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서현의 두 귀가 멍해졌다.‘방금... 저 사람이 뭐라고 했지?’‘자기를 위해 다른 남자를 찾아주겠다고? 한 명이든 두 명이든?’그가 선택을 내렸다.망설임 없이, 단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하승민은 지유나를 선택했다.지서현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깊숙이 심장을 파고든 듯했다.그리고 그 칼날은 멈추지 않고 잔인하게 휘저었다.심장이 갈기갈기 찢겨 피투성이가 된 것만 같았다.입술이 덜덜 떨렸지만 간신히 목소리를 되찾았다.“하승민 씨, 그래도 저는... 당신의 아내잖아요.”하승민은 이미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깔끔
지유나는 자신과 지서현 사이에서 하승민이 당연히 자신을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했다.지서현은 애초에 상대조차 되지 않았으니까.하승민은 차갑게 남자를 흘겨보더니 냉랭한 태도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꺼져.”그러자 남자는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도망치듯 클럽을 빠져나갔다.남자가 도망가자 하승민은 고개를 살짝 숙여 지유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자신의 팔을 천천히 빼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지유나, 이제 이만하면 됐나?”차가운 하승민의 태도에 지유나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나한테 화내는 거야? 내가 이러지 않았으면
하승민의 머릿속에 다시금 떠올랐다.작은 얼굴에 맑고 단정한 이목구비과 조금 전 자신이 직접 입을 맞췄던 그 여자가 말이다.그녀의 입술은 너무도 부드러웠고 달콤한 향이 퍼져 나갔다.그런데 바로 지금, 지유나가 다시 키스를 하려 하자 하승민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피했다.입술이 허공을 스치자 지유나가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피하는데?”하승민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지유나는 그가 좋아하는 여자였다.서로 좋아하는 연인이 키스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게다가 그는 지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잔뜩 흥분한 소아린을 보던 지서현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소아린은 어젯밤부터 줄곧 하승민과 지유나에 관한 독설을 퍼붓고 있었다.이 기세라면 며칠이고 계속할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는 이제 무너진 곳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법을 터득했다.지서현은 달콤한 밀크 캔디 하나를 까서 입안에 넣었다.달콤함이 혀끝을 감싸자 그녀의 눈매가 한층 부드러워졌다.“아린아, 잠시 쉬어. 지금부터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돼. 원한은 갚고 빚은 돌려주면 되는 거야.”소아린은 순간 멈칫했다.‘드디어!’사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지서현이 어떤 사
지씨 저택.거실에서 지해준이 소파에 앉아 이윤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윤희야, 명의가 정말 유나를 진찰해 줄까?”이윤희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어제 약에 당한 지서현과 장희석 주임이 함께 사라졌다.둘이 함께 밤을 보냈을 테니 불꽃이 튀는 건 당연했다.장희석만 지서현을 손에 넣으면 명의를 소개해 주기로 되어 있었다.이윤희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걱정 마세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장 과장이 좋은 소식을 가져올 테니.”그러면서 이윤희는 지해준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회사의 대표인 지해준은 중년 남성 특유의 위엄과 매
지서현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조용히 서 있었다.그녀는 맑고 영롱한 눈동자로 이윤희의 모든 공포와 초라한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지서현을 발견하자 이윤희의 몸은 순간 굳어졌다.그와 동시에, 장희석은 빠르게 지서현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히며 아부하는 미소를 지었다.“지서현 씨.”지서현은 무표정하게 펜 한 자루를 꺼내더니 손을 들어 그대로 밖의 연못으로 던졌다.“장 교수님, 제 펜이 빠졌네요.”“제가 지금 당장 찾아드리겠습니다!”장희석은 단숨에 연못 쪽으로 뛰어가더니 점점 기온이
“뭐라고?”지유나와 이윤희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지서현은 지유나를 보며 일부러 놀란 척하며 말했다.“설마... 설마 하 대표님이 너한테 말 안 했어? 어젯밤 나랑 키스한 거?”그러고는 일부러 기억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어젯밤 하 대표님이랑 키스했는데... 거칠기만 하고 완전 초보더라. 키스 실력이 너무 별로라서 아예 못하는 사람인가 싶더라니까?”지유나는 충격에 빠져 하승민을 바라봤다.‘정말 지서현이랑 키스를 했다고?’하승민의 얼굴이 순간 차갑게 식어버렸다.그녀가 일부러 지유나 앞에서 이
하은지는 하씨 가문의 둘째 집안 딸로 지유나와 각별한 사이였다.그녀는 지서현을 보자마자 경멸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지서현 씨, 승민 오빠는 당신 안 좋아해요. 그런데 또 저희 할머니한테 붙으려고 오신 거예요? 저희 하씨 가문에서 지서현 씨를 좋아하는 사람은 할머니뿐인데 이제 당신도 제 주제를 좀 알아야죠. 시골에서 온 촌뜨기가 유나 언니 없을 때 대타로 시집왔다고 진짜 우리 하씨 가문의 며느리라도 된 줄 아는 건가요? 지서현 씨는 승민 오빠랑 어울리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당장 이혼하시죠?”지서현은 이런 악독한 말에도 이
하승민의 긴 손가락이 허공에 멈췄다.“하 대표님, 어서 출발해요. 수아를 빨리 찾아야 해요.”하승민은 백미러로 지서현을 흘끗 보았다. 지서현은 뒷좌석에 앉아 계속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얼굴은 다소 창백했는데 맑고 깨끗한 얼굴이 더욱 투명해 보였다.지서현의 신경은 온통 엄수아에게 쏠려 있어 하승민을 힐끗 한 번 쳐다본 것이 전부였다.이제 두 사람은 하나는 앞에 하나는 뒤에 앉아 마치 남처럼 멀어진 사이가 되어버렸다.하승민은 시선을 거두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알았어.”...엄수아는 계속 울고 있었다. 너무 슬펐다.
엄수아는 조군익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알고 보니 조군익은 집안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접근했고 예쁘다고 칭찬하며 약혼까지 했던 것이다. 사실 그의 눈에 자신은 그저 추녀에 불과했다.이것이 그의 진심이었다니.엄수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수아야, 은지가 다치는 걸 더 이상 볼 수 없어. 죽어 마땅한 건 바로 너 이 못난이야.”조군익은 잔인하게 말을 내뱉고 돌아서서 가버렸다. 엄수아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눈가에는 눈물이 금세 차올랐고 그녀는 입을 틀어막은 채 여자 기
하은지는 휴대폰을 꺼내 지유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수아가 영화관에서 늦게까지 기다리다가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돌아갔다는 말에 지유나는 깔깔 웃었다.“진짜 웃겨 죽겠네. 임씨 가문의 막내면 또 어때요. 얼굴이 예뻐야지. 은지 씨, 너무 잘했어요. 조군익은 이젠 완전히 푹 빠진 것 같은데요.”하은지는 미소를 지었다.“유나 언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내일 더 재밌는 일이 있을 거예요.”“누가 엄수아더러 지서현이랑 어울리래요? 우리한테 덤빈 게 잘못이지. 이번 일은 엄수아에게 좋은 교훈이 될 거예요. 은지 씨, 좋은 소식 기다
‘조군익은 왜 전화를 받지 않을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엄수아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군익의 안전이 걱정되었던 것이다.팝콘을 품에 안고 엄수아는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세경대로 뛰어갔다.세경대에 도착했을 때 엄수아는 온몸이 젖어 있었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맛있는 팝콘만큼은 조군익과 함께 나누고 싶어 품 안에 소중히 안고 왔던 것이다.엄수아는 조군익을 찾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곧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조군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그는 바로 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하은지가 서 있었다.조군익
조군익은 고개를 돌렸다. 하은지의 맑고 예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순간 그의 눈이 빛났다.“어, 하은지!”하은지는 오늘 세일러 카라가 달린 파란색과 흰색 상의에 검은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볼록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늘씬한 다리까지, 그녀의 완벽한 몸매가 잘 드러났다. 하은지는 조군익 앞에 청순하게 서서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살짝 웃었다.“조군익, 전에 네 차에 얻어 탔었잖아. 그러니 오늘 내가 우산 씌워주는 걸로 퉁치자.”조군익은 웃었다.“조군익, 너 약속 있지? 이 우산 너 가져. 난 먼저 갈게.”하은지
하은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사실 그녀는 아직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유나 언니,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정우 오빠예요...”“은지 씨, 정우는 이제 잊어요. 그 사람, 이미 강미래 씨랑 결혼 날짜까지 잡았어요. 유 씨랑 강 씨 두 재벌가끼리 맺는 결혼이라 절대 틀어질 일 없어요. 그러니까 은지 씨도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인연 찾아야죠.”지유나는 덧붙였다.“조씨 가문은 해성에서도 손꼽히는 재벌가예요. 조군익은 집안도 좋고 인품도 괜찮아서 임씨 가문에서도 지온이한테 점찍어 뒀잖아요. 근데 은지 씨가 먼저 가로채면
엄수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지유나, 정신 차려. 여긴 임씨 가문이야. 하씨 가문이 아니라고. 뭐해요. 얘네들 당장 내쫓아요!”“알겠습니다.”지유나와 하은지는 반항할 새도 없이 쿵 소리와 함께 밖으로 던져졌다. 곧 두 사람은 문밖에서 엎어져 꼴사나운 모습이 되었다.하하.임미선은 매정하게 비웃었고 엄수아는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두 사람을 잘 대접하겠다고 말했었다.감히 그녀의 절친 지서현을 괴롭히다니. 지서현 뒤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나 보지?며칠 전 지서현이 크게 앓았던 것에 대
엄수아는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그녀가 바로 지온이라고.엄수아가 지온이라고?지유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엄수아가 지온이라니? 나와 은지가 세경대를 샅샅이 뒤지며 찾아다녔던, 친구가 되고 싶어 안달했던 그 사람이 바로 엄수아, 이 못난이라고?’하늘이 자신에게 너무나 큰 장난을 친 것 같았다.믿을 수가 없었다.하은지 또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때 엄수아가 웃으며 말했다.“지유나, 우리 오빠에게 들었는데 너 나랑 친구 하고 싶다고 했다며? 아까는 말 잘하더니 왜 지금은 아무
“우리는 지온이랑 노는데 넌 시골뜨기 서현이하고만 놀 수 있으니 참 불쌍하다.”임미선은 어이가 없어 눈을 흘겼다.하지만 엄수아는 웃으며 말했다.“맞아, 나는 너희가 지온이랑 노는 게 정말 부러워.”하은지는 실컷 비웃고 나서 말했다.“유나 언니, 이 못난이에게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지온이 만나러 갑시다.”지유나도 엄수아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부러워하게 내버려 두고 우리끼리 들어가요.”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의 거만한 모습을 보며 임미선은 비웃었다.“아가씨, 저 사람들은 아직 아가씨의 신분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