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아 님입니까?”지배인이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구자영이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아뇨.”“그럼, 별일 없겠네요, 저흰 강소아 씨에게 배달하는 거라서요. 절대 틀릴 리 없어요!”“하지만...”구자영은 뭔가를 더 말하려 했지만 지배인은 그녀를 무시한 채 허리를 세우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강소아 님, 맛있게 드십시오!”......강소아는 불안한 심정으로 식사를 마쳤다. 열몇 명의 직원들이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지배인이 직접 그녀를 시중 들었고, 밖에는 무수한 학생들이 이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강소아는 식은땀이 났다. 생각할수록 이상했다.집에 가자마자 그녀는 최군형을 잡아 심문했다.“점심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최군형이 인상을 썼다. 베스트 레벨 호텔의 음식을 갖다줬는데, 입에 맞지 않았나?“최군형 씨! 사실대로 말해줘요...”강소아는 초조한 모습이었다. 커다란 눈에 안개처럼 의혹이 드리워졌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겨우 몇 글자를 뱉어냈다.“당신 대체 정체가 뭐예요?”최군형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다.이때 소정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소아더러 장부를 정리하라는 당부였다.강소아는 최군형을 쏘아보고는 독하게 말했다.“돌아와서 다시 얘기해요!”최군형은 어리둥절해서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이때 마침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조용히 정원에 들어가 메시지를 확인했다. 베스트 레벨 호텔에서 보낸 동영상이었다.“점심에 강소아 님께 준비해 드린 겁니다. 모두 최신 상품으로 준비해 드렸습니다. 지배인과 직원들도 정예 인원들입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최군형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묵묵히 그 동영상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성대했다!최군형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밥이나 한 끼 갖다주라고 했지 이 정도로 대접하란 말은 아니었는데!강소아가 왜 그의 정체를 물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이 정도라면 당연히 그의 신분을 의심할 것이었다!
최군형이 입술을 깨물었다. 목이 말랐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일에 익숙했지만 거짓말에는 익숙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받아온 교육 때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머리를 짜내 인생의 첫 거짓말, 어쩌면 가장 큰 거짓말을 지어내고 있었다.강소아가 의심 어린 눈길로 최군형을 쳐다보며 말했다.“최군형 씨, 그 호텔의 밥 한 끼는 다른 사람 연봉이에요. 그러니까...”“일을 하긴 했지만, 불법적인 건 아니에요.”최군형이 강소아의 눈을 피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전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기에 보지 않은 것이지만, 지금은 찔리는 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강소아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뭘 했는데요?”최군형이 침묵을 지켰다. 어떤 일을 하면 짧은 시간 안에 큰돈을 벌 수 있을까...그는 멀리 남양에 있는 아저씨를 떠올렸다. 지금은 잠정 은퇴했지만 남우주연상 수상자였다. 돈을 무더기로 버는 모습을 그는 똑똑히 보았다.그러니까... 배우가 가장 빠른 방법이겠지? 학력도 낮은 데다 전과자이고, 내세울 건 얼굴밖에 없으니...최군형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최군형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생애 첫 거짓말을 뱉어냈다.“어, 그러니까... 연기했어요.”“네?”강소아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대답이었다. 그녀는 몇 초간 멍해 있다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거짓말 아니고요? 하, 당신이 연기를요? 당신을 쓸 팀이 있긴 해요?”“네, 전에 기사 일을 할 때 틈틈이 남만에 갔었어요. 최근에도 계속 갔었고요. 전에 함께 일했던 감독님들과 아직도 연락해요!”강소아는 팔짱을 끼고 최군형을 쳐다보았다. 강주 남만에는 확실히 커다란 드라마 세트장이 있었다. 종종 열몇 팀이 동시에 드라마를 찍곤 했다.최군형은 잘생긴 외모를 지녔으니 꽤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강소아가 최군형을 아래 우로 훑어보며 말했다.“엑스트라에요? 그거 돈 얼마 못 벌지 않아요?”“아뇨, 대역이요. 위험한 장면을 대신 찍는 거 말이에요. 돈을 꽤 많이 벌어요.
진작 이런 거짓말을 할 줄 알았으면 아픈 척이라도 할 걸 그랬다고 최군형은 생각했다. 이틀을 소처럼 일하고 이런 말을 한다니, 퍽이나 설득력 있었다.“최군형 씨, 한 번 봐봐요!”“네? 뭐, 뭘 본다고요?”“상처가 어떤지 봐야죠! 마침 집에 응급처치 연고들도 있으니, 많이 다쳤다면 발라줄게요!”“아뇨!”최군형이 딱 잘라 말했다. 그는 강소아가 그를 공격이라도 할 것처럼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있었다.“그... 정말 괜찮아요. 전 튼튼하고, 다치는 건 너무 익숙해서 약은 안 발라도 돼요.”“최군형 씨!”강소아가 최군형의 티셔츠를 잡고 위로 올리려 했다.“한 번 보자니까요!”“가까이 오지 마요!”“소리는 왜 질러요?”“제발 그만해요! 나 만지지 마요!”최군형이 강소아를 향해 눈을 크게 떴다. 강소아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군형 씨, 저도 좋은 마음에...”강소아가 작은 소리로 설명했다. 억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소정애는 이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방 안에 있어서 두 사람의 대화를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최군형이 소리 지르는 것은 똑똑히 들었다.‘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딸인데, 이런 화를 받으며 산다니? 데릴사위가 이런 법이 어디 있어?’“소아야, 군형아, 너희 뭐 해?”소정애는 손에 든 식칼을 놓지도 못한 채 주방에서 뛰쳐나왔다. 식칼을 본 최군형이 금세 얌전해졌다.“소아야, 넌 먼저 들어가 있어. 좀 있다가 밥 먹으러 나와!”소정애는 부드럽게 웃으며 딸을 들여보내고는 돌변한 표정으로 최군형을 노려보았다.“군형아, 주방 일 좀 도와줘!”“아줌마, 저...”“올 거야, 안 올 거야?”소정애는 한 손에 식칼을 든 채 기세등등하게 서있었다. 그 기세에 눌린 최군형이 얌전히 주방에 들어가 앞치마를 둘러맸다.소정애가 웃으며 양파를 꺼내 들었다.“자, 이거 썰어봐!”최군형이 어리둥절해 있을 때, 식칼은 이미 그의 손에 쥐어졌다.“썰어!”소정애의 고함과 함께 최군형은 식칼을 휘둘러 양파에 칼을
강소아는 실언했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깜빡이며 엄마를 바라보았다. 소정애는 강소아를 끌고 거실로 와 조용히 말했다.“너, 정말 마음이 생긴 건 아니지?”“마음이 생기면 뭐 어때요? 저, 저흰 혼인관계증명서도 있고...”강소아가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그거 가짜잖아!”“엄마, 조용히 해요!”“소아야!”소정애가 슬픔에 잠겨 말했다. 정성 들여 키운 꽃을 다른 사람이 꺾어간 기분이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고 딸에게 설명했다.“엄만 네 마음을 알아서 군형이를 교육하는 거야! 교육이 끝나면 군형이는 네 말을 잘 들을 테고, 그럼 너흰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어...”“네?”강소아가 흠칫했다. 소정애는 그런 딸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물었다.“엄마가 왜 널 해치겠어? 그냥 네게 잘해주는 남자가 있었으면 해서 그래. 나와 네 아빠처럼 널 평생 예뻐해 줄 사람... 찾기 어렵다면 교육해 주면 되지. 군형이는 꼭 그런 남자가 될 수 있을 거야!”“엄마...”강소아는 복잡한 심경으로 몰래 주방을 쳐다보았다. 최군형은 죽을힘을 다해 돼지 곱창을 씻고 있었다. 물이 사방에 튀었다.소정애가 “아이고” 하며 급히 주방으로 뛰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정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없는 새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군형아, 물을 얼마나 쓴 거야? 이번 달 생활비는 두 배로 계산해 줘! 오늘 저녁도 먹지 마!”강소아는 엄마의 전투력을 알았기에 최군형의 행운을 빌며 먼 곳에서 묵묵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피하는 게 답이었다.저녁 식사 시간, 최군형은 스스로 문가에 나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소정애는 식탁에 최군형 몫의 수저를 꺼내놨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밥도 한 공기 떠주었다. 그러고는 강소아더러 그를 부르게 했다.강소아는 기쁨에 겨워 쪼르르 달려 나갔다.최군형은 조금 의외였다. 강소아의 손이 그의 팔에 올려졌다. 그녀의 따뜻한 체온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비록 표정은 없었지만 그의 마음속
최군형은 고개를 돌려 강소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벚꽃처럼 아름답고 여렸다.이때, 무의식 속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지유 기억해?”최군형의 손이 작게 떨렸다. 그는 밥을 푹푹 떠먹는 것으로 자신의 황망함을 가렸다.지유...지유가 있었다면, 그는 예상대로 육씨 가문과 결혼하고, 최상 그룹을 물려받아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됐을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강주에 있었다. 그는 영원히 지유의 실종이 남긴 어둠 속을 걷고 있을 것이었다.지유는 실종될 때 겨우 한 살이었다. 그도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아이들의 감정이 깊어 봤자 어느 정도겠는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였다.하지만 강소아를 볼 때면,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볼 때면,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을 때면, 토라진 모습을 볼 때면... 왜인지 모르게 계속 지유가 생각났다.“정신병인가?'그는 식사를 마치고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그릇과 수저를 싱크대에 갖다 놓았다. 강소아가 물을 틀려는데 최군형이 손을 뻗어 이를 제지했다.“물이 아직 차가워요, 제가 할게요.”강소아는 깜짝 놀랐다.놀란 건 소정애도 마찬가지였다. 교육이 이렇게 성공적일 줄은 몰랐다. 이제 집안일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그녀는 강우재와 눈을 맞췄다. 두 사람이 동시에 웃으며 걸어왔다.“그럴 필요 없어! 아직은 우리가 있어. 소아야, 날도 좋은데 군형이와 산책이라도 다녀와!”최군형과 강소아가 어리둥절해졌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소정애가 힘껏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두 사람은 그렇게 문 앞에 서있었다.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먼저 가요.”“그... 그쪽이 먼저요.”강소아가 얌전히 최군형의 뒤를 따랐다.최군형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큰 보폭으로 앞서 걸었다. 가로등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최군형의 그림자가 강소아의 그림자를 살포시 덮었다. 강소아의 웃음은 달님만이 보고 있을 뿐이었다.두 사람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때 강소준이 저 멀리서 뛰어왔다.“수호신 형님, 누군가 형님을
최군형이 어리둥절하게 그 채팅 기록을 확인했다. 저속한 언어들에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이게 뭐야?”“구자영과 호스트바 선수의 채팅 기록입니다.”“호스트바?”“네, 돈 받고 재롱떨어 주는 잘생기고 몸 좋은 남자들 말이에요.”문성원이 작게 웃었다.최군형은 헛구역질이 났다.“구자영에게 이런 취미가 있었어?”“처음엔 저도 못 믿었어요. 구자영의 평판이 나쁘긴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직접 떠봤어?”최군형이 단번에 알아챘다. 문성원이 흠칫하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호스트바 선수들을 많이 찾는다길래, 호스트바 선수인 척 쪽지를 보냈는데 정말 넘어오더라고요! 최근엔 한번 만나자고 난리예요! 그 계정으로 진짜 호스트바 선수들도 몇 명 접촉해 봤는데, 다들 구자영의 구린 점 하나쯤은 알고 있었어요. 이 채팅 기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요.”“그러니까, 구자영은 얌전한 재벌 아가씨가 아니란 거지? 인터넷에서나 그런 척하는 거고. 팬들이 완전히 속은 거지!”“맞아요.”문성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최군형이 차갑게 웃었다. 구자영은 콧대가 높고 눈에 뵈는 게 없을 뿐만 아니라 멍청하기까지 했다. 이런 사람을 상대하기란 쉬웠다.먼저 그녀의 가면을 벗겨 강소아에게 숨 돌릴 틈을 줘야 했다.최군형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이 일만 좀 도와줘. 제대로 잘 해야 해. 구자영이 쓰고 있는 가면을 벗길 때가 됐어.”“네. 잘할 수 있습니다. 강소아 씨를 기쁘게 해 드려야 되죠?”문성원이 웃으며 말했다.최군형의 표정이 굳어졌다. 문성원이 이렇게 빨리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버릴 줄은 몰랐다.문성원이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형님... 저 진짜 큰마음 먹고 하는 겁니다. 호스트바 선수인 척까지 했는데, 답례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최군형이 대답하려는 순간 뒤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군형 씨, 이쪽은 친구예요?”“어?”문성원이 깜짝 놀랐다. 최군형은 강소아를 쳐다보며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성원이 억지로
그녀가 문성원을 보는 눈빛으로 봐서, 들은 것뿐만이 아니라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최군형은 그만 참지 못하고 풉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문성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해명하려는데 최군형이 먼저 말했다.“그래, 성원아. 이제 나 찾아오지 마. 그런 일은 정말 못 하겠어!”“...”문성원이 눈을 크게 떴다. 몇십만 개의 물음표가 그의 머릿속에 나타났다.강소아는 마음이 따뜻해져 최군형의 팔을 꼭 잡았다.최군형은 웃으며 강소아를 바라보다가 굳은 표정으로 문성원에게 말했다.“사회 나오기 전부터 나한테 이 일을 소개해 줬잖아. 그런데 성원아, 우리 소아 씨 말이 맞아. 언제까지고 이 일을 할 수도 없잖아!”“최...”“너도 미래를 좀 생각해 봐!”문성원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최군형은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벌게진 채로 강소아와 함께 바닷가로 나갔다. 문성원만이 그 자리에 처량하게 서 있었다.두 사람이 자리를 뜬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최군형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메시지들이 한 통씩 도착하고 있었다.[형님, 책임져요!][형님, 강소아 씨에게 사실대로 얘기하면 안 돼요? 제가 왜 호스트바 선수에요?][제 이미지가 박살 났다고요!]최군형이 피식 웃고는 답장을 보냈다.[구자영 일을 잘 처리하면 그렇게 해줄게.]최군형은 답장을 보내고는 핸드폰을 꺼버리고 강소아와 산책을 즐겼다. 짙은 파랑으로 물든 바다는 별이 반짝거리는 밤하늘과 연결된 듯했다.최군형은 고개를 숙였다. 강소아의 손은 아직도 최군형의 팔을 잡은 채였다. 손을 놓는 걸 잊은 건지, 일부러 잡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최군형은 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는 낮은 소리로 웃었다. 그 웃음에 강소아가 볼을 붉히며 손을 떼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미안해요, 까먹었네요.”최군형은 조금 실망했다. 강소아가 그의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어... 그리고, 방금은 제가 친구분께 너무 무례했나요?”“아뇨, 왜 그렇게 생각해요?”“호스트바 선수라고 해서 다 나쁜 사람들은 아닌
최군형이 흠칫하며 말했다.“우리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아뇨, 그게 아니라... 육씨 가문이요.”“육씨 가문?”“네, 전에 형 부모님께서 혼사를 정해주신 그 집안 말이에요. 형님 집안의 일은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한 번 가보면 아실 거예요.”“응, 알겠어.”최군형이 짧게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앞서가고 있던 강소아는 최군형의 통화 소리를 듣지 못한 채 몸을 돌려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최군형은 어떻게 시간을 뺄지 고민하다 결국 사실대로 얘기하기로 했다.“동생이 집에 일이 생겼다고 한번 와보라고 해서요. 너무 오래는 안 걸릴 거예요. 사흘이면 충분할 겁니다.”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들어 강우재와 소정애를 쳐다보았다. 그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금세 진열대의 물건들을 여행 가방 속에 담기 시작했다.“아줌마, 아저씨, 이건...”“군형아, 어쩌다 본가에 가는데, 큰 건 못 해줘도 간식은 마음껏 가져가!”“맞아, 이거 사돈... 아니, 부모님께 드려. 우리 마음이야.”그들 부부는 큰 가방 두 개를 간식으로 꽉꽉 채우고 있었다. 최군형이 깜짝 놀랐다. 그는 감동받은 얼굴로 텅텅 빈 진열대와 부부의 만족스러운 얼굴을 쳐다보았다.“아저씨, 아줌마, 이러실 필요는...”“그럴 필요가 왜 없어! 군형아, 언제 가? 우리가 짐 들어다 줄까?”최군형은 차마 전용기가 자신을 데리러 온다고 말할 수 없었다.“맞다, 넌 집이 어디야?”최군형이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오성입니다.”그 대답에 부부가 금세 조용해졌다. 그들은 지금까지 절대 강소아의 앞에서 이곳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그들의 딸은 그들이 훔쳐 온 아이이기 때문이다.한 살짜리 아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그곳을 언급했다가 혹시라도 과거를 기억해 낼까 봐 두려웠다. 한 번 터진 기억은 화산처럼 폭발해 더는 수습할 수 없을 거였다.그들은 강소아가 평생 그들의 곁에 있기를 원했기에 그녀의 앞에서 절대 오성을 언급하지 않았다.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