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당신이 의사도 질투하는 줄 알았어요.”윤슬은 부시혁을 놀리며 말했다.그러자 부시혁은 긴 팔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그녀를 자기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네 남편, 그 정도로 속이 좁지 않아. 의사를 보통 남자로 볼 정도는 아니야.”아무튼 그에게 있어서 임이한은 정상적인 남자가 아니었다.정상인 남자가 아니라면 자연스레 상관이 없었다.윤슬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네, 네. 우리 부시혁 씨는 세상에서 속이 제일 넓은 사람이에요.”“당연하지.”부시혁은 턱을 들어
“할 거 다 했어요?”윤슬의 얼굴이 또다시 빨개졌다.“제가 무서워할까 봐, 일부러 위로해 준 거예요. 그리고 무섭고 아픈 검사를 할 때 옆에 있어 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얘기가 좀 길어진 거예요. 미안해요. 오래 기다리게 해서.”“그렇게 오래 기다리지도 않았어요.”임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말했다.“그럼 부시혁이 오늘 하루 같이 있어 주겠다고 한 거예요?”“네.”윤슬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임이한은 메스를 돌리며 말했다.“그래도 제법 남자답네요.”“원래 남자잖아요.”윤슬이 참지 못하고 강조했다.그러자 임이
임이한은 꽁냥거리는 두 사람을 한번 보고 아무 말 없이 맞은편 유리 약장이 놓인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약장에서 소화제 하나를 가져와 부시혁에게 던져주었다.부시혁은 아주 정확하게 소화제를 잡았다. 그 동작은 너무나도 멋있었다.그 장면을 본 윤슬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그러자 부시혁은 자랑스럽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두 알만 주면 돼.”임이한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서 말했다.부시혁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임이한이 시키는 데로 소화제 두 알을 윤슬한테 건네주었다.“먹어.”윤슬은 확실히 배가 터질듯한 느낌이 들었다.
윤슬도 알고 있다. 부시혁이 이러는 건 다 그녀를 위해서였다.독촉하는 것도 그녀가 신경 쓰여서 그랬다.‘그렇지 않으면 날 그냥 내버려 뒀겠지.’“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이때 임이한이 입을 열었다.“그렇지 않으면 혼자서 얼마 견지하지 못할 테니까요. 경추랑 허리를 개선하려면 오랜 시간을 견지해야 효과가 있어요. 하루, 이틀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요. 만약 윤슬 씨를 감시하는 사람이 없다면 아마 며칠 안 가고 포기할 거예요.”부시혁은 임이한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윤슬은 두 남자의 반응에 억지로 미소를
그 사람은 등지고 서 있었는데 부시혁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서서히 몸을 돌렸다.그 사람은 바로 병실을 둘러본다고 나간 임이한이었다!부시혁과 임이한은 상대방이 여기에 있다는 걸 전혀 의아해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은 미리 약속을 한 모양이었다.“말해봐. 단풍이한테 유전병이 있는지 없는지?”부시혁은 임이한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이한은 벽에 기댄 채 대답했다.“다행히 없어. 고도식의 신부전을 유전 받지 않았어.”임이한의 대답에 부시혁의 굳어있던 표정이 드디어 풀렸다.“그럼 됐어.”하지만 부시혁의
부시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상 의문이 없다는 뜻을 표시했다.임이한은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내뿜었다.“그래서 어제 퇴근하고 임 씨 고택에 가서 고조할아버지의 노트를 찾아봤어. 거기엔 고씨 가문 유전병에 대단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었는데, 고씨 가문의 유전병은 남자만 걸린다고 했어. 그리고 여자는 간부전을 유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자가 낳은 아이도 아무 문제 없다고 적혀있었지.”이 말을 들은 부시혁의 눈빛이 순간 밝아졌다. 원래 무표정이던 그의 얼굴에서 약간 흥분하는 기색이 보였다.“정말?”“노트에 그렇게 적혀
[안녕하세요, 윤슬 씨.]소성은 허허 웃으며 인사했다.윤슬은 시선을 내리고 주먹을 꼭 쥐며 마음속의 불안함을 억지로 눌러 내렸다. 그리고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안녕 못하겠네요. 이렇게 늦었는데 무슨 일로 연락을 한신 거죠?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지금은 새벽 12시에요. 지금 전화 오는 게 실례라는 생각 안 드나요? 남의 휴식을 방해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요.]윤슬의 날카로운 말에도 소성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죄송해요, 제 생각이 짧았네요. 하지만
윤슬은 냉소를 지었다.[이번 일은 저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요. 시혁 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죠.][뭐라고요?]전화 맞은편의 소성은 원래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는데 윤슬의 말을 듣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부시혁한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고요?][제가 시혁 씨한테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 때문에 꽤 흥분하시네요? 아니면 제가 시혁 씨를 찾아가길 바라는 건가요?]윤슬은 눈알을 살짝 굴리며 뭔가 생각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지팡이를 잡고 있던 소성의 손에 갑자기 힘이 들어가더니 핏줄까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