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머뭇거리면서 서로를 바라봤다.“죄송합니다만 이 대표님께 연락드리는 건 어떨까요? 대표님이 직접 모시러 나온다면 저희도 안으로 들일 수 있거든요.”“젠장!”강이나는 일개 경호원마저 자신의 체면을 짓밟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그녀는 마지못해 휴대폰을 꺼내서 이수호에게 연락했다.하지만 통화연결음만 울릴 뿐 상대가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다.강이나는 또다시 안지원에게 전화했다.그때 마침 안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면서 말했다.“도아영 진짜 한 실력 하네? 아까 걔 춤출 때 이 대표님 표정 봤어? 완전 넋 놓고 있잖아!”“이 대표 강이나만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언제 도아영이랑 이렇게 가까워진 거지?”“누가 알아? 도아영이 대단해서 그렇겠지 뭐. 저렇게 끼 부리는 여자를 어떤 남자가 마다할까?”...몇몇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강이나의 귀에까지 전해졌다.그녀는 더더욱 안달이 났다.‘도아영, 진짜 뻔뻔해!’강이나가 이미지도 무릅쓰고 마구 뛰쳐 들어가려 할 때 경호원이 재빨리 그녀를 막아 세웠다.“강이나 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희만 곤란해져요...”“꺼져! 싹 다 꺼지라고!”강이나는 이수호와 도아영이 안에서 함께 있는 모습만 떠올리면 질투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두 경호원은 끝내 강이나를 말리지 못했다. 잠시 후 그녀가 연회장으로 뛰쳐 들어갔다.그녀가 연회장 대문을 연 순간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강이나의 몰골을 보고 가장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이수호였다.“이나야?”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뭇사람들은 의아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방금 문밖에서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탓에 머리도 잔뜩 헝클어지고 초라한 몰골이 그야말로 볼품없었다.좀 전에 무대에서 마음껏 매력발산을 하며 춤을 추던 도아영과 감히 비할 바가 못 됐다.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거슬렸던 탓인지 이수호는 그녀를 한쪽 옆으로 끌고 가려 했다.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으면서 정색한 얼굴로 쏘아붙이는 이수호였다.“여긴 왜 왔어?”질책에 가까운 그의
이수호와 강이나가 나란히 자리를 떠나려 하자 구경에 나선 사모님들이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나 웃겨 죽네. 도아영 반나절이나 춤췄는데 강이나 씨 등장으로 바로 KO 당한 거야?”“그러니 내가 뭐랬어. 이 대표한테 강이나 씨랑 도아영 씨는 하늘과 땅 차이라니까. 강이나 씨가 하늘의 구름이라면 도아영은 바닥의 먼지에 불과해. 쌤통이다 도아영!”“수작 그만 부려. 내가 다 쪽팔리네!”...그들은 대놓고 도아영에 대한 험담을 늘어놨다.다만 도아영은 아무렇지 않았다.어차피 좀전의 춤은 이수호를 위한 춤이 아니니까.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도아영과는 일말의 관계도 없다.그건 그렇고 표적이 미끼를 문 것 같았다.2층에서 한 남자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으니까.도아영은 자연스럽게 방금 입을 나불거리던 사람들 앞으로 다가가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다들 방금 나 말한 거예요?”“그럼 누구겠어요?”사모님 한 명이 코웃음 치며 쏘아붙였다.“우리가 모를까 봐서요? 도아영 씨 애초에 잔뜩 흘리고 다녀서 겨우 이 대표님 옆에 남은 거잖아요! 남자는 자고로 실컷 놀면 바로 질려버려요. 봐봐요 지금도, 이 대표가 아영 씨를 찾기나 하던가요?”도아영은 그녀의 비아냥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곁눈질로 서현우를 바라봤다.그러고는 사모님 앞으로 바짝 다가가 오직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래요? 근데 이걸 어쩌나? 누구는 끼 부리고 싶어도 전혀 안 먹힐 텐데? 허리는 엄청 길고 다리는 숏 다리에, 쯧쯧... 다 벗고 수호 씨 앞에서 춤춰도 눈길 한 번 못 받겠네요.”“너!”상대는 정곡을 찔렸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 이때 도아영이 갑자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다가 일부러 쓰러졌다.바닥에 쓰러진 고통이 전해지기는커녕 따뜻하고 드넓은 품이 그녀를 맞이했다.상대는 도아영을 품에 꼭 안아주었다.한편 도아영은 겁먹은 사슴처럼 조심스럽게 시선을 올렸다. 서현우의 조각 같은 얼굴에 어떠한 표정도 걸려있지 않았고 타고난 카리스마에 저
뭇사람들은 깊은숨을 몰아쉬었다.오늘의 주역이 서현우일 줄이야.그가 이렇게 하는 건 엄연히 경고장을 날리는 셈이었다.이수호와 강이나도 이쪽 인기척에 곧바로 시선을 옮겼다.서현우의 품에 안긴 도아영을 본 순간 이수호는 차가운 눈빛으로 돌변했다.옆에 있던 강이나도 나지막이 속삭였다.“도아영 씨 정말 대단하네요. 서 대표님 오늘 처음 아영 씨를 봤을 텐데 금세 편들어주고 말이에요...”그녀의 말속에 다른 의도가 가득 차 있었다. 이에 이수호도 덩달아 미간을 찌푸렸다.‘도아영, 이렇게 빨리 새로운 돈줄을 찾고 싶었던 거야?’“고마워요, 대표님.”그 시각 도아영은 서현우의 품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이 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꽉 붙잡고 있었다.보다시피 그녀를 놓아줄 기미가 없었다.도아영은 시선을 올리고 서현우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더니 연약한 척하며 말했다.“대표님, 아파요...”별안간 서현우가 그녀에게 바짝 다가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연기 그만해.”“...”“표적인 것 쯤은 나도 금방 알아보거든. 근데 이렇게 먼저 집 앞까지 찾아오는 표적은... 네가 처음이야.”서현우는 그녀의 허리를 놓아주곤 뭇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도아영은 이대로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얼른 다가가 서현우의 팔을 잡아당겼다.“대표님, 저 남자 파트너가 필요해요.”서현우는 눈썹을 치켰고 옆에 있던 김한빈도 인상을 구겼다.본인 속내를 다 들켰음에도 끝까지 연기하고 있다니, 이 여자는 정녕 죽으려고 작정한 걸까?김한빈이 이제 막 앞으로 나서서 그녀를 따끔하게 혼내려고 할 때 서현우가 손을 들며 그를 가로챘다.“내가 왜 널 도와줘야 하지?”“남해로 120번지. 대표님께서 강주로 이전할 계획이시란 거 저 다 알고 있어요.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눈앞의 여자가 내뱉는 가소로운 말에 서현우는 흥미진진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도와줄 건데?”“대표님께서 아마 강주에 와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신 것 같은데 저희 도씨 일
“수호 씨, 화내지 말아요.”강이나는 이수호의 팔을 잡으면서 난감한 표정으로 서현우에게 말했다.“서 대표님, 정말 죄송하지만 대표님께서 아직 도아영 씨 정체를 잘 모르실 겁니다.”곧이어 그녀는 질책하는 투로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도 참, 이제 엄연히 이 대표님 약혼녀인데 이런 장소에서 서 대표님이랑 엮이면 뭐가 돼요? 얼른 이리 와요!”그녀는 말하면서 도아영을 끌어오려 했다.다만 이때 김한빈이 재빨리 강이나 앞에 나섰다. 이건 그녀의 뜻을 거절하는 거나 다름없는 제스처였다.강이나는 허공에 손이 붕 뜬 채 난처함을 어쩔 수가 없었다.한편 도아영은 그녀가 일부러 분위기를 완화하려는 척하는 꼴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강이나 씨도 아까 보니까 대표님이랑 나란히 함께 들어오던데요? 난 또... 이나 씨가 대표님 약혼한 사실을 까먹은 줄 알았어요.”도아영의 반박에 강이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그도 그럴 것이 도아영이 이수호 약혼녀란 사실을 누가 모를까?그저 다들 이수호가 강이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항상 도아영을 존중하지 않았을 뿐이다.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놓친 점이 있다면 약혼녀 앞에서 내 남자의 파트너 행세를 하고 다니는 건 명색이 끼 부리는 수작이었다.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강이나는 지금 내연녀나 다름없었다.“도아영, 이리 와.”문득 이수호가 명령 조로 쏘아붙였다.그럼에도 도아영은 걸음을 옮길 기미조차 없었다. 그녀가 꿈쩍하지 않자 이수호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이에 도아영은 재빨리 서현우의 뒤에 숨어서 매우 놀란 듯 몸을 파르르 떨었다.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마치 얼마나 큰 서러움이라도 당한 것처럼 한없이 가여운 표정으로 흐느꼈다.서현우는 그런 도아영의 연기를 보면서 입꼬리를 씩 올렸다.뭇사람들도 이 광경을 보고 저마다 수군거렸다.“이 대표가 약혼녀를 마음에 안 들어 한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대놓고 손까지 댈 줄은 몰랐네.”“그러게 말이야. 아영 씨 저러는 거 보면 평상
“네, 대표님.”강이나도 안색이 돌변했다. 김한빈이 이리로 다가오자 그녀는 재빨리 이수호의 뒤에 숨으면서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수호 씨...”이수호는 그녀를 지켜주면서 차가운 표정으로 도아영에게 쏘아붙였다.“도아영! 제발 그만해!”“네?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 나 방금 아무 말도 안 했는데?”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서현우에게 더 바짝 다가갔다.그 바람에 이수호는 울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오늘은 대체 무슨 날인 걸까?도아영이 대놓고 이수호의 체면을 구기는 날?!옆에 있던 서현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김한빈, 내 말 안 들려?”“지금 바로 끌어내겠습니다!”그가 앞으로 다가서자 강이나는 재빨리 도아영에게 시선을 옮겼다.“이봐요, 도아영 씨! 당신 나 싫어하는 거 알지만 서 대표까지 시켜서 이러는 건 아니지! 난 수호 씨 파트너예요. 아영 씨 지금 이러는 거 대체 날 겨냥한 거예요 수호 씨를 겨냥한 거예요?”그녀는 아예 핵심을 수면 위에 올려놨다. 도아영이 지금 상황에 서현우 앞에서 자신을 편들어주지 않는다고 질책하는 투였다.하지만 이런 수작에 넘어갈 도아영이 아니었다.지금 강이나의 편을 들어준다면 그건 엄연히 서현우의 체면을 짓밟는 일이니까.그때 되면 도아영은 이도 저도 아닌, 아무런 혜택도 못 얻는 꼴이 된다.그녀는 단순한 눈빛으로 강이나를 쳐다봤다.“강이나 씨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알아듣지 못하겠네요... 난 그 누구도 겨냥한 적 없거든요.”끝까지 연기하는 도아영의 모습에 이수호의 안색이 점점 굳어졌다.한편 호스트가 축객령을 내렸는데 누가 감히 토를 달까?김한빈은 어느덧 강이나 앞으로 다가와 밖으로 나가 달라며 손을 내뻗었다.이에 강이나도 더는 고집을 부릴 수가 없어 입술을 깨물고 이수호를 쳐다봤다.“서 대표가 가라고 했으니 이만 가.”“수호 씨...”“다만 나중에 서 대표가 우리 가문의 행사에 참석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 될 거야.”그는 이 말로 강이나를 뒷받침해주고 있었다.사색이 되었
도아영이 머리를 들고 무대 위를 올려다봤더니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구기면서 서현우에게 물었다.“엘리자베스 여왕이 한때 착용했던 목걸이네요?”그녀의 기억으로 강이나가 이 목걸이를 무척 좋아했다.전생에 이수호는 거액으로 이 목걸이를 낙찰받아 강이나에게 선물했다.다만 서현우도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서 두 남자가 결국 이 목걸이 낙찰가를 엄청난 가격으로 치솟게 했다.그랬던 서현우가 지금 왜 갑자기 이 목걸이를 말하는 걸까?“저건 사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목걸이야.”서현우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근데 꽤 마음에 들어. 저 목걸이 시작가격은 20억이야. 네가 무슨 수를 써서든 오늘 반드시 저 목걸이를 낙찰받아.”순간 도아영은 안색이 확 굳었다.대체 무슨 수로 낙찰을 받으란 말인가?지금 도아영이 쥐고 있는 돈이 고작 얼마인데, 20억은 그녀에게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숫자였다.서현우는 일부러 그녀를 괴롭히려는 걸까?“왜? 못하겠어?”이 남자가 살짝 떠보듯이 물었다.“못하겠으면 다른 방식으로 갚아도 되고.”그녀는 이 말을 듣자마자 등골이 오싹했다.서현우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란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그녀는 이미 서현우의 주의를 끌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거대한 돈줄을 꽉 붙잡아야 한다.안 그러면 방금 했던 모든 노고가 수포로 될 테니까.“아니요! 해볼게요!”도아영이 말했다.“몇십억으로 대표님을 도울 수만 있다면 저한테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죠.”그녀의 대답을 들은 서현우는 눈썹을 치켰다.이 여자는 강이나보다 훨씬 흥미진진했다.곧이어 자선 경매가 시작되었다.첫 번째 상품, 다이아몬드 목걸이의 시작가격은 20억 원이었다.좀 전에 강이나가 한 방 먹은 걸 떠올리며 이수호는 얼른 그녀에게 보답하고자 안지원더러 피켓을 들라고 했다.“30억, 한 번!”“34억!”“36억!”“40억입니다!”...다들 미친 듯이 가격을 부를 때 도아영이 차분하게 피켓을 들고
“쟤 전 재산이 얼마인지 내가 모를까 봐?”이수호가 차갑게 쏘아붙였다.“계속 올려!”“네...”“180억이요!”안지원이 피켓을 들자 뭇사람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오늘 이 목걸이는 무려 가격이 열 배나 뛰어오르고 있으니까.도아영은 옆에 있던 서현우를 힐긋 바라봤다.“대표님, 일부러 이러시는 거죠?”사실 서현우는 이수호가 무조건 이 목걸이를 욕심낼 것을 진작 알아챘다.그래서 그녀더러 가격을 올리라고 한 것이다.방금 서현우가 강이나를 내쫓은 바람에 이수호는 이미 체면이 바닥까지 짓밟힌 상태이다. 그러니 이번엔 절대 도아영에게 질 수 없다.체면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 목걸이를 낙찰받아야만 했다.“나랑 한 약속 잊지 마.”서현우는 의자 등받이에 지긋이 기댔다.“이 목걸이는 무조건 내 거야.”“대표님...”그는 지금 일부러 도아영을 죽음으로 몰아세우고 있다.하지만 도아영도 무서울 건 없었다.‘한번 놀아보고 싶어? 그래, 그럼 놀아줄게!’“200억 할게요!”그녀가 200억을 외친 순간 장내가 고요한 침묵에 빠졌다.하지만 이건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그녀는 이제 갈 데까지 가보려는 작정인 듯싶었다.“300억이요!”이수호와 도아영 둘 다 잠자코 있을 때 문득 웃을 듯 말 듯 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뭇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뒤늦게 도착한 구연준이 글쎄 300억을 부를 줄이야.“대표님, 이제 더는 안 됩니다. 어르신께서 아시면 분명 노여워하실 겁니다. 게다가 이 목걸이를 강이나 씨한테 선물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안지원이 옆에서 계속 이수호를 타일렀다.구연준이 판을 흩트리자 이수호도 미간을 찌푸린 채 더는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도아영은 구연준을 본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도 의자 등받이에 기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경매장에서 경매사가 큰소리로 외쳤다.“300억 한 번!”“300억 두 번!”“300억 세 번! 자, 300억 원으로 낙찰합니다!”...서현우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무표정한 얼굴
이수호는 한없이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을 낱낱이 지켜봤다.“도아영!”그러더니 분노에 찬 목소리로 애써 나지막이 외쳤다.도아영이 고개를 돌리자 이수호가 음침한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왔다.“너 이제 끝장이겠네.”옆에 있던 구연준이 실실 비꼬았다.이에 도아영은 목소리를 낮추고 그에게 답했다.“대표님도 급할 건 없어요. 제가 끝장나면 대표님도 멀리 못 가시잖아요.”이에 구연준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한편 이수호는 그녀 앞에 다가와 방금 낙찰받은 목걸이를 내려다보며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구연준 씨, 참 대단하시네요. 300억을 들여서라도 이 목걸이를 아영이한테 선물하시고.”“뭐, 그럭저럭요.”이때 도아영이 목걸이를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방금 대표님도 이 목걸이 엄청 마음에 들어 하시던데, 왜요? 강이나 씨한테 선물하실 생각이었나요?”그녀의 물음에 이수호는 표정이 한없이 일그러졌다.“알면서 뭘 물어?!”도아영은 강이나가 이 목걸이를 좋아하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일부러 그녀와 빼앗은 것이다.정말 너무 파렴치하고 비겁한 수단이었다.“대표님, 여긴 경매장이에요. 당연히 가격을 높게 부른 사람이 낙찰받는 거죠. 구 대표님이 이 목걸이를 낙찰받아서 저한테 선물하는 거 전혀 문제 될 것 없잖아요? 뭘 이렇게까지 심한 말을 하시는 거예요?”점점 어두워져 가는 이수호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도아영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통쾌하고 짜릿한 느낌이 차올랐다.전생에 이수호는 그녀의 자존심을 가차 없이 짓밟고 여러 모임에서 수없이 난감하게 굴었으니 이제 드디어 그 심정이 어떤 건지 톡톡히 맛보여줄 때가 되었다.도아영은 일부러 구연준에게 이렇게 말했다.“선물 고마워요, 연준 씨.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그럼 저는 볼일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떠나갈 때 일부러 이수호의 어깨를 툭 스치기까지 했다.도발에 찬 그녀의 제스처에 이수호는 울화가 치밀었다.“도아영!!”“바래다줄 것 없어요!”그녀는 손을 흔들고 요염한
장내에 있는 사람들도 이 광경을 지켜봤다.그는 전에 도아영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인데 오늘은 이토록 긴장한 모습으로 그녀를 부축하다니.도아영은 진작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한 듯 손을 빼냈다.“고마워요.”그제야 이수호는 방금 그녀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알아챘다.전에 이경 그룹에서 도원 그룹을 대하는 태도를 볼 때 다들 이 두 집안이 사이가 안 좋은 거로 여기며 선뜻 도원 그룹과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이수호와 도아영의 사이가 조금은 나아졌으니 도원 그룹에 손 내밀 협력사도 슬슬 많아질 것이다.“감히 날 이용해?”예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이렇게까지 계략이 많은 줄은 몰랐다.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부잣집 딸로만 여겼는데 알고 보니 본인만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대표님이 그러셨잖아요? 서로 이용하는 게 우리 모두에게 좋은 거라면서요?”도아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들썩거렸다.전에 이수호가 바로 이런 식으로 그녀를 이용했고 이제 와서 전세가 역전됐을 뿐이다.“오늘 파티에 왜 날 초대했는지 모를까 봐요? 도원 그룹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수작이잖아요. 썩 쉽지만은 않을걸요.”도아영이 완전히 오해하자 이수호의 안색이 확 돌변했다.“뭐라고? 집어삼켜?”생각도 참 야무진 그녀였다.할머니는 확실히 그런 생각을 지녔지만 이수호는 절대 아니다.옆에 있던 안지원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그건 정말 오해예요, 아영 씨. 대표님은...”“대표님은 뭐요? 도원 그룹을 넘본 게 아니라고요? 말도 안 돼!”오늘 이경 그룹에서 초대한 사람들은 죄다 강주의 유명 인사들이다. 게다가 언론사까지 불러왔는데 도아영과 이수호의 관계를 널리 떠벌릴 목적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믿을까?도아영은 그저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이수호까지 남현숙과 같은 생각일 줄이야.“잘 들어! 난 절대 너희 집안까지 통째로 집어삼킬 생각 따위 없어!”이수호가 그녀에게 바짝 다가섰다.요즘 그는 줄곧 도아영을 향한 솔직한 감정을 마주했다. 그가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자 도아영이 뒤로
도아영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다니는 모습을 외부인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도원 그룹에 유리한 일이니까.“의외네요, 대표님. 할머니 말 한마디에 선뜻 저를 만나주시네요?”도아영이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그녀는 이수호가 마냥 귀찮을 따름이었다.꼭 마치 이전에 이수호가 그녀를 대했던 것처럼 말이다.이제 둘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할머니가 널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게 좋은 일인 것 같아?”다들 눈치챈 상황을 도아영이 모를 리가 있을까?그는 도아영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오늘 그녀는 금빛 롱드레스를 입고 풀메이크업을 장착하여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옆모습을 본 순간 이수호가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그녀의 모습과 전에 봤던 제니의 모습이 완전히 똑같으니까.그의 따가운 시선에 도아영이 미간을 구겼다.“다들 지켜보는데 뭐 하는 거예요?”“조용히 해.”이수호는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한시라도 빨리 본인의 추측을 인증받고 싶은 모양이다.제니는 차갑고 도도한 미인상이라 섣불리 다가설 수 없는 매력을 내뿜는다.외모도 강주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다.어여쁜 도화안은 강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비쥬얼이었다.제니를 처음 볼 때부터 도아영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제니의 모든 제스처가 도아영과 달랐으니까.이수호도 딱히 의심하지 않았지만 한성대 졸업시험에서 도아영의 성적 때문에 또다시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반년 가까이 휴학한 학생이 기말고사에서 이토록 높은 성적을 따낼 수 있을까?그녀가 적은 답안은 명확한 사고와 충분한 이론을 지녔다. 이건 비즈니스 베테랑만이 작성할 수 있는 답안이었다.제니의 학력까지 떠올리자 이수호는 눈앞의 도아영을 더더욱 의심하게 됐다. 그녀가 바로 명성이 자자한 위너 그룹 CEO 제니가 아닐까?“다 봤어요?”도아영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반짝이는 눈동자는 차갑고 도도한 제니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내가 괜한 생각을 했나?’이수호는 미간을 구겼다.“왜 그렇게 봐요
...주위에 온통 쉬쉬거리는 소리뿐이었다.도아영이 오늘 왜 이 파티에 참석했는지 다들 너무 궁금했다.로열 호텔 안, 안지원이 2층 휴식실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손님들 다 도착하셨습니다. 이제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요.”“알았어.”이수호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눈만 감으면 어제 도아영이 했던 말만 떠올랐으니까.할머니가 이 파티를 열지만 않았어도 두 번 다시 도아영을 마주 하고 싶지 않았다.아래층.도아영은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화려한 드레스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이제 도원 그룹의 유일한 상속자가 됐기 때문이다. 도아영과 결혼할 사람은 자연스럽게 도원 그룹도 차지하게 된다.그녀에게 불의의 사고라도 생기면 도씨 일가의 전 재산이 남편에게 돌아갈 것이다.장내에 있는 남성들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아영아, 얼른 할미 곁으로 와.”남현숙이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혐오에 찬 표정이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었다.도아영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남현숙에게 다가갔다.남현숙은 그녀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우리 아영이 점점 이뻐지네. 수호랑 오랜만이지? 금방 내려올 테니 함께 얘기도 나누고 오붓한 시간 보내. 젊은 사람들끼리 춤도 추고 와인도 마시고 얼마나 좋아?”남현숙은 지금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식으로 연기하고 있었다.도아영은 이씨 일가 사람이란 걸 이 자리에서 선포하는 거나 다름없다.아무도 감히 도아영을 넘보지 말라는 의도였다.이에 도아영이 가볍게 웃었다.“아니요, 대표님을 어제도 만난 걸요. 왠지 나랑 함께하기 싫은 눈치였어요.”마침 위층에서 내려오던 이수호가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어제 일을 되새기자 그는 또다시 사색이 되었다.“허튼소리! 수호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전에 파혼하려던 건 홧김에 그랬어. 젊은 애들이 그렇지 뭐. 누가 뭐래도 수호는 널 아주 많이 좋아해. 오늘도 너한테 사과하려고 하던데?”남현숙은 웃으면서 이수호를 불러왔다.뭇사람들은 이 광경을 빤히 지켜봤
이수호는 할머니의 말뜻을 너무 잘 이해한다.전에는 단지 도아영의 신분이 적합해서 그녀와 약혼하려던 거라면 지금은 도씨 일가 전체를 거머쥘 기회가 생겼다.그는 또다시 오늘 낮에 도아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고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었다.“할머니는 이번 일에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린 이미 파혼했으니 절대 결혼할 리 없어요.”말을 마친 이수호가 위층으로 올라갔다.남현숙은 손주 녀석의 성격을 잘 알기에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래, 네가 굽히지 못하겠다면 이 할미가 직접 나서야지 어쩌겠어.’다음날, 유정연이 감방에 갇히고 도지호가 집에서 쫓겨난 소식이 이 바닥에 쫙 퍼졌다.도아영은 도씨 일가의 유일한 상속자로서 이번에 매우 순조롭게 도원 그룹을 이어받았다.학교에 관한 일도 일단락되었으니 그녀는 한창 도원 그룹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아영 씨, 아침에 이씨 일가에서 찾아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아영 씨더러 로열 호텔 파티에 참석하라고 하시네요.”“이씨 일가에서요?”‘이수호가 또 찾아온 거야?’도아영은 잠시 의심했지만 곧이어 남현숙임을 알아챘다.그 어르신은 능구렁이와도 같은 분이니까.도아영이 도원 그룹을 상속받자마자 파티에 초대하다니, 이건 절대 호의일 리가 없다.“아영 씨는 이제 도원 그룹 오너가 됐으니 이번 파티에 당연히 참석하셔야 해요. 게다가 앞서 이씨 일가와 도씨 일가가 사이가 나쁘다는 소문이 떠돌다 보니 많은 협력사에서 감히 우리와 협력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경 그룹 눈 밖에 날까 봐 두려운 거죠. 이번에 이씨 일가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면 많은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을 테고 도원 그룹 상황도 훨씬 나아질 겁니다.”주연우가 하는 말을 도아영도 물론 잘 알고 있다.다만 이경 그룹의 파티에 참석하기에 앞서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남현숙에게 득이 돼선 안 되고, 이씨 일가와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게 아니라고 외부에 알려야 하니까.하지만...오늘 밤에 이수호를 만날 걸 생각하면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드레스 한 벌
“가시죠, 규리 씨.”“아니요! 대표님 좋은 사람인 거 알아요. 예전에 쌓아온 정을 봐서 우리 이모 한 번만 구해주세요!”“더는 우리 집에 나타나지 말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이수호가 싸늘한 눈길로 쳐다보자 임규리는 등골이 오싹했다.며칠 전에 강이나가 찾아와서 그와 임규리에 관한 스캔들을 일러바쳤는데 고작 여자들의 수작인지라 이수호는 딱히 간섭하지 않았다.어차피 임규리와 아무 사이도 아니니 똑똑한 사람이라면 둘이 불가능하단 걸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수호와 임규리는 신분 격차가 너무 크니까.그 소문들은 임규리가 지어낸 거로밖에 결론이 나지 않는다.이수호는 이렇게 꼼수가 많은 여자가 딱 질색이다.한편 임규리는 아직 본인이 한 일을 이수호에게 들킨 줄 모르고 계속 유정연을 위해 사정했다.“이모도 도씨 일가 사람인데 대표님 정말 안 도와주실 거예요?”“안 비서! 내 말 안 들려?”“알겠습니다, 대표님.”안지원이 또다시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임규리 씨, 계속 이러시면 끌어내는 수밖에 없어요.”그녀는 사색이 되었다.유정연이 감방에 간 일이 한성대에 소문이라도 퍼지면 그녀의 인생도 끝장이다.한성대에 들어온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모든 거짓말이 들통나고 더 이상 뒷배가 없다는 게 알려지면 남은 3년은 어떻게 버텨내란 말인가?아마 학자금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대표님, 제발요! 저희 이모 한 번만 도와주세요. 할머니, 제가 요 며칠 시중만 잘 들어줬잖아요. 그러니까 제발요! 우리 이모 구해주세요.”임규리는 눈물범벅이 되었다.한편 남현숙은 이수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그녀가 한심할 따름이었다.“네 이모가 그런 짓을 저질렀으니 우리도 할 수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도씨 일가의 일이니 정 도움을 구하고 싶다면 아영이 찾아가 보거라.”도아영을 언급한 순간 이수호의 두 눈이 반짝였다.그녀가 도와줄 리 있을까?왠지 유정연이 감방에 들어간 것도 도아영과 연관이 있을 듯싶었다.다만 아직도 그녀 생각 중인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수호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넌 도씨 일가의 상속자도 아니고 우리 아빠 아들도 아니야. 법적으로 볼 때 오늘부로 너희 두 모자는 우리 집안과 아무 관련이 없어. 정신 좀 차려, 지호야!”도아영은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전생에 아빠가 그녀에게 회사를 물려주셨는데 마음 약한 도아영이 유정연 모자에게 고스란히 건넸다. 결국 아빠의 회사는 3년도 안 돼서 부도났고 유정연은 도지호를 데리고 안용준과 함께 도망치려 했다.그러니 이번 생은 무슨 일이 있어도 유정연 모자와 도원 그룹을 떼어놓아야 한다.“이 자식 끌어내.”도아영이 차갑게 분부하자 도씨 일가의 경호원들이 곧장 도지호를 이 집에서 끌어냈다.그는 슬리퍼를 신은 채 반항할 여지도 없이 처참하게 집에서 쫓겨났다.“도지호랑 유정연 물건들 싹 다 정리해서 밖에 내다 버려요!”“네, 아영 씨.”주연우는 곧바로 위층에 사람을 보내서 도지호와 유정연의 물건을 싹 다 처리했다.도아영은 다 정리한 물건들을 도지호에게 내던졌다.옷과 신발, 책까지 버려진 걸 보더니 도지호는 안색이 잔뜩 일그러졌다.“다들 여기서 잘 지켜. 도지호는 이제 우리 집안과 아무 관련이 없어. 만약 얘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소란 피우면 그 즉시 경찰에 신고해.”“네, 알겠습니다.”도아영은 그가 소란을 피울 걸 염두에 두고 일부러 경비소를 차렸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도지호는 미친 듯이 철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도아영! 난 네 동생이야! 나한테 이러면 안 돼! 당장 문 열어! 나야말로 도씨 집안 아들이잖아!”도아영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게 집으로 들어갔다.유정연 모자의 흔적이 없는 이 집안은 그제야 온화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선사했다.“아영 씨, 다음 계획은?”“유정연 전 재산을 회사 계좌로 입금했어요. 그동안 모자랐던 금액을 채운 셈이죠. 이제 드디어 도원 그룹 협력 프로젝트를 운행하게 됐으니 당분간은 위기를 벗어났다고 보면 돼요.”‘이수호만 잠자코 있다면...’도아영은 이렇게 생각했다.그녀는 오늘 이수호를 가
저녁 무렵, 도지호는 집에서 줄곧 도아영의 연락만 기다렸다.도원 그룹의 차가 집 앞에 도착하자 그는 부리나케 달려나갔다.차에서 내리는 도아영을 보더니 도지호가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너 뭐야? 왜 전화를 안 받아? 집에 무슨 일 생긴 줄 알아? 당장 나랑 경찰서 가서 엄마 모셔와야지!”도지호가 명령 조로 쏘아붙이며 도아영의 손목을 붙잡고 경찰서로 갈 기세였다.이에 도아영이 그를 힘껏 내팽개쳤다.도지호는 못 믿겠다는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너 미쳤어? 감히 날 밀쳐?”이 집에서 줄곧 거만을 떨던 도지호였기에 그녀가 매정하게 밀쳐버릴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이제 막 그녀에게 손을 대려고 할 때 주연우가 덥석 막아서더니 가볍게 도지호를 제압했다.“너도 미친 거야? 우리 집안 따까리 주제에! 확 잘리고 싶어?”도지호는 힘으로 안 되니 고래고래 소리만 질렀다.이에 도아영이 차분하게 말했다.“잘 들어. 넌 이제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야. 회사에서도 아무런 직급이 없으니 주 비서는 제쳐두고 이 집안 가정부도 네 멋대로 자를 순 없어.”“이년이 지금 뭐라는 거야? 나 도지호야! 왜 이 집안 사람이 아닌 건데? 엄마가 잡혀간 틈에 내 자리를 빼앗으려고? 꿈 깨! 미친X아!”그는 기세등등한 눈빛으로 도아영을 째려봤다.하지만 도아영은 시큰둥하게 쓴웃음만 지었다.“네가 우리 아빠 아들이야? 쥐뿔도 아닌 게 무슨 자리까지 빼앗는다고 그래? 너희 엄마 안용준이랑 바람피운 건 알지? 안용준은 내가 직접 처리했고 너희 엄만 너그럽게 용서했어. 그런데 여태껏 회사 공금을 횡령하고 끊임없이 회사 자산에 손댔더라? 대체 언제까지 우리 집안 재산을 노릴 건데? 너희 두 모자 좀 너무하단 생각은 안 들어?”“개소리 치지 마! 우리 엄마가 어떻게 딴 남자랑 바람을 피워?”도지호의 안색이 확 일그러졌다.“네가 아직 어리니 그동안 나한테 무례하게 굴었던 건 그냥 눈감아줄게. 하지만 너희 엄마는 우리 아빠랑 도원 그룹에 미안한 짓을 너무 많이 저질렀어. 그건
사채업자들은 꽤 모아진 자산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드디어 도씨 저택을 떠났다.유정연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채에 딱 한 번 손을 댔더니 아들과 함께 전 재산을 털릴 줄이야.한편 도아영은 도원 그룹에서 사채업자의 전화를 받았다.“아영 씨, 분부하신 일은 다 해결했습니다. 모든 물건을 현금화해서 이체해드리겠습니다.”“알겠어요. 오늘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별말씀을요. 서 대표님 분부대로 했을 뿐입니다.”도아영은 가볍게 웃었다. 이 모든 건 서현우의 공로이니까.그의 조언대로 유정연 모자의 전 재산을 손쉽게 챙겼고 이 또한 아빠 도석진이 받아야 할 몫이다.전화를 끊은 후 도아영은 주연우에게 분부했다.“이제 다 됐어요. 시작해볼까요?”“네, 알겠습니다.”주연우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도씨 저택에서 유정연 모자가 멍하니 넋 놓고 있을 때 문밖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유정연은 화들짝 놀랐고 도지호도 어안이 벙벙했다.‘오늘 무슨 날이야? 경찰차는 또 뭔데?’유정연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와서 다짜고짜 그녀에게 수갑을 채웠다.“신고받고 왔습니다. 유정연 씨, 당신은 금융범죄 혐의로 체포되었으니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네? 뭐라고요? 금융범죄라니? 그게 대체 뭔 말인데요?”유정연은 몹시 당황했지만 경찰은 그녀의 변명 따위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서로 가서 조사받으시죠! 당장 끌고 가!”“당신들 뭐야? 왜 우리 엄마를 잡아가는 건데?”도지호가 쫓아가려 했지만 경찰은 아예 무시한 채 유정연을 차에 태우고 떠나가 버렸다.오늘 발생한 모든 일이 괴이할 따름이었다.도지호는 곧바로 도아영에게 연락했다.평상시에는 그렇게 연락이 잘 되던 도아영인데 오늘은 도통 받지를 않았다.“전화 좀 받아!”그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유정연이 경찰에 잡혀가니 그는 가장 먼저 도아영이 떠올랐다.그녀 말곤 엄마를 구해줄 사람이 없으니까.도원 그룹에서 도아영은 쉴 새 없이
“왜 그래요 갑자기? 무슨 일 있어요?”유정연은 사채에 손을 댄 일을 죽어도 도아영에게 고백할 순 없었다.도씨 일가의 가훈이 바로 사채에 손을 대지 않는 거니까.소문이라도 나면 체면이 바닥나고 도아영에게 쫓겨날지도 모른다.한편 도아영은 그녀가 사채를 빌린 걸 진작 알고 있어 입꼬리를 씩 올렸다.“지금 바로 연락해 계약서 보낼 테니까 거기 사인만 하면 효력이 발생할 거예요. 아줌마랑 지호가 우리 아빠 재산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계좌이체 해드릴게요. 사인만 하면 재무팀에 바로 연락해서 돈 보낼게요.”기세등등한 남자들을 보고 있자니 유정연은 더 이상 망설일 겨를이 없었다.“알았어! 사인할게. 바로 할게!”도아영이 곧장 휴대폰으로 계약서를 보내왔다.유정연은 꼼꼼히 읽어볼 새도 없이 바로 사인했고 계좌에 거액이 들어왔지만 모든 걸 사채업자에게 털렸다. 20초도 안 되는 사이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다만 겁에 질린 유정연은 이 과정의 수상한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이봐! 아직도 돈 있잖아! 바로 내놓으면 될 것이지 왜 이렇게 질질 끌었어? 돈 될만한 액세서리들 당장 내놔!”유정연은 허겁지겁 위층에 올라가 보물처럼 아끼던 액세서리를 모조리 꺼냈다.이것들은 전부 도석진이 생전에 그녀에게 선물한 값비싼 액세서리들이다.수년간 아까워서 제대로 착용하지도 못했고 그저 도지호의 생일날 딱 한 번 치장하고 나갔었다.“여기 있어요. 이거면 되나요?”그녀는 액세서리를 사채업자에게 건넸다.“이년이 감히 내 앞에서 꼼수를 부려? 분명 더 있을 거야! 다 내놔! 이까짓 거로 누구 입에 풀칠하겠어?”앞장선 남자가 그녀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유정연은 화들짝 놀라서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숨긴 건 맞지만 이 사람들이 대체 그것까지 어떻게 알아낸 건지 더는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그녀는 마지못해 여태껏 보관한 모든 액세서리와 명품 가방, 옷들까지 꺼냈다.“이 새끼도 있잖아! 얘 것도 싹 다 꺼내!”도지호는 평상시에 손이 커서 가격도 안 보고 물건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