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유나는 자신과 지서현 사이에서 하승민이 당연히 자신을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했다.지서현은 애초에 상대조차 되지 않았으니까.하승민은 차갑게 남자를 흘겨보더니 냉랭한 태도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꺼져.”그러자 남자는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도망치듯 클럽을 빠져나갔다.남자가 도망가자 하승민은 고개를 살짝 숙여 지유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자신의 팔을 천천히 빼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지유나, 이제 이만하면 됐나?”차가운 하승민의 태도에 지유나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나한테 화내는 거야? 내가 이러지 않았으면
하승민의 머릿속에 다시금 떠올랐다.작은 얼굴에 맑고 단정한 이목구비과 조금 전 자신이 직접 입을 맞췄던 그 여자가 말이다.그녀의 입술은 너무도 부드러웠고 달콤한 향이 퍼져 나갔다.그런데 바로 지금, 지유나가 다시 키스를 하려 하자 하승민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피했다.입술이 허공을 스치자 지유나가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피하는데?”하승민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지유나는 그가 좋아하는 여자였다.서로 좋아하는 연인이 키스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게다가 그는 지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잔뜩 흥분한 소아린을 보던 지서현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소아린은 어젯밤부터 줄곧 하승민과 지유나에 관한 독설을 퍼붓고 있었다.이 기세라면 며칠이고 계속할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는 이제 무너진 곳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법을 터득했다.지서현은 달콤한 밀크 캔디 하나를 까서 입안에 넣었다.달콤함이 혀끝을 감싸자 그녀의 눈매가 한층 부드러워졌다.“아린아, 잠시 쉬어. 지금부터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돼. 원한은 갚고 빚은 돌려주면 되는 거야.”소아린은 순간 멈칫했다.‘드디어!’사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지서현이 어떤 사
지씨 저택.거실에서 지해준이 소파에 앉아 이윤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윤희야, 명의가 정말 유나를 진찰해 줄까?”이윤희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어제 약에 당한 지서현과 장희석 주임이 함께 사라졌다.둘이 함께 밤을 보냈을 테니 불꽃이 튀는 건 당연했다.장희석만 지서현을 손에 넣으면 명의를 소개해 주기로 되어 있었다.이윤희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걱정 마세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장 과장이 좋은 소식을 가져올 테니.”그러면서 이윤희는 지해준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회사의 대표인 지해준은 중년 남성 특유의 위엄과 매
지서현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조용히 서 있었다.그녀는 맑고 영롱한 눈동자로 이윤희의 모든 공포와 초라한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지서현을 발견하자 이윤희의 몸은 순간 굳어졌다.그와 동시에, 장희석은 빠르게 지서현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히며 아부하는 미소를 지었다.“지서현 씨.”지서현은 무표정하게 펜 한 자루를 꺼내더니 손을 들어 그대로 밖의 연못으로 던졌다.“장 교수님, 제 펜이 빠졌네요.”“제가 지금 당장 찾아드리겠습니다!”장희석은 단숨에 연못 쪽으로 뛰어가더니 점점 기온이
“뭐라고?”지유나와 이윤희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지서현은 지유나를 보며 일부러 놀란 척하며 말했다.“설마... 설마 하 대표님이 너한테 말 안 했어? 어젯밤 나랑 키스한 거?”그러고는 일부러 기억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어젯밤 하 대표님이랑 키스했는데... 거칠기만 하고 완전 초보더라. 키스 실력이 너무 별로라서 아예 못하는 사람인가 싶더라니까?”지유나는 충격에 빠져 하승민을 바라봤다.‘정말 지서현이랑 키스를 했다고?’하승민의 얼굴이 순간 차갑게 식어버렸다.그녀가 일부러 지유나 앞에서 이
하은지는 하씨 가문의 둘째 집안 딸로 지유나와 각별한 사이였다.그녀는 지서현을 보자마자 경멸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지서현 씨, 승민 오빠는 당신 안 좋아해요. 그런데 또 저희 할머니한테 붙으려고 오신 거예요? 저희 하씨 가문에서 지서현 씨를 좋아하는 사람은 할머니뿐인데 이제 당신도 제 주제를 좀 알아야죠. 시골에서 온 촌뜨기가 유나 언니 없을 때 대타로 시집왔다고 진짜 우리 하씨 가문의 며느리라도 된 줄 아는 건가요? 지서현 씨는 승민 오빠랑 어울리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당장 이혼하시죠?”지서현은 이런 악독한 말에도 이
‘맞선 자리?’분위기가 갑자기 차갑게 가라앉더니 하승민은 셔츠의 첫 번째 단추를 풀어헤치며 미간을 좁혔다.띵띵띵.소아린이 연달아 몇 개의 메시지를 보냈다. 음성 메시지도 함께였다.자동 재생된 음성이 방 안에 또렷이 울려 퍼졌다.“서현아, 이 남자 좀 봐. 탄탄한 식스팩에 헬스광이야. 맘에 들어? 나중에 저 복근에 기대서 자도 되겠네.”“이 사람은 어때? 순하고 부끄럼 많은 강아지 스타일. 보기만 해도 재밌을 것 같지 않아?”“이 사람은? 금테 안경 쓴 비즈니스 엘리트. 차가운 남신 스타일인데 무릎 꿇고 너한테 항복했다고
“뚜뚜.”지서현이 전화를 끊었고 하승민은 할 말을 잃었다.‘젠장, 감히 전화를 끊어?’마침 집사인 박남수가 다가왔다.“집사님, 지서현한테 전화해서 할머니께서 편찮으시다고 전해요. 당장 돌아오라고요.”그러자 박남수가 순간 멈칫했다.“하지만 도련님, 어르신께서는 아까 사모님이 준비한 보양식을 드시고 숙면에 드셨습니다. 건강에 아무 문제 없어요.”“거짓말 좀 할 줄 모르세요?”박남수가 또다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도련님, 사모님한테 거짓말하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지난 3년 동안 사모님은 도련님과 어르신을 동시에 챙겼
“악!”지유나의 비명이 터지자 하승민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고 그렇게 롤스로이스가 급정거했다.안색이 창백해진 채 지유나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오빠, 왜 이렇게 빨리 달리는 거야?”하지만 하승민의 얼굴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전방을 보았다. 조금까지 거의 따라잡을 뻔했던 람보르기니가 그가 멈춘 틈을 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하승민이 얇은 입술을 한 번 꼭 다물었다.“괜찮아?”지유나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그러고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설마 했는데 지서현이 정유 오빠까지 건드리게 될 줄은
지서현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모르는 사람이에요.”이 한마디가 떨어지자 하승민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비웃는 듯한, 차갑고 조소 어린 미소였다.지서현은 유정우를 몰랐지만 소아린은 알고 있었다.더군다나 유정우는 하승민과 가장 친한 친구였다.소아린은 흥미로운 광경을 지켜보며 가볍게 웃었다.“도련님, 술은 사양할게요. 저희 서현이 이제 집에 가야 하거든요.”유정우는 곧장 자신의 차 키를 집어 들었다.“그럼 제가 데려다줄게요.”그렇게 그는 지서현과 소아린을 따라나섰다.세 사람이 떠나자 고우섭을
유정우는 단번에 지서현을 알아봤다.지유나는 예상치 못한 광경에 눈을 가늘게 떴다. 지서현이 소아린과 함께 핫한 춤을 추고 있었다.원래도 유려한 몸매를 지닌 그녀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여유로운 움직임이 그녀의 곡선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잘록한 허리에서 이어지는 엉덩이의 곡선이 마치 걸그룹 댄서들의 탄력적인 동작처럼 빛났다.같은 무용을 배웠던 입장에서조차 지유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지서현이 춤을 더 잘 췄고 더 매혹적이었다.그리고 더 과감했다.“와우.”1996클럽의 남자들이 일제히 시선
1996클럽 안의 모든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모두가 바라보고 있는 건 지유나였다.지유나는 화려한 이목구비에 자신감 넘치는 빛을 담고 있었다. 몸을 가볍게 회전하며 하승민 앞에 도착하더니 그녀는 손을 뻗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키가 크고 다리가 긴 하승민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지유나는 부드러운 몸을 그의 탄탄한 몸에 밀착시키며 관능적인 밀착 댄스를 시작했다. 유혹적인 분위기가 한껏 살아났다.아름다운 남녀가 선보이는 뜨거운 춤은 클럽의 분위기를 단숨에 최고조로 끌어올렸다.바로 그때, 지서현과 소아린이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지서
하승민이 시선을 낮춰 사진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순간, 그의 차가운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그 페라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차였다.그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유정우를 바라보았다.“그 여자가 이 차를 타고 있었어?”유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게다가 나까지 따돌리더라. 꽤 흥미로운 여자야.”하승민의 기억이 맞다면 이 페라리는 그가 지서현에게 준 것이었다.거액의 수표 외에도 그는 그녀에게 몇 채의 집과 여러 대의 차를 함께 줬었다.그때 조현우가 보고하기를 지서현은 딱 하나만 골랐다고 했다.바로 이 페라리였다.
그때,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핸드폰 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하승민에게서 온 전화였다.‘아마 1996클럽으로 빨리 오라고 독촉하는 전화겠지.’유정우는 핸들을 돌려 차를 돌렸다.해성은 하승민의 구역이었다.1996클럽에 도착하면 굳이 자신이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하승민을 통해 그 페라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한편, 골목 안.지서현이 차를 몰고 빠르게 골목으로 진입하자 조수석에 있던 소아린이 환호했다.“서현아, 너 진짜 멋지다. 결국 따돌렸잖아.”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쿵’
하승민이 미간을 짚었다.정말 깜빡한 것이다.유정우가 오늘 귀국했다.해성에서 하씨 가문과 유씨 가문은 항상 최상위 명문가로 손꼽혔고 두 집안은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세가였다.때문에 하승민과 유정우도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막역한 친구였다.오늘 유정우는 돌아왔고 지금 지유나, 고우섭, 하은지까지 전부 1996클럽에 모여 있었다.곧장 하은지의 밝은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들려왔다.“승민 오빠, 빨리 와.”하은지는 오래전부터 유정우를 좋아했었는데 그녀의 꿈은 유정우와 결혼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유정우는 보는 눈이 상당히 높았
하승민은 순간 멍해졌다.그녀는 그의 아래에 그대로 눕혀 있었다.찰랑이는 긴 머리가 붉은 이불 위로 촉촉하게 퍼져 있었다. 이곳은 할머니가 손수 꾸민 신혼방으로 침구도 모두 새빨간 색이었다.그리고 그 붉은 색이 그녀의 매끄럽고 창백한 피부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그런데 만약 지금 이 모습이 다른 남자의 밑이라면...하승민의 주먹이 살짝 움켜쥐어졌다.해명하고 싶었다. 약을 보내라고 했을 뿐 그는 남자를 붙이라고 한 적은 없었다.하지만 막상 입을 떼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지서현이 그를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했다.“비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