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한테 거짓말 안 해."부시혁도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네가 오래 기다릴까 봐 제일 바른 헬기를 타고 왔어."그는 그녀와 7시에 육재원 집으로 가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그가 고택에서 나왔을 땐 이미 6시 반이 넘었다. 그래서 그녀와 7시에 육씨 가문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이미 늦었다고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는 지인을 찾아 헬기를 타고 천강에 갔다.최소한 조금 일찍 가면 그렇게 많이 늦지 않을 테니까."전 당신이 이런 방법으로 올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십여 분 안에 도착한다고 했을 때
"뭐라고요?"윤슬은 그의 말에 화가 나서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이제야 알았다. 이 남자는 뭐라고 해도 그녀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이렇게 그의 어깨에 짊어져 있어서 배가 너무 불편했고 쪽팔려서 죽을 것 같았지만 감히 힘을 주고 몸부림치질 못했다.떨어질까 봐 무서워서 그런 것도 있었고 또 그의 상처를 건드릴까 봐 걱정이었다.즉 그녀는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부시혁은 윤슬을 어깨에 짊어지고 옥상을 향하는 계단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계단 입구에 도착한 그들은 제일 위층 복도에 들어섰다.윤슬은 익숙한
윤슬은 위에 있는 남자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일어나봐요. 전화 왔어요."부시혁은 그녀의 재촉에 입술을 한번 꾹 다물고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일어났다.윤슬은 소파 손잡이에 앉아 헝클어진 머리를 신경 쓸 새도 없이 바로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냈다.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얼른 입을 열었다."어머님 전화. 아마 우리가 언제 도착할지 물어보려고 전화했나 봐요."말을 마친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어머님."부시혁은 그녀 곁에 앉아 부드러운 동작으로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전화 맞은편에 육 부인은 거실 소파에 앉
윤슬은 전에 이 남자의 헛소리하는 능력이 이렇게 대단하다는 걸 발견 못했다.하지만 이런 모습이 꽤 웃기긴 했다.이 생각에 윤슬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부시혁은 그녀가 웃는 걸 보자 이상해서 물었다."왜 그래?"'왜 갑자기 웃는 거지?'윤슬은 그를 한번 흘겨보았다."왜 웃는 거 같아요?""모르겠어."부시혁은 고개를 저었다.그는 정말 짐작이 안 갔다.그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뾰로통해서 화가 난 상태였는데 갑자기 또 웃음을 터뜨렸다.그녀의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서 그는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남자의 망연
육 부인은 관찰하는 눈빛으로 부시혁을 훑어봤지만, 그는 전혀 불쾌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더구나 부시혁은 오전에 결혼한 비서 몇 명을 사무실에 불러와서 장인, 장모를 처음 만날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대응 방법을 다 물어봤었다.비서들은 그에게 장인, 장모는 시어머니, 시아버지와 똑같다고 했다. 처음 방문한 사위와 며느리를 시험해 보고 이 시험을 통해 자기 아들, 혹은 딸과 맞는지 안 맞는지에 대해 판단한다고 했다.장인, 장모는 먼저 사위의 외모를 훑어볼 테니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아니나 다를까, 육 부인은 지금 부
육 이사장은 부시혁의 이상한 상황을 눈치챘다.그는 부시혁의 시선을 따라 그의 외팔을 보았다. 그리고 전에 자기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육 부인은 부시혁이 윤슬을 구해주다가 왼팔이 끊어졌다고 했었다.그때 그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아무래도 부시혁이 팔이 끊어질 만큼 윤슬에게 위험한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보니 자기 아내의 말이 사실인 듯했다."팔 아직 안 나았으니까 내가 들어줄게."육 이사장은 이렇게 말하며 부시혁 왼손의 물건을 가져왔다.그 무게를 느낀 육 이사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윤슬은 육 부인을 보며 말했다."무슨 말인지 알아요. 하지만 정말 제 탓 안 하세요? 재원이는 어머님 아들이잖아요. 제가 거절해서 이렇게 마음 아파하는 건데, 정말 제 탓 안 하세요?""전에도 같은 질문을 했는데 다시 한번 대답할게. 없어."육 부인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내가 그랬잖아. 재원이가 널 좋아하는 건 재원이 일이라고. 재원이가 좋아한다고 네가 꼭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야. 감정이란 건 원래 서로 통해야 하는 거잖아. 그래야 같이 있지. 한쪽에 그런 마음이 없다면 당연히 진지하게 거절해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제
하지만 그녀가 더욱 놀란 건 부시혁의 스케일이었다.몇억짜리의 와인을 그것도 몇 병이나 눈 깜박 안 하고 선물했다. 이 와인들은 전 세계에 백 병밖에 없어서 정말 돈 주고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한 병 마실 때마다 줄어들기에 그녀가 보기엔 이런 와인을 사는 사람은 거의 마시지 않고 소장할 것이다.그런데 부시혁은 소장 가치가 있는 와인을 선물로 그들에게 주었다. 이 대범함만으로도 이미 많은 사람을 이겼다.보아하니 부시혁은 정말 전과 달라졌고 윤슬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모양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술을 육 이사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