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찬혁도 씩 웃었다.“네, 이건 제가 증명할 수 있어요.”최연준은 연거푸 마른기침했다.“지금 경원이 얘기를 하고 있잖아. 왜 날 끌어들이고 그래! 그 여자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확고하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제대로 조사해야 해.”그는 배경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남자라면 책임감이 있어야지!”“네, 그건 저도 알아요, 형.”“유람선 데이터를 복구하고 문자를 보낸 위치부터 알아낸 후에 다음 계획을 세워. 그리고 요즘 임씨 가문에 사람을 붙여. 특히 임나연 말이야!”최연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꼬리를 실룩거렸다.“아주 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게 될 거야!”...강서연은 임우정과 함께 산부인과로 와서 산전 검사를 했다. 다행히 모든 게 정상이었다.태아가 벌써 5개월이 되었고 임우정의 아랫배도 눈에 띄게 볼록해졌다. 몸에 살도 좀 오르고 혈색도 아주 좋았다. 심지어 의사마저 모든 수치가 완벽하다면서 모범이 될 정도라고 했다.검사를 마친 후 두 사람은 병원의 정원에 잠깐 앉아있었다.벌써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이 왔다. 아직 햇볕이 따스하여 그녀들의 마음도 따뜻했다. 강서연은 도시락통을 꺼내 이미 깎은 사과 한 조각을 포크로 집어서 임우정에게 건넸다.임우정이 활짝 웃었다. 이건 임산부의 특권이었다.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옆에서 알아서 다 챙겨주었다.“널 너무 오래 붙잡고 있어서 네 남편이 뭐라 하는 거 아니야?”강서연은 잠깐 멈칫하다가 피식 웃었다.임우정은 어제부터 그녀를 불러냈고 저녁에도 가지 못하게 했다. 갈 곳이 없었던 육경섭은 온천을 마친 후 체면도 마다하고 최연준과 함께 에덴으로 돌아왔다.어제 영상통화를 할 때 화면 속 육경섭의 모습은 자유롭기 그지없었다. 널찍한 티셔츠 차림에 양반다리를 한 채 최연준이 아주 아끼는 튀르키예산 양털 카펫 위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앞에는 맥주와 술안주 등 배달 음식이 가득했고 축구 경기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즐기고 있는 육경섭과 달리 최연준은 절망에 빠진 얼굴이었다.“경섭 씨가
강서연은 그녀의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 안았다.사실 임우정의 결혼생활은 아주 행복했다. 육경섭은 하루 세끼 직접 요리하여 그녀에게 식사를 차려주었고 회사 일이 아무리 바빠도 늘 그녀가 우선이었다.그녀가 임신한 후 갑자기 이상한 음식이 당긴다고 하면 한밤중에도 오성을 돌아다니며 사 오곤 했다. 어쩌면 너무도 행복하여 조금의 오점도 용납할 수 없나 보다.강서연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다정하게 달랬다.“경섭 씨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마음 놓아요. 경섭 씨가 언니한테 잘해준 것만 생각해요! 아참, 경섭 씨가 그때 그 반지를 계속 끼고 있던데, 그렇게 일편단심인 사람이 어찌 마음이 변할 리가 있겠어요?”임우정은 한참 동안 입을 꾹 다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연예계에서 일하면 술자리는 피할 수 없어요.”강서연이 계속하여 다정하게 말했다.“두 사람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는데 그만한 믿음도 없으면 어떡해요.”“서연아...”강서연이 그녀를 보며 히죽 웃었다.사실 이런 일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이상 완벽히 공감할 수 없다는 걸 강서연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녀였더라면 임우정보다 더 진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친한 친구이기에 임우정이 사소한 일에 집착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됐어요.”강서연은 휴대 전화를 그녀에게 건넸다.“배고프니까 얼른 집에 와서 밥이나 하라고 문자 보내요. 그럼 경섭 씨 한걸음에 달려올걸요?”임우정은 그녀의 설득 끝에 드디어 웃음을 되찾았다. 육경섭에게 문자를 보낸 후 임우정은 그녀에게 사과했다.“본의 아니게 연준 씨랑 네 사이를 방해해서 미안해. 연준 씨한테 이따가 집에 들어간다고 말해.”“일단 언니부터 무사히 집에 데려다주고요.”강서연이 헤벌쭉 웃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병원 로비를 지나는데 낯익은 두 사람이 맞은 편에 있었다.“엄마!”임나연은 애교를 부리며 임씨 가문 사모님의 팔짱을 꼈지만 임씨 가문 사모님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매정하게 그녀를 뿌리쳤다.
말을 마친 그녀는 앞으로 걸어갔고 임나연은 그녀 뒤를 따랐다.임우정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저 여자가 바로 임나연이지? 내가 지금 임신만 안 했더라면 진작 너 대신 한 대 후려갈겼어!”“나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에요.”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임나연이 나 함부로 못 괴롭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그래. 연준 씨가 있는데 누가 감히 널 괴롭히겠어.”임우정은 웃어 보이다가 이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저 임나연이라는 여자 말이야... 혹시 아빠를 닮았나?”“왜 갑자기 그렇게 물어요?”“임씨 가문 사모님이랑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서 말이야.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강서연도 순간 멈칫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점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스케치와 유화를 수년간 전공한 임우정은 초상화를 가장 잘 그렸다. 하여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얼굴 윤곽 등을 관찰하기 좋아했다.“언니, 또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손발이 근질근질하나 봐요?”임우정이 방긋 웃었다.“그럼 얼른 집에 데려다줄게요. 온 오후 실컷 그려요.”...누군가 임수정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봉고차에 태웠다. 임수정의 낯빛이 백지장처럼 하얬다.병원을 나선 봉고차가 도로 위를 질주했다. 임수정의 입에 검은 테이프가 붙어있었고 머리도 잔뜩 헝클어졌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며 옆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남자는 운전하며 말했다.“아가씨, 무서워하지 마! 이따가 도착해서 약만 먹으면 돼.”임수정은 겁에 질린 채 부들부들 떨었다.“아프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남자는 잇몸을 드러내고 웃었다.“그냥 벙어리가 되는 약이야.”임수정의 커다란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그녀는 이게 다 임나연의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운전기사도 임나연의 사람이고 전부 다 임나연이 꾸민 짓이었다.임씨 가문 사모님이 주치의를 찾으러 간 사이에 병실 문 앞을 지키던 경호원이 사라졌다. 그 후 이 운전기사가 갑자기 쳐들어왔고 그녀는 반항할 힘조차 없었다.“아가씨.”운전
잠시 후, 경찰이 교통사고 현장에 도착하여 통제선을 설치했다.앞차는 비싼 고급 자동차였는데 다행히 그저 라이트 두 개가 깨지고 뒷부분이 살짝 찌그러졌다. 하지만 뒤차는 심하게 파손되었다. 앞부분이 잔뜩 찌그러졌고 엔진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났다.“우정 언니, 괜찮아요?”강서연은 놀란 나머지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녀는 자신의 운전 기술이 꽤 좋고 교통 규칙도 잘 지킨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멀쩡하게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차가 그녀 차를 박아버렸다. 부딪친 순간 그녀는 브레이크를 미처 밟지 못해 수십 미터나 더 밀려나서야 멈춰 섰다.다행히 임우정은 차 안에서 줄곧 쿠션을 안고 있어 배를 다치진 않았다.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했다. 의료진들은 황급히 뒤차에 탄 두 사람을 꺼냈다.그때 경찰이 다가와 유리창을 두드리며 그녀들의 상태를 물었다. 두 사람은 별문제 없어 보이자 일단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본 후 조서를 작성하러 경찰서로 오라고 했다.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강서연은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지조차 못했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그때 들것이 그녀 앞을 스쳐 지나갔는데 삐쩍 마르고 창백한 얼굴의 소녀가 누워있었다. 유일한 핏기라고는 이마에 난 상처였다.“환자 이름 임수정.”신원을 조사하던 경찰이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어떻게 된 거야? 자료상에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인데? 어떻게 나왔지?”...수술실 밖, 임정수네 부부가 애간장을 태우며 기다리고 있었다.이번 교통사고로 임수정의 신분이 불가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임정수는 그녀를 데려간 운전기사를 엄하게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임씨 가문 사모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경찰에게 말했다.“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이런 짓을 꾸몄는지 제대로 조사해 주세요, 경찰관님!”“뭐?”임정수가 화들짝 놀랐다.“저 운전기사를 알아요?”임씨 가문 사모님은 그를 올려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당신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대체 어디서 왔는지, 왜 우리
강서연이 말한 대로 임수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그런데 누가 임수정을 납치할 수 있을까?“연준 씨.”강서연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저는 이 일이 너무 수상해서 임나연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임나연에 대해 선입견이 있거나 겨냥한 것도 아니에요.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납치범이 임씨 가문의 알려진 딸을 놔두고 왜 힘들게 아무도 모르는 임씨 가문의 딸을 납치하겠어요. 정말 돈 때문이었을까요?”강서연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계속해서 말했다.“돈 때문이라면 임수정을 데려가면 안 되는 것이고, 돈 때문이 아니라면... 또 뭐 때문일까요?”“임수정을 없애기 위해서겠지.”최연준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강서연은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제가 추측한 게 틀렸을지도 몰라요...”“틀리든 맞든 어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아야 해.”최연준은 강서연의 어깨를 껴안고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어루만졌다.최연준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고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속은 단단한 자기 여자를 보고 일종의 자부심이 솟아났다.최연준은 강서연의 손을 잡고 방으로 돌아갔다. 강서연이 잠들자 홀로 창 앞에 선 최연준은 방한서에게 전화를 걸었다.“도련님, 최근에 우리 사람들이 계속 임나연의 뒤를 밟았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꼼수 부리는 것 같지 않은데요!”방한서는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최연준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계속 따라다녀, 분명 놓친 게 있을 거야!”방한서가 동의하고 곧이어 말했다.“한 가지 더 있는데요...”“무슨 일인데?”“수정 아가씨가 깨어났어요.”최연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하지만 아가씨께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요.”...강서연과 최연준이 한밤중에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배경원은 임수정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임수정의 머리에는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었고, 몸에는 사이즈가 맞지 않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낯선 눈빛으로 배경원을 바라보며 뒤로 몸을 피했
강서연과 최연준은 서로를 바라보며 바로 이상함을 눈치챘다.“조카들.”임정수는 억지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먼저 돌아가 봐. 우리 집 수정이를 관심해 줘서 너무 감사하네. 특히 배 씨 도련님...”“아저씨.”최연준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고 차가운 눈빛 속에 깊은 뜻이 담겨있었다.“친동생이 이렇게 큰일을 당했는데, 어째서 언니라 하는 사람이 안 보여요?”임정수의 안색은 순간 변했고 말이 없어졌다.최연준은 이미 마음속에 답안을 찾았다.병원을 나온 후 최연준은 방한서에게 가해 운전자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그의 입에서 진실을 들어야 한다.지시하고 최연준은 차에 시동을 걸었고 강서연은 머리를 유리창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최연준은 강서연의 자세를 바르게 하고 자신의 외투를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그리고 강서연의 귓가에 속삭였다.“강 대표께서 내일 계약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강서연은 몸을 뒤척이며 애써 눈을 떠서 부드럽게 웃었다. 최연준의 목소리에 취하고 자석 같은 이끌림의 눈맞춤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최연준이 말하지 않았으면 정말 잊어버릴 뻔했다.강서연은 손을 뻗어 최연준의 목을 끌어안았고, 반짝이고 큰 눈망울에서는 그에 대한 애틋함이 뿜어져 나왔다.“알려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합격한 비서예요.”“그럼 강 대표님께서 저에 대해 만족합니까?”강서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최연준은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그럼... 월급 올려주세요!”“당신...”강 대표는 미처 반박할 겨를도 없이 최연준에게 입술을 머금었다.남자는 나쁜 웃음을 띠고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다음날 강서연은 서교 땅 프로젝트 사장 신분으로 윤정재와 공통으로 연합 병원을 건설하기로 계약했다.모든 것이 순서대로 진행되어 매우 순조로웠다.그러나 계약 후 연회에서 윤정재는 강서연이 시무룩한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강서연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임
윤정재가 잠시 멈칫했다. 설마 최연준이 기억을 잃은 것은 아닐까?하지만 조금 전 강서연의 옆에서 지극정성인 모습을 보니 또 그렇지도 않았다.윤정재는 강서연을 보며 웃으면서 물었다.“누가 기억을 잃었어요?”“제 친구인데...”강서연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말했다.“엄밀히 말하면 친구는 아니고 제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임씨 가문의 다른 아가씨 임수정이에요.”“그래요?”윤정재가 눈살을 찌푸렸다.얼마 전에 이 일이 떠들썩했는데, 윤정재도 들었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을 뿐이다.강서연과 상관없는 일은 윤정재는 다 무관심했고 더군다나 임씨 가문 일이다.임나연은 이미 윤정재에게 미운털이 박혔다!“서연 씨.”윤정재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얘기했다.“왜 갑자기 임씨 가문과 가까워졌어요? 그 집에 또 다른 딸이 있든 없든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에요!”“제가 임씨 가문이랑 친하게 지내는 게 아니라... 이 수정 아가씨는 정말 제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돕고 싶을 뿐이에요!”“아저씨.”강서연의 목소리는 달콤했다.“임씨 가문 사람들은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임씨 가문 사모님은 사리 분별하고 애증이 명확한 분이세요! 임나연은 제가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이에요. 임나연도 저를 건드릴 수 없을 것이에요!”윤정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딸에 대해 윤정재는 시종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하지만 강서연이 그에게 입을 연 이상 윤정재는 그녀와 가까워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아저씨.”강서연이 눈을 깜빡이며 윤정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저를 도와줄 수 있어요?”박철이 그에게 눈짓을 보내자, 윤정재는 가볍게 두 번 기침하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먼저 얘기해 두는데 저는 이 수정 아가씨의 병을 보는 것만 도와줄 거예요.”그리고 표정이 엄숙하게 변하고 다시 얘기했다.“임씨 가문의 다른 일은 제가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문나가 바에 급히 도착했을 때 임나연은 흥에 겨워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켜고 몸은 음악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
“문나 씨가 저를 도와 이렇게 큰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니, 저도 당연히 보답을 해드려야죠. 이거 받으세요!”임나연은 웃으며 입장권 한 장을 꺼냈다.문나는 어두컴컴한 불빛 아래서 입장권을 자세히 보고 눈을 크게 떴다.“이것은... 정섭 엔터테인먼트의 연회예요?”“맞아요!”임나연은 이런 반응을 매우 만족해했다.문나는 너무 설레서 두 손을 떨었다. 정섭 엔터테인먼트에서 처음 개최하는 행사지만 미리 많은 홍보를 진행해서 연예계 첫 연회로 자리매김했다.이 기회를 제대로 노린다면 앞길은 분명히 빛이 날 것이다.“나연 씨, 너무 대단하세요! 이걸 어떻게 구했어요?”문나는 임나연을 안았다.“정말 입장권을 저한테 주는 거예요?”“저는 연예계 사람도 아닌데, 가지고 있어도 무슨 쓸모가 있겠어요. 당연히 맞는 사람에게 줘야죠!”임나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때 육경섭도 나온다고 하던데...”임나연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문나 씨는 알고 있죠?”임우정의 임신한 배를 생각하면 임나연은 온몸이 불편했다.임산부가 기분이 안 좋으면 태아에게도 영향을 미치는데... 임우정이 안 좋으면 강서연도 같이 힘들어할 것이다.임나연은 음산한 웃음을 띠었다.강서연을 힘들게만 할 수 있다면 임나연은 어떠한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이틀 뒤 문나와 육경섭의 스캔들이 오성을 떠들썩하게 했다.가장 먼저 노출된 것은 영상이다. 문나가 술에 취한 남성을 부축해 비틀거리며 호텔로 들어갔고 날이 밝은 후에야 나온 모습이다.파파라치가 똑똑히 찍었는데, 그 남자는 육경섭이다.문나의 얼버무린 대답과 함께 이 일이 계속 불거지며 실시간 검색어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악플이 많이 달리긴 했지만 지금의 문나는 일류 스타들보다 더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강서연과 최연준은 병원으로 향했고 응급실 밖에서 퇴폐적인 모습의 육경섭을 만났다.강서연은 심호흡을 하며 육경섭의 뺨을 때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고 그에게 다가가 침착하게 물었다.“이게 도
가끔 차가 지나갔지만, 정승우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다.어둠이 내려앉았고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며칠 동안 육체와 마음이 지친 권온유는 이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정승우는 어쩔 수 없이 온유를 등에 업고 비틀거리며 길을 걸었다.“오빠...”권온유는 울먹이며 말했다.“해가 졌어요. 저... 무서워요.”“괜찮아.”정승우는 뒤돌아 미소를 지었다.“오빠가 집에 데려다줄게.”“오빠, 우리 그냥 돌아가요...”“뭐라고?”권온유의 시선이 정승우의 피로 물든 발에 닿았다.“발이 많이 아프죠?”권온유의 작은 얼굴 위로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오빠, 저 내려주세요. 그냥 돌아가요...”“온유야?”권온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그 집이 낡고 춥긴 해도... 오빠 발에서 피가 나진 않잖아요!”정승우는 멍하니 잠시 굳어 있다가 그 어눌한 말 속에 담긴 다정함을 깨달았다.이 작은 아이는 납치당했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라도 정승우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정승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작은 새들이 집으로 향해 줄지어 날고 있었다.정승우는 온유를 데리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짐했다.“바보야.”정승우는 온유를 내려놓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난 하나도 안 아파.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그 사람이... 우리를 때릴까요?”“그럴 거야.”정승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린 시절, 정대명에게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탈출할 때 그의 뒤통수를 내려친 한 방은 그동안의 빚을 모두 갚은 셈이었다.“그런데 오빠, 그 사람은 오빠 아빠잖아요?”권온유는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하지만 오빠가 아프다고 제가 말했을 때 오빠 아빠가 들어왔었잖아요.”정승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정대명이 들어온 것은 아마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함께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없어질까 봐서였었다.정대명은 단지
차 안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영미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정대명에게 다가갔다. 그의 머리 아래로 어두운 핏자국이 퍼져 있었고 그 흔적은 이미 굳어 있었다. 영미는 정대명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댔다.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영미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른 채 차가운 눈빛으로 정대명을 내려다보다가 거칠게 발길을 휘둘렀다.“일어나요!”강소아와 최군형도 다가와 공장 안을 살폈지만 안은 고요히 비어 있었다.“아이들은요?”“아이고...”정대명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살려줘, 살려줘... 저 괘씸한 녀석이!”“정대명 씨!”영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어쨌든 이번 일은 영미가 자신 있게 권온유의 행방을 안다고 장담한 일이었다.영미는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함께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확신에 차 말했다.그런데 지금... 정대명은 다쳐 쓰러져 있고 두 아이는 사라졌었다.백인서를 함정에 빠뜨리려던 영미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정대명은 도움을 청하려다 영미가 눈짓을 주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영미의 눈길을 따라 보니 최군형과 강소아도 함께 와있었다.정대명은 예전에 영미가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는 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정대명은 머리를 살짝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신이 정대명인가요?”최군형이 다가가 물었다.정대명은 말끝을 흐리며 최군형의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백인서의 양아버지시고?”최군형은 다시 물었다.“당신이 당신 아들과 함께 권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게 맞나요?”“아니야, 나 아니야!”정대명은 크게 당황하며 손을 흔들었다.“이봐, 동생, 난 억울해! 내 아들 녀석이 나를 해치려고 했어! 내 머리를 봐, 그 자식이 벽돌로 내리쳤다니까!”“그만해요!”영미는 정대명의 말이 길어질수록 상황이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정대명을 노려보며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했다.강소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들의 서툰 수법이 한심하기만
경찰서 밖에서 최지용은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젊은 경찰관이 안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최지용은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정호야!”정호라는 젊은 경찰관은 최지용을 보자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 녀석!”최지용은 정호에게 다가가 가볍게 주먹을 툭 날리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거야?”정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방금 최씨 집안에서 백인서를 데려간 사람 중에 정호도 있었다. 최지용도 놀라웠지만, 영미 역시 경찰이 직접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떠나기 전, 정호가 살짝 눈짓을 보냈고 최지용은 그의 의도를 알아채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지용이 형.”정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형수님께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분하고 계시니 문제없을 겁니다!”“도대체 누구 지시로 백인서를 여기로 데려온 거지?”“소아 아가씨예요!”정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소아 아가씨가 갑자기 지시한 거라 사전에 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최지용은 살짝 놀랐다. 강소아의 지시라니.“형수님께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 아이가 실종되기 전에 형수님께서 만난 적이 있거든요. 경찰이 형수님을 데려가서 조사하는 건 당연한 절차입니다.”최지용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피식 웃음을 지었다.강소아가 이런 ‘당연한 절차’를 이용해 백인서를 경찰서로 보낸 이유는 경찰서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또 누군가가 음모를 꾸며 백인서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해도 경찰서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경찰서 안에는 일을 봐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백인서가 여기서 며칠 지내는 동안 힘든 일 없이 외부의 소란도 피할 수 있는 셈이었다.최지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강소아는 정말 자매를 위한 배려가 남달랐다. 이렇게까지 배려심 깊은 방안을 생각해 내다니!“지용이 형.”정호가 계속해서 말했다.“도련님께서
영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소아 언니, 저를 믿지 않으세요?”“난 오직 사실만을 믿어.”“권씨 가문의 딸이 실종된 사건에 백인서 씨의 양아버지와 남동생이 관련되었어요, 그게 바로 사실이에요!”강소아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려 했다.세상에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호텔 뒷뜰에 있는 그 CCTV가 정말 완전히 고장 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육씨 가문과 최씨 가문이 힘을 합쳐 그 고장 난 CCTV 하나도 못 고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최군형은 강소아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안심시키며 슬며시 휴대전화를 건넸다.강소아는 화면을 확인했다. 최군형의 부하가 보낸 메시지였다.“도련님, CCTV 데이터를 복구 중입니다. 곧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강소아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영미가 이렇게까지 백인서를 몰아세우는 걸 보니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꺼림칙한 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어차피 꼬리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었기에 그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바로 그때, 집사가 다소 당황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집사의 뒤에는 몇 명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방 안을 둘러보며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기 백인서 씨가 계십니까?”표아정은 등을 꼿꼿이 펴고 대답했다.“경찰관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당신이 백인서 씨인가요?”“저는...”“백인서 씨가 납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신고를 접수했습니다!”“뭐라고요?”백인서는 얼굴이 창백해졌다.“백인서 씨,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권온유가 납치된 지 하루가 지났다.그동안 정대명은 단 한 번 음식을 가져왔는데, 그것도 차갑게 식은 죽 한 그릇과 딱딱한 빵 한 조각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하게 자란 권온유에게 이런 음식은 처음이었다. 울고 싶었지만, 감히 울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참으며 빵을 조금씩 뜯어 먹고 있었다.정승우는 그런 온유의 모습을 보고
“아줌마,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그럼, 제가 알아낸 사실을 전부 말씀드릴게요!”영미는 입가에 교만한 미소를 띠며 백인서를 차갑게 한 번 쳐다보았다.“백인서 씨의 친어머니인 백홍은 인신매매범이었다는 사실, 모두 아셨나요? 백인서 씨의 어머니는 백인서를 정대명의 집에 맡겼고... 흥! 정대명의 아내도 백홍이 납치해 왔다는 소문이 있어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잖아요. 제 생각엔... 인신매매범의 딸이라면 그런 일쯤은 익숙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권온유의 실종이 정말로 백인서 씨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나요?”“영미!”강소아가 나서며 분노를 가득 담아 소리쳤다.“허위 사실을 퍼뜨리지 마!”“소유 아가씨, 억울하네요!”영미는 강소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이렇게까지 조사한 건 다 아가씨를 위한 거예요! 딸도 있는 사람이 백인서를 곁에 두고도 마음이 놓이세요?”“그만해!”최지용이 크게 소리쳤다.백인서는 몸을 떨며 믿기지 않는 눈으로 최지용을 쳐다보았다.그러나 최지용의 얼굴에는 의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최지용은 굳건한 눈빛으로 뒤에 있는 백인서를 지키고 있었다.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백인서를 아끼고 있었다.백인서는 코끝이 찡해지며 본능적으로 최지용의 손을 꼭 붙잡았다. 최지용의 따스한 손은 백인서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그 온기가 어둠의 두려움을 잊게 해주었다.최지용은 백인서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고 다시 영미를 바라볼 때는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영미야.”최지용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집안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저 넘어가는 거야. 더 이상 선을 넘지 마.”최군형도 나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백인서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모르겠어요? 영미 아가씨, 우리 최씨 가문 사람들을 바보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영미는 순간 긴장했다. 최군형의 말 속엔 어딘가 숨은 뜻이 있는 듯했다.최군형의 깊고 복잡한 눈빛을 파악하기 어려웠다.표아정은 천천히 일어나 어깨에 걸친 숄을
백인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최지용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그때 최지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표아정이었고 다급한 목소리로 서둘러 돌아오라고 재촉했다.최지용은 결국 어머니의 말에 따라 백인서를 데리고 최씨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넓은 거실에는 최군형과 강소아도 나와 있었고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백인서가 들어서자, 표아정이 백인서를 올려다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다.강소아는 백인서와 눈을 마주치며 단호하게 미소 지었다.백인서가 의아해하던 찰나, 영미가 천천히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아줌마, 지용 오빠. 제가 권온유의 행방을 알아냈어요.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뭐라고?”최지용이 놀라서 물었다.“네가 어떻게 아는데?”영미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지용 오빠,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정보가 우리보다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최씨 가문은 만능이 아니에요, 최씨 가문도 모르는 정보가 있다고요.”표아정은 가볍게 기침하며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았다.최군형과 강소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주목하고 있었다.최지용의 이마에는 점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미의 눈에는 한 줄기 교만한 빛이 번졌다.영미는 오는 길에 이미 모든 계획을 짰다. 정대명의 말이 맞았다. 누구를 훔치든 상관없었다. 인신매매범의 딸인 백인서가 아이들을 해치러 다닌다는 누명을 씌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면 백인서는 모두의 신뢰를 잃게 될 터였다.영미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강소아가 인신매매범을 곁에 둘 리 없다고 믿었고, 최지용 역시 이 사실을 알면 더는 백인서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영미는 정대명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었다.영미는 권온유를 넘기고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한패가 되어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주장할 계획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백인서는 변명의 여지도 없이 궁지에 몰릴 것이었다!“지용 오빠.”영미는 고개를 돌려 최지용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권온유는 정승
“그... 괜찮아!”정승우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권온유에게 말했다. 정승우는 이곳에서 권온유를 반드시 데리고 나가겠다고 결심했다.그런데 이때, 공장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곧바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정승우는 재빨리 권온유에게 눈짓했고 권온유도 알아채고는 즉시 땅바닥에 쓰러져 의식이 없는 척했다.정승우는 벽에 기대어 눈을 반쯤 감았다.“이 아이인가요?”영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맞아.”정대명은 영미를 흘깃 노려보며 묵묵히 대답했다.영미는 두 걸음 앞으로 다가서서 희미한 빛 속에 있는 아이를 살펴보더니, 곧 얼굴빛이 확 변했다.“이 아이... 혹시 권씨 집안의 막내딸 아니에요?”정대명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애초에 아이를 훔쳐 올 때 이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리가 없었다.“정대명 씨.”영미가 차갑게 웃으며 돌아보았다.“제가 최씨 가문 집안 아이를 훔쳐 오라고 했지, 권씨 집안 아이를 훔치라고 했나요? 이러고도 저를 속이지 않았다고요?”“그게...”정대명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영미 아가씨, 어차피 목적은 백인서를 곤경에 빠뜨리는 거잖아? 그러니 누구를 훔쳐 오든 상관없지 않아? 아이를 훔치기만 하면 유괴범이 되는 거니까.”이 말은 영미에게만 충격을 준 게 아니었다. 정승우의 귀에도 또렷이 들어왔다.“좋아요.”영미는 깊은숨을 들이마신 뒤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이 아이는 잘 지키고 있어요, 제가 다시 연락할 테니까.”...한편, 권씨 집안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권욱은 조순영을 탓하며 아이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했고, 조순영은 오열하며 남편을 원망했다. 조순영은 권욱이 바깥에서 여자와 부적절하게 얽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했다.“헛소리하지 마! 사람들이 나한테 어떤 소문을 퍼뜨렸는지 잘 알잖아. 결혼 생활 내내 너한테 부끄러운 일 한 적 없어.”“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정말 떳떳하게 행동했다면 왜 사람들이 당신만 가만두지 않는 건데?”며칠 전까지만
권온유의 질문에 정승우는 당황했다.권온유는 커다란 눈망울로 정승우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던 슈퍼맨 같은 오빠가, 이제는 먹을 것 하나 구하지 못하는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정승우는 어색하게 입가를 씰룩이며 권온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갔다.“너, 정말 배고파?”“네!”권온유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듯 작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원래는 엄마랑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했어요. 엄마가 특별히 고등어조림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하셨거든요... 엉엉... 엉엉...”“울지 마, 울지 마! 그냥 생선 하나 가지고...”“나 배고파!”정승우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아이와 대화하는 건 그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겨우 권온유를 달래고 나서 정승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팔을 걷어붙이며 권온유에게 내밀었다.“너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고프면, 여기 한번 물어볼래?”권온유는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정승우를 바라보았다.“우리 집은 가난해서 늘 먹을 게 부족했거든. 그래서 어릴 때 너무 배가 고프면 이렇게 배고픔을 달랠 만한 걸 물곤 했어.”권온유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배고픔을 달랠 만한 것'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정승우는 웃으며 계속 설명했다.“예를 들어 쌀통 같은 거야. 한때 쌀이 들어 있던 쌀통은 비어 있어도 쌀 냄새가 남아 있거든. 그래서 쌀통 가장자리를 살짝 물면서 하얀 쌀밥을 먹는 상상하는 거야. 그러면 배가 덜 고파져.”“그리고 이웃집에서 밥하는 냄새를 맡으며 그 밥을 먹는 상상을 하는 거야. 그러면 그렇게 배고프지 않더라고.”권온유는 정승우의 이야기에 넋을 잃고 입을 벌린 채 있었다. 정승우는 웃음을 터뜨렸다.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한때 정대명이 도박과 술에 빠져 정승우를 굶겼던 시절은 그야말로 비참한 순간들이었다.잠시 후, 권온유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고 정승우는 속으로 ‘큰일이다'라고 생
영미는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최지용을 지켜보았다.최지용은 다소 초조한 기색으로 구석에 앉아 휴대전화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 전화를 걸기도 했다.영미는 바로 뒤를 따라갔고 최지용의 낮고 다급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찾았습니까?”“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세요... 만약 납치범의 목적이 돈이었다면 분명 전화를 걸어올 겁니다!”영미의 가슴이 철렁하며 내려앉았다.납치범이라니? 대체 뭘 찾는다는 거지?백인서와 통화한 걸까?그때, 최군성이 큰 소리로 외쳤다.“지용이 형, 여기서 뭐 해요?”영미는 얼른 몸을 숨겼고 최군성은 최지용에게 다가가 최지용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우리 형이 찾고 있었는데 여기서 뭐 하고 있었던 거예요? 어서 와서 먹고 즐기자고요!”최지용은 최군성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영미와 눈이 마주쳤다. 둘은 동시에 잠시 멈칫했다.영미는 급히 시선을 피하며 억지 미소로 인사했다.“지용 오빠...”“어, 영미?”최군성도 배윤아처럼 물었다.“여기 웬일이야? 형님이 널 초대한 것 같지 않은데?”“그게...”영미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최군성은 영미의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최지용을 끌고 가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최지용은 점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영미가 도대체 여기 왜 있는 거지?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사람이, 왜 하필 오늘 온유가 사라진 날에 나타난 걸까?그때, 최군형과 강소아가 가원이를 품에 안고 나타났다.강소아는 아이를 보행기에 앉혔고 아이는 보행기 가장자리를 잡고 작은 발을 내디뎠다. 이 모습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영미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자리를 떠 교외의 버려진 공장으로 향했다.그 시각, 정대명은 영미의 지시에 따라 승합차를 몰고 공장에 도착해 있었고 영미가 도착했을 때 그는 공장 문 앞에서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영미는 핸드백을 휘둘러 정대명에게 던졌다.“정대명 씨, 감히 날 속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