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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6화

Author: 적매화
3 년 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묘하게 겹쳐진 두 개의 기억이 하나의 장면이 되어 그녀의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유일하게 다른 것이 있다면 삼 년 전에는 임원이 실수로 유리잔을 깨뜨렸던 것이었고 지금은 서원 공주가 일부러 찻잔을 깨뜨려 노골적으로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려 한다는 것이었다.

삼 년 전 그녀는 세상 물정을 몰랐다.

억울한 누명을 쓰면 당황해서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달랐다.

공주의 도발적인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공주, 이곳에 저희 둘만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귀부인들을 장님 취급하실 겁니까? 중전마마도 계신 자리에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렇게 뻔뻔하게 억지를 부리다니.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귀부인들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중전마마까지도 계신 자리에서 이게 무슨 행패란 말인가?

그러나 서원 공주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른 아가씨들은 김단에게 가로막혀 찻잔이 깨지는 장면을 제대로 보았을 리 만무했다.

설령 보았다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녀는 이 조선의 유일한 공주인데.

그녀는 어릴 적부터 전하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다.

중전마마가 아니라 전하가 있었다 하더라도 자신을 나무랄 수 없었다.

즉 이 나라에 그녀를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바로 그때

문밖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주상 전하 납시오!”

이 말을 듣자 모든 사람이 일제히 문을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심지어 중전마마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모든 여인들을 이끌고 공손히 예를 올렸다.

“전하를 뵙습니다.”

전하는 큰 걸음으로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기분이 상당히 좋은 듯 목소리에도 은근한 웃음이 배어 있었다.

“모두 일어나거라.”

그제야 사람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때 전하의 뒤를 따라 들어온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는 최지습이 있었다.

소하와 소한 또한 그와 함께였다.

그 외에도 몇몇 청년재사들도 동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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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17화

    서원 공주는 고개를 돌려 최지습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불쾌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실종한지 여덟 해만에 나타난 대군자 따위가 지금 뭐라고 한 거지? 권력도, 군사도 손에 쥐지 못한 사람이 감히 자신의 말을 반박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주제도 모르고 이 나라 공주 앞에서 위세를 부려?이에 그녀는 낮게 목소리를 깔며 물었다.“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혹 제가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임단 낭자를 모함하기라도 했다는 뜻입니까?”그녀는 어이없다는 눈빛을 하고는 물었다.김단은 공주의 일품 연기에 눈썹이 찌푸러졌다.최지습은 서원 공주를 만난 적이 많지 않지만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정도는 간파하고 있었다.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것도 모자라 타인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그러니 김단을 향한 그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최지습의 눈빛은 원래도 예리했지만 지금은 분노까지 더해져 살벌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그럼 내 너에게 묻겠다. 조선의 유일한 공주인 네가 무슨 이유로 단이에게 차를 올린단 말이냐?”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는 김단의 젖은 치마를 유심히 바라보았다.“그리고 또 하나. 찻잔을 깬 사람은 단이인데 왜 네 치마는 그리 깨끗한 것이지? 설마 단이가 자신에게 물을 쏟았다는 것이냐?”사람은 찻잔을 떨어뜨릴 때 본능적으로 찻잔을 바깥으로 밀어낸다.설령 손을 놓쳤다 해도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찻잔이 깨졌다면 적어도 두 사람의 치마가 모두 젖어 있어야 했다.그러나 지금 젖은 것은 오직 김단의 치마뿐이었다.비록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순 없지만 이 일에 분명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서원 공주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러나 그녀는 떨린 가슴을 진정시키고 당당하게 말했다.“저를 믿지 않으신다 해도 좋습니다. 그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임 낭자를 모함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그녀는 최대한 태연한 척 목소리를 가다듬었지만 가슴속에서는 불안한 감정이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18화

    중전은 김단에게 ‘불효’라는 죄명을 씌우려고 했다.이번에야말로 반박할 수 없겠지.부모의 은혜는 하늘과도 같으니 그것을 부정할 도리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최지습은 여전히 담담한 태도로 중전을 힐끗 바라볼 뿐이었다.“씻을 수 없는 과거는 잊어도 된다는 말입니까? 용서받을 수 있는 죄라는 것도 있을까요?”그의 말은 단호하고도 분명했다.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김단이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 알 것이다. 그 누구도 그녀를 비난할 자격은 없었다.순간 중전의 얼굴이 굳어졌다.최지습. 감히 전하와 대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체면을 짓밟다니!김단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최지습이 전하 앞에서도 이토록 강경하게 중전과 맞설 줄은 몰랐다.전하의 얼굴이 서서히 어두워지는 것을 발견한 김단은 최지습이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둘러 나섰다.그녀는 중전을 향해 조용히 예를 올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중전마마께서 모르시는 일이 있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직접 저와 진산군 댁의 인연을 끊는 의식을 주관하셨습니다. 예전에 제가 그 집에 있을 때 대감님과 마님께서도 스스로 선언하셨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저를 찾지 않겠다고 말입니다.”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임씨 집안과의 연은 이미 오래전에 완전히 끊어진 것일 뿐 불효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인파 속에서 한목소리가 들려왔다.“이 일에 대해 제 조부께서도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서원 공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눈에 띄게 불쾌한 기색을 내보였다.그녀를 바라보는 중전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그러나 곧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며 얘기했다.“그렇군. 내 미처 그 일까지는 몰랐네.”그녀는 더 이상 캐묻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전하 또한 그 여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낭자는 구태부의 손녀, 구연평이오?”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그녀의 태도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19화

    비록 이 일이 진산군 댁의 집안사라 끼어들 자격이 없다고 말했지만 전하인 그도 그녀를 김단이라고 불렀다.이쯤 되니 중전도 더 이상 그녀를 임단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김단의 마음은 감격으로 벅차올랐다. 그녀는 즉시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황공하옵니다 전하.”중전과 서원 공주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어딜 가나 주목받던 소한은 오늘따라 존재감이 없어 보였다. 여전히 눈에 띄는 위치에 서 있었지만 방 안의 모든 시선은 김단과 최지습에게 쏠려 있었다.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한도 그 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그는 3년 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3년 전, 만약 그도 최지습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김단의 편을 들어줬더라면,진산군 댁 사람들이 모두 김단을 비난하더라도 그녀 앞에 서서 모든 책임은 자기가 지겠다고 얘기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후회감이 밀려든 그는 두 주먹을 바스러지듯 꽉 움켜쥐었다.소한은 마음속으로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억누르려 애썼다.그는 과거 자신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그때 왜 최지습처럼 행동하지 못했는지?그녀가 끌려가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도 왜 가만히 있었는지?공주가 아무리 그 찻잔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저 한낱 유리그릇일 뿐이다.전공(军功:전투에서 세운 공로)과 맞바꾸면 될 간단한 일이었는데 대체 그는 무엇을 고민했던 것일까?3년 전도, 지금도 그는 변한 것이 없었다.분명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음에도 최지습처럼 그녀를 보호하려 하지 않았다.분명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있었는데 또 한 번 놓쳐버렸다.김단이 그토록 많은 수모와 학대를 당한 후에야 그녀를 구해내겠다고 나섰으면서 결국 또 망설이는 모습이라니.소한, 너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구나.소한의 마음은 고통으로 점점 더 옥죄어 왔다.그의 감정은 점차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격해졌다.곁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소하는 가슴이 아팠지만 조심스레 손을 뻗어 소한의 어깨를 가볍게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20화

    오늘 전하는 최지습을 맞이하는 환영 연회를 빌미로 그의 혼사를 주선하려고 했다.연회가 무르익을수록 전하는 은근슬쩍 구연평과 최지습을 엮어 이야기하곤 했다.농담처럼 건넨 말들 속에는 은근한 압박이 담겨있었다.듣다 못한 구연평은 얼굴이 새빨개져 더는 버티지 못하고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먼저 자리를 떴다.연회가 끝나고 나서도 최지습은 홀로 남아 있었다.여름밤의 어화원은 낮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밝게 내리쬐는 달빛 아래, 온 정원은 신비로운 기운에 감싸여 있었다.몇몇 반딧불이 어둠을 가르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그 장면을 보고 있던 전하가 입을 열었다.“어릴 적에 말이다. 네 아우랑 여기서 반딧불이를 잡던 기억이 나느냐?”최지습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기억납니다. 그때 제 아우가 물에 빠져 오랫동안 고뿔에 걸렸었죠.”그 일로 인해 어머니께 모질게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전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둘이 같이 물에 빠진 거였지. 그때 마침 내가 그곳을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너희 둘 다 저승길로 갔을 것이다.”하지만 그 아우는 태자 싸움에서 친형제의 손에 무참히 죽고 말았다.그 무거운 기억에 최지습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전하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물었다.“아니, 이놈아. 넌 언제 이렇게 커버렸느냐? 내가 기억하는 넌 아직도 꼬맹이인데!”최지습은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전하께서 나라를 위해 이리 수고하시니 세월이 흐르는 것도 모르나 봅니다.”전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세월이라는 게 참으로 무정한 것이지. 어찌 기다려 주지 않고 흘러만 갈까?자신의 열세 번째 동생은 이렇게 훤칠하게 자랐고 자신은 어느덧 늙어버렸다.그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시 구연평 이야기를 꺼냈다.“그래. 그 구 낭자는 어떠냐?”최지습은 일부러 모른 척했다.“무슨 말씀입니까?”전하는 그를 노려보며 타박했다.“시치미 떼지 말거라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21화

    전하는 은근히 최지습에게 경고하고 있었다.아무리 그래도 형인 자신이 난처하지 않게 조금은 생각해 주었어야지.하지만 최지습이 그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먼저 김단을 저격한 건 중전 마마입니다. 그리고 서원도 마찬가지지요. 형님께서야 말로 그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전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서원은 짐이 버릇을 잘못 들인 게 맞다. 허나 이제 와서 성격이 고쳐지겠느냐? 어차피 시집갈 날도 멀지 않았으니 그냥 모른 척하는 것이다. 그 이후의 일은 짐이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으니까.”그 태도는 마치 무책임하게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뜻 같았다.최지습의 입꼬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전하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최지습을 떠보기 시작했다.“그래서 너는 김단을 계속 네 저택에서 지내게 할 생각이냐?”“네.”최지습의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제 저택은 넓습니다.”“헛소리!”전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쏘아보았다.최지습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그 낭자가 네 저택에 머무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제대로 된 명분도 없는 여자가 남자 집에 머무는 건 또 무슨 도리이더냐?”최지습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그 아이는 제 의남매입니다. 그 명분으로는 부족하단 말인가?”전하는 혀를 끌끌 찼다.“그건 네 법칙이고. 의남매이니 의형제이니 하는 거 말이다. 그게 어디 대명천지에 내놓을 수 있는 이름이더냐? 내 차라리 김단에게 군주 작위를 내려주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최지습은 전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밤의 어둠은 꽤 깊었으나 그 눈빛 속에 엿보이는 날카로움은 가려지지 않았다.최지습은 차분하게, 그러나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물었다.“군주로 봉하고 군주부를 내려주고 난 후 단이를 소한에게 맡기시려는 속셈입니까?”전하는 잠시 당황하며 눈동자를 굴렸다.그가 자신의 얕은 꾀를 단숨에 간파할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22화

    전하는 최지습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 그에게 최지습은 남아있는 유일한 동생이었다.그런 동생이 여덟 해 동안 실종되었다가 가까스로 돌아왔으니 자기가 한발 물러나야지 뭐 어쩌겠는가?전하는 화가 나서 속이 뒤집히는 듯했지만 그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어휴 마음대로 하거라 이 무능한 놈아. 며칠 뒤 내 구 낭자와의 자리를 마련할 테니반드시 나가거라!”“소인 물러가겠습니다.”최지습은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그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전하도 마음속에 억눌렀던 답답한 감정이 서서히 사라지는 듯했다.최지습의 등장으로 인해 전하는 여덟 해 동안 꽁꽁 묶어두었던 감정들을 하나둘씩 드러내기 시작했다.그는 자신의 동생이었다. 이복형제였지만 같은 아버지의 피를 나눈 유일한 혈육이었다.한때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칼을 휘둘렀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웠던 존재이다.그로 인해 많은 사람을 죽였고 여덟 해 동안 죄책감에 몸부림쳤던 사람.자신은 지금 임금이 되어 만백성의 존경을 받으며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다.그러니 이제는 그가 최지습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비록 최지습이 크고 건장한 사내로 자랐다고 하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호수에 빠져 허우적대던 소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어리숙하고 연약했던 그 소년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어 주고 싶었다.궐에서 나오는 길, 최지습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이 궐은 너무도 많은 추억을 품고 있었다.좋은 기억, 나쁜 기억, 따스했던 순간, 그리고 처참했던 순간까지도그러나 결국 그 모든 기억은 피비린내로 물들어 있었다.청회색 벽돌 하나까지도 피를 머금고 있는 듯했다.그는 청석으로 된 작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바로 이곳에서 그는 여섯 번째 형님을 죽였다.그리고 달빛이 비치는 높다란 궁궐 벽에서 그는 열 번째 형님을 장창으로 죽여버렸다.조금 더 걸어가니 궐문이 보였다.그때 그는 저곳에서 저항하던 여덟 번째 형님을 말에서 끌어내려 그의 가슴을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23화

    오늘 연회 자리에서 최지습은 술을 꽤 많이 마셨다.하지만 그의 주량으로 봐서는 그 정도로 취할 리가 없었다.그러니 김단은 지금 최지습의 상태가 몹시 걱정되었다.혹시나 자신의 편을 들어주다 중전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로 인해 전하가 그에게 이상한 것을 먹인 건 아닐까?원래는 궐문을 나선 후 쉽게 다시 들여놓지 않지만 궐을 지키는 병사가 마침 소하의 부하였고 최지습과도 잘 아는 사이였기에 김단을 허락해 주었다.조심스럽게 최지습을 부축한 후 그의 손목을 잡아 맥을 짚어 보았다.그의 손은 뜨거웠고 맥은 고르게 뛰고 있었다.비록 정식으로 의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소가에서 유 대인과 함께 지내며 맥 짚는 법 정도는 익혀두었기에 맥박을 측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최지습의 맥은 고르고 평온했다.그러니 몸에 해로운 것을 먹은 것은 아닌 듯했다.그렇다면 정말로 술에 취한 것일까?궐 안의 술이 그렇게 독하단 말인가?그런데 그 순간, 최지습은 김단이 얇디얇은 어깨로 자신의 팔을 받쳐주려 애쓰느 모습을 보고 문득 그녀의 힘을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자신의 체중의 반을 실어 그녀에게 기대보았다.뜻밖에도 김단은 그 무게를 감당하며 버티고 서있었다.작은 체구라 힘겨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생각보다 나약하지 않았다.“대군 자가, 조금만 버티세요. 마차가 바로 밖에 있어요.”김단은 이를 악물고 무게를 감당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최지습의 단단한 근육과 다부진 체격이 그녀의 어깨를 짓눌러 아팠지만 김단은 묵묵히 버텼다.다행히도 궐문까지는 몇 걸음 남지 않았다.최지습은 그런 김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바로 세웠다.작고 여린 몸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강단과 결의가 느껴졌다.그녀의 땀방울이 이마를 적셨고 입술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최지습의 입가에 어느새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나는 괜찮소.”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순간 김단은 어깨에 실린 무게가 줄어든 듯한 느낌을 받았다.하지만 최지습이 일부러 무리해서 버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24화

    최지습은 김단이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야 입을 열었다.“아마 형님께서는 낭자와 소한을 이어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소.”그 말을 들은 김단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럴 리가요? 소한 도련님께서 청혼하려 했을 때 전하께서 친히 그 혼인을 막아주셨잖아요.” 그때 전하가 김단에게 얼마나 큰 자유를 주었던가.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자신은 소가의 둘째 며느리로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또 그 고통 속에 갇혀 평생을 힘들게 살았겠지.김단은 그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최지습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아마도 소한이 낭자 때문에 미쳐가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지신 것 같소.”최지습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소한이 전장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기에 오왕의 난을 겪어본 전하마저 크토록 안타까워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김단에게 저지른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김단은 가늘게 떨리는 손끝을 감추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저는 더 이상 소한 도련님과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그 말에 최지습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좋소.”그의 목소리는 한결 가벼웠지만 그 안에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그녀를 향한 깊은 신뢰와 존중이었다.이틀 후 전하는 최지습에게 구연평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최지습은 김단을 데리고 나섰다.마차 안에서 김단은 계속 최지습을 곁눈질하며 바라보았다.그가 부탁할 일이 있다며 데리고 나왔지만 정작 그 부탁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만남 장소는 한양 밖의 대나무 정원이었다.여름의 뜨거운 햇살은 대나무 잎에 걸려 아름다운 금빛 조각이 되어 땅 위로 흩어졌다.대나무 숲 사이로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잎은 살랑거리며 청량한 소리를 냈다.대나무 정원의 하인이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그들을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정원 깊숙이 자리한 아담한 정자에는 구연평이 기다리고 있었다.오늘 그녀는 달빛 같은 흰색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부드럽게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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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34화

    덕빈의 그 한 대는 정말이지 강렬했다.그 탓에 김단이 전하를 알현하러 갔을 때 한쪽 뺨은 눈에 띄게 부어올라 있었다.덕빈이 김단의 뺨을 때린 일은 이미 전하의 귀에도 들어갔다.그런데 김단의 부은 얼굴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그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러졌다.“이렇게 심하게 때렸단 말이냐?”김단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별일 아닙니다. 이미 약을 발랐습니다.”하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그의 스승이 알려준 처방대로 만든 약을 사용했다면 붓기와 열기가 말끔히 사라졌을 것이다.하지만 김단은 전하의 걱정을 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부은 얼굴로 그를 만나러 왔고 약을 썼다고 거짓말을 했다.전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짐이 사람을 시켜 확인해 보았다. 손헌이 죽은 시각에 낭자는 궐 안에 있었더구나. 무엇보다 낭자같이 허약한 자가 손헌 같은 자를 해치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손헌은 어찌 되었든 한때 금군을 이끌던 총령이다.김단은 체구도 작고 무공도 제대로 익히지 않았기에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전하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덕빈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지.”김단은 그 말속에 숨은 의도를 명확히 읽어냈다.전하는 이 일로 덕빈을 엄하게 벌할 생각이 없었다.전하 마음속에서 덕빈은 여전히 큰 존재였다.김단은 그의 뜻을 따라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덕빈마님께서 먼저 자식을 떠나보내셨고 이번에는 동생마저 잃으셨습니다. 일시적으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신 것도 이해가 됩니다. 다만 그 분노를 삭히지 못해 병이라도 얻으실까 걱정됩니다.”전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깊이 공감하였다.이때다 싶어 김단은 머리를 숙이며 전하에게 간곡히 부탁했다.“간청하옵니다 전하. 전하께서 동의하신다면 제가 덕빈마님을 찾아가 오해를 풀고 싶습니다. 그리고 겸사겸사 진맥도 해보려고 하는데 괜찮으신지요?”김단의 태도에 전하는 매우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참으로 마음 넓은 아이로구나. 그런 성품을 지녔으니 최지습도 낭자를 지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33화

    김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리고 곧 이어진 건 덕빈의 날 선 고함이었다.“천한 계집년이! 대체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단 말이냐! 기아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 동생까지 죽여?”내가 죽였다고?김단의 눈썹이 찌푸려졌다.본능적으로 서원공주를 힐끗 바라본 후 덕빈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덕빈마님, 부디 진정하세요. 이 일에는 분명히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무슨 오해!”덕빈은 날카롭게 소리치며 다시 김단의 뺨을 내리치려 했다.다행히 이번에는 김단이 몸을 뒤로 빼며 그 손을 피했다.하지만 덕빈은 포기하지 않았다.그녀가 거칠게 김단을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뒤늦게 달려온 윤이와 나인들이 덕빈을 제지했다.그러나 덕빈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손헌이 당한 죽음은 너무나도 처참하고 모욕적이었다.그건 단순한 처벌이 아니었다.손 씨 가문 전체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었다.몸이 붙잡혀도 그녀는 계속해서 발악했다.마치 그녀의 살갗을 찢어버리고야 말겠다는 기세였다.이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서원공주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했다.“감히 중전의 침전 앞에서 난동을 부리다니요. 중전마마를 눈에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까?”“당장 덕빈을 가두거라. 이번 일은 내 직접 아버님께 아뢰어 엄벌을 청할 것이다.”“예.”나인들은 일제히 대답한 뒤 덕빈을 붙잡고 억지로 끌고 갔다.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고함소리는 여전히 귓가에서 메아리쳤다.김단의 뺨은 벌겋게 부어올랐고 화끈거리는 통증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그때 서원공주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괜찮소?”김단은 고개를 돌려 공주를 바라보았다.“공주님께서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이 정도 상처는 약만 바르면 금방 나을 겁니다.”그 말에 서원공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김단이 집요하게 자신을 응시하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왜 그렇게 쳐다보시오?”김단은 한숨을 내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도대체 공주님께서는 무슨 일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32화

    전하가 떠난 뒤 서원공주는 김단과 함께 중전에게 예를 올렸다.중전의 침실을 나선 그들 뒤로 윤이와 다른 나인들은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며 걷고 있었다.김단은 직감적으로 공주가 자신에게 따로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그들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지자 서원공주는 입을 열었다.“아버지의 몸을 돌보는 일은 후궁들과는 차원이 다르오. 오늘 내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낭자 같은 의원이 어찌 아버지의 몸을 돌볼 기회가 있겠소?”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전하를 가까이 뵙기 어려웠겠지만 자신처럼 명의의 제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달랐다.그러나 그 진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었다.김단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모두 공주님 덕분입니다.”서원공주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앞으로도 잘하시오. 아버지께서 만족해 하신다면 낭자를 어의로 만들어 줄 수도 있소.”그러고는 무언가 떠오른 듯 그녀는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추었다.“그러고 보니 수 어의도 나이가 많지 않소? 몇 해 안에 물러나게 되면 그 자리를 낭자에게 주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오.”그녀는 마치 김단의 미래를 꽃길로 닦아주는 후원자라도 되는 양 자랑스러운 어조로 말했다.하지만 김단은 그런 자리에 관심이 없었다.그녀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사랑하는 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것.벼슬이나 권세 따위를 목표로 두고 있는 게 아니었다.그럼에도 겉으로는 감격한 듯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김단의 연기를 공주가 눈치챌 리 없었다.여인으로서 관직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이 직접 김단을 내의원 원장 자리까지 밀어주겠다고 나섰으니 김단이 감격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서원공주는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그녀는 김단을 바라보더니 낮고 느릿한 말투로 얘기했다.“낭자는 이제 내 사람이오. 그러니 나는 낭자를 돌봐줄 책임이 있소. 이거 하나만은 명심하시오. 말을 잘 듣는 자만이 은혜를 누릴 수 있소.”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31화

    소하의 미간에는 어느새 짙은 근심의 스며들었다.소한은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억지로 붙잡거나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의 방식은 여전히 극단적이었다.거의 다 나아가던 상처를 일부러 뜯어내어 다시 덧나게 하다니...그렇게 자신의 몸을 해쳐가며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하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소한은 듣지 않을 것이다.자신의 말은 힘이 없다는 걸 이미 오래전부터 체감하고 있었다.그저 방금 전 김단이 한 말이 소한을 정신 차리게 할 수 있기를 바랐다.시간은 조용히 흘러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이날도 김단은 평소처럼 중전의 약을 들고 그녀의 처소를 찾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중전의 문병을 온 전하와 마주치게 되었다.전하는 중전의 곁에 앉아 나인들이 중전에게 약을 먹이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더니 김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중전의 몸은 어떠하냐? 도대체 언제쯤이면 완전히 회복된단 말이냐?”김단은 머리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중전마마의 기력은 지난 보름 사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지만 중독된 세월이 워낙 오래되었기에 완전히 회복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전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생각해 보면 십여 년간 몸속에 쌓인 독이 하루아침에 깨끗이 나을 리 만무했다.다만 최근 소하로부터 중전에게 독을 먹인 자가 중전의 외가 친척인 맹씨 집안이라는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문득 그 생각이 떠오르자 전하의 눈썹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그 표정을 본 서원공주는 혹여 김단이 책망당할까 걱정되어 급히 입을 열었다.“아버지, 어머니의 몸은 정말로 전보다 훨씬 나아지셨어요. 제가 직접 지켜봐서 확신할 수 있습니다.”전하는 딸이 김단을 두둔하는 모습이 의외였는지 조금 놀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정말 그러하냐?”“정말입니다.”서원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지금 김단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니 그녀를 지켜주는 건 당연했다.“어머니뿐만 아니라 궐 안의 다른 마님들도 얼굴빛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건 아버지께서 가장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30화

    소한의 가슴에 감겨 있던 붕대 위로 선홍빛 피가 점점 번져가며 그 면적을 넓히더니 이내 붕대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그 모습을 본 소하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그는 망설임 없이 소한의 팔을 붙잡아 끌며 말했다.“상처가 덧났다. 약 발라줄 테니 가만히 있거라.”하지만 소한은 그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며 노골적으로 말했다.“형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소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켜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그는 소한이 또 김단을 귀찮게 한다는 소문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던 것이다.소한의 상처는 대부분 아물었기에 굳이 내의원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방금 그 잠깐의 실랑이로 인해 상처가 다시 벌어질 줄은 소하도 예상하지 못했다.김단은 그런 상황에 이골이 난 듯 차가운 눈빛으로 소한을 노려보다가 결국 담담하게 말했다.“앉으세요 얼른.”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약통과 붕대를 가지러 갔다.소한은 그제야 만족한 듯 조용히 의자에 앉아 상의를 벗고 탄탄하게 다져진 상체를 드러냈다.그의 눈에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김단에게 치료받을 수 있다는 기쁨과 방금 전 그녀의 약병을 깨뜨렸다는 죄책감이 동시에 얽혀있었다.김단은 말없이 다가와 그의 상처를 감싸고 있던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었다.그의 상처가 드러났을 때 김단과 소하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한아, 제정신이냐?”그 상처는 단순한 실수로 인해 벌어진 게 아니었다.누가 봐도 일부러 아물어가던 상처를 다시 찢은 흔적이었다.소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소하를 노려보았다.소하가 여기서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또 싸움이 날 게 뻔했다.김단은 아무 말 없이 붉게 벌어진 상처를 들여다보더니 묵묵히 약을 발라주기 시작했다.그녀는 끝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소한 역시 그녀의 손길에 몸을 맡기면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상처를 다 치료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장군이라면 자신의 몸부터 아껴야 합니다.”김단은 짧게 한마디 뱉어버리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소한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29화

    생각해 보면 참 서글픈 일이었다.한때는 자신의 전부였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가 온갖 꾀를 부리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만 겨우 그녀를 볼 수 있는 꼴이라니.한때 자만심으로 빛나던 젊은 장군이 지금은 초라할 만큼 안쓰러운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었다.김단은 그를 향해 뭐라 질책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차라리 야멸차게 욕을 해서라도 정신 차리게 만들고 싶었지만 그조차 헛되이 들릴 만큼 이 남자의 모습은 너무 진심이었다.그때 소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앞으로… 내가 다치면 낭자가 약 발라주면 안 되겠소?”“안 됩니다.”김단은 단칼에 잘라내듯 대답했다.그녀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전 군의관이 아닙니다. 전쟁터에서 다쳤다고 가정을 해보세요. 그때도 한양까지 올라와서 저한테 치료 받으실 겁니까?”그러자 소한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낭자가 내 상처를 봐준다고만 하면 난 얼마든지 참고 버틸 수 있소.”그 말에 김단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때 마침, 문밖에서 들려온 단단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또 다쳤다고?”곧이어 문이 열리고 검은 전투복 차림을 한 소하가 당당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몸에 딱 맞게 재단된 옷자락이 날렵한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렸고 허리춤에는 장검이 매달려 있었다.힘 있고 절도 있는 그 걸음에 방 안의 기류가 달라졌다.그를 발견한 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소하 도련님.”반면 소한의 얼굴은 순식간에 구겨지더니 찡그린 얼굴로 소하를 노려보며 날을 세웠다.“여긴 왜 왔습니까?”소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김단에게 인사한 뒤 소한을 바라보았다.“네가 다쳤다고 해서 말이다. 많이 다친 것이냐?”그러면서 그는 조용히 손을 뻗어 소한의 옷깃을 젖히려 했다.그러자 소한은 그 손길을 피하기 위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관심 끄세요. 전 김단한테 치료 받으러 온 겁니다.”그 말에 소하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입을 열었다.“김단은 바빠 보이는데? 네 약은 형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28화

    그 두 나인이 집요하게 김단을 괴롭혔던 건 단지 개인적인 악감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그들은 명백히 공주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그리고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세답방에 있던 사람들 중 그녀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 있었던가?모두가 서원공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김단을 괴롭히고 짓밟는데 앞장섰다.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와중에도 두 나인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찧으며 용서를 구했다.하지만 김단의 머릿속에는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며 울부짖던 자신의 모습과 그녀의 고통을 즐기던 그 두 나인의 모습이 눈앞에서 다시 재현되는 듯했다.김단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서원공주가 건넨 채찍을 건네받았다.무릎을 꿇은 두 나인을 잠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팔을 들어 채찍을 내리쳤다.무자비하게 휘두르는 것도, 감정을 담아 퍼부은 것도 아니었다.단정하고 절도 있게 한 사람당 다섯 대만 때렸다.두 나인은 땅바닥에서 몸을 웅크린 채 울부짖었다.채찍질을 멈춘 그녀는 채찍을 다시 서원공주 앞에 조용히 내밀었다.그 얼굴엔 분노도 통쾌함도 없었다.서원공주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무언의 손짓으로 두 나인을 끌고 가라고 지시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단의 얼굴에는 억눌린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났다.그렇다면 분노를 터뜨리듯 채찍을 휘두를 줄 알았건만 김단은 여기서 멈췄다.예상과는 다른 그녀의 반응에 공주가 입을 열었다.“이걸로 충분한 것이오?김단은 천천히 숨을 내쉰 뒤 차분하게 말했다.“공주님께서 명하신 일인데 제가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전에도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저의 원한이 깃든 사람은 저 둘이 아닙니다. 두 나인을 보는 것도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이 고통의 시작은 결국 진산군 댁과 임원 낭자입니다.”그 말에 서원공주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김단은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믿지 않았다.단지 자신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뱉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27화

    “내가 준다 했으면 그냥 받으시오.”서원공주는 김단 앞으로 성큼 다가서더니 망설임 없이 비녀 위에 보요를 꽂아버렸다.금빛이 찰랑이자 세 알의 붉은 보석들이 더 눈부시게 빛났다.그 반짝임은 오히려 김단의 얼굴을 더 하얗고 뚜렷하게 만들어 주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원공주는 예상치 못한 감정을 느꼈다.김단에게 준 보요는 원래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어릴 적 아버지께서 직접 내려준 소중한 물건이었다.그녀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던 장신구가 김단을 이토록 빛나게 해주니 너무나도 거슬렸다.김단의 머리 위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진 보요는 마치 원래부터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그 사실이 묘하게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공주의 체면이 있으니 이미 내어준 물건을 다시 거두어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서원공주는 얼굴에 가벼운 불쾌감을 띄운 채 말했다.“나는 공주이니 값비싼 장신구들은 많소. 낭자에게 하나 내준다고 해서 아쉬울 거 없다는 뜻이오.”김단은 이 장신구가 예전에 자신이 모욕당하며 손에 쥐었던 공예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 보요의 값은 공주에게 있어 그저 하나의 숫자에 불과할 것이다.김단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공주자가의 은혜는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성심을 다해 공주님께 보답해 드릴게요.”그 말은 김단이 의도적으로 뱉은 것이었다.오늘 먼저 손을 내민 것은 공주였으니 김단은 그저 그녀의 의도대로 반응해 주기만 하면 된다.아니나 다를까, 서원공주는 김단의 태도에 만족한 듯 얼굴에 흐뭇한 기색이 번졌다.“낭자의 의술 실력이 출중하니 내 눈여겨본 게 아니겠소? 기억해시오. 낭자만 잘한다면 나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오.”“명 받들겠습니다.”김단은 여전히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그러자 서원공주는 아무 말 없이 발길을 돌려 어화원의 안쪽 깊은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김단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그렇게 시간이 조금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26화

    약 한 시진이 흐른 뒤 김단은 정성껏 달인 약그릇을 조심스레 들고 중전의 방으로 들어섰다.세자는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고 중전 곁에는 서원공주만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중전은 독으로 인해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라 약을 마시자마자 곧 잠에 들었다.서원공주는 어머니의 이불을 다정히 여며주고 나서야 조용히 밖으로 향했다.김단 역시 자연스레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그녀가 공손히 예를 갖추고 물러나려던 찰나 서원공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윤이야, 김 의원의 물건은 네가 대신 내의원으로 가져가거라. 나는 김 의원과 따로 나눌 말이 있다.”윤이는 고개를 숙이고는 김단이 들고 있던 약그릇을 받아든 뒤 조용히 자리를 떴다.그제야 서원공주는 고개를 돌려 김단을 바라보며 익숙지 않은 미소를 지었다.“나와 잠깐 어화원으로 가지 않겠소?”그녀의 속내가 무엇인지 헤아릴 수 없었지만 공주의 부탁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그렇게 멀찍이 떨어진 나인들을 뒤로하고 가을이 짙게 내려앉은 어화원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가을 끝자락의 정원은 특유의 고요함과 깊은 색채로 물들어 있었다.노랗게 물든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스치고 마른 낙엽이 조용히 발끝에서 사그라들었다.서원공주는 얼마 걷지 않아 조용히 걸음을 멈췄다.“오늘 오라버니 때문에 많이 놀랐소?”김단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세자저하께서 중전마마의 병이 걱정되어 그런 것이니 이해합니다.”김단은 정중하게 대답했지만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다.그녀가 진짜 경계하고 있는 대상은 세자가 아닌 바로 눈앞에 있는 공주였다.늘 고고하고 거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던 사람이 이토록 부드럽게 말을 걸어오고 친절을 베푸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김단은 속으로 의심하고 있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그런데 그 순간 서원공주가 갑자기 김단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그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지만 김단의 심장은 차갑게 식어갔다.“그동안 어머니 곁을 지켜줘서 고맙소. 낭자가 아니었다면 어머니께서는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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