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에 유찬혁은 그를 도와줄 수 없었다.“설마.. 저번에 네가 알려줬던 그 비법에 문제가 있었던 거 아닐까?”배경원은 이마를 ‘탁’ 쳤다.“설마 형수님이 늑대가 되지 않은 걸까?”유찬혁은 쓴웃음을 지었다.“어쩌면 효과가 너무 강해서 형이 내분비 장애를 겪은 거 아닐까?”배경원은 하마터면 그의 얼굴에 술을 뿜을 뻔했다....구현수는 베란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시선을 든 그는 강서연의 놀란 듯한 눈빛과 마주했다.“왜 그래?”구현수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조금 전에 통화했어요?”“어. 예전에... 감방 동기.”구현수는 덤덤히 말했다.“출소한 뒤에 나한테 돈 빌려달라고 연락한 거야. 그래서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그래요.”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현수 씨가 고함을 질렀군요. 현수 씨 목청에 건물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래도 잘했어요. 앞으로 그런 사람들이랑은 최대한 연락하지 마요. 현수 씨도 이젠 결혼한 사람이고 앞으로 우리는 평온한 삶을 보내야 하니까요.”구현수는 살짝 감동했다.그러나 강서연은 그 말을 할 때 여전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모니터에 배경원의 사진이 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구현수는 기분이 불쾌해졌다.강서연은 한동안 보다가 눈을 비볐다. 배가 또 아프기 시작한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진통제를 찾았다. 그런데 그때 구현수가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노트북을 닫아버렸다.강서연은 움찔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현수를 바라봤다.“뭐 하는 거예요? 나 자료 봐야 한다고요!”구현수의 표정이 가라앉았다.“뭐 볼 게 있다고!”“그... 고객님이라서 먼저 그의 생활 습관과 취미를 알아야 해요. 그리고...”강서연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구현수는 그녀의 베개와 이불을 안고 침실로 향했다. 그는 깔끔한 동작으로 침대 반대편에 이불을 펼쳐놓았다.강서연은 심장이 덜컥댔다.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려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구현수는 굳은 얼굴로 퉁명스레 말했다.
구현수는 눈빛이 돌변하며 강서연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의 차가운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지만 그윽한 눈빛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고 있는 듯했다.강서연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요즘 고객을 만나고 고객의 정보를 연구하는 것 때문에 혹시나 이상한 오해를 하는 건 아니겠지...’“현수 씨, 난, 난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요!”강서연은 다급히 변명했다.“난 절대 우리 혼인을 배신하지 않을 거예요. 내 말뜻은...”강서연은 뜸을 들이다가 입술을 핥더니 아주 나직하게 말했다.“언젠가 당신이 내게 이렇게 잘해줄 가치가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어떡할래요?”구현수는 강서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다정하게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안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강서연의 작은 얼굴이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닿았고, 강서연은 그의 힘찬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그 심장박동 소리가 그녀에게 무한한 안정감을 주었다.“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구현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만 자.”강서연은 웃으면서 작은 손으로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녀는 그날 밤 푹 잤다.구현수는 홀로 잠드는 것이 익숙해 거의 자지 못했다. 그는 강서연에게 팔베개를 해주었고 또 강수연이 끌어안고 자는 쿠션이 되어 쉽게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새벽이 되어 비몽사몽 깨어난 구현수는 강서연이 문어처럼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걸 발견했다. 하얗고 긴 다리는 그의 허리춤에 걸쳐져 있었고 두 손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으며 이까지 갈고 있었다.잠버릇이 좋지는 않았지만 귀엽고 진실했다.구현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혹시라도 강서연이 잠에서 깰까 봐 부드럽게 그녀를 다른 쪽으로 옮겨놓은 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아침을 만들러 갔다.강수연은 잠에서 깼을 때 옆에 사람이 없는 걸 보고 심장이 철렁해 맨발로 뛰쳐나갔다.“깨어났어?”구현수는 앞치마를 하고 주방에서 나왔다.“잠을 너무 푹 자길래 안 깨웠어. 가서
구현수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옆에 있는 방한서는 그에게 눈짓하더니 멀지 않은 곳을 가리켰다.그는 차창 너머로 작은 여인이 거리 한가운데서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옆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뒤에 있는 오성의 랜드마크가 바로 최상 그룹의 본사이다.강서연은 전화를 귀가에 갖다 대고 조용히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가볍게 숨을 내쉬더니 살짝 웃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에... 오성에서 사고를 쳐서 한동안 거기서 지냈었어.”강서연은 잠시 말을 멈추고 바로 화제를 돌렸다.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방한서는 전화기 너머로 무슨 말이 오가는지 몰랐다. 어르신이 아주 기뻐하면서 웃었다.그는 한 번도 어르신의 이렇게 부드러운 눈빛을 본 적이 없었다.전화를 끊고 강서연과 동료가 멀리 떠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방한서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르신, 방금 강서연 아가씨랑 말씀하셨던 그 장소들을 미리 치워둘까요?”“그럴 필요 없어. 편하게 놀게 놔둬.”구현수는 다시 평소의 냉정함을 되찾았다.“며칠 동안 사람 더 보내서 잘 보호해. 꼭 숨어서 몰래 하도록 해. 그 애의 눈에 보이지 않게.”“네, 알겠습니다.”“그리고 또...”그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내가 직접 나서지 않는 한, 최씨 가문의 그 누구도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최상 빌라는 오성 남부의 명황산 위에 자리 잡고 있다.빌라 전체가 산을 따라 지어져 마치 독립된 왕국처럼 위풍당당하고 매우 호화로웠다. 최씨 가문은 4대 가문의 수장으로 나라 경제의 거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다.최연준이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자 방금 전까지 북적거리던 넓은 거실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빳빳한 검은색 정장은 그의 큰 키와 건장한 몸매를 완벽하게 돋보이게 했고, 각진 얼굴은 강인하고 단호해 보였으며, 깊고 차가운 눈빛은 온 세상을 향해 차갑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그는 차분하게 아첨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훑어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없이 그들을 내
지난 며칠 동안 프로젝트에 계속 진전이 없었고 강서연과 안이수는 바이 그룹의 대문도 들어가지 못했다.안이수는 슬픈 표정으로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낙담하고 있었다.태양은 땅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고 더위는 사람들을 숨이 막히고 답답하게 만들었다.강서연은 그녀에게 물 한 병을 건네주면서 살짝 웃었다.“우선 어디 가서 점심밥 먹고 오후에 다시 와요.”“서연 씨, 소용없어요.”안이수의 목소리는 흐트러졌다.“보아하니 방진영이 우리를 속인 게 아니라 원래 오성 시장이 열리기 힘든 거였어요. 온 지 며칠이 되었는데 배 도련님의 얼굴은커녕 바이 그룹의 책임자도 보지 못했네요! 제 생각엔 우리 그냥 돌아가요...”안이수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이러다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몰라요!”“불길한 말 하지 마요!”강서연은 긍정적이었다.“이수 씨도 2년 동안 판매해 봤잖아요. 사업이 그렇게 한 번에 성공하지 않는 거 잘 알잖아요. 기회가 생겨서 기획안을 전달할 수 있으면 우린 앞으로 많이 나아가는 거예요!”“그런데 언제 그 기회가 생기겠어요!”안이수가 불만을 토로하자마자 검은색 고급 승용차 한 대가 건물 앞 내부 도로로 천천히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십여 명의 경호원이 정신을 차리고 달려서 마중 나갔다.차에서 젊은 남자가 내려왔다. 연예인처럼 잘생긴 외모에 부잣집 도련님의 오만함이 풍겼다.안이수는 그가 바로 배경원인 것을 알아보고 흥분해서 강서연의 팔을 쳤다.“배 도련님이에요!”안이수의 눈빛이 반짝였다.“와 실물이 사진보다 더 잘생겼네요. 진짜 멋있어요. 스타일도 좋네요... 방진영이 우리를 속인 게 아니었어요!”강서연은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그녀는 안이수처럼 ‘얼빠’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기회는 절대 놓칠 수가 없었다!만약 기획안을 바로 배 도련님의 손에 전해줄 수만 있다면 몇백 번 예약하는 것보다 효과가 있을 것이다.강서연은 이를 악물더니 쏜살같이 달려갔다!하지만 주변에 키가 크고 몸집이 큰 경호원들이 바로 그녀를 막아섰다. 그들은
구현수는 전화 건너편에서 여러 번 가볍게 웃었다.하지만 그 웃음은 결코 명쾌하지는 않았다. 배경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의미를 짐작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뻔뻔스럽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형... 형수님이 도대체 왜 날 찾아온 거야? 일 때문이야?”구현수는 멈칫하더니 강서연이 온밤 컴퓨터 앞에서 배경원에 관한 자료를 연구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 불쾌한 느낌이 다시 치밀어올랐다.“네가 멋있어서 그렇지!”그는 성질이 더럽게 그 한마디를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배경원은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결국 그는 모든 상황에 변함없이 대응하기로 결정하고 강서연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본 후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늦은 시간 강서연은 혼자 명황세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오늘 밤 이 성 같이 웅장한 건물은 환하게 불이 켜지고 북적거렸다. 동서남북 모든 방향의 개인 집 앞의 길이 고급 승용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용기를 타고 와서 호텔 뒷마당에 있는 활주로에 착륙했다.연회장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이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수수한 옷차림의 강서연은 이런 장소와 어울리지 않았다.그녀는 인파를 피하기 위해 돌기둥 뒤에 숨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배경원을 놓칠까 봐 이따금 주위를 둘러보았다.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전부 자태가 아름다웠고 고급 차들도 거의 똑같아 보였다... 이 모든 것의 한가운데서 누군가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강서연은 한숨을 내쉬면서 서류를 들고 계속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강서연은 낯익은 사람들이 그녀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숨기에는 이미 늦었다. 강유빈은 기침을 세게 하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강서연?”강명원과 계모 양연도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강서연은 기둥 뒤에서 천천히 고개를 내밀고 약간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서연아?”강명원은 강서연보다 더 놀라면서 물었다.“너... 네가 여기 왜 있어
“당신... 잘못 말한 거죠?”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고 강유빈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어떻게 쟤일 수 있어!”“혹시 그쪽이 강서연 아가씨이신가요?”남성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강서연 아가씨가 아니시면 뒤로 물러나 주세요!”“당신...”“이곳은 명황세가입니다. 최씨 가문에서 주최한 연회장입니다.”남성은 덤덤하게 말했다.“누구를 들이고 누구를 들이지 않을지는 제가 맡은 일입니다. 아가씨께서 알려주실 필요 없습니다!”강유빈의 얼굴은 분노로 하얗게 변했고 입꼬리가 떨렸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양연과 강명원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그녀는 강서연이었다! 촌스러운 옷차림의 사생아가 무슨 자격으로 이 자리에 나타난다는 말인가!“강서연 씨.”남성은 강서연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따라오세요.”강서연의 심장은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치는 것처럼 쿵쾅거렸고,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선생님... 착각하신 거죠?”그녀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저는 초대장도 없고, 연회에 참석하러 온 것도 아니고, 그냥 기획안을 전달하러 왔어요...”“강서연 씨, 저를 난감하게 만드시지 말고 따라오는 것이 좋을 거예요.”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봐요!”양연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남자를 잡아당겨 물었다.“그럼 우리는 어떡해요?”남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초대장이 있으신지 여쭤봐도 될까요?”“무슨 초대장이요!”양연은 팔짱을 끼고 무지막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들어가서 물어봐요. 오성에 있는 임씨 집안의 막내 할머니가 내... 내 사촌 이모의 조카예요! 할머니 말 한마디면 우리는 들어갈 수 있어요! 당신이 뭔데 감히 나한테 초대장을 내놓으라고 해요!”“임씨 집안?”남성은 입꼬리를 올리며 부드럽게 웃었다.“이보세요. 저는 명황세가의 총지배인이고 사대 가문만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임씨 가문은 리스트에서 본 적이 없는데,
구현수도 잠시 굳어있었다.그가 그렇게 뻔히 보이는 행동을 한건가...어떻게 아무 이유 없이 배경원을 질투할 수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그를 따라다닌 건 분명 배경원이었다.구현수는 가볍게 기침을 두 번 하고 컵을 집어 들고 물을 마시고 말하지 않았다.대신 작고 부드러운 손이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그러자 강서연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가 다시 불안하게 그의 코를 뚫고 들어갔다.“여보.”강서연의 목소리는 솜사탕같이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그녀는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제 일에 대해 듣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을게요.”구현수는 움직이지 않고 입꼬리를 당겼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듣고 싶지 않은 건 아니야.”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당신이 배경원 이름을 여러 번 말해서 그랬을 뿐이야. 온밤 말했는데 이제 바꾸면 안 돼?”강서연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뭐로 바꿔요?”“예를 들면...”그는 잠시 멈칫했다. “그 파티가 최씨 가문에서 주최한 거 아니었어? 그럼 최씨 셋째 도련님에 대해 들어본 적 있지?”강서연은 잠시 생각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구현수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최씨 셋째 도련님 몰라?”구현수는 굴하지 않고 물었다.“그 사람 얘기는 왜 하는 거예요?”그녀는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일어나서 베란다로 나가 빨래를 꺼내 하나씩 개었다.“전 그 사람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데, 그 사람이 파티를 주최한 게 나와 무슨 상관이에요?”구현수는 가까이 다가와 흥미진진해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렇지만 그 사람은 엄청 힘이 있다고 들었어. 최씨 가문이 또 오성의 경제를 꽉 잡고 있으니 그 사람이 파티를 열었으면 많은 유명 인사들이 참석했을 거야. 너 그때 호텔에 갔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았어? 연회장에 들어가서 보고 싶지는 않았어?”“미쳤어요?”강서연은 가볍게 웃었다.“제가 왜 그 사람을 궁금해야 하죠?”“그 연회가 그 사람 아내를 고르는 자리잖아
제인 호텔의 맨 위층 테라스.구현수는 넓은 안락의자에 반쯤 기대어 있다. 오늘은 좋은 날이 아니었고, 먼바다 위에는 안개가 자욱했는데 풀리지 않는 마음의 매듭처럼 두꺼워 보였다.“최 씨 도련님한테 관심 없어?”“그 사람의 마음에 들게 되면 벼락출세하는 거잖아!”......구현수는 조용히 잔을 들고 있는 손가락을 조였고 관절 마디가 하얘졌다.분명히 그는 그녀와 농담을 하고 싶었지만 강서연이 그렇게 강하게 반응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요즘은 그를 침실에 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와 냉전을 펼치고 있다. 평소와 같이 식사를 하고 집 청소를 하지만 그와 차갑고 정중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이 분위기는 항상 침착했던 구현수를 거의 질식할 듯 미치게 만들었다.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헛소리한 자신의 목을 졸랐을 것이다!멀지 않은 곳에 헬리콥터가 천천히 활주로에 착륙했고, 프로펠러가 돌면서 일으킨 기류가 구현수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고 그의 셔츠 한 모퉁이도 들어 올렸다.배경원은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에서 내렸고 테라스에 있는 구현수를 보자마자 그를 향해 달려갔다.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현수의 안색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호텔에 특별히 흰 트러플과 캐비아를 준비시켰지만 구현수는 조금도 먹지 않았다.배경원은 이번에 교훈을 얻은 듯 아무 말 없이 반대편 의자에 앉아 두 눈은 유찬혁을 계속 바라보며 그에게서 힌트나 무언가를 얻으려 했다. 그러나 유찬혁도 구현수의 생각을 알아낼 수 없었고 그저 커피를 마시고 조용히 서류를 보고 있었다.결국 배경원이 이 지루하고 이상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살살 웃으며 아무 말이나 뱉었다. “저기, 셋째 형... 형수님의 기획안은 내가 몇몇 총괄 담당자들한테 보여줬어요. 담당자들이 전부 좋고 프로페셔널하다고 칭찬했어요. 그리고 기획안을 만든 사람이 인재라고 우리 회사에 들여오고 싶다고도 했어요!”원래 이런 말로 구현수의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셋째 형님의 안
배현진은 마치 자신의 영혼이 몸을 떠나 허공을 떠도는 듯한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그는 허공에 떠 있는 듯 응급실의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사들이 급히 자신을 응급처치하는 모습과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로 누워 있는 자기 육체를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에서 해방된 듯한 감각이 그를 감쌌다.의식은 또렷했지만, 살아남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없었다.그날, 배현진은 오강호와 싸웠다.송윤희와 이혼 후 더 나락으로 떨어진 오강호는 그날 술집에서 술에 취해 있던 배현진과 우연히 마주쳤다.말다툼은 곧 몸싸움으로 번졌고 오강호는 배현진이 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 송윤지를 언급하며 조롱을 쏟아냈다.배현진은 격분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먼저 손을 댄 쪽이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건장한 오강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배현진은 오강호에게 몇 대 얻어맞고는 응급실로 실려 가고 말았다.지금도 배현진의 귀에는 오강호의 말이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더니 별수 없군. 여자를 제대로 붙잡지도 못하고 결국 임지강에게 뺏겼다지? 하하하...”“배 도련님, 혹시 속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임지강이 송윤지에게 접근한 건 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을 거야!”“너 같은 쓰레기가 무슨 남자야. 약혼녀도 남에게 빼앗기고 말이야.”배현진의 가슴 한구석이 세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강한 힘이 그의 영혼을 다시 육체로 끌어당겼다.옆에서 심전도가 삐 울리더니 직선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의사들은 제세동기를 정리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환자가 심장박동을 회복했습니다. 약물을 투여하세요.”배현진의 꼭 감겼던 두 눈이 살짝 떨렸다.그를 때린 사람이 임지강과 송윤지의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혹시, 그 둘 사이에 정말로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그는 알아내야 했다.죽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자신이 겪은 모든 수모를 반드시 임지강에게 똑같이 되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임지강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제가 누나랑 형부께 누를 끼쳤네요.”“그렇게 생각하지 마.”임우정은 부드럽게 말했다.“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은 결국 운명 같은 거야. 따지고 보면 이 일의 원인은 나야. 내가 처음에 송윤지를 현진이에게 소개하지 말아야 했어.”“저 때문에 누나가 곤란해진 거예요.”임지강은 진지하게 말했다.“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제가 조금 비겁한 방법을 썼어요.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배씨 가문을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배현진이 은행에 진 빚은...”임지강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임우정이 임지강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경원이와 수정이는 모두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빚진 돈은 은행에 분할해서 납부할 거야.”“그럼 이자는 받지 않을게요.”임우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안도와 약간의 무력감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배현진에 대해서는.”임지강은 계속해서 말했다.“저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윤지를 괴롭힐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예상했어야죠. 지금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심지어 정말로 정신이 나갔다 해도 그건 자업자득이에요.”“됐어, 봐줄 줄도 알아야지. 너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잖아...”임지강은 고개를 들어 임우정을 바라봤고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친 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무슨 냄새예요?”갑자기 집 안에서 송윤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지강은 놀라며 황급히 돌아섰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송윤지가 급히 주방으로 달려 들어왔다.임지강도 곧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아이고, 이거 다 태웠네요!”송윤지는 놀라 외치며 불을 껐다. 그런 다음 행주로 냄비 뚜껑을 열었다.“이건 뭐예요?”“제가 만든 당근 소고기 스튜예요...”임지강은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송윤지에서 한번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이 모양이었다.“물 안 넣었어요?”송윤지는 코를 찡그리며 물었다.“당근
임지강은 송윤지의 세계에 다시 한번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임지강은 이제 송윤지의 아파트에서 종종 머물렀다. 겉으로는 송윤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라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송윤지는 몇 번 거절하려 했지만, 임지강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그냥 놔두기로 했다.임지강은 비록 소파에서 자야 했지만, 그것조차도 행복했다.임지강은 언젠가는 송윤지의 곁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임지강은 대부분의 시간을 송윤지와 함께 보내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세 끼를 직접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송윤지가 과거에 자신을 위해 했던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정성이 담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과거 송윤지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가끔 송윤지는 집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임지강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꿈이 자꾸 송윤지를 괴롭혔지만, 송윤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조강이 곁에 있으면 훨씬 마음이 놓인다는 것을.임지강은 배현진과는 완전히 달랐다.배현진은 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앞으로’ 같은 말로 막연한 미래를 약속하곤 했다.반면, 임지강은 ‘내가 있잖아’, ‘나한테 맡겨’, ‘두려워하지 마’ 같은 말로 송윤지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임지강의 말 속에는 사랑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송윤지를 얼마나 아끼는지 충분히 느껴졌다.그날은 송윤지가 쉬는 날이었다. 임지강은 주방에서 당근과 소고기를 넣은 스튜를 끓이고 있었다.이 요리는 임지강이 새로 배운 것이었다. 임지강은 요리의 모든 과정을 조심스럽게 진행했고 조미료를 넣는 것도 마치 화학 실험을 하듯 정밀하게 측정했다.잠시 후, 요리의 향기가 퍼져 나갔고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냄비 뚜껑을 덮고 불을 약하게 조절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그가 문을 열자, 임우정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임우정은 복잡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누나?”
배현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임지강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소중히 여겨야 할 때 외면했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임지강은 손가락으로 배현진의 코앞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다시 내 여자를 건드리면, 소피아와 함께 감옥에서 만나게 될 거야.”임지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고 방을 나갔다.방 안에는 이제 배현진과 배윤아 두 남매만 남아 있었다.배현진은 멍하니 바닥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후회와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배현진의 모습을 보며 배윤아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오빠...”배윤아는 조심스럽게 배현진을 부축하며 말했다.“사실, 오빠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진작에 알아봐야 했어. 소피아가 없었다면,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배현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벽에 기대어 머리를 부딪치며 자신을책망했다.“오빠.”배윤아는 애써 배현진의 마음을 다독이며 말했다.“내 생각엔 임지강 씨는 오빠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진심으로 오빠를 망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야. 이미 송윤지의 복수를 한 거나 다름없으니, 더는 오빠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게다가 다행히도 오빠가 진 빚은 임지강 씨의 은행에서 대출받은 거니까, 그에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부탁하면 좀 봐주지 않을까?”“봐준다고?”백약곡의 쓴웃음은 공허하고 힘이 없었다.“지금 나는 아무것도 없어. 완전히 끝났어...”“오빠에겐 아직 나랑 부모님이 있잖아!”배윤아는 울먹이며 말했다.“우리는 여전히 가족이야! 오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해. 오빠가 진 빚은 부모님이 분명 해결하려고 하실 거야.”“내가 은행에 진 빚은 수천억이라고.”배현진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게다가 이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한 사람은 임지강이야. 그 사람은 절대 날 그냥 놔두지 않을 거야.”“오빠...”배윤아가 더 말을 이어가려 했
“현진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소피아는 두려움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렇게 한 건... 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은 모든 걸 여동생에게 넘겼잖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랑 제임스는? 당신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여기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제임스를 어떻게 키우겠어?”“그만해!”배현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소피아는 오직 자신과 제임스의 미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소피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배현진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대하려 했던 건 소피아를 사랑해서지, 빚진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현진 씨...”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정말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 주길 바랐고 우리가 순조롭게 결혼하길 원했을 뿐이야. 그래서 내가...”“네가 원하는 건, 배씨 가문을 차지하는 거잖아?”“당신...”“윤아는 내 친동생이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내 등 뒤에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배현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소피아는 배현진의 외침에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소리쳤다.“배현진! 앞으로 네 여동생이랑 살 거야? 아니면 나랑 살 거야?”그 말에 배현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소피아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속에 쌓여 있던 모든 후회와 분노를 폭발시켰다.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배현진의 얼굴을 긁으려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켰고 배현진의 얼굴에는 소피아에게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남았다.그때, 경찰이 방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았다. 차가운 수갑이 소피아의 손목에 채워졌다.배현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소피아가 경찰에게 끌려 나가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의 존재는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온몸이 퍼즐 조각처럼 부서져 다시는 하나로
임지강은 대출 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서류에 선명한 배현진의 서명과 붉게 찍힌 도장은 마치 피로 얼룩진 조롱처럼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제 생각엔,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조 회장이 말했다.“지강아, 빨리 돈을 배 도련님 계좌로 송금하고 그 두 광산을 사들여라. 그리고 배 도련님,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임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데, 도련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말도 안 되죠. 흥! 약속을 어기는 일은 배씨 가문의 품격에도 맞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배현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회와 절망이 그의 마음을 홍수처럼 휩쓸고 있었다.“배씨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제가 데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배 도련님도 보고 싶었을 겁니다.”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룸의 문이 열리며 배윤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배현진은 배윤아를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놀라움은 곧 걱정과 초조함으로 변했다. 배현진은 재빨리 배윤아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윤아야, 괜찮아?”“나 괜찮아.”배윤아는 눈가가 붉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고작 사흘뿐이었지만, 그 시간은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그러나 배윤아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하는 순간, 증오가 담긴 눈빛이 소피아를 사로잡았다. 배윤아는 이를 악물며 소피아를 가리켰다.“오빠, 바로 저 여자가 사람을 시켜 날 해친 거야!”“뭐라고?”배현진은 몸을 떨며 경악했다.소피아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발악하듯 배현진 곁으로 뛰어들며 변명했다.“아니야! 내가 아니야! 윤아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가 사라진 동안, 난 네 소식을 찾으려고 정말 애를 썼어. 난 정말로...”“거짓말하지 마세요!”배윤아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소피아 씨가 사람을 시켜 날 폭행하고 내 물건을 훔쳐 간 건 분명해요! 그리고 소피아 씨가 가장 원했던 게 배씨
“조 회장님,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소피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우리가 그 광산을 사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대박을 기대했는데, 지금 헐값에 팔면 원금도 못 건질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고요. 게다가 그 돈은 전부 은행 대출입니다.”“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조 회장은 다 피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건 아가씨가 주도한 일 아닌가요? 제 기억으로는 배 도련님이 처음엔 그 두 광산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걸로 압니다만.”“조 회장님...”“배 도련님.”조 회장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오히려 추악한 수단으로 올라선 여자의 말을 믿었으니, 그 손해는 당연히 본인이 책임져야죠.”“지금 말 다했어요?”소피아는 벌떡 일어나며 격분해 외쳤다.조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짓누르듯 바라보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고 소피아의 기세는 단숨에 꺾였다.“배 도련님, 매입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배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 회장은 부하에게 매입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본 배현진은 그만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임지강과 송윤지였다.배현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다 테이블을 건드렸고 접시와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임지강은 송윤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를 위해 의자를 빼주고 임지강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배 도련님, 아는 분이시죠?”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제가 따로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배 도련님.”임지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론 도련님이 투자하신 두 광산이 이제 3200억밖에 안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3400억에 사들이겠습니다. 도련님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
화면에 띄워진 데이터는 충격 그 자체였다.두 사람은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친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배현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피아 역시 어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피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우리가 1조를 들여 산 두 광산이라고! 무려 1조라고!”배현진이 소리쳤다.“가격이 분명 오를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3200억으로 폭락한 거냐고!”“나도... 나도 모르겠어...”소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광산의 시장 가격을 철저히 조사했었단 말이야. 그 두 광산은 운산시에 있는데, 지금 운산시 광산 가격이 상승세잖아. 분명 손해 볼 투자가 아니었어.”“하지만 지금 상황 좀 봐.”배현진은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소피아, 그 1조는 전부 은행 대출금이야. 지금 난 은행에 수천억 빚을 졌고 이자도 엄청나다고.”“현진 씨, 진정해.”소피아는 급히 배현진을 달래며 말했다.“이 일은 조 회장이 중간에서 소개한 거래잖아. 조 회장에게 물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 내가 직접 물어볼게.”...배현진과 소피아는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텔 룸에서 조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진은 오늘의 만남을 위해 호텔 매니저에게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의 대표 메뉴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조 회장이 방에 들어서자, 배현진은 그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조 회장의 눈빛은 마치 코너에 몰린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았고 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쥐가 된 듯한 압박감에 사로잡혔다.“두 분이 너무 과하게 준비하셨네요.”조 회장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술잔을 힐끗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렇게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나이
이른 아침, 소피아는 천천히 눈을 뜨며 옆에 누운 남자의 맨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배현진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했다.배현진은 그녀의 키스에 미소로 답하며 부드럽게 눈을 떴다.하룻밤의 열정에 지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희미한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제임스는 아직 안 깨어났어?”“이 시간엔 절대 안 일어나요.”소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 위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그럼... 우리 한 번 더?”“아니.”배현진은 소피아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댄 뒤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그는 정말로 피곤했다. 소피아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 밤 이렇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걸까?소피아는 송윤지와 완전히 달랐다. 송윤지는 늘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가 바라볼 때만 순수한 미소를 띠곤 했다.배현진은 문득 송윤지를 떠올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자기야, 무슨 일이야?”“아, 별거 아니야.”배현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맞다, 나 현진 씨랑 상의할 게 있어.”소피아는 배현진의 얼굴을 자신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제임스도 점점 크고 있어. 가정교사를 불러서 집에서만 공부시키는 건 이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또래 아이들과 학교에서 어울리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어쨌든 앞으로는 제임스가 배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지?”“음...”배현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장래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부모님이 이미 가업을 전부 윤아에게 넘겼잖아.”소피아는 미소를 띠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흡족해했다.배윤아 같은 풋내기는 소피아와 겨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배윤아를 기절시켜 조 회장의 카지노 앞에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조 회장이 배윤아를 데려갔으니, 모두가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범인이 조 회장과 임지강이라고 믿을 것이다.혹시 조 회장이 색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더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