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이제 막 명정대군의 약점을 쥐고 협박해, 앞으로는 감히 자신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했는데, 이런 일이 터질 줄이야...약성과의 충돌 때문인지 김단의 머리는 점점 혼미해졌고,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이튿날이었다.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이미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아씨, 깨어났어요!”숙희는 침대 옆에 서서 안도한 듯 기뻐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 밑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는 하룻밤 내내 김단을 곁에서 지켰음을 말해주고 있었다.김단은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온몸에 힘이 빠져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숙희는 김단을 조심스레 부축해 침대에서 내리게 한 뒤, 그녀를 위해 옷을 입혀주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아씨, 소인이 의원에게 슬쩍 물어봤는데 약을 쓴 사람을 찾아야 해독제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더 중해질 수도 있답니다.”김단은 눈썹을 찌푸렸다.“도련님은 돌아왔어?”숙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요, 어젯밤에 궐에 들어간 후 줄곧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하지만 약을 산 사람은 임학이다. 그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녀는 또 어디로 가서 해독제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해독제가 없으면 이 약성이 다시 발작할지는 김단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그런데 밖에서 갑자기 시녀가 통보했다.“아씨, 정암 종사관이 뵙자고 하십니다.”정암?그를 생각하자 김단은 어제 자신이 추태를 부린 모습을 떠올라, 얼굴이 빨개졌다.이 상황을 보니 숙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아씨, 정암 종사관이 왔다는데 왜 부끄러워하세요?”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김단은 멍하니 생각하더니 뾰로통해서 숙희를 노려보았다.“내가 뭘 부끄러워했다고. 어제 정암 종사관이 날 구해줬어, 빨리 가서 청하라.”숙희는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네, 지금 청하러 갑니다!”말을 마치자, 도망쳤다.숙희가 정암을 응접실로 모시고 갔다.김단이 왔을 때 정암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김단을 보자, 그는 입에 있는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은 이내 뺐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난 정암은 어느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한편, 곁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숙희는 너무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난 김단도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있었고 그렇게 어색해진 분위기와 함께 두 사람은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정암이 먼저 말을 꺼냈다.“저기, 전, 전 군중에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서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정암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자 김단도 인사를 한 뒤, 떠나는 정암의 뒷모습을 말없이 쳐다보았다.이때, 숙희가 갑자기 김단에게 갑자기 다가가 씩 웃으며 말했다.“아씨, 종사관 나으리 귀를 보세요. 거의 익어가고 있습니다! 나으리는 아씨를 연모하고 계신 게 확실합니다!”김단과 그저 손이 살짝 닿았을 뿐인데 얼굴이 저렇게 터질 것처럼 빨개지다니.한편, 가볍게 미소를 짓던 김단은 숙희의 말에 표정이 확 굳어졌다.“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김단은 명정 대군과 혼약을 한 사이인데 유언비어 몇 마디로 정암이 목숨 걸고 쟁취해낸 종사관의 자리를 잃게 만들 수는 없다.숙희도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가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아 참, 아씨, 명희 걔는 어떻게 벌하실 거예요?”명희가 언급되자 김단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입을 찢어버리고 집안에서 쫓아내거라!”화들짝 놀란 숙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하지만 명희는 이제 아씨의 여동생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둘째 아씨가 알면 또 울면서 찾아오실 게 분명합니다.”숙희는 명희가 김단 아씨와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것을 절대 믿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단 아씨가 명희에게 이런 벌을 내린다면 사람들은 김단 아씨를 악독하고 잔인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다.더군다나 둘째 아씨가 매번 울면서 김단 아씨를 찾아와 징징거리면 결국 피해를 입는 건 항상 김단 아씨였기에 숙희는 걱정이 되었다.하지만 김단은 그저 피식 코웃음을 치
소리를 지르던 덕빈은 다시 한번 김단의 뺨을 때렸고 김단은 너무 큰 충격에 몸을 휘청거렸다.김단은 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 쥐고는 잔뜩 흥분한 덕빈을 보며 서러움과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결국 순순히 덕빈 앞에 무릎을 꿇었다.하지만 덕빈은 전혀 진정되지 않은 채 김단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넌 그저 잡종 배에서 태어난 천박한 년일 뿐이야! 난 네가 불쌍해서 우리 명정 대군과 혼인까지 허락해 줬는데 네가 감히 내 아들을 무시해? 네년이 아니었다면 내 아들은 갑자기 한양을 떠나 약왕곡에 찾아가지도 않았을 거야!”덕빈의 말에 김단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아마도 덕빈은 김단이 명정 대군을 협박한 일을 알게 된 것 같았다.하지만 김단은 명정 대군을 무시해서 그를 협박한 게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김단은 더 이상 명정 대군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면서 살 수 없었으며 또한 그가 다른 여자들을 함부로 때리는 것을 그저 두고 볼 수도 없었다.김단은 임학이 명정 대군에게 약왕곡에 절단된 다리가 다시 자라나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거짓말을 할 줄은 몰랐으며 명정 대군이 약왕곡에 찾아갔다가 당우리의 산적들에게 잡혀가게 될 줄은 더더욱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지금 덕빈 마마에게 상황을 설명한다고 해도 그저 덕빈 마마의 화만 더욱 돋우게 될 뿐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김단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편, 김단이 전혀 반항을 하지 않자 덕빈은 그제야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지만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었으며 눈물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덕빈에게는 아들이 명정 대군 한 명뿐이기에 만약 명정 대군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덕빈도 제정신으로 살 수 없을 것이다.이때, 곁에 서있던 궁녀가 얼른 다가가 덕빈을 부축했다.“마마, 노여움 푸십시오. 이러다가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명정 대군께서는 꼭 무사히 돌아오실 수 수 있을 겁니다.”궁녀는 덕빈이 숨을 고를 수 있도록 따듯한 차를
김단은 시종일관 한 마디 반박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아들의 생사도 확인이 되지 않는 모친의 마음이 얼마나 절망스러울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더군다나 덕빈 마마처럼 신분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일반 백성들의 목숨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을 것이기에 김단이 명정 대군에게 맞아 죽었다고 해도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때문에 덕빈에게 있어서 아들의 목숨만 귀하고 김단이 그 귀한 아들에게 맞아 죽는다고 해도 감히 김단은 반항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김단은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의 치맛자락을 쳐다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왜 명정 대군의 목숨은 귀하고 그녀의 목숨은 천하단 말인가? 왜 그 여인들은 명정 대군에게 잔인한 괴롭힘을 당하다가 죽어도 전혀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분노가 점점 차오른 김단은 산적들이 명정 대군의 배를 갈라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정신을 번쩍 차렸다.명정 대군은 김단에게 있어서 진산군 관저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빠른 방법이기에 명정 대군은 아직 죽으면 안 된다. 죽는다고 해도 반드시 그녀와 혼인을 하고 나서 죽어야 한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렇게 김단은 주먹을 꽉 쥔 채 계속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해가 질 때까지 덕빈은 몇 번이나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가 진이 빠져서 옆 병풍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이때, 궁녀 한 명이 다가와 덕빈 앞에 고개를 숙인 채 보고를 올렸다.“마마, 소 장군과 임학 도련님께서 마마를 찾아오셨습니다.”소한과 임학이 찾아왔다는 말에 김단은 미간을 확 찌푸렸고 병풍에 기대어 쉬고 있던 덕빈도 힘겹게 몸을 일으켜 퉁퉁 부은 두 눈으로 김단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넌 참 실력도 좋아! 내 아들은 아직 생사도 모르는데 널 위해서 저렇게 남자 두 명이나 한꺼번에 찾아오고 말이야!”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궁녀를 힐끗 쳐다보며 언성을 높였다.“만나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라고 전해!”“하… 하
덕빈은 수중에 가지고 있는 산업들도 많았고 친정도 부잣집이었기에 아들만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면 뭐든 내어줄 수 있었다.하지만 소한의 대답에 덕빈은 다시 한번 희망을 잃고 말았다.“그자들이 원하는 건 관청의 공문입니다. 그자들이 산속이 아닌 당우리 마을에 내려와서 살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한 마디로 산적들은 관청의 인정을 받아 당당하게 산을 차지할 뿐 아니라 대놓고 마을을 강탈하겠다는 뜻이다.하지만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이런 요구는 황제의 존엄을 발로 무참하게 짓밟는 거나 다름없기에 산적들이 명정 대군을 죽인다고 해도 황제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어차피 황제한테는 명정 대군 말고도 아들이 많으니까.이런저런 생각에 덕빈은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고 궁녀들은 재빨리 달려가 덕빈을 부축했다.“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내 아들을 어떻게 해야 구할 수 있단 말인가?”정녕 명정 대군을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라는 건가? 하지만 이때, 임학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덕빈 마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상께서 소 장군에게 병사를 이끌고 명정 대군을 구해오라는 어명을 내리셨습니다. 소 장군은 무조건 명정 대군을 무사히 구할 수 있을 겁니다.”임학의 말에 덕빈은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그럼 소 장군은 산적들이 어디에 숨어있는 알고 있는 것이오?”명정 대군을 잡아간 산적들은 현재 당우리에 있는 산적들이 아니었다.그들은 당우리에서 출발하여 명정 대군을 납치한 뒤 어딘가에 숨어있는 게 분명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은신처를 알아내지 못했다.덕빈의 실망한 말투에 임학은 다시 말을 꺼냈다.“소인과 소 장군은 오늘 이 일로 마마님께 찾아온 것입니다.”“그게 무슨 뜻인가?”덕빈이 의아한 표정으로 임학을 쳐다보자 임학은 서서히 고개를 김단에게 돌렸다.시종일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김단은 임학의 시선이 느껴졌고 불안한 마음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명정 대군께서 서신에 쓴 내용에 의하면 산적들은 명정빈으로 명정 대군을 교환할 생각이
덕빈도 김단의 손을 꼭 잡았다. 물론 조금 전에 김단의 뺨을 때리고 김단에게 욕설까지 퍼부었지만 덕빈은 김단이 명정 대군을 반드시 구해줄 거라고 확신했다.명정 대군은 김단의 유일한 구세주이니까.임학은 교환 시간이 오늘 밤 자정이라고 얘기했고 덕빈은 김단에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더 전하고 나서 김단에게 얼른 돌아가서 쉬라고 했다.김단은 뜨거운 찻물에 데어 어깨가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허리를 쫙 편 채 앞에서 뚜벅뚜벅 걸어갔고 뒤따라오는 소한과 임학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궁 밖으로 나서자 김단은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진산군 관저 마차에 올라타려고 했다.하지만 그녀가 발을 내딛기도 전에 뒤에서 소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머슴으로 위장하여 낭자와 함께 갈 것이오.”소한은 자신이 뒤따를 것이니 김단에게 겁먹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김단은 그저 고개를 돌려 소한을 힐끗 쳐다보더니 비꼬듯이 말했다.“장군님은 저를 보호하려는 겁니까 아니면 명정 대군을 보호하려는 겁니까?”머슴으로 위장하여 김단과 함께 간다고 했는데 생사가 걸린 위급한 순간이 찾아오면 소한은 과연 김단을 보호할까 아니면 명정 대군을 보호할까?그 답은 너무도 명확했다. 소한은 김단을 위해 머슴으로 위장하는 게 아니라 황제의 어명을 받고 명정 대군을 안전하게 데리고 오려는 것뿐이다.때문에 김단은 소한이 조금 전에 했던 말이 너무도 어이없고 우스웠다.한편, 소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김단이 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고 곁에 서있던 임학이 소한의 어깨를 툭툭 치고 나서 김단이 탔던 마차에 타려고 했다.이때, 갑자기 마차 안에서 발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마차에 타려고 하는 임학을 뻥 차버렸다.뒷걸음질 치던 임학은 화가 난 듯 마차 안에 앉아있던 김단에게 소리를 질렀다.“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오!”김단이 천을 살짝 거두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대꾸했다.“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좁은 마차에 함께 타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지금 미친 것이
임학이 말한 것처럼 김단이 뒤끝이 길고 반드시 복수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은 소한 때문에 생긴 것이지만 김단은 전혀 기억 못 할 것이다.김단에게 있어서 소한은 그저 자신을 다른 남자 방에 억지로 밀어 넣은 나쁜 놈일 뿐이니까.생각을 하다 보니 소한은 마취제마저 제대로 구하지 못해서 하마터면 큰 사고를 칠 뻔한 임학이 너무 짜증이 났다.소한은 고개를 돌려 임학을 힐끗 노려보고는 장군 관저의 마차에 올라탔고 어리둥절해 있던 임학은 떠난 진산군 관저 마차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소한이 탄 마차에 함께 올랐다.하지만 임학에 마차에 발을 대기도 전에 소한이 냉랭하게 말했다.“난 개인적으로 처리할 일이 있으니 임 장군과 함께 가지 못할 것 같소.”말을 마친 소한은 빠르게 떠났고 임학 혼자만 궁문 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한편, 김단이 별당으로 돌아오자 숙희가 한걸음에 달려와 잔뜩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아씨, 명희가 집안에서 쫓겨났습니다. 둘째 아씨도 이 일을 알게 됐고요. 소인이 보기엔 둘째 아씨가 몰래 명희를 보러 갈 것 같습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집안에서 가장 똘똘한 노비를 보내 명희를 확실하게 지켜보라고 시켰습니다.”말을 하던 숙희는 그제야 김단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아씨, 왜 그러세요? 덕빈 마마께서 뭐라고 하신 거예요?”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김단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고 머릿속에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산적들은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좋았기에 명정 대군이 잡혀가고 나서 지금까지도 조정에서는 산적들이 숨어있는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다.하지만 인질을 교환하면 산적들은 자신들의 위치와 신분이 노출되는 위험이 커지는 건데 명정 대군이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산적들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인질을 교환하려는 건지 김단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명정 대군과 아직 혼인을 치르지도 않은 명정빈이 명정 대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왜 굳이 김단으로 교환하려는 걸까?김단은 불안감이 점
김단도 예전에 무술을 배운 적이 있지만 거리를 떠도는 저질스러운 놈들만 상대할 수 있을 뿐, 진정한 고수를 만나면 절대 승산이 없다.당우리 산적들은 전부 특수 훈련을 받은 고수들이기에 김단은 소한에게서 한두 가지 기술이라도 익혀야만 그자들을 상대로 목숨 정도는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김단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하지만 김단은 소한이 건넨 비수를 받지 않았고 소한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김단은 예전에 이 비수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그럼 이건…”소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단은 자신의 머리 위에 꽂은 비녀를 빼더니 말했다.“비수를 몸에 지니고 있기엔 너무 티가 납니다. 산적들이 제 몸을 수색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전 이 비녀가 저에게 더 유용할 것 같습니다.”김단이 예전에 소한이 건넨 이 비수가 갖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필요 없었다.한편, 비수를 손에 꽉 쥐고 있던 소한은 이내 비수를 도로 거두더니 씁쓸한 말투로 대꾸했다.“낭자 말도 일리가 있소. 낭자한테는 비녀가 더 유용하게 쓰일 것 같소.”말을 하던 소한은 이내 김단을 데리고 저택 앞에 있는 빈 공간으로 향했다. 김단은 무술을 배운 적이 있기에 습득 능력도 빨랐다. 그렇게 소한은 한참 동안 김단에게 동작을 가르쳤고 두 사람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이때, 소식을 들은 임씨 부인과 임원도 한걸음에 달려왔다. 임씨 부인은 무술을 연습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이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산적들은 왜 우리 단이로 교환하려는 겁니까?”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임원은 곁에 서서 임씨 부인을 위로했다.“어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소 장군님께서 언니에게 호신술을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언니는 무사하게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임씨 부인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김단을 쳐다보고 있었다.이때, 강도 높은 연습으로 다리에 힘이 풀린 김단이 갑자기 휘청거렸고 소한이 한발 빠르게 달려가 김단의 팔을
5일 후.김단은 허약해 보이는 안색을 숨기기 위해 가볍게 치장을 하고 외출하려 했다.그녀는 이미 십여 일 동안 조모께 문안드리지 않았다. 비록 수 나인께서 돌보고 계시지만, 조모는 틀림없이 그녀를 매우 걱정하실 것이다. 그녀는 조모께 안부를 드려야 한다.조모를 만난 후에 그녀는 정암을 찾아가려 한다.그녀는 정암도 틀림없이 자기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문을 나서자마자, 마당에 서 있는 임씨 부인을 보았다.김단을 보자 임씨 부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다가서려 했으나 김단이 밀어낼까 봐 걱정되어 그 자리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김단은 살짝 한숨을 쉬고 나서야 임씨 부인을 향해 걸어갔다.그녀는 인사를 올렸다.“마님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김단의 부드러운 말투를 듣자, 임씨 부인의 웃음은 그제야 어색하지 않았지만, 눈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김단을 보고 말했다.“원이가 오늘 침대에서 내려온 것을 보고서야 너를 보러 왔다. 지금 네가 이렇게 잘 회복되는 것을 보니 나도 안심할 수 있다.”김단은 고개를 숙이고 말하지 않았다.분위기가 어색해하자, 임씨 부인은 다시 물었다.“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외출하려는 것이냐?”김단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네, 정암한테 가려고 합니다.”“뭐?”임씨 부인은 좀 놀랐고,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단이야, 잘 생각했어? 정말 정암과 함께 할 셈이야?”김단은 대답은 하지 않고 단지 조용히 임씨 부인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임씨 부인은 그녀 눈에 담겨있는 확고함을 똑똑히 보았다.이 상황을 본 임씨 부인의 마음은 매우 아팠다.“나는 네 결심을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정암의 아버지께 일이 생기고, 그럼 다음은? 앞으로 정암의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면 너는 계속 이렇게 너와 원이의 몸을 망가트릴 것이냐?”이 말을 듣고서야 김단은 참지 못하고 비웃었다.임씨 부인이 걱정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정암은 진산군댁에 들어서자마자, 별당으로 곧장 달려갔지만, 김단을 만나지 못했다.숙희가 방문 밖에 서서 정암을 향해 인사하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정암 종사관님의 아버지께서 괜찮으시다니 첨만 다행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아씨께서 휴침 중이시라 아마도 종사관님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오시지요!” 정암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혹시 아씨께서 날 만나고 싶지 않은 건지?”숙희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가 다시 말했다.“종사관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씨께서는 최근 며칠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종사관님 아버님께서 풀려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겨우 안심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제가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정암은 심장이 갑자기 쪼여지더니, 바삐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방해하지 말고, 푹 쉬게 해야지. 그럼, 그럼 내일 다시 오겠네.”그는 말하고는 돌아가려 했다그러나 숙희가 급하게 그를 불렀다.“종사관님!”정암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숙희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미간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아씨는 종사관님 아버지께서 감옥에서 고생하셨을 거라 생각하셨고, 종사관님께서 요 며칠 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시며 아버님의 마음을 달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지나서 저희 아씨께서 종사관님을 보러 갈 것입니다.”며칠 지나서 김단이 그를 보러 갈 테니, 그는 다시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정암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그녀는 며칠 동안 단식을 했으니, 지금은 분명히 매우 허약할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그가 걱정하고 자책할까 봐, 그녀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다만,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파서 그의 두 눈마저 시뻘게졌다.그는 무능한 자신이 너무 밉다.숙희는 정암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바삐 입을 열었다.“종사과님, 아씨의 마음속에는 종사관님이 있어요.”이 말을 듣고 정암이 멍하니 있다가, 계속 고개만 끄덕였다.
정암은 멍해졌다.단식? 찌꺼기를 먹는다고?요즘, 그는 아버지의 일 때문에 바쁘게 뛰어다녔고, 가끔 한가해질 때면 항상 그녀를 그리워했다.그는 그녀가 자기 아버지가 걱정되어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이루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진산군댁의 호위가 그를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하지만 그도 감히 담을 넘지 못한다.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그녀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할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그는 그녀가 이렇게 큰 희생을 할 줄 몰랐다.그는 그가 찾은 증거가 충분해서 아버지가 석방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경조부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단식하고, 찌꺼기까지 먹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가슴이 무언가에 찢기는 것 같았다. 정암은 지금처럼 자신을 미워한 적이 없다.무능한 자신이 너무 미웠고, 그녀를 보호해 주겠다고 해놓고, 결국 그녀는 자신을 위해 이 지경까지 괴롭힘을 당했다!임학은 이 틈을 타서 정암의 제한 속에서 벗어났고 정암의 얼굴을 향해 두 주먹을 날렸다.“너 때문이야! 이 썩을 놈아! 네가 뭔데 내 여동생이라 혼인하겠다는 거야!”정암은 비틀거리며 두 발짝 뒤로 물러섰지만, 정신을 차리고 갑자기 임학을 향해 돌진했다. 주먹이 사정없이 임학의 얼굴로 향했다.“당신들은 왜 계속 그녀를 괴롭힙니까? 그녀는 진산군댁의 친딸이 아니더라도 당신 집에서 15년 동안 키운 딸이지 않습니까?”임학은 몇 대 맞고 피를 토했지만,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정암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네가 분수도 모르고 나대지만 않았어도 단이는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정암은 피하지 않았고,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는 자신이 맞아도 싸다고 느꼈다.자신의 무능함에 주는 벌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임학이 자기보다 더 못났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다시 주먹을 휘두르고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이 그녀의 살갗을 벗기고 피를 마시고 있습니다!”임학은 쓰러지더니, 발버둥 치며 일어나 바닥에 앉아 거
진산군은 몸을 돌려 시녀들을 향해 화냈다.“다들 멍청이느냐? 빨리 의원을 불러 큰 아씨한테 오라고 해! 어서 제비집 죽 가져와!”이렇게 소리쳤지만 몸을 돌려 김단을 쳐다보지는 못했다.숙희도 그제야 김단 곁으로 다가가 손수건을 꺼내 그의 다른 손을 살며시 닦아주었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아씨, 흑흑흑, 방에 들어가요...”그러나 김단은 그저 평온하게 임학을 바라보며 목이 멘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도련님께서는 말한 대로 하시기를 바랍니다.”오늘 이후로, 진산군댁은 더 이상 정암 가족을 괴롭히지 못한다!이 말은 마침내 임학을 자극했다.임학은 김단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정암이 그렇게 좋아?”얼마나 좋았으면, 정암을 위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한 통의 찌꺼기를 다 먹을 수 있겠어?정암이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녀를 이 지경까지 만드는 건가?김단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숙희랑 방 안으로 걸어갔다.그녀는 과연 정암을 그렇게 많이 좋아하나?그녀도 잘 모른다.그녀의 진산군댁 생활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듯했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때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그러나 정암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쪽배처럼 그녀가 익사할 때 나타나 그녀를 배에 태워서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모든 사람이 정암은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고 한다. 작은 쪽배도 바다 위에서는 물결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거센 파도가 밀려올 때면 쪽배도 부서지고 새고 결국 그녀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이 쪽배가 그녀의 생명을 구했었다는 것을 모른다.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정암이 그녀를 버리지 않는 한 그녀는 정암을 포기할 수 없다!임씨 부인은 눈물을 훔치며 김단을 따라 방에 들어가려 했지만, 방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김단이 막았다.“숙희만 있으면 돼요, 마님은 돌아가세요!”말이 떨어지자, 김단은 방에 들어가 담담하게
임학은 김단을 노려보았다. 마치 김단이 먹지 않을까 봐 걱정된 듯 또 입을 열었다.“만약 네가 이 통 안의 것을 먹는다면 진산군댁에서 더는 정암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마.”임학의 말을 듣고, 임씨 부인은 마음이 쪼여졌다.“학아, 네가 어떻게 단이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 단이는 벌써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네가 어떻게 단이에게 찌꺼기를 먹이느냐?”임학은 몸을 돌려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다.“어머님! 제가 독한 것이 아니라, 정말 김단이 너무 교활해서 그래요! 이번에 원이를 단식하게 하고, 다음에 또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두 분은 정말 더 이상 김단을 믿어서는 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임학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임원마저 삼키는 동작을 멈추고 모든 사람과 함께 놀라서 그의 뒤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그제야 임학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온몸이 뻣뻣해져 천천히 몸을 돌렸다.김단은 어느새 찌꺼기 통 옆에 엎드려 두 손을 통에 넣고 통 안의 물건을 잡고 먹고 있었다.임원처럼 게걸스럽게 먹는 것과 달리, 그녀는 천천히 먹고 있었다.그녀는 그저 조용히 먹고 있었다.마치 평범한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그런데, 그것은 어젯밤에 남겨진 찌꺼기다!모든 사람이 먹다 남은 것이다!먹기는커녕, 한쪽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찌꺼기 통에서 가끔 풍기는 이상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냄새만 맡아도 속이 쓰리다.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지?임원의 눈이 심하게 떨고 있었다.3년 전에 그녀가 김단을 해쳤지만, 그녀가 도대체 김단을 어느 지경까지 만들었는지 잘 몰랐다.지금, 이 순간, 한때 구슬처럼 눈부시게 빛났던 사람이 지금에 와서 길가의 거지처럼 찌꺼기 통을 안고 먹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마침내 자기가 도대체 김단을 어느 지경까지 헤쳤는지 깨달았다!이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려 무의식적으로 진산군과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놀
김단의 움푹 들어간 검은 눈언저리를 본 숙희는 마음이 깨질 것만 같았다.김단이 힘없이 입을 여는 것을 보았다.“사람을 보내서 경조부에 가서 확인해 봐.”숙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제가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말을 마치자, 숙희는 즉시 사람을 경조부로 보냈다.진산군은 조급했다.“너도 사람을 보냈으니, 내가 속일 수는 없지 않느냐? 빨리 네 여동생에게 좀 먹어라 해!”말하는 사이에 임씨 부인도 왔다. 그녀의 뒤를 바짝 따르던 시녀 두 명이 제비집을 넣고 끓인 죽을 한 그릇씩 들고 있었다.김단과 임원을 보고 임씨 부인은 마음이 아팠고 바삐 시녀에게 말했다.“빨리 두 아씨에게 죽을 먹여라!”그러자 두 시녀는 김단과 임원 앞에 무릎을 꿇고 제비집 죽 한 숟가락을 떠서 두 사람의 입으로 떠넣었다.그러나 김단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김단은 위협하는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보았다.김단의 시선을 감지한 임원은 가슴이 조여와, 이미 벌린 입을 재빨리 다물고 다시 누웠다.임원은 눈을 감고 어깨를 계속 떨며 우는 것 같았다.그러나 5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서, 그녀는 지금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했다.이 장면을 보고 진산군과 임학은 분노했다.임학은 심지어 욕설을 퍼부었다.“양심 없는 년! 아버지께서 이미 사람을 풀어주셨는데, 또 뭐 어쩌려고? 정말 원이를 죽게 만들 셈이야? 정암 때문에 네 눈에는 네 여동생의 목숨도 보이지 않니?”임학은 화가 나서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그러나 김단은 천천히 눈을 감고 그를 보지 않았다.5일 동안 먹고 마시지 않았는데, 그녀는 지금 정말 그와 다툴 힘도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꼭 한마디 했을 것이다. 임원은 자기의 여동생이 아니라고!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숙희가 보낸 머슴애가 황급히 돌아왔다.이 머슴애는 별당 사람이다. 김단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떨려 말하는 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아씨, 소인은 정암 종사관이 그의 아버지를 데리고 가는 것을 똑똑히 봤습니다.”이
예전에 김단을 위해 별도 달도 따다 주겠다는 사람이 지금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참!김단은 소리 내며 웃더니, 몸을 돌려 계속 풀을 뽑았다. 땅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슬픔이 숨어 있었다.“대감마님께서 정말 임 낭자를 아끼신다면 빨리 무고한 사람들을 풀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임 낭자는 굶어 죽어도 전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이렇게 말하자, 김단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어 진산군을 바라보았다.눈빛에 담긴 슬픔은 이미 사라졌고, 오직 비웃음만이 남아 있었다. “임 낭자는 대감마님의 유일한 딸이십니다. 그녀를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진산군은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김단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노는 더욱 솟구쳤다.“좋아! 좋아! 정말 이것으로 나를 쥐락펴락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 너는 정말 이 아버지를 우습게 보는구나! 내가 전쟁터에 나갔을 때, 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 진산군은 김단에게 자기도 고집불통이라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싶었다.그러나 김단은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 “제 아버지의 성은 김씨 입니다. 벌써 죽었다고 들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진산군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손가락으로 김단을 가리키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소매를 뿌리치고 가버렸다.커다란 별당이 다시 썰렁해졌다.김단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다시 굳게 닫힌 정원 문을 보면서 오랫동안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정원 문이 다시 열릴 때는 3일 후였다.이때 김단은 정원의 흔들의자에 누워 힘이 조금도 없었다.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보니 진산군이 한 무리의 사람을 이끌고 화내며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배고픔이 극에 달했는지, 김단은 눈앞이 흐릿해져도 진산군이 오는 쪽을 힘겹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진산군의 뒤를 따르는 임학과, 뒤에서 누군가에게 이끌려 오는 임원의 모습을 뚜렷이 알아보았다.그녀는 그제야 입꼬리를 올렸다.보
김단은 정원 문 뒤에 서서 어두운 밤 속에 가려진 연못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연못 물은 맞은편에 있는 초롱의 빛을 거꾸로 비추고 있었다. 약한 빛은 마치 언제든지 어둠에 삼켜 버릴 것만 같아 연못의 돌다리조차도 똑똑히 비추지 못했다.김단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야 돌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귀밑의 살쩍을 불었지만,연못은 미동도 없었다.김단은 자기가 마치 초롱의 빛이고, 부드러운 바람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망가지든 옛 가족의 마음을 흔들 수 없다고 느꼈다.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씁쓸하게 웃었다.이 순간, 그녀는 오히려 임원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임원이 정말 마시지 않고 먹지 않는 한 진산군은 반드시 마음이 아플 것이다!김단의 짐작이 맞았다.이틀이 지나자, 진산군은 노기등등하여 별당으로 왔는데, 마침, 김단은 정원에서 김매고 있었다.초봄이 되어 화단의 잡초가 매우 빨리 자라서 제때 뽑지 않으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꽃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진산군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걸 본 김단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진흙으로 더럽혀진 두 손을 진산군을 향해 내보이며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대감마님께서 오늘 오실 줄 몰랐습니다.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망할 년!”진산군은 노발대발하더니 손을 휘젓더니 엄하게 명령했다.“뒤져라!”갑자기 두 팀의 호위가 좌우로 나뉘어 줄지어 들어왔다.김단은 그제야 눈살을 찌푸렸다.“대감마님께서 무슨 뜻입니까?”진산군은 대답 없이 김단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팀의 호위는 또 모두 나왔다.“대감마님, 어떤 음식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대감마님, 저희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그녀가 음식을 숨겨서 먹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콧방귀를 꼈다.진산군이 차갑게 소리치며 물었다.“너는 도대체 먹을 것을 어디에 숨겼느냐!”이틀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서 임원은 침대에서 내려올 힘
진산군은 이 일을 알고 매우 화가 났다.김단이 별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산군댁의 호위들은 벌써 별당을 포위했다.호위장은 때마침 돌아온 김단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대감마님께서 오늘부터 큰 아씨를 별당에 연금하여 외출을 금지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김단은 이미 예상해서 놀라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별당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러자, 호위장은 또 김단을 막고,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큰 아씨께서 단식하는 것을 좋아하시니 오늘부터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마시지 말고, 먹지도 말라고 명하셨습니다.”김단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여전히 담담한 모습으로 말했다.“알겠으니, 이제 들어가도 되겠소?”김단이 이렇게 차분한 것을 보자, 호위장은 의아했다. 김단이 무슨 방법이 있어 연금에서 빠져나갈까 봐 작은 소리로 알려줬다.“대감마님께서 우리더러 별당을 엄격히 지키라 하셨습니다. 이 기간에 별당에는 아무도 드나들지 못합니다. 명을 거역하는 자는 당장 죽이라고 하셨습니다.”이 말은 김단이 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밖의 사람과 연락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예를 들면, 전에 몰래 그녀를 보러 왔던 정암을 말한다.하지만 지금, 김단이 걱정되는 사람은 정암이 아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대감마님께서 벌을 내린 사람은 나뿐이오. 내 마당의 하인과는 무관하오. 나를 가둬두기 전에 내 마당에 있는 모든 사람을 나오라 해도 되겠소?”이 말을 듣자, 호위장도 난감했다.“이러면...”“모두 살자고 일하는 것인데, 그들도 집에 살려 먹여야 할 사람이 있는데, 주인인 내가 잘못했다고 그들까지 연루해야 하오?”김단은 말하면서 머리에서 비녀 하나를 뽑아서 호위장 손에 넣어 줬다.“좀 봐주시죠.”이 비녀는 전에 궐에서 하사한 것이다. 비녀 위에 있는 진주만이라도 가치가 어마어마해서 호위장은 바로 마음이 움직였다. 생각해 보면 김단의 말도 도리가 있다.더군다나, 진산군은 큰 아씨를 연금하라 했지, 미리 별당 사람을