질투 났고,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자기가 뭘 할지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행동하는 부시혁 때문에 화가 났다.‘아무래도 엄마인데, 날 이렇게 못 믿는 거야?’이 생각에 왕수란은 원망하는 눈빛으로 부시혁을 쳐다보았다.부시혁은 왕수란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이마를 찌푸리고 왕수란에게 물었다.“여긴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언제 오셨어요?”왕수란은 시무룩하게
부시혁은 입술을 한번 꾹 다물었다.“하지만 방금 일부러 널 무시하고 지나갔잖아. 널 존중하지 않는 기분이 들었어.”“상관없어요.”윤슬은 개의치 않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다.“차라리 절 무시하고 가는 게 나아요. 그렇지 않으면 절 노려보면서 이상한 소리 할 거 아니에요. 무시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저도 딱히 말하고 싶지 않았거든요.”여기까지 말한 윤슬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떠보는 식으로 남자를 쳐다보며 물었다.“제가 당신 어머니한테 너무 무례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체념한 듯
남자는 윤슬의 반응에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왜 그래?”윤슬의 입꼬리가 움찔했다.‘왜 그래? 이 남자, 지금 나한테 왜 그러냐고 묻는 거야?’윤슬이 대답하지 않자, 부시혁은 손을 내밀고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끌어내리려고 했다.“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숨 막히지도 않아? 자, 얼른 내려.”‘싫어. 꼭 이러고 있을 거야.’윤슬은 손에 힘을 주며 부시혁의 생각대로 하지 않으려 했다.하지만 윤슬의 힘이 부시혁보다 클 리가 없었다.그래서 남자는 아주 쉽게 윤슬의 손을 내려놓았고 그녀의
“그래요?”부시혁은 노부인을 잠시 주시했다.그는 왠지 모르게 노부인이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노부인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 부시혁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아무튼 왕수란이 고택에 온 목적이 윤슬과 상관없다면 부시혁도 꼬치꼬치 캐묻고 싶지 않았다.“참, 윤슬아.”노부인은 갑자기 뭐가 생각 난 듯 윤슬을 쳐다보았다.그러자 차를 마시고 있던 윤슬이 바로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네, 할머니.”윤슬의 심장이 살짝 떨렸다.‘설마 날 놀리시려는 건 아니겠지?’윤슬이 불안해하고 있을 때, 노부인이 다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