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않았다니?!김단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우 대감이 말했다. “여기는 이야기할 곳이 못 됩니다. 오늘 밤, 소신이 거처에서 김 낭자를 기다리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김단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우 대감은 그제야 손을 놓았고, 예를 올린 뒤 몸을 돌려 떠났다.우 대감이 떠난 뒤에야 김단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솔직히 말해서 만약 물건이 정말 중전의 침전에 있는 것이라면, 그녀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것을 파내려고 할 것이다.우 대감이 왜 주상의 말에 따르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로서는 좋은 소식이었다.이에 김단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그녀가 몸을 돌려 떠나려는 찰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녀를 불러세웠다.“김 낭자 아니오?”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김단의 등골이 오싹해졌다.서원 공주였다.그녀는 몸을 돌려 서원 공주에게 인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공주 마마를 뵙습니다.”“정말 김 낭자였군!”서원 공주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 모처럼 한가하여 화원에 나왔거늘, 이렇게 김 낭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지 않겠소?”과거 연금당했던 일 때문인지 서원 공주는 줄곧 김단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전에는 중전의 체면 때문에 김단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중전도 없으니 서원 공주의 성격상 결코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김단은 자신이 화를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이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그때, 뜻밖에도 서원 공주가 갑자기 앞으로 다가와 김단의 뺨을 때렸다.“짝!”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김단은 그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졌다.서원 공주의 날카로운 꾸짖음이 들려왔다. “이런 못난 것! 그때 나를 모함했을 때는 오늘 같은 날이 올 것이라 예상조차 못했을 것이오! 여봐라, 이리와 낭자를 흠씬 패거라!”옆에 있던 궁녀들은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라며 말했다. “공주 마마, 지
환관은 한숨 돌리고 기뻐하며 인사를 올리고 떠났다.반면 우 대감의 표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러나 그는 애써 침착한 척 말했다. “김 낭자,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낭자의 관직이 저보다 높다지만, 실권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 않으십니까? 내의원 최고의원인 낭자께서 어찌 원예사인 저의 일에까지 상관하시려는 겁니까!”김단은 미소를 지은 채 우 대감 주변을 돌기 시작했고, 위에서 아래로 그를 훑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어린 시절 입궁하며 만났던 원예사 역시 우 대감이었던 걸로 기억하오.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그 자는 대감의 부친이었을 것이오.”우 대감은 김단이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어 몹시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예, 저희 아버님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김단이 다시 말했다. “원예사라는 직책은 후원의 초목 관리를 담당하는 것이오. 외간남자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궁에서 오직 원예사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지. 그러니 원예사 될 수 있는 자는 뛰어난 기술 외에도 주상 전하로부터의 전적인 신뢰가 필요할 것이오.”그녀의 말에 대해 우 대감은 자부심을 갖고 말했다. “우리 우씨 가문은 대대로 주상 전하의 은혜를 입어왔습니다. 선조 이래로 상림원을 시작으로 부지런히 가꾸고 일했으며, 감히 말씀드리건 데 약간의 소홀함도 없었습니다. 매년 봄에는 꽃을 다듬고, 가을에는 물을 주었습니다. 진귀한 꽃과 풀들을 일일이 계절에 맞춰 관리했습니다. 여러 마마들로부터 총애를 받아오긴 했으나, 감히 그 총애를 믿고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밤낮으로 본분을 지키는 데만 힘썼습니다.”김단은 자연스레 미소를 보였다. “그렇군. 풀과 나무도 때를 아는데, 하물며 신하야 오죽하겠소?“그 말을 들은 우 대감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김단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약간의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김단은 우 대감 옆에 서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회화나무 아래, 무엇이 묻혀 있는 것이오?“이 말을 듣자 순식간에 우 대감
바로 그때, 멀리서 꾸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망할 놈, 누가 너더러 흙을 뒤엎으라고 했느냐!”김단의 주의가 그곳으로 쏠렸고, 시선 역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그곳에는 관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환관을 꾸짖고 있었다.김단은 단번에 그 사람의 신분을 알아차렸고, 순간적으로 회화나무 주변에 새로 일궈진 흙을 떠올렸다. 이에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원예사 우 대감이지 않소?”상대는 깜짝 놀랐고, 환관을 꾸짖다가 분노가 채 가시지 않은 듯한 얼굴로 김단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에야 황급히 몸을 굽혀 인사를 올렸다. “아, 내의원 김 낭자 오셨습니까?”원예사는 보통 민간에서 선발되어 후원의 조경 관리를 전담하는 칠품 관리였다.김단 같은 오품 관리를 보면 곧장 예를 갖추는 것이 당연했다.김단은 미소 지었다. “우 대감은 무슨 일 때문에 그리 화를 내는 것이오?”우 대감은 다시 환관을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망할 놈이 감히 제 허락도 없이 느티나무 주변의 흙을 다 뒤엎어 버렸지 않겠습니까!”흙을 뒤엎은 것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무뿌리를 상하게 할 수도 있도 심지어 나무를 말라 죽게 할 수도 있다.이는 원예사로써 직무 유기라는 큰 죄를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환관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소인은 대감께서 얼마 전 중전 마마 궁궐의 흙을 뒤엎는 것을 보고 이 역시 뒤엎어야 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그는 자신이 일을 잘했다고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설마 꾸중을 듣게 될 줄 알았겠는가?우 대감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고, 다시 그를 꾸짖으려 했으나 김단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이것도 회화나무인 것이오? 궁궐에는 중전 마마 침전에 있는 회화나무 한 그루밖에 없는 줄 알았거늘!”앞에 있는 몇 그루의 나무들은 회화나무와는 조금도 닮아 보이지 않았다.우 대감이 말했다. “예, 이것은 느티나무입니다. 중전 마마 침전의 회화나무와 마찬가지로, 같은 종류에 속합니다.
그 말을 들은 중전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내 낭자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만, 지금은 선화궁이 시끄러운 상태이니 괜히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오.”김단을 배려하는 듯했지만, 사실은 더 이상 끼어들지 말라는 경고에 불과했다.김단은 곧장 대답했다.이어서 중전이 몇 마디 덧붙였고, 김단은 그녀의 모든 말이 끝난 뒤에야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김단이 나가자마자 문 앞에 있던 나인이 안으로 들어와 중전 곁으로 다가가 중전의 어깨를 주물렀다.“마마께서는 오늘 김 낭자가 한 말들을 믿으십니까?”“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는데, 어찌 분별할 수 있겠느냐?” 중전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정도는 믿을 만하구나.”“그게 무엇이옵니까?”나인이 궁금해하며 물었다.중전이 말했다. “김 낭자는 약왕곡 주인의 직속 제자이다.”그 말을 들은 나인은 깜짝 놀랐다. “정말이옵니까? 그런데 그 약왕곡 주인이라는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옷깃조차 만져보지 못한 다는 사람이 어찌 낭자를 선택했단 말입니까?”중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은 모르겠다만, 낭자의 의술이 빠르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고, 약왕곡의 독을 한눈에 알아보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 약왕곡 주인 말고 또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사실 이전에 소하의 다리 병을 치료했을 때부터 나는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맹씨 가문 사람만이 소하의 다리 문제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당시 김단이 소하의 다리 병을 치료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중전은 김단이 약왕곡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나인 역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마마, 만약 낭자가 진실을 고한 것이 아니고 주상 전하에 대한 일을 발설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네 생각은 어떠느냐?” 중전은 웃으며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낭자는 줄곧 자신의 스승을
중전이 김단을 바라보는 눈빛이 점차 싸늘해졌다. “낭자가 이런 사람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소. 난 낭자가 평양원군을 사모하여 기꺼이 그를 위해 희생한 줄 알았거늘……”김단은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그런 어리석은 짓은 소신이 열다섯 살 전이라면 가능했을지 모르나, 열다섯 살 이후로는 그런 일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중전은 김단이 소한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알아들었다.이내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소한 장군도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났군…”“인과응보일 뿐입니다.”김단은 매우 태연하게 대답했다.중전은 그제야 손을 들어 올렸다. “됐소, 이만 일어나 보시오!”김단은 곧장 인사를 올리며 일어섰다.중전은 그녀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낭자가 말한 것을 나 역시 이해할 수 있다만, 단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소. 어찌 선화궁을 알고 있는 것이오?”이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그녀는 도대체 누가 입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지 알아내야 했다.그러나 김단은 자신이 지목하는 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이에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마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날 주상 전하께서 가짜라는 것을 안 뒤, 소신은 온갖 방법으로 수소문에 나섰습니다. 그러던 중 매일 선화궁으로 어탕국밥이 드나들고 있다는 걸 듣고 난 뒤 집중한 것입니다.”그 말을 들은 중전은 흠칫 놀랐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나 역시 백방으로 조심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그 어탕국밥 한 그릇이 발목을 잡았군.”김단도 따라서 미소 지었다. “마마께서 패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마께서 원하시는 것을 얻게 되시면, 이 천하는 모두…”“입 조심하시오.”중전이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치며 김단의 말을 끊었다.김단은 입을 다물고 그녀의 비위에 맞췄다.중전은 김단을 쓱 훑어보았다.키가 크지 않고, 꽤나 말랐다.관복 사이로 유난히 하얗고 부드러운 그녀의 피부가 돋보였다.아무리
중전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이미 김단이 과거 한 번 그녀를 속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살짝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런게 아니라면 왜 선화궁에 약선을 보낸것이오?”“소신이 생각했을 때 중전 마마께서 원하시는 것을 아직 얻지 못하셨을까 염려되었습니다. 그 자가 죽으면 마마께서 공들이신 것이 헛되이 질까 염려되어, 어탕에 약간의 약재를 넣어 목숨을 부지한 것입니다.”마치 자신이 한 모든 일이 중전을 위한 것처럼 말하였다.중전은 더욱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생각을 한 것이오?”“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소신과 마마께서는 동병상련의 처지이옵니다.”이 말을 들은 중전의 눈빛은 싸늘하게 변했다.그럼에도 김단은 꿋꿋이 말을 이어갔다.“소신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친족을 직접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그 말과 함께 김단은 손을 들어 이마 위의 머리카락을 들어올려 상처를 드러냈다.“마마, 이걸 보십시오. 이게 바로 임씨 부인이 내리 쳐 생긴 상처이옵니다. 그때 소신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였습니다. 의원님께서 제때 치료해주지 않으셨다면 소신은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이어서 그녀는 팔에 있는 상처들을 드러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소신은 이 상처들을 볼 때마다 지난 날의 모든 일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채찍 자국 하나하나가 소신이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죽느니만 못한 삼 년을 어찌 보냈는지! 저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지난 일을 되새기니 그녀는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이에 그녀의 눈빛에 담긴 억울함과 증오심이 중전에게까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이에 자연스레 약간의 신뢰를 갖게 되었다.하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이윽고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낭자는 덕빈과 사이가 참 좋았소.”“명정 대군이 소신을 거의 죽일 뻔하였는데, 소신이 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